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 절대주의 {Punk Suprematism}
— 펑크, 네이션, 국가, 예술, 관료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에 관한 이론적 글들
{Theoretical Writings on Punk, Nation, State, Art, Bureaucracy, and Socialism}
라스트코 모치닉, 슬라보예 지젝, 조야 스쿠셰크 지음, 세즈긴 보이닉(엮음)
엄정후 옮김
옮긴이: [ ] 안에 표기된 글은 옮긴이가 삽입한 것입니다. 고유명사를 옮긴 경우, 별도의 언급이 없다면 슬로베니아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대안{alternative}이 집단적인 차원에서 대안 운동을 가리킬 때는 ‘대안 세력’으로 번역했습니다. 또 ‘펑크’는 단순히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펑크를 향유하는 사람들을 포괄하는 집단 차원의 의미일 때도 사용했습니다.
슬로베니아 대안/펑크 운동의 정치적·이론적 배경에 대해서는 Žižek and His Contemporaries: On the Emergence of the Slovenian Lacan의 1장 ‘What Was Going On in Ljubljana?’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슬로베니아라는 단위로 논해질 때의 ‘네이션’이라는 단어를 옮길 때,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네이션이라는 독특성을 유지하고자 다소 어색하더라도 원어의 발음을 그대로 표기했습니다. 슬로베니아인이라는 정체성을 논할 때 쓰인 ‘네이션’은 ‘국민’으로 옮겼습니다. 해당 논의에 대해서는 진태원의 논문 「어떤 상상의 공동체? 민족, 국민 그리고 그 너머」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펑크 절대주의』는 펑크 연구 총서{Punk Research Series}의 첫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번에 번역한 서문 외에도 『펑크 절대주의』에 수록된 모든 글을 번역해 나갈 계획입니다.
총서 소개문: 펑크 연구 총서는 펑크를 단절로 보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부르주아 문화와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서의 펑크이다. 펑크는 가장 정확하고 직접적이며, 선언적 표현을 갖춘 청년 대중문화 내부의 급진적 제스처이다. 우리가 작업하고 있는 가설은 펑크가 학습과 부정을, 변증법과 거부를, 폭력성과 평등주의를, 부정성과 공동체를, 사나움과 집단성을 결합하는 표현이자 형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이론 내의 개념, 조직의 구조, 실험 예술의 형식을 포함한 우리 문화의 모든 것을 재구축했다. 이 총서를 통해 우리는 펑크 효과를, 특히 그것의 국제주의적이고 명시적인 정치적 변주에 주목하면서 포착하고자 한다. (이하 생략)

펑크의 추가적 요소
{The Additional Element of Punk}
세즈닉 보이닉
여기 1980년대 초반 유고슬라비아의 류블랴나에서 출간되어 처음으로 영역되는 세 편의 이론적 글이 있다. 이 세 글은 모두 이데올로기, 네이션, 대중문화{mass culture}[1] 그리고 현대 미술에 대해 다루며, 모두 펑크의 영향 아래 쓰였다.
첫 번째 글인 「합리성이 승리한다」{Reason Wins}는 명성 있는 철학자이자 활동가인 라스트코 모치닉이 쓴 것으로, 1985년 류블랴나에서 발행된 『슬로베니아인들의 펑크』{Punk Under the Slovens}에 실린 글이다. 혁명(적) 이론 총서{Library of Revolutionary Theory, KRT} 중 하나로 3000부가 발행된 『슬로베니아인들의 펑크』는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이 책은 당시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에 대한 저서[2]로 가장 잘 알려진 사회학자 토마시 마스트나크가 공동 편집한 책으로, 현재 그는 초기 유럽인 정체성의 형성에 대한 연구자로 명성이 높다. 이 책은 당시 무수한 공적 논쟁과 정치적 강령의 주제였던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펑크 운동과 관련된 여러 글, 기록, 인터뷰, 구술 자료 그리고 성명서를 담고 있다.
「합리성이 승리한다」라는 글을 쓰도록 청탁받은 모치닉은 글을 쓸 당시인 1984년 사회학 교수였다. 그는 이미 문학 이론, 이데올로기적 구성체, 알튀세르의 철학, 역사유물론적 기호학에 관한 수많은 글을 쓴 바가 있었고, 당시 시급하게 논의되던 사회주의 국가 내부의 민중 문화{popular culture}, 교육 그리고 형법에 대한 논쟁에 관한 이론적 논평을 발표한 바 있었다. 펑크에 관해 쓴 글 또한 이러한 이론적 개입 중 하나로, 펑크라는 대중문화의 전례 없는 이데올로기적 효과에 대해 논한다.
모치닉의 글 다음에 오는 글은 슬라보예 지젝의 것으로, 그의 글은 많은 영어 독자에게 알려져 있으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당시의 지적·이론적 작업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가 여기에 실은 글이 지젝이 펑크에 관해 쓴 유일한 글이 아니다. 그는 라이바흐{Laibach}[독일어로 류블랴나]와 노이에 슬로베니셰 쿤스트{Neue Slowenische Kunst, NSK}[독일어로 새로운 슬로베니아 예술]에 대해 논하는 수많은 글을 썼다. 라이바흐는 예술 집단 노이에 슬로베니셰 쿤스트에 속해 있던 인더스트리얼 펑크 밴드로, 이 예술 집단의 작업은 많은 이론적 추측의 주제였다.
