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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금융화 시기 도시 재개발의 전략적 수단 - 2




박기형(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3. 전략적 사업 방식으로서의 공모형 PF

 


3-1. 공모형 PF의 정의와 법제도적 근거


 

  공모형 PF사업은 공공부문이 보유하고 있는 국공유지를 대상으로,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을 수행할 민간사업자를 공모하여 선정하고,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공동으로 출자하여 법인세법 상 PFV를 설립하여, 자금을 조달하고 사업을 시행하는 민관 합동방식의 사업을 말한다(전광섭 2010, 297; 김종하 2011, 34).[각주:1] 공모형 PF사업은 앞서 언급한 민간투자법법인세법에 근거를 두고 도입되었다. 본격적인 사업 시행은 20017택지개발촉진법시행령 개정(택지촉진법 시행령 제13조의 2 5항 제53)으로 지역과 도시 내 복합적인 개발이 필요한 구역은 사업 공모에서 선정된 자에게 수의계약에 의해 국공유지를 공급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공모형 PF사업 활성화를 촉진하고자 이중과세 논란을 해결하고 감세 유인을 제공하기 위한 조세 제도를 정비했다. 20041월 법인세법을 개정(법인세법 제512 1)하여 이익의 90%를 배당할 것을 전제로 이중과세 문제를 해결하였고, 20047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조세특례제한법 제119조 제6항 및 제120조 제4)을 통해 PFV에 대해 취·등록세 50%를 감면해주었다. 또한 20058월에는 도시개발법 시행령에 복합개발시행자 규정이 신설되었다. 이러한 법적·제도적 정비를 통해 공모형 PF사업이 2000년대 초중반 활발히 진행되었다(백인길·손진수 2008, 35; 김종하 2011, 32; 강내희 2014, 271).

 


 

3-2. 공모형 PF 사업 방식의 특징과 사회경제적 효과

 

  공모형 PF의 특징은 프로젝트 파이낸스에 내재한 다양한 요소들로부터 기인한다. 바로 PFV라는 특유한 법인과 PF-ABS, PF-ABCP와 같은 금융파생상품이 공모형 PF의 특징을 구성하는 것이다. 첫째, 공모형 PF사업에서 지방정부, 도시정부, 개발공사 등의 공공기관은 사업을 공모할 뿐만 아니라 PFV에 민간부문과 공동출자함으로써 직접 사업주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렇게 시행사에 공동으로 자금을 출자하여 공공기관이 개발·재개발 사업에 따른 이익을 직접적으로 전유함과 동시에 민간자본의 투자 위험을 분산시켜준다. 여기서 기존의 합동 재개발과 차이점을 보인다. 기존의 합동재개발 사업방식에서는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에 필요한 토지를 공공기관이 민간자본에 매각하여 시세차익을 전유하는 것에 그친다. 하지만 공모형 PF에서는 공공기관이 직접 토지를 매각하는 대신, 토지 계약금과 토지 중도금 명목으로 PFV에 출자하여 개발 사업 주체로 참여하게 된다. 토지 대금은 장래에 발생할 개발 이익 및 분양 이익으로부터 상환받기로 계약을 맺는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개발·재개발 사업을 통한 토지 수익 전유는 기존의 합동 재개발 사업 방식에서와 마찬가지로 공공부문의 재정 확충에 있어 여전히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공모형 PF 사업자 선정 시, 공공기관은 평가 기준에서 토지 가격 비중을 높게 책정하고 감정가 이상으로 토지 가격을 산정하도록 하였다. 이는 공공기관이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에서 토지 매각에 따른 재정 수입을 확보하고자 했음을 반증하며, 나아가 공모형 PF사업 방식을 통해 개발 이익과 분양 수익을 직접 전유하여 재정 수입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기업주의의 면모를 공공기관이 보여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 공모형 PF사업 발주 현황[각주:2]

 

  다시 말해,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려는 중앙정부의 이해관계와 지역과 도시의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지방 정부와 도시 정부의 이해관계가 공모형 PF사업이 대거 추진되는 계기들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이는 합동재개발에서의 국가와 지방정부의 이해관계와 동일하다. 공공부문의 과도한 재정지출 없이 민간 부문이 주도적으로 공간을 생산하도록 하는 것과 국공유지 개발에서 토지매각 대금과 세입을 확보하려는 것이 지속적으로 도시 개발·재개발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더하여 97년 이후 형성된 기업주의 도시 전략에서는 두 가지 독특한 이해관계가 나타난다. 하나는 지방정부와 도시정부가 직접 개발수익을 전유하고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규모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 마케팅을 위한 랜드마크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주의 도시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림 1>과 같이 공모형 PF가 점차 확산되었다.


  공모형 PF사업은 도입 초기에 한국토지공사만이 택지개발지구에 대해 활용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2005년부터 대한주택공사, 경기관광공사가 공모에 참여하였다. 이후 경제자유구역과 도시재정비사업지구 등 도시 재개발 사업과 민자역사유치사업 등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공모형 PF가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코레일, SH공사(서울주택공사), 부산도시공사, 서울시를 비롯한 여러 공기업과 지방 또는 도시 정부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사업 유형 또한 택지개발을 넘어서 역세권 개발 프로젝트, 고층 주상복합단지, 대규모 복합상업시설, 군부대 이전, 산업단지 개발, 뉴타운 재개발 사업 등으로 다양하게 진행되었다(이승우·엄근용 2008, 44;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2012, 3).


  둘째, 이러한 공공기관의 직접적 참여는 PFV의 지배구조 형태로 인해 가능했다. PFV의 지배구조는 주로 주식회사 형태를 띠었다. 이는 공모형 PF의 메커니즘에서 비롯된다.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참여자들과 참여 구조는 다음의 <그림 2>과 같다. 기본적인 형태이지만, 대부분의 프로젝트 파이낸스는 이하의 구도를 따른다. 여기서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자본 집중, 위험 분산, 이윤 전유와 관련되는 것은 사업시행자와 사업주 그리고 대주단의 관계다. 공모형 PF의 경우엔 사업주가 지방 정부, 도시 정부, 개발공사 등이 될 것이고, 사업시행자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공동 출자한 PFV가 될 것이다. 이외에 더하여 사업시행자가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사업주의 출자 및 대주단의 대출 외에 직간접 금융을 통해 추자고 조달하는 경우엔, PF-ABS, PF-ABCP 등 해당 프로젝트의 현금흐름과 기타 자산을 유동화한 금융파생상품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포함된다. 때로는 대주단이 보다 확실히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 출자자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그림 2프로젝트 파이낸스의 메커니즘


