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케인스의 국제통화체제 개혁안에 제자리를 찾아주는 걸 목표로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가의 귀환’에 관한 담론이 널리 퍼졌다. 그와 함께 ‘케인스의 귀환’를 외치는 흐름도 강해졌다. 그런데 케인스는 정말 ‘복귀’하는 걸까? 귀환 또는 복귀라고 말하기 위해선, 본래의 자리가 있어야 한다.
아래에선 국제통화체제 개혁에 관한 케인스의 아이디어, 즉 케인스 플랜을 검토한다. 그럼으로써 케인스의 복귀를 외칠 때, 흔히 놓치고 있는 지점을 밝힌다. 그동안 케인스는 ‘시장 대 국가’의 도식 아래에서 시장의 자유를 제약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때 자주 소환되었다. 특히 국제자본의 이동을 관리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국가 대 시장’의 도식에 따르면, 1980년대 신자유주의로의 전환 이후 한껏 자유로워진 자본이동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러므로 국가가 경기부양의 역할 외에 국제적으로 자본이동을 통제하고 금융 관련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국제통화체제 개혁에 관한 케인스의 아이디어는 국제자본의 이동에 관한 통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존 논의들에선 자본이동 통제와 국내 경제정책의 자율성 보장이라는 측면만 강조되었다. 그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가가 복귀하여 시장에 맞서 경제위기와 불평등을 해결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현실 속 국가들은 매우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어떤 국가는 양적 완화를 비롯해 각종 경제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위기를 타개하고 성장을 지속하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반면에 다른 국가들은 여전히 부채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악순환을 해결할 방안도 마땅치 않다. 오히려 전자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시행하는 정책 때문에 후자의 국가들이 경제적 손실을 보거나 정치적 불안정에 직면하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따라서 케인스의 ‘복귀’를 말하기에 앞서, 우리는 케인스의 아이디어에 제자리를 찾아줘야 한다. 케인스를 따르고자 한다면, 그가 구상한 국제통화체제 개혁안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시장 대 국가’의 구도는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일면만 보여줄 뿐이다.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다른 한 측면은 ‘국가 대 국가’의 구도일 것이다. 케인스의 국제통화체제 개혁 논의는 두 구도 모두를 포괄한다. 한편으론 국제자본 이동 통제를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론 국가 간 국제수지 불균형을 완화하는 것이다. 본 글은 후자에 관한 케인스의 논의를 자세히 살펴본다. 그럼으로써 국제통화체제 개혁에 관한 케인스 플랜에 제자리를 찾아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본 글의 목표는 기존 논의를 반박하는 것이라기보다 보완하는 거다.
케인스의 귀환을 말할 때, 중요한 전제가 있다. 바로 케인스의 개혁안이 과거 언젠가 실현된 적이 있다는 가정이다. 달리 말해, 브레튼우즈체제나 세계은행, IMF와 같은 국제기구가 케인스의 아이디어에 근거하고 있다는 걸 함축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차차 살펴보겠지만, 케인스의 국제통화체제 개혁안에는 중요한 국제정치적 목표가 있다. 바로 국가 간 국제수지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다. 케인스는 국제수지 균형을 도모함으로써 국제적인 생산·무역 시스템의 선순환을 회복하고자 했다. 나아가 인플레이션과 화폐축장(hoarding)에 따른 부의 불평등을 예방하여 국내적으로는 경제발전과 완전고용을, 국제적으로는 세계질서의 안정과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케인스의 이러한 아이디어는 브레튼우즈체제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케인스에게 자본이동 통제는 오히려 차선책에 불과했다. 케인스가 문제 삼았던 적자국으로부터의 자본이탈은 국가 간 국제수지 불균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국제수지 불균형이라는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서 초래될 부정적 결과만을 최대한 제한하려고 했을 뿐이다.
