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인-무브



작업실을 열며 : 인권에 전선이 필요하다구?





정정훈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웹진 인무브에 온라인 작업실(workshop)을 열면서 간판에 ‘인권의 전선들’이라고 적어놓았다. 이렇게 작업실의 이름을 짓고 보니 무언가 어색하다. 왠지 인권이란 말에 스며있는 평화의 이미지와 전선(戰線)이라는 단어에 깃든 전쟁의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충되는 느낌이다. 하긴 전쟁만큼 인권침해의 장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인권의 전선들이란 그래서 모순적 조어인거 같기는 하다. 


어쩌면 그 모순적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작업실의 이름을 ‘인권의 전선들’이라고 지은 것은. 모순에는 긴장과 갈등의 냄새가 난다. 그리고 사고한다는 것은 그러한 긴장과 갈등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인권이라는 이념은 과연 그 의미가 확정되고, 그 논리가 명확하며, 실현방향이 모두 확정되어 있는 완결된 이념일까? 인권은 단지 반인권적 현실과 충돌하고 투쟁하는 것이기만 할까? 인권 그 자체의 조건, 운동, 제도, 사상, 개념 내에는 모순의 계기란 없는 것일까? 그 역사와 이념 안에도 이미 긴장, 갈등, 충돌, 투쟁 그리고 조정과 협상의 계기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인권을 공부의 화두로 삼아서 연구를 해오면서 나는 인권과 반인권적 현실 사이의 모순만이 아니라 인권의 역사 혹은 이념 내의 모순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순이 인권의 역사와 이념을 끊임없이 전화시켜온 계기였다는 걸 확인했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의 모순들이란 다차원적이다. 인권과 현실 사이의 모순과 더불어 인권 내에 배태된 모순들이 존재하며 이 모순들의 공동작용에 의해 인권은 투쟁과 협상의 과정을 통과하며 전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권의 전선 또한 하나이지 않다.


그러한 모순들로 인해 인권에는 전선들이 생긴다. 긴장과 갈등, 충돌과 투쟁 그리고 조정과 협상이 이루어지는 다차원적 전선들이 말이다. 이 작업실에서는 그러한 전선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권과 그에 반하는 현실 사이에 그어지는 전선들만이 아니라 인권 안에 끊임없이 그어지고 다시 그어지지는 전선들을 말이다. 그 전선들을 탐색하며 인권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해방적 정치를 위한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 싶다.


하지만 그러한 탐색과 길 찾기 작업은 완결된 연구 작업일 수는 없을 거 같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얻게된 고민들, 아이디어들, 개념적 파편들, 이론적 착상들, 혹은 논평들 수준의 작업이 ‘인권의 전선들’이란 이름의 간판을 단 나의 워크샾에서는 이루어지게 될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워크샾에서의 작업이란 차라리 습작에 가깝다. 


기본적으로는 습작의 결과물들은 전시대에 부정기적으로 올려 질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달에 한편은 써보려고 한다. 그 정도의 마감기한이라도 없으면 ‘부정기적’이란 조건은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알리바이로 작용할 것이 경험상 틀림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실리는 글은 완성된 작업이 아니니 인용은 곤란하겠다. 다만 꼭 필요할 시 필자와 연락해주시길 바란다(leftity@nate.com). 문제제기와 비판은 환영한다. 

명색이 전선들이란 위험스런 기운이 맴도는 단어를 간판에 달았는데 토론을 회피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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