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상황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정신의 상태가 다시 한 번 전쟁의 문제를 오늘의 의제로 가져온다. 우리는 지금 끊임없이 전쟁을 예상하며 살아간다. 그 위험은 어쩌면 상상의 것일 수 있으나 위험에 대한 느낌은 존재하며 꽤나 중요한 요소를 구성한다. 이때 우리는 공황이 아닌 다른 어떠한 반응도 확인할 수 없다. 이는 학살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용기가 처하는 공황이라기보다는 그 위협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직면했을 때 정신이 처하는 공황의 상태이다. 노동 운동에서보다 혼란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없다. 만일 이를 분석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언젠가 전쟁으로 인해 행동뿐만 아니라 판단조차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지금껏 다소간 의식적으로 영위해 온 전통에 대하여 결산하는 것이다.
지난 전쟁에 뒤따른 시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혁명 운동은 평화주의와 전혀 공통점이 없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혁명적인 생각들은 19세기 모든 혁명 운동의 요람이 되었던 1792-93-94년의 기억으로부터 언제나 영감을 얻었다. 역사적 진리와 절대적으로 모순되는 1792년의 전쟁은 프랑스 민중을 외국의 폭군들과 적대하도록 이끄는 동시에 왕당파와 상층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를 격파하고 노동 대중의 대표들에게 권력을 부여한 결정적인 도약으로 여겨졌다. ‘라 마르세예즈’에 의해 영속화된 이 전설적인 기억으로부터 혁명 전쟁의 개념이 탄생했다. 이 전쟁은 공격적인 동시에 방어적인 것으로, 합법적인 형태일 뿐만 아니라 압제자들에게 대항하는 노동 대중 투쟁의 가장 영광스러운 형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 15년 간 모든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거의 모든 혁명론자들에게 공통적인 견해가 되었던 것은 이 부분이었다. 반면, 다른 전쟁들을 평가함에 있어 사회주의 전통은 단일하지 않은 여러 모순적인 견해들을 제공하는데, 이들 견해는 서로 명확하게 대조된 바도 전혀 없는 것들이다.
19세기 전반기에, 혁명가들의 시선에서 전쟁은 그 자체로 어느 정도의 위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예컨대 프랑스에서 혁명가들은 루이 필리프의 평화 정책을 격렬하게 비판했으며, 당시 프루동은 전쟁에 대하여 감동적인 기념사를 썼고, 사람들은 반란을 열망하는 만큼이나 압제에 억눌린 민중들을 위한 해방 전쟁을 꿈꿨다. 1870년의 전쟁은 최초로 프롤레타리아 조직들이, 즉 이 경우에는 인터내셔널이 전쟁의 문제에 있어 구체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강요했다. 인터내셔널은 대립 중인 두 국가의 노동자들이 정복의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하는 한편 적의 공격에 맞서 자신의 조국을 수호하는 데에 결연하게 참여할 것을 마르크스의 펜을 통해 촉구했다.
1892년 엥겔스가 100년 전에 발발했던 전쟁의 기억을 설득력 있게 환기하면서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러시아와 동맹을 맺은 프랑스가 독일에 대하여 일으킨 전쟁에 필요한 경우 전력을 다하여 참여하도록 촉구했던 것은 다른 견해를 대변하고 있었다. 방어냐 공격이냐는 더 이상 중요치 않았고, 중요한 것은 공격을 통해서든 방어를 통해서든 노동 운동이 가장 힘을 얻을 수 있는 국가는 보존하고 가장 반동적인 국가는 으스러뜨리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플레하노프, 메링 등등의 것이기도 한 이 견해에 따르면, 하나의 분쟁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떠한 활로가 국제 프롤레타리아에게 가장 유리할지 모색하고, 그에 상응하여 입장을 정해야 한다.
