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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를 지배하는 과학, 젠더에 지배받는 과학>, 시작합니다!




Andante | 페미니즘 번역모임



트렌스레이팅 페미니즘 안에 코너속 코너가 생겼습니다. [젠더를 지배하는 과학, 젠더에 지배받는 과학]이라는 긴 꼭지명입니다. 

아래글은 번역연재를 시작하며 번역자가 직접 코너에 대한 소개글을 썼습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번역뿐만 아니라 번역한 내용과 관련된 연구메모를 곁들이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부터 새롭게 연재하는 번역작업을 기대해 주세요! 

- 편집장


모든 인간 활동이 그렇듯이 과학의 존재방식도 복합적입니다. 과학 활동과 관련된 사물, 건물, 약품, 기계와 같은 “유물론적 층위”, 이것들의 화폐 값을 매기고, 분배하는 “경제적 층위”, 사람들의 행동이나 성과를 평가하고 자기 서사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상징과 기호가 유통되는 “문화적 층위”,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조정되는 “정치적 층위”, 공적 행위들이 교차하는 “사회적 층위”, 이와 같은 행동들에 제한을 두고 통제하는 “제도적 층위” 등 다양한 것들이 교차하는 하나의 장입니다.

하지만 흔히 과학은 사물에 대한 가치중립적 서술을 하는 학문으로서 그 자체로 유물론적이며 논리적이라는 오해를 받곤 합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그런 오해를 조장하기도 하고 오해에 지배받기도 하면서 성장해온 하나의 복합적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업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작업물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맥락에서는 사회적으로 과학이 독해되는 탈맥락적인 방식을 옹호하다가, 고용구조, 임금, 연구 환경과 같이 자신들이 인간임이 드러나게 되는 맥락에서는 과학을 사회적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일관성이 없죠. 그래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저는 과학자라는 직업이 같은 건물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청소노동, 그리고 남성 둘 중 하나가 가는 것으로 (통계적으로) 추정되는 성판매 업소에서 진행되는 성판매와 본질적으로 그다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는데 전자는 일하는 자신의 행위와 내가 생각하는 자아가 이데올로기를 말하기만 하면 꽤 쉽게 잘 통합되고, 후자는 일하는 자신과 자아의 분열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통치해야하는 게 세상의 아이러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과학도 다른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통합과 분열의 고리 속에 놓여있습니다.

우리는 과학의 이런 사회적 측면의 일부 대해서 줄곧 이야기 해왔습니다. 이를테면 “오펜하이머와 같은 물리학자들이 맨하탄 프로젝트에 대거 참여했다더라.”, “기업에 유리한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교수들이 연구를 조작한다더라.”, “많은 건강 연구들이 성인남성을 기준으로 이루어져 소수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더라.”와 같은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사례들은 과학이 전통적으로 주장해왔던 내부규칙을 위반하는 경우들입니다. 따라서 이를 비판하는 것도 매우 쉽죠.

[그림] 이 사진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CERN) 한 건물 입구이다. 입구에서 보안요원이 음식물의 출입을 통제하고, 망막을 스캔하여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확인하고 통제한다. 이와 같은 유물론적 경계선은 과학의 많은 부분이 사회적 토대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과학은 누가 과학자고 누가 과학자가 아닌지, 누구에게 장비에 대한 접근을 허용할 것인지, 무엇이 합리적인 언술인지, 누가 그런 언술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것이 과학에 적합한 논제인지 등의 주제들을 가지고 끊임없이 경합하고 충돌하는 하나의 정치적 공간이다.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은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사물에 대한 이데올로기이다.


하지만 과학이 스스로가 정한 규칙만 지킨다고 해서 사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회부문이 그렇듯이, 과학자 사회가 특별히 규칙위반을 하지 않더라도 그저 체제에 순응하기만 하면 과학은 자본에 부역하며, 가부장제를 강화하고, 폭압적인 국제질서를 재생산하는데 아주 크게 일조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제가 공부하고 있는 물리학이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은 피지배자를 통치하는 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턴의 물리학 ‘법칙’과 인민의 행동을 규율하는 사법의 방식, 푸코가 말한 통계적 지배방식과 통계물리학 및 양자역학의 관계 등을 보면 시간적 선후에 관계없이 물리학이 사물을 통치하는 방식과 피지배자에 대한 권력의 통치방식이 기묘하게 공명하며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과학의 구체적인 수행과 이론체계에 어떤 구조적 정치성이 숨어있는지 밝히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특히 물리학과 젠더의 관계에 대해서 같이 논의해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맑시즘이 80년대까지의 시대정신이었다면, 저는 여성주의가 지금 도래하고 있는 시대정신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류에 무조건 편승하겠다는 뜻은 아니고, 누구나 이제라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시대적 요구라는 뜻입니다.) 또한 과학주의가 만든 학문의 위계의 아래에 있는 생물학, 심리학 등과 같은 학문들의 구성성은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쉽게 드러나는 반면, 수학, 물리학, 화학과 같은 과학주의의 중심부에 존재하는 학제들의 정치성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 논의의 기초 작업에 작게나마 기여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다양한 종류의 텍스트들을 찾아보고 번역하고자 합니다. 번역 한 꼭지가 끝나면 텍스트와 관련된 제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보기도 할 생각입니다. 만약 토론이 이루어진다면 그 논의에 대해서도 정리해볼 생각입니다. 일련의 작업을 통해서 젠더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열린 논의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 WTF 2017.07.25 20:17

