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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비평 '제도'를 해체할 것인가? 

-롤랑 바르트의 비평 이론에 대하여

 


조지훈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이 글은 <인문예술잡지F> 23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도 비평 대 아마추어 비평

소르본 대학의 권위 있는 라신(프랑스 극작가) 연구자 레이몽 피카르(Raymond Picard)1965새로운 비평인가 새로운 사기인가?라는 팜플릿을 통해, 박사학위도 취득하지 않는 어느 아마추어 비평가의 라신 비평집을 저격한다. 

책의 어휘는 생물학, 정신분석, 철학 등에서 빌려온 것이며, 여러 분야에서 만나게 되는 신어를 본 따서 솜씨 있게 만든 상당수의 신조어를 포함하고 있다. 나는 비평가에게 은어를 쓴다고 비난하는 자는 아니다. 그것은 은어이니까 말이다. (...) 바르트의 은어는 완전히 다른 효과를 내고 있다. 순진한 것일지 모르나 여하튼 실제적인 그 기능은 여러 번 이미 본 것이지만 터무니없는 짓에 과학적 위신을 부여하고 진부한 것을 유리하게 분석하고 사고의 부정확함을(서투르게) 없애려는 것이다. (...) 그의 은어는 무용하다. 그것은 사고와 모순되는 엄격함의 표시라는 점에서 아니꼽다.[각주:1]

다시 말해 이 아마추어 비평가는 엄밀하지 않은 온갖 이론적 어휘들(은어)로 라신 텍스트를 덧칠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이론적 언어는 마치 텍스트의 과학성을 보증하고 있는 것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어서 위선적이다. 50년 전 글인데도 낯설지가 않다. 텍스트를 정밀하게 독해하기보다는 이론으로 비평적 책임을 넘어가려는 시도들에 대한 비판들은 지금도 흔치 않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라신의 권위자 피카르는 훗날 비평계의 거장이 될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을 해준다.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라신의 진실이 있다. 특히 언어의 확실성, 조리에 맞는 심리적 연루, 장르 구조의 필요성을 토대로 하면, 인내심 많고 겸허한 탐구자는 말하자면 객관성의 지역을 결정하는 확실한 사실을 드러내게 된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그는 아주 신중하게 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각주:2]

라신을 비평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학의 라신 연구자들이 보증하는 '보편적'인 라신의 내용부터 검토하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맞받아친다.

  피카르가 특히 나를 공격하는 것은 내가 그의 영역인 라신에 대해 책을 썼기 때문이다. 그곳은 아무나 들어와 사냥할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이다.[각주:3]