볼셰비키와 스파르타쿠스 연맹이 주장한 또 다른 견해는 위의 견해에 직접적으로 반대된다. 이들에 따르면 모든 종류의 전쟁에서, 레닌에 따르면 국방 전쟁과 혁명 전쟁을 제외하고, 로자 룩셈부르크에 따르면 오직 혁명 전쟁만을 제외한 모든 전쟁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자국이 패배하길 바라야 하며 자국의 투쟁을 방해해야 한다. 이 견해는 앞서 언급한 예외를 제외한 모든 전쟁이 그 제국주의적인 성격으로 인해 전리품을 두고 다투는 불한당들의 싸움과 비견될 수 있다는 관념에 기초해 있으며, 따라서 심각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전쟁은 자국의 패배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각국의 노동자들이 바로 그러한 이유로 적국의 제국주의의 승리를, 즉 다른 노동자들이 방해하려 애쓰는 승리를 두둔하도록 함으로써 국제 프롤레타리아의 행동이 이루는 단합을 깨뜨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주적은 자국에 있다”는 라이프니츠의 명언은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국가 분파들에 각기 다른 적을 할당하고 그렇게 외견상으로나마 그들을 서로서로 대립시킴으로써 이러한 문제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보다시피,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전쟁에 관련하여 통일성도 명확성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이론에 있어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는데, 그것은 전쟁을 그 자체로 비난하는 것에는 절대적인 거부를 보였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 특히나 카우츠키와 레닌은 전쟁이란 다른 수단을 사용할 뿐 평화기의 정책을 지속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클라우제비츠의 표현을 즐겨 사용했으며, 전쟁은 사용된 방법의 폭력성이 아니라 그러한 방법을 경유하여 추구된 목표에 의거하여 판단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후(戰後)의 시기가 노동 운동에 도입한 것은 새로운 견해가 아닌, 새로운 도덕적 분위기였다. 우리 시대의 (소위) 노동 조직이라는 것들이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든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비난할 순 없기 때문이었다. 1918년에 이미 열렬히 혁명 전쟁을 갈망했던 볼셰비키 당은 정책상의 원칙 때문이 아니라 러시아 군인들의 직접적인 압력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평화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볼셰비키가 호출한 1793년의 선례는 이전 케렌스키의 호출과 비교했을 때 군인들에게 더한 경쟁의식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들에서도 단순히 프로파간다의 측면에서,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대중들은 프롤레타리아를 표방하는 당파들로 하여금 순전히 평화주의적인 언어를 채택하도록 강제했다. 그 언어란 한편으로는 적군(赤軍)을 찬양하는 것에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각자 자국의 전쟁 예산을 의결하는 것에 있어서도 방해가 되지 않는 언어였다. 물론 이 새로운 언어는 전혀 이론적 분석을 통해 정당화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아무도 이것이 새로운 언어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사실인즉 전쟁이 제국주의적이라고 낙인찍히는 대신 제국주의가 전쟁의 비호자로서 낙인찍히기 시작했다. 이른바 암스테르담 운동은 이론적으로는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여 계획된 것이나,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내기 위해서는 전쟁 전반에 대한 반대를 표방했어야 한다. 프로파간다에 있어서는 소련의 (소위) 프롤레타리아적인 성격보다는 평화주의적 방침이 더욱 부각되었다. 전쟁을 그 자체로 비난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위대한 사회주의 이론가들의 말은 완전히 잊혀졌다.