혹자는 브레튼우즈 합의 당시 케인스도 브레튼우즈체제를 수용한 게 아닌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케인스 스스로 1941~1943년 동안 영국 재무부에서의 논의를 통해 국제청산연합과 국제통화 방코르(Bancor) 제안을 다듬었음에도 브레튼우즈 회의 끝에 협상안에서 제외하지 않았는가? 그러면 브레튼우즈체제 합의 당시 케인스는 자기가 중시하는 사항을 지킨 게 아닐까? 부차적인 것부터 제외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케인스가 국제청산연합과 방코르를 제외한 것은 국가들이 합의할 수 있는 사항만 담아야 하는 외교 협상의 한계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합당하다. 당시 정치적 여건하에서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만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그럼 케인스는 당시 협상에 만족했을까? 자기 개혁안의 골격이 유지되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했을까? 오히려 케인스는 화이트 플랜(White Plan)과 브레튼우즈 회의에서의 합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케인스는 전후 국제통화체제를 구상하던 중 1942년 7월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던 해리 텍스터 화이트(Harry Dexter White)의 개혁안 사본을 얻었고, 그 안에 대한 검토를 마치고 8월 3일에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때 케인스는 재무부 제2차관이었던 리처드 홉킨스에게 “분명 그것은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평화로운 국제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논의가 미국 쪽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걸 환영했다(스키델스키 2009, 373).
1944년 6월 브레튼우즈 회의에서 자신의 국제청산엽합, 방코르, 상품통제(Commod Controls, CCs) 제안이 거부된 후 6개월이 지났을 때, 케인스는 상품준비통화(Commodity Reserve Currency)를 주장한 프랭크 D. 그레이엄(Frank D. Graham)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Ussher etc 2018, 1). “저는 상품 표 기준(commodity tabular standard)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금보다 더 합리적입니다. 저는 그에 관해 늘 지지를 표했습니다. 언젠가 세계가 그것을 어떤 형태로든 만들어내길 바랍니다.”(Keynes 1944, CW XXVI, p.39)
따라서 케인스가 화이트가 제출한 안정화기금 등의 제안이나 브레튼우즈체제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고 볼 수 있다. 자본이동 통제가 실현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체제는 여전히 금본위제에 기초하고 있고 미국의 막대한 준비금에 따른 일방주의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반드시 실현되길 바랐던 국제청산연합, 방코르, 상품준비통화, 상품 표 기준, 상품통제 등을 케인스는 왜 제안한 걸까? 그게 목표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2. 국제통화체제 개혁에 관한 케인스의 문제의식
케인스는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국제통화체제와 관련한 두 가지 문제에 주목했다. 하나는 전쟁을 계기로 전 세계로 연결된 생산과 무역 시스템의 붕괴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부의 불평등한 분배다. 전간기 세계질서에 관해 케인스가 한 논평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독일의 전쟁 부채에 대한 평가다. 케인스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승전국들이 독일에 과도한 전쟁 부채를 지운 것을 비판했다. 그런데 대중적으로 알려진 내용에선 중요한 부분이 빠져있다. 케인스는 단지 전쟁 부채와 그 규모만을 문제 삼았던 게 아니다. 과도한 부담을 지운 나머지 독일이 견디다 못해 분노하며 살길을 찾고자 다른 국가를 침략했다는 식의 설명은 당시 전 세계 경제가 처한 혼란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케인스는 전쟁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촉발된 인플레이션과 그 결과로 심화하는 경제 불안정 자체를 우려했다.
『평화의 경제적 결과』(케인스 2016) 5장 ‘평화조약 이후의 유럽’에서 케인스는 전쟁 시기 촉발된 인플레이션이 국제통화체제를 무질서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당시 각국의 정부는 전쟁을 수행하고 국내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정책을 취했다. 케인스에 따르면, 통화 가치가 불안정해지면 국내 물가와 국제 물가가 불균형해져 국가의 경제 운영이 어려워지고 개인 또한 필요한 자원 및 신용을 이용하기 힘들어진다. 나아가 인플레이션은 상품과 자산이 사회 계층 간, 국가 간에 불평등하게 분배한다. 상품과 자본의 부족에 직면해 국내적으로는 사회적 갈등이, 국제적으로는 국가 간 갈등이 고조된다. 그 결과, 전쟁으로 무너진 생산과 무역 시스템의 선순환을 바로 세울 수 없을 것이고, 국제수지 불균형이 심화되다가 결국엔 다시 한번 사회적 혼란과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될 것이다. 이러한 케인스의 예측은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실현되고 말았다.