 피카르가 보기에 바르트는 감히 라신을 해석할 수 없는 아무나였다. 적어도 라신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라신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연구 바탕 위에 서 있는 (자기와 같은) 사람이여야 했던 것이다. 이에 맞서 바르트는 피카르가 전제하고 있는 보편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피카르가 언급하는 언어의 확실성, 조리에 맞는 심리적 연루, 장르 구조등에 대한 연구는 문학비평이 따라야할 보편적 덕목이 아니라, 19세기의 랑송으로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대학을 통해 이어져 내려온 문학 제도의 덕목이었던 것이다.[각주:4] 이러한 문학 제도를 통해 생산되고 인증되는 비평의 양상을 바르트는 대학비평혹은 랑송주의라는 이름으로 명명한다. 바르트가 피카르에게 저격을 당한 이유는 그의 라신 비평이 (감히) 대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랑송주의 전통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 봐야할 지점은 바르트가 제도에 말(혹은 싸움)을 거는 방식이다. 사실 피카르가 이토록 분노의 찬 비판을 한 까닭은 바르트가 먼저 선공을 친 이유도 없지 않다. 그저 바르트가 순진하게 라신의 텍스트에 당대의 최신 이론인 정신분석학을 접목한 해석을 내놓았는데, 제도권의 꼬장꼬장한 피카르가 한 마디 훈수를 던진 것은 아니다. 바르트가 라신에 관한 책을 썼지만, 1960년대 중반 당시 피카르에 비한다면 바르트의 학문적 인지도가 결코 높다고 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대학 바깥에서 활동하는 바르트의 작업이 대학 안에 머물고 있는 피카르로 하여금 수십 페이지에 해당하는 비판 팜플릿을 쓰게 할 만큼 분노하게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바르트가 단지 전통에서 벗어난 라신 비평을 썼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비평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는데 있다. 바르트는 두 개의 비평이라는 글을 통해서, 지금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는 작가의 전기적 사실과 텍스트의 관계에 주목하는 랑송주의 전통의 대학비평과 (주로 대학 바깥에서) 각종 이론을 활용하여 텍스트를 해석하는 해석비평 혹은 신비평으로 나뉘고 있다고 보면서, 다양한 비평을 인정하지 않는 대학비평에 대해서 비판한다.[각주:5] 이에 덧붙여서 바르트 자신은 비록 오래되긴 했지만 대학비평이 아예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텍스트의 다양한 해석을 꾀하는 신비평과의 공존을 통해서, 의의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비평이 작가의 전기적 사실들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이에 기반하여 신비평이 텍스트에 대한 무수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상이한 두 비평의 유토피아적 공존이 가능하다는 전망까지 내놓는다.

흥미롭게도 바르트는 이 글을 프랑스에서가 아니라 1963년 영국의 <타임스 문학판 Times Literary Supplement>과 미국의 <현대 언어 노트 Modern Languages Notes>에 먼저 기고한다.[각주:6] 프랑스에 출간한 것은 이듬해 1964년의 일이다. 대학의 문학연구자들이 발칵 뒤집어진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르트는 프랑스의 학문적 경쟁자인 영미권의 아카데미에다가 발표함으로서 대학의 권위를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랑송이라는 문학연구의 위대한 전통을 단지 하나의 비평 언어로 축소하고, 은근슬쩍 자기를 포함한 대학 바깥의 비평적 흐름을 새로운 언어로 포장해서, 마치 두 비평이 대등한 것처럼 소개하는 바르트의 태도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새로운 비평을 하고 싶으면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문학 연구 전통에 존경을 표하고, 그 기반 위에- 그러니까 뉴턴이 말했던 것처럼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선 난쟁이-가 되어야 하는데, 이제 막 태어난 난쟁이 주제에 거인과 동일한 취급을 받으려고 했던 행위가 문제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걸 자신들의 학문적 라이벌 국가들에 떠벌리고 다녔으니 분노를 살만 했다. 따라서 피카르의 바르트 비판이 그의 저작 구절구절 하나가 어떻게 라신의 전기적 사실과 문제가 되는지를 지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라신에 대한 자신의 전문성을 보여주어서 바르트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자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긴 비판 끝에 피카르는 다음과 같이 최종적인 코멘트를 덧붙인다.

나는 오랜 시간을 때로는 헛수고였으나 이 작품을 연구하느라 보냈다. 내가 그것을 한 것은 그게 특히 위험한 것으로 나에게 비쳤기 때문이다. 그 저자의 눈에 뜨이는 수완, 지적 상상력, 이데올로기적 요술, 변증법적 곡예, 언어적 조명-한 마디로 말해 이론의 여지가 없는 재능이지만 정도에서 벗어난 재능-이 모든 것은 여러 형의 독자에게 현혹할 매력이 없지도 않다. 라신에 대해서 중학교에서 배운 두 개의 비극과 메이어 빌라의 공연 밖에 모르는 자들, 진짜로 문학에 흥미가 없는 자들, 라신을 사고의 방편으로만 받아들이는 자들, 당연히 어떤 학교 교육의 상투어와 진부성에 염증이 나서 꼭 새로운 것을 열망하는 자들에게 말이다. [각주:7]

