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부 지도 그리기
교차성, 정체성의 정치, 그리고 유색인 여성에 대한 폭력
킴벌리 크렌쇼
Stanford Law Review, Vol. 43, No. 6 (Jul., 1991), pp. 1241-1299
요약: 이 글에서 크렌쇼는 교차성 렌즈를 통해 유색인 여성들에 대한 가정폭력을 분석하면서 이들의 경험이 가진 특수성이 기존의 (백인 중심) 페미니즘 운동이나 (흑인 남성들이 지배하는) 반인종주의 운동 내에서 어떤 식으로 비가시화되는지 이야기한다. 특히 이 글에서는 ‘교차성’을 ‘구조적 교차성’ ‘정치적 교차성’ ‘재현적 교차성’으로 세분화해 적용함으로써 자신의 교차성 이론을 한층 정교화하고 있다.
크렌쇼는 강간이나 가정폭력이 가진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측면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유색인 여성, 빈곤층 여성들의 경우 가정폭력을 경험하는 방식 역시 다른 여성들과 다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 해결책 역시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종과 젠더에 대한 단순화된 개념에 입각할 경우 개혁적 여성정책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유색인 여성들에게 해를 미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여성을 덧붙이는’ 방식의 분석과 정책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번역: 마리옹
* 일러두기 : 대괄호[ ]는 옮긴이의 첨언이다.
지난 20여 년간,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을 형성하는 일상적인 폭력에 맞서 조직화해 왔다. 서로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여성들은 수백만의 정치적 요구가 소수의 간청보다는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정치화는 결국 우리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한때는 구타와 강간이 사적이고(가정사) 일탈적인 일로(일반적이지 않은 성적 공격) 여겨졌으나 지금은 여성이라는 계급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지배 체계의 일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전에는 특수한 단일 사례, 개인적인 일로 인식되었던 일들의 사회적이고 체계적인 성질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 과정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비롯한 유색인들, 그리고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정체성의 정치’의 특징이기도 했다. 이런 집단들에게 정체성에 기반한 정치는 힘과 커뮤니티, 지적 발전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정체성의 정치의 수용은 사회정의에 대한 지배적 개념들과 긴장 관계에 놓여 있었다. 인종, 젠더 등의 정체성 범주들은 주류 자유주의적 담론에서 대개 편견이나 지배의 흔적―즉, 다른 차이를 지닌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주변화하는 사회적 권력이 작동하는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프레임워크―으로 간주되었다. 이런 이해에 따르면, 우리에게 해방의 목표는 그런 범주들의 사회적 중요성을 제거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페미니즘과 인종 해방 운동들 가운데 일부는 차이를 기술할 때의 사회적 권력이 지배 권력일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사회적 세력화와 재구축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정체성 정치의 문제는 세간의 비판이 제기하는 대로 차이를 초월하지 못한 데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집단 내 차이들을 뭉뚱그려 버리거나 간과한 데 있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의 맥락에서 이런 차이의 생략은 문제적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은 보통 그들이 가진 다른 차원의 정체성들, 예를 들어 인종이나 계급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단 내의 차이를 간과하면서 집단들 사이의 긴장을 부추기게 되는 측면도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치화하는 노력과 관련해 정체성의 정치가 가진 또 다른 문제였다. 여성들의 경험을 정치화하려는 페미니스트들의 노력과 유색인들의 경험을 정치화하려는 반인종주의 운동(/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노력들은 점차 마치 각자의 이슈와 경험이 서로 배타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되어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가 실제 우리의 삶에선 교차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과 반인종주의의 실천에서는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 실천에서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유색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설명하면서 유색인 여성을 말하지 못하는 위치로 격하시켜 버리게 되었다.
이 글의 목적은 유색인 여성에 대한 폭력의 인종적 차원과 젠더적 차원을 살펴봄으로써 그들을 말하는 위치로 올려놓는 데 있다. 우리 시대 페미니즘과 반인종주의 담론들은 유색인 여성 같은 교차적인 정체성들을 고려하는 데 실패했다. 구타와 강간이라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가진 두 가지 차원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나는 유색인 여성들의 경험이 어떻게 해서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 패턴이 교차한 결과물이 되는지, 페미니즘이나 반인종주의 담론 내에서 이런 경험들이 어떤 이유로 재현되지 못하는지 검토해 볼 것이다. 이쪽 아니면 저쪽에만 반응하도록 되어 있는 담론들 내에서 유색인 여성들은 여성이자 유색인인 그들의 교차적 정체성으로 인해, 양자 모두에서 주변화되어 있다.
