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오후 나는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 뉴스를 통해 세월호를 처음 보게 되었다. TV 화면에는 큰 배가 바다에 누워 있었다. 그 배는 비록 기울어져 가라앉고 있었지만 그 엄청난 크기는 어쩐지 안도감을 주었다. 저렇게 큰 배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고 다 구조되겠지. 그러나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이후의 상황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수시로 기사를 보고 여러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에 관한 기사를 보면 볼수록 알 수 있는 건 이 참사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마치 엄청난 구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기사는 사실 국가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다른 데 있다는 걸 보여준다. 국가의 모든 역량은 사고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에 대처하는 자신의 모습을 부풀리는데 집중되어 있다. 계속된 거짓 발표들은 우연도 아니고 사고 대처의 미숙함에서 기인하는 문제도 아니다. 국가가 지금 가장 시급하게 구원하고자 하는 대상은 수면 아래에 있는 생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페이스북, 2014.4.18.).
재난이 일어났을 때 무엇보다 자신을 먼저 구원하고자 하는 국가의 모습은 이태원 참사 때 더욱 신속하게 선제적으로 이루어졌다. “마치 정권을 위협하기 위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라도 한 것처럼 정치권의 반응은 방어적이고 신경증적이었다. 재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기 전에 국가의 책임 없음이 선제적으로 유포됐다.”[1]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쉽게 의심과 혐오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리고 재난은 ‘남의 일’(189)이 되었다. 국가는 왜 재난 상황에서 스스로를 구하고자 하는가?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유가족은 왜 오히려 비난 받는가? 왜 재난은 ‘남의 일’이 되는가?
서교인문사회연구실이 기획하고 소속 연구자들이 함께 쓴 『재난 이후, 사회: 참사 다음의 삶과 권리를 위하여』는 우리가 재난을 겪으며/바라보며 아마도 한 번 쯤은 물었을 그 질문들을 천착한다. 책 제목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시간성, 즉 ‘이후’와 ‘다음’은 재난을 지나간 일이나 이례적인 사고가 아니라 우리 공통의 문제로 삼고자 하는 의지의 반영이다. 재난은 여러 숫자 —날짜, 사상자 수, 피해액 등 —로 확정되는 실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우리’로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경험될 수 있고[2]다르게 문제화되는 구성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우리가 재난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재난 이후 살아갈 사회는 달라진다. 제목에서 ‘이후’라는 시간성이 강조되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재난을 다르게 ‘구성’하며 다른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는 재난을 우리의 문제로 얼마나 구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재난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재난은 ‘남의 일’이에요.”(189)라는 한 유가족의 말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이는 재난을 사회 바깥으로 밀어내는 우리와 사회에 대한 경험에서 나온 말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피해자와 유가족은 사회 바깥으로, 혹은 뭐라 부르건 우리 공통의 문제에 관여하는 제도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이다. 그러므로 공저자인 전주희가 다른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도의 수립이나 개선만이 아니라 그 제도가 멈추는 지점에 대한 주목인지도 모른다.[3]흥미롭게도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여러 저자들이 다른 시각에서 서술한 것이지만 그 지점을 공히 주목한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그럼 이제 각 저자의 글을 하나씩 따라가보자.