여기서 피카르의 타겟은 바르트와 같은 아무나따위가 라신을 비평하는 것에서 바르트의 비평이 아무나에게 관심을 끌 수 있는 위험성으로 이동한다. 바르트의 텍스트는 라신에게 무지한 대중들을 현혹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피카르는 바르트가 얼마나 라신의 구절들을 오해하고 있는지를 지적해준다. 이러한 피카르의 엘리트적인 태도에 바르트는 즉각 대답하지 않는다. 자신의 독해가 틀리지 않았음을 변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피카르의 엘리트적인 태도를 문제 삼지도 않는다. 바르트가 문제 삼는 것은 피카르의 엘리트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전제하고 있는 학문적 엄밀함의 부족함이다.

비평가의 객관성이란 그러므로 규정의 선택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그가 선택한 모델을 적용하는 엄격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건 하찮은 게 아니다. 하지만 신비평은 기술의 객관성의 조건을 조리정연함에 두고자 하여 그 외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으므로, 신비평에 싸움을 거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각주:8]

피카르가 라신 텍스트가 쓰인 17세기적 맥락은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카르가 17세기의 라신을 잘 알고 있다고 해서, 오늘날 라신의 텍스트가 어떻게 독해 가능한지를 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바르트는 피카르가 라신의 각 구절의 엄밀함을 따지고 있을 때, 비평이라는 기획의 엄밀함을 질문하고 있다. 라신 비평의 엄밀함은 17세기적 맥락에서 라신 텍스트의 한 구절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라신 텍스트를 특정한 방식으로 독해하는 관점의 정합성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카르가 라신으로 시야를 좁힐 때 바르트는 비평이라는 행위로 시야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바르트가 보기에 이른바 학문적 엄밀함은 세부적인 사실 일치 여부로 들어가는 것 이전에, 기획의 정합성을 따지는 것에 달려 있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학비평은 엄밀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비평적 기획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 채로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카르는 주요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대학 내의 유구한 랑송주의의 흐름 그리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위대한 비평가인 발레리를 예를 들면서 대학비평의 객관성을 전통으로 보증 받으려고 한다. 이에 대해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대학비평과 신비평의 학문적 전망의 차이에 대해서 지적한다.

(피카르가 지지하는) 발레리는 이른바 재능 비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작품과 저자의 표명된 의도를 연결시키려고 시도하는 대학비평을 매우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가치 비평, 즉 신비평이 지지하는 비평은 과거의 작품과 현재의 독자 사이의 관계를 훨씬 더 주의 깊고 세련되게 전개시킨다.[각주:9]

바르트는 기존의 대학비평에서 하는 것과는 다른 기획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피카르의 지적대로 바르트의 비평이 엄밀하지 않다기보다, 다른 엄밀함의 척도를 가지고 있다는 편이 옳다. 바르트의 비평 작업이 후대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비평과는 다른 새로운 이론적언어의 도입뿐만 아니라, 비평적 엄밀함의 새로운 기준을 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기준은 평가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기보다는, 비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의 결과물이다.

이 질문은 텍스트를 둘러싼 비평가의 위치를 다시 배치한다. 작가의 전기적 요소를 텍스트 해석의 주요 전거로 삼는 대학비평에서는 비평가가 작가와 텍스트 사이의 의미를 확정하는 사제였다면, 신비평에서의 비평가는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놓여있는 다양한 언어를 실험해보는 활동가였다. 신비평의 입장에서 비평가는 그가 아무리 기발하고 박식하고 논리정연할지라도 또 다른 독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피카르가 바르트에 대해 그의 작업이 주관적이라는 비난은 가치평가를 제외한다면 올바르게 본 것이다. 비평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비평가 자신이 사용하는 이론적 언어에 대한 의식을 갖춰야하는 체계적인 주관성이어야 한다.