어떤 의미에서, 독일에서 히틀러의 승리는 복잡하게 뒤얽힌 낡은 견해들을 모두 수면으로 끌어올렸다. 독일의 강제 수용소에서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짓눌려 신음하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수반하는 한, 평화는 그다지 값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892년 엥겔스가 자신의 글에서 표명한 견해가 다시 등장했다. 당시 국제 프롤레타리아의 주적이 러시아 차르 전제정이었듯, 현재의 주적은 독일 파시즘이 아닌가? 기름때처럼 서서히 번져가는 이 파시즘은 오직 무력을 통해서만 무너질 수 있다. 또한 독일 프롤레타리아가 비무장상태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만이 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방어전인지 ‘예방 전쟁’인지는 중요치 않다. 심지어 예방 전쟁이 나을 수도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한때 영국에게 러시아를 공격하도록 촉구한 적도 있지 않았는가? 그러한 전쟁은 더 이상 경쟁하는 두 제국주의 간의 분쟁이 아닌 두 정치 체제 간의 분쟁으로 보일 것이다. 또한, 1892년 노년의 엥겔스가 썼듯이 우리는 100년 전의 일을 떠올리며 전쟁이 국가로 하여금 프롤레타리아에게 중대한 양보를 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위협적인 전쟁의 상황 속에서는 국가와 자본 계급 사이의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며, 광범위하게 시행되는 사회주의적인 조치가 의심의 여지없이 취해질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전쟁이 프롤레타리아의 대표자들을 이처럼 자동적으로 집권시키지 않으리라고 누가 알 수 있겠는가? 현재 이 모든 고려 사항은 프롤레타리아를 표방하는 정치권들에서 프롤레타리아가 독일과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주장하는 다소 노골적인 의견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흐름은 아직 상당히 미약하기는 하나 쉽게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침공과 국가 방위를 구분하고, 어떤 이들은 레닌의 견해를 고집하며, 마지막으로 아직 많은 수를 차지하는 또 다른 어떤 이들은 평화주의를 고수하나 이는 대개 다른 이유에서보다는 습관에 따른 것이다. 이보다 심각한 혼란은 있을 수 없다.
불확실성과 모호함이 이토록 많다는 것은 놀라우면서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다루는 것이 일련의 준비, 수정, 새로운 준비의 과정을 거친 현상이며 그것에 수반되는 모든 도덕적, 물질적 결과들을 고려했을 때 이 현상이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그 특징을 이루는 듯이 보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말이다. 그러나 정말로 놀라운 것은 우리가 1793년의 절대적으로 전설적이며 환상적인 전통에서 출발하여 가능한 가장 결함이 많은 방식, 즉 사용된 방법의 성격이 아니라 추구된 목표에 따라 각각의 모든 전쟁을 평가하려 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더 나은 결론에 도달했다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순수 평화주의자들처럼 폭력의 사용을 일반적으로 비난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 아니다. 각 시대마다 전쟁은 매우 특정한 종류의 폭력을 구성하며 따라서 그 메커니즘을 연구해야만 어떤 판단이든 내릴 수 있다. 유물론적인 방법이란 무엇보다도 어떠한 인간 사건이건 검토하는 것이며, 추구된 목표보다는 사용된 수단에 필연적으로 내포되는 결과를 훨씬 더 고려한다. 우리는 군사적 분쟁의 메커니즘을 우선적으로 분석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주어진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조건들 하에서 그 분쟁이 내포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분석하지 않고서는 전쟁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제기할 수조차 없다.
