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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Translation/In Moving Translation

[르 코르뷔지에와 소련] 르 코르뷔지에, 『빛나는 도시』 中 "개인의 자유", "볼셰... 혹은 '크게'의 개념", "모스크바"

by 인-무브 2026. 7. 11.

르 코르뷔지에, 빛나는 도시 中 

"개인의 자유", "볼셰... 혹은 '크게'의 개념", "모스크바"

 

르 코르뷔지에

번역: 황유경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옮긴이의 말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 건축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름입니다. 하지만 르 코르뷔지에가 19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 초까지 소비에트 연방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굵직한 건축 사업에 참여했고, 혁명 이후 새로운 체제와 사상에 걸맞는 모습으로 모스크바를 재편하는 계획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으며, 이것이 그가 자신의 '빛나는 도시' 이론을 구상하는 데에 있어 깊은 영향을 끼쳤음은 국내에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르 코르뷔지에가 상상했던 빛나는 도시 모스크바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의 원대한 계획이 결국 빛을 보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상상력은 모스크바와 소비에트 연방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요?
'르 코르뷔지에와 소련'을 주제로 르 코르뷔지에의 저작 및 관련 문헌을 번역하여 연재하려 합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La Ville Radieuse』(1935) 가운데 모스크바와 소련을 다루는 세 편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개인의 자유 Liberté Individuelle

 

<그림 1>

브라사이 촬영[1] 문을 다시 닫은 채…”

 

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신성한 존중을 모든 근대적 도시화의 주춧돌로 삼는다.”

(모스크바에 보내는 답변[2])

1930 6 8

 

  1930년에 이 제사題辭를 썼을 때, 내가 소련에 관해 아는 것은 오직 하나의 메커니즘뿐이었다. 바로 지도자들의 메커니즘이었다 (세 번의 여행). 류비모프[3]는 각종 소비에트[4] 기관을 제압했고, 나는 스스로 (나의 생각, 혹은 나의 명석함이 낳은 생각을 품은 채) 건축가 소비에트, 모스크바 소비에트, 노동 소비에트와 맞서 싸웠다. 나는 지도자들 복종하는 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지도자가 될 권리를 갖고 있었다. 마치 우리 서구적 자유의 미로를 거쳐서라면 내가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이 될 권리를 갖고 있듯이). 따라서 나는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련에서도 이 근본적이고 인간적인 필요,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고독la solitude à volonté을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을 다시 닫은 채 나의 우주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 말이다.

  이런 말, 이런 생각, 이런 몸짓은 모스크바에서는 파문破門과도 같았다. 나는 그걸 몰랐다. 따라서 예의상, 나는 나의 제사를 철회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은 급작스레 (그리고 나도 모르는 새에) 도발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놀라우며,

     거대하고,

     광적인 도발의 양상을.

  바로 이것이 나의 순진함이다 !

  그렇지만 나의 제사가 과연 아무런 가치가 없는가 ? 이것은 소련의 교조적 상태를 정곡으로 찌른다. 내가 만일 오류를 범했다면, 나는 언제든 내가 한 말을 취소할 것이다.

  그 오류란 무엇인가 ?

  나는 고민한다, 나는 헤아려 본다. 내게 고유한 본성은 무엇인가 ? 어떤 순간들에, 난 고독을 필요로 한다. 더 나아가, 나는 고독한 행동이 필요하며, 내 사유의 노력 위에 홀로 꼿꼿이, 수직으로 서서, 숨쉬고, 논쟁하지 않고, 행동하고, 단언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내가 생각하고, 헤아리고, 정식화하고, 단언한 후에야 논쟁하는 것. 거센 파도가 밀려올지라도 말이다!

  만일 내가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라면, 나는 그 오류를 수정하길 진심으로 열망한다!

 


 

볼셰 혹은 크게의 개념

 

  “볼셰…!”

