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한창인 요즘, 다들 알다시피 가장 이상한 일들은 바로 점령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점령지가 해방되고 나면 우리는 그 일들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런데 점령지는 우리가 희생자들, 고문을 비롯한 여러 잔혹 행위에 대해 알게 될 때 경험하는 두려움이나 공포만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점령지는 그 고유의 섬뜩함 때문에 관찰 대상으로서의 흥미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는 매우 독특하고 일시적인 반(反)공간,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들, 대상들, 존재자들의 존재와 양립하지 못하는 반공간(특히 그것이 일시적일 때는 더욱 그렇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사실 나에게는 인류학이나 문화학 따위에 관심을 쏟을 만큼 시간이 남아돌지 않는다. 그러나 다양한 미디어와 함께 작업하면서, 여러 칼럼과 기사들을 쓰면서, 또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묻는 질문들에 답하면서 나는 해방된 점령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정보를 주기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침공이 본격적으로 개시되기 이전 내가 살았던 키이브의 교외 지역에서 일어난 일들은 더욱 그렇다.
자료들을 찾다 보면 당연하게도 희생자, 고문 행위, 파괴 활동에 대한 정보가 자주 검색된다. 그런데 이따금 점령자들과 우크라이나 측이 주고받는 여러 가지 형태의 활동들에 대한 것들도 눈에 띈다. 특히 개전 직후부터 내게는 ‘의미’와 관련된 흔적들, 러시아인들이 우리의 수복된 영토에 남기고 떠난 흔적들이 흥미로워 보였다.
놀랍게도 그 흔적들은 그리 많지 않다. 몇몇 사진 자료들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향하는 말들을 마주하게 된다. 대체로 그것들은 흥미롭지 않다. 그것은 전쟁 초기 러시아군에 협조하라는 저급한 호소와 협박이 담긴 공식 성명들이거나 다소 ‘유화적인’ 수사가 담긴 비공식적인 언사들이다. 예를 들면, “이건 명령이라 어쩔 수 없어, sorry.” 또, 약탈당하고 파괴된 학교의 학생들에게 어쨌거나 열심히 공부하라는, 거주 지역을 복구하라는, “아버지들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바람을 담은 꽤 오지랖 넓은 메시지들도 있다. 어떤 점령군 병사는 시민의 자동차에 ‘러시아’라고 적기도 했다. 화재를 입은 기술 설비에, 벽이나 담장에 알파벳 ‘Z’와 ‘V’가 그려져 있기도 하고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유치한 욕설이 낙서 되어 있기도 하다.
나는 기대치 않게 아주 흥미로운 유물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도 바로 우리 집에서. 부차에 있는 십 층 짜리 우리 아파트는 큰 피해를 보지는 않았다. 미사일 한 방 맞은 것이 전부였다. 도시가 해방되고 집의 상태를 확인하러 제일 먼저 돌아온 이웃들은 입주민 채팅방에 아파트와 건물 입구의 사진들을 하나둘 올리기 시작했다. 적들은 우리 아파트에 병영, 참모부, 보급 센터 등 자기네들 둥지를 마련했던 모양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잠겨 있지 않던 아파트들을 약탈하지도 않았고 물건들을 어지러뜨려 놓았을 뿐이었다. 어느 아파트의 벽에는 저격수의 메모까지 잘 보존되어 있었다. 고층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러시아 군인들이 만든 허수아비가 발견되었는데, 바로 다음 사진에서 볼 수 있다.
출처: 올레흐 코타레브의 사진첩
당신에게는 이 물체가 어떻게 보이는가?
내가 보기에 이 허수아비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꽤 의미심장하고 암울한 색조. 분명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불길한 메시지. 처음에는 이것이 ‘약탈병’이라는 제목의 설치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점령군’이려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손님’? 아마 무엇보다도 이 ‘인물’을 창가에 세워둔 까닭은 우크라이나군이 이것을 향해 사격할지, 사격한다면 총탄이 어디에서 날아올지 보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이 형상이 지닌 키메라와도 같은 연상 논리 때문에 나는 러시아의 공격이 있기 몇 달 전 딸아이와 함께 부차에서 멀지 않은 숲을 거닐었던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숲의 언덕에 우리는 명랑한 모습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웠다. 그리고 율리야 스타힙스카의 책 『모힐랸카의 비밀과 사라진 열쇠』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따서 허수아비에게 ‘티시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이야기에서 티시코는 오래된 모힐랸카[각주:1]의 비밀창고를 지키다가 나중에는 잠수함에 등장한다. 혹시 바로 그 티시코가 탄 잠수함이 러시아군의 순양함 ‘모스크바’를 격퇴했던 것 아닐까? 한편, 우리의 티시코는 처음에는 호박으로 만든 머리를 달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토끼, 아니면 알 수 없는 누군가가 호박 머리를 먹어 치웠다. 또, 우리의 티시코는 딸이 입고 자란 티셔츠, 예쁜 분홍색 티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티시코는 땅바닥에 쓰러졌고, 누군가 그를 다른 숲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우리는 티시코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 숲으로 가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티시코한테 가자.”