여기에 실린 지젝의 글의 제목은 「펑크의 이데올로기적 전제라는 주제에 관한 몇 가지 단상」{A Few Thoughts About the Issue of the Ideological Presuppositions of Punk}으로, 《프로블레미》{Problemi}[문제들]에 1984년 실린 글이다. 이 텍스트 자체는 슬로베니아인들의 정체성 구성이라는 더 광범위한 연구 주제의 한 부분으로, 자주 관리에 관한 연구에 초점을 맞춘 글의 초기 판본이 사회학 연구소를 통해 1983년에 공개된 바 있다. 그것은 “정체성의 구성 과정에서 무의식적 환상이 차지하는 역할”의 연구에 관한 초기 작업으로, 그의 첫 영어권 베스트셀러,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정점에 이르며, 이는 심오한 이데올로기적 작동에 관해 다룰 때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도구가 지닌 것으로 여겨지는 한계를 라캉의 개념을 통해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는 아이디어를 더 멀리까지 밀고 나간 것이었다. 펑크는 새로운 심리-정치적 영역의 진입점이었다. 지젝이 이 주제에 대해 다룬 초기 텍스트인 「이데올로기, 냉소주의, 펑크」{Ideology, Cynicism, Punk}는 정신분석학을 통해 철학을 다루는 논선집에 실려 1983년 출간되었다.
「펑크의 이데올로기적 전제」는 《프로블레미》에 실렸는데, 《프로블레미》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시절 존재하던 잡지 중 가장 급진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잡지 중 하나였다. 모치닉과 지젝은 이 잡지의 편집인이었다. 이 잡지에는 구체시{concrete poetry}(1968년과 1971년의 모든 호는 “예술가-잡지”{artisit-magazines}라는 특별 호 형식으로 출간되어, 그 호에는 실험시만 실리기도 했다), 정치, 문학 그리고 이론적 논의(특히 라캉과 알튀세르의 이론에 대해 다루었는데, 이는 훗날 류블랴나 정신분석학파[한국에는 슬로베니아 학파라는 이름으로 알려진]의 두드러진 특징이 되었다)가 실렸다. 1981년부터 1983년까지, 《프로블레미》는 《펑크 프로블레미》라는 이름으로 대체된 세 권의 특별 호를 발간했다. 첫 《펑크 프로블레미》는 1981년에 발간되었는데(205-206호), 이 호의 서문에서는 라캉의 영향을 받은 정통 프로이트주의의 입장에 근거해 “증상으로서의 펑크”의 이론적 뼈대를 간단하게 다룬다. 그리고 사회와 이데올로기의 부재하면서도 근본적인 특징을 펑크를 통해 독해해 내고자 한다. 이는 당시 《프로블레미》의 편집인이었던 지젝에 의해 쓰인 글이었다. 같은 호의 나머지 지면은 펑크 가사, 이미지, 성명서 등에 할애되어 있었는데, 달리 말해, 앞서 언급한 이론적 서론[지젝의 글]에서 증상에 대해 논한 후, 나머지 지면에서는 증상 그 자체가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것이다. 1982년 발간된 《펑크 프로블레미》의 2호(221호)에서는, 그들이 펑크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을 약간 바꿔서, 펑크 운동에 대한 적대를 드러냈는데, 여기에는 특히 그들의 “나쁜” 파벌을 보여주는 것을 포함한다. 이 파벌은 하드코어 부류인데, 이들은 당시 펑크 씬을 그들의 빠르고, 맹렬하고 비타협적인 에너지로 휩쓸었다. 2호의 서문은 믈라덴 돌라르가 썼는데, 그는 파시즘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연구한 사람이고, 오늘날에는 라캉적-형식주의에 기반해 히치콕, 오페라, 목소리 그리고 민중 문화를 독해하는 것에 권위를 가지고 있다. 펑크의 자기 재현에 대한 배경을 제공해 주는 이 짧은 두 이론적 글[지젝과 돌라르의 서문]은 모두 더 넓은 이론적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이 책에 부록으로 번역되어 실려 있다.
모치닉과 지젝의 에세이 다음 글은 조야 스쿠셰크의 「마침 터키인이 나타났다…」{Along Came Turk…}로, 1981년 리예카에서 발간된《도메티》{Dometi}[세르보크로아트어로 목표를 의미]에서 세르보크로아트어로 실린 판본을 영어로 옮긴 것이다. 이 에세이는 펑크에 대해서 일절 언급하지 않으므로, 이 책에 실린 이유에 대해 정당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스쿠셰크의 에세이는 알튀세르주의적으로 미학에 대해 다루는 글들을 슬로베니아어로 번역한 논선집[3]—그가 편집한—에 그가 쓴 긴 서문을 수정한 것이다. 여기에는 알튀세르의 것 외에도 에티엔 발리바르, 피에르 마슈레 그리고 미셸 폐쇠의 글이 실려있는데, 책이 나올 당시에는 영어권 학자들에게조차 낯선 이들이었다. 이 서문의 두 번째 부분(이 역시 책에 번역되어 있는데)은 내셔널리즘에 대해, 특히 예술과 문학의 형식을 통해 슬로베니아인 정체성이라는 국민의 구성을 다룬다. 스쿠셰크 글의 주제는 이 [국민] 구성의 구체적인 역사적·정치적 상황의 물질성을 추적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우리가 이 글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미학적 이데올로기에 관한 복잡한 알튀세르주의적 이론을 슬로베니아라는 네이션의 구성에 적용하는 것이다. 내가 틀리지 않다면, 이번이 스쿠셰크의 글이 최초로 영역되는 것이다. 큰 영향력을 얻은 알튀세르에 관한 논선집을 편집하고 번역한 것 외에도, 스쿠셰크는 스펙터클로 기능하는 극장에 관한 책[4]을 쓴 바 있고, 큰 영향력을 지닌 출판사 Založba /*cf.[Založba는 세르보크로아트어로 출판사라는 의미이고, cf.는 참조의 의미이다. 이는 모든 텍스트의 상호연결성과 불완전성을 의미한다고 한다[5]]의 공동 설립자이자 번역가와 편집자로 활동했으며, 많은 페미니즘 조직의 활동가이기도 했다. 여전히, 그의 선구적인 이론적 작업은 탐구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스쿠셰크는 모순에 의한 과잉결정이라는 복잡한 알튀세르주의적 이론을 신문 토픽의 사소한 주제에 적용한다. 