이전 글에서 나는 인종과 젠더가 상호작용하여 흑인Black 여성들의 고용 경험이 가진 복합적 차원들을 형성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보여 주기 위해 교차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거기서 나의 목적은 흑인 여성들이 직면하는 경험의 많은 부분이 전통적인 인종차별이나 젠더차별 경계로는(이 경계들이 현재 이해되는 방식으로는) 포괄되지 않으며, 또 그런 경험들이 가진 인종 차원이나 젠더 차원을 분리해 바라봐서는 흑인 여성들이 실제 삶 속에서 경험하는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 요인들의 교차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는 걸 보여 주는 데 있었다. 나는 이 글에서 인종과 젠더가 교차하며 유색인 여성이 겪는 폭력의 구조적, 정치적, 재현적 차원을 형성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살펴봄으로써 이 점을 좀 더 발전시켜 보고자 한다.
나는 우선 여기서 말하는 교차성이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기존 이론들을 비판하고 종합한 이론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두고 싶다. 유색인 여성에 대한 폭력이 여기서 이야기하는 젠더와 인종의 틀로만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내가 부분적으로만 다루거나 전혀 다루지 않고 있는 계급이나 섹슈얼리티와 같은 요인들은 유색인 여성들의 경험을 형성하는 데 있어 대개 매우 결정적인 요인들이다. 내가 인종과 젠더의 교차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사회세계가 어떻게 구축되어 있는지를 고려할 때 정체성의 복합적 영역들을 설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이 글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I부에서는 구조적 교차성, 즉 유색인 여성들이 인종과 젠더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함으로 인해 가정폭력, 강간, 개선 방안과 관련해 어떤 식으로 백인 여성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지 논한다. II부에서는 초점을 정치적 교차성으로 옮겨 페미니즘과 반인종주의 정치 모두가 (역설적이게도) 어떤 식으로 유색인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주변화하는 데 일조해 왔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III부에서는 재현적 교차성을 논하면서 유색인 여성의 문화적 구축(/구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대중문화 영역에서 유색인 여성의 재현을 둘러싼 논쟁들이 어떻게 유색인 여성의 독특한 위치를 생략해 버리고, 그럼으로써 교차적 무력화의 또 다른 원천이 될 수 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현대 정체성의 정치라는 좀 더 넓은 범위 내에서 교차적 접근법이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 이야기해 볼 것이다.
I. 구조적 교차성
A. 구조적 교차성과 구타
나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소수민족 커뮤니티에 위치한 매맞는 여성들의 쉼터들에 대한 현장 연구를 하면서 구조적 교차성의 동학을 목격했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들을 이런 쉼터로 오게 만드는 물리적 폭력은 그들이 경험하는 종속의 가장 직접적인 표면적 징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보호책을 찾는 여성들은 대부분 직업이 없거나 불완전 고용 상태에 있는 이들이며, 상당수가 가난한 이들이다. 이런 여성들을 위한 쉼터들은 학대자가 가한 폭력만을 다루기도 버거운 형편인데, 이런 여성들의 삶에 으레 집중돼 있기 마련인 다른 다층적이고 일상화된 지배 형태들까지도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애초에 그들을 쉼터로 오게 만든 학대 관계에 대한 대안 마련을 어렵게 만든다. 예를 들어, 많은 유색인 여성들은 가난과 아이를 부양해야 할 책임을 떠안고 있으며, 직업 기술도 부족하다. 대체로 젠더 억압과 계급 억압의 결과물에 해당하는 이런 부담들은, 유색인 여성들이 보통 마주하게 되는 인종차별적 고용 관행과 주택 문제, 그리고 유색인들 사이의 불균형적으로 높은 실업률(이 때문에 유색인 여성들은 일시적인 보호처로 친구나 친척들의 부양에 의존하기가 어렵다)로 인해 더욱 악화된다.