  이것은 하나의 (굉장한) 단어이지, 어떤 정당에의 소속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1928, 나는 첸트로소유즈 궁전 건축을 맡아 모스크바로 초청받았다. 나는 류비모프 씨의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현재 인민위원이며, 과거 모스크바 시장이었고, 그 전에는 농민이었으며, 당시에는 첸트로소유즈의 의장이었다). 거기엔 통역사가 있었다. 의장은 나에게 일장 연설을 했는데, 그 연설에서 나는 끊임없이 볼셰라는 단어를 들었고, 그는 그 단어에 유독 힘을 주어 발음했다. 요컨대 통역사가 내게 전한 말은 다음과 같다. 이 궁전의 건설은 혁명과 함께 도래한 러시아 건축사의 월등한 질적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해결책에서 위대함이 나타나야 하며, 그것은 단순히 규모의 효과나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적절한 비례를 통해서 드러나야 합니다. 지금 체제가 계획하고 있는 가장 거대한 공공건축물인 이 건물은 하나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 기능과 위엄을 엄격하게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기획 크게GRAND[1]’, 즉 볼셰라는 기치 아래서 탄생해야 합니다...”

  나는 질문했다. “류비모프씨의 연설에서 끈질기게 반복되던 볼셰라는 단어가 대체 무슨 뜻입니까?”

  “크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볼셰비즘은요…?”

  “볼셰비즘이란 이런 뜻입니다. 모든 것을 최대한 크게 하는 것, 가장 커다란 구상, 가장 커다란 기획. 최대치. 문제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것. 문제의 끝까지 파고드는 것. 전체를 조망하는 것. 광대함.”

  지금까지 신문들은 우리에게 볼셰비키가 붉은 수염을 기르고 이에 칼을 물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말해왔다!

 

 

그들은 역사의 교훈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는 학창 시절, 그리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퐁뇌프 다리를 보러 종종 베르-갈랑 공원[2]이 있는 섬에 갔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하늘 아래 놓인 다리의 육중한 전체가 잘 보인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다리는 두 개의 가지를 뻗어 남서쪽 지방으로 향하는 길, 그러니까 툴루즈로 가는 길과 왕들의 루브르 궁이 있던 센 강의 오른편 하안을 잇는다. 건축가는 뒤 세르소[3], 1550. 르네상스 시대였다. 파리는 고딕적이다. 톱니처럼 뾰족한 지붕들, 당장이라도 누가 나와 해코지할 것 같은 거리들, 도무지 도약할 수 없는 상태 돌들이 얼마나 웅변적인가! 나는 거대하고 튼튼한 아치들을, 위엄 있는 코니스[4], 단단하고 힘차며 풍만한 쇠시리modénature[5]를 바라본다. 이 작품엔 광대한 정신적 흐름이 순환하고 있다. 1550년이라니 ! 이 인물은 경이로운 한 발짝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는 강물 위로 돌다리를 놓았을 뿐 아니라, 정신사 위로 위대함의 다리un pont de grandeur를 놓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세워진 이래로 (3세기 먼저 있었던 일이다) 사람들은 제자리 걸음을 하며 공론을 벌이고 있었다. 움츠러들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장소와 정신의 자유로운 공간에서 무언가를 감행하려 하지 않았다왕실 건축가였던 뒤 세르소는 해야할 일을 했다. 크Grand.

  이건 도취의 광경이다. 제대로 할 줄만 안다면, 그러니까 베르-갈랑이 있는 섬에서 1550년의 눈과 영혼으로 다리를 바라볼 줄 안다면 말이다. 목수들이 강 위로 궁형의 목조를 설치하고, 석공들이 강둑에서 화법기하학에 골몰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치들이 종석[6]을 정렬하고, 상판이 팽팽하게 뻗는 모습이 보인다. 완공된 다리가 보인다. 왕이 아주 새롭고 새하얀 다리, 비범하고 경이로우며 빛나는 다리, 고딕 도시에서의 새로운 서정성으로 부풀어 오른 그 다리를 차지하기 위해 행차하는 광경이 보인다. 그제서야 우리는 하나의 도약이 지닌 가치를, 한 도시에게 있어 대한 사상une pensée grande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그런데 다시 도시의 높이로 올라오고 나면, 나는 매번 공포에 질려 생각에 잠기곤 했다. 1900년대의 파리는 더 이상 원대하게 보는 법voir grand이 없고, 도시의 책임자들에게는 더 이상 위대한 정신l’esprit grand이 없으며, 그들은 역사의 교훈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그 매력적인 프랑스 르네상스는 이미 그저 매력적인 것 이상을 이루어냈다. 그것은 파리에서 가장 위대하고 품위 있는 것들 중 하나이자 오늘날까지도 우뚝 서 있는 퐁뇌프 다리를 만들어냈다. 그것도 소가 끄는 수레가 채석장의 돌을 강둑까지 실어 나르던 시대에 말이다.