예를 들어, 극도로 피곤해하는 터키인 룸펜-프롤레타리아트 ‘이주노동자’{Gastarbeiter}가, 아나톨리아 어딘가에 있는 그의 고향으로 가던 와중 유고슬라비아의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내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 터키인—위협적인 존재이며, 적대시되는 대상인—은 슬로베니아 국민 문학 정전{national canon}이 지니는 증상의 핵심인 것으로 드러난다. 터키인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이 익명의 이주노동자는 대타자의 환상{phantasm of the Other}으로 규정되며, 이는 국민 문학의 미학적 형식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터키인은 슬로베니아인의 타자이며, 국민 문학의 악의 환상{phantasm of evil}이고, 국민주의적 언어 이데올로기 문제의 핵심{core matter}(가장 실체적인)이기도 하다. 스쿠셰크의 글은 충돌과 함께, 파괴, 죽음 그리고 절멸과 함께 시작되지만, 산재해 있는 이질적인 국민적 적대의 양상들을 통합할 수 있는 이론적 모델을 제시한다. 터키인—대타자—은 모든 슬로베니아인을 통합하는 “핵심”이고, 이것이 모든 국민과 국민성의 평등함이 헌법에 따라 보장되는(유고슬라비아에 사는 터키인의 국민성의 문화적 권리를 포함해)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스쿠셰크는 이 불공평함에 주목하며 이를 자주 관리형 사회주의의 동시대 현실 속에 남아 있는 고대의 잔여물{archaic remnant}이라 논한다. 그는 이 고대의 요소가 계급 관계에 의해 매개되며, 부르주아 시민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장치에 닻을 내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스쿠셰크의 주된 논지는 사회주의적 근대성이 터키인에 대한 전근대적 형상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환상의 잔여물을 대면했을 때 드러나는 그 연쇄의 약한 고리{weak link}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 형상은, 분명히 말하자면, 자연적이고 민속적인 잔여물이 아니다. 이는 가장 엘리트주의적인 문학계와 지식인 집단에 의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된 것이다. 마치 슬로베니아인에게 있다고 상정된 무의식 속으로 용해되어 있는 터키인은, [슬로베니아의] 네이션 형태{nation-form}의 영도{degree zero}이며, 계급 의식과 역사 의식 모두를 뛰어넘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스쿠셰크는 이 터키인의 [형상을] 구체화하고, 그것과 부르주아 문학의 “시적 보충몰” 사이의 연관을 비워낼 수 있는 유물론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민 정체성의 지속적인 이데올로기적 재생산이 전개되는 것에 맞서는 것이다.
터키인과 펑크 모두 더 거대한 것의 증상이다. 그러나 각각의 효과는 정반대의 서로 다른 축을 기준으로 측정되어야 한다. 라캉주의자에게 펑크는 분산, 와해 그리고 왜곡의 증상이다. 반면 스쿠셰크에게 터키인은 현재 국민의 결합에 기여하는 조용하지만 강한 힘으로, 그 모순이 드러나도록 모순이 심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터키인은 결집시키고, 펑크는 분산시킨다. 여전히, 이는 스쿠셰크의 글이 이 논선집에 포함된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펑크와 터키인 사이의 비교를 가능하게 하고, 스쿠셰크의 글이 이 논선집에 포함되는 것을 정당화해 주는 이론적 근거는, 예술적 형식에 대한 유물론적이고 반-제도적인 접근 방식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이 펑크에 대한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개입을 활성화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실린 세 명의 저자—모치닉, 스쿠셰크 그리고 지젝—의 글은 강한 반-제도적 입장 그리고 아방가드르 형식에 대한 논의를 제시해 그들의 이론적 주장을 확장한다.
동시대 혁신의 실험적 성격을 강조하며, 이 글들은(특히 모치닉의 것) 펑크가 예술의 [기성 체제로의] 포섭{recuperation}과 [기존 사회의 단순한]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교착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치닉의 글—이 논선집의 이론적 뼈대인—은 담론에 곧바로 접근할 수 있는 진입점을 제공한다. “펑크-형식”과 “펑크-이론”에 대한 그의 분석은 펑크를 사회주의 내의 새로운 정치적 힘으로 논의하기 위한 하나의 구실을 제공한다. 적어도 이 점만큼은 주목할 만하다. 펑크를 분명한 정치적 맥락 위에 위치시키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이 둘은 분리될 수 없다. 모치닉이 하는 것은, 펑크에 대해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다. 그는 펑크를 통해 정치를 해석한다. 과연 펑크가 우리에게 자주 관리 사회주의, 교육 개혁의 막다른 길, 국가의 모순, 내셔널리즘 그리고 예술 형식의 자율성에 대해 무언가를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이는 지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펑크가 자주 관리의 모순의 깊은 트라우마적 중핵{kernel}을 읽어내는데 핵심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때마침 지젝의 펑크 연구는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자주 관리를 연구하는 기관의 자금을 통해 이루어졌다. 펑크의 정치성에 대한 접근법과 같은 이론적 참조점(라캉, 알튀세르, 분석 철학)의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모치닉과 지젝의 펑크의 유효성에 대한 결론은 사뭇 다르다.
