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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성부 탄소 광시곡: 에너지 집약시대의 러시아, 서유럽, 그리고 미국

 

 

홍지수 (브라운대학교 역사학 박사과정 수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13일째인 지난 3월 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석유와 가스를 포함한 러시아산 에너지 상품의 수입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화석연료 수출을 주수입원으로 삼는 러시아의 자금줄을 막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전쟁 수행에 “강력한 타격”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푸틴의 전쟁을 규탄하고 러시아산 에너지원을 거부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것은 비단 백악관에서 뿐만이 아니다. 미국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석유는 전쟁의 동력원 (Oil Fuels War)”이라 외치며 지난 22일 아침 러시아산 원유를 싣고 뉴욕으로 입항하던 유조선을 막아섰다. 그들은 러시아산 원유의 수입이 군사적 충돌과 죽음을 부추기고 있을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바이든 대통령의 금수조치 발표에도 불구하고 원유 수입을 중단하지 않은 일부 에너지 기업들을 규탄했다.

 

미국과 보조를 맞춰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를 확대하고 있는 유럽에서도 러시아산 화석연료는 뜨거운 감자다. 영국 정부가 2022년 말까지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완전히 차단하겠다고 선언한 한편 독일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노르트스트림-2 프로젝트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2021년 후반에 완공된 노르트스트림-2는 생산지 러시아와 소비지 독일을 직접 잇는 해저 가스관으로, 정상적으로 개통했더라면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독일의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장본인이 될 참이었다. 유럽의 정부들 뿐만이 아니라 시민들 또한 푸틴 정권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거세게 규탄하고 나섰다. 일례로 독일에서는 통근 대신 ‘재택 근무’를 하고 난방기를 켜는 대신 ‘스웨터’를 입어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지키자는 내용의 구호가 확산하고 있다.

 

세계 최대 탄소에너지원 생산국인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는 세계 각지의 자동차를 움직이고 집을 덥히며 플라스틱을 만들어내는 등 산업사회의 일상을 구성하는 핵심 물질로 자리해왔다. 그러나 시베리아에서 시추된 이 탄소화합물들은 어느새 전쟁의 동력원이자 자유를 파괴하는 물질로 탈바꿈한채 서방세계 전역으로부터 퇴출되고 있다. 이제 러시아의 석유는 푸틴의 전쟁과 쌍을 이룬채 반전 시위의 피켓과 일간지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을 뿐이다. 제 2차 세계대전과 석유파동 등 20세기의 주요 위기 국면이면 어김없이 등장했던 에너지 안보의 정치 수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또 한차례 떠들썩한 복귀를 한 것이다.

 

에너지 안보를 둘러싼 상황은 미국 보다는 유럽에서 한층 복잡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같이 전면적인 금수조치를 도입하기에 서유럽 각국의 현실이 녹록치 않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에너지 생산국 중 하나로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 반면 유럽은 석유의 25% 이상, 그리고 가스의 약 40%를 러시아로부터 조달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러시아산 화석연료의 유럽내 최대 종착지 중 하나로 국내에서 소비하는 가스와 석탄의 절반 이상, 그리고 석유의 1/3 이상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해왔다. 이러한 독일에게 갑작스런 금수조치는 경제적 위기 및 사회적 혼란과 동의어일 수밖에 없다. 일례로 녹색당 소속의 독일 연방 부총리이자 경제·기후부 장관인 로베르트 하베크는 전면적인 대러시아 에너지 제재가 대량 실업과 빈곤을 야기할 뿐이라며 금수조치에 반대했다. 금수조치 하에서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은 푸틴 대통령이 아닌 독일 국민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이러한 유보적인 태도를 질타하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독일이 오로지 “경제, 경제, 경제”만을 염두한다고 꼬집었다.

