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선언과 세 가지 정치
정정훈(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발리바르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받았던 충격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새로웠던 것은 그의 프랑스혁명해석, 특히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에 대한 해석이었다. 나름 투철한 맑스주의자이자 유물론자로 자처하던 내게 프랑스대혁명의 이념이나 소위 ‘인권선언’은 부르주아지의 관념적 공문구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내게 맑스를 다른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이론적 관점과 맑스를 경유하는 정치를 사고하기 위해 유용한 개념적 수단을 제공해주던 발리바르가 프랑스대혁명의 인권선언을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여기서 인권의 정치를 적극적으로 개념화하는 부분에서는 이 선언에 대한 나의 선입관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여러 계기로 인권운동을 공부하고, 또 인권론들을 살펴보면서 프랑스대혁명의 의미도, 1789년의 선언이 갖는 의미도 단순히 부르주아지의 관념적 공문구로 치부하는 관점이 얼마나 나이브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선언이 언표하는 보편성의 정치학이 갖는 힘에 대한 발견은 자못 나에게는 흥분되는 지적 사건이었다.
그러던 차에 작년에 기회가 생겨서 인권선언의 정치에 대해서 정리해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언젠가 보다 꼼꼼히 작업하여 논문으로 쓰겠지만, 그 이전에 개점휴업 상태로 너무나 오래 방치해두었던 ‘인무브-정정훈 워크샾 : 인권의 전선들’에 세 번에 나누어 게시하고자 한다. 이 글을 계기로 ‘인권의 전선들’이라는 공간을 좀 활기있게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기입의 정치
1789년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에 대한 무수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 선언문은 근대정치의 기본적 질서와 방향을 정초한 문서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이 선언문의 무엇이 근대정치의기본적 방향을 정초하고 있다는 말인가? 1789년 선언문의 첫 조항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또 권리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천명한다. 바로 이 첫 조항의 첫 문장이야말로 프랑스 인권선언이 근대정치의 기본적 질서와 방향을 정초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합리적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근대정치는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 평등한 자유의 근거를 ‘출생’으로 제시한다. 출생이 모든 개인들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 것이야말로 근대정치의 기본 질서이자 방향성인 것이다.
프랑스대혁명 이전의 정치질서, 즉 근대 이전의 정치질서에서 각 사람들은 결코 평등한 존재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더 자유로웠으나 어떤 이들은 결코 그들만큼 자유롭지 못했다. 권리는 평등한 것이 아니었다. 근대 이전의 정치질서는 권리의 불평등에 기초하여 구축되어있다. 그리고 그러한 불평등의 근거가 바로 출생이었다. 출생에 따른 인간의 불평등이 지배해온 권리의 배분체제가 근대 이전의 정치질서를 관통해온 것이다. 신분제라 통칭될 수 있는 출생, 즉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에 따른 권리의 불평등한 배분에 기반 하는 정치질서의 장기지속을 전복한 혁명이 바로 프랑스대혁명이었다.1) 그 혁명의 핵심적 지향이 바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또 권리에서 평등하다”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의 첫 조항에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1789년 11월, 프랑스대혁명의 전율이 담긴 제퍼슨의 편지의 수신인이었던 토마스 페인은 2년 후 프랑스대혁명을 옹호하며 쓴 팜플렛, 『인권』에서 프랑스인권선언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인권선언의 처음에 나오는 선언적 서문에서 우리는 그 창조자의 비호 아래 국가를 수립하는 과업을 시작하는 엄숙하고도 장엄한 광경을 목격한다. 이 광경은 너무나도 새롭고 유럽 세계의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뛰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혁명이라는 말도 그것이 성격을 표현하기에 부족한 감이 있다. 그것은 그야말로 인간의 갱생을 보여주는 것이다.2)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이 출생이라는 단순한 사실이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근거가 되며, 국가는 이와 같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 보장과 신장을 위해 존재하며 작동함을 천명하는 선언이다. 