1984년, 《펑크 프로블레미》가 편찬되었을 때, 슬로베니아와 유고슬라비아의 펑크는 하위문화들의 매우 복잡한 네트워크로 성장해 있었다. 하드코어가 당시 펑크의 새로운 선봉대{avant-garde}였고, 그들의 전례 없는 조직화 능력의 결과로, 그들은 “하드코어-집단”{hardkor-kolektiv}을 형성했다. 이미 1983년에, 오드파드키 치빌리자예{Odpadki Civilizacije}[문명의 폐기물], 오트로치 소치알리즈마{Otroci Socializma}[사회주의의 아이들], 스트레스 드르자브네가 아파라타{Stres Državnega Aparata}[국가장치의 스트레스], U.B.R.[이유 없는 반항자들]와 같은 오늘날 고전이 된 하드코어 펑크 밴드의 데뷔 앨범이 (주로 카세트로) 발매되었고, 비아 오펜지바{VIA Ofenziva}[공세], 오! 쿨트{O! Kult}[오! 컬트], 차오 피치케{Čao Pičke}[안녕, 년들아], 아빌둥겐 바리에테{Abbildungen Varieté}[독일어로 버라이어티 쇼], 보르게시아{Borghesia}[이탈리아어로 부르주아지] 그리고 라이바흐와 같은 실험적 포스트펑크 밴드와 인더스트얼 밴드의 데뷔 앨범이 발매되었다. 이는 모두 ŠKUC(학생 문화 센터)를 통해 발매되었고, 이곳은 개념 예술과 아방가르드 예술 전시, 게이·레즈비언 운동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시를 위한 공간이기도 했다. 이것과 함께, 새로운 대안 장소{venue}(디스코 스투덴트/디스코 에프베{Disco Študent/Disco FV}[전자는 학생들의 디스코라는 의미, 후자의 명칭은 당시 하위문화 조직이었던 FV 112/15에서 따온 것이고, 동일한 장소를 지칭한다. FV 112/15가 해당 장소의 운영을 맡으며 명칭이 변화했다], 시슈카 청년센터{Mladinski center Šiška}, 케르스니코바 4{Kersnikova 4}에서 각종 종류의 펑크가 공연되었다. 그 결과 1983년 말에 “알테르나티바란 무엇인가?”{What is Alternative?}라는 이름의 컨퍼런스가 개최되었다. 이는 ŠKUC가 조직한 것으로, RK ZSMS(슬로베니아 사회주의청년동맹 공화국회의)가 지원했다. 이틀간 진행된 행사에서, 펑크, 예술가, 활동가 그리고 학자들이 모여 언더그라운드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를 공동으로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알테르나티바”{alternativa}라는 개념을 영어로 완벽하게 옮기기는 어렵다. 이것은 단순히 대안이 아니라, 시민 사회의 대항 의사가 정치화되고 공적으로 표출된 집합체를 가리키며, 펑크는 여기에 초기의 동력을 제공했다. 적어도, 이것이 토마시 마스트나크가 그의 많은 글에서 정의하고 전파한 방식이다. 그는 이론적으로 알테르나티바를 “[기존 체제에 대한] (사회주의) 시민 사회의 대항 [의사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대안적 문화 조직(특히 펑크)과 연결하기 위한 분석적 개념”이라고 정의한다(「탄압의 이유들」{Reasons of Repression}, 《포트쿨투레》{Potkultre}[하위문화], 4호, 1988). 다른 한편 모치닉은, 알테르나티바에 대해 좀 더 형식주의적으로 이해하는데, 그것의 다양한 양식을 바로크와 레트로-가르드적[6] 요소가 없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정의한다(“대안 세력은{the alternative} 포스트모더니즘적 원리를 현재 그 자체에 적용한다” [대안 세력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렇게 하듯 혼성 모방을 만드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이질성 자체를 현실에서 실현시킨다는 의미이다], 1985년 ŠKUC 미술관 강연 ‘포스트모더니즘과 대안 세력’{Postmodernism and the Alternative}). 이러한 이론적 논조에 반대하며,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활동가와 투사들—은 이러한 정의들에 불만을 가졌다. 예를 들어, 학생 라디오{Radio Študent} 출신의 DJ 마르얀 오그린츠(마오)는, 당시의 [대안 세력] 씬에 대해 서술하면서, ‘대안’을 펑크를 “예술주의”로 축소시키고, 그 전복성을 길들이려는 일종의 무마적 경향으로 일축했다. 오그린츠만이 펑크의 시민 사회로의 포섭—그가 보기에는 [기존 체제로의] 포섭이고, 펑크를 고립된 예술적 아방가르드 속에 국한시켜 “사회를 전복시킬 수 있는 잠재성을 저해하는”(마르얀 오그린츠, 「우리는 여기에 역사가 되기 있는 게 아니다」{We are not Here to Become a History}, 《펑크 프로블레미》)—을 거부한 게 아니다. 그는 하드코어 집단주의에서 ‘대안’이 놓인 교착상태의 해답을 봤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가는 조직된 청년이 그것이었다. 당시는 1983년이었다. 여전히 프리슈타나에서 벌어진 학생 시위를 향한 경찰의 폭력에 대한 반향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고, 이는 좌파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들을 민족주의를 축으로 분열시켰다. 또한 밀로반 질라스의 강연을 조직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베오그라드 재판이 있었던 해이기도 했고, 유고슬라비아에서 새로운 교육 개혁이 논의되어 학생들이 더욱 정치화된 해이기도 했다. 이러한 대규모의 정치적 혼란이 일어나고, 청년들이 대항적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와중, 짧은 시간 동안 펑크는 이 새로운 정세의 아방가르드/선봉대로서 제시되었다.
