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의 정치
그러나 아무리 인권선언이 국가제도 안에 인간과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기입해 넣었다고 하더라도 실제 국가가 이 권리들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왔던 것은 아니다. 이는 단지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만이 아니라 근대 최초의 공화정을 탄생시킨 미국독립혁명과 그 혁명의 방향성을 천명한 미국의 「독립선언문」(1876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한 소비에트연합에서 선포된 「노동 피착취 인민의 권리선언」(1918년)조차도 ‘선언’의 문장이 현실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현실은 ‘선언’이라는 형식으로 기입된 인간과 시민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배반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기입의 정치란 한때 인민의 결집된 힘이 권리를 억압하는 권력체제를 전복했음을 단지 알려주는 일종의 기념비에 불과한 것일까?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우리는 기입의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기입이란 보존을 위한 행위이다. 그것은 어떤 가치, 의미, 내용에 물질성을 부과함으로써 그것들을 존속시키고자 하는 행위이다. 또한 기입은 기입됨으로써 현실의 세계 속에서 물질성을 얻은 것을 활용하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다. 인권선언이 기입의 정치라는 의미는 공적 선언문이라는 물질성의 형식으로 현존 세계 안에 새겨진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모든 이들이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발리바르는 인권선언에 제시된 보편적 권리로부터 배제된 이들이 자신들 또한 그 선언이 확인하는 권리들의 주체임을 주장하는 싸움에서 인권선언의 정치적 의미를 되새긴다. 다시 말해, 인권선언이 명시적으로 표명하는 권리들로부터 실제적으로 배제된 이들이 자신들의 해방, 권리의 쟁취를 위한 투쟁은 ‘이미 선언된 권리들의 향유’9)라는 형태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와중에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이 선포된 이후의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가령, 프랑스 파리에서 혁명이 발발하고 모든 인간과 시민의 권리가 평등하다는 선언은 곧바로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의 노예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노예들은 혁명을 일으켰고 식민지 본국의 혁명정부에 자신들 또한 프랑스의 백인들처럼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또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프랑스대혁명의 역사에서 권리의 실제적 향유로부터 배제된 이들이 1789년의 선언을 활용하면서 투쟁한 사례들은 여성들의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에서, 종교적 소수자들의 투쟁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은 식민지 아이티의 노예봉기로 이어지고 최초로 투쟁에 의한 노예제의 폐지를 이루어냈다.
기입의 정치는 기입된 것의 활용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이기도 한 것이다. 기입을 통해 인권선언은 권리로부터 실질적으로 배제된 자들이 권리의 주체가 되기 위한 어떤 근거로서 작동한다. 이런 맥락에서 랑시에르는 ‘인권은 자신들이 가진 권리를 가지지 않고 자신들이 갖지 않은 권리를 가진 자들의 권리’라는 인권에 대해 자신이 제시한 정식의 두 번째 의미를 ‘인권은 그러한 기입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자들의 권리’10)라고 규정한다. 인권은 성문화된 권리를 실질적으로 향유하지 못하는 자들이 그 권리를 실효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을 개시할 수 있게 하는 권리이다. 자신을 권리 없는 자들로 규정하고 권리의 배분으로부터 배제하거나 아주 제한된 권리만을 할당하는 권력에 맞서는 투쟁을 가능하게 하는 권리가 바로 인권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권선언에는 권리의 향유로부터 배제된 자들이 배제에 맞서 최초의 기입 행위를 되풀이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이미 함축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선언은 활용되기 위해 존재한다.
