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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위에 우리 모두의 초상

- 나탈리야 보로즈비트(Наталія Ворожбит) <험한 (Погані Дороги)>(2020) 

 

 

김다솜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세미나 회원

 

 

 

험한 이라는 제목 그대로 영화는 먼지 날리는 흙길을 지나는 대를 비추며 시작된다. 일반인을 섭외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만큼 평범해 보이는 운전자는 분쟁 지대의 검문소를 통과하려는 학교의 교장이다. 하필이면 전쟁이라는 험악한 상황에 여권을 잘못 들고 오는 실수를 데다 트렁크에 실은 때문에 오해가 커지고 군인들과 교장 사이의 긴장감은 누그러질 줄을 모른다. 영화를 구성하는 개의 독립된 에피소드에는 서로 다른 성별과 연령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에피소드에 나타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긴장감이 일관되게 이어진다.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전선에 나가 있는 남자친구를 소녀의 서로에 대한 질투와 멀리서 들리는 포격 소리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납치된 여성 기자와 납치범 분리파 남성 간의 권력 관계에,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차에 치어 죽어버린 닭의 값을 놓고 벌어지는 흥정 과정에 끊임없는 긴장감이 감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긴장감이 발생하게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다. 그러나 긴장감을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 얽힌 다른 감정들(연민, 사랑, 질투 ) 지극히 평범하다. 보로즈비트는 핸드헬드 기법을 사용하거나 카메라의 시선을 인물들의 눈높이에 고정하는 방식으로 관객들을 에피소드의 상황 속으로 끌어들인다. 덕분에 스크린의 표면이라는 경계는 지워지고, 우리는 모두 관객석이라는 특권화된 자리에서 내려와 카메라의 시선을 빌려 인물들의 곁에서 그들의 상황을 함께 마주하기 시작한다.  

 

영화가 지우는 경계는 비단 우리와 ‘그들’ 사이의 물리적 경계에 그치지 않는다. 네 개의 각기 다른 사연들 속에서 보로즈비트는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별을 반복해서 지워나가며 그 구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시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서사를 파악할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전쟁)영웅’과 ‘악당(침입자)’을 구별하고 우리가 마땅히 편을 들어야만 하는 쪽을 발견하려 애쓴다. 하지만 실제 전쟁에서 과연 선과 악은 칼로 무 자르듯 깔끔하게 분리되는 영역일까? 그러한 구별은 결과적으로 의미가 있는가? 선과 악을 나누는 사이에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교장과 검문소 군인들 중 ‘악인’으로 비치는 인물은 후자이다. 물론 이들은 신원을 증명한 이들만 통과를 허락한다는 원칙에 충실할 뿐이지만 언제라도 총구를 겨눌 수 있는 군인들과 평범한 민간인 사이에 놓인 힘의 불균형은 우리가 교장의 편을 들도록 부추긴다. 그러나 편 가르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교장이 몰고 온 차의 트렁크에서 총기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 총들은 정말 교장의 말대로 모형이 맞을까? 여권을 실수로 잘못 들고 왔다는 말도 거짓은 아닐까? 군인들과 실랑이하며 난처해진 교장은 불현듯 자신의 학교 학생인 류드밀라를 근처에서 발견하고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에 그녀를 큰 소리로 부른다. 군인들은 그가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제지하고 신분증을 갖고 다음 날 다시 오라며 그를 풀어주는데, 교장은 뜻밖에도 자신의 여권을 찾았다며 검문소를 다시 찾는다. 그리고 류드밀라가 억류된 것이라면 그녀를 풀어주라고 부탁한다. 군인들은 그의 오해가 확실하다고 장담하며 그를 돌려보낸다. 교장이 음주 상태였다는 사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제시되지 않는 류드밀라의 형상 때문에 교장과 군인들의 긴장 관계 속에서 관객은 둘을 '착한 편'과 '나쁜 편'으로 나누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만약 류드밀라가 초소에 억류된 게 사실이라면 군인들의 장담에 자신의 예감을 무시하고 귀가한 교장은 악인은 아니더라도 '선인'의 편에 남아있기 어려워진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우크라이나 군인 남자친구를 두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소녀들이 교제 사실을 퍼뜨린 동급생을 함께 괴롭히러 가는 데 찬성한다. 세 명의 소녀 중 한 명이 먼저 자리를 떠나자 남은 한 명이 먼저 떠난 친구의 교제는 '진짜' 사랑이 아니라며 험담하기도 한다. 그러나 애초에 전선에 있는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보내왔는지 과시하던 그들 가운데 자신들이 말하는 '순수한 사랑'을 실천하는 인물이 있었는지는 미지수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납치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완전히 전복되는 양상이 제시되는데, 납치범으로부터 감금되어 폭력과 성추행에 시달리던 피해자는 납치범의 신뢰를 얻어 그가 방심한 순간 그의 머리를 가격한다. 도망가기 위해 옷을 챙겨 입던 그녀는 무거운 콘크리트 벽돌을 주워 납치범을 수차례 더 내리친다. 그녀가 납치범의 머리를 거의 짓이기듯이 내리쳤기 때문에 결국 피해자였던 그녀는 단숨에 살인자가 되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에피소드에서도 선악의 구별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늦은 시각 부부를 불쑥 찾아온 낯선 여성은 자신이 집의 마리를 차로 치었으니 대가를 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에는 여성을 미치광이로 생각했던 부부는(그도 그럴 것이 하나 죽였다고 찾아온 것도 미심쩍은데 빚을 갚겠다면서 돈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녀가 정말로 돈을 들고 다시 나타나자 말도 되는 이유로 자꾸만 액수를 부르기 시작한다. 여성의 핸드백에 화장품에 자동차까지 탐을 내며, 제대로 값을 치르지 않는다면 감금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노부부는 여성을 있는 대로 벗겨 먹으려는 파렴치한 사람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때 근처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노부부는 갑자기 무언가 깨달은 여성을 그대로 돌려보낸다. 그들도 결국 처음부터 악인이었던 아니라 그저 전쟁이라는 불가피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영화의 등장인물들 누구도 가해자의 처지에서 자유로운 이는 없지만, 그와 동시에 누구도 피해자가 아닌 이는 없다. 이들 모두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인간' 불과하다. 민간인을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같던 검문소의 군인들은 학창 시절 군사 훈련을 떠올리며 총을 조립하는 드는 시간을 재면서 즐거워하고 유행가를 흥얼거린다. 우크라이나 군인을 애인으로 소녀들은 <로미오와 줄리엣> 여주인공이 같은 낭만에 젖은, 그저 사랑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 하나이다. 자신이 납치한 여성에게 인격적으로 모멸감을 주었던 납치범조차도 어린 시절과 가족이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노부부가 느꼈던 '부끄러움' 그들이 여전히 인간성을 잃지 않은 이들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보로즈비트가 이들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이들을 가해자로 탈바꿈하고 일상의 평화로움을 파괴하는 전쟁의 얼굴을 고발한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 우리도 포함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험한 > 가지 서로 다른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놓인 인간의 보편적인 서사를 여러 얼굴을 빌려 제시한. 일견 독립적으로 보이는 가지 상황은 모두 특정한 매개로 연결되어 있는데, 가령 교장의 언급으로만 등장했던 류드밀라라는 '소녀' 다음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으로 제시되는 소녀들의 형상과 이어지며 번째 에피소드에서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소녀에게 귀가를 설득하며 곁을 지키는 유모는 다음 에피소드에서 납치된 기자가 납치범에게 인간성을 호소하며 자신과 대화를 나누도록 유도하는 주제로 다시금 등장한다. 이때 기자는 납치범이 자신에게 동질감을 느끼도록 자신이 했던 악행 닭을 차로 치었던 일을 고백하는데, 이는 마지막 에피소드의 여주인공이 노부부를 찾게 이유이다.