모치닉은 그의 글 「합리성이 승리한다」에서, 이 새로운 예술적·정치적 대안이 출현한 이유를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즉 이 새로운 대중 운동의 형식과 이론을 밝혀내고자 한다. 그는 펑크를 개념 예술의 교착상태가 전도된 것으로 제시한다. 펑크는 OHO 개념주의[7]와 구체시 그리고 1968년의 전복적 정신이 자신의 한계를 마주한 장 속에 개입한다. 모치닉은 펑크가 새로운 원칙이자, 새로운 논리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한 모치닉의 생각은 펑크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 예를 들어, “펑크는 단절”이라고 말한 오그린츠의 펑크 이론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모치닉이 말하는 펑크는, 청년 대안 세력과 언더그라운드 운동이 부르주아-국민-전통적 시민 사회 개념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예술적 형식과 예술의 잠재적인 사회적 기능을 전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펑크 그 자체—즉 나이트클럽, 스쾃[점거], 하위문화, 그라피티와 음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통상적인 의미의 펑크—보다 더 큰 것을 가리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철학자들과 이론가들이 의미를 밝히고자 한 것은 펑크 효과의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모치닉이 한 것은 펑크의—동시대의 알튀세르주의자들이 의례 말하듯—정치적 사유를 해독하고자 함이었다. 펑크의 근거 그리고 논리를 되찾는 것은, 이러한 새로운 형식을 반지성주의의 자유주의적 냉소주의로부터 분리시키고, 펑크를 “지배적 문화 엘리트의 비정치적 반체제 이데올로기”와 구분하기 위한 시도였다. 펑크의 아나코-리버럴적 즉흥성이 아니라 조직화 능력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 점이 모치닉의 개입의 의의였다. 펑크 씬에 연루된 사람이라면 펑크의 조직가보다 더 조직을 잘하거나, 펑크 집단보다 더 체계적인 집단은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특히 하드코어 펑크로 알려진 급진적 투사 세력들이 그러했다.
모치닉의 이론적 통찰의 참신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를 시민 사회에 직면한 펑크의 냉소적 제스처에 대한 지젝의 해석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지젝은 “펑크는 소문자 대상 a”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의 의미는, 라캉의 복잡한 용어를 빌려, 펑크는 접근할 수 없고, 발화할 수 없고, 불가능한 것이고, 비사회적인 태도이며, 체제의 배설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라캉적 의미에서 실재이고, 사회의 핵심이자 중핵이다. 그렇기에, 펑크는 이데올로기 속으로 호명되지도 않고, 사회 규범의 언어 게임의 일부도 아니다. 즉 펑크는 이데올로기적 재생산의 끝없는 의례 속에 포섭되지 않는다. 펑크는 이데올로기 너머의 주체로, “정신병적 분열”{psychotic split}이자 “비인간화된 냉담”{dehumanized apathy}이다. 지젝은 방금 마지막으로 제시된 서술을 통해 인더스트리얼 펑크 밴드 라이바흐—1983년의 공연이 공식 신문의 한 외부인 기자로 하여금 그 공연은 “무한한 악몽과도 같은” 경험이라고 보도하게 한—에 대해 말했다. 이 비유[“무한한 악몽과도 같은”]—지젝 역시 여기에 번역된 글에서 사용한—를 통해, 지젝은 더 나아가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국민 이데올로기 이해의 한계에 관한 결론을 도출한다. 그는 파시즘을 다루는 데에 있어 리비도 경제학의 중요성에 관해 주장하며, 이후 1987년에는 널리 알려져 있듯 “NSK(노이에 슬로베니셰 쿤스트, 슬로라이바흐가 속한 예술 집단)를 대상으로 한 분석의 무능력은 마르크스주의의 패배를 드러낸다”(슬라보예 지젝, 「멀리로부터 온 편지」{A Letter from Afar}, 1987년 4월 주간지 《믈라디나》{Mladina}[청년]를 통해 발표되었다)라고 선언한다.
피터 오스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젝은 “다양한 반대 세력{pluralist opposition}이 대중에게 접근한 것은 명확히 펑크를 통해서였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 펑크 교육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지지했습니다”(〈슬로베니아의 라캉, 슬라보예 지젝과 레니타 살레츨과의 인터뷰〉, A Critical Sense: Interviews with Intellectuals, Routledge, 1996, p.23)라고 말한 바 있다. 1980년대의 전반기 동안 펑크의 정치적 배경은, 유고슬라비아가 사라진 1990년대 초와는 달랐다. [1980년대의 전반기에] 유고슬라비아의 펑크에 대해 쓰인 글은 더 빈번히 전체주의에 대해 다뤘고, 전체주의는 유고슬라비아에서, 1940년대 후반부터 공개적으로 정치적 스탈린주의를 거부하기 시작한 국가[유고슬라비아]에 잠복해 있는 관료주의적 스탈린주의의 잔여물로 이해됐다. 모치닉은 지배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와 분리함으로써 유고슬라비아의 상충하는 이 두 가지 이데올로기의 윤곽을 그려낸다. 유고슬라비아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자주 관리 이데올로기”였던 반면, 권력 [집단]의 이데올로기는 “순진한 전체주의와 스탈린주의”였다. 지젝, 모치닉, 돌라르, 마스트나크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에 의하면 펑크의 힘은, 이러한 모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에 있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스탈린은, 끊임없는 대응을 요구하는 긴박한 현실로 여겨졌기에 크로아티아 사회주의청년연맹은 1981년에 스탈린이 쓴 800쪽이 넘는 『레닌주의의 기초』를 번역해 출판하기도 했다. 지젝은 라캉의 네 가지 담론을 적용해 이 책을 논평하며, 스탈린 그리고 히틀러 역시, 계급을 “기술적-수행적”{constative-performatives}인 것으로 다루었으며, 계급 투쟁을 담론과 언어 구성체 내부에 위치시켰다고 말한다. 고전적이고 경직된 접근법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마르크스의 계급 투쟁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지젝은 이를 위해 우리는, 언어를 넘어, “개념화되지 않는” ‘트라우마적’ 실재의 중핵(핵심)을 중심으로 계급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심연의 현실이 라캉적 의미의 실재의 중핵이며, 이는 환상이라는 안개로 둘러싸여 있다. 지젝이 결론 내리기를, 스탈린주의와 파시즘 모두 우리 정체성의 핵심과의 불가능하고 트라우마적 대면이라는 실재의 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환상을 제공한다. 지젝이 말하기를 펑크는, 이 베일에 가려진 현실을 꿰뚫어, 법에 내재한 “무법성”{lawlessness}과 법의 동어반복[자기 지시성]을 드러내고, 궁극적으로는 이데올로기의 실재의 중핵의 “무한한 악몽”을 폭로한다.