일반적으로 전쟁에 대해서는 추상적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다. 현대의 전쟁은 이전의 체제들에서 같은 이름으로 지칭되었던 그 모든 것들과 완전히 다르다. 한편으로 전쟁은 경쟁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전쟁을 연장할 뿐이며, 생산 자체를 권력 투쟁의 단순한 형태로 만든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 생활의 모든 측면은 현재 다가올 전쟁을 지향하고 있다. 무기는 경쟁을 위해, 생산은 전쟁을 위해 사용되는 군사와 경제의 이 복잡한 뒤얽힘 속에서, 전쟁은 기존 체제 구조를 구성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재생산해낼 뿐이지만 그 정도는 훨씬 더 첨예하다. 마르크스는 근대적 생산 양식을 규정하는 것은 노동자가 노동의 도구에 종속되는 것, 즉 노동하지 않는 자들이 마음대로 사용하는 도구에 종속되는 것임을 강력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무기도 없는 경쟁이 어떻게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에 대한 각 고용주의 투쟁으로, 궁극적으로는 전체 노동자들에 대한 전체 고용주들의 투쟁으로 변모하는지 또한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전쟁을 규정하는 것은 전투원들이 전투의 도구에 종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 전쟁의 진정한 영웅인 무기들은 군 복무에 헌신하는 사람들과 함께 전투하지 않는 자들의 통제를 받는다. 이 통제 기구는 자신의 군사들을 죽음으로 강제로 내모는 것 외에는 적을 무찌를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한 국가와 다른 국가 간의 전쟁은 이내 자국의 군대에 대한 국가적, 군사적 기구의 전쟁으로 변모한다. 궁극적으로 전쟁은 무기를 들 수 있는 나이의 남성 전체를 상대로 국가 기구 전체와 참모진 전체가 벌이는 전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기계는 노동자로부터 그들의 노동력만을 앗아가고, 고용주들에게는 해고 외에는 다른 구속의 방법이 없으며 이 방법은 노동자가 여러 고용주들 중에서 자신의 고용주를 선택 가능하다는 사실에 의해 또한 무력해질 수 있는 반면, 모든 병사는 군사 기계의 요구에 자신의 인생을 희생해야 하며 이는 국가 권력이 그의 머리 위로 끊임없이 드리우는 즉결처분의 위협에 의해 강제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방어적인지 공격적인지, 제국주의적인지 국가주의적인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전쟁 중인 모든 국가는 적이 이 방식을 이용하는 한 그 방식을 이용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된다. 전쟁에 관한 거의 모든 연구들이 범하고 있는 거대한 오류, 특히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빠졌던 오류는 전쟁을 대외 정책의 사건으로 여기는 것인데, 실상 전쟁이란 무엇보다도 대내 정책의 문제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이다. 이는 감상적인 이유나 인간 생명에 대한 맹목적인 존중과는 무관하다. 여기서는 굉장히 단순한 지적, 즉 압제의 가장 급진적인 형태는 학살이며 군인들은 죽음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학살을 향해 보내지는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압제적인 기구는 일단 확립된 이상 부수어지기 전까지 존속하기 때문에, 전략적인 군사 기동을 지휘할 책임이 있는 기구가 대중을 억누르고 이 대중들이 기동 부대의 구실을 하도록 강제하는 모든 전쟁은, 설령 혁명가들에 의해 수행된 것이라 하더라도 반동적인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한 전쟁의 대외적 영향력은 대내적으로 형성된 정치적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주권 국가의 기구에 의해 조종되는 무기들은 그 누구에게도 자유를 가져다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로베스피에르가 이해했던 바이며, 혁명 전쟁의 개념을 탄생시킨 바로 그 1792년의 전쟁이 선명하게 입증한 사실이다. 당시의 군사 기술은 아직 오늘날과 같은 수준의 중앙집권화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 이래로 작전을 수행하는 군사들과 그들을 통괄하는 최고 사령부 사이의 종속 관계는 매우 엄격해졌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전쟁은 바레르의 말마따나 프랑스를 하나의 거대한 진지로 바꾸어 놓았고, 그 결과 군사 기관의 특징인 무소불위의 권력을 국가 기구에 부여했다. 이것이 1792년에 왕당파와 지롱드파가 내린 계산이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자들이 너무도 쉽게 받아들인 신화로 인해 전쟁은 자신의 압제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협하는 외국의 폭군들에게도 적대적인 민중들에 의한 자발적인 도약으로 비추어졌으나, 실상은 민중의 자유에 대항하여 왕당파와 상층 부르주아 계급 쪽에서 공모한 도발에 해당했다. 