페인은 이 선언문이 천명하는 바에서 완전히 새로운 국가질서가 수립되는 과정이 드러나고 있음을 본 것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국가는 더 이상 신분제라는 불평등에 기초한 권리의 배분이 아니라 평등에 기초한 권리의 배분을 권리체제의 근간으로 삼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프랑스대혁명기 최초의 인권선언이자 가장 대표적인 인권선언인 1789년의 선언은 국가의 초석을 인권에 두고자하는 선언이었다. 그것은 국가제도의 근간에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기입(inscription)하는 공적 문서였던 것이다. 즉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를 엄정하게 방지하고자 하는 방어적 성격의 선언이 아니라 국가에 의한 인권보장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적극적 성격의 선언이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의 정치성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인권의 달성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을 적극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정치이다. 국가의 존재 목적이 시민의 인권 달성에 있으며, 국가의 권력은 바로 인권의 달성을 위해 작동해야함을 공적으로 밝히는 것이 인권선언의 정치성인 것이다. 샌드라 프래먼의 개념을 원용하자면 1789년 인권선언은 인권의 달성에서 있어서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3)
이 글에서는 인권선언의 이와 같은 정치성을 ‘기입의 정치’라고 규정하고자 한다. 물론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의 구체적인 조항들과 문구들은 여러 가지 현실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선언이 반포되었다고 해서 실제로 그것이 주창하는 권리들이 현실 속에서 완벽하게 달성된 것도 아니다. 사실 이 선언문은 원래 계획과는 달리 미완의 상태에서 채택되었으며, 원안으로부터 수정도 많았다. 각 조항들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도 존재한다. 또한 이 선언이 명시적으로 주창한 바와 달리 결국 프랑스대혁명으로 수립된 국가체제가 실제로 모든 인간과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국가의 근본 목적으로 삼아서 작동한 것도 아니었다. 국가가 보장하는 권리로부터 너무나 많은 개인들이 배제되었고, 국가는 특정한 계급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기도 하였다. 현실적으로 성안된 선언문은 인민이 주장한 권리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한했고, 선언문의 이상들은 국가의 법령들과 집행에 의해서 제약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대혁명 이후 국가체제는 그 정당성을 1789년의 선언이 주창한 인간과 시민의 평등한 권리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 평등한 권리는 국가권력에 요청되는 정당성의 기초이자 명분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 기입의 정치가 갖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 ‘선언’(déclaration)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어단어 declaration은 불어단어인 déclaration에서 유래한다. 원래 déclaration이란 가신들이 영주에게 충성맹세를 하면 영주가 그들에게 내려주던 토지의 명부를 뜻했다. 이후 17세기를 지나면서 déclaration은 단지 토지명부만 아니라 절대군주의 공적 의사표명과 연관되어 사용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주권을 보유한 자가 자신의 뜻을 천명하는 행위가 바로 déclaration, 선언이었다.4) 그런데 1789년 왕이 아니라 시민들에 의해 선출된 의회가 이제 선언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의회가 ‘선언’이란 형태를 통해 인간과 시민들의 권리를 천명한 것은 그 내용만이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국가최고의 권력인 주권이 왕이 아니라 평등한 시민에게 있음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모든 인간과 시민의 평등한 권리가 주권적 행위인 선언이라는 형태로 국가체제의 근간에 기입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선언의 주체가 이렇게 변화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당연히 인민의 집결된 힘이 만들어낸 투쟁의 결과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789년 5월 5일 삼부제 개회이후 6월 17일의 국민의회 선포 그리고 7월 14일 바스티유 공격과 이어진 전국적 봉기의 여파로 왕당파는 항복하게 되고 8월 4일 봉건적 특권이 폐지된다. 의회가 주권자의 행위인 ‘선언’이라는 형식으로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표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봉기라는 인민의 힘 때문이었다. 그래서 발리바르는 프랑스대혁명에서 시작된 인권의 정치를 또한 봉기의 정치라고도 규정한다.