이처럼 바르트의 '아방가르드'한 비평은 작업의 참신함과 비평적 활동의 재정의, 그리고 제도 사이의 긴장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승리를 이끌어낸, 작업과 전술의 결과물이다. 그가 모든 판을 다 짜놓고 활동한 전략가인지 아닌지의 여부에 상관없이 그의 활동이 전력적인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작업을 둘러싼 논쟁에서는 작업의 정합성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싸우고, 작업 바깥에서는 작업의 진정성을 호소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도적 긴장을 통해 싸움을 전개한 것이다. 만약 그가 프랑스에서 문단 내 권력을 고발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자신의 작업을 문단 내의 고루한 작업과 대비되는 신선한 작업을 하는 문단 바깥의 목소리로 위치시키는 방식을 고수했다면(우리에게는 더욱 익숙한 방식인), 논쟁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과연 지금과 같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싸움은 좀 더 깊은 곳에서 진행되어야 했다. 그리고 여기서 싸움의 핵심은 '비평'이라는 자신들의 활동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인 고민과 함께 한다. '아마추어' 비평가 바르트는 '전문' 비평가인 피카르가 자신의 작업 (이데올로기) 속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지반에 대한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입지를 펼쳤다. 따라서 논쟁의 결과는 제도권 바깥의 목소리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다거나, 대중적인 글쓰기가 엘리트적 글쓰기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비평의 재정의다. 바르트와 함께 비평은 작가의 전기적 사실의 방대한 축척을 바탕으로 한 텍스트의 해설이 아니라, 텍스트를 현대의 이론적 언어들과 접목시켜서 우리 시대의 인식 가능한 것을 재구성[각주:10]하는 작업이 된다. 이러한 재정의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새로운 비평적 흐름으로 이어졌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비평의 재정의를 통해 책을 읽는 새로운 독법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대중적 글쓰기를 단지 제도권 비평에 밀어 넣는 작업(비평의 대중화)이 아니라, 비평을 대중적 실천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비평은 비평가의 해설이 아니라, 독자의 독법이 된다.


비평 제도의 권력의지를 넘어서


바르트의 비평 제도와의 싸움에서 좀 더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바르트는 분명 물질적인 실체를 갖는 비평 제도권, 즉 소르본 대학을 위시로 하는 대학비평과 싸움을 전개했다. 그러나 바르트의 문제의식은 비평을 대학에서 독점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비평 제도는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가시적인 제도만이 아니라, 비평이라는 글쓰기의 실천 그 자체에 있었다. 만약 비평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결과물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한다면, 누군가 비평을 독점할 수 있는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규범(예컨대 피카르가 말하는 라신의 보편적 규범과 같은)에 입각한 근거란 존재할 수 없다. 근거가 있기 때문에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규범을 둘러싸고 대학, 교수, 논문 시스템 등의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에 효력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단지 권력을 향유하려는 패거리집단이 아니다. 문학을 사회에서 특정한 형태로 구성해내고자 하는 특정한 유형의 '권력의지'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가 구성하는 근거는 다름 아닌 '저자'. 비평이 제도로서의 권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텍스트의 근거가 되는 아버지, 즉 저자가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텍스트의 저자는 비평제도가 생기기 이전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하지 않았는가라는 예상 가능한 질문에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텍스트를 쓰는 사람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그렇게 쓰는 사람이 자신의 텍스트가 만들어내는 의미의 소유물인 것처럼 주장되지는 않았다. (바르트에 따르면) 중세의 수도사들은 텍스트의 저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텍스트를 필사하고 주석을 다는 필사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필사자들은 텍스트의 의미를 확보해주는 담지자가 아니라 단지 글쓰기를 수행하는 생산자에 불과했다.[각주:11]

