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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면서도 내딛은 한 걸음 : 

한국 인권단체 연대기구의 역사와 인권운동사적 함의(2)



*이 글은 2018년 3월 21일 수요일 인권연구소 창이 주최한 <한국인권운동사 제1차 워크숍>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완성된 논문이 아니니 인용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정정훈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3.인권운동의 연대기구에 나타난 인권운동의 공통 의제


이상과 같은 인권단체 연대기구의 시간적 흐름은 각 기구별로 인권운동이 개별단체들의 활동을 넘어서 공동으로 대응해야 했던 인권운동의 주요 의제가 무엇이었는지, 즉 인권단체들이 연대를 통해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인권단체협의회

먼저 인권협을 보자. 인권협의 회칙은 조직의 목적과 활동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2조 (목적) 본회는 유엔세계인권대회를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의 취지와 성과를 조직적으로 계승하여 인권단체들 사이의 연대와 협력을 증진하고 국내외의 인권신장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3조 (활동) 본회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의 활동을 한다.

      1.인권현안에 대한 협의

      2.인권에 관련된 정보의 수집과 배포

      3.인권교육

      4.국제인권활동


인권현안에 대한 협의, 즉 국내 인권문제에 관련한 중점적 활동은 국가보안법폐지로 대표되는 과거 독재정권의 유제 및 과거청산 운동이었다. 이는 무엇보다 문민정부를 표방하며 개혁정국을 주도하던 김영삼 정권 초반이라는 정세와 맞물려 있는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영삼 정권이 민주화운동의 맥락에서 탄생한 정권임을 스스로 강조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의를 강화하고 사회경제적 제도 개혁을 시도하였지만 여전히 과거 군부독재세력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점과 사회경제정책에서 매우 보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 그 한계는 뚜렷하였다. 그러한 정권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이 당시 사회운동의 중요한 의제였다. 인권협은 국가보안법 문제와 독재정권에 의한 의문사, 고문 사건의 등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인권운동의 주요 의제로 삼아 당대 사회운동의 과제를 함께 수행했던 것이다.


인권협의 또 다른 주요 활동은 국제인권운동과의 연대였다. 인권협의 전신인 KOUNCH는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 아태지역 인권촉진단으로 선정되어 동북아지역에 국제인권정보를 나누는 연락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인권협이 이 업무를 이어가기로 하였다. 이 외에도 인권협은 유엔인권기구관련 사업들을 계획하는 등8) 국제인권레짐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고자 했다. 또한 아르헨티나 오월광장 어머니회 초청 사업, 일본 우토로 한인마을 지원 운동, 동티모르 독립관련 인권활동가 초청 활동 등을 통하여 국제인권운동을 전개해 갔다. 이는 비엔나 세계인권대회를 통해 발견한 국제적 인권기준과 인권운동의 국제적 지평 속에서 한국의 인권운동을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였다고 하겠다. 이후 이러한 경향은 현재까지도 지속된다.


국가인권기구와 관련된 연대체

공추위에서 공대위로 이어지는 연대활동의 핵심은 당연히 국가인권기구를 인권의 원칙에 부합하게 설립하는 과제가 차지하고 있다. 국내 인권운동이 국가인권기구(NI)에 대해서 알게 된 것 역시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였다. 그러나 한국의 인권운동이 국가인권기구 설립운동을 본격화하게 된 것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인 1998년이다. 이해에 공추위가 결성되면서 국가인권기구관련 운동이 인권운동의 중심적 의제가 되었고, 이 의제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활동한 공대위를 거쳐 2001년~2002년의 연대회의와 2003년의 열린회의에 이르기까지 인권운동 연대활동의 중심적 사안이 된다.


인권의 원칙에 부합하는 국가인권위 설립을 위한 연대활동의 핵심에는 당연히 인권의 제도화라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국가 기구와 법을 통해서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권리구제를 시행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든다는 문제가 국내 인권운동의 본격적 고민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주로 국가를 투쟁의 대상으로 마주해야 했던 한국 인권운동의 흐름, 아니 진보적 사회운동 전반의 역사에서 국가 제도를 통한 인권의 신장 가능성은 새로운 고민이었다.


