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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즘의 그림자

-미셸 마페졸리부족의 시대(1988/2017, 문학동네서평[각주:1]

 


박기형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1. 미셸 마페졸리의 전반적 문제의식

  『부족의 시대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미셸 마페졸리의 삶과 그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논의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려 한다마페졸리가 위치한 마주침과 헤어짐의 맥락을 쫓아가면서 그의 저작을 관통하는 전반적인 문제의식이 무엇인지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마페졸리는 1944년 프랑스 남부 그레스삭의 광산촌에서 태어났다그곳은 여러 이유들로 이주해온 이탈리아인들폴란드인들포르투갈인들 그리고 그 후 알레지인들과 모로코인들이 공존하는 마을이었다이와 같은 조건은 마페졸리가 노마디즘’, ‘역동적 뿌리내림’ 등의 주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광산촌에서 빈번히 벌어졌던 사고들에 대한 경험 속에서 삶과 연결된 죽음’, ‘비극이라는 테마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또한 마을의 관습과 일상적 삶을 통해 체화된 지식을 중시하게 되었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김무경 2007, 10-11).

 이러한 어릴 적 경험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68혁명을 전후로 스트라스부르에서 상황주의자로 활동했다는 점과 1970년대에 그르노블로 가서 질베르 뒤랑의 지도를 받았다는 점이다. 1960년대는 프랑스에서 앙리 르페브르를 중심으로 일상생활비판론이 크게 주목받은 시기였다일상생활에 대한 이론적 비판을 바탕으로 하여 정치적 실천을 주도했던 그룹이 바로 기 드보르가 이끄는 <국제 상황주의자(International Situationist)> 단체였다국제 상황주의자들은 동구권이나 제3세계와 달리 서구 유럽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오히려 반동적인 흐름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질문했다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일상생활을 문제 삼았고문화와 도시정신과 감정이라는 주제에 주목했다. 2차 대전 이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문화가 정신을 왜곡시키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항예술들 마저도 구경꺼리로 전락해버리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서구 유럽에서 새로운 혁명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상황주의자들은 현대 사회의 스펙타클의 구조를 분석하여 보여주려 했다나아가 일상생활과 문화에서의 변혁을 이루어 스펙타클에 의한 분리 상태즉 현실보다 환상을 쫓는 소외된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이영빈 2010).