바르트의 진단의 역사적 타당성을 떠나서 한 가지 납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에 모든 의미를 담지하고 있는 '저자'가 존재하고, 그러한 저자의 의미를 해설하는 전문적인 '비평가'가 있으며, 저자의 의미를 해설하는 비평가의 말을 듣고 있는 독자가 있다는 현실이다. 텍스트의 의미는 침묵하고 있는 저자를 둘러싸고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텍스트에 저자를 부여하는 것은 그것에 안전장치를 부과하고, 최종적인 기의를 제공하고, 글쓰기를 봉쇄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비평에 아주 걸맞는 것이다. 비평은 작품 아래에서 저자(혹은 그 위격에 해당하는 사회, 역사, 심리, 자유 등)를 발견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삼는다. 그리하여 저자가 발견되면 텍스트는 설명되고, 비평은 승리한다. 따라서 저자의 통치는 역사적으로 곧 비평의 통치였으며, 그리고 이러한 비평이 오늘날 저자와 더불어 붕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각주:12]

바르트의 유명한 저자의 죽음테제는 이런 맥락(사실상 비평의 죽음과 같이 찾아오는)에서 제기된다. 바르트의 주장대로 비평이 텍스트를 통해 우리 시대의 인식 가능한 것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라면, 그래서 그러한 비평의 정의를 더욱 밀어붙여 필연적으로 텍스트에는 텍스트를 설명하는 무수히 많은 언어가 필요하다면, 의미를 담지하고 있는 제도로서의 저자는 죽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저자의 죽음은 텍스트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의 면죄부를 주는 무정부의적 독해에 대한 옹호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텍스트의 의미를 담지하고 있지 않단 말이 곧 독자가 의미를 결정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는 말로 연결되지는 않는다.[각주:13] 오히려 저자의 죽음은 텍스트를 쓰는 저자 자체도 하나의 텍스트의 연쇄망 안에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의미를 확정지을 수가 없다는 말에 가깝다. 저자는 아무런 텍스트 없이 텍스트를 쓸 수 없다. 그가 독자로서 읽었던, 혹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의 신체에 각인된 사회적, 역사적 맥락들이 텍스트화되어 있다. 이른바 '상호텍스트성'이라 부르는 텍스트의 네트워크가 저자의 글쓰기 안에서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미를 확정짓는 저자란 없다. 저자 또한 무한히 이어질 텍스트의 연쇄망에 놓여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텍스트를 꺼내어 읽는 독자 역시 텍스트의 연쇄망 속에 있다. 읽기는 오로지 그 이전의 읽기와 함께 시작한다. 따라서 독자가 텍스트와 만나는 순간은 저자가 글쓰기로 물질화시킨 텍스트 네트워크에 자신의 텍스트 네트워크를 연결시키는 과정이 된다.

따라서 바르트의 주장은 저자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읽자가 아니라, 좀 더 복잡한 네트워크의 실타래 속에서 텍스트를 읽자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는 바로 이론적 공간으로서의 '독자'의 탄생을 의미한다.[각주:14] , 비평제도가 구성해낸 이론적 형성물로서의 '저자'에 대항해서 바르트는 이론적 '독자'를 제안한다. 이론적 독자는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복수 계열들로 이어지는 텍스트가 모아지는 공간이다. 텍스트 속에서 계속해서 텍스트를 생산해내는 현대의 필사자가 바로 '독자'인 것이다. 이처럼 이론적 독자를 중심에 놓고 비평을 사유하게 되면, 저자의 통치 아래 놓여 있는 비평은 전혀 다른 방식의 글쓰기로 변모한다.

흔히 해체비평의 사례라고 알려진 바르트의 <S/Z>는 다름 아니라, 이런 이론적 독자를 중심에 놓고 글쓰기를 실천한 사례다. 텍스트의 의미는 구절구절마다 그리고 상이한 코드에 의해서 복수화된다. 이 작업의 의의는 저자를 해체시켰다는데 있다기보다는 의미를 복수화시키는 독자라는 공간을 탄생시켰다는 데 있다. 그 일례로 바르트는 <S/Z> 작업 이후에 자신에게 보낸 무수한 독자 투고를 예를 들고 있다.[각주:15] 바르트의 텍스트를 읽고 나름대로 <사라진느>를 읽은 독자들이 무수한 의미들을 덧붙여 보내고 있었던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바르트가 보기에는 저자의 죽음 이후 어떻게 독자로서 텍스트를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독자는 저자의 의미를 수용하는 자가 아니라, 텍스트를 읽고 자기 나름대로 인식 가능한 것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자신의 언어를 덧입히는 과정에서 텍스트를 생산하는 자다.

