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아카이브의 경계를 침범할 것이었기에, 나는 그러지 않길 택했다. 역사는 사실, 증거, 문서고라는 한계를 충실히 지키기로 서약한다. 그 절대적 확실성들이 공포에 의해 생산됐을지라도 말이다. 나는 역사적 허구들 – 아카이브를 구성하고 과거에 관해 말해질 수 있는 것을 결정하는, 소문, 스캔들, 거짓말, 조작된 증거, 가공된 자백, 변덕스러운 사실관계, 불가능한 은유, 우연한 사건, 공상 등 - 을 초과하는 로맨스를 쓰고 싶었다. 법률 문서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된, 단순한 재발화와 전위(轉位)를 초과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간절히 쓰고 싶었다. 그 이야기는, 아카이브 내 진술들이 갖는 권위와 아카이브의 규약들을 흐트러뜨리고 넘어서는 내 전략을 구성했고, 내가 아카이브의 허구들을 확장하고 심화할 수 있게 했다. 이 두 소녀의 삶을 조성하는 적절하거나 적합한 미적 양식을 찾는 일, 기록된 구절들을 어떻게 배치할지를 결정하는 일, 갑판 위에 풀린 장송곡, 울부짖음, 곡소리 등 기억의 소리로 서사라는 길이 바뀌거나 굴절되는 것을 허락하는 일, 비너스와 그녀의 친구를 인간의 범주에서 추방하고 그들의 삶을 쓰레기로 정한 진술과 판결문의 내용 바깥에서 그들을 이미지화함으로써 권력의 배치 양상을 뒤흔들려 애쓰는 일[1] - 이 모든 일은, 역사의 한도 내에서 사유될 수 있는 것 너머에 있었다.
내가 그 서술에 실패했던 저항의 로맨스와 그 기술을 거부했던 사랑의 사건은, 현재까지도 이론(異論)이 있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지적 규율의 규약들에 의해 뿌리뽑힌 삶에 대해, 역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련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자유의 신분을 상상하거나 불가능한 이야기를 전하는 데는 무엇이 요구되는가? 자유의 신분에서 시적인 것이란, 영원히 후퇴하는 축제의 순간을 기다리기보다는, 사건을 기대하고 인간 이후의 삶을 상상해야만 하는가? 노예해방의 미래는 기록에서 처음 수행되어야만 하는가? 이 두 소녀의 이야기에서 후퇴함으로써 나는 단순히, 역사라는 길드의 규칙과 그에 소속된 살인자들의 “제작된 확실성들”을 옹호하고, 그럼으로써 두 소녀의 운명을 봉해버렸던 것은 아닌가?[2] 나 역시 그들을 망각으로 인도한 것은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찾아냈던 그 모습 그대로 그들을 뒀던 것이 과연 더 나은 일이었는가?
실패의 역사
한 소녀의 삶에 대한 희박한 기록의 단초가 된 폭력을 무효화하는 일이나 이름을 부여해 그녀의 익명성을 치료하는 일, 또는, 물건의 발언을 번역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그러한 이야기들을 전함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폭력의 역사는 어떻게, 왜 쓰이는 것인가? 한 소녀의 죽음에 관한 사건이나 비(非)사건을 왜 다시 방문하는 것인가?
노예제 아카이브는 토대적 폭력에 근거한다. 이 폭력은 노예제에 관해 이뤄질 수 있는 진술의 종류를 결정하고, 규제하고, 체계화하며, 또한, 권력의 주체들과 객체들을 창조한다.[3] 아카이브는 그 소녀의 삶에 대한 철저한 설명을 내주는 대신, 그녀의 죽음을 허가한 진술들의 목록을 보여준다. 그 외의 것은 모두 일종의 허구이다: 발랄한 처녀, 샐쭉한 계집, 비너스, 소녀. 도둑질의 경제와 삶에 대한 권력, 노예무역을 규정했던 이 항(項)들이 물건과 시체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화물, 자력(自力) 없는 무리, 사물은 그들 스스로를 재현에, 적어도 쉬이, 빌려주지 않지 않는가?