 질베르 뒤랑 또한 일상생활에 대한 분석이 중요함을 지적했다하지만 뒤랑은 국제 상황주의자들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 서있다뒤랑은 현대 문명과 서구 사회의 보편 원리특히 자기동일성의 논리를 문제 삼았다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미지들의 범람은 수량화기계화로 특징지을 수 있으며그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자기동일성의 논리가 작동한다고 보았다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사라진 의미들본래적 의미의 이미지와 상징을 복원하기 위해선 새로운 인식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아리스토텔레스나 데카르트가 말했던 배타적 이분법이 아니라 제3자의 논리를 제시했다3자의 논리는 A와 not A가 단순히 분리 및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 중개자인 B를 통해서 A와 not A가 갈등과 긴장 속에서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뒤랑의 제3자의 논리는 서구의 전통적 합리성에 반발하면서 새로운 인식론을 제시하고 가치의 다원성을 강조하려는 시도였다(박치완 2010). 이렇게 볼 때마페졸리가 상황주의자들과 질베르 뒤랑과 만나면서 일상생활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과 이론적 논의를 만들어나갔다고 평가할 수 있다상황주의자들로부터는 현대 사회에서 일상생활이 갖는 모순적 지위의 중요성을질베르 뒤랑으로부터는 제3자의 논리를 통한 인식론적 접근을 배워나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추가적으로 언급해야 할 것은 바로 게오르그 짐멜과 현상학의 영향이다마페졸리는 짐멜이 주창한 형식 사회학의 형식을 참고하면서앙리 르페브르 및 국제 상황주의자들과 대립각을 세운다형식 사회학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지 않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강조한다(마페졸리 저·박재환 역 1994, 47). 다시 말해구체적인 것실제적인 것에 대한 이론적 분석이 갖는 한계를 인정하고현상이 유일한 실재라는 인식론적 기초 위에서 논의를 전개한다일상생활과 같이 우리 삶에서 가장 가까운 것들을 특정한 지식의 형식을 통해 또는 그 형식 속에 통합해내려 한다현상학의 표현을 빌리면현실의 다양성과 실재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현상 자체에 침전하여 현 존재의 본질을 구성하는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것들소규모의 상황과 집단들진부하다고 치부된 것들 모두를 조명하고자 한다예컨대사회운동을 이론이나 조직이 아니라 인민들이 주도한 것으로 이해하고 인류 역사의 동력을 인민들의 공통된 경험에서 찾으려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마페졸리가 말하는 형식이 단순히 언어학에서 말하는 시그니피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뒤랑이 지적했듯이시그니피앙과 시그니피에의 관계를 전통적이지 않은 방식즉 ()구조주의의 방식으로 사유하게 되면 시그니피에가 말소되고 종국에는 시그니피에와 시그니피앙의 관계 자체도 해체되고 만다예컨대장 보드리야르는 현대를 시그니피앙들만 교환되는 사회로 규정했다그렇기에 현대 사회에서 역사윤리삶 등은 모두 기호화 가능한 하나의 시뮬라르크에 불과하다. “시그니피앙이 시그니피에 선행하고 기호가 대상에 선행하며 파생 실재가 실재에 선행한다복사본이 원본을 대체하고 지도가 영토에 우선한다(박치완 2010, 137).” 이와 달리뒤랑은 시그니피에 주목하면서시그니피에와 시그니피앙의 관계를 전통적이지도 해체적이지도 않은 방식즉 제3자의 논리 속에서 재규정하려 한다시그니피에의 의미는 수없이 다양하며 항상 살아 움직인다하나의 시그니피에나 특정 시그니피앙으로 환원할 수 없다물론 시그니피앙은 종합보다는 분리전체보다는 부분에 기초한다따라서 시그니피에를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A와 not A의 공통토대를 이루는 B가 있다(박치완 2010). 시그니피에와 시그니피앙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토대가 있는 것이다뒤랑에게선 상징신화이미지원형 등이 거기에 위치한다면마페졸리에게선 일상생활이 그 자리에 놓인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마페졸리는 일상생활을 빌프레도 파레토의 잔기(residues)’ 개념과 연결시킨다파레토의 잔기는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유사하다의식 이외의 것들현대성에 포함되지 못하고 남겨진 것들이다바로 비합리성감정쾌락육체본능 등이다하지만 파레토는 이것들이 오히려 사회적 삶의 토대를 이룬다고 지적한다합리성이성도덕정신논리 등은 잔기의 파생체(derivations)’여기서 장 보드리야르의 말을 재전유한다면아마도 일상생활이라는 실재가 사회라는 파생 실재에 선행한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따라서 마페졸리가 볼 때다양한 일상생활의 면면들은 다원적이고 역동적인 시그니피에이고 일상생활 그 자체는 인간 삶의 근원적 토대인 잔기다일상생활과 그 면면들은 주어진 그대로 바라보면 포착될 수 있다하지만 특정 시그니피에에 의해 정렬되는 과정이나 시그니피앙에 담기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배제되거나 제약된다그러나 일상적 삶의 역동성은 시그니피앙과 시그니피에의 관계 아래에 항상 놓여있다삶의 역동성이 지하에 있다가 일상생활이라는 틈을 통해 끊임없이 표출된다이를 통해 사회적 삶이 매순간 ()구성된다따라서 일상생활은 창조적인 가능성변화의 가능성을 늘 함축한다그리고 일상생활은 쾌락적인 축제야만적인 형태종교화된 의례육체적인 교감 속에서 향유된다.