  제1차 세계대전과 뚱보 베르타[7]가 등장한 지 13년이 흘러, 대양 횡단 비행이 가능해진 이후[8], 기계화로부터 100년이 지나, 한 건축가가 도시의 책임자들과 공모하여 역사를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좌측 하안의 교두보를 뒤 세르소 양식으로 완성했다. 이런 식으로 삶을 대하는 것이다 ! 역사는 모험, 신념, 행동을 말한다. 지금 우리는 후퇴, 포기, 배신 그리고 기만을 선언한다. 그렇다, 기만이다 !

  교두보는 뒤 세르소 양식으로 지어졌다. 그건 가짜다. 그것은 복제품이며, 모방품이다. 이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아니다. 아주 정확하게 그 양식을 따라 만든 복제품이다. 당국은 자신들의 깊고 진실한 이해를 증명하기 위해 그것을 살롱 카레Salon Carré[9]의 진짜 모나리자 부인 옆에 그것을 걸기로 결정한다 !!!

 

 

 뒤를 바라보기!

 

  베른 시는 명망 높은 유산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서너 개의 거리에서 이루어졌던 도시의 역사로, 아케이드 형태의 그 거리엔 옛 귀족들의 품위 있는 저택들이 늘어서 있다. 삶은 만족을 모른다. 20세기에는 양말도 많이 팔아야 하고, 관광용품도 많이 팔아야 하며, 융프라우를 그린 그림들 따위도 팔아야 한다. 메피스토펠레스의 간계라도 있었는지, 다름 아닌 베른의 옛 귀족 나리들의 저택에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개조aménager’가 필요했다. 개조가 이루어졌다. 생 고뱅 유리[10]를 끼운 진열창을 열었고, 마루를 수리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낡은 파사드도 보강해야 했다. 이 말인 즉슨, 오래된 돌을 새로운 돌로 실상 갈아 끼워야 했다는 것이다. 이에 당연히 동요한 당국은 옛 돌을 그대로 모방하여 새로운 돌을 만들 것, 혹은 적어도 당대의 양식에 따를 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베른의 위대한 거리들은 새로이 다시 만들어졌다. 가짜 옛것으로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정신적 판단une décision de l’esprit에 의거한 것이었다. 그 판단이란 '뒤를 바라보기'였다.

 

 

+ 기호 혹은  기호

 

  정신적 판단 !

  그 판단의 .

  그 판단의 방향. , 앞을 향한 판단인가 혹은 뒤를 향한 판단인가?

  집단적 현상의 이런저런 장소에 자리하는 안내자들의 위치가 지닌 비장한 의미를 이해하게 될 때, 즉 그들의 행동이 아주 사소한 결과에서부터 때로는 모든 것을 뒤흔드는 결과에 이르기까지 이해관계와 기획, 행위와 행위자들의 총체를, 나아가 결과적으로는 의식의 총체마저 이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때. 정신적 [판단의] 질과 방향이 행복과 불행, 하찮음과 화려함, 무관심과 참여, 한 시대의 작품들에 결부된 + 기호와  기호를 좌우하는 원인이라는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될 때. 또한 인간사에는 모든 것이 최초의 판단에 따라 결정될 수도 있는 극적인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때. 이때 우리는 명료하게 보려 애쓰고, 해부하고 분석하고 종합하며, 선언하고 제안하고 행동을 유도하며, 여론에 호소하고, 여론 앞에 기획과 행동 및 이해관계로 가득한 지평을 열어 보이는 것에 대해 진정으로 뉘우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신념이라는 말로 현재 환멸이라 불리는 것을, 의지volonté라는 말로 오늘날 우리의 비굴한 단념을 대신하려 하는 것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볼셰”, 크게.

  볼셰! 크게, 우리를 둘러싼 선의 모든 위력을 다해, [언젠가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리라는 기만적인 기쁨이 짓는 간사한 찡그림을 대신하여 삶의 기쁨을 확신하면서.

  그래, 인정한다!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아아, 우리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견디고 있다.