책을 여는 글은 정정훈의 ‘재난과 통치: (신)자유주의적 위험 관리인가 상호의존성에 기초한 체제 전환인가’이다. 그는 18세기에 국가를 최적의 상태로 관리하는 권력 기술로 자리잡은 통치성이라는 문제틀 속에서 재난이 어떻게 파악되고 관리되는지 살핀다. 푸코에 따르면 통치성이란 “인구를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정치경제학을 주된 지식의 형태로 삼으며, 안전(security) 장치를 주된 기술적 도구로 이용하는 지극히 복잡하지만 아주 특수한 형태의 권력을 행사케 해주는 제도·절차·분석·고찰·계측·전술의 총체”다.[4]이 안전장치는 사건을 선악으로 평가하지 않고 자연적이기 때문에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안전이란 “통계적 정상 수치를 유지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통계적 정규 분포 내에만 있다면 사람들이 굶고, 전염병에 걸리고, 사고가 발생하고, 이 때문에 사망하는 사태는 허용되거나 내버려두어도 되는 것이다”(36). 이러한 안전장치를 바탕으로 한 재난 관리는 신자유주의 통치성에서도 이어지지만 정정훈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적 안전 관리는 자유주의의 경우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을 띤다”(41). 신자유주의는 사회 전체에 시장 원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국가 개입을 원리로 삼기 때문이다. 정정훈은 이를 (사토를 빌려) 신자유주의의 안전 확보 패러다임이 예외상태의 규칙화를 통해 가동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는 “비시민을 ‘법의 힘’을 지닌 정부 명령에 의해 법질서 외부로 배제하는 통치형태”(사토)로서,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특징은 국가의 통계적 정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버려지는 인구, 죽어도 무방한 인구, 즉 배제되는 인구들과 그렇지 않은 인구의 선을 국가가 더욱 명확히 함을 뜻한다.”(43) 이 선은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그어지는가? 버틀러는 이 선을 애도가치로 표현한다. 즉 애도받을 만한 가치를 가진 이들로 간주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애도도 없이 무시되어도 좋은 이들로 간주되는 사람이 있다. 버틀러는 이러한 애도가치의 불평등에 맞서 그 분절선을 폐기하는 정치를 ‘애도가능성의 정치’라고 규정한다. 그는 이 정치의 토대를 인간의 취약성에서 찾는다. 인간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는 국가 권력에 저항하는 운동의 기초가 된다. 정정훈은 이렇게 신자유주의 통치성 하에서의 재난 관리가 인구를 분할하는 데 주목하고 그 분할선을 폐지하기 위한 정치의 토대를 상호의존성에서 찾는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그 분할선을 폐지하여 우리가 획득해야만 할 “재난으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단지 개개인의 생명, 건강, 재산을 보장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어야”한다는 것이다. 정정훈은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하는 한 안전할 권리는 잘해야 생물학적 생명의 보존에 그칠 수밖에 없”으므로 이 권리를 “인간 존엄성”의 보장으로 연결하기 위해 “지금과는 다른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57). 이렇게 그의 논의에서 안전은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도구에서 다른 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수단으로 거듭난다. 이는 ‘안전’에 대한 상(像) 자체를 전환하고 이를 체제의 전환과 연결짓는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어지는 글은 백선우의 ‘인정이론의 관점에서 본 재난 참사 유가족 운동’이다. 그는 “참사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재난 참사 희생자들의 죽음과 유가족 운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 및 지지가 절실하다”(64)고 강조하면서 이때 사회적 인정이 갖는 의미를 검토한다. 그가 준거로 삼고 있는 호네트는 현대 사회를 사회적 인정이 제도화된 관계, 즉 사회적 인정 질서로 이해한다. 그러나 사랑, 권리, 가치부여라는 세 가지 형태의 인정은 각각 폭력, 권리부정, 가치부정이라는 세 가지 형태의 무시를 겪으며 파괴될 수 있다. 이로 인한 고통에서 주체들의 인정투쟁이 발생하며 이는 “사회 그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인정 질서와 규범적 기대의 훼손에 대응하는 도덕적-규범적으로 정당한 투쟁”(71)이다. 백선우는 재난 참사가 극단적인 형태의 고통이지만 희생자들이 사망한 경우 누가 이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두 가지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첫째는 희생자들의 죽음과 고통의 ‘사회적’성격에 주목하는 것이고 둘째는 유가족에 주목하는 것이다. 희생자의 고통은 해당 개인의 죽음으로 개별화되는 듯 보이지만 백선우는 이러한 고통이 “사회적 인정 질서와 그것의 훼손에 의해 발생하는 고통”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즉 고통의 원인이 사회적이므로 이러한 고통은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공통으로 경험되고 관찰될 수 있다”(74)는 것이다. 이로 인해 희생자의 고통은 우리 —비록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공통의 문제로 확장된다. 그 고통을 낳은 사회적 인정 질서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컨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접한 여성들의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말은 이렇게 우리에게 닿은 고통을 드러낸다. 또한 재난 참사 유가족들의 운동은 이러한 “고통의 ‘사회적’특성과 자책의 감정을 매개로 하여, 재난 참사 희생자들이 수행했어야 하는 인정투쟁을 대신해서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83)다. 이렇게 고통의 사회적 성격에 주목하면서 이를 투쟁의 근거로 이해하는 백선우는 ‘고통을 낳은 사회적 인정 질서를 공유’하는 우리의 연대와 지지를 적극 요청한다.