 여기서 마페졸리와 르페브르 간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사회 전체의 구조 속에서 일상생활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 대중의 현재적 삶을 있는 그대로 주어진 대로 받아들인다르페브르는 일상의 존재양식은 자본주의 구조가 드러나는 한 징후에 불과하다고 보았다따라서 일상생활은 기술발전 단계와 사회 전체 구조에 의해 크게 제약된다고 주장했다르페브르는 일상생활 속에서 이데올로기와 그로 인한 소외에 주목한 것이다하지만 마페졸리가 보기에 그러한 논의는 일상생활을 이론적으로 재단한 것에 불과하다질베르 뒤랑의 인식론적 논의를 참고한다면개인과 사회일상생활과 사회 구조를 대립시키는 것은 전통적인 이분법에 근거한 접근이다비록 르페브르가 기존의 사회학에서 무시했던 일상생활이라는 영역을 주요한 논의 대상으로 끌어올렸지만일상생활에 대한 접근이 여전히 전통적인 이원론합리성계몽주의 등 서구의 보편적 원리에 입각해 있다고 평가한다이에 반해마페졸리는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다양한 몸짓들이 삶 자체를 구조화하며 삶 속에서의 사회적 교환을 이루어낸다고 본다달리 말해일상생활의 형식과 내용은 사회에서 사람들이 공존하는 원인이자 결과다앞서 지적했듯이이러한 일상생활은 비합리적종교적야만적자연적인 특징을 보인다이를 분석하는 것이 마페졸리의 주요한 과제다.

 나아가 마페졸리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일상생활이 이끌어낼 변화에 주목한다우리의 일상생활이 현대 사회의 스펙타클에 포획되어 있다는 국제 상황주의자들의 비판을 수용하되일상생활이 오히려 변혁의 계기로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생활을 주어진 그 자체로 바라볼 때일상생활을 통해 우리는 기존의 사회학에서 설명하던 사회계약의 논리합리성에 근거한 조직 원리에서 포착하지 못한 다양한 집합적 주체의 생성과 해체의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다원화된 가치다양한 삶의 양태가 분출하는 양상을 이해할 수 있다물론 역사적인 시기를 구분하자면수단과 목표를 중심에 두는 합리적 사고와 일원화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교의체계가 강조되는 시기가 있었다하지만 최근 현대 사회의 변화는 이러한 모더니티의 시기를 벗어나 포스트모너니티의 시기로 이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상이한 체계 간의 이질성과 긴장이 강조되는 시기가치들의 다신교가 회귀하여 여러 가지 집합적 모임들(스포츠음악댄스섹스협회소규모 모임 등)이 다양한 영역 속에서 활발해지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이상의 논의들의 연장선에 서서 그리고 새로운 사회 변화에 주목하면서마페졸리는 디오니소스의 그림자(1982), 일상적 지식(1985), 부족의 시대(1988), 노마디즘(1997), 영원한 순간(2000) 등의 여러 저작을 통해 일상생활의 긍정성비생산적 삶의 의미지금 여기의 순간적 삶에 대한 체험이 만들어내는 일상의 다양한 양태들실증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지식사회학다문화주의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사회적 삶 등에 대해 논의를 펼친다.

 



2. 부족의 시대의 주요 논지

 그렇다면마페졸리가 부족의 시대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바로 모더니티 사회에서 포스트 모더니티 사회로의 이행과 그 의미다모더니티가 규정하는 사회는 프로메테우스적이다합리성개인주의 또는 개인과 사회의 이분법사회계약정당국가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기계적 구조다모더니티에서 말하는 사회적 것(le social)들은 연속적 배제의 과정생명력 없는 획일화를 특징으로 갖는다특정 가치들을 중심으로 배열되며정상성과 도덕을 강제하며기획·관리·규율·통제라는 기제를 통해 작동한다이러한 사회는 고정불변하며 불가역적이다이에 반해마페졸리가 주목하는 포스트모더니티 사회는 사회적 삶으로 구성된다지하의 중심성(centralité souterraine), 지하의 역능이 회귀한다사회성(socialité) 사교성(sociabilité)에 기반 하여 유기적 연대(solidarité organique)가 이루어진다유동적이며 가역적이다도덕이 아니라 윤리(비도덕주의)가 중시된다사회성의 역능(puissance sociétale)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집합적 주체가 출현한다.