이처럼 바르트의 '독자 이론'에 따르면 제도비평과 제도 바깥의 비평에 위계는 없다. 이론적으로 고찰했을 때 의미를 담지하는 '저자'는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여기에 붙어있는 비평제도 또한 확고한 근거가 없다.[각주:16] 즉, 저자와 독자의 존재론적 위계는 없다. 사실 이러한 위계에 대한 질문 자체가 바르트의 입장에서는 우스울 수 있다. 왜냐하면 바르트가 이론적 독자를 설명하면서 예시로 드는 중세의 필사자는 서로 우위를 가르려고 경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사자는 텍스트의 의미를 생산할 뿐이다. 위계를 따지려고 하는 것은 저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비평제도가 만들어낸 그림자 효과에 불과하다.

만약에 우수 저자를 선정하듯, 텍스트를 생산하는 작업에 우위를 가릴 수 있는 것, 즉 누가 우수한 독자인가를 가리는 것은 텍스트를 생산하는 집단과 거리를 둘 경우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지, 텍스트를 생산하는 독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본질적이지 않다. '(생산적인) 독자들' 혹은 '아마추어 비평가'는 텍스트를 생산하는 자들이다. , 자신들의 작업이 어떻게 비추어지고 어떻게 인정되는지에 따라서 규정되는 자들이 아니다. 이런 인정욕망인 존재한다 한들 이차적인 것이고, 보다 선차적인 욕망은 텍스트의 의미망을 생산하는 아마추어적 행위에 있는 것이다. 바르트의 독자이론에 비추어봤을 때, 아마추어적 행위는 생산 속에서 의의를 찾지 누군가에게 의미를 강요하기 위한 권력의 쾌락 속에서 의의를 찾는 행위가 아니다.

따라서 바르트가 무너뜨렸던 것은 소르본 대학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비평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의미의 담지자로서의 저자라는 '권력의지'와 싸웠던 것이다. 제도권이 비평이라는 활동을 독점하고 있어서 문제가 아니라, 비평제도가 근거하고 있는 권력의지에 대한 문제제기, 이를 통해 새로운 글쓰기를 생산하는 실천이 바르트가 '아마추어 비평가'로서 문학계에서 평생에 걸쳐 싸우고 실천해왔던 것이다.