다른 하나는 전간기에 더욱 심각해진 국가 간 국제수지 불균형의 문제다. 특히 케인스는 금본위제하에서 미국이 누리고 있는 막대한 국제수지 흑자와 그로 인한 화폐축장이 국제수지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는 원인이라고 봤다. 국제수지 불균형이 조정되지 않으면, 각국의 경제안정이 위협을 받고 국가 간 갈등이 격화될 수 있기에 이를 해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전쟁물자 수출부터 유럽에 필요한 각종 생산품을 생산 및 공급하면서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쌓았고, 유럽의 자본이 미국의 월스트리트로 지속해서 흘러 들어갔다. 미국에는 막대한 자본이 쌓였던 반면, 다른 국가들에서는 부채가 늘어만 갔다. 다른 국가들에서는 금 부족과 환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경제를 제약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흑자국에서 축장된 화폐가 세계금융시장에 유입되면서 실물 경제와 화폐 경제 사이의 괴리를 낳을 수 있었다. 이렇듯 케인스는 국제수지 불균형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이 개별 국가들의 완전고용 달성과 그를 통한 유효수요 증진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동시에 국제적인 상품과 무역 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상황은 다시 한번 전쟁의 위협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평화를 위해서는 금본위제를 대신해 국제청산은행과 국제통화를 새롭게 도입하고, 이 과정에서 국제수지 불균형 조정이 조정될 수 있도록 흑자국, 특히 미국이 일정한 부담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렇듯 케인스는 양차대전과 전간기 경험 속에서 국제통화체제 문제점을 진단하고 자신만의 개혁안을 구상했다. 위에선 케인스의 문제의식을 검토했으니, 이제 케인스의 핵심 구상을 살펴볼 차례다. 우선 주요 논지를 간략히 정리해보자. 그런 뒤, 케인스 플랜이 형성되는 과정을 차근히 검토한다.
전후 평화로운 국제질서의 회복에서 핵심은 생산 및 무역 시스템의 재건과 모든 국내 경제의 안정화다. 이를 위해 국제수지 불균형이 해소되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각국의 경제정책의 자율성이 확보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금본위제는 본질적으로 국제수지 불균형의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통화체제를 개혁하기 위해선 새로운 국제기구(국제청산연합)와 국제통화(방코르)를 창설해야 한다. 이때, 현재의 불균형 해소를 위해 흑자국이 일정한 조정 부담을 져야 한다. 이에 더해, 케인스는 상품통제, 상품 표 기준, 완충재고 제도를 강조했다. 이 제도들이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봤다. 국가 간 불균형, 생산 부문과 화폐 부문 간의 불균형을 해결하려면 우선 통화 가치를 안정시키는 데 필요하다. 또한 그건 각 국가에 경제정책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럴 때야 비로소 국가 간 협력이 가능해진다. 자유로운 경제 질서와 평화로운 국제질서를 회복하는 출발점은 국제수지가 지속해서 균형을 달성할 수 있도록 선순환 구조를 정립하는 것이다.
3. 케인스의 지적 여정에서 케인스 플랜의 골간(骨幹)을 발견하기
국제통화체제 개혁에 관한 케인스의 아이디어는 영국 재무부에서 전후 협상을 위한 초안으로 제출되었으며, 해러드(Roy Horrod), 호트리(Ralph Hawtrey) 등의 경제학자와 홉킨스 등의 재무부 관료들과의 논쟁 가운데 몇 차례 수정을 거듭했다. 아래에서는 국제통화체제와 관련한 케인스의 문제의식을 그의 지적 여정 속에서, 특히 국제청산연합의 제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살펴보자. 이를 통해 우리는 케인스 플랜의 골간이 ‘국제수지 균형 회복’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케인스는 자신의 지적 여정 내내 국제통화체제에 관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왔다. 케인스는 1913년 초에 출간된 자신의 첫 저서 『인도 화폐와 금융 Indian Currency and Finance』에서 인도 내의 일상적 상거래를 지원하기 위해 인도 화폐인 루피화를 금으로 바꾸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금을 중심으로 한 금융시스템은 국제무역에 한정해서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카퍼 2021, 28-41). 이때부터 케인스는 금을 준비금으로 가질 걸 요구하는 금본위제와 중앙은행과 은행의 신용창조에 기반한 국내 화폐금융 시스템 간의 모순을 지적했다. 그리고 어렴풋하게나마 국제적 수준에서의 청산·결제 시스템이 별도로 마련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후 케인스는 금본위제에 대한 분석을 진전시키면서 관리통화제도의 아이디어를 키웠고, 1930년 출간된 『화폐론』(1992) 38장에서 화폐의 초국적 관리(supernational management)를 처음으로 언급한다. 케인스에 따르면, 금가치의 장기적 추세를 관리하여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문제 모두에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케인스는 금의 사용을 제한하고 각국의 중앙은행을 회원국으로 하는 초국가은행을 설립하여 국제무역과 금융에 필요한 차입이나 대부를 관장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초국가은행이 회원국들로부터 금을 예금으로 받고 초국가은행권을 발행하고, 그 예금을 다른 회원국에서 대출하여 회원국의 중앙은행이 대내균형을 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국가 간 불균형과 국내외 경제적 불안정성을 해소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국제수지 흑자국과 국제수지 적자국 간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 흑자국에게는 조정의 부담을 지우고 적자국에게는 조정의 부담을 완화해주기 위함이었다. 케인스는 금융시스템 발달에 따라 금본위제의 자동적 가격정화 메커니즘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어떤 국가에는 준비금이 쌓이고 다른 국가들에는 준비금이 부족함에 따라 국제적 유동성의 순환에 제약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았다(케인스 1992, 364-383; 문우식 2002, 253-257).