엄마를 잃다에서 나는 사라짐의 여정을 추적하고 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서술함으로써 노예된 자의 경험을 전경화하려 했다. 그 목표는, 내가 서사의 요건들이라 부른 주체, 플롯, 결말을 통해, 노예된 자의 경험과 역사적 허구들 간의 통약불가능성을 폭로하고 이용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불가능한 이야기들을 전할 것인가? 더럽히고 망가뜨리는 이름을 떠맡은 소녀들에 관한 이야기를, 같은 배에 탄 소녀들 간에 오갔으나 어떤 법적 지위도 획득하지 못했고 아카이브에 기록되는 데도 실패했던 대화에 관한 이야기를, 그들의 말을 듣는 자가 아무도 없었기에 결코 언표되지 못했던 호소, 기도, 비밀들에 관한 이야기를 말이다. 두 소녀 사이를 오갔을지도 모를, 하지만 어떤 승조원도 관찰하거나 보고하지 않은 은밀한 의사소통은 우리가 이미 진실이라 아는 것을 확인해준다: 아카이브는, 비너스와 그녀의 친구를 살해하고 선장의 혐의를 벗긴 권력의 놀이와 불가분하다.
이 앎이 우리를, 포로가 된 두 소녀의 삶에 대한 이해나 그들을 부순 뒤 그 폐허에 비너스라는 이름을 붙인 폭력에 대한 이해에 더 가까이 데려가는 것은 아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늦은 시점에도 여전히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지 역시 이 앎은 해명하지 못한다.
아카이브의 구성적 한계들을 초과하거나 뛰어넘는 것은 가능한가? 일련의 추측성 주장들을 전개하고 가정법(의심, 바람, 가능성을 표현하는 문법상 서법(敍法))을 이용함으로써 나는, 아카이브 연구에 기초한 서사를 만듦에 있어, 그리고 내가 역사의 표상적 차원들을 흉내내는 아카이브에 대한 비판적 읽기라고 부른 것에 의해, 불가능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과 그 전함의 불가능성을 세세히 진술하는 것 모두를 의도했다. “있었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조건적 시간성은, 리사 로우[4]에 따르면 “서로 다른 사유들의 공간을, 상실의 장면에 대한 생산적 관심의 공간을, 실재적 객체와 사학 및 사회과학의 방법론은 물론이고 부재하고 얽혀있으며 그 방법론으로는 닿을 수 없는 것들까지 한꺼번에 아우르려는 이중적 관심을 동반하는 사유를, 적절히 상징한다.”[5]
여기에서 의도는, 노예된 자의 삶을 회복하는 일이나 죽은 자를 죽은 것이 아니라 되돌리는 일처럼 기적적인 무언가라기보다는, 포로된 자의 삶이라는 그림을 가급적 완전하게 칠하려 노동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이중의 몸짓은, 아카이브의 한계들에 맞서 포로의 문화사를 쓰기 위해 안간힘 쓰는 것으로도, 서술의 과정을 통해서 포로의 삶을 엄밀히 재현하기란 불가능함을 상연하는 것으로도, 기술될 수 있다.
이 같은 글쓰기 실천의 지침이 되는 방법론은 비판적 우화화(critical fabulation)로 가장 잘 칭해질 수 있다. “파불라(Fabula)”는 이야기의 기초가 되는 요소들, 서사를 짓는 블록들을 뜻한다. 미케 발[6]에 따르면 파불라란 “행위자(actor)들에 의해 야기되고 경험되는, 논리적-연대기적으로 관계된 일련의 사건들이다. 사건이란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이행(移行)이다. 행위자들은 행위들을 수행하는 행위주체(agent)들이다. (그들이 반드시 인간인 것은 아니다.) 행위하는 것이란 사건을 야기하거나 경험하는 것이다.”[7]