이는 김대중 정권의 등장을 통해서 비로소 한국 사회는 체제전환기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김영삼 정권기부터 비교적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김영삼 정권은 그 태생적 한계가 분명하였고 이후 보수성을 강화하면서 군부독재제체의 유제를 거의 청산하지 못하였다. 반면 김대중 정권은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탄생한 민주화운동에 기반을 둔 집권세력이었고 이는 군부 독재 하에서 형성된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 제도와 규범을 혁파하고 인권과 민주주의의 원리에 기반을 둔 사회체제로 전환을 가능하게 하리라는 기대를 받는 국가권력이었다. 인권운동은 이 체제전환의 과제에서 국가인권기구가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권력을 통한 인권의 제도화가 체제전환의 수단이라고 감지하고 연대활동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회의는 13년간 활동한 연대기구로서 단명한 이전의 연대기구들보다 더 다양하게 시기별로 인권운동진영의 공통의제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출범초기인 노무현 정권 중반기의 과제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으로 대표되는 과거 군부독재 정권의 유제 청산과 신자유주의의 심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권리의 방어였다. 이 두 과제는 인권회의의 역사 내내 지속되었으며, 이는 2018년 현재까지도 중요한 의제인데, 이는 한국의 인권운동이 어떤 조건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국가보안법 폐지로 대표되는 군사독재정권의 유제를 청산하기 위한 운동이 인권협부터 인권회의를 거쳐서 현재까지도 인권운동의 공통의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민주화운동 세력이 세 번에 걸쳐 집권을 한 이후에도 대한민국 국가장치의 억압적 성격, 반인권적 성격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방증이라 하겠다. 더불어 1997년 IMF 관리체제 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된 사회권운동의 기조는 IMF로부터 2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인권운동의 중심적인 공통 과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말해, 국가장치의 억압성과 반인권성 및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한국사회의 인권침해 구조를 규정하는 주요한 조건이라는 점을 인권회의를 통한 연대활동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인권의 제도화와 관련하여서는 국가인권위 대응활동과 더불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으로 대표되는 반차별운동이 인권운동의 새로운 공통 의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경우, 인권단체들이 반드시 인권회의틀로 연대활동을 조직하지는 않았다. 반차별공동행동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같이 별도의 연대기구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위한 단위였다. 비록 인권회의가 주도적으로 반차별운동 및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한 반차별의 제도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지는 못하였지만, 국가폭력이나 사회경제적 권리 방어와 같은 사회구조 및 체제의 문제만 아니라 일상적 규범과 습속이 인권운동의 주요한 의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노무현 정권 후반기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는 민주주의의 후퇴와 국가폭력에 대항하는 운동이 인권회의의 중심 의제가 된다. 노무현 정권 후반기에는 평택미군기지 저지투쟁과 한미FTA 반대운동에 인권회의는 열심히 참여하면서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과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강하게 제기하였다. 특히 평택미군기지 저지 투쟁에서는 평화적 생존권의 개념을 제시함으로서 반군사기지투쟁에 대한 인권적 시각을 제출하였고 정부의 행정대집행을 인권활동가들이 비폭력 투쟁을 통해 일시적으로 막는 등 인권운동의 현장투쟁 직접행동의 양식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과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비롯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운동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 및 복직투쟁, 강정마을 해군기지 저지 투쟁, 밀양 송전탑 건설 저지 운동의 과정에서 일관되게 인권운동이 제기한 의제였고, 이는 세월호 진상규명운동에서도 중요한 의제였다. 특히 세월호 운동 국면에서는 존엄과 안전위원회 활동, 4.16인권선언을 비롯하여 안전의 문제를 인권의 차원에서 제기하고 제도화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4.인권운동의 공통 토대 구축


인권단체들의 상설적 연대기구는 한국 사회를 향한 의제를 인권단체들의 공동역량으로 대응하는 활동만이 아니라 인권단체들 내부를 향한 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활동했다. 인권단체 내부의 과제란 무엇보다 인권운동을 위한 공통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인권활동가 역량강화 

인권운동의 공통 토대 구축을 위한 기본적 사업은 활동가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이었다. 이는 인권협이 만들어지던 당시 논의와 초기 사업이 잘 보여준다. 비엔나 세계인권대회 참여 이후 국내 인권단체들의 상설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가칭 “한국인권단체협의회” 건설을 이한 제안」에는 상설 협의체의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로 “인권운동 활동가의 육성”을 제시되어 있고 인권협은 이를 인권협 회칙 제3조 활동의 3항 인권교육9)을 통해서 명문화하였다. 주로 1994년에 집중되긴 했지만 ‘한국의 주요 인권문제를 해결하는데 국제기구 및 제도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활동가들을 대상으로한 워크샾 개최, 인권운동활동가 양성을 위한 인권포럼 등이 진행되었다. 인권활동가들에 대한 교육으로서 인권협의 ‘인권교육’ 기획은 민중운동내지는 민족운동의 일부문이 아니라 독자적 사회운동으로서 사상적, 인적 토대를 마련할 시대적 필요와 관련된 부분이라고 하겠다.