  이렇게 여러 행위자들이 투자함에 따라 위험 배분 또는 이윤 전유의 문제는 자금 조달 방식, 정확히는 사업시행사의 지배 구조 문제와 긴밀한 연관을 맺게 된다. 공모형 PF사업의 개발이익을 배당받기 위해 참여하는 주요 행위자들은 사업시행사의 자금 조성 방식을 둘러싼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사업시행사의 지배 구조에서 누가 얼마큼의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이익과 손실을 어떤 방식으로 분배할 것인가라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사업시행사의 지배구조는 사업시행사의 법인 형태에 따라 좌우되므로, 사업시행사의 법인 형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가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자금 조달 과정에서 주요 행위자들 사이의 핵심 쟁점이 된다. 프로젝트 파이낸스가 자본 규모를 거대화하여 그에 따른 위험을 참여자들에게 분산시키고 이윤을 집중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의 근간에는 사업시행사의 지배구조를 둘러싼 행위자들의 소유권이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가라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주요한 법인 형태로 활용되는 것이 바로 주식회사다. 주식회사는 위험 또는 책임 회피 문제와 이익 분배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출자금의 규모에 따라 자동적으로 결정되기에 효율적인 지배 구조였다. 하지만 공모형 PF 도입 초기엔 법인세법 상 일반 주식회사에는 세금 부담이 컸기에 공모형 PF사업에서 주식회사 형태를 취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20041월 법인세법 개정을 통하여 이익의 90%를 배당하면 해당 PFV 주식회사에게 비과세 혜택을 주는 조항을 신설하였다. 조세 부담이 경감된 이후부터 대부분의 공모형 PF사업에서 주식회사 형태가 널리 활용되었다. 이러한 주식회사 지배구조는 공공기관들에게는 사업 주체로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여 앞서 논의한 재정 수익 확충을 보장해주었고, 민간 건설 자본들에게는 출자 지분 별로 비례하여 공모형 PF사업의 공사들을 나눠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대규모 개발·재개발 사업에 각자의 사업 전망과 자금 능력에 따라 책임과 이윤을 분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표 1>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스 방식 비교[각주:3]


구분

이론적 PF

국내 부동산 PF

기업금융

차주

사업시행사

사업시행사

사업주

담보

프로젝트 수익

프로젝트 수익

시행사 및 시공사의 보증

사업주의 모든 자산과 신용

상환재원

프로젝트의 현금흐름

분양수익금과 시행사 자산

사업주의 전체 자산

소구권 행사

사업주에 대한 소구권 배제 또는 한정 행사

사업주에게 소구권 행사

시공사 신용 보증 시 시공사에게도 소구권 행사

사업주 보증 시 사업주에게 소구권 행사

차입비용

기업금융에 비해 높음

담보대출에 비해 높음

시공사 신용도와 연동

사업주의 신용도와 연동

사업성 검토

수익발생 근거에 대한 검증 및 시나리오별 검토

담보자산 및 시공사 신용도 검토

담보자산과 절차상 요건 검토

리스크 배분

프로젝트 이해관계자 간 배분

시공사 대부분 부담

차주의 전적인 책임

 

  셋째, 그런데 <표 1>에서 정리된 것처럼 이론적인 프로젝트 파이낸스와 달리, 한국에서 진행된 대부분의 프로젝트 파이낸스들에서는 주식회사라는 일반적인 지배구조를 활용하되, 시공사가 사업시행자인 PFV의 주요한 출자자로 참여하여 의사결정권을 주도적으로 행사하는 대신 리스크 배분에서 시공사가 대부분 책임을 진다. 다시 말해, 이론적인 프로젝트 파이낸스에서는 해당 사업의 사업성과 현금흐름(미래에 실현될 수익)에 근거해 자금 조달이 이루어지지만, 한국의 프로젝트 파이낸스에서는 시공사의 신용도에 따라 차입비용과 사업성이 달라지며, 시공사의 신용보증에 의해 자금조달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 사업에 따른 리스크도 대부분 시공사가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프로젝트 파이낸스가 한국 사회에 제대로 확립되지 못했고, 기존의 기업금융 관행이 지속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그렇다면 프로젝트 파이낸스가 한국의 경우 어떻게 위험을 분산시키고 이윤을 집중시켰다는 말인가? 반대로 말해, 이러한 국내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특수성은 프로젝트 파이낸스를 활용하게 된 한국의 경로의존성 또는 역사적 맥락을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부동산 개발·재개발 사업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건설자본이 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새로운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것과 긴밀한 연관을 맺는다.


  독특하게 한국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스가 SOC 사업을 넘어서 민간부문의 부동산 개발·재개발 사업에까지 도입된 것은 공모형 PF사업에 대한 기업주의 도시의 이해관계와 전략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공사와 시행사가 분리된 방식으로 사업구조가 변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97년 외환위기 이전 민간부문의 부동산 개발·재개발 사업에서는 주로 건설회사가 시공사와 시행사 모두를 담당했다. 건설회사가 직접 대출을 받아서 토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자체 분양하는 방식이 주류를 차지했다. 하지만 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시행사와 시공사가 분리된 도급공사방식으로 사업구조가 점차 전환되었다. 그 이유는 건설사가 시공사와 시행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경우, 토지 매입에 대규모 자금이 묶여버리는 부동산 개발·재개발 사업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었다. 부지 확보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된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될 경우, 선분양을 통한 자금 유입이 원활치 못하여 공사비용 지출에 차질을 빚어 착공조차 못하거나 시공이 중단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건설사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경우 파산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따라 변화한 사회경제적 상황에 적응함과 동시에 이러한 기존의 사업구조에 따른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서 도급공사방식으로 전환한다. 건설사는 시공만 담당하고 전문시행사인 부동산개발업체가 등장해 토지매입 및 분양업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방식으로 개발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시행과 시공이 분리되자, 재무구조가 열악한 소형 시행사들을 중심으로 토지매입대금 등 개발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스를 활용하게 되었다(이인혁 2009, 14-15). 다시 말해, 건설사의 입장에서 시공과 시행을 분리하여 시행사에게 토지 매입에 따른 부담을 전가하고, 부동산 시장에 보다 직접적으로 금융자본을 끌어들임으로써 개발 사업 진행 과정에서 자금 조달을 용이하게 할 수 있었게 되었다.


