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푸틴 정권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제 좌파들은 결코 쉽게 정리될 수 없는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27일은 독일에게 매우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날 올라프 숄츠 총리는 연방의회 연설에서 분쟁지역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다는 2차 대전 이후 외교원칙을 폐기하고, 1000억 유로의 군비확충 계획을 제출하는 등 독일 대외정책에서의 ‘시대전환(Zeitenwende)’을 선언했다.
반면 이날 같은 자리에서 연설한 좌파당의 아미라 모하메드 알리(Amira Mohamed Ali) 의원은 숄츠 정부의 군비지출안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녀는 동시에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우리 좌파당이 러시아 정부의 의도를 잘못 평가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합니다.” 그동안 좌파당은 나토와 서방의 대러시아 강경정책을 비판하면서, 우크라이나 위기가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백에 신호등 연정을 이루는 사민당, 녹색당, 심지어 자민당 의원까지 박수를 쳤지만, 이를 지켜보는 같은 당 자라 바겐크네히트(Sarah Wagenknecht) 의원은 화면에 잡힌 얼굴에서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구동독 출신이고 좌파당 내의 정통 좌파를 자처하는 바겐크네히트는 얼마 전까지도 푸틴의 전쟁위험을 서방이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겐크네히트와 그를 지지하는 의원들은 같은 날, 숄츠 정부의 군비확장 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그들은 자신들의 이전 관점에 대해서는 표명하지 않은 채로 나토의 동진정책이 이번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전통적 좌파의 관점을 반복했다.
그러자 다음날 좌파당 전의원이자 (한국의 고 노회찬 전의원처럼) 재치있는 입담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그레고어 기지(Gregor Gysi)가 이를 비판하는 공개편지를 <슈피겔>지에 전달했다. 그는 바겐크네히트의 입장에 ‘경악’했으며, 그러한 입장이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현지의 당사자들에 대한 공감능력의 결여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논쟁은 이미 예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 국제적으로 다수의 좌파들은 미국과 나토의 대러시아 적대정책을 비판해왔다. 그러한 비판은 좌파들에게는 일종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러시아가 침략전쟁을 일으키기 전까지의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이 대러시아 국수주의를 천명하면서 인근 국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교체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하고 민간인에게 폭격을 퍼붓는 상황에서 ‘나토가 이번 위기의 원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자칫 푸틴의 행위를 정당화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개전 직후 인터넷 매체 <오픈 데모크라시(Open Democracy)>에 실린 타라스 빌로우스(Taras Bilous)라는 이름의 어느 우크라이나 좌파의 편지는 이를 겨냥하고 있다. ‘서구 좌파들에게 보내는 키이우로부터의 편지’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미국과 나토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는 서구 국가 좌파들의 관점을 ‘반제국주의 바보들’이라는 격한 언어로 묘사했다. 특히 그는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DSA)이 제출한 여러 입장문들에서 러시아에 대한 비판이 단 한 줄도 담겨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아가 서방의 많은 좌파들이‘주적은 국내에 있다’라는 레닌 이래의 전통적 좌파 입장을 고수하느라, 푸틴이 일으키는 전쟁범죄와 이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논쟁의 또 다른 당사자는 한평생 양심적 지식인으로서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을 비판해온 노엄 촘스키다. 그는 3월 1일 자로 공개된 인터넷 매체 <트루스아웃(Truthout)>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끌어들이려 했던 미국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그는 푸틴에게 탈출구를 주어야 하며, 푸틴을 처벌하기보다는 그가 원하는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 협상을 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인터뷰는 여러 논쟁을 촉발했는데, 이는 특히 촘스키가 미국과 나토를 비판하는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 같은 강대국들만을 게임의 행위자로 보고,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주적이고 주권적인 선택지는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강대국의 패권정책을 비판해온 촘스키의 의도와 달리) 전복된 방식의 강대국 중심 세계관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었다.
이 때문에 촘스키의 책들을 번역하기도 했던 우크라이나 작가 아르템 차파이(Artem Chapeye)는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가족들을 국경 밖으로 대피시키고 군에 자원입대한 그는 촘스키의 주장처럼 나토에게 위기의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이 전쟁을 일으킨 푸틴의 정당성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리조나의 안락한 사무실에 앉아서 강대국의 체스 게임에 훈수를 두는 것이 아니라, 학살당하고 있는 현지인에 대한 연대를 표해야 한다면서 촘스키의 태도를 문제삼기도 했다.
프랑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 역시 촘스키 비판에 합류했다. 3월 7일 공개된 프랑스 언론 <미디어파트(Mediapart)>와 발리바르가 진행한 인터뷰 제목은 ‘평화주의는 선택지가 아니다’였다. 여기서 발리바르는 우크라이나의 지원이라는 구체적 방향성 없이 외치는 반전평화 입장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지적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발리바르는 푸틴에게 퇴로를 주어야 한다는 촘스키의 주장에 명백히 반대했다. 그는 푸틴에게 퇴로를 줄 것이 아니라 푸틴을 끌어내려야 하며, 다만 이것이 러시아 시민들의 손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리바르에게 현 시기의 국제주의란 우크라이나와의 연대와 러시아 민중의 푸틴 제거를 뜻하는 것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유럽 국가들에 의한 무기지원이나 경제제재 역시 불가피한 선택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의 불가피성은 ‘중국 대륙의 국제주의자들’이 발표한 성명에도 나타난다. 3월 1일 ‘부끄러움을 공유하며’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매체 <틈(chuang)>(闯)에 발표된 성명에서 이들은 우크라이나를 베트남에 비유하면서, 미국이 베트남을 침공했을 때 소련이 베트남에 무기를 지원한 것에 대해 좌파들이 비판하지 않았듯이, 오늘날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지원에 반대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나토의 직접적 개입이나 이로 인한 확전에 반대할 것을 동시에 주문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이라는 쟁점에서 유럽 급진좌파 정당 대부분은 반대하고 있다. 독일의 좌파당, 스페인의 포데모스, 영국 노동당 전 대표 제레미 코빈,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장 뤽 멜랑숑 모두 무기지원에 반대한다. 다만 경제제재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좌파당의 경우 경제제재에 찬성하지만, 러시아의 올리가르히 세력에 타격을 주는 제재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제재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좌파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이번 전쟁이 기존의 좌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프레임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추진한 나토의 동진정책에 대해 그동안 좌파진영에서 제기해온 비판이 정당하다고 해도, 그것이 지금의 맥락에서 푸틴 정권이 주장하는 침공의 명분을 강화해줄 역효과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며, 동시에 우크라이나 민중의 주체적 결정들과 러시아 침공에 대한 그들의 저항에 충분히 연대할 필요가 있다는 논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토와 유럽 국가들의 재무장 정책은 물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 경제제재 등을 둘러싼 좌파 내에서의 여러 논쟁들은 불가피해 보인다. 나아가 이러한 논쟁들부터 단일하고 명확한 해법이 도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 시기에 좌파들 내에서 여러 입장들이 공존할 수 있으며, 그러한 입장들 중에 어떤 것이 옳은지를 분명히 선택하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즉 어느 하나의 분명한 대안으로 모든 좌파가 통일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좌파 운동이 봉착한 아포리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 공통의 의견을 도출해보려는 시도들이 필요할 것이다. 적어도 대부분의 좌파들이 국제적인 반전평화운동을 통해 이번 침공을 규탄해야 한다는 것과, 러시아 내에서 탄압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는 시민들과 연대하고 침략당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을 지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면, 그러한 최소한의 합의를 바탕으로,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이견들을 존중하면서 더 광범한 연대를 구축해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