 포스트모더니티의 사회에서는 모더니티의 에너지론즉 물질생산이라는 목적을 지향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비생산적 삶을 영위한다(마페졸리 저·이상훈 역 2013). 진보적인 서사가 아니라 연극이 상연되는 무대에서 무목적적인 놀이 또는 유희가 이루어진다사람들은 기능적으로 배치되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앞으로 나아가(progressa)지 않고 들어간다(ingressa). 외적 외연의 확대가 아니라 내적인 포화를 통해 다양한 집합적 주체 속에 참여한다개인과 사회의 대립이라는 구도는 사라진다영원 회귀 속에서 끊임없이 ()구성되는 사회적 삶에의 결합이 드러난다이러한 결합은 셸러가 말하는 사회적 공감’ 또는 마페졸리가 명명한 감정이입을 통해 이루어진다.

 포스트모더니티 사회에선 디오니소스의 그림자가 드러난다당위적인 도덕이 쾌락적인 윤리에합리적 이성이 광란적인 감성에 자리를 내준다감정이입은 바타유나 사드가 말했던 성교 없는 섹스에로티즘이다목적 없이 쾌락 자체를 즐기면서 집합적 육체를 형성하는 것이다또한 감정이입은 자기 자신의 파멸이다자신이 죽음으로써 새로운 것사회적 몸체(le corps social)가 탄생한다(마페졸리 저·이상훈 역 2013). 그럼으로써 주체와 타자의 대립이 사라지고 보편적 공감의 형성이 가능해진다일상생활에서 공동체를 이루는 숱한 집합적 행위사회적 행동들은 바로 이러한 형식의 토대 위에서 영위된다.

 마페졸리는 이러한 사회성의 형식(Forme), 소속의 메커니즘을 신화와 상징의례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한다그럼으로써 시원적인 것야만적인 것동물적인 것이 돌아왔다고 평가한다예를 들어마페졸리는 시원적인 종교들에서 말하는 영원한 여성성이 포스트모더니티 특징이라고 말한다고대 신화에서 여성성은 물과 같이 재생생명력자연동물성을 의미한다이러한 여성성은 풍부한 삶의 가능성을 무한하게 열어젖힌다(마페졸리 저·신지은 역 2010, 215-217). 나아가 마페졸리는 고대 다신교에서 말하는 자웅동체의 에로스에 주목한다최초의 남녀 양성영원한 아이는 일상생활의 또 다른 표현이다자웅동체는 우주적 융합의 특성죽음과 재생하는 삶의 순환을 가리킨다미르치아 엘리아데의 표현을 빌리면연극축제나 의례와 같은 신성한 것에의 참여를 통해 개인적 경험이 우주화 된다반대되는 것들의 일치하게 되고 모든 개개인이 세계의 사물들의 질서 속에 통합된다(마페졸리 저·신지은 역 2010, 219-223). 다시 말해다문화주의 속에서 사회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마페졸리는 개인주의의 쇠퇴와 신부족주의의 도래를 선언한다무목적적인 상호교통 속에서 다양한 가치가 인정되고 현재라는 매순간 다원화된 집단들이 무한하게 창조되는 공동체 사회 말이다. 21세기에 이르러 우리는 노마디즘으로 특징되는 사회에 대해 목가적으로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3. 마페졸리의 현재주의에 대한 비판자본주의적 시간성과 실천(praxis)의 문제 [각주:2]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그렇게 낭만적인가다양한 사람들이 상호교통하면서 수평적 관계를 이루어 살아가는 네트워크의 네트워크가 정말 존재하는가어쩌면 마페졸리의 인식론적 방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주어진 그 자체를 경험한 바대로 인식하는 것은 사태를 새롭게 조망해줄지 모르지만현상적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사태를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마페졸리가 베르그송을 경유하면서 말하는 직관이 가능하기 위해선 면밀한 분석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알튀세르가 스피노자의 개념을 빌어서 말했듯, ‘인식론적 단절이 요청될 수 있다달리 말해, 3종 인식에 2종 인식이 선행한다경험 그 자체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관념들의 재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우리가 경험한 바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다음으로우리가 경험하는 현대 사회의 유동성유기적 삶다양한 가치와 다양한 집합체들의 분출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우리는 마페졸리가 비판적으로 넘어서려 했던 기 드보르와 앙리 르페브르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현대 사회의 스펙타클자본주의의 구조는 마페졸리의 논의에서 배제된 것처럼 보인다물론 상황주의자의 실천적 전략 중 하나는 발터 벤야민이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시도했듯이영화라는 스펙타클의 주요 매체를 혁명적인 방식으로 재전유하는 것이었다따라서 상황주의자의 논리를 따라현대인들의 삶을 소외시키는 일상생활의 기제들을 새롭게 전유하여 일상생활의 형식이 가진 창조적 힘을 온전히 실현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하지만 마페졸리는 일상생활을 재전유할 수 있는지재전유할 수 있다면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 등을 전혀 논의하지 않는다오직 현대 사회가 포스트모더니티 사회로 변화했다는 전제 위에서 논의를 펼칠 뿐이다정말 사회가 변화한 걸까아니면마페졸리 개인의 낭만적 바람에 불과한 걸까?