이때까지만 해도 케인스는 단기적 해결방안으로 금환본위제를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목도하고 전시경제를 경험하면서 금을 완전히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통화체제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케인스는 재무부에 소속되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면서 국제통화체제에 관한 연구를 잠시 멈췄다. 그러다 종전이 다가오면서 영국과 미국의 주도하에 전후 국제경제 질서의 재건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케인스 또한 1940년부터 자신의 국제통화체제 개혁안을 다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1940년 11월 19일 케인스는 영국 정보부가 보낸 ‘풍크 플랜(Funk Plan)’이란 문서를 접하게 된다. 그건 히틀러의 경제장관 발터 풍크(Walther Funk)가 1940년 7월 25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히틀러의 유럽 ‘신질서’를 위한 청사진이었다. 이는 전쟁 중에 나온 최초의 전후 구상이었다. 케인스는 이 방안에 대해 탁월하다고 평가하면서 영국 정보부에 실행에 옮길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회신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변동환율제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경제학자들도 있었는데, 케인스는 전간기의 경험에 비춰볼 때, 변동환율제는 금본위제의 족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을 유발하며 전쟁의 위협을 고조시킨다고 보았다. 그래서 케인스는 각국이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변동하도록 하는 대신 외환을 관리하는 안정화 메커니즘을 마련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보았다(스키델스키 2009, 334-337).
풍크 플랜은 히틀러의 이전 경제장관인 할마르 샤흐트(Hjalmar Schacht)가 발전시킨 쌍무적 청산제도에 기초해있었다. 샤흐트의 쌍무협정안은 금의 이동이나 실제 외환거래의 필요 없이 두 나라 각각의 무역수지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풍크 플랜은 이 아이디어를 두 국가가 아닌 여러 국가가 참여하도록 하는 다각적 청산제도로 발전시킨 것으로, 베를린이 관리하는 유럽청산동맹의 창설을 제안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대칭적인 국제수지조정을 달성하려는 것이었다(스키델스키 2009, 334-337).
케인스는 풍크 플랜에 담긴 환관리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두 가지 점에서 한계를 보완하고자 했다. 이론적으로는 단기적 지불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신용 조정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이를 위한 방안을 자신의 개혁안에 포함하려 했다. 현실적으로는 독일이 유럽을 지배하려는 의도로 제안한 것이라는 점과 함께 이 제도를 실현 및 운영하기 위한 역량을 독일이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평가했다(문우식 2002, 258; 스키델스키 2009, 334-337). 그래서 독일과 같은 특정 국가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다자주의에 입각한 시스템을 제안하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케인스는 국제통화체제의 “대안은 전간기의 통화혼란으로 복귀하는 게 아니라 샤흐트 플랜을 수정·개선하는 것이다 (Keynes 1980, 19)”라고 말했다.
1941~42년에 걸쳐, 케인스의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케인스는 세 가지 방향에서 샤흐트-풍크 플랜을 보완했다. 첫째, 초국가은행의 운영원칙이다. 이는 국내 은행시스템의 운영원리를 국제적 수준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이었다. 케인스는 한 국가 내에서 상업은행 간 결제가 중앙은행을 통해 이뤄지듯이, 국가 간 결제를 위한 별도의 초국적 은행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각국의 중앙은행을 회원국으로 하는 국제청산은행 설립을 제안했다. 국제청산은행의 자산은 준비금 및 회원국 중앙은행에 대한 대출로 구성되며, 부채는 중앙은행들의 예금으로 구성된다. 회원국은 국제청산은행으로부터 각자의 쿼터를 할당받고 그에 비례한 당월계좌를 부여받는다. 중앙은행 간 지급결제는 방코르라 불리는 국제통화로 이뤄진다. 국제청산은행은 방코르를 발행할 권리를 가지며, 금에 의해 가치가 규정되거나 금과 태환되지 않도록 한다. 방코르는 세계무역의 3년 또는 5년의 평균치에 비례하여 공급이 조정되며, 방코르를 통해 한 나라의 무역적자 또는 흑자가 측정되고 국제수지 균형이 이뤄지는지 파악할 수 있다.
