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 시간의 시학: 횔덜린과 만델시탐 #1
아르테미 마군
번역 이 종 현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소개하는 말]
지난 <러시아 현대시 읽기>에서 다음에는 아르카디 드라고모셴코의 시를 읽어보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시가 너무 어려워서 '읽기'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의 연작 <현실로서의 한련화 (Настурнция как реальность)>를 읽고 번역하고 있지만, 심지어 한련화 씨앗을 사서 화분에 심고 그 씨앗이 싹을 틔워 꼬불꼬불 자라나고 있지만 여전히 시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러시아에서는 어떻게 시를 읽고 있는지 힌트를 좀 얻어보려고 정치철학자 아르테미 블라디미로비치 마군(А.В. Магун)이 횔덜린과 만델시탐의 시를 분석한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그의 글 역시 대단히 난해해서 번역이라도 해 보면 조금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세 번에 나눠 번역을 올려보고자 합니다. 현대 러시아에서 정치철학적으로 시를 분석하는 한 예라는 점에서 이 번외편은 <현대 러시아에서 시 읽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독일과 러시아,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을 가로지르며 혁명에 고유한 시간성을 언어의 본성, 시의 형식적 특성 등과 연결짓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2016년 박하연, 전미라 씨와 함께 수유너머N 웹진에 마군의 글 <공산주의의 부정성>을 번역해 올린 적 있습니다. (https://nomadist.tistory.com/entry/특집번역-아르테미-마군-공산주의의-부정성-1?category=623875) 이 글은, 러시아의 소설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소설 <코틀로반>을 바탕으로 공산주의의 부정성과 포스트-공산주의 사회에서의 새로운 주체형성을 분석합니다. 그때 썼던 마군에 대한 소개글을 바탕으로 그를 다시 소개해 보겠습니다.
아르테미 블라디미로비치 마군(1974~)은 레닌그라드(오늘날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모스크바국립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미시간대학교와 스트라스부르대학교에서 각각 정치학,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서구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이론, 예술, 행동을 결합하고자 결성된 <무엇을 할 것인가(Что делать)> 그룹에서 활동한 바 있습니다. 문학, 정치학, 철학, 사회학을 다루는 저널 <새로운 문학 비평(Новое литературное обозрение, НЛО>에서 편집진이었고 현재는 사회철학, 정치철학 등을 다루는 저널 <Stasis>의 편집장입니다.(이 저널은 영어, 노어 두 가지로 나오기 때문에 사이트에 들어가서 피디에프 원문을 볼만합니다. http://www.stasisjournal.net/index.php/journal) 마군은 랑시에르, 바디우, 지젝 등 서구의 철학자들과 폭넓게 교류하는 한편, 러시아 혁명,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포스트-공산주의 사회, 푸틴 시대의 러시아 사회운동 등에 관심을 갖고 이러한 현상들을 정치철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부정적 혁명(Negative Revolution. Modern Political Subject and ist Fate after the Cold War, 2013)>, <민주주의: 데몬과 헤게몬(Демократия: демон и гегемон, 2016)> 등이 있습니다. 2015년 저널 <Stasis>에서 러시아 철학자 블라디미르 비비힌의 특집호를 내면서 그의 언어철학, 정치철학을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유럽대학교 민주주의정치이론 전공 교수,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교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번역하는 마군의 글은 <새로운 문학 비평(Новое литературное обозрение, НЛО> 2003년 63호 만델시탐 특집 39-58쪽에 실렸습니다.
I. 도입
오늘날 역사에 대한 이해는 18세기, 즉 루소와 칸트가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영원한 부동의) 실체에 도달할 수 없다고 공언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인간은 자신의 발전에 대한 능력(또는 거기에 짝을 이루는 쇠락에 대한 능력)을 통해 규정되는 역사적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곧 인간의 역사성 그 자체의 본질과 운동 그 자체의 원칙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대두하였다. 절대적이고 신과 같은 창조의 자유로 나아가는 길이 인간에게 차단되었기에 인간은 언제나 과거의 상실을 애도하는 상복을 입은 채 상상된 미래를 열망하며 외부적 상황의 영원한 노예가 되는 위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이 자기 고유의 근본 없는 우연성을 연역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우연성에 접촉하고, 그 우연성에 대한 경험을 얻는 것이 가능해지는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했는데, 그러한 탐색의 목적은 이후 인간에게 고유한 자유에 대한 앎에 실제적으로 의지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칸트는 세 번째 『비판』에서 자유의 경험을 허용한다. 그런데 그가 초기에 찾은 윤리적 문제의 해법은 합리적으로 연역되는 법칙에서 우연성의 원칙을 발견하는 데 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해방으로 고안된 것은 위험하게도 노예상태와 경계를 접하게 된다.
