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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 연합의 선언문

 

번역 황유경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세미나 회원

 

지난 3월 2일, Progressive International의 트위터 계정(@Progintl)에 출처를 알 수 없는 글이 올라왔다. 계정 운영자는 전쟁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연합이 구성되었고 그들의 글이라고 밝혔다. 게시글에는 선언문에 왜 연명자의 이름이 없냐는 댓글도 있고, 러시아는 경찰국가라서 연명자들을 체포할 것이기에 이름을 밝히지 않았을 것이라는 댓글도 있다. 현재 러시아어로 검색해 보아도 '전쟁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 연합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다. 다만, 좌파성향의 일간 웹진 <랍코르>(rabkor.ru. 랍코르는 '노동자통신원'을 뜻하는 '라보치 코레스폰덴트'의 줄임말이다)에 이 글이 게재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3월 5일자로 글을 비공개로 전환하며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적었다. 

"검열이 실질적으로 도입됨에 따라 우리는 해당 기사를 비공개로 전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작업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진실이 승리하는 시대가 곧 도래하리라 우리는 확신합니다." Статья недоступна – (rabkor.ru)
   
<랍코르>에서 비공개로 전환한 '전쟁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 연합의 선언문의 러시아어 원문을 Progressive International의 트위터 계정에서 구해 우리말 번역으로 소개한다. - 편집부

 

 

 

푸틴은 평화와 안정을 약속하며 정권을 유지해왔으나 결국 이 나라를 전쟁과 경제난으로 몰아넣었다.

 

역사상의 다른 전쟁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전쟁은 모두를 찬반양론의 두 파로 갈라놓았다. 러시아 정부는 온 나라가 정권을 중심으로 규합되었다고, 평화를 주창하는 것은 이른바 딱한 변절자들과 친서방의 자유주의자들, 외부의 적들에게 고용된 용병들뿐이라고 선전하며 우리 국민들을 납득시키려 한다. 이는 아무런 설득력이 없는 거짓말이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크렘린 궁의 늙다리들이 소수이다.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러시아 정부를 아직 신뢰하는 이들조차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선전에 의해 그려진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들은 심지어 현재 벌어지는 일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해방’시키기 위한 ‘특별 조치’일 뿐 전쟁이 아니며, 침략전은 더더욱 아니라고 믿는다. 이러한 환상은 도시를 무자비하게 폭격하는 끔찍한 장면들에 의해 조만간 일소될 것이다. 그때서야 푸틴의 가장 충성스런 지지자들은 이 부당한 전쟁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푸틴 정권이 벌이고 있는 짓에 대해 공포와 반감을 느끼고 있다. 이들은 각기 다양한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정부의 선전과는 달리 이들 대부분은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이들 중 매우 많은 사람들은 좌파적, 사회주의적, 공산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물론, 우리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조국의 진실한 애국자이다.

 

이 전쟁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은 위선자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이들은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서방을 지지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거짓말이다. 우리는 단 한 번도 미국이나 미 제국주의적 정책을 옹호한 적이 없다. 우크라이나 병력이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 무력을 사용할 때 우리는 침묵하지 않았다. 푸틴과 그의 도당의 지시로 하르키우, 키이우, 오데사를 폭격하고 있는 이 순간도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에 맞서는 이유는 비단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회 정의, 평등, 자유를 옹호해온 우리에게 있어 몇몇 이유는 특히나 더 중요하다.

 

이는 부당하고 침략적인 전쟁이다. 우리 군인들을 살육의 전쟁터로 보내야할 만큼 러시아 정부를 위협하는 것은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현재 우리 군인들은 그 누구도 ‘해방’시키지 않는다. 그 어떠한 민중 운동을 도와주지도 않는다. 러시아 정규군은 러시아에 대한 권력을 영원토록 유지하길 꿈꾸는 소수의 억만장자들의 지시로 평화로운 우크라이나 도시들을 산산이 부숴놓고 있을 뿐이다.

 

이 전쟁은 우리 국민들에게 무수한 재앙을 야기한다. 우크라이나인들도, 러시아인들도 자신들의 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다. 전선 후방 저 멀리에서도 빈곤, 인플레이션, 실업은 모두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 대가를 치르는 것은 올리가르히나 관료들이 아닌 가난한 교사들, 노동자들, 연금생활자들, 실업자들이 될 것이다. 아이들을 먹여 살릴 여력도 없게 될 것이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폐허로, 러시아를 하나의 커다란 감옥으로 만들 것이다. 반정부언론사들은 이미 폐쇄되었다. 전단을 뿌리거나 전혀 도발적이지 않은 피켓을 드는 것, 심지어는 소셜 네트워크에 글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쇠창살 너머로 보내진다. 머지않아 러시아인들은 감옥과 징집 중 하나만을 골라야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일 것이다. 전쟁은 현 세대가 지금껏 한 번도 목도하지 못한 독재를 동반한다.

 

이 전쟁은 우리나라에 대한 모든 위험과 위협을 몇 배로 증가시킨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에 호의적이던 우크라이나인들마저도 이제는 우리 군대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의용군에 합류하고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저지른 모든 범죄, 미국 및 NATO 강경 지지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했다. 푸틴은 그들이 우리 국경 주위를 따라 새로운 미사일과 군사기지들을 설치할만한 충분한 근거를 그들의 손에 쥐어줬다.

 

결국 평화를 위한 투쟁이란 모든 러시아인들의 애국적 의무이다. 이는 우리가 지난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전쟁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는 또한 이 전쟁이 러시아의 보전과 존재 자체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푸틴은 자신의 운명을 러시아의 운명과 단단히 결속시키려 한다. 푸틴의 의도대로 된다면, 그의 패배는 러시아의 패배가 될 것이다. 그리고 푸틴의 패배는 피할 수 없는 미래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점령, 영토 분할, 집단적 죄의식 등 전후 독일에게 닥쳤던 운명이 도래할 것이다.

 

이러한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리 러시아인들이 나서서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 이 나라는 우리의 것이다. 이 나라는 대저택과 요트를 거느린 정신 나간 늙다리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나라의 주인을 되찾을 때가 왔다. 우리의 적들은 키이우나 오데사에 있지 않다. 그들은 모스크바에 있다. 그들을 몰아낼 때가 왔다. 전쟁을 일으킨 건 러시아가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건 푸틴과 그의 세력이다. 그러므로 우리,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이 부당한 전쟁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 전쟁을 멈추고 싶다. 이는 러시아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개입 중지!

독재 타도!

빈곤 퇴치!

 

‘전쟁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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