    맑시즘에 대해서도, "여성주의"에 대해서도 잘모르시는 분이 오로지 잘아는 닳고 닳은 이분법으로 양자를 대립시키면서 아무 근거도, 책임질 수도 없는 아주 용감한 주장을 하시네요.
    하지만 "여성주의"도 님이 착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맑시즘보다도 더 오래된 사상이랍니다.
    요즘 도래한다시는 그 시대정신이, 님이 생각하고 계신 바로 그 "여성주의"는 더더욱 아니구요.

    더구나,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과학주의가 만든 학문의 위계"의 가장 열렬한[ex.충*] 또는 가장 내밀한[ex.단*] 찬미자이자 확대강화자이신 분이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지도 너무 의문스럽고요.
    무의미한 사설들만 빼면 작업 자체는 충분히 의미있어 보입니다.

  • Andante 2017.07.28 15:50

    헐 제가 내밀한 찬미자라는 거는 어떻게 아시고 ㅋㅋㅋㅋㅋ 말씀하신 대로 제가 맑시즘과 여성주의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했네요. 여성주의가 도래하고 있는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역사성을 부정하려고 쓴 말은 아니지만 제 공부가 부족한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사실 말하고 싶었던 것은 "왜냐하면 돈과 관련된 담론이 80년대까지의 시대정신이었다면, 저는 젠더와 관련된 담론이 지금 도래하고 있는 시대정신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와 같은 현상적 서술에 가까운데 다시 보니 학술적 용어를 통해 극적 효과를 노린 혐의가 다분하네요.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도래하고 있는 시대정신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
    그렇다면 전공자도 아니고 철학이나 사회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 제가 이 작업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매우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첫번째로는 공부하기 위해서 이고요, 두번째로는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논의를 확장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제 자신과 제가 속해있는 내집단을 분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상황에서 왜 '내밀한 찬미자'라고 생각하셨는지에 대해서 구체적 서술을 해주신다면 이 작업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사회, 정치라는 공간을 통해 과학주의가 독해되는 방식 뿐만 아니라 과학주의에 비판적인 이공계 종사자들이 어떻게 과학주의에 재포섭되는지를 규명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WTF 2017.07.29 11:31

    긴 설명들이 필요한 항들이지만 시간관계 상 짧게만 답변드리겠습니다.
    1. "돈[아마도 경제]"과 "젠더"는 "맑시즘"과 "여성주의"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게 얽혀있고[entanglement]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도저히 절단분할 및 대체가 불가능합니다.

    2. 도래할 시대정신은 미결정상태이고 오히려 발명과제로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예측불가능성의 요소가 지배적이고 심지어 비선형화, 다원화, 개별화되어가는 역사적 경향을 고려할 때 "시대정신"이란 개념 자체가 점차 용도폐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그 이전에도 과거에 비해 중요성과 효력은 급격히 약화되어 갈 것입니다.
    다만 그 전까지는 예측이 절대 불가능은 아닌데 동원 가능한 예측 방법론은 현재의 시대정신에 대한 anti-thesis, 현재의 시대적 과제에 대한 해결방향을 ’근거’로 한 대략적 간접 추론입니다.

    3. 그러나 그것이 "여성주의"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확정적입니다.
    첫째, 현재의 시대적 과제는 가부장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이고, 만약 가부장제로 설정할 경우 현재의 역사적 특이성이 완전히 사상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둘째, 현재의 시대적 과제가 가부장제라고 우겨도 그 대안은 "여성주의"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성주의는 초기 페미니즘을 지배하던 원초적 조류였으나 페미니즘 자체는 이미 오래 전에 그 원시적 상태를 극복해 일반화, 보편화된 패러다임으로 진화했고, 근래에 그에 대한 ’반동적 퇴행’으로 WOMANISM*이 시도되고 있긴 하나 비합리적 비주류 소수 조류에 불과할 뿐입니다.
    [*한국적 맥락의 ’여성주의’와 달리, 미국의 상황은 좀더 복잡하기 때문에 해당 단어 그 자체는 역사적으로 1983년 Alice Walker에 의해 처음 제안(되고 1990년대를 거치면서 공식사전들에 등록)될 당시에만 해도 원래 목적은, 현재처럼 보편화되기 이전 (자주 인종차별적이던) 백인 중산층 여성 주도의 사실상 ’White womanism’에 불과하던 2세대 분리주의 페미니즘 운동을 비판하며 3세대적 대안으로 유색인종 여성의 교차경험을 중시하는 (유색)남녀협조주의적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단순 의도로만 발명되었으나, 이후 페미니즘 조류가 언급한 바처럼 현재와 같은 형태로 일반화, 보편화에 매진한 반면, Womanism은 흑인 국수주의와 결합하는 경향을 보이고, 무엇보다도 (흑인 밀도가 높은 미국 남부 침례교적) 기독교 ’신학’의 영향을 매우 강하게 받아 LGBTQ를 공격하는 등 나름의 보수반동화에 고유의 특이성을 보이고 있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Black feminism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 완전한 학문적 솔직성에 기반해 말씀드리면 2항 후반에서 답변드렸듯이 "시대"라는 개념 자체가 별로 과학적이지 않고 구시대적 발상이며 시간은 복수성을 가지고 중첩되어 진행되기 때문에 오로지 전진적 프로그램과 퇴행적 프로그램, 좀더 정확히는 확장적 프로그램과 위축적 프로그램이 있을 뿐이며, 이런 구도에서 반신자유주의 프로그램과 반가부장제 프로그램은 강력하게 얽혀서 중첩되어 공진해 나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4.

