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인-무브

러시아 제국주의에 관하여

 

 

정보라 (민주노총 비정규교수노조)

 

 

0.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두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침공 전이던 2월 중순, 긴장이 고조되고 있을 때 러시아와 러시아의 편에 붙은 벨로루스 정부는 “48시간 이내에 수도 키이우를 장악한다” “사흘이면 전쟁이 끝난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침공 후 49일째인 지금 수도 키이우는 실질적으로 한 번도 장악당하지 않았고 키이우를 향해 진격하던 러시아군은 패퇴했으며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고국을 훌륭히 방어하고 있다.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까? 그리고 무슨 근거로 48시간이니 72시간이니 하는 비현실적인 숫자를 대며 키이우 장악을 자신했을까?

 

 

2008년 8월 남오세티야로 진입하고 있는 러시아군. 출처: DMITRY KOSTYUKOV/AFP/Getty Images

 

1. 조지아 전쟁 (2008)

20088월 러시아-조지아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은 실질적으로 5일만에 러시아의 승리로 끝났다. 러시아군은 사용하던 러시아제 통신위성이 고장 나서 조지아 현지 휴대전화망을 군용 통신망으로 사용해야 했고 평지인 러시아와 달리 산악지대인 조지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장갑차들이 산길을 오르다 멈춰 서 버리는 코미디 같은 상황들이 펼쳐지는 가운데 그럭저럭 전쟁에 승리했다. 압하지야 지역은 현재 행정적으로는 조지아에 속해 있으나 실제로는 조지아 정부의 지휘통제에 전혀 따르지 않고 러시아 영토처럼 행동하고 있으며 남오세티야는 얼마 전 분리독립하여 러시아에 합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부분이 어쩐지 익숙하게 들리지 않는가?

 

 

2. 돈바스 전쟁 (2014-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의 자칭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루한스크 인민 공화국이 분리독립하여 러시아와 합병하겠다고 선언하여 2014년 돈바스 전쟁이 일어났다.

 

조지아로 돌아가 보자. 2008년 조지아를 침공하기 전에 러시아는 군사훈련을 빌미로 조지아 국경지대에 러시아군을 집결시켰다. 그리고 국경지대 러시아 영사관에서 조지아 시민들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신속 발급하기 시작했다. 조지아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지역 주민 중 일부는 러시아 시민권 발급을 환영했다. 그리하여 새롭게 러시아 시민이 된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나자 러시아는 조지아 내의 자국 시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침공을 감행했다.

 

2019년 초, 우크라이나가 대선을 앞두고 있을 때 푸틴은 돈바스 지역 주민들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신속발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돈바스 지역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고 일정 기간 이상 거주했다는 사실만 증빙할 수 있으면 빠르게는 한 달 안에 러시아 시민권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절차가 간소화되었다. 2008년 조지아 침공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미 우크라이나 정부에 반기를 들고 분리독립을 선언한 지역에 러시아 시민권을 뿌린다는 것은 침공하겠다는 신호나 다를 바 없었다. 그리하여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현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발급하겠다고 맞섰다. 다만 젤렌스키는어디에서 살았든, 어디에 있든, 우크라이나 혈통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원할 때 고향에 돌아올 수 있도록 시민권 발급을 간소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니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이전에도 해보았던 시나리오를 재탕한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5일이 아니라 50일을 넘겨 저항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것이 푸틴의 오만이었다.

 

 

몰도바에 남아있는 소비에트 합병의 흔적. 출처: s_oleg/Shutterstock (e-ir.info)

 

3. 몰도바 (1940)와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 (1990-1992)

몰도바(Moldova)는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사이에 있는 작은 공화국이다. 러시아와 벨로루스 등 몇몇 구소련 국가를 제외하면 대한민국 포함하여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 몰도바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몰도바의 공식언어는 루마니아어이며 몰도바인의 인종구성은 97% 이상 루마니아인과 일치한다. 역사적으로 몰도바는 루마니아 동쪽 베사라비아라는 영토였는데, 19세기에 러시아 제국이 합병했다가 공산혁명 이후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나서 이 지역은 다시 루마니아 영토가 되었고 그랬다가 19392차 세계대전 직전에 히틀러와 스탈린이 맺은 독소 불가침 조약, 즉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 의해 1940년에 소비에트 연방에 합병되었다. 그러니까 러시아가 인접국가의 지역갈등을 이용하여 남의 영토를 강제 합병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현재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 이전의 크림반도 강제점유와 돈바스 전쟁도 소련 시절부터 스탈린이 짜놓은 시나리오를 푸틴이 재활용한 것일 뿐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공산주의가 붕괴하자 몰도바는 루마니아에 다시 합병하자는 의견과 그 당시 아직 건재했던 소비에트 연방의 일부로서 남겠다는 의견이 충돌하면서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은 명확한 승패 없이 휴전으로 끝났고 몰도바는 루마니아에 합병되지 않고 그냥 몰도바로 남아 있다. 여기서도 소비에트화 혹은 러시아화를 주장하는 세력과 여기에 반대하는 세력이 전투의 형태로 충돌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소련 시절이든 그 이후든 러시아가 간섭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4.

미국 중심의 외교관계에 집중하는 연구자들 중에 북대서양 조약기구가 동진했기 때문에 러시아가 위협을 느껴 예방적인 차원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들이 있다. 일단 남의 나라를 침공할 수밖에 없는사정은 없다. 남의 집에 문 부수고 들어가서 강도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사정 따위가 없는 것과 똑같다. 그리고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북대서양 조약기구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부터 저 시나리오를 활용했다. 지역갈등이 있는 곳에 러시아군을 집결시키고, 혹은 러시아군을 집결시켜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지역갈등을 부추기고, 필요하다면 러시아 시민권을 신속발급하고, 그런 뒤에 러시아 시민, 혹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혈통적 러시아인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군대를 투입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남의 영토를 빼앗았다. 전쟁의 책임은 전적으로 침략국에 있으며, 러시아는 자신의 세력권을 확장하기 위한 제국주의적 침략 시나리오를 오래 전부터 보유하고 있었던 나라이다. 이러한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절대적으로 선하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침략전쟁을 영토확장의 당연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러시아 제국주의에 반대하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것이다.  

 

댓글 로드 중…

최근에 게시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