둘째, 다자주의(multilateralism)다. 양자 간(bilateral)의 무역 및 결제협정은 수많은 쌍무협정을 맺는 식으로 이뤄질 텐데, 이 경우 양국 간의 거래에서 축적된 국제수지는 제3자와의 무역거래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그렇기에 국제무역이 제한받거나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케인스는 국제청산동맹에 속한 회원국 모두에게 적용되는 다자주의 시스템을 고안했다. 금이나 특정 국가의 통화와 같은 중개 없이 무역 상대국에 대한 흑자로 다른 무역 상대국에 대한 적자를 지불하는 다각적 청산제도(multilateral clearing)로 발전시킨 것이다. 더불어, 케인스는 상품 구입과 지출 간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시차 문제를 해결하여 중앙은행 간 결제를 위한 국제통화의 보유를 최소화하고 그럼으로써 화폐축장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셋째, 대칭적 국제수지조정을 위한 유인과 제재다. 국제청산은행을 설립하고 방코르를 도입하였다고 하더라도, 회원국들이 원칙을 어길 위험이 언제나 존재했다. 국제수지 흑자국에 의한 준비금 축적, 즉 화폐축장의 위험을 방지해야 했다. 그래서 국제수지 균형을 관리하기 위한 자동 조정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케인스는 모든 회원국에게 연말까지 방코 계정을 청산하여 영(0)으로 만들도록 유인을 제공하고 연말까지 청산하지 못할 시 제재를 가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회원국은 국제청산동맹의 방코 계정에서 지난 3년 또는 5년간의 무역 평균치의 절반에 해당하는 초과인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초과인출 허용치의 절반 이상을 사용한 국가, 달리 말해 너무 많은 무역적자를 내는 국가의 중앙은행 결손은행(deficiency bank)으로 지정될 것이며 초과인출한 만큼 이자를 부과받는다. 또한 통화가치를 낮추어 자본수출을 방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나친 부채를 억제하도록 한다. 반대로 무역 흑자국에서는 자산을 지나치게 축적하지 않도록 압력을 받을 것이다. 초과인출 서비스 총액의 절반 이상을 방코 예치금 잔액으로 가진 국가의 중앙은행은 관리은행(supervised bank)으로 지정될 것이며, 해당 중앙은행의 방코 계좌에 일정 수준의 이자가 부과된다. 이를 피하려면 흑자국은 통화가치를 상승시켜 자본수출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만일 연말까지 방코 계좌의 잔액이 초과인출 허용치를 넘는다면, 넘은 금액만큼 몰수될 것이다. 모든 잉여금과 이자는 국제청산연합의 적립기금(reserve fund)에 예치된다. 케인스는 이러한 제재와 유인의 조치들이 국제수지 불균형이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을 자동적으로 차단할 것이라 기대했다. 매년 국제청산연합과 각국의 방코 계정의 대변과 차변이 서로를 상쇄하도록 함으로써 적자국과 흑자국 모두가 국제수지 균형을 달성할 것이다. 그러면 채권국, 흑자국의 힘은 축적되지 않을 것이고 채무국, 적자국은 부채의 늪에 빠져 스스로를 종속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다(몬비오 2006, 152-155; 스키델스키 2009, 342).
