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내 '특별군사작전'을 승인한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시인 보리스 헤르손스키(1950-)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달며 라는 시를 올렸다. "이 시는 슬픈 기억의 해 2014년에 쓴 것이다. 오늘 다시 올려본다." (캡쳐한 페이스북 사진에는 2월 25일로 되어 있는데 한국시간으로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소비에트 시절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며 삼이즈다트(자가지하출판)로 시들을 발표했다. 예전에는 주로 러시아어로 시를 썼지만 요즘에는 우크라이나어로 많이 쓴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에는 라틴어 가톨릭 미사통상문과 러시아어가 섞여 있다. 이 시를 영어로 옮긴 마르타 켈리는 이 시가 두 가지 제국의 언어(라틴어와 러시아어)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제국들의 유산에서 벗어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지적한다.(https://lareviewofbooks.org/short-takes/ukrainian-poems-of-war-khersonsky-kiva-makhno/) 켈리가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기에 이 시가 어떻게 "제국들의 유산"을 활용하는지는 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어째선지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어로 연설을 하다가 러시아 국민들을 향해 말할 때는 갑자기 러시아어로 바꿔 말하는 것이 생각난다. 대다수의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어를 모국어처럼 잘 알지만 러시아에 사는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어를 잘 모른다. 우크라이나어를 들으면 그 소리가 우스꽝스럽게 들린다고 한다. 이 시가 수록된 동명의 시집이 페테르부르크의 출판사 <이반 림바흐>에서 출간되었을 때, 헤르손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책이 러시아에서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참 역설적입니다. 내가 보기에 이는 시라는 것이 고유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추가적인 증거로 보이는데, 그 영역은 바로 언어입니다. 러시아어는 국경 이쪽과 저쪽에서 계속 존재할 것이고 문학은 tempore belli(전쟁의 시대)에도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다리가 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를 가리켜 나치 집단이라고 말하기에 헤르손스키의 발언은, 또 젤렌스키의 러시아어 연설은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지 않다. 오히려 러시아어를 역사의 흔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러시아라는 제국의 폭력성을 폭로하고,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가톨릭 '미사'라는 제의 형식을 가져온 것은 그다지 종교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신이 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어째서 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싸우고 있는가, 어째서 재림한 그리스도가 부활시키는 이들은 다시 전장으로 나가는가 등등 로마 제국의 언어를 가져와 비꼬며 따져 묻고 있다.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 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본래의 구절이지만 헤르손스키는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 땅에서는 끝없는 전투"라고 딱 잘라 말한다.
헤르손스키의 시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저들이말합니다:우리는다시전쟁을시작할것이다. /Dona nobis pacem. Amen(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아멘)." 공식적으로 '저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특별군사작전'을 시작할 것이다." '특별군사작전'이라는 말에, 오늘날 러시아에서 금지된 단어로 받아칠 수 있겠다. "넷 보이네(Нет войне, 전쟁 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