 

  정신l’esprit이 우리를 초대하는 완전한 자유 안에서 원대하게 보고, 인식하며, 사유하는 것.

  무슨 행동을 하든, 하루 중 그 어느 때든, 판단을 내려야 할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사슬에서 벗어나 조화를 향해 나아가는 사심 없는 정신들, 예술가들과 창작가들이 있다. 어떤 이미지가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좋은 땅에서 햇빛을 받으며 아무런 방해 없이 자라나는 식물 혹은 나무의 이미지이다. 튼튼하고 단단하며 통통한 뿌리, 아름다운 줄기, 아름다운 가지, 아름다운 잎사귀, 빛나는 꽃과 아름다운 열매들. 자태에서 느껴지는 우아함, 유연함과 여유, 조화로운 광경. 아름다운 식물, 아름다운 나무.

  본질 그대로의 자연이다.

  우리 인간들의 작업oeuvre도 이와 마찬가지로 태어나고 일어설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의 산물이다. , 우리는 우리 안에 자연의 잠재력, 자연과 마찬가지의 힘, 자연의 정신과 본질을 갖고 있다. 우리의 손가락과 뇌는 조화의 작업을, 총체적이며 순수한 작업을 빚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우리의 정신적 식물이 늘 좋은 토양에 심어진 것은 아니며, 우리는 그것의 자유로운 성장을 각종 방해물로 둘러싸 막고 있기 때문이다. 사심 없는 정신만이 하나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법을 안다. 그것은 관례나 비판, 조급함, 혹은 즉각적인 이익에 대한 갈증이나 성급하거나 조급한 찬사에 방해받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사심 없는 정신은 운명 지어진 길을 향해 정상적으로 나아가며, 그들과 함께 그들의 작업 또한 정상적인 것이 된다. 

  나는 현대 세계가 비정상 속에 놓여 있음을 이미 수백 번이고 입증해왔다. 아아, 우리는 비정상적인 상황과 비정상적인 작업을 견디고 있으며, 또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사탄이라도 이보다 더 잘해내진 못했을 것이다. 

 

  자연의 법이 내리는 자유롭고 치명적인 지령을 따르는 것. 자연처럼 행동하는 것. , 우리의 가설 속에서 창조-어머니la création-mère를 마주치는 것 ! 이는 논쟁의 여지 없이 충직하고, 확고한 안심을 주는 태도이며, 모든 사람들의 자동적이며 즉각적인 지지를 가져다 주는 태도 아니겠는가 ? 아아 ! 이 태도는 우리에게 돌팔매질 말곤 그 어떤 것도 가져다 주지 못한다.

  도면을 통해 전반적인 건설 작업을 진술하고 표현하는 것, 이는 현행 질서를 교란하는 유토피아주의자로 취급 받게 됨을 의미한다.

  부정과 파괴의 작업은 더 나은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

  오늘 은행장 한 명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거대한 공작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기, 황인들과 벌이고 있는 끝없는 전쟁에 소련을 끌어들이려는 것이죠. 그러면 두 가지 효과가 생깁니다. [첫째,] 대포, 탄약, 군화와 통조림, 장비와 수송 수단 등등이 생깁니다. 자본주의가 구제되는 것이죠. 공장들이 다시 가동되고, 모든 게 잘 돌아갈 겁니다. 모두가 만족하고, 위기가 극복되는 거죠. 궁지에 몰린 자본이 살아나고, 그리고 여론도 여론도 예전의 틀로 되돌아갈 겁니다. 모든 것이 계속되는 것이죠. 두 번째 효과도 있습니다. 소련은 향후 20년 동안은 끝장입니다. 한 세대가 소진되는 겁니다.

  크루프사社와 르 크뢰조Le Creusot[11]의 직원들이 이미 근동의 현장에 가 있습니다. 그들은 주문을 받고 있죠. 아직 [전쟁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지금 벌써 5억 건에 달하는 주문이 들어와 있습니다.

  거대 금융가들이 몇 달 전부터 작업해 온 것이죠…” 

  “그래도 러시아인들이 넘어가 전쟁을 선포해야 가능한 것 아닙니까! 그들도 완전히 바보는 아니니, 어쩌면 상황을 똑바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몇 백만 [개의 주문 건] 정도만 좋은 사람들의 손에, 적절한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다면 말이지요…”

  그렇지만 은행장은 완전히 신물이 난 상태였다.