표면상 그들은 틀렸는데, 전쟁은 그들이 바랐던 신성한 연합을 만들어 내기는커녕 모든 갈등을 격화시켰고, 왕을, 그리고 지롱드파를 단두대로 이끌고 갔으며, 몽타뉴파의 손에 독재 권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이 선포되었던 1792년 4월 20일, 민주주의에 대한 모든 희망은 영원히 사라져버렸으며, 6월 2일의 혁명은 이내 테르미도르 9일로 귀결되었고, 이것의 결과는 곧바로 브뤼메르 18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동료들이 테르미도르 9일 이전에 행사하던 권력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들의 존재 목표는 권력을 탈취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것에 있었다. 역사의 피비린내 나는 아이러니에 따라, 전쟁으로 인해 그들은 1793년 헌법을 명문화하고, 중앙집권화된 기구를 만들어냈으며, 부자들에게는 대항할 수 없는 피비린내 나는 폭정을 행사했고, 모든 자유를 말살했으며, 결국 나폴레옹의 군사, 관료, 부르주아 전제주의의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그들은 항상 맑은 정신을 유지했다. 죽기 직전, 생쥐스트는 다음과 같은 심오한 말을 남겼다.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은 오직 전투에 참여한 자들뿐이며, 전투에서 이익을 얻는 것은 오직 힘 있는 자들뿐이다.” 로베스피에르의 경우, 그는 문제가 제기되자마자 어떠한 외국 민중도 해방시킬 수 없는 전쟁(“자유는 총검으로 얻을 수 없다”)은 프랑스 민중을 국가 권력, 즉 외부의 적과 싸워야 하는 한 더 이상 약화될 수 없는 권력의 족쇄에 속박되게 할 것이라는 점을 이해했다. “전쟁은 군 장교, 야심가, 투기업자,[...] 행정부[...]에게는 좋은 일이다. 이때 다른 어떤 책임도 면제되며, 전쟁을 일으키면 민중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난다.” 그는 이때부터 군사 독재를 예측하고 있었으며, 그 후에도 프랑스 대혁명의 명백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군사 독재를 예언했다. 그는 죽기 직전에 한 마지막 말에서도 그것을 다시 한 번 예측했으며, 이 예언을 자신의 유언으로 남겼으나 이후 그의 추종자를 자청하는 사람들은 불행히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러시아 혁명의 역사는 이와 완전히 같은 교훈을 제공하며, 충격적인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소비에트 헌법은 1793년 헌법과 마찬가지의 동일한 운명을 맞이했다. 레닌은 로베스피에르처럼 중앙집권적 국가 기구의 독재를 확립하기 위해 자신의 민주주의 원칙을 포기했으며, 로베스피에르와 보나파르트의 관계에서 그렇듯 사실상 스탈린의 선구자였다. 한편 오래 전부터 고도로 중앙집권적인 정당을 만들어 국가의 이러한 지배를 준비해오던 레닌은 시대의 요구에 맞게 자신의 원칙들을 변형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그는 단두대에 오르지 않았으며 새로운 국가 종교의 우상이 되었다. 러시아 혁명의 역사가 더욱 더 놀라운 이유는 전쟁이 항상 혁명의 핵심 문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혁명은 정부 및 군사 기구가 붕괴하고 있음을 느낀 군인들이 견딜 수 없는 멍에를 서둘러 벗겨내기 위해 전쟁에 대항하여 일으킨 것이었다. 케렌스키는 자신의 무지로 인한 무의식적인 진정성을 가지고 1792년의 기억을 소환하며 과거 지롱드파와 정확히 같은 이유에서 전쟁을 촉구했다. 트로츠키는 부르주아 계급이 전쟁을 통해 국내 정치의 문제들을 뒤로 미루고 민중을 국가 권력의 멍에 아래에 두길 기대하면서 어떻게 “적들을 소진시키는 전쟁을 혁명을 소진시키는 전쟁으로” 바꾸고자 했는지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볼셰비키는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전쟁 그 자체이지 제국주의가 아니었으며, 그들은 권력을 장악한 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서명해야 했을 때 이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 무렵 이미 구(舊) 군대는 해체되었고,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는 영구적인 군대도, 경찰도, 관료주의도 허용될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되풀이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내 백군(白軍)과 외국의 개입에 대한 두려움은 러시아를 온통 포위했다. 당시 군대는 재편성되었고, 장교 선출이 폐지되었으며, 구체제의 관료 3만 명은 간부로 복귀했고, 사형제, 구 형법, 중앙집권화가 다시 확립되었다. 이와 나란히 관료주의와 경찰도 복구되었다. 그 군사, 관료, 경찰 기구가 이후 러시아 민중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는 주지의 사실이다.
