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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0년 416재단의 기금을 받아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전주희 연구원이 수행한 연구보고서이다. 주제는 <2.18 대구지하철참사 다시 쓰기 : 노동자·시민의 안전을 다시 생각하다>이다. 2020년 대구지하철참사 18주기에 맞춰 본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18주기 기념 토론회에 발표가 된 바 있다. 보고서의 전문은 PDF 파일로 첨부하되,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 문제의식과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 일부를 발췌하여 올린다. - 편집부

 

 

 

자료_대구지하철참사_보고서c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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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대구지하철 참사 다시 쓰기 

: 노동자·시민의 안전을 다시 생각하다.

 

 

전주희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Ⅰ. 서론

 

 

1. 연구배경과 필요성 : 대구지하철 화재참사가 우리사회에 던지는 질문과 과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고 약 한달 뒤, 경기도 안산시는 <세월호 침몰사고에 따른 대구지하철 참사 벤치마킹 결과보고>를 작성했다. 나는 우연히 이 문건을 보게 되었는데, 안산시 관계자들이 대구광역시를 방문해 ‘대구지하철 참사 사고수습 현황 및 문제점 등 자료수집’, ‘시민단체 등 민간부문 활동내역 파악’, ‘추모사업 추진 현장 견학’ 등을 조사하고 방문한 기록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사고의 원인과 수습과정에 대해 참고할 만한 제대로된 매뉴얼이나 보고서가 부재한 상황에서 대구지하철 참사의 사례는 참고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참조점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나중에 유가족이나 대구지하철 노동조합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구지하철참사를 다시 찾은 이들은 비단 지방정부나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언론, 시민단체 등 여러 주체들이 대구지하철참사 당시의 유가족, 노동조합, 시민대책위 등에 결합했던 주체들을 찾아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의 상황을 ‘다시’ 말해주기를 요청해왔다는 것을 알았다. 

안산시에서 작성한 대구시 방문 보고서에는 주요하게 참조해야할 시사점 중의 하나로 ‘백서 발간’을 꼽았다. 대구시 관계자, 시민단체, 유족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고의 원인규명과 수습과정 상에서 얻을 수 있는 비판적 교훈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사고조사보고서는 대구지하철참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782쪽에 달하는 <대구시 지하철사고 백서>를 염두에 둔 말이었을 테고, 시민단체와 유가족은 제대로 된 사고조사보고서가 부재한 지금의 상황을 염두에 둔 말이었을 테다. 

 

참사는 저마다의 기억으로 남겠지만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특정한 이미지로 추상화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그렇다. 참사의 이미지, 오늘날 대구지하철 참사의 이미지-검게 타버리다 못해 휘어지고 구부러진 전동차 내부의 모습으로 각인된 이미지-는 풀지 않은 문제와 같다. 수많은 물음들을 함축한 채, 참사의 시간과 공간으로 우리를 다시 되돌리는 역할을 한다. 

 

화재로 불탄 대구지하철 전동차 내부(출처 : 426재단 홈페이지)

 

하지만 참사의 이미지만으로는 참사의 서사를 구성하지 못한다. 동시에 참사의 서사는 바로 이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불타버린 전동차가 직접적으로 드러내주지 못하는, 하지만 일종의 수수께끼처럼 그 해답이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 이미지로부터 시작해 사고의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단서들을 쫓아 사고의 원인과 결부된 수많은 연결고리들을 복원하는 과정이 곧 참사의 서사를 구축하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구지하철참사는 지하철을 운행하는데 하나의 요소로서 포함되어 있는 작은 실수 혹은 일상의 무심함, 행정기구의 오래된 관행, 그리고 이윤을 위한 자본의 합리적인 행동이 낳은 잠복된 위험, 그리고 IMF 이후 중산층의 꿈이 무너진 어떤 인간의 어긋난 분노의 표출 등이 하나의 일직선으로 정렬되는 그런 비일상적인 순간이 형성되면서 발생했다. 

도저히 하나의 원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복잡성과 연계성이 모든 원인의 고리를 접합시키면서 참사는 참사가 되었다. 

 