기초가 되는 요소들을 갖고 놀며 재배치함으로써, 또, 논쟁적인 관점에서 사건의 배열을 분기하는 이야기들로 재-현현함으로써(by re-presenting) 나는, 사건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려고, 일반적으로 인정되거나 공인되는 설명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것이나 말해졌을지도 모르는 것이나 행해졌을지도 모르는 것을 상상하려고 시도해왔다. “무엇이 언제 발생했다”를 위기에 빠뜨리고 “자료(sources)의 투명성”을 역사적 허구로 이용함으로써 나는, (대서양 노예무역 및 역사의 규율에서의) 마음대로 처분 가능한 삶들의 생산을 가시화하고, 우선 상상을 통해서라도 “객체의 저항”[8]을 기술하고, 물건의 중얼거림과 맹세와 비명을 듣고 싶었다. 서사 담론의 여러 층위를 부수어 납작하게 만들고 서술자(narrator)와 발화자(speaker)를 혼동시킴으로써 나는, 역사, 서사, 사건, 사실 속의 논쟁적 인물이 분명하게 드러나길, 담론의 위계가 전복되길, 목소리들의 충돌 속으로 공인된 발언이 집어삼켜지길 바랐다. 이 방법론으로부터 산출되는 것은 “재조합된 서사”로서, 이 서사는 통약불가능한 설명들이라는 “가닥들을 묶고”, 소녀의 이야기를 다시 전하는 일과 노예제의 시간을 우리의 현재로 서술하는 일에서 현재-과거-미래를 엮는다.[9]
틈을 메우고 종지부를 찍는 것에 대한 거부로서의 서사 자제(narrative restraint)는 이 방법론의 요건이 된다. 비명, 신음, 난센스, 불명료함 등의 블랙 노이즈[10]는, 판독가능성과 법을 언제나 넘어서 있는 것들이자, 몹시 유토피아적인 염원, 자본주의로부터 버림받은 염원, 그에 수반되는 인간 담론과는 상반되는 염원을 암시하고 담아내는 것들이기도 한데, 서사 자제는 이 블랙 노이즈를 존중하라는 명령이기도 하다.[11]
이러한 실천의 의도는 노예에게 목소리를 주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이라는 죽음의 두 구역 사이에 위치한 경험의 영역으로서 진위 판별이 불가한 무언가를 상상하기 위함이며, 오로지 사라지는 순간에만 가시적인 위태로운 삶들을 사고하기 위함이다. 이는 (역자주: 말하기를) 저항한 것이 말해졌다고 말하려는 불가능한 글쓰기이다(죽은 소녀들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회복될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역사이다; 이는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나 있었을 수도 있는 일에 관한 서사이다; 이는 아카이브와 함께, 아카이브에 반해 쓰인 역사이다.
인정하건대, 내 글쓰기는 아카이브에 의해 지시된, 말할 수 있는 것의 한계들을 초과하지 못한다. 그 글쓰기는 법적 기록, 외과의의 일지, 원장, 선박 화물 목록, 선장의 항해일지에 의존하며, 이 점에서 그 글쓰기는 아카이브의 침묵 앞에서 머뭇거리며 그 침묵을 생략으로 재생산한다. 우리가 알 수도 없고, 앞으로 결코 회복할 수도 없는 모든 이야기, 바로 그곳에 대서양 노예무역에서 자행된 바로잡을 수 없는 폭력이 거주하고 있다. 이 만만치 않은 장애물, 또는, 이 구성적 불가능성이 내 작업의 한도를 규정한다.
비너스의 죽음을 상술할 필요성은, 그녀를 재현하려는 시도는 어떤 것이든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점에 의해 가려져 있다. 나는 이것이 생산적인 긴장이라고 생각하며, 서발턴, 박탈당한 자(the dispossessed), 노예된 자의 삶들을 서술하는 일에서도 불가피한 것이라 생각한다. 리커버리 호 선상에서 발생했던 일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전함에 있어 나는, 사건과 지배적인 담론들 간의 통약불가능성을 강조해왔고, 아카이브의 불안정성과 모순을 세세히 진술해왔으며, 역사적 글쓰기의 관례로서의 사실주의적 환상을 비웃어왔고, 허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의 교차점에서 반-역사를 생산해왔다. 갤러거와 그린블랫[12]에 따르면, 반-역사는 “지배적인 서사들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유 및 연구 방법론의 측면에서 지배적인 양식들에도 반대한다.”[13] 그렇지만 흑인 반-역사 기획의 역사는 실패작인데, 그 이유는 바로 그 같은 설명들이 그들 스스로를 결코 역사로서 정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설명들은 차라리, 어떤 기반을 얻기조차도 전에 주변화되고 무산된, 반란적이고도 분열적인 서사들이다.