고통의 이러한 사회적 성격은 이어지는 글, ‘사회적 문화투쟁의 장으로서 재난 참사의 외상’에서도 강조된다. 김현준은 이 글에서 개별적으로 혹은 주관적으로 체험되는 고통이 개인적인 심리 상태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관계와 공적 제도가 만들어내는 관계적이고 사회적인 감정이자 사회적 병리의 반영”(92)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적인 감정이 개인화되는 데 있다. 재난을 겪은 당사자가 외상을 입는 일은 ‘자연스러운’일로 여겨지고 정신의학적 치유 담론은 “외상의 사회문화적, 관계적 차원을 은폐하고 ‘사회 없는’심리/정신 치료를 손쉽게 강요”(101)한다. 이것이 재난을 사회적 사건이 아니라 “교통사고”나 천재지변 같은 일로 자연화하고, 사회적 책임과 고통을 개별화하며, 그에 따라 외상을, 결국 우리를 탈정치화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김현준은 외상을 사회적 문제로 이해하기 위해 ‘문화적 외상 이론’을 가져온다. 이 이론에 따르면 “외상은 재난에 대한 ‘자동적인’반응이 아니라, 인간과 제도적 행위자들에 의해 상징적으로 의미 부여되고 해석되는 문화적이고 집단적인 사건”(95)이다. 즉 고통은 “연대를 촉발하고, 사고를 ‘사회적 사건’으로 정의하며, 사회를 재구성하려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우리의’고통이 된다. 백선우의 말처럼 고통의 원인이 사회적이라는 점에서 고통은 사회적일 수 있지만 이 사실이 우리와 고통의 얽힘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렇게 외상을 사회적 구성의 대상으로 이해하면 “외상과 재난을 좀 더 종합적이고 정치적이며 공적인 문제로 접근할 수 있게 된다”(103). 이처럼 고통은 사회적 의미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외상’이 된다(110). 이처럼 외상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면 그것의 치유 역시 사회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현준의 말처럼 외상의 치유는 “이 외상을 야기한 사회 자체를 바꿔 나가야 할 과제와 연동”(107)되며, 여기에 재난의 정치가 있다.
이어지는 조지훈의 글, ‘10.29 이태원 참사에서 법적 책임의 정치적 확장’은 세 편의 탄핵 의견서를 중심으로 재난과 관련한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의 문제를 다룬다. 그가 법적 책임의 문제를 다루는 건 단지 고위공직자의 처벌만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법적 형식으로 다루기 위한 시도”이다. 분명 재난에 대한 책임도, 잘못도 있지만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공직자들을 우리는 그동안 숱하게 보았다. 재판관들은 대체로 이런 판결을 내린다. 이들이 잘못이 있긴 하지만 법으로 죄를 물을 만큼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라고. 이는 책임감을 가지고 재난을 수습해야 할 이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다. 조지훈은 이렇게 정부가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재난 참사에 대한 책임 전반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책임의 의미를 확장”하자고 주장한다. 정치적 책임을 법적 형식으로 다룬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이와 관련하여 조지훈이 검토하는 탄핵 의견서 —「생명권과 관련된 탄핵 의견서」—에서 아이리스 매리언 영의 ‘구조적 부정의’가 활용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조적 부정의란 “개별 행위자의 잘못이 아닌, 허용된 규칙·규범의 범위 안에서 집합적인 행위자와 제도가 상호작용한 결과로 나타”(133)나는 것이다. 아이리스 영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구조적 부정의에 초점을 맞추면서 법적 책임과 구분되는 정치적 책임을 개념화한다. 법적 책임 모델은 구조적인 문제를 특정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하여 더 넓은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적 책임과 구분되는 정치적 책임은 재난과 같은 사건에 대해 “공적인 자세를 취하고 거대한 해악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집단행동을 취하고자 노력”(아이리스 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권과 관련된 탄핵 의견서」는 아이리스 영의 구조적 부정의 개념에 동의하면서도 법적 책임 모델과 사회적 연결 모델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한 이분법은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분리시키는 시도로 이어져 법적 책임을 정치적 책임으로 물을 여지를 만들지 못한다. 따라서 의견서는 법적 책임의 근거를 개인의 행위로 삼는 것을 넘어서, 정책적 결정을 법적 책임의 근거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즉 행위 차원과 구분되는 결과 책임을 근거로 해야 법적 책임을 정치적 책임의 차원에서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134).