 이미 우리는 시민사회거버넌스네트워크 사회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얼마나 무력했는지 경험했다마페졸리를 따라 사태를 있는 그대로경험한 대로 들여다보자이때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불평등의 심화혐오의 분출인종주의의 회귀 등이다따라서 마페졸리야말로 이원론적 도식에 사로잡혀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합리성에서 비합리성으로의 이행이 아니라 합리성과 비합리성 모두가 어떤 틀 내에서 또는 어떤 토대 위에서 상호작용하고 있는건 아닐까3자의 논리에서 말하는 B의 항에는 일상생활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위치해야 하는 게 아닐까예컨대놀이와 유희감성과 육체는 자본의 무대이자 놀이터다. ‘욜로(Yolo)과 트레바리’ 같은 사교 모임은 도대체 뭔가그게 마페졸리가 꿈꾸던 사회적 삶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자본의 빛이 디오니소스의 그림자를 모두 잠식한 듯 보인다.




<  19세기의  Treadmill >[각주:3]

 이와 관련해 특히 문제를 삼고 싶은 것은 마페졸리의 '현재주의'다마페졸리는 일상생활의 형식의 한 특징으로 지금 시간(Jeztzeit, now-time)의 카이로스(Kairos)적 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적인 폭력창건적인 죽음과 삶의 영원회귀를 말한다무목적적 시간성선형적 시간의 무화야말로 일상생활을포스트모더니티 사회를 특징짓는다고 본다하지만 이러한 현대 사회의 시간성은 목가적인 공동체 사회를 가능하게 해주기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축적하는 새로운 방식이 아닐까무엇보다 최근 플랫폼 자본주의타임 푸어과로 사회 등으로 명명되는 자본주의의 여러 측면들은 자본이 시간을 새롭게 포획하는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자본주의적 착취는 노동자라는 대상과 세계 시장이라는 공간만으로 설명 될 수 없다맑스가 일찍이 지적했듯이자본주의는 상대적 잉여가치 착취를 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압축시킨다추상적인 시간 단위 당 생산량을 증대시키는즉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이 전형적이다이때 노동자가 경험하는 구체적인 시간이 더욱 압착된다이러한 경향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유동성이 증가하는 것과 만나면서 더욱 심화된다언제 어디서나 접속 가능하게 되자 언제 어디서나 일을 하게 된다여가와 노동의 경계가 무너진다5일 근무와 주말이라는 일주일의 형태가 사라지는 것이다더욱이 노동의 형태에서도 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구분이 모호해진다네트워크의 네트워크는 공동체적 관계와 쾌락적 윤리를 실현시키기 보다는 자본의 축적을 실현시켜준다모든 현재매 순간일분일초가 자본이 이윤을 이끌어낼 기회를 제공하는 창구가 된다잠이라는 가장 신비적인무의식의 심층에 자리한가장 내밀한 의 삶의 영역이 위험에 처하기에 이른다(조너선 크레리 저·김성호 역 2014). ‘지금 여기’ 또는 영원 회귀라는 현재주의영속적 무시간성은 부족주의가 도래하는 순간도구원이 이루어지는 순간도 아니다모이쉬 포스톤이 말했듯(Moishe Postone 1993), 트레드밀(Treadmill), 즉 다람쥐 쳇바퀴 돌듯 늘 현재만을 살아가는 자본주의적 삶의 형상을 가리킬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마페졸리가 놓친 실천의 문제자본주의에 포획된 일상생활을 어떻게 재전유할 것인가의 문제로 돌아온다마페졸리는 우리가 도달해야 할 또 다른 이상모더니티 사회에서 말하는 자유주의나 공산주의가 아니라 포스트모더니티 사회가 지향하는 노마디즘을 제시했다그러한 이상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우리는 마페졸리의 전제를 비판하는 것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다우리가 도달해야 할 도착 지점만을 들어다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면한 현실우리에게 주어진 실재하는 것들로부터 새로운 출발점을 설정해야 한다는 말이다그렇다면마페졸리의 질문을 바꾸어 다시 물어야 한다자본이 모든 곳에 자신의 빛을 비추고자 할 때반드시 드리울 수밖에 없는 그림자는 어디에서 나타나는가우리가 포착해야 할 잔기지하의 중심성사회적 삶의 역능은 도대체 무엇일까자본주의라는 시그니피앙에서 배제된 시그니피에들은 무엇일까그것들에서 우리는 변화의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을까자크 라깡의 성차공식(sexsuation)을 빌려 말해보면자본(팔루스)의 구조적 논리가 작동하는 자본주의라는 남성적 구조에서 벗어나 무한 집합을 가능케 할 여성적 구조로 진입할 수 있는가팔루스(phallus)의 구조적 논리를 부정할 수 있는 계기는 어디서 발견할 수 있고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 걸까?