인권의 정치라는 통념은 도덕적 기원으로도 ‘인간’과 그 ‘권리들’에 대한 합법적 선언으로도 환원되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1789년 「권리선언」이래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라는 윤리와 개인적 자유의 조건들을 집단적으로 창출하려는 기획을 접합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만 저항의 통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충분치 않다. 그것과 함께 우리는 또한 넓은 의미에서의 봉기, 또는 심지어 영속적 봉기라는 관념에 준거해야 한다.5)
이 지점에 바로 ‘기입’의 정치로서 1789년 인권선언의 의미가 있다. 이 선언은 봉기라는 인민의 결집된 힘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민의 대표자들과 귀족의 대표자들이 의회에서 차분하게 토론을 벌인 결과로 인간과 시민의 권리가 ‘선언’된 것이 아니었다. 인민의 투쟁, 즉 봉기라는 정과 망치로 국가제도에 자유와 평등을 아로 새긴 결과가 바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인 것이다.
랑시에르는 아렌트의 인권론을 비판하면서 인권을 ‘자신들이 가진 권리를 가지지 않고 자신들이 갖지 않은 권리를 가진 자들의 권리’6)라고 규정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아렌트는 인권이란 시민권을 갖지 않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권리로서 사실상 아무 의미 없는 권리이며, 시민권을 가진 자들에게는 아무 필요 없는 권리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랑시에르는 인권에 대한 이러한 이중구속을 돌파할 정식을 앞의 문장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정식의 중요한 의미가운데 하나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그것들은 성문화된 권리이다. 그것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것으로서의 공동체의 기입의 산물이다. 그 권리들은 실존하지 않는 존재의 속성들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권리 없음의 현실 상황들이 그 권리들을 거짓이라고 비난한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또한 주어진 지형의 일부이기도 하다. 주어진 상황은 불평등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평등의 가시성의 한 형태인 하나의 기입이기도 하다.7)
여기서 말하는 성문화된 권리란 말 그대로 인권선언문과 같은 텍스트이다. 그러나 임의로 씌여진 텍스트가 아니라 사회적 삶이 이루어지는 세계 안에 당위적인 것의 위상을 가지고 포함된 공적 텍스트이다. 이와 같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권리가 인민의 힘에 의해 사회적 삶의 세계 안에 당위적인 것으로 존재하도록 하는 정치가 바로 기입의 정치인 것이다.
랑시에르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현존 세계 안에서 실효적인 것으로 만들어내는 최초의 행위를 ‘폭력’이라고 규정한다. 누구의 말은 말할 자격을 가진 자의 언어가 되고 또 다른 누구의 말은 무의미한 잡음과 같은 소리로 취급되는 세계에서 모두의 말이 동등한 언어가 되는 공통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언어의 자격을 갖지 못한 자들의 불법침입, 즉 폭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말하는 자들의 공동체’가 출현한다. ‘말하는 존재들의 공동체는 그에 앞서는 폭력 위에 그 실효성을 정초’8)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법침입, 폭력, 즉 인민의 결집된 힘의 봉기를 통해서 모든 인간과 시민이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진 존재임을 이 세계의 질서 안에 당위로 만들어내는 것, 국가제도의 근간이 바로 이와 같은 권리의 보장과 확장에 있음을 명시적으로 만드는 것, 국가권력의 정당성의 기초가 인권의 달성에 있음을 공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바로 기입의 정치이다. 인간과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국가체제의 근간에 아로 새겨 넣는 것, 그것이 인권선언문이 보여주는 기입의 정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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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분제를 권리의 역사적 배분체제라는 관점에서 규정하고 프랑스대혁명이 그러한 권리의 역사적 배분체제를 전복한 사건으로 파악하는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정정훈, 『인권과 인권들』, 그린비, 2014.
2) Thomas Paine, 박홍규 역, 『상식/인권』, 필맥, 2009, 206면.
3) Sandra Fredman, 조효제 역, 『인권의 대전환』, 교양인, 2009.
4) Lynn Hunt, 전진성 옮김, 『인권의 발명』, 돌베게, 2009, 130면.
5) Étienne Balibar, 윤소영 옮김,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문화과학사, 1995, 184~185면.
6) Jacque Ranciérer, "who is Subject of the Right of Man?", in South Atlantic Quarterly 103, 2004, p. 302
7) ibid.,pp.302~303.
8) Jacque Ranciérer, 양창렬 역,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도서출판 길, 2013, 158~15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