 

서유럽과 러시아는 탄소에너지를 매개로 다층적이고 복잡하게 얽혀있다. 서시베리아와 북극해 연안에서 출발해 벨라루스나 우크라이나, 혹은 발트해나 흑해를 가로질러 유럽으로 뻗어 있는 러시아의 파이프라인들은 그 역사적 지층의 두께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시작은 반 세기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제 2차 세계대전은 막대한 양의 탄소 에너지를 자양분으로 전개되었다. 전례 없는 규모의 파괴는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을 폐허로 만들었고 전후 세계는 전쟁 복구를 위해 다시 한 번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특히 가파른 인구 성장을 떠받치고 화학 및 자동차 산업과 같이 에너지의 집약적 사용을 특징으로 하는 분야들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값싼” 에너지는 전후 유럽 경제 재건의 가장 중요한 축대가 되었다. 전무후무한 에너지 집약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내리 쬔 태양열과 이 땅을 거쳐간 수많은 동식물의 에너지를 한데 응축해 놓은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에 대한 전후 유럽의 수요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런데 바로 이때, 특히 1960년대 초, 소련은 추측만 무성했던 서시베리아 지역에서 마침내 어마어마한 수준의 석유와 가스 매장량을 확인했다. 이는 탄소 에너지에 굶주린 전후 유럽에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이때부터 서유럽과 소련은 시베리아의 탄소 에너지를 매개로 상호의존적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냉전이 한창인 와중에 탄생한 이 공생관계는 정치군사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20세기 후반을 순항했다. 때로는 단순히 순항하는 것을 넘어 냉전 체제 자체에 균열을 가지고 오기까지 했다.

 

독일의 행보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동서독의 분단으로 냉전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던 서독은 아이러니하게도 탄소 에너지가 빚어낸 동구-서구 협력관계에서도 선두의 자리에 서있었다. 전후 소련의 유전 및 가스전 개발은 유럽 수출을 염두한 것이었는데, 이와 관련해 독일의 기술 및 설비에 대한 수요가 폭등했. 소련은 막대한 양의 액체 및 기체를 운반하기 위한 유럽 횡단 파이프라인 건설에 착수했고, 독일은 이에 필요한, 그리고 소련이 절실히 원했던 대(大)구경 파이프를 제공했다. 파이프와 화석연료, 특히 천연가스를 교환하는 방식은 독-러의 경제적 협력 및 상호의존을 강화하는 모델를 자리를 잡았다. 1973년, 마침내 서독에 소련산 가스가 처음 당도했고, 시베리아에서 흘러온 천연가스는 동-서방의 평화적 공존, 즉 데탕트를 상징하는 물질로 부상했다. 서독과 소련이 맞닥뜨린 공동의 경제적, 생태적 이해관계가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압도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공존의 문법 위에 서유럽과 소련, 그리고 소련 해체 이후의 러시아는 약 반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유럽의 에너지 인프라를 함께 구축해 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들 뿐만 아니라 냉전기의 미국에서도 소련의 탄소 에너지원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 에너지 수요의 폭증에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로 인해 미국 내 신규 유전 개발의 전망이 어두워지자 일부 미국의 기업들은 소련으로 눈을 돌렸다.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몇몇 에너지 기업들은 컨소시움을 결성해 시베리아 가스 개발건을 두고 소련과 협상에 돌입했다. 그들은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파이프라인과 태평양 및 대서양을 넘나드는 대형 LNG 탱커를 건설해 동시베리아의 가스전을 미 서부와, 서시베리아의 가스전은 미 동부와 잇고자 했다. 인구가 희박한 “동토”이자 개발 수준이 낮은 소련의 “주변부”일 뿐이었던 시베리아가 냉전의 이분법을 넘어 산업 문명의 동력원으로 주목받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 호기로운 프로젝트는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시베리아 개발에 대한 백악관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인권문제, 특히 소련이 국내 유대인들의 자유이민을 막는 상황에 매우 민감했던 미 의회의 냉전 자유주의자들이 시베리아 에너지 개발을 위한 미국측의 차관 제공을 실질적으로 차단했기 때문이다. 소련산 탄소 에너지는 정권의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물질로 다시금 탈바꿈했다.  

