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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Translation/트랜스레이팅 페미니즘

<낯선 여자>: 1920년대 보통의 ‘새로운 여성’들, 그것을 재단하는 남성적 시선

by 인-무브 2026. 5. 16.

<낯선 여자>: 1920년대 보통의 ‘새로운 여성’들, 그것을 재단하는 남성적 시선

장은재

 

리디야 니콜라예브나 세이풀리나(Лидия Николаевна Сейфуллина)(1889-1954) 1920-1930년대 소비에트 러시아의 대표 작가이다. 1922년 소설 <네 개의 장>(Четыре главы)으로 등단했으며, 같은 해 소비에트 초기 부랑아 문제를 다룬 <소년범들>(Правонарушители)을 발표한 후 곧바로 유명세를 얻었다. 대표작 <비리네야>(Виринея) 발표 이후에는 소비에트 고전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작품 활동 초기에는 시베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20년대 중반 이후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주로 러시아 혁명 직후 농촌의 혼란스러운 풍경, 여성 혁명가의 탄생 과정 등을 그린다. 

 

소비에트 시기에는 고전 작가로 평가되며 수차례 전집이 발간되고 연구와 비평이 활발히 이뤄졌지만, 1990년대 이후 소비에트 공식문학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줄어듦에 따라 한동안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20세기 초 러시아 여성문학 연구에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다.

 

그림  1 .  리디야   니콜라예브나   세이풀리나 (Л. Н. Сейфуллина).

 

<낯선 여자>는 세이풀리나가 1920년대에 발표한 것으로 알려진 짧은 소설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이지만, 혁명 직후 평범한 여성들이 새로운 여성상을 서둘러 내면화하는 모습을 일상적인 풍경 위에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이러한 여성을 재단하려는 남성적 시선을 꼬집는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충만한 젊음을 한껏 누리며 살아가는 청년 바샤가 뜬금없이 연인 논나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이야기는 바샤의 시점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서 속물이라고 떠들어댈 때에도 그녀를 비호해 줬건만, 정작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싶다는 이유로 생판 모르는 남자와 함께 떠나버린다.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논나의 선택과 갈망에는 당대 여성들의 시대적 이상이 반영되어 있다. 비록 투박한 상태이지만 말이다. 바로 새로운(소비에트적) 여성에 대한 이상이다.

 

그것은 당시 소련 지도층이 주력하고 있던 새로운 인간 프로젝트의 맥락 속에 있었다. 1917,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표방하며 성립된 소비에트 러시아는 단순히 정치적 혁명에만 머무르고자 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이념에 기반한 완전히 새로운 인간을 탄생시키는 것, 그들의 주도 하에 언젠가 도래할 공산주의, 이것이 혁명 직후 소비에트의 최종적 과제였다. 소비에트 지도부는 이 새로운 인간에는 여성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며, 새로운 여성이라는 이상을 내세웠다.  새로운 여성은 다음과 같은 자질을 가진다.[1] 공산주의에 대한 사랑, 그것을 위해 투쟁할 준비, 혁명적 정신, 변혁과 진취적 활동에 참여하려는 갈망, 노동 규율, 박학다식함과 지식, 정의로움과 완전무결한 정직함, 집단주의의 정신“.[2]

 
그림 2. 이반 샤긴(Иван Шагин), ‘붉은 광장의 선수 행렬’(1936).

오랫동안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받던 여성들이 혁명과 함께 새로운 세계 건설의 주체로 호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블라디미르 레닌,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등 맑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중심이 되었던 191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의 소비에트 지도부는 이 새로운 여성을 탄생시킬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전 세계 역사에서 이례적일 정도로 단기간 내에 급진적인 여성해방 정책을 펼친다.[3] 소비에트 지도층은 이러한 조처를 통해 여성이 자본주의에 뿌리를 둔 가부장제로부터 해방됨으로써, ‘새로운 여성이 되어 남성과 구별되지 않고 사회주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소련 정부는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새로운 여성의 모습을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수많은 선전 포스터들이 그려지고, 문학과 영화 등의 대중문화를 통해 이 형상은 확산된다. 