아마추어적 실천의 이중전선

저자의 독점을 해체하고 의미의 자유를 부르짖는 문예 운동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멀리 보자면, 니체가 <즐거운 학문>에서 신의 죽음을 선언하면서 의미는 근거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창안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주장했던 시기부터, 20세기 초반에 초현실주의를 위시한 수많은 아방가르드 문예운동과 러시아의 형식주의자들까지, 저자의 죽음은 다양한 방식으로 수차례 제기되었다. 바르트와 가까이 있었던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도 바르트에 10년 이상 앞서서 <문학의 공간>을 통해 저자의 죽음을 제기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죽음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한 번의 표어가 아니라, 반복되는 슬로건이다. 왜냐하면 저자는 제도와 함께 탄생하고 물질적 효과를 가지면서, 보다 심층에서는 '권력의지'를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의 통치와 싸우기 위해서는 저자를 만들어내는 권력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저자를 형성하려는 권력의지와 싸워야 한다. 의미를 담지하고 있는 저자에 복종하면서 독자들을 의미의 통치 아래 굴종시키겠다는 '권력의지'가 작동하는 한 피카르는 언제 건 다시 부활한다. 바르트가 피카르와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저자의 통치가 지니고 있는 반생산적 성격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날에는 비평의 영역에서 또 다른 반생산적 경향이 독자의 편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취향 존중이라는 말로 자신의 취향을 방어하는 태세는 저자의 죽음 이후 등장하는 전형적인 반생산적 경향이다. 적어도 바르트가 제기한 '저자의 죽음' 논의에 비추어보자면, 취향이 존중되어야할 근거는 없다. 취향은 생산되는 것이고, 존중되어야할 것은 다양한 취향이 만들어지는 토양이지 하나의 취향이 아니다. 취향이 다양화되는 근거와 하나의 취향이 존중되는 것은 다른 층위다. 하나의 개인적인 해석은 취향존중으로 보존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취향으로 연결되고 상호 침투하면서 증식되도록 두어야 한다. 텍스트가 권력을 발휘하는 제도에 의해 독자들을 하나의 보편적인 의미망 안으로 굴종시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독자들의 해석에 취향 존중이라는 명목으로 침투불가능하게 개인화시키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바르트 이후에 저자의 통치를 넘어서, 의미의 생산을 향한 독서의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독서의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단위는 서로 무관하게 독서하는 개인들이 아니라, 아마추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트에 따르면 아마추어는 제도에 속하지 못하는 개인들이 아니라, 하나의 실천적 양식에 의하여 정의된다. 바르트는 자신의 저작 곳곳에서 아마추어에 대한 언급을 하는데, 이는 문학에 대해서 논의한 글보다 특히 아마추어 음악을 논의하는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연주자와 청자의 분할로 작동하는 19세기 근대의 음악적 관습이 탄생하면서 소멸시킨 아마추어 음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아마추어는 기술적 부족함보다는 어떤 특별한 스타일에 의해 정의된다. 그런데 그러한 스타일로 정의되는 아마추어 음악은 오늘날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절대로 아마추어적 스타일을 제공하지 못한다. 아마추어 음악은 우리를 정서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음악을 직접 만들고 싶게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각주:17]

무지카 프라티카 Musica Practica에서 바르트는 18세기 귀족의 살롱에 있었던 음악적 관습인 무지카 프라티카에 대해서 언급한다. 콘서트홀의 음악과 달리 살롱의 음악은 연주자와 청자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살롱에는 음악을 연주하고 듣고 있는 모두가 악기를 할 줄 알았고, 따라서 연주를 귀에 듣기 좋은 음악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의 입장에서 주의 깊게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가 연주를 할 줄 알았고, 따라서 듣는 행위조차도 '음악적 실천'에 입각했던 것이다. 바르트에 따르면 아마추어란 이렇게 생산자/소비자가 분리되지 않은 채로 하나의 실천에 의해서 느슨하게 연결된 일시적 집단화에 의해서 정의될 수 있다.

이쯤 되면 바르트가 콘서트홀을 부정적으로 언급하면서 살롱의 소멸을 아쉬워하며, 살롱을 되살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르트는 살롱으로의 회귀를 주장하지 않는다. 살롱은 귀족이 통치하던 시절의 산물이다. 살롱의 음악적 실천은 비록 그 살롱 내부에서는 생산자/소비자가 구분되지 않는 아마추어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을지는 모르지만, 그 음악적 실천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귀족이야만 했다. 사실 콘서트홀은 귀족만이 향유하던 음악을 대중에게까지 가지고 내려왔다는 점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저변을 확대했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적 성과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연주자/청중을 분할한다는 점에서 음악적 실천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특권화 된 측면도 있다. 따라서 양자를 지양해야 한다. 귀족만이 입장할 수 있는 살롱과 연주자와 청중이 분할되는 콘서트홀, 양자에서 이루어지는 음악적 관습 모두를 말이다. 바르트는 음악 역시 텍스트를 생산적으로 독해하는 독자처럼 실천적으로 향유하기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베토벤 음악을 알 수 없는 어떤 지점까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저 수동적으로 들어서는 안 되고, 음악을 능동적으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음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수동적으로 악보 앞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는 것이 아니다. 베토벤을 읽는다는 것은 베토벤을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을 어떤 실천적인 상태로 위치 짓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베토벤의 음악의 위치를 변경하고, 재형성하고, 나름대로의 조화를 만드는 등의 일들, 다시 말해 음악을 다시 구성하는 일이다. 베토벤의 음악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음악에 개입하는 것이다.[각주:18]

