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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물리학자 생활 내 남성들의 무용담 - 01




번역: Andante | 페미니즘 번역모임



[책소개]

책 “입자선-시간과 생애-시간” (Beamtimes and Lifetimes)은 저자인 샤론 트래윅 (Sharon Traweek)이 참여관찰 방법론을 통해 과학자 사회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당시 과학기술학의 민족지 연구가 주로 다루던 ‘지식의 형성과정’이라는 화두를 넘어 공간배치, 기계, 연구자의 생애과정과 같은 사회문화적 측면을 다룬 저작이다. 또한 미국과 일본이라는 상이한 문화에서의 과학연구 양상을 비교하여 국가와 젠더가 과학의 구체적 실천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밝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는 젠더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이 책의 3장 “순례자의 모험기 (천로역정): 물리학자 생활 내 남성들의 무용담” (Pilgrim's Progress: Male Tales Told During a Life in Physics) 을 다룰 것이다.

[위의 소개는 데이비드 J. 헤스 저, 김환석 역, "과학학의 이해", 당대, 2004, 256쪽을 참조하였음]

- 번역자


[본문]

생물학적으로 자신을 재생산하지 않는 여러 사회조직들이 그런 것처럼, 실험입자물리학자들의 사회 또한 초보자들을 훈련시킴으로서 자신을 재생산한다. 미숙한 물리학자들은 점진적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위해 필요한 여러 기준들을 배운다. 이런 의미의 전파는 단지 정규 교육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반복적인 일상 그리고 ‘상식’이라고 불리는 일상 경험에 대한 비공식적 해석들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여기에는 폐쇄적인 남성사회에서 공유되는 중요한 인사들과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포함된다. [1] 나는 이 장에서 물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순례자의 모험기에(/천로역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야기의 순례자들은 모험의 진행에 따라서 물리학자가 되어간다. 이 모험기는 온갖 교훈적 이야기로 점철되어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다섯 가지 이야기들은 불안, 시간, 그리고 성공과 실패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들이 왜 남성들만의 것이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미국의 실험입자물리학자들에게는 세 단계의 교육과정이 존재한다. 그것은 (1) 학부 교육과정, (2) 대학원, 그리고 (3) 연구원이며, 물리학자의 삶 전체에서 15년여 간을 차지한다. 일반적으로 오직 세 번째 단계에서만 스탠포드 선형가속기 센터나 (SLEC), 고에너지 가속기 연구소와 (KEK) 같은 주요 연구실이 있는 구역 내에서 일할 수 있고 이 모든 세 단계를 거친 사람만이 입자물리학자 사회의 자격을 갖춘 일원으로 인정된다. 각 단계마다 초보자들은 각각 다른 특정한 지적 능력을 요구받으며, 특정한 정서적 상태를 가지게 된다. [2]

 

[그림] 이 그림은 한 블로그에 소개된 ( http://blog.daum.net/futfs21/406 ) "아이의 사회화 과정, 낯가림이 심한 우리아이 사회성 키워주기!"라는 글에 포함된 삽화이다. 여기서 그리고 있는 미성년자의 사회화 과정은 아주 유치한 것처럼 묘사되지만, 사실상 사회화 과정의 본질 자체가 특정 집단의 언어적 습관, 특수한 정서적 상호작용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그리고 있는 물리학자들의 사회 또한 그림에서 보여주는 책읽기, 대화, 권위자에 의한 평가, 집단 내에서의 칭찬과 비난, 정서적 공명 등을 통해 이미 짜여져 있는 유대관계에 진입하고자 하는 욕망을 조장하고 이를 내면화하는 과정이 일어난다.