  • WTF 2017.07.29 11:44

    4. "과학주의가 만든 학문의 위계"는 논란의 여지가 너무나 많은 기술인데 이미 그 실재를 확고하게 전제하고 사고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 위계의 존재를 인정해도 분과학문들의 구체적 배치는 또한 매우 논쟁적인데 특정한 과학관에서만 주장하는 배치를 확정적으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학관은 길게 잡아야 Copernicus, 짧게 잡으면 Newton 이후 (그것도 아주 논리 외적인 정치적이고 음모적인 수단을 통해) 권력을 잡은 한시적 패러다임인데, 이에 대한 완전히 다른 배치를 주장하는 Aristoteles 이래의 장구하고 강력한 과학관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이 과학관은 Bergson과 Prigogine, 복잡계 과학으로 발현되고 있으며 이에 따르면 수학화가 가능한 계는 비가역 비선형 비평형계가 보편적인 세계, 우주, 자연의 극히 일부 예외적이고 한시적인 가역계에만 제한되며 전체 시공간을 고려할 때 이는 차라리 오만한 인간의 환상과 착시에 더 가깝습니다.

  • Andante 2017.07.31 03:11

    1. 젠더와 돈이 긴밀하게 얽혀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다른 독립적 매커니즘을 가진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장하시는 바에 근거가 되는 텍스트를 알려주시면 번역하는 동안 공부해보고 논의를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2. 시대정신이라는 개념이 구시대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저는 정치적 파급력이라는 측면과 그것을 발명해내야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완전히 폐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저는 이걸 혼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역량 내에서 논의를 하고자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모든 담론이 그렇듯이 전 사회 문제를 모두 커버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한계 내에서 역할을 다 하면 되는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시대정신 '중' 하나라고 말씀드린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그런 면에서 소위 '여성주의'로 호명되고 있는 현재의 요구는 단순히 신자유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하나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여성주의가 여태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표면화된 것이 90년대 부터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모두가 동의하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다른 논의가 가능하다면 알려주십시오.
    말씀하신 논지 대로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특정한 형태의 가부장제 혹은 여성의 성적대상화를 강화하기는 하지만, 저는 신자유주의가 가족 시스템과 같은 문화 층위 내에서 그렇게 강력하게 작동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규명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담론으로서 지금의 '여성주의'가 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가부장제 이상이 문화적으로 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시스템 내에서 '공동체적'인 무언가를 보호하기 위해 반동적인 방식으로서 여성을 타자화하고 착취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만약에 신자유주의가 본질의 전부이고 가부장제를 해체했다면 오히려 여성혐오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각자 살아남아야하고, 연애도 안하고, 결혼도 안하고, 자기계발해서 일자리 구하기 바쁜데 여성혐오에 그렇게 열내고 그럴 리가 없죠. 이미 이건 무언가 다른게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3. 그래서 저는 여성주의와 가부장제, 성차별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초역사적'인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본도 끊임없이 내부모순을 통치하면서 진화하듯이 가부장제와 성별이분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지금의 가부장제가 존재하는 것이고 지금의 여성주의는 그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의 논의가 단순히 '탈맥락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여성이라는 범주를 본질화 하여 다른 혐오를 조장하는 반동적 시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문제적이지만 그것이 현상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들이 번역되고, 팔리고, 내부모순을 발견하고, 다른 시도를 하려는 경향성도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4. 4번에 대해서는 제가 주장하고 싶은 바를 그대로 말씀하시고 계셔서 이것이 왜 충돌지점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현실인식의 측면에서 저와 다르신 것 같습니다. 저는 과학주의가 만든 학문 위계질서가 존재하고 현실의 층위에서 아주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말씀하신 복잡계과학과 같은 경향성이 과학주의를 해체하고 있다고 낙관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양자역학이 그렇고 상대성 이론이 그렇듯이 결국 이것도 기존의 과학주의가 할 수 없었던 논의들을 자신의 이론적 공간 내로 편입시키는 포섭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양자역학이나 상대론의 사례에서 세상이 확률로 돌아가고 상대적이라는 언술이 마치 충격적인 스펙터클이고 과학이 세상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람들이 결론적으로 하는 일을 보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달성된 것은 결국 그런 확률적이고 상대적인 물질의 작동과 상대적인 시공간을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 방식으로 통치할 수 있게하는 개념적 장치와 기술들을 개발해낸 것이기 때문이죠. 과학주의가 해체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슈뢰딩거 방정식'이나 '양자장론'도 결국은 사물의 작동이 확률적이라는 걸 알아낸 것이 아니라 이해불가능한 사물의 작동이 나타나 이론이 파산한 상태에서 확률파동(Wave Function)이나 양자장(Quantum Field)과 같은 수학적 개념들을 개발해서 '계산'하고 '호명'하고 '개입'할 수 있게된 것입니다. 또한 상대성이론은 시공간의 상대성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파편화 되어있던 수학구조들을 일관성 있게 꾸며내는 과정에서 탄생한 통치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공간이 상대적이라는 게 아니라 상대적인 시공간이라는 개념을 계산공간 내로 끌어들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복잡계 과학도 마찬가지로 수학적으로 통치될 수 없는 어떤 영역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는 통치될 수 없었던 영역을 수학적으로 통치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일례로 복잡계 과학을 통해 SNS와 같은 사회적 관계 착취가 가능해졌죠.
    그래서 제가 말하는 과학주의는 단순히 세계를 수학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순진하게 믿는 과학혁명시기의 과학주의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견고한 사회적 매커니즘이 그렇듯이 과학주의도 내줄건 적당히 내주면서 헤게모니를 더 강력하게 유지합니다. 이를테면 '과학이 틀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게 제일 낫지'라던가 '물리학이 그래도 가장 견고한 과학이지'와 같은 언술들이 그렇습니다. 이런 언술들은 마치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학문의 위계를 그대로 내포하며, 과학이 전통적으로 해오던 설명과 방법론 이외에 다른 논증방식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을 차단하고 자신이 본질에 가깝다는 것을 천명합니다.
    단순히 이것은 이론적 층위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적인 평가에서, 정책적 의사결정에서, 학교 교실에서 모두 작동합니다. 그래서 과학주의는 자본과 사회를 매개로 자신이 만든 위계를 유지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돈은 공학 쪽이 더 많이 가져가지만 그 이유가 결국 '과학적'이기 때문이고요, 그리고 "'기초과학' 투자가 권력과 돈에 의해서 무시되고 있다", "과학은 순수하다."는 언술을 보면 결국 사람들이 과학을 정치와 대비되는 어떤 공동체적이고 순수하고 본질적인 무언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관료주의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소위 '과학적'방법이라며 만들어지는 것이 수량화된 평가방식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객관적' 방식이라고 추앙되고 아주 잘 먹히죠. 물론 이를 전적으로 믿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고 정치적으로 유효한 다른 방식이 없으니 그렇게 합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과학주의'는 실제 현상이 가진 분열적 속성과는 관계없이 사람들이 무엇을 '상상'하느냐의 문제이고, 여러 시스템과 상호부조하며 얼굴을 수시로 바꿔가면서 실속을 차리는 사회 시스템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분석들을 토대로 젠더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이고요.