텍스트 자체가 그것의 기입 사건을 환기하는 한, 그 사건을 재활성화하여 텍스트를 텍스트 너머로 끌고 가는 행위 속에서 그 텍스가 의미를 갖는 한, 이 텍스트를 환기하는 것은 의무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언급했던 정세 속에서 말하자면, 그 텍스트는 헌장이라기보다는 헌장의 전문이며, 헌법이라기보다는 것을 정초하는 것의 선언이다. 왜냐하면 이 토대 자체는 사건의 반복 구조 속에만 그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11)
다시 말해서 ‘선언’이라는 텍스트는 단지 문자라는 물질적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표명한 문장들을 ‘선언’이라는 형식으로 현실에 기입한 ‘사건’, 기입의 행위인 ‘최초의 폭력’, 다시 말해 인민의 봉기라는 사건이라는 토대 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토대가 되는 사건이란 언제나 자신의 반복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선언’이라는 기입된 텍스트(선언의 문장들)에는 그 기입을 가능하게 한 힘의 반복 가능성이 또한 기입되어 있는 것이다. 즉, ‘선언’은 권리로부터 배제된 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데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담고 있다.
선언은 이미 일어났던 사건, 그 선언을 이미 씌어졌고 이미 의무화된 것으로 구성했던 사건을 반복한다. 선언 자체는 반복에 쓰이라고, 반복이 평등의 새로운 사건으로 산출할 수 있는 것에 쓰이라고 만들어지는 것이다.12)
‘선언은 선언을 가능하게 했던 기입의 사건, 봉기적 힘이 분출된 사건을 반복하는데 쓰이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한 반복이란 바로 선언에 입각해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자들에 의해 수행된다. 선언은 사건을 반복할 뿐만 아니라 사건을 일으키는 주체들의 구성을 반복한다. 선언에 적시된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권리들, 즉 인권은 이미 그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 자들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권리를 쟁취하려는 자들이 싸울 수 있게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인권은 ‘권리를 가질 권리’(아렌트)는 아닐지 몰라도 ‘권리를 갖기 위해 투쟁할 수 있는 권리’라 할 수 있다. 인권선언을 통해 기입된 것은 또한 이러한 기입된 권리들을 가지고 권리들을 제한하거나 박탈하는 권력에 맞서 투쟁을 반복할 수 있는 권리이다.
적어도 형식적으로 - 그러나 바로 이것이 물질적 무기가 될 수 있는 어떤 유형의 형식 그 자체다- 「선언」은 자유와 평등의 제도적 ․ 공적 각인으로서 시민성에 대한 요구를 제 나름대로 반복하는 권리에 대한 요구들을 ‘정치화’시키는 무한정한 영역을 개방한다. 이러한 무한정한 개방 속에 하인들, 즉 임금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요구와 또한 여성들이나 노예들의 권리에 대한 요구, 그리고 후에는 식민지 인민들의 권리에 대한 요구가 각인된다.13)
여기서 발리바르는 선언의 구체적 내용만이 아니라, 아니 오히려 선언이라는 형식의 의미를 강조한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권력관계에도 불구하고 선언이라는 형식을 통해 권리들이 공적으로 확증되었다는 것은 또한 그 권리들이 보편적으로 존중되어야 함을 요구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언의 형식이 권리들에 대한 보편적 존중을 요구한다는 것은 그러한 존중이 현실 속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거부되거나 부인되었을 경우, 혹은 어떤 이들이 그러한 권리로부터 배제되었을 경우 그러한 거부, 부인, 배제에 맞서는 투쟁의 반복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선언
인권선언의 반복이란은 무엇보다 인권선언의 공포라는 기입의 사건을 반복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반복은 당연히 최초의 기입을 그대로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다. 인권선언의 반복의 정치는 새로운 기입을 반복하는 것이다. 단지 남성 백인 부르주아만이 아니라 식민지의 인민들, 여성들, 농노들, 종교적 소수자들, 성적 소수자들, 프롤레타리아들이 또한 스스로를 선언이 명시하는 권리의 주체, 곧 인간과 시민임을 선언하며 그러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할 때 최초의 기입이라는 사건은 반복된다. 인권선언이 가지는 또 다른 정치성이란 반복의 정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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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Étienne Balibar, 서관모, 최원 역, 『대중들의 공포』, 도서출판b, 2007, 37면.
10) "who is Subject of the Right of Man?", p.303.
11)『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160면.
12) 같은 책, 160면.
13) Étienne Balibar, 윤소영 역,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도서출판 공감, 2003,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