때문에 복합적인 원인들이 어떻게 연계되었는지, 그 총체적인 원인을 밝히는 것은 참사가 단지 예측하지 못한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안전하다고 믿었던 우리의 일상이 실은 잠재된 위험 위에서 구축된 불안전한 건축물임을 때 이르게 보여주는 예시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대구지하철참사 이전에도 수많은 참사가 있었지만 곧 잊혀졌다. ‘세월호안전사회소위원회’는 재난으로부터 어떠한 사회적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를 ‘재난에서 배우지 않기’로 명명한 바 있다(최형섭 외, 2016). 그러면서 재난에서 배우지 않았던 사회에서 ‘세월호 참사’를 위치시킨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사고,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유출사고가 있었고, 대구지하철참사가 있었다. 모두 “사회적 학습 실패의 역사”의 목록들인 셈이다. 그러한 수많은 사건들이 세월호 이후 사회에서 다시 되불러져야 하는 이유는 세월호 역시 우연한, 혹은 음모에 가득한 예외적인 불행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또 다시 반복될 수 있는 참사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참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첫 번째 과제는 ‘참사를 무엇으로부터 기억해 낼 것인가’의 문제로 다가왔다. 즉 이미지나 기억, 혹은 당사자의 ‘말’이 아니라 이들을 묶어낸 ‘텍스트’로서의 참사의 필요성이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대구지하철참사의 ‘사고조사서 다시 쓰기’를 시도하려는 이유는 첫째. 우리사회에서 신자유주의가 본격화 된 IMF 외환위기 이후의 참사라는 점이다. 재난으로부터 배우지 않아왔던 연속적인 시간성에서 신자유주의라는 계기는 어떻게 참사와 연관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 싶었다. 둘째. 노동현장의 ‘안전사고’가 시민들의 위험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례라는 점이다. 참사를 통해 ‘관계자외 출입금지’의 영역이었던 노동현장 내부에서 어떻게 위험이 형성되고 있는지를 사회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사례이다. 셋째. ‘유가족 운동’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들은 참사의 희생자이자 시민으로서 당사자를 넘어선 안전사회의 의제를 참사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아마도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구지하철참사의 현재성에도 불구하고 사고조사보고서가 씌여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참사 당시 유가족들과 시민대책위의 요구사항으로 전문가와 유가족이 참여하는 사고조사위원회 구성이 되었지만 비상식적인 파행적 운영으로 보고서는 완성되지 못하였다. 

 

엄밀하게 말해 대구지하철 사고조사서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으므로 ‘다시’ 쓰는 과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쓰기’로 이름 붙인 까닭은 참사 당시 몇 안 되는 집요한 언론보도로 밝혀진 부분적 진실들이 있었다. 이들 진실들은 사고의 구조적 원인에 접근하기 위한 징검다리가 되어 주었다. 유가족들과 시민단체, 노동조합이 참사 초기부터 말해왔던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묻는 반복적인 행위들이 있었다. 이로써 참사의 수습과정은 두 갈래로 갈라질 수 있었다. 정부와 대구시는 참사의 ‘조기수습’을 통한 정상화를 목표로 나아갔다. 반대로 유족, 시민단체, 노동조합은 참사의 수습과정이 곧 사고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문제와 맞물려 있었다. 참사는 수습되어야 하지만 사고의 원인과 책임의 문제와 함께 해결되어야 하며, 참사의 책임자가 수습의 주체가 되는 것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견제했다. 이러한 방향과 부분적인 진실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대구지하철 사고 현장은 남아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고조사보고서는 ‘다시’ 씌여질 수 있다고 믿는다.

 

또 하나, 이제 와서라도 사고조사보고서를 ‘다시’ 써야하는 이유는 유가족들에게, 그리고 우리사회가 대구지하철참사에 대한 서사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참사에 대한 이미지는 왜곡되거나, 파편적으로만 전승되고 있으며, 유가족의 고통은 추상화되어 있다. 참사의 원인을 잘못 진단한 결과 오늘날 철도와 지하철 현장의 안전은 어떻게,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그 기원에 대구지하철참사를 올려놔야할 이유도 존재한다. 

 

따라서 남겨져 있는, 그러나 흩어져있고 파편화된 진실들을 하나로 엮어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는 불행하게도 자신들의 과오를 방어하기 위해 작성된 대구시의 방대한 ‘백서’가 사고조사서를 대신하고 있는 현실을 다시 뒤집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8여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흩어진 자료들을 모으고, 각각의 주장들을 재검토하는 과정이란 유실되거나 접근이 불가능한 진실의 비어있는 조각들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2차 문헌에 기대 사고의 원인을 규명한다는 것은 매우 불충분한 시도이므로, 본 연구서는 당시의 수사, 재판, 정부 기록들과 후속 보고서, 연구서들을 토대로 참사 당시의 흔적들을 모으고 맞추는 빈 공백이 많은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출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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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서론

Ⅱ. 대구지하철참사 실태와 원인

1. 기록되어 있는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1) 수사기록과 판결문을 통해 본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2)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화재사고백서>를 통해본 사고원인 
3) 소결 : 구조적 원인 규명의 부재 

2. 대구지하철 참사의 구조적 원인

1) ‘방화’의 사회적, 구조적 원인 
2) ‘방화’는 어떻게 대형화재로 확산되었나? 
3) 탈출과 구조는 어떻게 지연되었나? 