혁명 전쟁은 전쟁의 무덤이며, 군인들 그 자신 혹은 무장한 시민들에게 지배 기구도, 경찰의 압력도, 특별재판기관도, 탈영에 대한 처벌도 없이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수단이 주어지지 않는 한 계속해서 그러할 것이다. 현대사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전쟁이 수행된 것은 단 한 번, 파리 코뮌의 하에서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말을 모르지 않는다. 전쟁에 연루된 혁명은 반(反)혁명의 치명적인 타격에 굴복하거나 군사적 투쟁의 메커니즘에 따라 스스로 반혁명으로 변모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혁명의 전망은 매우 제한적으로 나타난다. 과연 혁명이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바로 이 희박한 가능성에 온 기대를 걸거나, 혹은 온 기대를 버려야 한다. 러시아의 사례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선진국이라면 혁명이 일어났더라도 후진국 러시아에서 야만적인 스탈린 정권의 기반이 된 것 같은 어려움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규모의 전쟁이든 적어도 그에 못지않은 또 다른 어려움들을 초래할 것이다.
더군다나 부르주아 국가가 일으킨 전쟁은 권력을 전제주의로, 복종을 말살로 변모시킬 수밖에 없다. 만일 전쟁이 때때로 혁명적 요소로 보인다면, 그것은 단지 전쟁이 국가 기구의 기능에 대해 유례없는 시련이라는 의미에서 뿐이다. 전쟁을 마주한 이상, 제대로 조직되지 않은 기구는 분해된다. 그러나 만약 전쟁이 곧바로 끝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된다면, 혹은 국가 기구의 분해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결과 마르크스의 말처럼 국가 기구를 파괴하는 대신 국가 기구를 완성시키는 혁명이 뒤따를 뿐이다. 지금껏 늘 그런 일이 발생했다. 오늘날 전쟁이 극심한 정도로 초래하는 문제점은 국가 기구와 자본주의 체계 사이의 대립이 갈수록 심화되는 데에서 비롯된다. 지난 전쟁 중 브리(Briey)에서의 사건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난 전쟁으로 인해 다양한 국가 기구가 경제에 대해 상당한 권한을 갖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전쟁 사회주의’라는 완전히 틀린 용어가 생겨났다. 그 후 자본주의 체계는 관세 장벽, 수출입 제한, 통화(通貨)와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다소 정상적인 방식으로 기능을 재개했다. 다가올 전쟁에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상황이 훨씬 더 악화될 것이며 우리는 양이 질로 쉽게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쟁은 오늘날 혁명적 요소가 될 수 있으나, 이는 오직 국가 사회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뜻으로 혁명이라는 용어를 이해하려 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경제 위기와 마찬가지로 전쟁은 자본가들에 대한 격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이 적대감은 신성 연합(l’union sacrée)으로 인해 노동자가 아닌 국가 기구의 이익을 향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전쟁 현상과 파시즘 현상을 잇는 깊은 친족 관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전쟁 정신’과 ‘전선의 사회주의’를 환기시키는 파시즘 텍스트를 참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두 경우 모두 본질적으로 관료주의 앞에서 개인이 완전히 무력화되는 일종의 극단적인 광신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아무리 민중 선동을 한다 한들, 이 가운데 자본주의 체계가 어느 정도 훼손된다면 인간적 가치나 프롤레타리아는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하고 손해만 치르게 될 수 있다.