  그렇다면, 민간 부문의 개발·재개발 사업에 도급공사방식이 도입되는 것을 넘어서 공모형 PF사업에서 시행과 시공이 분리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공모형 PF사업에서 토지 매각·매입은 국공유지를 소유한 공공기관과 시공을 담당하는 건설회사 간의 계약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확히는 공공기관이 건설 자본과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하여 시행사인 PFV에 토지를 제공하는 형식으로 출자하고 사업 진행 과정에서 발생할 개발 이익과 분양 이익 등 미래의 현금흐름에 근거하여 PFV로부터 토지 대금과 토지 대금 이자를 상환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시 말해, 대규모 개발·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공모형 PF 사업 방식에서도 토지 매입비용이 구조적인 장애물로 작용하기에, 건설 자본의 입장에서는 부지 확보를 원활히 진행할 수 있도록 해주고 공공기관의 입장에서는 국공유지 매각 대금과 개발·분양 이익의 일부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석이조의 협력이 이루어진다. 합동재개발 사업 방식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시 개발·재개발을 둘러싼 국가와 자본의 이해관계가 긴밀히 결탁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부지 확보와 택지 개발의 측면뿐만 아니라, 자금 조달과 위험 배분의 측면에서도 시행과 시공의 분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공은 물리적 시설을 설치하기 위한 각종의 공사를 행하는 것을 가리키며, 시행은 개발 사업 전반을 관리하고 물리적 설치 과정에 필요한 각종 협상과 계약, 인허가·등기 업무, 토지매입 그리고 시장조사와 홍보, 분양 등을 수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앞서 간략히 언급했듯이, 1970-80년대 부동산 개발·재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시기 한국에서는 건설사 주도로 사업 전반이 진행되었고, 이때 건설사가 시행과 시공을 겸하는 독특한 형태가 자리 잡았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금융적·재무적 논리에 따라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면서, 대형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부도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부채비율을 낮추고자 했다. 이때부터 건설에 필요한 부지를 직접 매입하지 않고 시행과 시공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그럼으로써 막대한 차입 비용을 회피하고자 한 것이다. 시행과 시공이 분리되자, 부동산 개발 관련 업자들은 부동산개발전문회사, 즉 디벨로퍼를 설립하였으며, 대형 건설사들로부터 시행사 역할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시공사인 건설사들은 비용 부담을 줄여서 개발에 따른 위험을 낮추고 더 많은 이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공모형 PF사업의 경우,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민간 영역에서의 변화와 달리, 민관협력 사업들에서는 시행과 시공 분리 또는 공동 시행의 형태가 일찍부터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정착한 합동재개발 방식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는 건축주들의 재개발·재건축 조합들이 실질적으로 사업 과정 전반을 관리하고 운영할 능력과 재원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사업자 공모에서 선정된 건설사가 시공을 담당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공동 시행사의 지위에 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는 SOC 건설 등 공공기관의 개발·재개발 사업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민간 부문에서의 시행과 시공의 분리와 달리, 공모형 PF 사업에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모형 PF 사업에서 공공기관이 시행사인 PFV에 출자를 한다는 점에서 공공기관과 건설 자본 간의 계약은 BTL, BTO 등에서와 같은 단순한 양허계약도 아니고, 토지를 제공하는 대신에 출자자로 참여 참여한다는 점에서 일반 주식회사와 같이 주주약정을 맺는 것도 아니다. 법적으로는 토지 매매 계약에 해당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양허계약과 주주약정이라는 두 계약의 성격이 혼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계약을 통해 독립된 법인인 PFV가 설립된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러한 PFV에 의해 공공기관과 건설 자본 간의 결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나아가 PFV는 독립된 법인으로서 프로젝트 파이낸스가 비소구 금융, 부외 금융의 특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마치 민간 부문에서 시행과 시공이 분리되어 토지 매입 대금을 시공사의 장부에서 제거할 수 있었던 것처럼, PFV로 시행이 분리됨에 따라 동일한 효과가 건설 자본에게 발생한다. 이와 함께 해당 공모형 PF 사업이 건설 자본의 소유가 아니라 PFV의 소유로 규정되기 때문에, 사업에 따른 위험 자체도 건설 자본의 회계 계정에서 제외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또한 공공기관의 입장에서도 재정상의 부채 비율을 늘이지 않고서 국공유지에 개발·재개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개발·재건축 조합이나 기존의 SOC 건설 사업에서처럼 공공기관 또한 공모형 PF사업을 관장할 전문성과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공사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대부분의 공모형 PF사업에서 시행사의 지분 비율을 20~40% 내에서 보장해주어 PFV에 시공사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형식적으로는 시공과 시행을 분리하여 토지 매입 비용과 사업 자체에 따르는 위험을 부외 처리하여 재무건전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주었던 반해, 실질적으로는 공동 시행사의 역할을 부여하여 사업을 주관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이러한 건설 자본의 유동성 증가 또는 리스크 전가를 위해 프로젝트 파이낸스가 전략적으로 활용된 것이다. 시공사에게 개발과 분양 이익을 보장해주는 대신, 지분 비율을 높여 위험 부담을 일정 부분 분담하도록 하였고, 금융 기관으로부터의 차입과 투자에 있어서도 시공사가 보증을 서도록 하였다. 결국 이론적인 공모형 PF에서 금융 자본의 주도성이 강조되는 것과 달리, 한국의 공모형 PF는 건설 자본의 주도 하에 공공기관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서로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업 방식이었던 것이다.


  넷째, 하지만 금융 기관의 입장에서도 공모형 PF97년 외환위기 이후 새롭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였다. 부동산 경기 호황에 편승하여 수익을 내려는 금융기관들에게도 매력적인 대안이었던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차입 중심의 고부채 경영으로부터 탈피하자 전통적인 기업금융이 축소되었다. 이와 함께 금융기관들에게도 BIS 자기자본 비율 등 회계 제도에 근거한 금융적·재무적 논리가 확산됨에 따라 이자를 비롯한 각종 수익을 창출해야 할 압박이 가해졌다. 이에 금융기관들은 소비자 금융과 부동산 금융을 새로운 이윤 창출의 기회로 삼았다. 그 결과, 부동산 관련 소비자 금융이 확대됨과 동시에 부동산 PF 관련 대출 및 투자 또한 확대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프로젝트 파이낸스 기법을 운용하기 위해서 필수적이었던 사업성 평가, 즉 미래에 실현될 현금흐름 등을 검토하는 기술을 금융기관들이 충분히 습득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사업성 평가 기술의 부족은 건설자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금융자본과 건설자본은 기존의 기업금융에서 활용했던 방식을 변형해서 프로젝트 파이낸스에 적용하게 된다. 해당 프로젝트의 사업성 평가보다는 시공사의 신용보증을 중심으로 자금을 조달하거나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시행사인 부동산개발업체의 낮은 신용도를 보강하기 위해 시공사인 건설회사가 금융기관에 연대보증, 채무인수약정, 책임분양 등 다양한 형태로 리스크를 분담하여 토지 매입비용과 초기 사업비용을 조달하고 정부로 사업 승인을 받아내었다. 이러한 방식은 시행사의 입장에서는 소규모의 자기자본과 낮은 신용도만으로도 대규모 개발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였고, 시공사의 입장에서는 시행사로부터 실제로 발생한 채무를 인수하기 전까지는 우발채무만을 부담하게 되므로 직접 자금을 조달하여 시행을 겸하는 것에 비해 재무건전성을 높일 수 있었다.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도 부동산 시장을 활용하여 자금을 운용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데 있어서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이렇듯 부동산 경기 호황 국면에서 기업금융의 관행을 변형한 한국의 프로젝트 파이낸스는 건설자본과 금융자본 모두에게 유리한 자금조달방식이었다.