  • WTF 2017.08.01 13:00

    1+2+3은 정말 외람되지만, 맑시즘과 ’여성주의’, ’돈’과 젠더, 신자유주의와 가부장제로 대립항들이 계속 변형되어오면서도 처음부터 계속 말씀드린 바와 같이 양 범주들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별다른 논점도 없이 전형적인 트페미 수준의 주장을 고집스럽게 반복하시는 측면이 강해 논의의 생산성이 급락하면서 피로감을 몰고오는 상황이라 시간관계 상도 이후로는 더이상 답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려요.

    일단 제 견해의 핵심은 ’얽힘entanglement’이랄 수 있으며, 이것이 개념/인지적 구별 불가능성 즉, 동일성을 지시하는 것이 전혀 아니고, 이전 논점은 ’대체’ 여부였기에 직전 말씀에만 의거한다면 더이상 별 중요한 근본적 논점이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렵겠습니다.

    남은 소논점이라면 ’얽힘 대 별립’정도인데 이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시는 ’제한적’ 신자유주의론은 오해에 기반한 측면이 강하므로 일단 신자유주의론과 그 영향 및 양항 관계에 대해 좀더 연구하신 후 이후 기회가 된다면 다시 논의하시는 것이 생산성을 높이는 길이라 생각됩니다.
    여기서는 일단 신자유주의가 생각하시는 바처럼 단순히 자기계발에만 전념하는 개인주의 체제가 본질이 전혀 아니라는 점 정도만 지적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체제에 대한 주체의 한 자생적 대응양식이 내적으로는 극단적 자기계발 노오력, 외적으로는 혐오/증오로 분출되는 것 뿐입니다.

    이에 대하여는 먼저 최소한 기초 입문서로, 반복하시는 "전형적" 기존 주장들에 대한 ’최’근 (퀴어)페미니즘 진영 내부로부터의 자기비판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리사 두건의 [평등의 몰락]을 필독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실비아 페데리치, 마리아 미즈, 리즈 보걸 등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페미니즘 자체도 생각하시는 것처럼 ’90년대 이후 계속해서 확장돼온 새로운 시대정신이 아니고 그때 잠깐 반짝했다 거의 고사되어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여성학 관련 강좌들도 다 폐강되고, 그나마 겨우 연명하던 극소수 대학에서도 이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기 남자친구를 부려먹기 편하게 교육시켜보려고 끌고 와 수업을 듣는 여학생들로 겨우 채워지던 시기를 지나 신자유주의적 혐오가 극에 달한 ’2010년대 중반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폭발한 것입니다. 이상은 이 고사기에 나왔던 조한혜정선생님의 절망과 회한의 글 등을 통해 확인한 사항이며,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트페],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의 저자인 이민경 등 요즘의 (뉴)페미들이 토로하던 그 고독감, 고립감도 이 사실을 잘 증명해줍니다.