2월과 3월에 있었던 전투에 대해 읽은 바에 따라 생각해 보자면, 그곳에는 러시아군이, 아마도, 포병대가 있었던 듯하다. 지금 그곳에서 티시코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진다. 작은 나뭇조각에 지나지 않는 그가 몸 성히 있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어쨌든, 두 명의 티시코, 그러니까 숲에 있는 티시코와 이야기 속 티시코에게는 얼마 전 서로에게 ‘형제’가 생긴 셈이다. 누가 알겠는가, 전쟁이 시작될 무렵 내가 티시코에 대해 슬퍼했던 것도 소용없는 일이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아마도 그는 무언가를 지키고 있었나 보다. 심지어 무언가를 보살폈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보물
올레나 스테파넨코
“정말 멋진 반지다,” 브로츠와프에서 온 기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카샤가 말했다. “너한테 진짜 잘 어울려.”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오닉스의 어두운 크림색 빛깔에 정신을 집중하며 주먹을 꽉 쥔다. 눈물을 꾹 참기 위해서. 이것은 나의 유일한 보물이다.
전쟁이 일어난 다음 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당을 알아볼 수 없었다. 새벽 5시 미사일의 파편이 10층에 날아들었고 현관 건너편의 이웃 아파트를 관통했다. 자작나무 가지가 섞인 단열재와 부속품들이 빨갛고 노란 포석을 덮었다. 아파트 안에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물건들, 서류들, 식료품을 배낭 하나에 다 넣으려고 열병에라도 걸린 듯 정신없이 잡동사니를 포장지로 쌌다. 얼마 안 되는, 금과 은으로 된 장신구들은 따로 쌌다. 엄마와 남편이 준 소중한 선물들이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유일한 유품으로는 민물조개처럼 열리는 은으로 된 심장 모양 장신구가 있었다. 커다란 두카치[각주:2]와 공작 장식이 달린 귀걸이는 직접 주문해서 만든 것이다. 나는 그 귀걸이를 아들 생일 때인가 딱 한 번 찼던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몰랐지만 필요하게 되면 빵이나 우유로 바꾸려고 일단 다 챙겼다. 정말 알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다. 아예 빵 자체를 구할 수 없게 된다면 이 장신구들을 무엇으로 바꿔야 할까?
아무리 그 순간을 떠올려봐도 “보물들”을 담은 꾸러미를 어디에다 두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그때 손가락에 약혼반지를 끼고 있었는지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끼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그 반지는 없다. 아무리 힘을 쥐어짜 봐도 그 반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떠올리지 못하겠다. 마치 내가 카론에게 삶의 저편으로 가는 뱃삯을 치른 듯하다. 그가 직접 값을 매기고 받아야 할 것을 받아 간 모양이다.
르비브에서 보낸 이 주 동안 시내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나는 알리나를 만났다. 전쟁이 일어나기 두 달 전 그녀가 호스토멜에 있는 아파트를 사서 이사 가기 전까지 우리는 이웃이었다. 그녀는 아파트 건물 앞에 작은 잔디밭이 있다고 너무 좋아했다. “집수리를 좀 하고 날이 따뜻해지면 샤슬릭 구워 먹으러 놀러 와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이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 땅이 우리 땅이라고 적은 간판도 사라졌어요. 집을 다 지으면 집들이에 초대할게요.”
“장신구란 장신구는 모두 챙겨왔어요,” 그녀가 말한다. “카디로베츠들[각주:4]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요.”
“나는 다 잃어버렸어요. 나 자신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알리나는 나를 꼭 끌어안는다. 커다랗고 따뜻한 엄마처럼. 그러고 나서 잠시 비켜서더니 짐꾸러미를 뒤져 크림색 오닉스가 박힌 은반지 하나를 꺼낸다.
“받아요! 새로운 삶을 위한 부적이 될 거예요. 르비브에서 주문해서 맞춘 거죠. 바보같이 울긴 왜 울어요? 왜 또 울고 그래요?”
설탕
보흐다나 로만초바
전쟁 중의 시간은 새롭게 측정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음식으로 시간을 잰다. 지금 나는 르비브 기차역에서 피난민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일에 모든 삶을 온전히 바쳤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서점이 어디 있냐는 질문은 딱 한 번 받았다. 그런데 커피에 설탕을 넣었냐는 질문은 하루에도 수백 번 듣는다. 예전에 내가 시간에 대해 매우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인제 보니 나는 시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120개의 블린[각주:5]은 3분 5초다. 수요일에 나는 이 시간 동안 그만큼의 블린을 나누어 주었다. 마리우폴과 크라마토르스크에서 사람들이 도착했다. 많은 여자의 팔에는 작은 강아지들이 안겨 있었는데, 강아지들은 폭발을 특히 무서워했다. 개들은 바들바들 떨면서 여전히 공습경보를 듣고 있는 듯했다. 나는 가끔 아무도 모르게 개들에게 통조림에 든 파테를 갖다주곤 한다. 동물들은 단것을 먹어서는 안 되니까 설탕은 개들의 주인들에게 준다. 주인들은 열 살이든 일흔다섯 살이든 항상 설탕을 반긴다.