공추위와 공대위 역시 인권원칙에 입각한 국가인권기구 수립을 위한 활동을 하였지만 인권활동가들에 대한 교육 역시 중요한 사업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공대위의 경우 5개 분과 가운데 하나로 연구교육 분과를 두고 정부인권법안에 대한 비판 및 대안적 법안을 마려하고 이를 인권활동가들에게 워크숖과 설명회 등을 통하여 교육하는 활동을 해 왔다. 연대회의 역시 조직 결성을 결의한 이후 참여 단체 활동가들을 국가인권위법, 인권의 제도화와 관련된 내부 워크샾을 통해 교육했다.


인권회의의 경우 이러한 인권활동가 교육이 보다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2002년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인권활동가대회10)를 통해서 강연, 토론회, 워크샾의 형태로 인권활동가 교육을 진행하였다. 또한 기본권 세미나를 비롯한 다양한 인권의제에 대한 세미나, 토론회 등을 통해서 인권활동가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사업을 지속해 왔다.


인권운동의 이론과 전략 구축

인권운동의 공통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또 다른 주요 활동은 인권운동의 이론과 전략의 구축과 인권운동관련 자료의 체계화였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1992년 간담회에 제출된 서준식의 구상에서부터 다른 사회운동과 구별되는 인권운동의 독자화를 위해서는 이론과 전략의 수립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나타나고 있다. 그 구체적 사업계획의 (1)~(3)까지는 모두 인권운동의 이론화 작업과 관련되어 있다.


하고자 하는 사업은 다음과 같다.


(1) 연구자, 법조인, 활동가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인권운동의 이론과 실천의 종합을 이루어 나간다.

(2) 연구분과에서는 실천에 활용 가능한 인권이론의 개발에 힘쓰며, 인권운동에 있어서 가능한 한 고도의 전문성을 축적함으로써 그 전문성을 여러 인권운동단체에 공급한다. 아울러 인권운동의 개념을 정리해 나감으로써 사회변혁운동 속에서 인권운동의 위상과 역할을 정립해 나간다.

(3) 연구분과 내의 기획분과(가칭)에서는 잇달아 일어나는 주요 인권사건을 검토하고, 그 중에서도 중요한 사건에 대한 철저한 입체적 분석을 즉각 시도함으로써 그 분석 내용과 거기에 대한 대응책까지도 인권 민주화운동 진영에 제시할 것을 목표로 한다.11)


그 다음으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권운동에 필요한 자료의 체계적 축적과 이를 바탕으로 한 능동적 활용이다. 당연히 체계화된 자료의 구축작업은 인권운동의 이론화 작업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4) 자료실은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인권관련 자료를 수집 축적하여 과학적 방법으로 정리하면서 인권침해사건이 일어나자마자 관련자료를 즉각 검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다. 이 자료는 각 인권운동단체에 대하여 늘 열려 있어야 한다.

(5) 연구분과 내의 국제인권법 분과와 사무국에서 세계의 주요 인권단체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외국 인권단체와의 정보 교환을 항상 유지하면서 이 네트워크를 국내의 인권단체가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12)

 

인권협의 경우에도 이는 중요한 과업이었다. 인권단체들의 상설 협의체 건설 제안이 있은 이후 KONUCH의 구성원이기도 했던 이대훈은 이 상설 협의체의 주요한 활동으로 인권이론의 연구와 자료실의 구축을 제안한다.13)


3.보충제안

-정책연구/두뇌집단 : 최소한의 공동활동을 잘 하기 위해서라도 정책/연구/기획 담당자들의 역할이 잘 이루어져야 하고 그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두뇌집단(think tank)를 구성하기 힘들더라도 정례화된 정책/이론협의모임 정도는 필요할 듯.

-언론 : 언론담당자를 특별히 두는 방안에 대하여 검토 요.

-자료실 : 이를 위해서 안정적이고 구모가 있고 서비스가 용이한 공동 「국제인권자료정보실」이 필요한데, 이는 ‘간사단체’가 별도로 있어야 한다. 일반적인 인권정보자료실은 현재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단체의 취약부문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듯. 이 정보자료실의 위치는 상근자들이 근무할 수 있고 정책연구자들이 드나들기 용이한 곳이어야 한다. 최소한 10평정도의 공간이 2-4년간은 적합한 크기 일 듯.