인종, 젠더, 계급 지배 체계의 범위 내에서, 매맞는 유색인 여성들의 경험에 작용하는 개입 전략들은, 같은 계급이나 인종 배경을 공유하지 않는 여성들의 경험에만 기초할 경우, 인종이나 계급 때문에 다른 장애물을 마주한 여성들에게 제한적인 도움만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런 사례가 바로 1990년에 의회가 미국 이민을 위해 시민이나 영주권자와 결혼한 이주 여성들 가운데 그들에 의한 구타나 극단적인 학대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민법의 사기결혼 방지 조항을 수정한 사례다. 이민법의 사기결혼 방지 조항에 따르면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 시민이나 영주권자와 결혼한 사람은 영구적 영주권 지위를 신청하기 전 무려 2년간 “사실상” 혼인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으며, 이 시기에 이주민의 영주권 신청을 위해선 배우자 쌍방의 서명이 필요했다. 예상대로 이런 상황에서 많은 이주민 여성들은 추방당할까 두려워 자신을 학대하는 배우자를 떠나지 못했다. 자신을 학대하는 배우자와 추방에 대한 보호 라는 선택지 앞에서 많은 이주민 여성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이런 이중적 종속의 비극적 결과에 대한 보도들은 1990년 이민법 사기결혼 방지 규칙을 수정하는(가정폭력으로 인한 예외 사례의 경우 배우자 쌍방이 아닌 한 사람만의 청원으로도 영구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항을 포함시키도록 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많은 이주민 여성들, 특히 유색인 이주민 여성들은 여전히 구타에 취약한 존재로 남아 있었는데, 이유는 그들이 조건부 영주권 해제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배우자와의 공동청원 없이 단독으로 조건부 영주권] 해제 신청 서류를 접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을 뒷받침해 줄 증거, 즉 “경찰, 의료진, 심리학자, 학교 당국, 복지기관이 발행한 보고서와 진술서”가 있어야 했다. 이주민 여성들 대부분이 이런 자원에 대한 접근권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단독으로 해제 신청을 하는 데 필요한 증거를 그들이 직접 입수하기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더구나 문화적 장벽은 이들이 매맞는 상황을 알리거나 그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었다. 복지기관에서 가족상담사로 있는 티나 셤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 법만 놓고 보면 신청하기는 꽤나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아시아 커뮤니티 내에는 이런 필요조건들을 제출하기 어렵게 만드는 문화적 문제가 있습니다. …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전화할 기회를 찾거나 그럴 용기를 내는 것조차 엄청나게 어려워합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전형적인 이주민 배우자는 “몇 세대가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혼자 전화를 하거나 집을 나갈 틈조차 찾기 어려울 수 있으며 공중전화라는 것도 아예 모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많은 이주민 여성들은 집 밖의 세계와 그들을 연결시켜 주는 연결 고리로 남편에 완전히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주민 여성이 배우자의 폭력에 취약한 것은 그들 중 상당수가 그들의 법률적 지위와 관련한 정보를 남편에게서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영주권을 보유한 여성들 역시 강제송환의 위협 속에 남편의 학대에 시달린다. 전혀 근거가 없는 협박이라 해도 혼자서는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여성들은 여전히 그런 협박에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다. 또 가정폭력으로 인해 조건부 영주권 해제 신청을 단독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 조항이 미국 시민이나 영주권자를 배우자로 둔 이주민 여성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밀입국 노동자들과 결혼한 탓에 자신이 도움을 요청해 주의가 집중되도록 할 경우 가족의 안전이 위험에 처할까 두려워 침묵 속에 고통을 견디고 있는 여성들도 무수히 많다.