1980년대 초 슬로베니아에서, 펑크의 실질적인 문제는 스탈린주의가 아니라, 파시즘이었다. 1981년 10월에 류블랴나 주간지 《네델리니 티예드니크》{Nedeljini Tjednik}는 〈누가 스와스티카를 그리는가?〉{Who draws Swastikas?}라는 제목의 글을 발행했고, 여기서 이 행위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펑크를 고발했으며, 그들을 비정치적인 허무주의자, 아나코-리버럴,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서구 네오나치의 잘못된 영향을 받은 주창자라고 낙인찍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유고슬라비아 언론은 펑크와 파시즘을 결부 지었다. 이 대중적 히스테리에 맞서기 위해, 학생 조직, 지식인, 이론가, 사회학자, 기자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문화부 장관이 펑크와 파시즘 간의 관계에 대한 공적인 논의의 장을 조직했다. 이것이 소위 유고슬라비아의 ‘나치-펑크 사건’이다. 『슬로베니아인들의 펑크』는 이 대중적 항의에 관련된 거의 모든 자료를 전재했다{reproduced}. 이 스캔들 이후, 슬로베니아 펑크의 프로모터이자 조직자인 이고르 비드마르가, 낫과 망치 옆에서 스와스티카 배지와 “정신 나간 정부” 배지를 달고 있는 게 발견되자 경찰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에 앞서서는 소위 ‘라이바흐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라이바흐가 1983년 자그레브 음악 비엔날레와 이후의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전체주의적인 나치 미학을 연상시키는, 군복 스타일의 제복과 말레비치의 영향을 받은 대칭적인 휘장을 착용한 일을 가리킨다. 라이바흐는 과잉-동일시에 대한 복잡한 이론을 가지고 있었는데, 모치닉은 펑크에 관한 자신의 글에서 이에 대해서도 역시 논의하면서, 라이바흐가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를 여전히 배회하고 있다고 주장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잔여물을 비워내는 데 기반해 있는 그들의 미학의 정치 전략을 강조한다.
지젝은 이 극단[적인 상황]을 더 넓은 관점에서 봤다. 그는 기계적인 펑크의 제스처를 이데올로기적 예속[적 주체]화에 대한 논평으로 해석했다. 더 나아가, 지젝은 그의 다른 글에서, 라이바흐의 비인간화된 냉담과 자주 관리의 이데올로기적 의례에 굴복이 체제의 아이러니를 지적하는 접근법보다 더 강력한 낯설게 하기{estrangement}의 효과를 생산한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라이바흐의 이데올로기적 퇴마 의식이라는 수행적 행위를, 청중—하드코어 펑크를 포함해—은 거리두기라는 의도된 효과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정치적 [입장의] 모호성으로 받아들였고, 라이바흐의 전복적 제스처(파시즘을 가지고 장난을 친 스로빙 그리슬{Throbbing Gristle}과 같은 다른 인더스트리얼 펑크 밴드의 제스처와 유사한)를 무시한 채, 혼란스러운 극단주의, 즉 ‘예술주의’로 받아들였다. 지젝의 서술에서, 이러한 전복—“무한한 악몽과도 같은” 펑크 공연—에 기대되는 결과는 냉소적인 자주 관리 주체를 분열시키는 사회의 비체{abject} 같은 힘과 유사한 무언가로 표상되며, 이에 따라 사회주의 정체성의 상흔—트라우마—을 드러내게 된다. 지젝이 말하는 ‘펑크 모델’은 통치하는 지배 이데올로기 형태의 반복과 모방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펑크의 냉소주의와 그것의 전복적 효과는, “당국이 동원한 도발”보다 전복적이거나 냉소적이지 않다[당국이 반복적으로 선전하는 이데올로기적 수사와 당국의 실제 행동과의 괴리가 오히려 더욱 ‘펑크적’이라는 의미이다]. 이 결론이 함의하는 바는, 우리가 여기에 실은 지젝의 글의 결론에서 그가 직접 언급하듯이, 당국 그 자체가 진정으로 위대한 펑크라는 것이다{the Authorities themselves are the real Great Punks}. 궁극적으로, 펑크는 비진정성의—부자연스러운, 경직된 그리고 긴장된 사회적 태도의—예술 모델이다. 지젝이 펑크의 이러한 태도를, 히피의 즉흥적인 자세에 반대되는 것으로 보고, 그리고 기계적인 형태의 펑크를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발전된 모델로 해석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펑크를 광기의 “정신병적 분열”과 본질적으로 강박적인 편집증의 증상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이해이다.
