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제주의자로서 러시아의 침략에 대해 명백히 반대하며,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무절제한 확장에도 반대한다. 우리가 지지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아니라, 어떠한 제국주의의 간섭도 받지 않을 우크라이나 인민의 권리이다.
푸틴은 돈바스 지역 두 공화국의 ‘독립’을 지지하면서, 그곳의 인민들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침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8년간 줄곧 끝없는 전쟁 속에 살아온 돈바스 인민들이 원하는 것은 푸틴이 지금 벌이는 무제한의 전쟁 확대가 아니라 평화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현지인에 대한 박해를 부정하지 않으며,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신나치 집단이 존재함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더욱이 돈바스 지역 인민들의 무장투쟁에 진보적이고 반파시즘적인 요소가 존재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푸틴 정권이 자신이 공언한 것처럼 정말로 돈바스 지역 인민을 보호할 목적이었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확히 짚어야만 한다. 과연 얼마나 많은 돈바스 인민의 진정한 대표자들이 위대한 러시아 쇼비니스트들과 푸틴 정권의 배후세력에 의해 죽었는가?
지난 10년간 푸틴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이 유럽 극우세력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는 더욱이 우스갯소리에 불과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 내부의 급진민족주의 세력을 강화하고 공고히 할 뿐이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레닌과 소련에 의해 건설된 국가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려 했지만, 다른 진보단체들이 지적했듯이 현존하는 ‘민족국가’ 중에서 건설의 산물이 아닌 것이 있는가? 푸틴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탈공산화’라는 미명하에 단일민족 러시아 제국을 재건하겠다는 자신의 야심을 숨긴 채, 우크라이나의 주권국가 지위와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레닌이 견지한 민족자결주의 원칙(모든 민족의 평등 및 분리의 자유 포함)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는 현재의 국경을 형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푸틴이 감히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원칙이 없었다면 소련은 처음부터 가맹국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을 것이며, 역사상 70년 동안 지속된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현실에서 작동하는 지정학적 힘 앞에서는 어떠한 수사도 위선적이고 연약하다. 지난 수십 년간 ‘제노사이드’ 등 인권과 관련된 화법은 서방 국가가 일으킨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주 이용되었는데, 이런 개념과 대립면에 있는 것처럼 보였던 러시아가 이번 돈바스 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히 같은 화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이와는 반대로 미국이 이번에 우크라이나의 ‘주권 완전 불가침’을 지지한 것은, 바로 과거 그의 대립 진영들이 했던 전쟁 반대의 화법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권을 이유로 툭하면 제재에 나섰던 미국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인종차별 정책을 시행하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과연 어떤 제재를 하고 있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또 예멘 침공으로 막대한 인도주의적 재앙을 초래한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제재는 어디에 있는가? 기존의 많은 분석이 지적하듯이 경제제재가 푸틴 정권의 전쟁 기계를 위한 자금 조달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경제제재가 러시아의 엘리트 권력자들에게 주는 충격은 제한적이며, 오히려 평범한 민중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독재자는 인민들이 고통을 받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2.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한다. 이번 전쟁은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푸틴과 바이든, 그리고 그들 뒤의 강대국들 사이의 전쟁일 뿐이다. 어떤 승자도 없고, 셀 수 없이 많은 희생자만 만들어낼 전쟁이다.
이것은 소박한 정의를 가진 인민과 권력을 숭배하는 국가기관 사이의 전쟁이다. 러시아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전쟁 반대에 나서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드러내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정권은 비상상황을 이용해 반대자들을 더욱 억압하고 있다. 하지만 수치심과 분노를 느낀 수많은 러시아인이 계속해서 거리로 나서고 있고,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첫날(2월 24일) 시위에 나섰다가 1,700명 이상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러시아 인민들은 당국의 광범위한 부패, 에너지 올리가르히(재벌)들과의 결탁, 민주주의에 대한 조작, 반대자들을 억압하기 위해 깡패를 동원하는 것을 우려하면서도 그들의 정부에 맞서 이미 여러 해 동안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여왔다. 그렇기에 푸틴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는 이 전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떤 정권이 국내에서 독재와 압제를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뻔뻔스럽게 대외적으로 다른 민족을 해방시키겠다고 선전하는 것은 얼마나 황당하고 가소로운 일인가?