 

미국과 소련의 협업이 좌초하는 와중에도 서유럽과 소련은 에너지 파트너로서 서로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해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과 서유럽의 입장차는 소위 시베리아 가스관 건설을 둘러싼 대서양 동맹국가들 간의 외교적, 상업적 갈등으로 비화했다. 1980년대 초반, 서유럽은 서시베리아에 위치한 우렌고이 가스전으로부터 서유럽까지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를 운반하기 위해 약 2만 km에 달하는 시베리아 가스관 건설에 뛰어들었다. 미국 정부는 서유럽의 결정이 소련에 대한 지나친 에너지 의존을 가져올 것이라 반발하며 강력한 대소련 경제 제재로 이에 맞섰다. 하지만 서유럽은 미국의 반대에도 아랑곳않고 자신들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갈등의 격화는 마치 대서양 동맹의 끝을 예견하는 듯 보이기까지 했다.

 

4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난 현재, 냉전 말기의 시베리아 가스관 위기는 일반인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혀졌다. 그러나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는 여전히 유럽으로 굽이치고 있고, 위기의 골자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 같은 인물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시베리아 가스관 위기로부터 강한 문제의식을 느낀 청년 블링컨은 1987년, 20대의 나이에 《동맹 대 동맹 (Ally Versus Ally)》이라는 책을 출간해 대서양 동맹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서방-소련 관계에서 핵심적인 것은 소련의 우호적 행보에 대한 낙관적 기대가 아닌 동맹의 결속이다. 추측하건대 블링컨은 전쟁과 에너지의 문제가 복잡하게 엉켜있는 2022년 현재를 소련이 에너지원을 가지고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던 1980년대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듯 하다. 그렇다면 그가 제시할 해법 또한 대서양 동맹 강화에 있을지도 모른다. 블링컨이 미 국무부 장관으로서 서방의 행보를 결정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젊은 블링컨의 “유령”이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서유럽은 러시아산 가스를 쉬이 끊지 못하는 이때, 미국과 유럽, 그리고 러시아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이 무엇일지언정 과연 전쟁을 중단시키고 평화를 재건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전세계가 에너지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재,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는 독재와 민주주의, 제국과 탈제국, 전쟁과 반전 등 서로 대립되는 수사들의 쌍 그 아래를 묵직하게 흐르고 있다. 동시에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의 강화는 북극의 LNG 및 시베리아의 천연가스를 매개로 러시아와 중국을 더욱 밀착시키고 있다. 값싼 화석연료가 무한히 공급될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자라난 현재의 에너지 중독이 지속되는한 불편하고도 은밀한 공생관계는 사라지지 않고 그 짝을 바꿔나갈 뿐이다. 끊임없이 새로 그어지는 동맹과 적군 사이의 전선을 두고 석유와 가스는 때로는 독재자의 돈줄로, 때로는 경제적 풍요와 근대성의 상징으로 탈바꿈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도무지 사라질 줄 모르는 에너지 안보 위기와 그에 수반되는 군사적 긴장감일 것이다. 이미 석유와 가스는 소비자의 시야를 훨씬 벗어난 곳에서 고갈될 때까지 시추되고 있다. 거대 에너지 기업들과 산유국들은 기술과 문명의 손이 닿지 않은 새로운 ‘빈 땅’을 찾아 ‘개척’하고 그로부터 최대의 착취를 감행하기 위해 패권 다툼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독재자’ 푸틴의 천연가스와 소위 미국산 ‘자유 가스 (freedom gas)’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 있을까.  

 

탈탄소의 구호가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는 이 시점에도 미래는 밝지 않다. 에너지에 대한 무한한 욕망 그 자체를 재고하지 못한다면, 산업사회는 탈탄소의 시대에도 여전히 탄소의 ‘유령’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재점화된 대러시아 에너지 의존도와 안보의 문제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전례 없는 에너지 집약 시대의 도래이다. 일상의 가장 깊은곳까지 침투해 사소한 안락마저 에너지 집약적으로 구성해내고 있는 이 전무후무한 에너지 중독을 재고하지 않는다면 푸틴이 전쟁을 그만두고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또다른 갈등과 폭력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을것이다.  

 

다성부 탄소 광시곡 에너지 집약시대의 러시아, 서유럽, 그리고 미국_홍지수.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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