 

<그림 3> 연도별 부동산 PF-ABS 발행금액 및 비중 추이[각주:4]




  그 결과, <그림 3>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2004년 부동산 경기가 호황을 맞이하는 2003년부터 부동산 PF-ABS의 발행규모와 발행된 자산유동화 증권들 중 부동산 PF-ABS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히 증가하였다. 이러한 부동산 시장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스가 널리 활용되면서, 공공부문에서 기업주의 도시 전략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프로젝트 파이낸스를 도입하는 것과 상호작용하면서 부동산 시장과 금융 시장 간 연결이 강화된다. 그 결과, 프로젝트 파이낸스를 매개로 부동산의 금융화가 촉진되었다.


  요컨대, 시행사와 시공사의 분리를 통한 자금조달이라는 건설자본의 이해관계와 부동산 시장을 통한 수익 창출이라는 금융기관의 이해관계가 합치되는 것과 더불어,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려는 중앙정부의 이해관계와 지역과 도시의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지방정부 또는 도시정부의 이해관계 또한 프로젝트 파이낸스를 중심으로 결집된 것이다.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할 때, 한국의 공모형 PF에서 주식회사라는 지배형태를 주요하게 활용하는 것은 공모형 PF의 시행자인 지방 정부 또는 도시 정부 그리고 공기업들이 시공사인 건설사에게 토지를 제공해주어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자신들은 시행사인 PFV의 출자자로 참여하여 직접적으로 개발 이익을 전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들은 직간접적으로 재정을 확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건설사들은 개발 비용을 크게 줄이되 사업 수익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금융 자본은 전통적 기업 금융 외에 추가적인 투자처를 창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이러한 이익 배분은 곧 리스크 분담이라는 점이었다. 이윤은 모두가 갈라먹으려고 했지만, 손실이 발생할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이냐의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물론 한국의 민간 개발 사업의 경우엔 시공사인 건설사의 지급 및 신용 보증에 따라 자금 조달이 이루어졌기에, 건설사의 책임이 확실하였다. 그런데 공모형 PF의 경우 시행자인 공공기관과 시공사인 건설자본의 컨소시움 간의 갈등이 크게 불거졌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공모형 PF 사업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명확히 표출되었다. 여기서 주식회사라는 지배 형태가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주주들의 투자 지분에 따라 배당과 책임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바로 프로젝트 파이낸스가 이윤을 집중시키고 손실을 분산 및 전가하는 메커니즘에는 주식회사라는 지배형태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4. 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공모형 PF사업의 실패

 

  공모형 PF사업은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 경기의 호황에 힘입어 여러 지역들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하지만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주택 가격을 비롯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그동안 주택 가격의 폭등을 주도했던 강남, 서초, 송파구 등 버블 세븐의 지역의 아파트 매매가가 하락하였다. 그리고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신도시 지역에서 아파트 전세가가 하락하여 전세 만료시기에 전세금의 일부를 내어주거나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아파트 가격이 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을 합한 금액 이하로 떨어져 집을 팔아도 부채를 갚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아파트가 나타났다. 더욱이 지방에서는 1가구 다주택 보유를 전제로 한 공급 중심 정책에 의해 아파트들이 대규모로 지어졌으나, 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어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미분양 아파트들은 불황 국면에서 건설 자본에 자금 부족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그리하여 이명박 정부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대한 다양한 규제들을 해제하고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정책들을 시행했다(최병두 2012, 225-227).


  2008‘6·11 지방 미분양 대책’, ‘8·21 주택공급기반 강화 및 건설경기 보완대책’, ‘9·1 부동산세 감세대책’, ‘9·19 서민 주거안정 및 공급확대 정책’, ‘9·23 종합부동산세 개편대책’, ‘10·21 가계·건설 유동성 지원 대책등이 발표되었으며, 2008113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까지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20094월에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을 개정하여 재건축 임대주택 건설 의무를 폐지하고 용적률을 완화해주었다. 더욱이 건설업체 유동성 지원 및 구조조정방안을 통해 투기 지역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줌과 동시에 대한주택보증, 신용보증기금 등 공적보증기관을 동원해 9조 원에 달하는 공적 자금을 건설사에 지원해주었다. 미분양 주택 매입에 2조 원, 공동택지 계약 해제 허용 2조 원, 건설사 보유토지 매입 3조 원 등을 포함해서 총 87,000억 원에서 92,000억 원 규모의 유동성을 건설사에 직접 공급해준 것이다(홍석만 2009, 19). 건설사들에 대한 적극적 지원 정책과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은 부동산 경기의 침체를 반증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부동산 경기가 하락세를 타기 시작하자, 부동산 관련 PF 시장에서 연체율이 급속히 상승하였다. 금융권의 부동산 관련 PF 금융 규모는 2006년 말 37조 원 수준에서 20086월 말 기준으로 971,000억 원 수준으로 1년 반 사이에 약 60%나 증가했다. 그런데 시중 은행의 연체율은 0.68%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으나,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14.3%, 증권사와 여신전문금융회사의 PF대출 연체율은 각각 6.57%, 4.2%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홍석만 2009, 20). 그리하여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한 제2금융권에서 토지 중도금 등에 대해 보다 손쉽게 PF대출을 해준 구조적 문제와 함께,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종 PF사업들이 난항을 겪게 되자, 부실화된 채권들이 늘어나 결국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러 공모형 PF사업들 또한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행되기도 전에 좌초되고 만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07년 공모를 시작한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의 경우, 추정 사업비가 약 3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였다. 코레일이 역세권 개발을 위해 사업자를 공모하고 코레일과 삼성물산 등이 참여한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라는 PFV가 시행사로 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업이 토지 매입과 사업 규모 등을 놓고 코레일과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 간 갈등 속에서 난항을 겪으면서, 결국 사업이 실패하고 만다. 이는 남양주 별내복합단지를 건설하기 위한 메가볼시티 사업, 성남 판교복합단지를 건설하기 위한 알파돔시티 사업, 상암랜드마크타워를 건설하기 위한 서울라이트 PFV의 사업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가 침체됨에 따라 대부분 토지 매입 시 토지 가격 하락에 따른 감정가와의 격차와 사업 규모 축소라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를 둘러싸고 공공기관과 건설자본 간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더욱이 그러한 갈등으로 인해 사업이 지연됨에 따라 PF대출의 만기가 돌아와 부실 채권이 발생함에 따라 금융자본의 상환 압박이 가중되었다. 그 결과로 대부분의 PFV가 채무 불이행, 즉 디폴트 상태에 빠지게 되어 대형 도시 개발·재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자 했던 공모형 PF 사업들은 잠정 중단되거나 백지화되고 말았다.