그리하여 질문은 바로 다음과 같이 정식화된다. 만약 인간의 본질이 역사성 안에 있는 것이라면, 역사 그 자체의 본질은 어디에 있으며 역사의 운동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자신의 변화가능성을 깨달은 인간은 순수하고 근본 없는 운동, 또는 순수한 시간에 대한 경험을 얻기를 열망한다. 그런데 이러한 욕망은 한편 부조리해 보이기도 한다. 사실 시간은 다양한 세계적 과정들의 공통 척도일 뿐이고, 시간은 단지 추상일 뿐이기 때문에 ‘순수한’ 형태로는 마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추상적으로 이해된 ‘객관적’ 자연에 대한 문제라면 ‘순수한’ 형태의 시간과 만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에서 순수한 시간은 그 시간의 경험(이때, 반드시 변증법적 이행이 이루어져야 한다)이 역사 그 자체로 생산되는 한에서만 현실이 된다. 이 글에서 나는 순수한 시간의 경험은 인간이 수행하는 작업(работа)의 전제이자 결과임을 보여줄 것이다. 그것이 생산적 노동(труд)이든 예술이든 말이다.
이미 루소는 인간의 역사성을 확증하는 동시에 무위(праздность), 즉 노동의 필요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잉여의 시간이라는 형상을 제시했다.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연극에 관한 편지」에서 루소는 볼거리 없는 축제를 즐길 줄 알았던 능력으로 역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민족, 즉 스파르타인들의 ‘근면한 무위’(laborieuse oisiveté)에 대해 쓴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모든 직관의 선험적 조건, 경험에서 끄집어 낼 수 없는 직관의 초월적인 순수 형식으로서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 직관의 조건은 그것 자체로 ‘표상’(Vorstellung)이자 직관(Anschauung)인데, 이 직관이 어디까지나 선험적이고 경험에 앞서는 ‘순수한’ 직관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시간은 그것 자체로 직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 말은 시간은 직관에 속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은 시간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 특수한 종류의 직관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칸트는 이 지점에서 망설인다. 그는 정신의 특수한 능력, 즉 초월적 상상력을 도입하는데, 초월적 상상력은 시간 그 자체를 무대상적으로, 비주제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초월론적 상상력은 시간 그 자체를 시간에 대한 형상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월론적 상상력은 스스로 순수 이성의 기능을 떠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칸트 스스로 이 책의 제 2판에서 순수한 상상의 ‘전권’에 제한을 가한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자신의 책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에서 특히 상상은 항상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로서의 실체의 ‘도식’을 만들면서 어떤 식으로든 시간을 순수하게 직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어찌 되었든 『순수이성비판』의 테두리 안에서는 시간의 순수한 경험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경험은 시간 안에 위치하며 유한한 무언가를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에 쓴 『판단력비판』에서 칸트는 순수한 경험, 바로 숭고한 것의 경험에 대한 가능성을 암시한다. 여기서 상상력은 공간과 시간을 직관하지 않고 공간과 시간을 부정적으로 가리킨다. 공간의 광대함을 포착하는데 실패하는 상상력의 시도는 경험과 그 대상의 불일치 덕분에 공간 그 자체에 대한 주관적 이념을 부정적으로 가리키고, 자연 재해의 막강함을 상상하지 못하는 무능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 재해의 힘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를 가리킨다.