  나는 신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내용을 생각한다. 언론은 일본에 우호적이다. 지난 열흘 간은 중국에 우호적이었지만, 오늘은 중국인들이 대차게 얻어맞고 있다. 그들이 서로 싸우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으나, 군대가 무장하고, 연대와 포병대가 상륙하며, 동방에 거대하고 집단적인 전투의 정신mentalité이 자리잡는 것을 내버려둔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발점인 하얼빈을 슬쩍 건드려본다.

  그곳엔 혼란, 먼 거리에서 비롯된 착오, 현지 사정에 대한 무지 속에서 조작하기에 아주 좋은 재료가 있다. 언제든 파렴치한 술수를 벌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단 한 번도 전쟁이 일어난 적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군대가 모두 그곳에 집결하게 된다면, 빗나간 포탄과 엇나간 비행기가 등장할 것이며, 극도로 격앙된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봤을 때, 유럽과 미국은 동방에 자국민, 한 가족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물론, 자존심이 구겨진 무역 관계와 조계租界를 두고 있다고 말할 것이며, 나아가 국가적 위신이 짓밟히게 둘 수 없다는 의무를 내세울 것이다 문명국들의 가부장적 돌봄 아래 놓인 이 영토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을 것이다 치안 작전을 벌여야 할 것이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말이다 서방과 미국은 우선 국가별로 1만 명의 병력을 파견할 것이다. 그렇게 10만 명이 파견되고, 그 숫자는 결국 5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며, 황인들은 그렇게 모두 포위될 것이다.

  우리 병사의 어머니들은 국가 간에 벌어지는 진짜 전쟁이 가져다 주는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소스라칠 정도의 공포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원정expédition’이라는 멋진 이름이 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아들은 원정에 참여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서방과 미국은 전쟁의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현실을 마주하지 않을 것이다. 이 도덕적 공작은 성공을 거둘 것이다.

  국제연맹도 목욕재계를 하고 원기를 회복한 뒤에는, 이 기회에 문명화의 이름으로…”라고 말해지는 이 새로운 병력과 새로운 권력을 이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수백만 명에 이르는 황인들이 동원될 준비를, 무장하여 탐욕스런 군대에 편성될 준비를 마쳤다. 파괴하라.  ! 모든 것을 파괴하라, 모든 것을 소비하라 !

  소모되는 상품들이라면 원하는 대로 뭐든 소비될 것이다. 대포와 통조림 같은 것들 말이다. 이것이 얼마나 혐오스런 일인지 모든 사람들에게 한 명도 빠짐없이 설명해 보라. 공장으로 복귀할 수백만 명의 실업자들, 지난 시대의 절망이 끝난 후 경이롭게 꽃피우며 새로이 고동치는 이 삶,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소리치리라. “닥치시오, 세상이 또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소.

  나는 경탄에 휩싸여 있다. 몇몇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해냈다. 병든 세계를 전복시키고, 이 경이로운 공작을 실현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빵을 주고, 희망을 되살리는 것. 낭비 없이는 존속될 수 없는 현재의 무질서한 생산 양식을 통해 현재의 기정 상황을 보전하는 것 소련을 짓밟아라! 세차게 짓밟아라! 가능하다면 한 방 먹여줘라, 아주 제대로 된 한 방을…!

  나는 생각했다. 이게 바로 통치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계획PLAN을 세우는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계획인가!

  “볼셰”…

  “볼셰”…

  사탄이라도 이보다 더 잘해내진 못했을 것이다.

 

 ***

 

크게, 크게!