구조적 부정의 개념은 사회구조적 원인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타당하지만 책임자의 면피 논리로 활용될 수 있다. 조지훈은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법적 책임을 정치적 책임과 개념적으로 분리할 것이 아니라 연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법적 형식으로 물을 수 있어야 국가에 생명권 보호 의무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을 이어지는 전주희의 글과 함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어지는 장은 전주희가 쓴 ‘10.29 이태원, 재난은 어떻게 서사화되었나’이다. 재난에서 서사의 문제는 중요한데 그것이 우리가 재난을 이해하는 틀을 이루기 때문이다. 앞서 살핀 것처럼 재난이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구성의 대상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서사의 문제는 쉬이 넘길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서사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재난의 고통은 개인의 심리가 될 수도 있고 우리의 외상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그래서 재난을 둘러싼 서사는 (이미 김현준이 상기시킨 바와 같이) 상이한 가치들이 경합하는 장을 이룬다. 전주희는 이태원 참사의 초기 서사화 과정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놀다가 죽었다’는 서사. 이는 재난을 우발적인 사고로 정리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면제한다. 둘째, 애도의 의료화. “전 국민의 트라우마를 관리해야 한다”는 심리 전문가 집단의 주장은 애도를 ‘심리치료’의 문제로 환원하여 ‘재난의 정치’를 소거하고 역시 국가의 책임을 면제한다. 셋째, 재난의 자연화. 이는 ‘주최자 없는 행사’라는 이유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참사를 ‘자연적인’일로 구성하며 역시 국가의 책임을 면제한다. 국가는 책임을 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처럼 진상규명의 요구를 정권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이에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경우, 국가는 매우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폭력을 재난 피해자에게 가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재난의 피해와 가해의 위치를 역전시킨다”(166).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를 구하고자 하는 국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계속 제도 바깥에 내던져진 상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대항적인 재난서사”(166)가 필요하다. 이는 국가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 전주희는 “안전에 대한 책임을 국가에 모두 위임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기에 “안전을 민주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84). 물론 국가의 책임을 물어야하겠지만 국가가 책임지라는 것이 국가가 알아서 하라는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국가권력의 강화와 억압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다. 안전의 민주화가 중요한 이유다. 대항적인 재난서사는 또한 재난을 ‘적’으로 설정하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 이 책의 제목이 ‘재난 없는 사회’가 아니라 ‘재난 이후, 사회’인 이유다.
안전한 사회는 ‘재난 없는 사회’가 아니라 ‘재난 이후 사회’를 전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 재난을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이며 일탈적인 사고로 규정하는 방식은 재난과 안전이라는 의제를 삶에서 멀어지게 하고 그 정치적 역량을 축소한다. 산업 현장에서 일반화된 ‘무재해 운동’이 산업재해를 줄이는 대신 산재 은폐를 부추겼음을 기억해야 한다. 재난 이후에 운동을 지속하는 이유를 무시한 채 의미 없이 되풀이하는 ‘안전사회’라는 말은 기업의 ‘무재해 운동’만큼이나 공허하고 해악적이다(185).
