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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Project/희대의 노동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현대제철의 징벌적 자율규제

by 인-무브 2025. 3. 5.

현대제철_인권실태_보고서_최종_2501표지포함.pdf
3.40MB

 

 

현대제철노동자 인권실태조사보고서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현대제철 노동자는 안전해졌나? 

-징벌적 자율규제의 실태와 문제

 

 

이번 인권실태조사의 목적은 산재사고의 탓을 노동자 개인들에게 돌리는 문제의 실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이 느끼는 현장의 위험과 위험 관리의 어려움을 질문하고, 무재해 운동부터 이어지는 소위 자율규제를 경험한 노동자들의 시선을 살폈다. 현대제철의 안전 조직 문화가 어떻게 노동자 개인과 집단의 조직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 과정에서 산재 은폐가 이루어지는 기전은 무엇인지, 그 과정의 크기와 강도가 비정규직에서는 어떻게 차별적으로 드러나는지 조사를 통해 확인하고자 했다.

20241230일 사전 면접조사, 2025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의 본 면접조사 동안, 8명의 노동시민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11명의 정규직 노동자와 13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여성노동자 2명 포함)를 만났다.

 

현대제철노동자 인권실태조사단
기선(인권운동공간 활), 김동현(희망을만드는법), 김은진(민변 노동위), 예진(김용균재단), 전주희(서교인문사회연구실), 정우준(개인), 조혜연(김용균재단), 최홍조(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2024년 12월 12일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일산화탄소 중독. 사망한 노동자는 밀폐된 실내 공간이 아닌 탁 트인 야외에서 발견되었다.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하자 회사는 고인의 안전지침 준수 여부에 대한 의혹을 가장 먼저 제기했다. 마스크를 착용했는지, 가스 감지기를 착용했는지, 왜 혼자 작업을 했는지...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노동자들은 실태조사 과정에서 과거 무재해 운동의 슬픈 경험을 고백했다. 산재사고를 당하고도 동료의 눈치를 봐야 했던 과거의 경험, 포상금을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동료 관계의 뒤틀어짐에 아파한 마음, 무재해 달성을 위해 뒷전으로 내몰린 현장의 안전과 노동자의 건강을 마주한 고통이 모두의 마음에 각인되었다. 무재해 운동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 선 10대 안전수칙(Safety Core Rules: SCR)과 소규모 안전활동 인증제는 안전수칙 준수와 사업장 위험 개선이라는 명분 뒤에 산재사고를 당한 노동자를 징계하고, 산재은폐가 자연스러운 문화를 조장하는 악마와 같은 결과가 숨겨 놓았다.

산재를 예방하고, 사고를 줄이기 위한 기업의 책임을 강조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다. 이를 평가하는 국회 토론회에서 제시된 여러 쟁점은 지금 왜 우리가 ‘노동자 개인의 책임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국회 토론회에서 매일노동뉴스 홍준표 기자는 그간의 중대재해처벌법 수사·기소·재판 현황 분석에서 ‘피해자의 위험한 작업방식 선택’이 양형 사유로 제시되는 문제를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주요 관점은 기업과 경영책임자의 처벌에 더하여 사전예방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자율적)구축에 있다. 자율규제의 이론적 배경에는 안전 관리를 위한 조직 체계의 구성 및 운영, 경영자의 책임과 역할 확대, 노동자의 참여 강화가 모두 포함된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자의 참여 강화는 강압적 동원에 의한 참여가 아니다. 노동조합이 주체가 되어 문제 제기와 해결의 통제 권력을 가진 상태의 참여를 의미한다.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의 노동자 참여와 권한강화(임파워먼트)가 자율적 규제에서 언급하는 노동자의 참여다.
우리는 인권실태조사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에서 말하는 ‘자율규제’가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10대 안전수칙이나 소규모 안전활동 인증제가 아님을 밝히고자 한다. ‘자율규제’의 진정한 의미는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을 기업이 지고, 노동자는 권한 강화를 통해 자율적으로 현장 통제에 참여하는 활동이다. 하지만 현대제철의 노동자에게 자율규제란 안전을 위한 노동자의 의견 개진이 동료 노동자를 징계하는 ‘칼이 돼서 돌아온’ 경험이었다. 우리는 이번 조사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와 ‘자율’을 빙자한 ‘노동자 개인의 책임화’ 전략이 산재사고 발생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보고서 서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