 
그림  3   선전   포스터 ( 창작년도   미상 )(“ 여성   노동자여 ,  사회주의   건설의   선봉에   서라 ”) / 그림 4 선전 포스터(1924) (“불멸의 10월 혁명 지도자 레닌은 우리에게 승리의 길을 보여주었다. 레닌주의 만세. 10월 혁명 승리 7주년을 기념하여”)

 

<낯선 여자> 속 바샤와 논나의 대화는 바로 이 시대적 풍경 위에서 펼쳐진다. 1920년대 자국 항공기 발명의 열풍과 함께 비행 학교가 급격히 늘어난 맥락 위에서, 두 주인공은 함께 비행 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그려진다. 실제로 1920년대 후반부터 소련 정부는 여성 파일럿 양성을 장려하기 시작하고, 이 시기 소련 최초의 여성 파일럿 지나이다 코코리나(З. П. Кокорина)를 필두로 여성 파일럿들이 등장한다. 소설 속 논나와 바샤는 파일럿 양성 캠프에서 만나 교제를 하며, 거리낌 없이 길거리에서 만남을 가진다. 이미 혁명 직후부터 남녀 공학제가 도입되었던 풍경, 청년들의 교제가 이전 세대에 비해 자유로워진 풍경이 반영되어 있다. 배우가 되겠다며 남쪽으로 떠난 논나의 행보 역시 크림 반도에 위치한 얄타가 1910년대 말부터 소비에트 영화 제작의 중심지 중 한 곳으로 부상하던 맥락과 관련된다. 

 

그림  5 .  소련 최초의 여성 파일럿 지나이다 페트로브나 코코리나(З. П. Кокорина)(좌)와 그녀를 가르쳤던 보리스 알렉산드로비치 투르잔스키(Б. А. Туржанский)(우)
 

논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고 여자들에겐 다른 힘이 생기게 되지. , 사람들이 그걸 얼마나 높이 치는지! , 물론, 이 힘은 내가 가진 아름다움보다 높은 무언가야. 이제는 아주 많은 여자들이 자신의 노력, 재능, 뛰어난 낙하산 점프, 학업적 성취로 명성을 얻고 있어. (…) 나는 그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아!  여성들의 사회 진출 통로가 급격히 늘어난 이 시기, '새로운 여성'에 대한 논나의 동경이 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논나의 결정에는 확실히 못 미더운 데가 있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교제하던 연인을 떠나 생판 남과 마찬가지인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말하는 논나, 그녀의 말은 순수할 정도로 솔직하다는 점에서 사랑스러운 구석도 있지만, 신중하다고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다. 자신의 원래 이름을 버리고 '논나'라는 이름을 택한 것도 어딘가 유치하고 피상적인 행동처럼 묘사된다. 

 

게다가 새로운 여성의 이상을 좇고자 하는 그녀의 갈망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대립하고 있던 소위 허영스러운 부르주아적 갈망과 뒤섞여 있다. 그녀를 추동하는 것은 유명해지고 싶다는 열망이다. 그녀의 말 속에서 새로운 인간적인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녀의 열망은 집단적이지 않은 것을 넘어서, 혁명이 그토록 추방하고자 했던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에 바탕한다. 그녀가 좇는 새로운 여성이란 외적인 형태만 소비에트적인 새로운 것일 뿐, 그 동기는 새로운 여성의 담론에 완전히 대립되는 것이다. 

 

세상이 뒤바뀌고 과거와 전혀 다른 가치들이 새로이 부상하던 시기,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했던 새로운 시대는 과거와 혼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세이풀리나는 1920년대 초, 혁명을 막 겪은 직후 보통의 여성들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여성의 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고 그것을 꿈꾸지만, 기존의 세계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한 채 '새로운 여성'의 이상을 어설프게 내면화하는 여성들. 

 
그림  6   영화 '우리의 여인들'(Наши девушки)(1930) 속 장면.
 

그러나 세이풀리나는 논나같은 여성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논나를 우스꽝스럽게 그리지 않는다. 이 소설은 논나가 과연 누구의 시선 속에서 묘사되는가라는 중요한 문제를 가지며, 이것이 <낯선 여자>를 가장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이다.

 

논나가 가벼운 여자로 그려지는 것은 바샤의 시선 속에서다. 작품은 3인칭 시점을 취하고 있지만, 바샤의 심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바샤는 작품 속에서 논나를 묘사할 때 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논나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그에 대한 자신의 부정을 교차시킨다. 이러한 묘사 방식은 역설적으로 바샤 스스로가 논나에 대한 부정적 평가들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샤는 논나를 비호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다른 이들의 말을 전달함으로써 작품 속에서 논나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운다. “다른 많은 동지들처럼 그는 이 여자가 거만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실수였다. 남을 조금 깔보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는 분명히 어떤 우스운 지점도, 어리석은 지점도 없었다. , 나는 너를 지켜줬어. 물론 그럼으로써 스스로도 지켰지 사람들이 네가 속물이라고 말할 때 말이야.