  여기서 모든 사례들을 다룰 수는 없기에, 가장 대표적인 공모형 PF사업이었던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예로 들어, 공모형 PF사업의 실패와 그에 따른 법적 논쟁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는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실패가 한강르네상스 사업과 연관되면서 서부 이촌동 주민들의 재산권에 대해 피해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용산역 전면 재개발 사업 과정 중에 발생한 09년 용산참사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선 용산국제업무지구 PF사업은 코레일과 서울시가 추진했다는 점에서 공공성이 높은 사업이었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크게 용산역 정비창 부지와 서부 이촌동을 비롯한 재개발 사업부지라는 상이한 두 사업부지를 대상으로 하였다. 이 두 사업부지 모두에 대해 도시개발법에 근거하여 사업을 추진하였다.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과 한강르네상스 사업이 연계된다는 점에서 공공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도시개발법상 입체환지 방식이 아니라 수용 방식으로 토지를 확보하고자 했다. 하지만 도시개발법은 새롭게 도시를 만들어내기 위한 택지 조성에 대해선 효과적인 근거법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기존의 도시 공간을 재개발하는 데 있어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일차적으로 서부 이촌동 주민들의 재산권이라는 사적 이익을 침해하는 문제에 직면하였다. 그에 따라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난항을 겪게 되자, 서부 이촌동 주민들과의 소송이 발생하였고, 도시 개발구역지정 과정에서의 절차적 하자와 동의 비율 규정에 대한 재산권 침해 여부 등을 둘러싸고 법적 쟁점이 형성되었다(오종열 2015a).


  그런데 더 큰 논란은 사업 실패와 재산권 침해 문제에 대한 법적·사회경제적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는 공모형 PF사업에서 사업 시행자의 형식과 실질 사이의 괴리가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의 경우, 누가 사업의 지연과 좌초에 따른 책임을 질 것인가를 둘러싸고 코레일, 서울시, 국민연금공단, 삼성물산, 롯데관광개발, KB자산운용 등이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는 명확한 사업 주체가 누구냐, 즉 누가 사업시행자인지에 대한 다툼이었다. 이는 실질적인 사업시행자와 형식적인 사업시행자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코레일, 삼성물산, 국민연금공단, 롯데관광개발 등은 사업시행자이면서 개발 총괄 시행사로 특수목적법인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 주식회사(이하 드림허브)를 설립했다. 드림허브는 코레일로부터 정비창 부지의 토지 소유권을 양도받아 사업시행자의 지위를 누리는 것으로 예정되어있었고, 부동산투자회사법에 따라 드림허브의 자산관리회사(AMC)이면서 사업시행권을 다시 드림허브로부터 위탁받을 용산역세권개발 주식회사(이하 용산역세권개발)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사업시행권을 위탁하면 누가 사업시행자가 되는 것인지가 명시된 계약이 체결되지는 않았다. 결국 공모형 PF사업의 메커니즘을 놓고 볼 때, 사업시행자로서의 지위는 드림허브가 지니는 것이 마땅하나, 실제로는 코레일로부터 드림허브로, 그리고 드림허브로부터 용산역세권개발로 시행권이 두 차례 위탁됨에 따라 시행의 책임과 권한이 어디에 귀속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사업 진행 과정에서는 형식적으로는 용산역세권개발이 실시계획을 신청하는 사업시행자로 해석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삼성물산이 드림허브의 지분 6.4% 외에도 드림허브의 자산관리회사(AMC)인 용산역세권개발의 지분 45.1%를 확보하여 개발사업을 주도하였다(김종보 2014).[각주:5] 그러나 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09년 용산참사 이후로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난항에 빠지면서, 롯데관광개발은 자신의 지분을 코레일에 양도했고, 코레일이 사업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자금을 여러 차례 조달했지만 결국 디폴트 상태에 직면하고 말았다. 이에 삼성물산 등 주요 참여자들은 서울시와 코레일 등 공공기관에 사업 실패의 책임을 물으며,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하게 되었다. 만약 민사의 영역에 적용되는 논리에 따르면, 토지 매매계약의 당사자나 토지 소유자를 기준으로 사업시행자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모형 PF사업에서 공공기관과 건설자본 간의 계약은 앞서 언급했듯이, 양허계약과 주주약정 등의 혼합적 성격으로 인해 민사상의 토지 매매 계약으로 단정 짓기 어려운 점이 있다. 더구나 여러 참여자들이 출자하여 제3의 사업시행자로 PFV가 출현한 상황에서 코레일과 삼성물산의 사업시행 책임과 서울시의 감독 책임 등 또한 모두 소멸되었거나 책임의 귀속이 불분명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이에 따라 민사상 손해배상의 책임을 논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와 함께 더욱 중요한 문제는 서부 이촌동에 대한 토지 수용 등으로 서부 이촌동 주민들의 재산권이 침해되었을 뿐만 아니라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으로 인해 주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세입자들을 비롯한 다른 사회구성원들에게도 사회경제적 피해를 입혔다는 점이다. 이러한 공적인 책임 또한 물어야 할 것인데, 민사상의 배상 책임을 명확히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적인 책임의 소재 또한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실제로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실패에 따른 공적인 책임은 누구에게도 물어지지 않고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에 반해, 민사상 배상 책임은 공공기관과 건설자본 간의 법적 공방 끝에 일정한 수준에서 마무리 될 수 있었다. 드림허브가 국토교통부 산하 공모형 프로젝트 파이낸스(PF)사업 조정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하여,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을 둘러싼 30개 투자자 사이에 토지 중도금 조달과 전환사채 인수, 사업비용 지급 등 여러 안건을 둘러싸고 법적 공방이 벌어졌다. 대표적인 소송이 바로 드림허브와 삼성물산 간의 철도시설 철거 및 토양오염원 처리사업(이하 정화사업)’ 비용 1008억여 원에 대한 지급명령 신청 이후의 분쟁이었다.[각주:6] 삼성물산은 랜드마크 111층 건물 시공권을 확보하고 정화사업을 진행하였으나,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차질을 빚으며 드림허브 측이 사업 자금을 제대로 조달하지 못하자 자신들의 자금 경색을 타개하기 위하여 정화사업 부지에 대한 유치권을 행사하며 사업비 1008억여 원을 드림허브 측이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삼성물산 측이 사업정상화를 위해 랜드마크 시공권과 주관사 지위까지 내려놓은 상황에서 드림허브가 금융기관들로 구성된 재무 투자자들이 아닌 건설사들로 구성된 건설 투자자들에게 전환사채 인수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각주:7]