칸트의 많은 추종자들은 그의 이러한 논증을 발전시켜, 순수한 시간, 즉 자유로운 시간의 경험에 대한 인간의 실제적, 이론적 접근에 근거를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이 사상적 노선은 실러와 횔덜린에서 시작되어 맑스, 그리고 나중에는 조르주 바타유에게로 이어진다. 맑스의 사상에서 이 노선은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바타유는 이 노선을 맑스주의적(이 지점에서는 그렇다) 헤겔 해석자인 알렉상드르 코제브에게서 이어 받는다. 실러는 인간 자유의 영역을 합리적, 지성적 상태로부터 일종의 중간적 상태, 즉 인간이 놀이하고 그 놀이 속에서 감성적인 것과 지성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태로 이동시킨다. 그 자체로 무용하고 우연적인 행위인 놀이는 실러의 정식에 따르자면 “시간을 – 시간 속에서 중지(aufheben)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중개자의 역할을 한다. 잘 알려져 있듯 헤겔은 노동(Arbeit)을 근본적이고 실제적인 당위이며 존재론적 근거로 삼으며 무위에 대해 경멸적인 태도를 취한다. 한편, 그는 무위에 대해 역설적인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역사철학강의』에서 행복의 시기들에 대해 쓰는데, 그 시기들은 역사라는 책에서 “빈 페이지”들에 지나지 않는다.
맑스에게 이 자유의 시대의 “빈 페이지들”은 인간 자유에 대한 비밀을 풀 열쇠가 된다. 자본주의적 착취의 비밀은 바로 자본가는 필요에 따른 노동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마치’ 자유 시간에 하는 듯한 필수적이지 않은 노동까지 자본가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데 있다. 그런 식으로, 자본가는 유한한 자본으로 무한히 증대되는 인간 활동의 본질을 획득한다. 사물의 당위적 질서에 대한 맑스의 얼마 안 되는 ‘긍정적’ 언급은(무엇보다도 「1861-1863년의 경제학 수고」와 「Grundrisse」에서 그렇다) 그가 자유로운 ‘가용적(disponible)’ 시간, ‘여가 시간(Mussezeit)’을 자유로운 인간 존재의 유일하고 진정한 형태, “개인의 온전한 발전을 위한 시간”으로 파악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세기에 들어서자 바타유는 맑스의 이러한 사상을 발전시켜 전통적 경제의 개념을 전도시키고, 결핍과 그 결핍을 채울 필요가 아니라 잉여와 무용한 낭비를 중심으로 경제의 개념을 재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맑스와 바타유에게 무위는 무엇보다도 행위의 실제적 원칙이자 근거가 된다. 이런 점에서 맑스의 사상을 선취한 프리드리히 횔덜린에게는 무엇보다도 무위의 이론적 측면, 즉 인간과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인간과 세계를 넘어서는 것의 개시로서의 무위가 중요하다. 횔덜린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에 붙이는 주석에서 칸트적 의미의 감성적 지각의 형식, 덧붙여진 것 없는 순수한 형태의 공간과 시간을 직접적으로 직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명확히 정식화한다. 비극적 “격변(Umkehr)”의 순간, 즉 “이 고통의 최후 경계에서는 공간이나 시간의 조건들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 이러한 전환은 서술이 절단되고 꺾이는 지점, 즉 휴지부에서만 가능한데, 이때 바로 행위의 중심에서 “무위의 시간(die müßige Zeit)”의 실현되지 않은 잉여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무위의 시간”은 「오이디푸스에 붙이는 주석」의 후반부에서 언급되고 「안티고네에 붙이는 주석」에서 다시 나타난다.
[비극의 제시는] 사건들의 연쇄, 인물들의 대립, 그리고 비극적 시간의 무시무시한 무용성으로부터 구성되는 지성적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형식은 처음에는 대립들과 그 대립들의 거친 전개에서 탄생하지만, 이후 인간적 시간에서는 신적 운명에서 생겨난 견고한 견해로 나타난다.