 

  내 동료 한 명은 말하곤 했다. “어째서 사람들은 탄약을 만드는 대신 세계를 정비하는 위대한 사업에 착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가 잊고 있는 게 있어. ‘계획Plan을 실행한다는 것은 하나의 노선, 하나의 총체적인 노선을 세우는 것이지. 그건 무언가를 4, 혹은 6년에 걸쳐 실현하는 일이야. 만일 자네가 대중을 설득하려 든다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걸세. ‘빵을 주시오, 지금 당장, 오늘 말이오 !’ 대중은 동방 원정을 위해 일할 걸세. 국가 간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지.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바로 대중 자신들이 자본을 구제하게 될 거야. ‘계획을 실현하려 한다면, 다른 제도와 새로운 개발안들이 필요할 걸세. 스스로를 구해내고 자본을 구제하는 과정에서 대중은 눈앞에 다가왔던 자신의 여명을 부정해야 하네. 그리고 그들의 노동은 본질적인 개혁을 시도했던 그 국가를 찌르는 칼이 되겠지. 이게 바로 이 놀랍고도 마법 같으며, 마키아벨리적이고 악마적인 공작의 결산일세. 이것이야말로 체스를 둘 줄 안다는 것이지. 통치한다는 건 이런 걸세. 원대하게 본다는 것voir grand 말이야. , 초상初喪, 파렴치. 이게 바로 계획일세. 그리고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레 자기 손을 보태게 될 거야.

  하는 수 없다, 기계 시대의 계획을 계속해서 그려 나가자. 유일하게 참된, ‘조화harmonie’라는 이 기호 아래에서.

  계획을 세우자. 사건의 규모에 걸맞는 계획을, 사탄의 계획만큼이나 커다란 계획을. 사탄을 몰아낼 계획을 !

  크게 ! 크게 !

(1932 3.)

 


 

모스크바

 

<그림 2>

소비에트 궁전

대강당 : 청중 15,000. 행사를 위한 야외 기단 : 음향이 정확하게 조정되었다는 조건 하에 50,000. 소강당 : 6,500. 광장에서는 엄청난 수의 군중이 원활하게 통행한다. 자동차들은 트렌치형 도로tranchée[1]로 다닌다. 주차장은 강당 아래에 있다.

 

<그림 3>

[중앙 제목] 필로티 도면. 건물 진입로.; [좌측 하단 제목] 지층 설계도; [좌측 하단 설명] 땅의 자연스러운 경사는 그대로 남겨진다. 자동차 순환로는 양쪽 측면, 지상 혹은 지하에 조성된다. 그것은 여러 개의 출입구에 모두 연결되어, 방문객을 자동적으로 분류한다. 보행자는 자동차와 절대 마주치지 않는다. 궁전 내부에는 25,0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으며, 그 외에도 행사를 위한 야외 기단에 50,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중앙 하단 제목] 통행; [우측 하단 설명] 방문객, 보행자 및 청중의 통행을 보여주는 단면도

 

 

1932. 소비에트 궁전 계획안, 모스크바.

모스크바. 1928-1931 통행의 분류classement de circulations

 

  땅은 움직임에 속한다. 보행자, 자동차.

  그 위에 있는 것들, 즉 건물들은 안정된 삶을 위한 것이다.

 

  이 둘 사이에는 어떠한 유사성도 없다. 땅은 건물 아래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곳에 자동차의 반듯한 강과 보행자의 호수를 형성해야 한다. 강들은 특정한 몇 개의 문으로 흘러간다. 보행자는 흩어진다. 이것은 도면의 새로운 경제이다.

 

  자동차의 강은 트렌치형 길이나 고속도로로 되어 있다. 지상 5미터 위에서부터, 건물들은 명확한 형태를 취한다. 통행의 분배는 아래에서, 즉 지면에서 이루어진다. 

 

<그림 4>

[좌] 여기엔 동적 기능이 제시된다. 통행의 분배. (필로티는 지면에 배치); [우] 여기엔 정적 기능이 제시된다. 사무실 (사무실, 클럽, 강당). 1928. 모스크바 경공업 궁전 (기존 첸트로소유즈). 현재 완공됨.

 

<그림 5> 

모스크바에의 적용

 

  모스크바 시의 도시화 기본 계획.

  1931, 모스크바 당국은 도시 개조와 관련하여 훌륭하게 작성된 설문지 하나를 나에게 송부하였다.[2] 만일 모든 도시들이 그러한 설문지를 보낸다면, 그들의 운명은 개선될 것이다.

  설문지에 답하기 위한 목적으로 빛나는 도시의 이론적 도판들이 확립되었다. 이는 근대의 도시화 테제이다. 