다른 한편, 펑크의 독특성은, 모치닉이 주장했듯이, “억압된 청년 대중의 진정으로 창의적인 능력과 스스로 조직하는 능력”에서 볼 수 있다. 이 하나의 의견에도 하나의 완전한 이론적 연구가 필요하며, 모치닉은 문화적 관료주의의 반-지성적 냉소주의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 합리성, 논리 그리고 이론을 도입함으로써 이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펑크 이론{punk theory}이란 무엇일까? 사회학적 접근은 펑크의 복잡한 형식과 마주하기에는 너무나 제한적이다. 따라서 펑크를 다루기 위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와 지배 집단의 이데올로기 간의 변증법 속에서 방향을 설정하는 이데올로기적 작동을 보다 정교하게 파악해야 한다. 모치닉은 보편적이지 않은 반-스탈린주의 이론, 달리 말해 비-동일성와 반-제도적 사유를 위한 이론을 주창한다. 이 영역은 전통적으로 아방가르드와 현대 미술을 위한 자리였지만, 당시가 되어서는 관료주의적 문화 엘리트주의의 “예술의 자율성”으로 빠져들어 갔다. 약탈당한 청년 대중만이 단단히 얼어붙은 이 교착상태를 녹여 새로운 형식을 도입할 수 있다. 그들의 조직화 능력과 기존 문화적 엘리트의 언어로부터 거리두기를 볼 때, 펑크는 의심할 여지없는 이러한 경향[교착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의 선봉대이다. 펑크는 아방가르드적 대중문화이자,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소비주의와 예술 기관을 위축시키는 관료주의의 대항 세력이다. 모치닉이 재치 있게 지적하듯, 이러한 새로움과 관계 맺거나 이러한 실천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종의 “펑크 이론”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현실에서 자기 만족적인 지성적 거리두기를 폐기하고, “마오주의적 광기에 대한 유물론적 이론”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우리가 동의하는 극단적 입장이다. 즉, 펑크를 제도화되지 않은 청년의 분노의 문화 혁명으로 보는 것! 모치닉은 펑크를 문화적 힘으로, 모더니티보다 더 모던한 것으로, 아방가르드보다 더 진전된 것으로 정의한 것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이것이 사실이지만, 현실에서, 그리고 정치에서는 펑크가 반드시 이러한 반-제도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아니다. 결론부에서 모치닉은 유고슬라비아의 첫 펑크 밴드인 판크르티{Pankrti}[잡놈들]에 대해, “수동적이고 조화로운 예술”로 미끄러져 들어갈 위험이 있다 지적하고, 한편으로 라이바흐는 “무분별한 행동주의”에 굴복할 위험이 있다 지적한다. 토마시 마스트나크가 추후에 회상하듯, 슬로베니아에서 시민 사회가 정치적이고 이론적인 범주로서 최초로 사용된 사례는, 이미 언급했던 ‘알테르나티바란 무엇인가?’ 심포지엄으로, 이는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과 펑크가 함께 조직한 것이었다. 1980년대에 시민 사회는 여전히 형태가 불분명한 범주였으며, 곧 정체성 정치를 주장하는 다양한 세력, 내셔널리스트, 반-공산주의자, 유사-종교 집단, 펑크 그리고 온갖 색깔과 성향의 반체제 인사를 포괄하는 사회주의 시민 사회를 아우르는 범주로 발전했다. 1980년대가 되어서는, 마스트나크가 주장했듯, 시민 사회와 국가의 갈등이 비-민주적 시민 사회 세력과 민주적 시민 사회 세력 간의 갈등으로 바뀌었다. 이는 실제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펑크의 대항적 대안 형식을 논할 때 어떠한 정치적·이론적 정당성도 갖고 있지 않음을 의미했다. 최초의 펑크 사회학자이자 슬로베니아의 자유주의 지지자인 그레고리 톰츠는, “사회주의 혁명의 몰락의 원인에 펑크의 기여는” 무시할 만한 주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치적 몰락과 반-혁명의 시기 동안, 지젝은, 이미 언급한 「멀리로부터 온 편지」에서, 냉소적으로 레닌을 흉내 내며, “우리의 국민적 동일성을 떠받치고 있는 환상적 신화와 그 구성물”을 마르크스주의가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마르크스주의와 기호학 모두 그들의 분석 도구로는, 라이바흐가 성공적으로 동원하고 있는 “쾌락의 싹”{sprouts of pleasure}[잉여 향락]을 포괄하지 못한다. 지젝은, 그가 1980년대 후반에 쓴 해당[「멀리로부터 온 편지」] 텍스트에서, “이성에 호소”보다 “무한한 악몽과도 같은”이라는 표현을 선호했고, 아직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도입했다.
사회주의 시민 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회학자였던 마스트나크는, 지젝의 “비이성”에 대한 강조에 반대하며, 지젝이 전체주의와 투쟁해 얻어낸 시민 사회의 정치적 (제도적) 성과를 경시하고 슬로베니아 시민 사회 운동의 민주적 잠재력을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여기에 덧붙여, 이 씬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마스트나크는 슬로베니아의 펑크와 대안적 씬이 라이바흐에 NSK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운동과 활동, 그리고 그가 표현했듯이, “제도들”은, “정치와 국가와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서로 간의 관계에서도” 자율적으로 존재한다(마스트나크, 「사회 운동의 영혼을 기리며: 지젝의 멀리로부터 온 편지를 가까이 읽으며 든 몇 가지 단상」{On the Soul of Social Movements: A Few Remarks Up Close on Žižek’s Letter from afar}, 《믈라디나》에서 최초 발행, 1987년 4월). 이러한 혼란스러운 논쟁은 국가기관 장악을 향한 기나긴 행보의 출발점이었고, 이 갈등은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슬로베니아 시민 사회를 이끄는 서로 다른 주역 사이에서 슬로베니아에서 계속되고 있으며, 2021년까지도 그렇다.