3. 결론 : 화재참사가 아닌 참사로서의 대구지하철참사 

Ⅲ. 유가족, 시민대책위, 노동조합의 대응 : 연속적 재난상황 만들기

1. 참사의 조기수습과 대항행위 

1) 시민대책위가 바라본 참사의 원인 
2) 유가족이 바라본 참사의 원인 
3) 참사 이후 끊임없는 대구시와 유가족간의 갈등 
3) 대구지하철노동조합의 대응 

2. 소결 : 연속적 재난상황 만들기 

Ⅳ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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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적 재난상황 만들기

 

대구시의 ‘조기수습’ 기조, 언론 등에서 사고의 원인 보다는 방화범과 기관사의 악마화에 집중하는 보도 등의 행위는 유가족, 시민대책위, 노동조합이 각각 나름대로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대항행위로 인해 갈등의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재난의 종료’가 야기한 또 다른 참사가 되면서 참사 이후 연속적인 재난 대응의 실패가 오히려 연속적인 재난 상황을 만들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하지만 유가족, 시민대책위, 노동조합의 활동이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최종적인 책임의 문제를 묻는 것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행위가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가족이나 노동조합의 행위가 여전히 아직도 현재진행중에 있으며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가족과 노동조합의 완료되지 않은 대항행위는 참사의 원인규명이 여전히 부재한 상태로 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유가족의 경우 참사 이후 추모공원을 비롯해 참사를 어떻게 우리사회에 기억하게 만드는 가에 대한 문제가 대구시를 비롯해 참사를 야기한 책임의 주체들이 회피하면서 온전하게 유가족의 몫으로 남아있게 된다. 윤석기 희생자대책위 위원장은 앞으로 희생자대책위의 과제로 “유족에게 씌운 범죄자 딱지를 벗겨내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추모사업의 완결”을 꼽았다. 그 중의 하나로 ‘추모공원’과 ‘추모탑’ 등 추모의 이름을 되찾는 것을 이야기 한다. 다시금 대구지하철참사를 사회적 참사로 규정하고 기념하는 행위는 사고의 원인과 책임에 대한 규명과정과 함께 해야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다면 왜 지금까지 대구지하철 참사와 관련된 제대로된 사고조사서가 마련되지 못했는지, 왜 지금까지 유가족을 추모하고 참사를 기념하는 행위가 대구시와 대구시민의 방해와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어야 했는지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참사의 부재하는 원인규명을 바로잡는 것 외에 다른 하나는 참사의 교훈이 매우 앙상하게 남아있으면서 이후 재발방지 대책이 전동차 내장재 교체 등과 같은 기술적인 수준에 국한되었을 뿐만 아니라, 안전을 우위에 두는 공공기관의 경영이라는 가장 심층적인 해결책과 관련해 오히려 역행해오면서 참사이후 대구지하철은 잠복된 위험이 쌓여왔다는데 있다. 

 

안전인력의 문제제기가 있었고, 대구지하철노동조합은 1,2호선 안전인력 확충을 위해 파업까지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대구지하철 2호선은 구조조정의 방침에 따라 외주화와 인력감축이 적용된 채로 개통되었다. 2014년에는 3호선이 개통되었는데, 무인운전으로 운영하게 된다. 세계 최장거리의 무인운전인 3호선은 겨울이 되면 레일이 결빙되는 등의 위험이 있고 역 중간에 전동차가 서면 대피할 곳 조차 없는 위도가 가장 높은 곳에 레일이 깔려있다. 

 

대구지하철 해고자들은 2013년 무인운전 반대투쟁을 하게 된다. 투쟁결과 유인운전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기관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운전을 하지 않은 채 안전요원으로 전동차에 탑승하게 된다.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자동화시스템이 오히려 새로운 위험요소로 등장하고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역사 무인화에 따라 스크린도어를 설치했지만, 구의역 사고와 같이 외주화에 따른 또다른 위험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전문제는 이전보다 더 중요시 되고 있지만 안전의 책임은 하위직보다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원준 위원장은 효율의 구체성에 비해 안전의 추상성이 문제라고 말한다. “대량수송, 신속수성, 경비절감은 대단히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난다. 하지만 안전은 여전히 추상적이다. 안전은 마지못해 하지만 여전히 적자는 구체적으로 줄여야한다. 안전은 경영평가에 안전이 들어가니까 하는 거고, 노사교섭에 안전이 들어가니까 하는 거로만 인식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안전에 대한 고려없이, 아니 안전에 위배됨에도 불구하고 일사천리로 관철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 그리고 공공성의 문제가 공공기관에는 부재하는 이념일 뿐, 현실에서 작동하고 갈등하는 실질적인 원리로서 작용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사 이후에 참사의 의미를 얇게 만들려는 대구시와 대구시지하철공사에 대항해왔던 세 주체들의 행위들은 참사의 수습과정에서 유의미한 쟁점을 사회에 제기하기도 하였고, 참사의 수습과 관련해 대구시의 의도대로 진행되는 것을 막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의 기조였던 ‘선 사고수습 후 책임규명’의 논리대로 현실은 사고수습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책임규명의 문제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이들의 대항행위였던 ‘연속적 재난상황 만들기’는 실패한 것일까? 하지만 실패를 평가할 수 있으려면 이들의 활동이 종료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이들의 활동을 종료했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주체들이 여전히 흩어지지 않고 있고, 대구지하철참사 관련 미약하게나마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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