  나의 모스크바에 보내는 답변은 예기치 못한 운명을 맞았다.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로 그 기술적 가치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개인의 자유를 이 작업의 주춧돌로 삼았다는 이유로 나를 원망했다. 그리하여 교리들의 불길이 진지한 토론을 모조리 패주시켰다. 자본주의인가, 부르주아주의인가, 프롤레타리아인가 ? 나는 단 하나의 단어로 답할 뿐이다. 그것은 나의 행동 노선을 보여주며 나의 근적인 혁명적 태도를 규정하는 단어이다. 인간성humain. 이것이 바로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로서 나의 직업적 과업이다. 인간성.

  동정심도 참 많고, 프랑스 사람인 데다가 '빨갱이와는 거리가 먼 우리 동료분들께서는 [그들의 말을] 듣거나 읽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내가 모스크바를 파괴하려 한다 선언하고 써댔다. 반면 그들 자신은, 자기들의 그 훌륭한 봉사를 요청 받기만 한다면 [나보다 훨씬 더 잘해낼 수 있다는 듯이] …

  여백에 첨부한 도판은(빛나는 도시』 연작의 마지막 도판이다) 모스크바 파괴 계획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건설 계획이다. 이 도판은 [구획] 분류(zoning)를 보여주며, 도시가 여유로움, 유연함, 확장의 용이함 가운데 자신의 태도를 점차 벼려갈 수 있도록 하는 통행의 축들을 제공한다. 이것은 도시 생물학의 도판이다.

   오늘날, 오직 근대건축회의les Congrès d’Architecture Moderne만이 하나의 도시와 그 [도시가 위치한] 지역을 효과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생명선들에 대해 탐구하는 과제를 회원들에게 부과했다(18쪽 참조[3]). (장차 열릴 제5차 회의를 위해 부과된 과제이다).

 

<그림 6>

 

  소비에트 궁전, 모스크바 (288, 289쪽 참조[4]).

  행정동(그림의 좌측)은 지면에 무관심하다. 그것은 자유롭다. 나아가, 이 건물 아래로 펼쳐진 거대한 공동空洞은 배경의 풍경에 고도로 건축적인 액자를 제공한다.

  우측으론 위압적인 경사로가 있으며, 이것은 야외에 있는 5만 명의 청중 군중에게 기단을 향한 길을 열어준다.

  반, 대강당으로 향하는 진입로는 지면 높이의 층계참으로부터 연속적인 경사면을 따라 1 5천 명의 청중에게 제공된다. 이후 이 경사면은 오목하게 휘어지며 좌석까지 이어진다. 공공 건축물에서는 그 어떤 계단도 용인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물며 기념비적인 계단이란 두말할 필요도 없다 !

 

 

 

 



[1] 브라사이(Brassaï, 본명 Gyula Halász, 1899–1984): 루마니아계 헝가리 태생으로 파리에서 활동한 사진가. 1930년대 파리의 거리, 밤 풍경, 예술가들의 초상 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다.

 

[2] 1930 6, 르 코르뷔지에는 소련 당국이 모스크바 개조와 관련하여 제시한 30개 문항의 설문에 대한 응답으로 21개의 도면을 포함하여 총 66쪽 분량의 모스크바에 보내는 답변[« Réponse à Moscou »]’을 작성했다. 그는 크렘린, 붉은 광장, 볼쇼이 극장, 성 바실리 성당 등 극히 소수의 주요 역사적 건축물만 남겨두고 모스크바 전체를 뒤엎어 기계적이며 위생적인 도시를 건설하는 급진적인 개혁안을 제시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구상은 스탈린 정부에 의해 실제로 실행되지는 못했으나, 이후 그의 빛나는 도시'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3] 원문은 Lubinov. 이시도르 류비모프(Исидор Любимов, 1882-1937)의 오기로 보인다. 1926-30년 첸트로소유즈(Центросоюз: Центральный союз потребительских обществ, 소비자협동조합 중앙연합) 이사회 의장을 지냈으며, 1932-37년 소련 경공업 인민위원을 역임했다. 1928년 모스크바 첸트로소유즈 건물 건설을 논의하며 르 코르뷔지에와 교류했다.

 

[4] 이때 소비에트 평의회를 의미한다.

 


[1] 프랑스어 단어 ‘grand’ ’, ‘거대한’, ‘위대한’, ‘중요한’, ‘성인이 된’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해당 글에서 ‘grand’은 러시아어 볼셰(bolche, больше; 더 많이, 더 크게)의 동의어로 제시되며, 본문에서는 문맥에 따라 적절한 의미를 선택하여 번역하였다.