전쟁을 행동의 수단으로 삼는 반(反)파시스트 투쟁의 부조리함은 이렇듯 매우 명확해진다. 그것은 민중을 더욱 야만적인 학살의 무게 아래로 짓누르며 야만적인 억압에 맞서 싸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철폐하고자 하는 체제를 또 다른 형태로 확장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전쟁에서의 승리로 강력해진 국가 기구가 적국의 국가 기구에서 자국의 민중들에게 행사하는 억압을 완화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패전의 결과로 이 민중들 사이에서 곧장 피로 적셔지지 않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둘 것이라고 믿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파시즘에 의해 사라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경우, 전쟁은 그것을 폐지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현재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인들을 강화하고 확장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역사는 국가 기구가 가하는 참을 수 없는 억압이 악화되는 것과 그러한 국가 기구를 파괴하기 위해 정면으로 대항하는 무자비한 투쟁 사이에서 모든 정치적 행동에게 한 가지 선택을 내리도록 점점 더 속박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오늘날 나타나는 해결 불가능한 어려움들은 투쟁을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행동하기를 그만두고 싶은 게 아니라면, 우리는 국가 기구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부에서 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나 전쟁이 발생했을 때에는 우리 스스로가 하나의 톱니바퀴를 이루는 군사 기계의 작동을 저지할 것인지, 혹은 이 기계가 맹목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짓밟도록 도울 것인지 선택을 내려야 한다. 이렇게 하여 “주적은 자국에 있다”는 리프크네히트의 유명한 말은 완전한 의미를 획득하며, 군사들이 군사 기구와 관료 기구의 손아귀 안에 놓여 수동적인 물체의 상태로 전락하는 모든 전쟁, 즉 현재의 기술이 지속되는 한 대개의 모든 전쟁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또 다른 기술이 도래하리라고는 예측할 수는 없다.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생산에서도 군대가 점점 더 집단적으로 소비되는 방식은 의사 결정과 지휘의 본질적인 개별적 성격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대중의 힘과 생명을 지휘 기구의 처분에 점점 더 많이 맡겼을 뿐이다.
우리가 생산이나 전쟁의 행위에 있어 대중에 대한 이러한 기구들의 지배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모든 혁명적 시도는 무언가 절망적인 것을 내포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온 영혼을 다해 파괴하려는 생산이나 전쟁의 체계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적당한 체계가 무엇인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괴물 같은 연쇄적 장치의 작용에 내포된 맹목적인 필연성의 관점에서 모든 개혁의 시도는 어리석은 것으로 나타난다. 현재의 사회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집어 삼키며 누구도 제어할 방법을 모르는 거대한 기계와 유사하다. 그리고 사회 발전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사람들은 톱니바퀴와 컨베이어 벨트를 움켜쥐고 기계를 멈추려고 애쓰다가 결국에는 기계에 깔려 으스러지는 사람들과 닮아 있다. 그러나 갑자기 느껴지는 무력감, 결코 결정적인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되는 이 무력감으로 인해 스스로에게 충실하지 않을 수는 없으며, 이는 무슨 가면을 쓰고 있건 간에 적에게 항복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도 없다. 또한 파시즘, 민주주의, 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등 무슨 이름으로 불리든, 제1의 적은 행정, 경찰, 군사 기구일 것이다. 이는 우리의 형제들에게 그렇듯 우리의 적인 반대편의 기구가 아닌, 우리의 수호자를 자청하면서 우리를 자신의 노예로 만드는 기구에 해당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최악의 배신은 스스로를 이 기구에 종속시키고, 그것을 섬기기 위해 자기 자신과 타인의 모든 인간적 가치를 밟아 뭉개는 데 동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