인권협은 이후 정례적인 정책토론회을 통해서 인권운동의 이론 및 전략 수립을 활동을 일정하게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또한 정례 정책토론의 결과물 역시 축적되지는 못했다. 자료실 사업은 주로 인권운동 사랑방의 몫이 되었다. 인권협 차원에서 자료실을 두고자 했고, 그 물리적 공간 및 관리주체를 사랑방으로 삼았으나 인권협에 참여한 제단체가 사랑방으로 관련 자료를 집중하였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사랑방은 비록 체계화에서는 불충분하였는지 모르지만, 지속적으로 자료를 축적하였고 이후 홈페이지에 소장 자료를 검색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14)


공추위-공대위, 연대회의-열린회의 등과 같은 국가인권위 대응 연대기구는 인권운동의 이론을 전반적으로 구축하는 작업보다는 국가인권기구일반과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와 관련된 법안 관련 자료의 생산에 연구기능을 중점적으로 두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인권운동의 이론화와 전략 구축에 대한 요구는 다각도로 있었다.


인권운동의 이론 및 전략의 구축을 연대기구의 수임 가운데 하나로 삼은 것은 인권회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권회의 출범의 직접적 계기가 된 2003년 인권단체의 공동행동 평가 자리에서 공동행동의 한계로 가장 많이 제출된 의견은 “인권운동의 전략에 대한 문제의식”15)이었다. 새로운 인권단체 상설 연대체 구성을 위한 1차 간담회에서는 당시 인권운동의 과제가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1) 인권운동진영의 연대 강화 ; 인권운동진영의 총체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현실이므로 역량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공동으로 대응할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 (2) 민중들의 저항을 엄호하자 ; 민중운동은 격렬하게 분출될 것으로 보이나 정부의 기만적인 개혁정책으로 고립된 속에서 진행될 여지가 매우 크므로 인권운동은 국가폭력이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지점에 대한 구체적인 폭로와 감시를 통해 민중 저항을 압살하려는 정부의 기도를 막아내야 함. (3) 인권운동의 전략적 방침을 확정하자 ; 김대중 정부에 이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완성으로 귀결될 것으로 예측되는 인권상황에서 인권운동이 진보적 관점에서 전략적인 방침을 확정하는 것이 시급. (4) 인권 의제를 확장하자 ; 차별, 정보인권, 사이버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 평화, 북한 인권, 과거청산, 집시법, 국가보안법, 법무부가 추진하는 법제 개혁, 국가인권위 사업에 대한 감시와 견제체제 구축, 기타 개별 단체들이 관심 갖고 추진하는 사업들에 대한 소통과 과제의 공유."16)


(1)과 (2)은 연대강화를 통해 당면한 현장투쟁에 대한 적극적 결합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과제라면 (3)과 (4)는 장기적 인권운동을 위한 이론과 전략의 수립이 인권운동에 필요하다는 고민으로부터 나온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인권단체 연석회의 2005년 활동 평가 토론회>에서 발표된 박래군의 발제문에도 드러난다. 그의 글에서 당시 인권운동의 한계로 평가된 것은 다음과 같다.


"인권운동 평가로 제시된 것은, △ 인권운동론이 없다, 운동이념과 이론의 급진화 요구됨, △인권운동의 전략 전술이 없다, 즉자적인 대응과 자족적인 형식의 운동, △운동의 파편화 현상 △대중적 기반이 없다, 대중을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 그 속에서 운동 주체들을 어떻게 발굴 성장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집요하게 고민해야, △국가인권위원회의 도전; 하위 파트너 경향.."17)


이후러도 인권운동과 관련된 평가에서 전략과 이론의 부족 내지는 불충분성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 된다. 가령 2007년 인권연구소 창이 인권활동가 50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는 당시 인권운동의 한계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지적된바 있다.


“맨땅에 헤딩을 해왔다. 구조적으로 진득하게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 테크니컬한 부분에서 자문을 받을 수 있지만 활동가만큼 제대로 된 논거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없다. 정부쪽에 들어간 사람이 많고 학자들 속에서 소통을 하고 뭔가를 만드는 작업들도 잘 진행되지 못하는 것이 연구자 집단이 없는 요인이다.” ; “왜 우리가 사회를 바꿔야 하고 어떠한 무슨 사회로의 변화인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는 집단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럴 때만이 당사자주의의 한계와 논리를 극복할 수 있다.” ; “인권연구는 기존 인권개념의 문제를 드러내고 재구성하는 작업 인권이 주창하는 가치들에 대한 철학적 정립을 해줘야 한다. 연구가 너무 법에 빠져있다.”; “학자가 없다보니 이론적 기반에 대한 공부도 활동가가 해야 한다.”18)