    최종 답변으로는 무망하고도 그 한계가 명확한 ’시대정신’ 논의보다는 이미 여러 선생님들께서 지적하고 계시듯 대중의 자생적 사회인식론에 불과한 ’헬조선’ 담론을 뛰어넘는 사회성격론과 사회구성체 분석론으로 전개되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과학주의에 대해서는 본 번역작업의 핵심목표라 하시므로 시작도 하기 전에 과도한 논의를 하느니보다 일단 작업들의 충분한 실천을 통해 구체적 주장들을 전개하시고 이를 지켜본 후 다시 논의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단 지금의 논점은 애초에 과학주의적 위계와 분과배치의 인정 여부이고 이에 대해 부인진영에서 보면 인정 자체가 본의와는 상관없이 역으로 내밀한 찬미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며, 다음 논점으로 과학주의인가 수학주의인가, 모든 과학(주의)은 지배의 도구일 뿐인가 정도로만 정리해두고 넘어가도 무방하겠습니다.

    마지막 논점과 관련해서는 최근 104 웹진에 발표된 이진경샘의 글을 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샘은 여전히 이항대립적 사고체계 속에 머물고 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절대주의 전제정과 파시즘의 기반이 된 Newtonian 고전역학에 대항하는 아나키즘 과학으로서의 다중심 상대론을 주장하고 있고, 또한 이와 별도로 현재의 양자역학도 기성권위의 핵심 과학지식들을 스스로 모두 파괴하는 기능은 확실한 반면, 그렇다고 명확한 해답제시를 통한 차기집권이 반드시 보장된 상황도 아닙니다.

    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전략은 종교재판과 화형으로 맞서려던 가톨리시즘처럼 가망도 없을 뿐 아니라 매우 한정적으로, 변별증명방법이 전혀 없는 완전히 통약불가능하거나 검증불가능한 대안담론들에 한해서만 생존 및 전개가 가능할 뿐이며 이것도 결국 비합리주의와 반지성주의로 전락해버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에피고넨에 그칠 위험이 크기에, 주장하시는 바처럼 결국 포섭[전유appropriation!!]될지언정 그때가서 버리고 떠나더라도 (아직) 지배과학에 포섭되지 않은 새로운 저항과 탈주의 과학을 끊임없이 창안해나가면서 과도기의 전복성을 계속 활용해 나가는 것이 더 나은, 또는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학이 항상 통치대상으로서의 주체만을 인식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인식불가능성이란 통치불가능성 뿐만이 아니라 결국 모든 실천불가능성, 즉 자유와 삶 자체의 불가능성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엄밀히 말하면 복잡계과학은 수학주의적 복잡계과학과 생물학주의적 복잡계과학으로 나뉠 수 있고, 전자는 초기의 희망과 낙관에 비해 실패했거나 최소한 절망적 침체 또는 매우 심각한 정체 중입니다.