 

논나가 거만하지 않고 속물이 아닌 여자이기를 바라는 마음 위에서, 바샤는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논나를 해석한다. 이때 바샤는 위로부터 내려다보는 시선 속에서 논나를 자신의 도덕적 프레임 속의 한 곳에 위치시킨다. 논나가 소설 속에서 어떤 인물로 정체화되는지는 바샤가 그녀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달려있다. 논나가 자신은 오히려 속물적인 사람이라고 고백할 때, 그녀는 바샤가 규정한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러자 논나는 바샤에게 낯선 여자가 된다. 바샤는 이제 논나를 비난한다. 더러운 것!” 그는 헤어질 때까지 논나를 평가하는 자리에 있다. 

 

바샤의 시선을 벗어난 논나에 대해 우리는 더이상 알 길이 없어진다. 그러나 세이풀리나는 작품 말미에서 독자로 하여금 바샤를 외부로부터 보게 만든다. 논나와 헤어진 후 그는 몇 주간 심하게 앓다가 회복한다. 이 회복은 아주 간단한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첫 도덕적 모욕의 그리도 쓴 맛을 겪고 난 뒤, 그는 원래의 환경 속에서 이전의 명랑하고 강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논나의 가벼움에 대해 그토록 절대적인 자리에서 평가하던 그 인물은 어디에 있는가? 그 모든 바샤 자신의 맨스플레인이 무색하게, 진짜 가벼운 인물은 누구였던가? 최종적인 화자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바샤의 한없는 가벼움을 인식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이뤄진 논나에 대한 바샤의 평가는 순식간에 의심을 받게 된다.

 

우리는 바샤의 시선 속에서 그려진 논나를 과연 믿을 수 있는가? 그는 논나의 어설픈 시대적 욕망을 비난할 만큼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는가? 이 모든 격변 속에서 논나가 겪어야 하는 혼란을 그는 조금이라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참고문헌

Н. Л. Малаховская. "Переконструирование гендерной ориентации женщин в СССР 1920 – 1930-х годов" Женщина модерна: Гендер в русской культуре 1890-х – 1930-х годов: Коллективная монография, М.: Новое литературное обозрение, 2022, С. 525-539.

Е.А. Шабатура. "Тендерный анализ образа «Новой женщины» в советской культуре 1920-х годов" Омский научный вестник, no. 6 (42), 2006, С. 192-196.

 

그림 1. https://litkarta.chelreglib.ru/persons/writers/sejfullina-lidiya-nikolaevna/

그림 2. https://moslenta.ru/lyudi/kulturnyi-kod/tekstilshica-prishla-i-bolshe-nikuda-ne-ukhodila-kakimi-byli-zhenshiny-1920-kh-i-pochemu-sovremennye-devushki-na-nikh-tak-pokhozhi.htm

그림 3. http://tehne.com/node/5905

그림 4. http://tehne.com/node/5905

그림 5 https://document.wikireading.ru/hV4MNskhet

그림6 https://www.imdb.com/title/tt0021174/mediaviewer/rm4098731521/?context=default



 

[1] 혁명 직후 새로운 인간은 어떠한 젠더 규정도 갖지 않는다. 실제로 새로운 인간의 이데올로기는 원칙적으로 안티 섹슈얼리즘(anti-sexualism)을 표방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라홉스카야(Н. Л. Малаховская)가 지적한 바, 사실상 성차를 지워버리자는 소비에트의 안티 섹슈얼리즘은 여성의 남성화만을 전제하고 있었으며, 그 반대는 부정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혁명 과정에서 여성의 성적 자질들이 부정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Н.Л. Малаховская. "Переконструирование гендерной ориентации женщин в СССР 1920 – 1930-х годов" Женщина модерна: Гендер в русской культуре 1890-х – 1930-х годов: Коллективная монография, М.: Новое литературное обозрение, 2022, С. 531.

[2] Е.А. Шабатура. "Тендерный анализ образа «Новой женщины» в советской культуре 1920-х годов" Омский научный вестник, no. 6 (42), 2006, С. 192-196.

[3] 여성 선거권 부여(1917), 세계 최초의 낙태 합법화(1920), 동일노동 동일 임금 정책, 유급 출산휴가 정책 등의 법적 개혁과 함께 무료 어린이집, 공공 식당의 설립 등 여성을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도록 가사 노동의 사회화가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