4. 결론을 대신해
요컨대, 케인스는 초창기부터 지속해서 국제수지 균형의 회복이야말로 국제통화체제 개혁의 핵심 과제라고 보았다. 금본위제가 실패한 것은 국제무역과 국제금융에서 정산의 부담을 채무국, 즉 적자국에게 강제했기 때문이다. 채무국에는 강제로 정산의 부담이 부과되는 반면, 채권국에게는 임의적이었다(스키델스키 2009, 341).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국가는 경제를 긴축해야 했다. 반면에 무역 흑자를 누리는 국가는 화폐를 퇴장시킬 수 있었고, 이는 적자국에서 흑자국으로의 자본도피로 인해 심화되었다. 그러면서 국제수지 불균형은 심화되었고, 채무국 또는 적자국의 조정부담은 더욱 커졌다. 그렇기에 케인스는 금본위제를 대신할 새로운 국제통화체제는 이러한 악순환을 벗어나서 국제수지 균형을 달성하고 이 과정에서 모든 국가가 동등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청산동맹 제안의 주된 목적은 채무국에 대한 규율은 유지하되, 채권국의 정산책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샤흐트-풍크 플랜의 청산 접근을 은행업의 원칙과 결합하여 국제적 수준에서의 다자주의로 확대하였다. 또한 채무국과 채권국 모두에게 동등한 수준의 의무를 부과하기 위한 제재와 유인 조치를 마련하였고, 이를 통해 매년 자동적으로 청산이 이뤄지도록 하고자 했다. 한 마디로 케인스는 국가 간 힘의 격차를 완화하고 모든 국가의 번영을 증대시키는 분배 체계를 고안해낸 것이다(몬비오 2006, 156). 따라서 케인스 플랜의 제자리는 두 축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시장 대 국가의 도식 속에, 다른 하나는 ‘국가 대 국가’의 도식 속에 있다. 케인스 플랜은 국제수지 불균형에 기반한 미국의 패권과 국가들 사이의 불평등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국제자본에 대한 통제는 그 기획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위치되어야 한다.
이런 평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케인스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최근 논의와 맞닿는다. 최근 논의에선 케인스의 경제학을 폐쇄경제가 아닌 개방경제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둔다. 케인스가 단지 완전고용 달성만을 중시하지 않았으며 화폐수요의 창출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용인도 제한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신, 이들은 케인스의 국제통화체제에 대한 비판 속에서 국제수지 균형과 안정적인 경제성장, 실물 부문과 화폐 부문 간의 괴리 방지(달리 말해, 실물 부문에 발맞춘 화폐 공급), 국가 간 평등한 분배 등에 관한 아이디어를 발견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미국의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는 오늘날의 국제통화체제를 케인스가 제안한 국제청산연합과 국제통화, 완충재고 등으로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자본이동 통제와 국내 경제정책의 자율성은 부차적인 위상을 차지할 뿐이다(Jane D'Arista 2004; 2007; 몬비오 2006; Costabile 2009; 2010; Ussher 2009; Ussher etc 2018).
참고문헌
Jane D'Arista, 2004, Dollars, Debt, and Dependence : The Case for International Monetary Reform, Journal of Post Keynesian Economics, Vol. 26, No. 4 (Summer, 2004), pp. 557-572.
Jane D’Arista, 2007, U.S. Debt and Global Imbalances, Working Papers wp136, Political Economy Research Institute,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t Amherst.
J. M. Keynes, 1944. Note by Lord Keynes. The economic journal, 54 (215/216), 429–30. In: E. Johnson and D. Moggridge, eds. 2013. The collected writings of John Maynard Keynes. Vol. XXVI, Activities 1941–1946: shaping the post-war world: Bretton Woods and reparation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on behalf of the Royal Economic Society, pp. 39–40.
J. M. Keynes, 1980, Activities 1940-44. In: D. Moggridge, eds. Shaping the Post-War World: The Clearing Union, Vol. XXV of The Collected Works of John Maynard Keynes, London: Macmillan.
Leanne Ussher, 2009, Global Imbalances and the Key Currency Regime, Review of Political Economy, Volume 21, Number 3, pp. 403–421.
Leanne J. Ussher, Armin Haas, Klaus Töpfer & Carlo C. Jaeger, 2018, Keynes and the international monetary system: Time for a tabular standard?,The European Journal of the History of Economic Thought, 25:1, 1-35, DOI: 10.1080/09672567.2017.1365093
Lilia Costabile, 2009, Current global imbalances and the Keynes Plan, Structural Change and Economic Dynamics, Volume 20, Issue 2, pp. 79-89.
Lilia Costabile, 2010, The International Circuit of Key Currencies and the Global Crisis: Is there Scope for Reform?,Working Papers wp220, Political Economy Research Institute,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t Amherst.
로버트 스키델스키 저. 고세훈 역. 2009. 『존 메이너드 케인스 2 : 경제학자, 철학자, 정치가』. 서울: 후마니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