언어 장벽은 영어를 못하는 여성들이 기존의 지원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를 제한하는 또 다른 구조적 문제다. 그런 장벽은 쉼터 정보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쉼터가 제공하는 각종 안전 서비스에 대한 접근도 어렵게 한다. 어떤 쉼터들은 다른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직원과 자원 부족으로 영어를 못하는 여성들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들은 여성의 가정폭력 경험에서 종속의 패턴들이 어떤 식으로 교차하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교차적 종속은 꼭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사실 그것은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취약성과 상호작용하는 정책이 하나 도입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며 또 다른 차원의 무력화 효과가 나타난 결과인 경우가 더 많다. [1986년, 위장결혼을 방지하기 위한-옮긴이] 이민법의 결혼사기방지 조항의 경우를 보면, 영주권을 얻으려는 이주민 배우자에게 특화된 정책이 도입되면서 다른 지배 구조에 의해 이미 종속 상태에 놓여 있는 이들의 무력화 상황을 점점 더 악화시켰다. 이주민 배우자가 가정폭력에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함으로써 의회는 이런 여성들이 반이민정책과 배우자들의 폭력의 결과를 모두 동시에 흡수하도록 하는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결혼사기 방지법의 가정폭력 피해자의 예외 조항 입법은 특정 문제들에 대응하려는 소소한modest 시도들도 유색인 여성들의 교차적 위치가 고려되지 않는다면 문제를 바로잡는 데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문화적 정체성과 계급에 따라 매맞는 배우자가 이 예외 조항을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달라진다. 예외 조항이 형식적으로는 모든 여성들에게 열려 있다 해도,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들은 어떤 이들에겐 접근 불가능한 것일 수 있다.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특권을 지닌 이주민 여성들은 예외 조항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자원들을 모으기가 훨씬 더 쉽지만 예외 조항을 이용하기 힘든 이주민 여성들―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주변부에 위치한 여성들―은 유색인 여성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B. 구조적 교차성과 강간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유색인 여성들은 상이한 상황에 처해 있다. 여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개혁 노력들이 이런 사실을 무시한다면, 유색인 여성들은 인종적으로 특권을 가진 쪽에 위치한 여성들보다 자신들의 필요needs를 충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유색인 여성들에게 강간위기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상담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들에게 분배된 자원의 상당 부분이 강간이 아닌 그 이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비되어야만 한다. 상담사들은 이런 필요를 충족시키려다 보면 종종 자금을 지원하는 기관들―이들은 백인 중산층의 필요를 기준으로 자금을 분배한다―과 갈등을 빚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필요에 대한 이런 획일적인 기준은 필요가 다르면 자원 분배의 우선순위 역시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하며, 결과적으로 이런 기준들은 상담사들이 비백인 빈곤층 여성들의 필요를 다루는 능력을 저해한다. 지배 사회에서 물리적으로(/신체적으로) 문화적으로 모두 주변화된 위치를 차지하는 유색인 여성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특화된 형태로 제공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강간위기센터들은 백인 커뮤니티보다는 유색인 커뮤니티들에 기본적인 정보를 보급하는 자원을 더 많이 배정해야만 한다.
비용 증가는 주류 정보 채널을 접할 수 없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준 결과일 뿐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소수민족 커뮤니티들의 상담사들은 폭행당한 여성들의 주거 문제와 여타의 즉각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시간과 자원을 배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재원 지원 기관들은 이 일을 “정보를 전달하고 다른 전문기관에 위탁”하면 그만인 일로 생각하기 때문에 소수민족 커뮤니티들에서는 이런 서비스가 더 많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늘 자금난을 겪는다. 문제는 강간위기센터들이 그들에게 할당된 자원의 상당 부분을 피해자들을 법정까지 데려갈 상담사들에게 사용할 거라는 기대에 의해 더욱 악화된다. 유색인 여성들은 사법체계에서 자신들의 사건을 소송으로까지 끌고갈 가능성이 더 적은데도 말이다. 법정 서비스를 위해 쓰도록 배정된 자원들은 이런 커뮤니티들에서 엉뚱한 곳에 쓰이고 만다.
다층적인 종속의 효과로 어려움을 겪는 소수민족 여성들의 경우, 부적절한 비교차적 맥락에 기초한 제도적 요구들이 결부되면서 그들 편에서의 의미 있는 개입의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 교차적 동학을 고려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소수민족 여성 피해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상담사들이 경험하는 실패와 좌절, 번아웃을 설명하는 데 한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