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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를 지배하는 과학, 젠더에 지배받는 과학>, 시작합니다!




Andante | 페미니즘 번역모임



트렌스레이팅 페미니즘 안에 코너속 코너가 생겼습니다. [젠더를 지배하는 과학, 젠더에 지배받는 과학]이라는 긴 꼭지명입니다. 

아래글은 번역연재를 시작하며 번역자가 직접 코너에 대한 소개글을 썼습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번역뿐만 아니라 번역한 내용과 관련된 연구메모를 곁들이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부터 새롭게 연재하는 번역작업을 기대해 주세요! 

- 편집장


모든 인간 활동이 그렇듯이 과학의 존재방식도 복합적입니다. 과학 활동과 관련된 사물, 건물, 약품, 기계와 같은 “유물론적 층위”, 이것들의 화폐 값을 매기고, 분배하는 “경제적 층위”, 사람들의 행동이나 성과를 평가하고 자기 서사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상징과 기호가 유통되는 “문화적 층위”,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조정되는 “정치적 층위”, 공적 행위들이 교차하는 “사회적 층위”, 이와 같은 행동들에 제한을 두고 통제하는 “제도적 층위” 등 다양한 것들이 교차하는 하나의 장입니다.

하지만 흔히 과학은 사물에 대한 가치중립적 서술을 하는 학문으로서 그 자체로 유물론적이며 논리적이라는 오해를 받곤 합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그런 오해를 조장하기도 하고 오해에 지배받기도 하면서 성장해온 하나의 복합적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업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작업물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맥락에서는 사회적으로 과학이 독해되는 탈맥락적인 방식을 옹호하다가, 고용구조, 임금, 연구 환경과 같이 자신들이 인간임이 드러나게 되는 맥락에서는 과학을 사회적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일관성이 없죠. 그래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저는 과학자라는 직업이 같은 건물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청소노동, 그리고 남성 둘 중 하나가 가는 것으로 (통계적으로) 추정되는 성판매 업소에서 진행되는 성판매와 본질적으로 그다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는데 전자는 일하는 자신의 행위와 내가 생각하는 자아가 이데올로기를 말하기만 하면 꽤 쉽게 잘 통합되고, 후자는 일하는 자신과 자아의 분열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통치해야하는 게 세상의 아이러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과학도 다른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통합과 분열의 고리 속에 놓여있습니다.

우리는 과학의 이런 사회적 측면의 일부 대해서 줄곧 이야기 해왔습니다. 이를테면 “오펜하이머와 같은 물리학자들이 맨하탄 프로젝트에 대거 참여했다더라.”, “기업에 유리한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교수들이 연구를 조작한다더라.”, “많은 건강 연구들이 성인남성을 기준으로 이루어져 소수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더라.”와 같은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사례들은 과학이 전통적으로 주장해왔던 내부규칙을 위반하는 경우들입니다. 따라서 이를 비판하는 것도 매우 쉽죠.

[그림] 이 사진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CERN) 한 건물 입구이다. 입구에서 보안요원이 음식물의 출입을 통제하고, 망막을 스캔하여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확인하고 통제한다. 이와 같은 유물론적 경계선은 과학의 많은 부분이 사회적 토대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과학은 누가 과학자고 누가 과학자가 아닌지, 누구에게 장비에 대한 접근을 허용할 것인지, 무엇이 합리적인 언술인지, 누가 그런 언술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것이 과학에 적합한 논제인지 등의 주제들을 가지고 끊임없이 경합하고 충돌하는 하나의 정치적 공간이다.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은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사물에 대한 이데올로기이다.


하지만 과학이 스스로가 정한 규칙만 지킨다고 해서 사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회부문이 그렇듯이, 과학자 사회가 특별히 규칙위반을 하지 않더라도 그저 체제에 순응하기만 하면 과학은 자본에 부역하며, 가부장제를 강화하고, 폭압적인 국제질서를 재생산하는데 아주 크게 일조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제가 공부하고 있는 물리학이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은 피지배자를 통치하는 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턴의 물리학 ‘법칙’과 인민의 행동을 규율하는 사법의 방식, 푸코가 말한 통계적 지배방식과 통계물리학 및 양자역학의 관계 등을 보면 시간적 선후에 관계없이 물리학이 사물을 통치하는 방식과 피지배자에 대한 권력의 통치방식이 기묘하게 공명하며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과학의 구체적인 수행과 이론체계에 어떤 구조적 정치성이 숨어있는지 밝히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특히 물리학과 젠더의 관계에 대해서 같이 논의해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맑시즘이 80년대까지의 시대정신이었다면, 저는 여성주의가 지금 도래하고 있는 시대정신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류에 무조건 편승하겠다는 뜻은 아니고, 누구나 이제라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시대적 요구라는 뜻입니다.) 또한 과학주의가 만든 학문의 위계의 아래에 있는 생물학, 심리학 등과 같은 학문들의 구성성은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쉽게 드러나는 반면, 수학, 물리학, 화학과 같은 과학주의의 중심부에 존재하는 학제들의 정치성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 논의의 기초 작업에 작게나마 기여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다양한 종류의 텍스트들을 찾아보고 번역하고자 합니다. 번역 한 꼭지가 끝나면 텍스트와 관련된 제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보기도 할 생각입니다. 만약 토론이 이루어진다면 그 논의에 대해서도 정리해볼 생각입니다. 일련의 작업을 통해서 젠더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열린 논의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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