재난을 이례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는 관점에서는 재난 이후의 운동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재난을 사회 외부의 이례적인 사건 혹은 적으로 설정하면 재난을 만든 사회는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문제화해야 하는 건 재난 자체라기보다 재난을 만든 사회다. 그러나 ‘재난을 만든 사회’자체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인격화된 재난 제조자를 찾는다. ‘세월호 선장’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재난서사는 “재난에 대해 더 광범위한 설명을 구성하고 말하고 전달해야 하는 책임성에서 손쉽게”(171) 우리를 면책시킨다. 즉 우리가 재난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우리의 책임과 의무는 무엇인지, ‘재난을 만든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 우리는 어떻게 연루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논의는 앞서 조지훈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가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강조가 오히려 책임자의 면피 논리로 활용되는 것을 우려하며 정치적 책임을 법적 형식으로 물으려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구조적 부정의를 문제삼아야 하지만 이럴 경우 고위공직자의 책임을 물을 수 없고 특정 개인에 책임을 전가하면 구조적 부정의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우리는 손쉽게 어느 하나를 택하기보다 조지훈과 전주희의 글을 따라가면서 보다 세밀한 논지를 쌓아갈 필요가 있다. 전자가 법적 논리를 내세우며 정치적 책임을 벗어던지려는 국가 권력자들에게 다시 책임을 묻는 시도라면, 후자는 국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안전사회를 이루는 충분한 조건이 될 수는 없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이 둘은 재난에 대한 상호보완적인 접근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전자가 재난에 대한 공적인 문제를 다룬다면 후자는 공통적인 접근을 취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제 마지막 글로 넘어가자. 전주희가 쓴 마지막 글, ‘피해당사자의 권리로부터 모두의 안전권을’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고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앞서 이야기한대로) 사회 혹은 제도 바깥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가령 유가족은 “‘유가족’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시민으로서 온전한 자격이 훼손되었다(190-1)”. ‘국가가 없다’는 수사가 세월호 참사에서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 부재는 일반 시민이 아니라 “철저하게 재난 피해자만이”(195) 경험하는 사태다. 그러면 왜 재난은 피해자와 유가족을 배제하는 기제로 작동하는가? 전주희는 이를 국가가 위기관리 능력이 취약할 때 발생하는 상황으로 해석한다. 일반적으로 재난은 (전쟁이 그렇듯) 국가 권력을 재활성화하는 기회가 되지만, “위기관리 능력이 취약한 경우, 재난이 정권의 위기로 손쉽게 전화하므로 국가는 재난을 축소·부인·왜곡·억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려고 한다. 재난 피해자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받는 경우는 이 지점이다”(199-200). 그에 따라 “국가는 재난 피해자를 대표하는 대신 자기 자신을 대리하며 재난 피해자의 위치를 탈취한다”(200). 이를 통해 우리는 10년 전 4월 16일 이후 품었던 의문 중 하나에 대한 답을 얻는다. 국가는 왜 사고를 해결하려하기보다 사고에 대처하는 자신의 모습을 부풀리는데 힘썼는지, 왜 수면 아래에 있는 생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데 더 시급했는지 같은 질문 말이다. 그것은 국가에게 ‘피해자’는 무엇보다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이 취약하다는 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안전에 대비할 국가 능력의 강화가 필요한 걸까? 그렇지 않다. “현행 헌법상 안전 개념이 주로 ‘국가 안전’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209) 상황에서 안전 능력의 강화는 ‘국가 안전’ = ‘국민 안전’이라는 도식을 통해 압제의 정당화로 이어지기 쉽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시 안전의 민주화일 것이다.
… 안전권이 부재한 현실에서 안전권을 실천하는 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 대항적 생명정치 운동과 결합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세월호 참사 안에서 안전권이 부재한 상태로 안전권을 구현할 수밖에 없으며, 언제나 이태원 참사 안에서 신자유주의 안전권력에 대항하는 생명정치를 발명해 낼 수밖에 없다(219, 강조는 원저자).