이러한 일련의 평가들은 인권운동의 연대기구가 내부적으로 인권운동의 이론과 전략을 구축하고 이를 위해서 자료를 체계화하는 것을 주된 수임으로 삼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아주 성공적으로 그 과업을 수행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13년의 역사 속에서 인권회의가 다양한 토론회와 워크샾을 통해서 인권운동의 이론과 전략을 구축하려 시도해왔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료의 축적, 인권운동의 이론과 전략 수립은 인권운동이 지속되는 한 항상 당면 과제 중 하나로 제기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리고 이 과제에 대한 고민은 이제 인권운동더하기의 몫이다.


5.인권을 향한 연대, 넥스트 레벨을 위하여


1992년 새로운 인권운동 단위를 만들기 위한 간담회, 인권협, 공추위와 공대위, 연대회의와 열린회의, 그리고 인권회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인권운동은 연대기구를 통해 공통의 과제를 대내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 노력은 결코 직선적 발전의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다.


1992년 간담회에서의 제안은 기존 인권단체들에 의해 사실상 거부되었고, 1994년 출범한 인권협은 3년 정도만 활동을 유지한데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새롭게 출현한 소수자 인권운동 등을 포괄하지 못한 한계를 노정하며 사라져갔다. 공추위에서 공대위로 이어지는 국가인권기구 대응활동은 한때 전국의 거의 모든 주요 사회운동단체를 인권의제로 체계적으로 묶어내는 성과를 냈지만 내부 입장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활동을 조기 종료하였다. 연대회의는 국가인권위의 구체적 설립과정에 개입하여 그 방향을 보다 인권의 원칙에 부합하도록 견인하고 국내외 인권현안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인권단체들의 연대였으나 국가인권위 기획단의 출범을 둘러싼 갈등국면에서 돌연 동력이 약화된 채 해체되었다.




그 이후로 열린회의라는 잠시 존재했던 연대체를 지나 인권회의가 결성되면서 인권단체들의 상설 연대기구가 만들어져서 13년간 활동을 지속했다. 단지 전통적 인권단체들만이 아니라 1990년대 이후 출현한 새로운 인권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오랫동안 공동투쟁과 내부 역량강화를 위해 활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권의제를 연대를 통해 제기하는 등 인권회의는 많은 성과를 내었다. 하지만 출범 이후 1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인권회의는 정기회의도 성사되지 못할 정도로 참여단체의 동력이 쇠퇴하였고 결국 2017년 인권운동더하기로 체제를 전환하게 된다. 이러한 인권운동의 인권을 향한 연대의 과정은 비틀거리는 발걸음들로 점철되었으나 또한 매번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권을 향한 연대의 발걸음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끝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 또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연대의 역사는 오늘의 인권운동에 어떤 지침을 주는 것일까? 이 질문에 함께 답을 구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인권운동에게 필요한 공동의 과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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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국인권단체협이회 창립대회 자료집』, 한국인권단체협의회, 1994, 12쪽.

9) 인권협 회칙에서의 인권교육은 인권활동가들에게 인권이론, 국제인권기준, 인권운동관련 정보 등을 교육하는 인권활동가 교육이었다.

10) 인권회의는 2006년부터 인권활동가대회를 공동주최하게 된다.

11) 서준식, 앞의 글. 230쪽.

12) 같은 글, 231쪽.

13)이대훈, 「가칭 “한국인권단체협의회” 건설 제안과 관련된 보충제안」, 1994

14) 사랑방이 운영한 온라인 자료실은 자료의 검색만 가능하지 온라인 상에서 열람은 불가능하였다. 검색과 열람이 온라인 상에서 가능한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은 2016년 인권연구소 창의 ‘인권 아카이브 사업’을 통해서 시작되어 현재 진행중이다. 지금도 인권아키이브 홈페이지에서 일부 자료에 대한 열람이 가능하다. http://www.hrarchive.org/

15)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 앞의 자료, 8쪽.

16) 인권단체연석회의, 「참고자료1 – 인권단체연석회의, 10년의 발검음_2003_2012」, 『인권회의 10년, 인권운동의 연대를 돌아보다』, 41쪽. 2012.

17) 미류, 「인권회의 역사 정리_2005녀」

18) 인권연구소창, 『인권활동가 50인이 말하는 한국인권운동의 현황』,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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