이 비너스의 이야기가 어떤 가치를 갖는다면, 그 가치는 우리의 시대가 그녀의 시대에 매여있는 방식을 분명히 드러내는 데 있다. 우리가 아직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이 있는 삶들의 잔해, 아직 끝나지 않은 과거, 흑인의 삶이 여전히 위험한 채인 비상 상태의 지속 등으로 내가 부른 것에 의해, 나는 재산의 여생(餘生)이라는 면에서 기술하길 선호하지만, 다른 이들은 우울증의 일종으로 기술할지도 모르는, 어떤 관계.
이 이유들로 인해 나는, 재현, 폭력, 사회적 죽음에 관한 딜레마들의 어떤 집합에 개입하길 택했다. 메타역사적 담론의 형식을 사용하는 대신, 서술 행위를 통해 역사를 쓰는 일의 한계들을 수행함으로써 말이다. 내가 주로 이렇게 작업해온 것은 ⑴ 비평에 종속된다는 점에서 내 서사가 진술의 경제 바깥에서 작동하지는 않기 때문이며; ⑵ 비(非)역사적인 것으로 강등됐거나 쓰레기로 여겨졌던 저 존재들이 현재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고, 우리에게 노예제의 여생도 끝난 미래를 상상하길 요구하기 때문이다. 비관주의나 절망으로 경도되기보다 우리가 재현할 수 없는 것을 재현하려 애써야 할 필요성은, 과거에 대한 우리의 앎을 조건 짓고 해방된 미래를 향한 우리의 욕망에 생기를 불어넣는 그 불가능성으로서 수용되어야만 한다.
과거를 복원하려는 내 노력은 현재에 허가된 폭력의 형식들, 즉, 자유, 안전, 문명, 신/선의 이름으로 촉발됐던 죽음의 형식들을 간접적으로 기술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서사는 그 노력의 한복판에 있는데, 이는 “과거, 현재, 미래 사이에서 서사가 취하는 관계”[14] 때문이다. 현재에 대한 소녀의 권리에 관해 고심하는 일은, 우리의 시간에 이름을 붙이는 길이자, 우리의 현재를 사유하는 길이며, 그것을 창조한 과거를 그려보는 길이다.
불행히도 나는, 소녀의 삶의 내용을 기억해내거나 더 진실된 그림을 드러낼지도 모르는 방식으로 아카이브를 어지럽히는 법을 발견하지도, 그녀의 지위를 물건으로 정해버렸던 죽은 책을 비집어 열지도, 못했다. 내가 무작위로 수집해 활용해온 디테일들은, 똑같은 기술, 인용구, 재판 기록들이었다. 그녀를 죽음으로 인도했던 그 재판 기록은, 적어도 외과의의 말에 따르면, 살해 행위가 “그리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 되게끔 했다.[15] 아카이브의 난잡함은 방대한 양의 읽을거리를 낳지만, 그 소녀를 소생시킬 능력은 그 중 어느 것에도 없다.
폭력의 질서에 반하는 내 설명은, 그 소녀에게 잇따라 요구를 부과함으로써, 그녀의 삶이 유용하거나 유익한 것이 되길 요구함으로써, 그 안에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교훈이나 역사의 희망을 찾아냄으로써, 바로 그 폭력의 질서를 복제한다. 우리는 잘 안다. 죽음에 대한 설명들이 다른 죽음들을 막기에는 너무 늦었음을; 그 같은 죽음의 장면들이 다른 범죄들을 저지하기에는 너무 이름을. 그러나 그 사이의 시간에서는, 그리고 너무 늦은 것과 너무 이른 것 사이의, 더는 아니다와 아직 아니다 사이의 틈새 공간에서는, 우리의 삶이 그 소녀의 삶과 아직-미완된 자유의 기획에서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그 시간에서는, 그녀의 삶과 우리의 삶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불확실한 상태에 놓여있음이 명징하다.