이것은 전장에서만 벌어지는 전쟁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정보 전쟁이기도 하다. 인민은 국가에 의해 대표되고, 같은 정보와 개념도 각각의 진영에 따라 완전히 상반되는 의미가 되거나, 다른 선입견들의 인질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흥분과 불안 속에서 이런 왜곡된 생각들이 전쟁의 바람을 타고 국경 너머로 퍼져나간다. 중국에 살면서 우리는 관영언론들이 터무니없이 ‘인지전’(cognitive warfare)이라고 칭하는 황당한 환경 속에 처해 있다. 중국 정부는 한편에선 평화를 옹호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애매한 태도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된 주류 언론의 선전과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는 검열 아래에서, 중국 네티즌들은 전쟁과 푸틴의 가장 요란한 지지자로 비춰지고 있는 불행한 상황이다. 진보적인 반전의 목소리는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고, 시위 참여자는 처벌을 받는다. 이에 대해 우리는 죄책감을 느끼며, 동시에 도덕과 양심을 돌보지 않고 진실과 거짓을 뒤바꿔버린 매스컴을 규탄한다. 정부는 다시 또 ‘지록위마(指鹿为马)’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기 전까지 중국 사회에서 가장 큰 여론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수십 년 동안 성노예로 취급당하고 고문을 당한, 수많은 인신매매 피해 여성들의 상황이 폭로되면서 온 나라가 충격을 받았던 사건)에서 관방 언론이 보인 반응과 같다. 이런 범죄는 지방 정부의 공모로 이미 사회적 규범이 되었다.
앞으로 긴 시간 우리는 일종의 이원대립과 감정의 분열, ‘상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 탈진실의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감정의 분열은 공적인 삶의 영역에서 ‘상식’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우크라이나 인민들의 권리를 지지하며, 러시아 민중(그리고 그밖에 다른 권위주의 정권이 지배하는 지역에 사는 민중)들이 정부에 이견을 표현하고, 침략 당한 사람들과 연대를 건설하고자 하는 권리를 지지한다. ‘부끄러움(Shame)’이란 최근 러시아에서 저항에 나선 민중들이 거리의 반전 시위에서 외친 중요한 구호이다. 이에 중국의 국제주의자들인 우리 역시, 그 부끄러움을 공유한다.
3.
우크라이나의 인민들은 그들 자신의 의지를 갖고 있다. 그들에겐 서구 또는 동방의 제국주의적 간섭 없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그들은 ‘보호’ 또는 ‘구원’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가해와 약탈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국제정치의 복잡성과 잔혹함도 이해해야 한다. 특히 우크라이나 인민들이 두 제국 사이에 끼어 반인류적인 전쟁과 침공, 심지어 핵무기의 위협까지 당하는 상황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현재의 긴박한 상황 하에서 중립은 위선이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은 이미 그 세찬 기세를 막기 어려운 상태이고,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인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전쟁에 나서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희생자들과 함께 한다는 반전 활동가들의 주장과 모순된다. 우리는 나라를 지키려는 우크라이나인들, 목숨 걸고 정권에 대항하고 있는 러시아인들과 벨라루스인들, 평화를 열망하고 전쟁을 비난하는 전 세계의 민중들과 함께 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 인민들의 요구를 존중하고 응답해 실질적인 지원을 해야 하며, 거기에는 우리도 마땅히 함께 해야 한다. NATO 군대는 상황을 바꾸지 못할 것이며, 세계대전의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 이는 우리가 가장 바라지 않는 결과다. 일찍이 베트남 전쟁 기간 반전 운동에 나섰던 선배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책임감 있는 반제국주의자들은 미국에 맞서기 위해 소련의 참전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베트남의 저항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소련의 무기 지원을 지지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사이버 기술이라는 무기가 있다. 해커 그룹들은 러시아 정부의 웹사이트와 주류 언론들을 파괴하고 있고, 온라인상의 지도 사이트들은 러시아 지상군의 진격을 방해하면서, 여론의 장에서 침공당한 이들과 단결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이번 전쟁에서 진보주의의 사이버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국제주의자들은 침략자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정의로운 저항 전쟁에 나선 이들을 지원할 기본적 의무가 있다.
마법으로 마법을 소멸시킬 수는 없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순간적인 반전의 열정이나, 더 깊고 보이지 않는 갈등을 은폐하는 종류의 정전이 아니라, 냉전적 사유와 수사적 표현을 버리고, 실질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더 넓은 범위의 평화를 재건하기 위한 노력이다. 나아가 모든 철권통치와 국가의 패권을 거부하고, 전쟁에 대한 모든 환상을 근본적으로 뿌리 뽑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