비극적 행위가 그 위기의 지점에서 갑자기 중단될 때,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는 관객은 이 행위의 잉여, 즉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을 때, (그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움직임을 계속하는 무언가를 지각한다. 이 무언가야말로 바로 시간 그 자체, 인간 자유의 원칙이다. 이 원칙, 즉 무위의 움직임은 정치적 혁명의 바탕에도 놓여 있다. 다시 한 번 맑스의 사상을 선취하며 횔덜린은 자신의 비극 이론과 프랑스 혁명을 분명히 연관 짓는데, 이때 「안티고네」의 공화주의적 성격을 강조하고 휴지부를 가리켜 “무한하고” “단호한” 변혁이라고 부른다. (Umkehr는 당시 독일어에서 혁명을 가리키는 데 쓰였다.)
1837년 당시 파트모스 섬을 그린 그림.
자유의 시간과 혁명의 관계는 횔덜린이 창작 초기에 쓴 시 「Die Muße(‘무위’, ‘여가’)」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나는데, 이 시는 프랑스 혁명군이 접근해 오던 1797년의 긴장된 분위기 가운데 집필된 작품으로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일종의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다. 미완성의 단편으로 보존된 이 작품은 수고본에서 철자 W가 다른 철자들과 결합해 단어를 이루지 않고 철자 그대로 남아 있는 그 생략의 계기 때문에 흥미롭다. 최근까지도 편집자들은 이 미완성된 단어를 무시하거나 ‘숲’을 뜻하는 단어 Wald로 보충하기도 했다(F. 바이스너의 슈튜트가르트판이 그렇다. D. 자틀러가 편집한 새로운 프랑크푸르트판에는 수고본의 형태가 복원되어 있다.) 이 글에서 나는 언어의 물질화, 물질적 기표의 파괴와 분산을 묘사하는 이 시의 논리에 바로 이 고독한 대문자가 기입된다는 것을 밝힐 것이다. 이 독립적인 철자는 횔덜린의 후기 찬가 「파트모스」의 유명한 종결부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 “...der Vater aber liebt / Der über allen waltet, / Am meisten, daß gepfleget werde / Der feste Buchstab, und Bestehendes gut / Gedeutetet. Dem folgt deutscher Gesang” (그러나 모든 것 위에 군림하시는 아버지께서는 / 사람들이 그 불변의 문자를 아끼고 / 굳건히 존속하는 것의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기를 / 세상 무엇보다도 바라신다. / 독일의 노래는 이를 따를 뿐이다.)
횔덜린의 시는 단지 ‘자유의 시간’을 예찬하기만 하지 않는다. 이 시는 ‘자유의 시간’을 탈신화화하기도 한다. 시간은 결코 ‘자유로운 것’, ‘텅 빈 것’, 또는 ‘굳어진 것’으로 완결될 수 없다. 이러한 휴지(休止)를 정의하는 것 자체가 모순적인데, 왜냐하면 그 휴지 안에서 부동성은 운동성과 결합하기 때문이다. ‘무위’는 엄격히 말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 시간의 잉여, 잉여로서의 시간이다. 횔덜린과 맑스에게서 이 개념은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내던져져 유기되어 있는 인간의 상태를 가리킨다. 횔덜린과 맑스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혁명 이후의 시대를 일종의 막내들의 시간, 즉 역사의 종말과 신의 죽음 등을 경험한 막내들의 시간으로 느꼈던 것이다.
혁명 이후 세대라면 누구나 자신을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세계 전체는 과거 속에 용해되었고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이 과거로부터 자유롭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과거는 계속 경험되고 있으며 사람들 안에 살아 있다. 그래서 심지어 혁명을 위한 모든 노력도 사람들이 벗어나고자 하는 낡은 세계에 숙명적으로 얽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전복된 과거와 상상된 미래 사이에 성가신 장애물, 즉 봉기를 일으켰고 혁명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갇혀버린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포스트공산주의적’ 상황이 바로 그러하다. 억압적인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는 기쁨에 찬 새로운 세계의 건설이 아니라 ‘과도기’의 무감각과 멜랑콜리로 이어졌다. 이 ‘과도기’는 자신의 의미적 구조를 상실하고 마침내는 자기 자신도 상실해 버렸다.