그렇다면 그 사이의 시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두운 시간 속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전할 것인가? 어떻게 좌절의 서사는 살아있는 자를 위한 장소를 확보하거나 대안적 미래를 그릴 수 있는가? 미셸 드 세르토[16]는, 역사문헌학적 작업이 살아있는 자를 위한 장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최소 두 가지임을 언급한다: 첫 번째 방법은, 살아있는 자를 위해서 과거를 돌보고 되찾는 것, 우리가 누구였는지와 관계하여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초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과거에 관한 우리 앎의 생산에 대한 심문을 수반한다.[17] 드 세르토의 스케치와 함께,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드레드는 실천의 본보기를 보여준다.[18] 버틀러의 이 사변 소설의 주인공 다나는 노예가 된 그녀의 여성 선조와 마주하기 위해 20세기에서 1820년대로 돌아가지만, 자신이 친족을 구출할 수도, 폭력과 지배의 얽히고설킨 관계들에서 달아날 수도 없다는 데 놀라며, 외려 그것들이 그녀의 존재를 가능케 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를 마음에 간직한 채, 우리는 족쇄를 찬 비너스의 이미지처럼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만 한다.
늘 그랬듯 우리는, 사라지는 그녀의 뒤를 쫓아서, 우리의 노력이 그녀를 세계로 귀환시킬 수 있다는 거친 희망을 갖고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희망과 좌절의 접속이 이 노동을 규정하며, 그 결과를 열린 것으로 남겨둔다. (기상천외한 것이나 유토피아적인 것이 아니라, “비현실적으로, 공상적으로 조성된 역사들”[19]로서의) 불가능한 것을 쓴다는 일은 다음 두 가지를 그 전제조건들로 한다: 예상되는 실패에 대한 포용과, 우리가 구출하길 욕망하는 바로 그 객체를 권력의 배치 양상이 폐색할 때 특히 지속적인 것, 미완성된 것, 잠정적인 것이 되는 이 같은 노력의 특징을 받아들일 준비.[20] 다나처럼 우리 역시도, 미완의 감각과의 마주침으로부터, 우리 자아의 일부는 이러한 약속의 결과로서 잃어버린 상태라는 인식과의 마주침으로부터, 출현한다.
(끝)
[1]다음을 보라: Sylvia Wynter, “Unsettling the Coloniality of Being/Power/Truth/Freedom,” CR: The New Centennial Review 3, no. 3 (2003): 257–337.
[2] Stephan Palmié, Wizards and Scientists: Explorations in Afro-Cuban Modernity and Tradition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2), 94. 다음도 참조하라: Michel Rolph Trouillot, Silencing the Past (Boston: Beacon Press, 1997).
[3] Michel Foucault, Archaeology of Knowledge (New York: Pantheon, 1972), 128–29.
[4] (역자주) 오리엔탈리즘, 식민주의, 세계화, 인종 및 민족 문제 등을 다루는 미국의 연구자이다.
[5] Lisa Lowe, “The Intimacies of Four Continents,” in Ann Laura Stoler, ed., Haunted by Empire: Geographies of Intimacy in North American History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6), 208.
[11]다음을 보라: Stephen Best and Saidiya Hartman, “Fugitive Justice,” Representations, no. 92 (Fall 2005): 9
[12] (역자주) 캐서린 갤러거는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문학 연구자이며, 스티븐 그린블랫은 미국의 문학사가이자 작가이다.
[13] Catherine Gallagher and Stephen Greenblatt, “Counter-History and the Anecdote,” in Practicing New Historicism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2001), 52.
[14] David Scott, Conscripts of Modernity: The Tragedy of Colonial Enlightenment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4), 7.
[15]Trial of Captain John Kimber, for the Murder of a Negro Girl, 14; Trial of Captain John Kimber for the Supposed Murder of an African Girl, 20. 외과의 다울링은 노예선 선상에서는 잔혹한 채찍질이 관례적으로 행해졌다고 증언했다.
[16] (역자주) 프랑스의 사제이자, 역사학, 정신분석학, 철학, 사회과학 등을 연구한 학자이다.
[17] Michel de Certeau, The Writing of Histor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2).
[18] Octavia Butler, Kindred (Boston: Beacon Press, 2002). (역자주: 국내 번역본 제목은 ‘킨’이다.)
[20]슬라보예 지젝은 이를 열정적 체념의 실천이라 기술했다: “객체의 경험을, 그에 대한 적합한 재현의 실패를 통해 보여주는 어떤 열정. 열정과 체념은, 그렇다면, 상반되는 두 순간이 아니다: 그것은 ‘체념’ 그 자체, 즉, 특정한 불가능성에 대한 경험으로서 열정을 조장하는 것이 된다.” “Beyond Discourse-Analysis,” in Ernesto Laclau, ed., New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of Our Time (New York: Verso, 1990), 25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