  그런데 이러한 지급명령 청구 소송은 단순히 삼성물산이 드림허브라는 PFV를 겨냥한 것에 그치지 않고 코레일에 부당이익 반환소송을 제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실질적인 정화사업의 수혜자가 바로 코레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드림허브가 정화사업의 발주처이지만, 실제 이득을 본 것이 코레일이었기 때문에 드림허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코레일을 또 다른 소송에 연루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사업시행자의 형식과 실질의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다. PFV인 드림허브는 형식적인 주체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법적 공방은 코레일과 삼성물산 사이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주식회사 내에 주주들 간에 사업 실패의 책임을 둘러싸고 누가 더 많은 책임을 질 것인지를 둘러싼 갈등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코레일은 공공기관으로 드림허브 지분의 25%를 차지하고 있고, 삼성물산은 건설 투자자로 6.4%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 간에 주식 지분에 따라 책임을 질 것인지, 지분과 상관없이 실제 사업 과정에서 개발 이익과 분양 이익을 받아가는 정도에 따라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코레일과 삼성물산 등 건설사들 간의 밀린 공사대금을 둘러싼 법정 다툼은 이자를 포함해 미지급액으로 인정된 부분을 코레일이 건설사 측에 지급함으로써 대부분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코레일과 드림허브 간 용산국제업무지구 부지에 대한 토지 소유권 반환 청구 소송은 법원에서 계류하다 2018년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상에서 간략히 살펴본 바와 같이, 사업 실패의 책임을 둘러싼 민사상 법적 공방은 사업시행자의 형식과 실질 간의 괴리를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공모형 PF사업의 시행사인 PFV, 즉 드림허브 또는 AMC, 즉 용산역세권 개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소송의 주체는 코레일과 다른 건설 투자자들 간의 다툼이었던 것이다. 사업 실패에 따른 책임을 물으면서, 그동안 진행한 사업비용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미지급 공사 대금을 받기 위해 서로 힘겨루기를 한 것이다. 이는 공모형 PF사업의 지배형태가 주식회사였기 때문에 더욱 심화되었다. 정상적으로 사업이 진행되었다면, 지분에 따라 이윤이 배분되어 효율성이 증진되었을 것이지만, 외적 충격과 내적 결함 등으로 인해 사업이 실패하자 지분에 따라 책임이 분배되지 못한 것이다. 이는 출자 지분에 따라 의사결정권이 실질적으로 분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PFVAMC에서 각자 행사하는 영향력이 상이하였다. 특히 삼성물산은 PFV에서는 적은 지분을 차지했지만, AMC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였던데 반해, 코레일은 PFV에서는 많은 지분을 차지하였지만 AMC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지분을 갖지 않았다. 그에 따라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모호해진 것이다. 이러한 형식과 실질의 괴리는 사업을 추진할 때에는 모두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공모형 PF 사업 방식에 의해 다양한 참여 주체들이 각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오히려 사업이 실패하게 되자 그로 인한 피해를 제한적으로 부담하기 위해 갈등을 벌이게 되는 단초로 작용했다. 다시 말해, 공모형 PF 사업 방식에서 PFVAMC와 같은 SPC라는 법인들은 형식적으로 새로운 제3의 사업시행자를 상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책임을 부담하지 않고서 이윤만을 챙겨갈 수 있는 구조를 참여자들에게 제공해주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업이 실패할 경우에 이러한 구조는 참여자들이 피해를 입을 때 책임 주체를 모호하게 하는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하여 각종 법정 공방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법정 공방은 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좌초 위험에 직면한 다른 공모형 PF사업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졌으며, 소송비용을 비롯해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 등 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법상의 책임, 즉 공공성을 침해한 것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누구에게도 묻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만다. 만약 형식적 시행사인 PFV에 묻는다고 할 때, PFV가 청산 절차를 밟고 법인의 지위를 잃게 된다면,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반대로 실질적 시행사인 공공기관이나 건설 투자자들에게 묻는다고 할 때에는, 그들이 진짜로 이윤을 챙겨가는 혜택을 받았는지, 누가 사업 관련 의사결정을 주도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사업 주체가 모호하기에 이를 입증하기 어려우며, 만약 입증한다고 하더라도 공적인 책임을 물을 법적 근거 또한 명확하지 않아 법적 처벌이 여의치가 않다.


  이에 반해, 근본적인 수준에서 코레일과 삼성물산 등의 건설투자자들은 사업 실패에 따른 위험 부담을 제한할 수 있었다. 이는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부외 금융이라는 특성에 근거해 사업 실패에 따른 피해를 제한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용산국제업무지구 PF사업에서 롯데관광개발의 경우는 예외적이었다. 2010년 삼성물산이 용산역세권개발의 주관사 지위를 포기하자 롯데관광개발은 삼성물산의 지분을 인수하여 70.1%를 확보하고 주관사로 올라섰다. 하지만 토지 중도금 지급, 전환사채 인수 등 코레일과 함께 자금 조달을 담당하는 과정에서 자기자본금 55억여 원의 32배에 달하는 1,748억여 원을 용산국제업무지구 PF사업에 투자하면서 결국 기업회생절차를 밟게 된다. 이후 코레일이 롯데관광개발의 지분을 인수하여 용산역세권개발의 지분 75%를 확보하여 사업을 주도하게 된다. 결국 롯데관광개발은 무리한 투자를 벌인 결과, 사업 실패에 따른 피해를 제한적으로 처리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반해, 삼성물산은 사업 전망의 악화에 따라 드림허브와 용산역세권개발의 지분을 정리하면서 피해의 수준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를 사업 전망에 대한 명확한 판단 능력의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수준에서 삼성물산이 손쉽게 사업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PFVAMC에 대한 출자라는 부외 금융의 특성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자체의 직접 투자 형식이 아니었기에, 지분을 용이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반대로 말해, 롯데관광개발과 삼성물산 등이 용산국제업무지구 PF사업의 규모를 키우고 투자를 늘릴 수 있었던 것 또한 부외 금융의 특성 덕분이었다. 다만, PF사업 자체가 난항을 겪게 되었을 때, 투자 자금을 일찍이 부외 처리하여 정리하였는지 아니었는지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요컨대, 이상에서 논의한 바에 따라서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형식과 실질의 분리 그리고 부외 금융의 특성을 활용하여 공공기관과 건설 자본 그리고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도록 이윤은 사유화하고 민사상 그리고 공법상 책임을 전가하거나 회피하는 수단으로 공모형 PF 사업 방식이 활용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PFV, 즉 사업시행사가 페이퍼컴퍼니이기 때문에 회계 장부, 계약서 등 문서 상으로만 분리되어 있을 뿐이고, 실제적인 지배력은 사업주를 비롯한 투자자들에게 귀속된다. 독립된 법인이기에 사업주의 회사와 법적 책임이 분리되지만 해당 법인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사업주를 비롯한 투자자들이 전유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프로젝트에 투자한 이해관계자들은 프로젝트의 실행 과정 전반에 대해 개입할 수 있는 의사결정권을 누린다. 하지만 공모형 PF사업이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 의사결정권 확보를 둘러싼 싸움은 위험과 피해 분담을 둘러싼 갈등으로 전환된다. 의사결정권을 분배하기 위한 계약들은 위험과 피해를 누가 더 많이 책임질 것이냐에 대한 법적 분쟁의 근거로 활용된다. 형식적으로 분리된 PFV를 매개로 실질적으로 이윤을 전유하고자 했던 이해관계자들이 서로에게 실제로 발생한 비용을 전가하기 위해 법적 공방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프로젝트 파이낸스는 부외 금융의 특성을 활용해 투자한 공공기관 및 건설자본 등의 회계 계정으로부터 해당 사업비용을 분리시켜주어 사업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하여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고부채와 복잡한 연결망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사업 실패에 따른 위험 또한 높아진다. 사업시행사는 담보자산과 미래의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금융파생상품을 발행한다. 은행은 이중소유권을 설정하여 유동성을 창조하고(김종철 2015a; 2015b), 이를 공모형 PF에서 제공한 금융파생상품에 투자한다. 그에 따라 경기 호황 국면에서 은행 등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증대한 유동성이 공모형 PF 사업으로 흘러들어가 사업의 투자 규모를 증대시켜준다. 하지만 경기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금융시장의 유동성이 줄어들자 공모형 PF 사업 또한 위협을 받게 된다. 재무 투자자들에게 이윤을 보장해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경기 변동에 따라 공모형 PF 사업이 부침을 겪게 되는 것이다. 도시 재개발 등 부동산 시장에 투자한 금융시장의 유동 자금은 투자를 중단하거나 기존의 투자를 철회하고자 한다. 그로 인해 공모형 PF 사업에 투자금이 더 이상 유입되지 않거나 기존의 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사업시행사의 채무가 증대하게 된다. 이로 인해 사업시행사를 비롯한 공모형 PF 사업의 투자자들은 파산의 위험으로 내몰린다. 이때 경제 위기 발생하면, 뱅크런(bank-run)과 같은 연이은 도산에 직면할 수 있고, 나아가 금융과 산업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사업시행사는 출자자들에 대한 배당금을 지급해야 할뿐만 아니라 채권자인 대주단과 PF-ABS 또는 PF-ABCP에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직간접 금융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차입한 만큼 그에 수반되는 이자 또한 막대하다. 사업계획에 맞게 현금 흐름이 실현된다면, 이익 배당과 이자 지급이 원활히 이루어지겠지만, 경제 위기로 인해 사업성이 악화될 경우 막대한 규모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비소구 금융이라는 특징 때문에 투자자들은 프로젝트의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부채에 한정해서 책임질 뿐이다. 물론 그 규모가 막대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파산 등의 경제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더욱이 공모형 PF사업이 부실화되어 사회 전체에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투자금에 대한 책임 또한 주식회사 PFV에 근거해 법적 공방을 벌이거나 지분을 서로가 양도 및 인수함으로써 피해갈 수 있었다. 더욱이 해당 사업의 참여자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부분 외는 어떤 법적 책임도 질 이유가 없었다. 도시 경쟁력 향상 및 주민 복지 향상 등의 공공성을 명목으로 내걸고 추진되었던 공모형 PF사업에서 이해관계자들의 공법상 책임이 면제되었던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공모형 PF사업의 메커니즘에 의해 공법상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5. 결론 : 기업주의 도시의 전략적 수단으로서의 공모형 PF