우리의 ‘혁명적 상황’을 묘사하는 주요 용어는 바로 ‘정체’와 ‘가속화’인데 이 단어들은 함께 한꺼번에 내뱉어졌다. 정체는 ‘나쁜 것’과 과거에 투사되었고, 가속화는 바람직한 것과 미래에 투사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1990년대에 우리는 안정화를 추구했고 인플레이션과 싸웠다. 사실 이것은 평온하게 흘러가던 삶이 갑자기 중단되었을 때 일어나는 상황의 여러 측면들일 뿐이다. 혁명은 무엇보다도 시간의 중단이며, 이후에 이어지는 혁명적 시간은 이 중단의 기능이다. ‘가속화’는 이미 형성된 장애물을 눈을 찌푸리며 단칼에 극복하고(‘충격 요법’), ‘과도기’의 점점 넓어져만 가는, 출구 없는 심연을 뛰어넘기 위한 히스테리적 시도다. 이때, 과거의 ‘정체’는 혁명적 중단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았을 때 생기는 광학적 효과다. 한편, 현재의 ‘정체’는 자기제동의 노력이자, 외적 억압의 심급이 붕괴했을 때, 사회가 자기 자신에게로 겨누는 공격이다.
이처럼 무위는 자유일 뿐만 아니라 자기 안에 갇힌 정신이 겪는 고통과 불안을 지니고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 바로 이 지점에서 루소, 횔덜린, 맑스가 한 목소리를 낸다 – 자유의 시간에서 작업 또는 노동이 생겨나는데, 바로 이 노동은 무한하고 단조로우며 희망 없는 활동에 대한 의지다. 이 활동의 목적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이지만 그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이러한 작업의 원천은 헤겔이 ‘부정적인 것의 노동(Arbeit des Negativen)’이라고 부르고 나중에는 프로이트가 ‘거상(居喪) 작업’이라고 부른 것이다. 자유의 시간을 찾고자 하는 인간은 자기 안에 살고 있는, 과거의 운동이 지닌 관성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의 자기제동의 시도 역시 그 자체로 하나의 운동이다. 따라서 이 운동은 또 다른 제동을 필요로 하고 이러한 과정은 무한히 이어진다. 이때, 무위, 즉 아무 것도 할 것 없음으로부터 인간의 작업이 생겨난다. 이것은 경제적 영역뿐만 아니라 자유의 시간이 지닌 역설이 자코뱅식 공포 정치나 1990년대 러시아의 정체와 같은 혁명 이후의 과도함으로 이어지는 정치의 역사에서도 그렇다. 또, 정의상 ‘여가’와 오락을 위해 실현되고 휴지를 ‘움켜쥔 채’ 무위의 작업을 보란 듯이 내세우는 미적, 시적 활동에서도 마찬가지다.
90년대 러시아의 조화(弔花). 소련 붕괴 직후인 90년대를 가리켜 흔히 '리히예 데뱌노스티예'(лихие девяностые, 흉악한 90년대)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2002년에 출간된 미하일 벨레르의 소설 <카산드라>에서 처음 쓰였고 이후 2007년 총선에서 유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이 완전히 목적을 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에 반하여, 이 작업은 인간이 자기 고유의 자유, 그리고 자기운동하는 시간과 언어의 신체에 접근하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노예는 자신의 끈질긴 노동으로 사물의 관성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저항’을 일으키고 그럼으로써 사물을 인간화한다. 물론 이때 헤겔은 상당히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사물이 실제로 직접 영혼을 획득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노동은 사물을 상징적으로 인간화하고 주체와 실체의 동일성이라는 ‘애니미즘적’ 효과를 생산한다. 이와 같은 것이 우리의 경우에서도 발생한다. 물론 완전히 비어 있는 시간, 그 무엇으로도 채워져 있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휴지를 움켜쥐고 있는 활동 자체는 그 실패 덕분에, 시간을 중단하려는 시도들에 저항하는 듯한 시간 자체의 운동이라는 효과를 생산한다. 자코뱅 당원들은 자신들의 죽음이야말로 승리가 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예언했고, 그들의 예언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혁명(이 불가능하면서 영원한 기획)의 종결은 바로 사후적으로 혁명을 실제 일어난 사실로서 확정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횔덜린의 시가 이러한 역설적 논리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인데, 백 여 년이 지난 뒤 러시아의 두 혁명 사이에 쓰인 O. 만델시탐의 시는 많은 점에서 횔덜린의 시를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