  • Andante 2017.08.02 03:53

    저도 다른 신자유주의 논의가 있다는 건 아는데요 ㅋㅋㅋ 왜 모른다고 단정지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하시는 말씀이 '얽힘'을 말하고 있지만 그냥 "신자유주의⊃젠더" 인 것 같아서 드린 말씀입니다. 만약에 성별이분법, 가부장제, 신자유주의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면 가부장제와 성별이분법의 역사성을 탐구해서 시대적 구분을 하고 현재의 젠더 시스템을 호명하고 그것을 지금의 역사적 특수성으로 가정해도 될텐데 왜 논의의 귀결점이 신자유주의로 가나요? 젠더는 가치와 물질을 배분하는 시스템이 아닌가요? 다시말해서 이건 이론적 퇴행 아닌가요? 페미니즘의 중심 논의 중 하나는 '남성중심성' 때문에 기존의 학술장 담론들에서 지워진 역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하시는 말씀에서 존재론적으로 위계가 정해져있는데 '불가분', '얽힘'과 같은 동등해 보이는 수사를 쓰셔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
    또한 저는 혐오를 개인의 자생적 대응양식으로 분석하더라도 난점이 있다고 봅니다. 그럼 왜 다양한 문화적 표출방식이 있을텐데 굳이 가부장제가 강화되고 사람들이 여성혐오를 할까요? 신자유주의적 폭압이 있다고 모든 사회에서 다 똑같은 방식의 혐오가 나타나나요? 국제 정세를 볼 때 상이한 문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혐오가 표출되는데 그럼 이게 다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하면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핑크워싱, 이주민혐오, 인종차별, 성소수자혐오 등) 왜 가부장제를 경제 시스템에 단순히 속박되어있는 공시적 통시적 가변성 없는 상수로 보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잘 알려져있는 경제시스템, 학술시스템, 가부장제, 성별이분법, 섹슈얼리티 억압 등 여러 매커니즘 들을 분리해서 분석한 뒤에 각 파트의 핵심요지를 모아놓고 전체적 묘사를 시작해야 답이 나온다고 봅니다.
    .
    그리고 운동이 분열돼서 망했다고 하면서 신자유주의로 퉁치는 스토리텔링을 언제까지 해야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신 사회성격론이나 사회구성체분석론을 저도 지향점으로 삼고있는데요, 그건 억압서사가 다른 여러 실존적 조건들을 서로 나누고 공동의 서사를 같이 만들어 나갈 때 가능한 것이지, 님처럼 뒷짐지고 앉아서 "자기 남자친구를 부려먹기 편하게 교육시켜보려고 끌고 와 수업을 듣는 여학생들로 겨우 채워지던 시기"와 같은 식으로 남의 삶에 대한 아무런 관심없이 단순히 엄밀한 분석을 못한다는 이유를 가지고서 냉소하신다고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냉소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을 참고바랍니다. (지젝, 엄기호 등) 결론적으로 저는 지금의 시대정신을 하나로 모으게 된다면 그게 "신자유주의"로 호명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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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일단 말씀하신 책들은 읽어보고 번역 이후에 정리하는 글을 쓸 예정이니 논의를 이어나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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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과학주의의 문제에 있어서 저는 과학은 태생이 글러먹었고, 미래가 없으며, 폐기처분해야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지금 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제가 정말 과학에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으면 제가 이 직업을 왜 하고 있겠습니까 ㅋㅋㅋ 그래도 뭔가 해볼만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하고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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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저는 지금의 과학주의가 견고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비판을 진행해야 되지, 과학주의가 느슨하다고 논의를 시작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첫번째로 과학주의에 대한 철저한 비판 후에 다른 과학의 가능성을 논의해야 과거로 회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과학의 다른 경향성을 강화하는 것은 과학을 반동적으로 만드는 여러 사회적 조건들을 정치적 의사결정을 통해 집단 수준에서 조직적으로 파괴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전 사회가 날 것의 과학, 날 것의 학문을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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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히 풀자면, 저는 과학의 전복적 경향성을 강화하려면 단순히 이론에 '아나키즘적 과학', '파시즘적 과학'과 같은 호명을 하기 보다 다층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을 진행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런 특정 이론이나 기술을 중심으로 묶어서 하나로 퉁치는 분석방식은 STS 분야에서 1970년대에 다 끝난겁니다. 이미 연구자들은 과학이 매우 복잡한 하나의 사회시스템이라는 걸 알고 있고요, 실험실안에서 작동하는 제도, 윤리규범, 반복작업, 생애주기, 문화적 토대 등 다양한 층위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과학과 제도, 과학과 법, 과학과 윤리 등의 전 과학을 둘러싼 사회적 상호작용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과학이 어떤 질적 특성을 가지는지는 그 과학이 어떻게 수행되고 다른 요소들과 관계맺고 있는지와 관계가 있지, 어떤 특정 요소가 담보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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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양자역학이 기존 과학지식을 파괴하는 기능을 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 주장에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물을 바라보는 이론이나 이미지는 수시로 바뀔지언정 오직 과학만이 사물의 객관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과학에 대한 사회적 권능감과 그것을 이용한 사회적 압력은 과학혁명 이래로 단 한번도 제대로 무너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말씀하신 것은 제가 볼 때 중요한 명제가 아닙니다. 이건 이론적 일관성이 있느냐 없느냐, 양자역학이 이론적 층위에서 집권 가능하냐 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과학지식생산노동자들을 포함하여) 사람들은 이론적 층위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무엇을 진짜로 믿을 수 있는지 탐구하고 판단하는데 별로 관심 없습니다. 그냥 그걸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 개연성이 있느냐 없느냐, 실제 작동에서 구현이 되느냐, 과학자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느냐에 관심이 있죠.
    .
    덧붙여서, 이렇게 말하면 과학에 특히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진영논리로 타자화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던데, 저는 이게 학제나 사회부문을 불문하고 진실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전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학이 현실적으로 권력적 우위에 있어서 더 문제적이라고는 생각합니다.

  • WTF 2017.08.02 12:59

    오해, 왜곡, 억측과 예단, 억지와 변명, 계속적인 문제와 논지의 변형, 논점의 이동 및 지엽말단화; 일명 말꼬리 잡기, 논리일관성의 해체와 자기 모순의 증가, 약점의 부인과 기만,
    담화의 대부분이 그냥 혼자 무의미한 자기 얘기 반복하기로 자기 방어를 위한 전형적인 ego-trip 등등.....
    무익한 시간낭비로 변질되어 버리는 생산성 낮은 논의의 고질적이고 전형적인 모든 특징들이 다 발화하고 있으므로 멈추지 않으면 안될 시점입니다.

    이하는 도저히 답변이 불가결한 사항들만을 간단히 다룹니다.


    A. 오해
    A1. 조한혜정
    "자기 남자친구를 부려먹기 편하게 교육시켜보려고 끌고 와 수업을 듣는 여학생들로 겨우 채워지던 시기"는 장기간 여성학 관련 강의들을 직접 수행해 오신 조한혜정선생님 본인의 감회를 요약한 것으로 단지 요약문이기 때문에 인용부호를 붙이지 못했을 뿐 "조한혜정선생님의 절망과 회한의 글을 통해 확인한 사항"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었습니다.