 

  이상에서 논의한 바에 따르면, 공모형 PF사업은 PFV에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공동출자함으로써 민간 자본의 투자 위험을 분산시켜주어 민간 투자를 촉진함과 동시에 공공기관이 직접 사업주의 역할을 담당하여 개발·재개발 사업에 따른 이익을 직접 전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기업주의 도시가 필요로 하는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자금을 PF 대출과 PF-ABS, PF-ABCP 등 금융파생상품을 활용해 금융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에 더하여 민간부문이 사업시행사인 PFV에 주주로 참여하도록 해줌으로써 민간에게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을 추진할 의사결정권을 부여해주었다. 그리하여 민간 주도로 도시 개발·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는 단순히 주주로 참여시킬 수 있었다는 점을 넘어서, 부외 금융의 특성을 활용해 투자자들의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키기 않고서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함에 따라 고부채의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었기에 사업구조를 지탱할 수 있었다. 사업이 원만히 진행될 경우엔 위험이 참여 주체들에게 형식적으로 분배되어 사업 진행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업이 실패할 경우엔 숱한 법적 공방과 같이 실질적으로 누가 위험을 분담할 것이냐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 추진 시기에 공모형 PF 사업 방식은 자금 조달의 용이성과 위험 분산의 효과를 통해 지방자치단체나 개발공사들이 민간의 건설자본, 금융자본과 함께 적극적으로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을 기획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시 말해, 기업주의 도시가 추진하는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에서 공모형 PF 사업 방식이 전략적인 수단으로 동원된 것이다. 그리하여 기존의 PPP사업이 SOC 건설에 국한되었던 반면에, 공모형 PF사업은 상업·업무 용지의 복합개발이나 지구 단위의 복합용도개발 등 도시 환경을 정비하고 도시 공간의 효율성과 창조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 전반에 활용되었다.


  앞서 논의했듯이, 한국에서 도시 공간을 형성해온 독특한 사업 방식은 1960-80년대 진행된 불량주택촌 재개발과 도심 재개발에서 형성된 합동재개발이었다. 합동재개발은 재개발 사업을 민영화, 즉 민간 부문의 건설 자본과 부동산 투기 자본을 국가와 지방정부 또는 도시정부가 끌어들임으로써, 최소한의 재정투입으로 발전주의 시기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 요구되었던 도시 공간을 창출해냈다. 이는 수출대체 산업화를 위해 재원을 특정 분야에 집중하고, 외환 중심의 부채 경제에 따른 재정 운용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었다. 또한 국가와 지방 정부 또는 도시 정부에게 도시 개발·재개발 과정에서 국공유지를 매각하고 새로운 도시 공간 창출에 따른 세원을 확보하여 추가적인 재정수입을 안겨주는 효과를 발생시켰다. 대신 건설 자본과 부동산 투기 자본에게는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에 따르는 경제적 수익을 보장해줌으로써 건설 경기나 부동산 경기 하락에 대처하거나 축적된 유휴자본을 순환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여기서 토지나 건물을 소유한 주민들에게는 특정 지역의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의 여파로 주변의 부동산 가격들이 상승하는 효과를 발생시켜 개발 수익의 일부를 분배해주었다. 이를 통해 부동산 신화라는 중산층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동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합동 재개발 사업 방식은 세입자와 철거민 등 토지 소유권과 자본, 행정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배제하였다. 무엇보다 그들로부터 주거 공간과 생활 터전을 강제적으로 탈취하고서 그 공간을 특정 집단들의 이해관계에 맞게 재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들에게 철거 등 억압적 폭력을 가하고, 재개발에 드는 각종 사회적 비용을 전가하였다. 이에 따라 세입자와 철거민들을 중심으로 합동 재개발 사업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합동재개발 전략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영향으로 인해 공모형 PF로 변형되었다. 우선 사회경제적으로 금융자유화가 진행되고 현대 금융기법이 도입되었다. 금융 자본이 경제의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금융적·재무적 논리에 따라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이 규정되었다. 이로 인해 경제적 수익성을 극대화화는 것이 중요한 목표로 설정되었고, 금융 시장을 활용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인 전략으로 부상했다. 다음으로 지구-도시화 과정 속에서 시행된 지방자치제는 도시 기업주의를 촉발하였다. 지구화된 세계 경제에서 국가 대신 지역과 도시들이 주요한 경제 행위자이자 자본 투자의 장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사센 2016).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지역과 도시들의 경쟁력 향상이 필수적이라는 인식 하에 도시 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때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2차 산업 중심의 전통적인 산업 도시들의 경제가 쇠락했다. 이러한 구조적 조건 속에서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오히려 지자체들의 재정자립도가 악화되는 국면적인 상황이 더해졌다. 이러한 구조적·국면적 영향에 의해 지방정부와 도시정부는 도시 기업주의를 능동적으로 내면화한다. 이제 도시 기업주의에 입각하여 국내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도시 마케팅을 벌이고,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해 도시 공간을 재편하는 각종 개발·재개발 사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이러한 지역적 차원의 대응은 국가적 차원의 대응과 합치되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따라 경기가 침체되자, 중앙정부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내수 진작 정책, 특히 부동산 경기 활성화 대책을 지속적으로 내놓는다. 그에 따라 부동산 경기가 호황 국면으로 접어들자, 기업주의 도시 전략을 취하는 지방정부 또는 도시정부와 건설 자본, 금융 자본이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거나 이에 참여할 구조적 요인이 증가하였다. 이러한 구조적·국면적 또는 지역적·국가적 차원의 과정들이 과잉 결정됨에 따라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들이 추진되었다. 그 결과로 1960-80년대 한국의 부동산 개발·재개발에 따라 형성된 부동산 신화가 더욱 강화되었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개발 지향적 이데올로기와 토건족과 같은 성장연합을 더욱 공고하게 해주었다.