이미 언급했듯, 조야 스쿠셰크의 분석은 국민 이데올로기의 “생산적” 측면을 상세히 기술하기 위해 “시적 보충물”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예술 이데올로기를 통한 국민 주체의 생산과 재생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스쿠셰크의 계획은 네이션은 자기 자신을 재생산하기 위해, 더할 다른 무언가, 어떤 보충물이 필요하며, 슬로베니아의 경우 타자의 형상에 대응하는 터키인 형상이 발휘하는 과잉된 힘을 통해 이행되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펑크에서는, 이러한 작동이 오히려 반대로 일어난다. 1980년대 펑크의 개입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이데올로적·정치적 환경에 단절을 만들어냈다. 특히, 여기서 논해졌듯,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경우에 그러했다. 펑크의 독특함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존의 것과는] 다른 종류의 시적 보충물이 제공되어야 한다. 펑크, 특히 하드코어 펑크는, 사회의 부르주아 가치 규범으로부터의 완전한 분리를 옹호했다. 그들은 기존 사회 규범을 부정하고, 부인하고, 파괴하고, 완전히 거부했다. 그들은 비인간화되고, 경직되고, 의례적이고, 기계적이고, 폭력적이고, 소통을 거부하고, 언더그라운드적이고, 강력하고, 하드코어적인, 형식을 통해 완전한 분리를 지향했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힘에만 의존하는 일종의 자동생산적 주체화 양식이었다. 펑크는 어떠한 대리도, 매개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필연적이었고 동시에 자의적이었다. 그것은 아무런 외부의 기원도 가지지 않았고, 어떤 다른 곳을 향하고 있지도 않았다. 펑크는 “창문이나 문 없이 서 있고…어떤 재화나 편의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아이디어에서 어떠한 사업적 이득을 얻으려 하지 않으며, 어떤 “약속의 땅”도 없는”(말레비치, ‘Suprematism[1927]’, The Artist, Infinity, Suprematism: Unpublished Writings, Borgen, Copenhagen, 1978)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도형과 유사하다. 20 세기에는, 공산주의라는 정치적 배경으로부터 압박을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검은 사각형’이 지닌 비재현성과 비실용적 측면을 고수하면서, 말레비치는 추가적 요소{the additional element}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를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삶에 대한 그/그녀의 태도에(경제와 정치의 측면에서조차)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소”로 정의한다(말레비치, The Non-Objective World, p.60).
슬로베니아 펑크가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격동의 시기 동안 보인 행보를 다시 생각해 보았을 때, 슬로베니아 펑크의 허무주의적 태도는 경제와 정치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강한 영향력에 의해 압박을 받았다. 이는 전체 유고슬라비아 공화국(특히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뿐만 아니라,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그리고 소련 연방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슬로베니아 펑크의 특수성은, 첫째로, 그것의 형식과 음악의 독창성이었다. 이 노래들은 현재까지도 전 세계의 하드코어 펑크 밴드에 의해 커버되고 있다. 둘째로, 이 새롭고 전례 없는 형식과 관계를 맺은 이론가들의 존재였다. 이 새로운 정세 속에서 철학자들의 기여는 추가적 요소—펑크와 사회가 충돌한 이후 생겨난 요소—를 다룰 수 있는 개념어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들이 펑크에서 찾아낸 새로운 형식은 정전이나 동시대 예술 작품의 형식이나 방법론과는 달랐다. 이 책에 수록된 에세이에서 읽을 수 있듯이, 이것은 새로우면서도 기존의 범주 바깥에 있었다. 오늘날에는 어쩌면 더욱 길든 형태로 나타나는 지젝의 몇몇 개념은, 처음에는 펑크의 영역에서 시험되었다. 우리는 펑크가 사회적 명령[에 덧붙은] 추가적 요소를 부정하는 사회주의 심리-정치의 “소문자 대상 a”라고 말하는 지젝의 결론에 동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젝의 이러한 추측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이는 펑크의 힘을 강조하는 역사적 증거이다.
모치닉은, 펑크에 관한 그의 이론적 논문에서, 펑크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 추가적 요소에 대한 [지젝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제시한다. 펑크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의 추가적 요소는 관료주의적 문화의 전통의 잔여물, 예술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엘리트들의 막다른 길, 시민 사회 내 비적대적 모순이 지니는 수동성, 아나키즘적 전복을 주장하는 이들의 무분별한 행동주의 모두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새로운 문화 혁명의 가능성이었다. 모치닉이 서술하듯, 펑크의 독특성은 “억압된 청년 대중의 진정으로 창의적인 능력과 스스로 조직하는 능력”에서 나타난다. 급진적인 유물론적 개념을 지닌 알튀세르적 마오주의 광기는, 오늘날에도 현대철학을 규정하는 중요한 준거로 남아 있으며, 모치닉이 사유하고 있는 이른바 “펑크 이론”에 가장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펑크의 추가적 요소인 조직화, 규율 그리고 집단적 정신없이는, 이러한 하드코어적 제스처는 우리 시대의 현실에 부합하지 못할 것이다.

[1] 해당 글에서 mass와 popular를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mass culture은 대중 문화로, popular culture은 민중 문화로 번역했다. (옮긴이)
[2] H kritiki stalinizma, Krt, 1982. (옮긴이)
[3] Ideologija in estetski učinek, Cankarjeva založba, 1980. (옮긴이)
[4] Gledališče kot oblika spektakelske funkcije, DDU Univerzum, 1980. (옮긴이)
[5] 출판사 웹사이트 참조. 접속일 2026.09.29.. Retrieved from https://www.zalozbacf.si/index.php/english (옮긴이)
[6] 레트로-(아방)가르디즘은 NSK의 미적·정치적 방법론 중 하나로, 주어진 국가 이데올로기에 과잉 동일시하고, 국가 구조와 상징을 전략적으로 재전유하고 재활용해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https://fryemuseum.org/exhibitions/retrofuturistic-universe-nsk 참조. 접속일 2026.09.29.. (옮긴이)
[7] OHO 개념주의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활동한 슬로베니아의 네오 아방가르드 예술 집단이다. OHO는 슬로베니아로 눈인 oko와 귀인 uho가 결합된 단어이다. ‘대상’과 구분되는 실제 물질 세계의 ‘물 자체’와 우리의 순수한 감각에 대해 탐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자세한 내용은 https://post.moma.org/part-1-the-oho-group-information-and-global-conceptualism-avant-la-lettre/ 와 https://www.oeln.net/oho-group 참조. 접속일 2026.09..29..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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