    A2. 이진경
    "과학의 전복적 경향성을 강화하려면 단순히 이론에 '아나키즘적 과학', '파시즘적 과학'과 같은 호명을 하기 보다 다층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을 진행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런 특정 이론이나 기술을 중심으로 묶어서 하나로 퉁치는 분석방식은 STS 분야에서 1970년대에 다 끝난겁니다...특정한 과학이 어떤 질적 특성을 가지는지는 그 과학이 어떻게 수행되고 다른 요소들과 관계맺고 있는지와 관계가 있지, 어떤 특정 요소가 담보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맞습니다. 정확히 바로 이것이 제가 이미 지적한 진경샘 글의 한계입니다. 그 결과로 이러한 내재적 본성주의/본질주의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실재에선 이와 반대로 전복성을 포함한 모든 질적 특성들은 context들과의 조우-관계를 통해 일시적으로 발생했다 변성하고 사라져버리는 잠정적 결과이자 효과들에 불과하며 이것이 ’맑시즘’의 핵심철학입니다. 따라서 다중심 또는 탈중심주의 (상대론) 또한 그 자체로 모종의 진보성을 항상 담보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진경샘도 평소 지론과 기조철학은 별로 그렇지도 않으십니다만 소개된 글에서 집약적으로 잘 드러난 바와 같이 본질주의적 사고로 빠져버리시는 국면이 종종 있는 듯한데, 이는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국가 대 공동체, 왕립과학 대 유목과학 등등 고정적인 ’허구적’ 이항대립구도에 갇혀있으시기 때문이며 일정 정도 들뢰즈 자체로부터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단테님의 과학관이 오히려 모든 과학의 전복성을 부정하고 지배 및 통치도구로서 예정되어 있다는 듯한 논리전개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본질주의로 이해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이와 짝을 이루며 원인이 되고있는 "과학의 다른 경향성을 강화하는 것은 과학을 반동적으로 만드는 여러 사회적 조건들을 정치적 의사결정을 통해 집단 수준에서 조직적으로 파괴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결정론적 아류로서 그 유명한 ’이론( 또한 예술)의 상대적 자율성’ 테제도 정면으로 위반하는 또한번의 근본없고 근거없는 용감무쌍일 뿐입니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전혀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이걸 부정하면 결국 이론과 변혁의 선후 인과는 ’닭과 알 간의 뫼비우스적 무한루프에 갇혀 옴쭉달싹 못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과학주의에 관한 심각한 자기 모순의 두 축들 중 하나로 나머지 한 축에 대해서는 이하 ’B. 자기 모순’절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A3. 리사 두건
    "운동이 분열돼서 망했다고 하면서 신자유주의로 퉁치는 스토리텔링을 언제까지 해야되는지"

    이것은 기본적으로 리사 두건의 논리이고, 그에 대해서마저 아주 천박한 오해에 불과하며, 더구나 저의 논리도 아닙니다. 최소한 기초적으로 이 정도만이라도 반드시 검토해야만 생산적 논의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일단 정독이나 하고나서 마치 별립/분리주의가 방금 막 나온 무슨 신기한 신사상이고 새로운 시대정신이라도 되는 양 한껏 유통되고 있는 트페미들 속에 파묻혀 ’신자유주의’하면 자동적으로 ’자기계발’만 떠올리며 상상만 하지 말고, 본서의 번역자나 편집부 기획자들을 포함해 진지하고 정통한 페미니스트 운동가들과 연구자들에게 국내외 이론사의 객관적 정황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페미니즘 내에서 낸시 프레이저나 리사 두건 등에 의해 제기된 그런 반성과 성찰이 소개되기 시작한 게 과연 얼마나 됐는지... .
    지금 본인이 반복 주장하는 여성주의 논리는 진중한 페미니스트들과만 비교해도 계속 상대를 해줘야하나 고민될 정도로 너무나 후진적인 전형적 트펢이즘이라는 현실을 자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객관적 국내외 이론사 정황만 좀 제대로 아셔도 이런 뜬금없고 쓸데없는 드센 저항이 몰고 오는 피로는 애초에 예방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

    생각해보십시오. ’현실문화’같은 명망있는 출판사가 세상 모르는 바보도 아닌데 본인 주장처럼 그렇게 오래된 "스토리텔링"을 담은 책이라면 과연 요즘처럼 출판불황기에 피같은 투자금을 쏟아부어서 이런 책을 감히 찍어내고 또 책은 사회과학분야 베스트셀러 수위를 달릴 수 있겠습니까??
    말씀하시는 그런 지겨운 "스토리텔링"들은 지식 시황과 정세들에 목숨을 다 걸고 가장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출판사들의 외면을 받아 결국 소수 우중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텀블벅이나 크라우드 펀딩을 기웃거리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게 무서운 현실입니다.
    (아마 국내에서는 이전부터도 독자적으로 이런 논의가 이미 전개된 적이 있어서 그 trans-media적 확산 결과로 트윗바닥에서는 자주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정신이 그렇게 궁금하시다면 이 얽힘관계, 즉 "교차!"-중첩의 구체적 구조와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과 해명이 바로 사회성격론이자 사회구성체론이고 당장 당면한 가장 절실한 구체적 시대정신입니다.