  이때 공모형 PF가 해당 사업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전략적 사업 방식으로 채택되었다. 이는 지방 정부와 도시 정부 그리고 민영화된 개발 공사들이 도시 경쟁력 향상을 위한 대규모 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혼자서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공공기관들은 해당 프로젝트를 단독으로 수행하기엔 재정적 여력이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자신들이 원하는 도시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선 합동 재개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민간 부문을 끌어들여야 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협력 관계는 민간 자본에게도 개발 이익을 전유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다음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민간 부문과 함께 진행하는 데 따르는 독특한 경제적 이점과 정치적 정당성이 있었다. 신자유주의 금융화 이후 도입된 각종 현대 금융기법은 소규모의 자기자본만으로도 금융시장으로부터 대규모의 투자 자금을 유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러한 현대 금융기법의 존재는 대규모 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시행하려는 공공부문에게 금융시장의 투자를 적극 고려하게 하는 요소로 기능했다. 또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발전주의 시기 관행으로 자리 잡았던 권위주의적 행정이 비판받았다. ‘작은 정부담론에 따라 공공부문은 도시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개발 사업에 민간 부문의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의 정치적 정당성을 얻고자 했다.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공모형 PF가 단순히 SOC사업에 적용되는 것을 넘어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에까지 전략적으로 활용된 것이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은 공모형 PF사업 등을 추진하는 데 있어 활용되는 도시 거버넌스가 실제로 민주적으로 운영되었는지에 대해서 비판이 가해진다는 것이다. 기존의 성장연합 중심으로 도시 개발·재개발 사업이 기획 및 추진되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 말이다. 다시 말해, 여전히 사업 대상 지역의 주민들의 의사가 아래로부터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채, 밀실에서 전문가와 행정관료 그리고 건설사와 금융기관들이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있다. 여기서도 철거민과 세입자들은 생존권과 주거권뿐만 아니라 의사결정권조차 보장되지 못한 채 배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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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박기형의 석사학위논문 "도시 공간 생산의 정치 : 성장연합의 전략적 수단과 그 변화를 중심으로"의 제4장에 해당합니다. 석사학위논문의 일부를 웹진에 게재한 것이므로, 인용 시 웹진 글이 아닌 해당 논문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1.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합동으로 사업을 시행한다는 측면에서 민관합동 PF사업이라고도 한다. 또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상호 역할분담을 통해 사업을 시행한다는 의미로 제3섹터 개발이라고도 한다(전광섭 2010, 297).” [본문으로]
  2. 자료출처: 대한건설협회 2012; 조선일보 재인용.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08/2012020802596.html “[벼랑 끝에 몰린 공모형 PF사업] 비싸게 산 부지가 걸림돌… 74兆규모 사업 대부분 올스톱.” 조선일보. 2012.02.08. (검색일자: 2018.11.02) [본문으로]
  3. 자료출처: 메리츠증권 부동산금융연구소 2009; 이인혁 2009, 4(표 일부 수정). [본문으로]
  4. 자료출처: 금융감독원 2009; 이인혁 2009, 14. [본문으로]
  5. 용산역세권개발은 삼성물산이 45.1%, 한국철도공사(코레일) 29.9%, 롯데관광개발이 25%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property/437721.html “삼성물산, 용산역세권개발 ‘주관사’ 포기.” 한겨레. 2010.08.31. (검색일자: 2018.11.18). [본문으로]
  6. 2009년 11월 용산 역세권 개발사업 전체 부지중 절반 정도가 기름, 납, 니켈, 아연, 구리 등 중금속을 비롯해 산업폐기물에 오염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용산역세권개발은 2009년 12월 오염토양 전체(36만 8,571㎥)를 대상으로 약 1,000억 원 규모의 ‘철도시설 철거 및 토양오염원 처리사업 용역’ 입찰공고 낸 후 2010년 1월부터 우선 협상업체 선정을 진행했다. 토양정화 사업 입찰에 건설투자자였던 기업들 중 일부가 참여했다. 결국 2010년 3월 삼성물산측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그런데 2010년 8월 말 용산국제업무지구 PF사업이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사업 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표류 상태에 빠지자 건설투자자 대표사로 있던 삼성물산이 용산역세권개발의 지분 45.1%를 롯데관광개발에 넘기면서 사업에서 전면 철수했다. 대신 진행 중이던 사업들에 대해서 비용을 지급받기 위해 소송을 진행한 것이었다. http://www.ikld.kr/news/articleView.html?idxno=17563 “수천억 급증된 용산역세권 정화공사비 진실 : 1천억 입찰이 실시설계후 3천500억으로 둔갑.” 국토일보. 11.03.24. (검색일자: 2018.11.18). [본문으로]
  7. http://www.hani.co.kr/arti/PRINT/582086.html “용산개발 디폴트, 결국 31개 투자사 소송전만 남았다.” 한겨레. 2013.04.09. (검색일자: 2018.11.18.), https://news.joins.com/article/16484944 “삼성물산, 드림허브에 1000억대 지급명령 신청.” 중앙일보. 2014.11.21. (검색일자: 2018.11.1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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