“안에서”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안전권은 초역사적이고 탈정세적인 보편적 안전이 아니라, …연대와 협력 속에서 대안적 ‘안전이념’과 함께 구성되는 안전권이어야 한다”(219)는 것이다. 재난 ‘이후’이어지는 운동 속에서 재난의 고통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면서 아래로부터의 안전을 구성할 때 안전은 단지 목숨의 보전이 아니라 “인간 존엄성”을 갖춘 살 가치가 있는 삶을 만드는 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엮는 고리, 즉 ‘제도가 멈추는 지점’에 대해 생각해보자. 정정훈은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특징에서 “국가의 통계적 정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버려지는 인구”(43)를 발견한다. 이들은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두는’생명권력의 작동에서 후자에 해당하는, 즉 제도 바깥에 있는 자들이다. 백선우는 사회적 고통이, “기존의 사회적 인정 질서가 특정 주체들을 포함하는 데 실패하는 곳에서 발생한다”(85)고 지적하면서 인정 질서 바깥에 있는 이들을 발견한다. 김현준 역시 우리가 재난을 사회적으로 의미화하지 않을 때 ‘우리’바깥에 놓이게 되는 이들의 개별화되고 자연화되는 고통을 지적한다. 조지훈과 전주희 역시 바깥의 존재를 다룬다. 이 바깥에 있는 자들은 물론 이 책의 맥락에서 재난 희생자와 유가족들이다. 이들 앞에서 제도가 멈춘다는 것은, 특히 재난 이후에 운동을 이어가는 이들이 제도 바깥에 놓인다는 것은 재난이 이례적이거나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의 메커니즘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정규직/비정규직, 남/여, 국민/난민, 인간/비인간, 서울/지방, 도시/시골 ... 한없이 늘어놓을 수 있는 이 길다란 이분법의 행렬에 일상/재난의 항목 또한 놓여 있다. 이는 재난 이후의 운동이 어떻게 다른 많은 사회 운동과 함께 할 수 있는지, 이 책의 저자들이 재난 ‘전문가’가 아님에도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수 있고 쓰게 되었는지, 왜 계속해서 신자유주의와 안전을 연결하는지, 그래서 결국 왜 우리는 재난에 대한 이야기를 그 ‘이후에도’들어야하는지 알려준다. 그 이야기가, 각기 다양한 이분법에 놓인 우리들이 후자에서 전자로 달아나지 않고 후자에 남아 서로를 확인하고 함께 하도록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조지훈과 전주희의 글에 등장하는 법 바깥에 있지만 상이한 방식으로 자리한 자들을 살펴보자. 고위공직자의 책임을 법적으로 물을 수 없다는 건 그들이 어떤 의미에서 법 바깥에 있음을 뜻한다. 다른 한편으로 유가족들이 시민권을 일정 정도 박탈당한다는 것은 이들 역시 법 바깥에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들이 법 바깥에서 획득하는 지위는 다르다. 고위공직자들이 법 바깥에서 초월적 지위를 획득한다면 유가족들은 법 바깥에서 ‘벌거벗은 생명’이 된다. 이러한 법(과 제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책임자를 자유롭게 하고 피해자를 배제하는 법은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가. 이런 걸 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아니면 법이란 원래 이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것이 어떤 상황에서 비롯되는지 이미 살펴보았다.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 위기관리능력의 취약함 ―아니 부재라고 해도 좋을 ―이 그것이었다. 이는 또 우리가 본 것처럼 재난의 민주화를, 안전의 아래로부터의 구성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한 토대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다시 책장을 앞으로 넘기면 우리는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대안학교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충분한 애도의 경험을 가질 수 있었던 십대의 쏠과 고립되고 고단한 비정규직의 경진”이 “다른 재난을 경험”했다는 사실(12). 전주희의 말처럼 “애도는 이야기가 “혼합”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14). 달리 말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이야기를 혼합할 관계가 있어야 한다. 고립되어 있을 때 우리는 “고립되고 고단한 비정규직의 경진”처럼 참사로부터 “멀리 달아나고”싶을지도 모른다.
2015년, 2014년으로부터 1년이 지나 나는 <#세월호잊지마세요> 챌린지를 하며 이런 글을 올렸다.
[세월호에 대해] 어떤 말도 하기 어려운 건, 관련 기사를 보며 울컥하고 수취인을 알 수 없는 화를 내다가, 태연하게 다른 일을 하다, 또 다른 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하는 나의 머리 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나도 작년[2014년] 4월 이후 어떤 부채감만은 새겨놓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 날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이유입니다. 그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함께 따라오는 부채감만은 앞으로도 잊지 않으려 합니다(페이스북, 2015.4.18)
이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공통의 삶을 만들려면, ‘재난 이후’의 애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적어도 “멀리 달아나”지 않기 위해서는 부채감을 나누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