    A4. 신자유주의론 또는 WTF
    이 절에서 검토할 대상으로서 단테님 글 부분들은 솔직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건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이해기반이 결여된 설익은 딴지 혹은 뚱딴지 같은 질문들로 채워져 있는데요...

    먼저,
    "또한 저는 혐오를 개인의 자생적 대응양식으로 분석하더라도 난점이 있다고 봅니다. 그럼 왜 다양한 문화적 표출방식이 있을텐데 굳이 가부장제가 강화되고 사람들이 여성혐오를 할까요? 신자유주의적 폭압이 있다고 모든 사회에서 다 똑같은 방식의 혐오가 나타나나요? 국제 정세를 볼 때 상이한 문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혐오가 표출되는데 그럼 이게 다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하면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핑크워싱, 이주민혐오, 인종차별, 성소수자혐오 등)"

    첫번 째로 신자유주의는 폭압체제가 아니고 핑크 워싱은 혐오가 아닙니다.
    두번 째로 신자유주의는 내부식민화와 노골적 차별 및 배제를 통해 축적위기를 타개하고 독점을 극적으로 강화하는 과정에서 중산층조차 붕괴시키고 사회를 극단적으로 양극화하기 때문에 전사회적 경쟁과 계층갈등이 격화되고 이데올로기 지형도 양극화하게 되며 개인주체들과 계층별 혐오와 분노도 극단화됩니다. 이 혐오와 분노는 전계층을 관통하나 그 강도 및 집중적 분출주체와 투사대상 등은 개별 사회들의 구체적 구조와 계층구성, 역학관계 및 정세, 계기와 사건들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이며, 일반적으로는 이데올로기 양극화에 따른 전세계적 공통현상으로서 부상하는 극우단체들이 이러한 혐오의 집중 분출원이 되고, 우리나라에서도 일베 등등 그 맹아는 이미 출현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또한 대개 혐오는 하위계층을 향하기 때문에 (특히 위협적 경쟁자로 생각되는) 사회적 약자들과 소수계층에로 수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소위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의 부상도 생각하시듯 한국만의 특유현상이 전혀 아닌 전세계적 경향이며 이러한 계층갈등의 한 축인 것입니다.

    같은 절에서 가부장제 역사성 분석 등을 주장하시는 부분을 포함해 단테님 질문들이 대개 이런 식이고 글도 시간낭비도 너무 길어져 솔직히 좀 짜증도 나서 더이상은 그냥 각설하고 이만 정리단계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만, 정확히 말하면 이 답변작업은 Entangled Multiple Systemicistification* Project의 일환이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젠더" 운운 근거없는 예단에만 기댄 불필요한 앞선 걱정들은 최소한 삼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systemicist’는 아직 OED에 등록되진 않은 상태이나 등록어인 systemist가 ’체계화주의자’라는 뜻에 가까운 압도적 빈용어 systematist의 (생물학 분야) 사투리 정도로 제한적 용법이 강해 국제적으로 일부 유력한 학자들을 중심으로 엄밀한 학술적 정의 하에 공식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용어임. (부담스러운 분들은 대신 systemist를 사용하면서 제2용법화를 추진해도 무방.)]


    B. 자기 모순
    B1. ’돈’과 젠더
    "젠더는 가치와 물질을 배분하는 시스템이 아닌가요? 다시말해서 이건 이론적 퇴행 아닌가요?"
    정말로 반가운 말씀입니다. 이제야 맞는 말씀을 하기 시작하시네요. 그래서 제가 누누히 양 범주들이 강력하게 얽혀있다고 말씀드린 것이고 그들의 별립이나 ’대체’를 운운하는 것은 이론적 퇴행일 뿐이라고 말씀드려온 것입니다.


    B2. 과학주의의 대안
    비판대상으로서의 과학주의에 대한 정의와 대안이 모호해 자기모순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한 쪽으로는 "과학주의의 문제에 있어서 저는 과학은 태생이 글러먹었고, 미래가 없으며, 폐기처분해야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지금 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제가 정말 과학에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으면 제가 이 직업을 왜 하고 있겠습니까 ㅋㅋㅋ 그래도 뭔가 해볼만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하고 있는거죠."라고 해명하면서도, 주로는 "오직 과학만이 사물의 객관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과학에 대한 사회적 권능감과 그것을 이용한 사회적 압력은 과학혁명 이래로 단 한번도 제대로 무너진 적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실제 수행하는 작업 대부분은 과학 자체를 부정하듯 다른 모든 "스토리텔링"들과 무차별적으로 등가화하고 있어 반과학주의와 별 유의미한 실질적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누차 말씀드렸듯이 이 부분은 앞으로 진행하시겠다는 작업의 요체에 해당하므로 더이상 말을 삼가고 구체적 실천들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전 사회가 날 것의 과학, 날 것의 학문을 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는 따뜻한 응원과 지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좀더 즐겁고 인간적인 논의법을 훈련해나가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불찰이 있었다면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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