 

 


참고문헌 >

Moishe Postone. 1993. Time, Labour, and Social Domina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김무경. 2007. 자연 회귀의 사회학미셸 마페졸리파주살림출판사.

미셸 마페졸리 저·이상훈 역. 2013. 디오니소스의 그림자서울도서출판 삼인.

미셸 마페졸리 저·박재환 역. 2004. “일상생활의 사회학-인식론적 요소들.” 일상생활의 사회학파주도서출판 한울.

미셸 마페졸리 저·박정호·신지은 역. 2017. 부족의 시대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개인주의의 쇠퇴파주문학동네.

미셸 마페졸리 저·신지은 역. 2010. 영원한 순간포스트모던 사회로의 비극의 귀환서울이학사.

박치완. 2010. “질베르 뒤랑의 제3의 논리와 시니피에의 인식론.” 철학연구』 39, 132-167.

이영빈. 2010. “기 드보르(G. Debord)의 상황주의 운동(1952-1968)-일상생활비판을 위한 예술과 사회혁명의 결합을 중심으로-.” 역사학 연구』 40, 223-262.


  1. 본 서평은 2018년 3월15일 영꼬뮤날레에서 진행한 마페졸리 세미나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내부 세미나 용으로 작성한 글이어서 일관된 비판을 전개하기보다는 마페졸리에 대한 이해와 간략한 비판의 형식으로 썼습니다. 이 점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본문으로]
  2. 이하의 내용은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진행한 정용택의 <메시아적 시간 대(對) 자본의 시간: 자본주의적 시간성에 대한 비판적·혁명적 사유들> 강좌에 큰 영향을 받았다. 주요한 문제의식과 세부적인 내용들 모두 정용택의 강의록과 강의 내용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 [본문으로]
  3. 트레드밀은 1818년 영국의 기술자 윌리엄 큐빗이 죄수들을 통제하기 위해 발명한 기구였다. 물을 기르거나 곡식을 빻는 동력원의 역할도 했으나, 19세기의 트레드밀은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을 통제하기 위한 형벌 기구로 주로 활용되었다. 가혹한 형벌이라고 악명이 높아지자 1898년 영국법원에서 이 기구의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다. 이후 트레드밀은 운동기구와 의료도구로 다시 등장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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