 

보로즈비트가 인물들의 개성을 고의적으로 지우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의 익명성에서 가장 드러난다.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고유명사인 이름으로 호명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영화의 원작인 희곡의 대본에서도 인물들의 대사는 그들의 이름이 아닌 '여성', '소녀', '교장', '' 같은 일반 명사 혹은 지시대명사로 제시된다 (인물 간의 대화 속에서 그들의 이름이 나오는 경우가 있음에도 대본의 등장인물 이름에는 고유명사가 쓰이지 않았다). 결국 전쟁의 한가운데에 놓인 한 인간의 비워진 이름 칸에 로즈비트는 우리의 이름을 써넣어 보길 기대하지는 않았을까.   

 

보로즈비트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가끔 선택이란 선이나 악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누군가는 다치게 되기 때문이라고 밝힌 있다.[1] 비단 작품이 배경으로 하는 2014년의 돈바스 전쟁이 아니더라도 피로 물들었던 과거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전쟁이 인간을, 그리고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너무나 알고 있다. 영화의 장면에서 시각적으로 제시되는 험한 전쟁이 가져오는 황폐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지만, 마지막 부분에 카메라가 조용히 비추는 노부부의 조촐하고 평범한 부엌의 모습처럼 전쟁에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보로즈비트의 말처럼 우리는 실수를 반복하며, 돈바스 전쟁의 그림자가 사라지기도 전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라는 악몽은 또다시 되풀이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험한 너머에 있을 풍경을 조금이라도 바꿀 있기를 희망하며 타국 땅에서 전쟁 반대(Нi вiйнi)’ 외쳐 본다.

 

*나탈리야 보로즈비트(Наталія Ворожбит, Natal'ya Vorozhbit): 우크라이나 출신의 극작가이자 영화 감독, 시나리오 작가, 큐레이터이다. 1994 데뷔작 <평범한 이들의 (Житіє простих)>으로 극작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해 오고 있으며 2000년에는 모스크바에 있는 막심 고리키 문학 연구소를 졸업했다. 2000년에서 2005년에는 여러 TV 시리즈 프로젝트와 연극 페스티벌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2017 상연되었던 자신의 동명의 <험한 (Погані Дороги, Bad Roads)> 영화화하며 영화 감독으로 발을 내딛게 되었다. 유레카 아동문학상(2004) 알렉산드르 도브젠코 우크라이나 훈장(2021) 수상자이다

 

 

 

[1] Marta Balaga, “Natalya Vorozhbit • Director of Bad Roads: “We are repeatedly making the same mistakes and stepping the same rake,” Cineuropa, https://cineuropa.org/en/interview/391995/ (2022. 3. 17. 검색

*편집부: 이 글에서 사용된 영화 스틸샷은 제작사인 Kristi Films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Kristi Films | Ukrainian Film Company - Kristi Films

감독의 사진은 감독이 직접 찍은 것으로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가져왔다. Natal'ya Vorozhbit's play for Ukraine: 'We want to build a new and just society' | Theatre | The Guardian

영화 <험한 길>은 다음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단, 자막은 없다. 하지만 '쇼'라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 우크라이나어를 직접 들을 수 있다. Фильм Плохие дороги (2020) смотреть онлайн бесплатно в хорошем качестве HD 1080 - 720 на Лордфильм (lordfilmhd.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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