12리터의 차를 담은 냄비는 25분이다. 아침에 열차가 한 대도 도착하지 않았을 때 그렇다. 누군가 역에 도착할 때면 이만큼의 차는 15분이다. 사람들은 차보다 커피를 더 빨리 마신다. 어제 나는 마리우폴에서 온 아주 대담한 소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지하실에서 한 달 동안 지냈는데도 괜찮다고 말하며 사탕을 거절했다. 그녀는 설탕도 원하지 않았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소녀다.
또 한 가지 부족한 물품은 바로 컵이다. 일회용 컵 한 팩은 30분이면 사라진다. 지난 월요일, 크라마토르스크에서 피난 온 어느 여자는 컵 하나를 가리키며 바로 그 컵에 커피를 따라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컵이 예뻤기 때문이다.” 나는 컵들의 모양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지 오래다. 종이컵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안다는 것은 분명 특별한 능력이다.
오트밀 카샤[각주:6]큰 냄비, 그러니까 15리터쯤 되는 큰 솥은 꼬박 한 시간이다. 쌀로 만든 달콤한 카샤는 30분밖에 안 된다. 아침마다 우리에게는 “디아나로부터”라는 냄비들이 도착한다. 디아나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날 터인데, 그녀의 카샤는 정말 맛있어서 설탕을 넣지 않아도 될 정도다. 어른들도 카샤를 좋아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세대 간의 벽이 쌀로 만든 카샤 덕분에 갑자기 얇아진다는 생각이 든다.
20리터의 수프는 뚜껑이 없는 얕은 접시에 담는다고 치면 한 시간 반이다. 종이로 만든 뚜껑 있는 그릇에 담는다면 한 시간밖에 안 된다. 여기서도 문학에서처럼 형식은 의미를 지닌다. 우리 팀에는 아주 영웅적인 요리사가 있는데, 그녀는 혼자서 하루에 40리터의 주요 메뉴, 또 그만큼의 수프를 만들 수 있는데, 언젠가 나는 그녀가 만든 버찌 블린을 3분 만에 다 나눠준 적도 있다. 그녀는 더 빨리 만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르비브에 사는 어느 여성은 아침마다 우리에게 커다란 피로흐[각주:7]세 판을 가져다준다. 사과잼과 까치밥열매잼으로 만든 피로흐. 그녀는 정각 오전 9시에 따끈따끈한 피로흐를 갖다주고 직장에 가기 위해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피로흐를 굽는다. 그녀는 우리가 고마움의 표시로 건네는 커피도 받지 않는다. 설탕이 들어간 것이든 들어가지 않은 것이든. 내일 또 새 피로흐를 가져오기 위해 말없이 마분지 상자에 든 피로흐를 두고 간다.
한 달 전부터는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수 많은 가족들, 말 그대로 천장까지 사람들을 억지로 채워 넣은 거대한 열차들. 피난민들 대다수가 바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는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왔어요, 죄송하지만 차 좀 마실 수 있을까요?” 사실 이 말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들이 단것을 굉장히 먹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작은 종이컵에 테이블스푼 세 개의 설탕을 넣는다. 쿠키가 있냐고 묻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케이크를 부탁하기도 했다. 우리는 무서울 때 단것을 먹는다. 언제 또 먹을 것이 생길지 모를 때. 우리는 단것을 먹는다. 왜냐하면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다니지 않던 어린 시절의 걱정 없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 주 전쯤 구호 물품으로 마들렌 여러 개를 받았는데, 마들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Madeleine.” 꼼꼼하게 개별 포장되어 있다, 각자에게 자신만의, 개인의 마들렌이 돌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마들렌으로는 시간을 측정하지 않고 그저 잘 아껴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만 준다. 그렇게 아이들은 저마다 미래에 존재할, 자신만의 콩브레 한 조각씩을 챙기는 셈이다. 마리우폴, 크라마토르스크, 미콜라이브, 포파스나. 그렇게 공동의 기억이 제대로 된 무게를 지니게 된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안의 도시들을 지키고, 탐욕스러운 점령자는 도시들을 파괴하지 못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설탕이 남았다. 우리 자원봉사자들의 모래시계 속에서 떨어지는 하얗고 깨끗한 모래. 설탕은 기차역에 있는 모든 것의 근본 가운데 근본이다.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들어온 구호 물품인 45킬로그램의 설탕은 이틀 전에 폴란드의 자원봉사자 그제고시가 보낸 것이다. 어째선지 나는 이 정도면 충분히 오래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엄혹하고 차는 달콤하다.
우리가 승리하게 된다면 나는 한 달 정도는 설탕을 먹지 않을 것 같다. 마침내 설탕을 타지 않은 커피를 마시게 될 것이다. 흰 빵도 끊을 것이다. 일단 버티며 기다려 보자. 세베로도네츠크, 마리우폴, 헤르손에 나눠 줄 설탕이 우리에게 충분히 남아있는 동안은. 그러니 여러분 모두, 우리 르비브 역으로 오시라.
- <전쟁 사전> 끝
국립대학교 ‘키이브-모힐랸스카 아카데미야’를 가리킨다. 1615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교육기관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