[2] 베르-갈랑 공원Square du Vert-Galant. 시테 섬Île de la Cité 서쪽 끝에 위치한 삼각형 모양의 작은 공원을 일컫는다. 

[3] 자크 앙드루에 뒤 세르소 2(Jacques II Androuet du Cerceau, 1550-1614). 앙리 3세와앙리 4세의 총애를 받아 퐁뇌프 다리(1578)를 비롯한 당대 유수의 건축물들을 설계했다.

[4] 코니스(fr. corniche; en. cornice). 서양 고전 건축에서 기둥 머리가 받치고 있는 세 개의 부분(코니스, 프리즈, 아키트레이브) 중 가장 위에 위치한 것으로, 건물에서 수평으로 살짝 돌출하여 벽면을 보호하거나 처마를 장식한다.

[5] 쇠시리, 혹은 몰딩. 건물의 파사드를 다채롭게 장식하는 입체적인 기둥 및 창틀 장식 등을 일컫는다. 단순히 시각적인 장식일 뿐만 아니라 창문이나 발코니 등의 개구부를 빗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 또한 있다.

[6] 아치 맨 꼭대기 중앙에 끼워 넣는 쐐기 모양의 가장 중요한 돌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Keystone.

[7]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한 420mm 구경의 초대형 곡사포의 별칭. 독일의유서 깊은 철강 및 군수기업이자 제작사인 크루프Krupp사의 당시 회장 부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독일어어로는 Dicke Bertha.

[8] 1927, 세계 최초로 미국의 항공기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가 비행기로 뉴욕에서 파리까지 대서양을 무착륙 횡단 비행한 일을 일컫는다.

[9] 네모난 응접실이라는 의미로, 여기선 1661년 루이 14세 재위 당시 루브르 궁에 재건된 홀을 가리킨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

[10] 루이 14세 재위 당시 설립된 왕립 거울 유리 제조 공장으로, 현재까지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에도 생 고뱅 유리가 사용되었다.

[11] 1836년 창립된 프랑스의 철강 및 군수기업.

 



[1] 지면 아래로 만들어진 도랑형의 길.

[2] 모스크바에 보내는 답변의 기초가 되었던 설문지를 의미하며, 원문의 ‘1931 1930년의 오기로 보인다.

[3] 18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집결 : 1928  사라la Sarraz 성城 회의.> 

  팔레  나시옹Palais des Nations [제네바의 국제연맹 본부 역주] '사건' 1927년 봄, 제네바의 [국제연맹] 궁전 건설 계획 구상을 위해 개최된 국제 공모전 심사위원단의 판결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6월에 열린 계획안 전시회로 떠들썩해졌다 (14 킬로미터에 달하는 도면이 전시되었다). 이 사건은 1927 12, 건축가들의 불법적인 지명에 의해 여론에 휩쓸리게 되었다. 팔레 데 나시옹 사건은 건축계를 뒤흔들었다. 건축계는 원칙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 결과는 새로운 시도를 열 수도, 혹은 그 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사유의 세계에 경종을 울렸다 (S. D. N.[Société des Nations, 국제연맹 -역주] 고전파les « Anciens »’ '근대파les « Modernes »’ 사이 벌어진 다툼, 보다 정확하게는 전투에서 '고전파'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 논쟁은 미학적 관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운명의 문제가 걸려 있었다. 건축이란 한 시대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며, [바로 이] 건축이 책임자들을 궁지에 몰아 넣었다. 이 문제는 제네바에서만 제기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어디에서나, 모든 것 속에서 제기되고 있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한 줄기의 섬광이 번뜩였다. 자연스럽게, 정확한 장소에서, 적절한 시간에, 하나의 모임이 이루어졌다. 스위스의 라 사라 성에서 였다. 원칙들은 정식화되어야 했으며, 전선戰線이 구성되어야 했다. 그리하여 근대건축국제회의Congrès internationaux d’architecture moderne'가 탄생했다. (La Ville Radieuse, 2e partie : Les Techniques Modernes., 2. Un Ralliement : le Congrès de la Sarraz 1928. )

[4] <그림 2>, <그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