따라서 아마추어적 실천에서 중요한 전략은 단지 제도권 바깥에서 살롱과 같은 작은 클럽을 만들어서 운용하는 일만이 아니라,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나누는 제도의 분할과 생산자와 소비자로 나누는 실천의 분할 양자를 가로지르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 어려운 작업에서 중요한 덕목은 바르트의 말마따나 반-나르시시스트가 되는 것이다.[각주:19] 비전문가와 소비자의 연합이 나르시시즘으로 묶인다면, 예컨대 전문가와 대비하여 우리는 비전문가 집단이기에 가치가 있다든지, 소비자도 생산할 수 있다는 행위가 아마추어 혹은 프로컨슈머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굳어질 경우, 아마추어적 실천은 전문가의 창백한 보색대비로서의 비-전문가/아마추어라는 정체성에 복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을 획득한 주체들은 텍스트를 향유하는 실천에 의해 묶이기보다는 전문가를 공격하기 위한, 니체의 표현대로라면 원한의 공동체를 구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필경 소비자를 생산자의 위치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오늘날의 마케팅 기법에 좋은 타겟이 될 것이다. 이 모든 난관을 넘어서기 위해선 우리에겐 아마추어라는 정체성의 확립보다 더 많은 아마추어적 실천들이 필요하다




  1. 롤랑 바르트 외, <현대비평의 혁명>, 김현 편역, 홍성사, 1989. 93~95쪽. [본문으로]
  2. 같은 책, 100쪽. [본문으로]
  3. 롤랑 바르트, <목소리의 결정>,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6. 55쪽. [본문으로]
  4. 롤랑 바르트 외, <현대비평의 혁명>, 김현 편역, 홍성사, 1989. 37쪽. [본문으로]
  5. 같은 책, 28쪽. [본문으로]
  6. 조나던 컬러, <바르트>, 이종인 옮김, 시공사, 84쪽. [본문으로]
  7. 랑 바르트 외, <현대비평의 혁명>, 김현 편역, 홍성사, 1989. 106쪽. [본문으로]
  8. 같은 책, 139쪽. [본문으로]
  9. 롤랑 바르트, <목소리의 결정>,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6, 58쪽. [본문으로]
  10. 롤랑 바르트 외, <현대비평의 혁명>, 김현 편역, 홍성사, 1989, 43쪽. [본문으로]
  11. 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 김화영 옮김, 동문선, 2002, 31쪽. [본문으로]
  12. 같은 책, 33쪽. [본문으로]
  13. 저자의 죽음은 저자의 추방이 아니라, 텍스트의 모든 의미를 담지하고 있는 대문자 저자의 죽음이다. 따라서 바르트는 텍스트를 해석하기 위해 소문자 저자에 대한 참고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본문으로]
  14. 같은 책, 35쪽. [본문으로]
  15. 같은 책, 159쪽. [본문으로]
  16. 여기서 근거가 없기 때문에 무용하냐는 반문은 불필요한 질문이다. 유용함은 근거로 인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효과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바르트의 말마따나 저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대학비평은 작품의 보편적인 규범을 다루기 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전기적 자료들을 수집한다는 측면에서 유용하다. [본문으로]
  17. Roland Barthes, Image, Music, Text, trans. Stephen Heath, Hill and Wang, 1977. 150p [본문으로]
  18. Ibid, 153p [본문으로]
  19. 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 김화영 옮김, 동문선, 2002. 208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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