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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이다

 

슬라보예 지젝

번역: 이종현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다음은 2022 9 14 Project Syndicate(https://www.project-syndicate.org/)에 게시된 슬라보예 지젝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지젝은 점령자는 점령자로, 피점령자는 피점령자로 명징하게 인식해야 확고한 연대의 선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언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을 서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만 다루고 있지만, 이 글은 두 전쟁을 연대의 차원에서 어떻게 사고해야 할지 아이디어를 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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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kraine, Palestine: similarities, differences | Workers' Liberty (workersliberty.org)

 

 

어느 날 나는 작은아들에게 소금을 좀 건네줄 수 있냐고 물었고, 아들은 대답만 할 뿐이었다. “그럼요, 얼마든지!” 내가 부탁을 되풀이하자 아들은 이렇게 되받아쳤다. “아빠는 내가 그럴 수 있냐고 물으셨고,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한 것뿐이에요. 아빠는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진 않으셨잖아요.”

 

이 상황에서 더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일까, 나일까 아들일까? 자유를 선택의 자유로 이해한다면 아들이 더 자유로웠을 것인데, 왜냐하면 그는 내 질문을 어떻게 해석할지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 질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고, 통상 부탁하는 것으로, 즉 예의상 질문의 형식을 빌려 부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반면에 나는 자동적으로 관습적인 의미를 염두에 두면서 사실상 그 선택의 가능성을 거부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약 올린 작은아들처럼 일상적으로 행동하는 세계를 떠올려 보자. 우리는 상대방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고, 그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무의미한 해석 행위에 몰두하면서 엄청난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지난 십 년간의 정치적 삶을 적절히 묘사하고 있지 않은가?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대안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민주주의 정치가 성문화되지 않은 특정 규칙들과 관습들에 의지한다는 사실을 맘껏 이용해 왔고, 필요할 때면 언제나 그 규칙들과 관습들을 어기고 있다. 그것도 그들이 항상 법을 대놓고 어기는 것은 아니어서 그에 따른 책임도 교묘히 회피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에 속한 트럼프의 하인들은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면서 이와 유사한 전략을 구사한다. 그들이 습득한 비주류 우파 이론에 따르면 연방 대통령 선거법에는 일종의 개구멍이 있는데, 국무장관이 선거 결과를 인준할 수 없다고 결정하는 경우, 각 주의 입법 기관은 선거인들을 직접 지명할 수 있다. 오늘날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공화당원들은 2024년 유권자들의 의지를 꺾는 데 꼭 필요한 직위에 입후보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공화당은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들 가운데 하나, 즉 정치에 참여하는 모든 이는 같은 언어로 말하고 같은 규칙들을 준수해야 한다는 조건을 분쇄하려 한다. 이 조건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 국가는 내전에 이르게 되고, 미국 인구의 절반은 이미 그러한 결과를 예측하고 있다.

 

그와 같은 조건들은 국제 정치에도 적용된다. 국제 관계가 작동하도록 하려면 모든 당사자는 자유, 점령 등의 개념을 언급할 때 최소한 같은 언어로 말해야 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가리켜 해당 국가의 해방을 위한 특수 작전이라고 부르며 노골적으로 이 조건을 어기고 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정권은 이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 2022320, 이스라엘 크네세트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국가로서 완전히 서로 다른 조건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여러분을 위협하는 것은 같습니다. 적들은 우리의 민족, 국가, 문화를 전면적으로 파괴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이스라엘이라는 국명조차 파괴하려 합니다.”

 

팔레스타인 정치학자 아사드 가넴(Asad Ghanem)은 젤렌스키의 연설을 두고 자유와 해방, 특히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국제적 투쟁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아주 수치스러운 발언이라 불렀다. 젤렌스키는 점령자와 피점령자의 역할을 거꾸로 뒤집어 버린 것이다.” 나는 가넴의 말에 동의한다. 또 나는 야만적인 침략 행위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모든 가능한 원조가 제공되어야 한다라는 가넴의 말에 동의한다. 서방의 군사적 원조가 없다면 우크라이나의 영토 상당 부분이 러시아에 점령되었을 것이고 국제 평화와 질서의 기초들 가운데 하나인 영토보전의 원칙이 훼손되었을 것이다.

 

 

출처: Solidarity With Palestine, Solidarity With Ukraine – Sotsialniy Rukh (Ukraine) Compared With People Before Profit (Ireland) | Tomás Ó Flatharta (tomasoflatharta.com)

 

 

유감스럽게도 젤렌스키의 크네세트 연설은 일회성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우크라이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스라엘의 점령을 지지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혀 왔다. 2020년 우크라이나는 유엔 팔레스타인인의 불가양 권리행사위원회(UN Committee on the Exercise of the Inalienable Rights of the Palestinian People)에서 탈퇴했고, 2022년 8 주이스라엘 우크라이나 대사 예브헨 코르니추크는 이웃 국가로부터 무자비하게 공격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국민으로서 이스라엘 국민에 크게 공감을 표한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를 이처럼 유사 관계에 놓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어떤 유사 관계를 찾아야 한다면 우크라이나 국민이 처한 상황은 오히려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상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적어도 적대 관계에 있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라도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그저 러시아인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아랍 세계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도 부정한다(전쟁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밖에도, 이스라엘은 러시아처럼 핵무기를 소유한 군사 강국으로서 훨씬 약소한 국가를 사실상 식민지로 만들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행하는 것과 똑같이 이스라엘 역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의 지지를 반기기는 하나 결코 화답을 보내지 않았다. 그 대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스라엘로서는 자국군이 시리아 내 목표물을 폭격한 데 대해 러시아가 어느 정도 관대한 태도를 유지해 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스라엘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전폭적 지지는 자신들이 야만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동방으로부터 유럽과 유럽 문명을 보호하기 위해 투쟁한다고 프레이밍 하는 우크라이나 지도부의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투쟁의 프레임은 옹호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프레임은 노예제, 식민주의, 파시즘 등등에서 유럽의 역할을 윤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의 대의는 보편적인 언어를 기반으로, 모두에게 공통된 개념들, 그리고 점령’, ‘자유같은 단어의 보편적 해석을 기반으로 주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을 유럽을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환원하는 것은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궁정 철학자알렉산드르 두긴과 동일한 프레임을 사용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두긴 역시 러시아적 진실유럽적 진실사이에 구분 선을 긋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을 유럽의 테두리 안으로 제한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탈식민화 행위로, 서구의 신자유주의 지배 세력과 벌이는 투쟁의 일부로, 다극적 세계를 향하는 필연적인 한 걸음으로 표상하는 러시아의 국제 선전을 강화하는 셈이 된다.

 

우크라이나는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식민화하는 것을 가리켜 자유를 위한 방어적 투쟁이라고 묘사하면서 또 다른 강대국의 침략을 승인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자유를 위해 자신들이 전개하는 지극히 정당한 투쟁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머지않아 우크라이나는 다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유럽을 규정하는 해방의 보편적 기획에 참여하면서 진정한 유럽 국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우파 포퓰리즘적 흐름의 일부가 될 것인가?

우크라이나가 서방에게 나에게 곡사포를 좀 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서방은 그럼요, 얼마든지요!”라고 냉소적으로 농담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지 않았다. 서방 국가들은 점령자들과 싸우는 데 필요한 무기를 보냄으로써 이치에 맞게 답했다. 한편, 팔레스타인인들은 어떤 것이라도 좋다며 애타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공허한 성명들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종종 그 성명은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과의 연대를 외치는 선언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들이 소금을 부탁할 때, 오히려 그들의 적에게 소금을 건네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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