학부 물리학과 학생들은 성공적이기 위해서 유추적 사고를 필두로 하는 고도의 지적 기술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통해 도전할 수 없는 물리학의 해석을 내린 사람들에 대해서 배운다. 사실 그 해석들은 해석으로 보이지 않도록 쓰여 있다. 그들은 과거의 과학을 평가절하 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그 이유는 과거의 과학이 지금 물리학의 기준으로는 전혀 쓸 만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교과서가 서술한 이야기들을 통해 과거의 영웅과 나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도 배운다. 대학원 이후에야 친근한 지도교수가 오래 일한 대학원생을 입자물리학자 사회에 소개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을 사회의 일원으로서 볼 수 있도록 허락한다. 그리고 성공과 실패 그리고 현재 힘을 가지고 있는 세대의 지난 작업들을 통해 물리학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스타일’이나 좋은 주제에 대한 ‘냄새’를 맡는 법을 가르친다. 또한 대학원생은 세심하고 전념을 다하기를 배운다.


학생이 박사를 받고 연구원이 된 세 번째 단계에서는 과시와 허세가 추가된다. 이런 덕목은 지난 과정에서 요구되는 세심함과 인내와는 정 반대의 것이지만, 이 둘 모두 요구된다. 소위 “포닥”은 책과 글 보다 말로서 물리학을 배우고 의사소통하는 법을 학습한다. 그들은 평범함에 대한 경멸과 독립성을 전시하기 위해 경쟁적이고 신랄한 말하기를 구성한다. 그들은 지금을 만들어온 최근 세대의 이야기들을 배우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운다. 오직 이 세 단계를 완료하고 난 뒤에야 박사 후 과정 학생은 입자물리학 사회의 자격을 갖춘 일원이 된다. 그렇지만 15년의 훈련과정에서 약 75 퍼센트의 사람들이 이 분야를 떠난다.


각 단계에는 고유한 불안형태가 존재한다. 학부생은 “진짜 과학자”에 비해서 자신이 두드러지는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할까봐, 혹은 학계에 들어갈 수 없을까봐 불안해한다. 대학원생은 박사과정 동안에 팀을 위해 애쓴 노력이 무의미한 것이 되어 기회와 시간을 잃어버릴까봐 불안해한다. 박사 후 과정 학생들은 2, 3년 후를 보면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만한 물리학 분야의 문제를 예측하려고 한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다.


이런 불안들은 박사 후 과정 학생이 정규직이 될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물리학자 사회에서 자격을 갖춘 일원들은 초보자들이 각 단계에서 가지는 불안을 수정된 형태로 모두 가지진다. (다른 이들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시간을 낭비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미래가 너무 빨리 올지도 모른다는 공포) 인정받는 과학자들은 더 이상 물리학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자신의 성과가 더 이상 가치가 없는 것이 될까봐 두려워한다. 실제로 이런 4중의 불안은 내면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물리학자 사회 내에서 배우고 구축된 것이다. 우리는 이런 불안들을 공유하는 것을 토대로 이 물리학자들이 한 사회의 일원임을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훈련기간의 맥락에서 초보자들은 감정 상태와 특정한 활동을 연결 지으면서 그들이 해야만 하는 것을 갈망하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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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lifford Geertz, "From the Natives' Point of View: On the Nature of Anthropological Understanding," in Meaning in Anthropology, ed. Keith H. Basso and Henry A. Selby (Albuquergue, N.M.: University of New Mexico Press, 1976), p. 235

[2] 아주 긴 사회화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소년과 성인 남성의 정서적 상태들의 조직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Gilbert H. Herdt, Guardian of the Flute: Idioms of Masculinity (New York: McGraw-Hill, 1981). 미국 노동시장의 각 경력 단계에서 존재하는 심리적 적응에 대한 분석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Gene W. Dalton, Paul H. Thompson, and Raymond L. Price, "The Four Stages of Professional Careers: A New Look at Performance by Professionals," Professional Dynamics, Summer 1977, pp. 19-42. 생애서사에 따라 바뀌는 특정한 종류의 활동과 정동이 어떻게 관계되어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Michelle Zimbalist Rosaldo, Knowledge and Passion: Illongot Notions of Self and Social Life (Cambridge: University of Cambridge Press, 1980), p. 63 and passim. 인류학적 감정 분석에 대한 재평가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Grieving and the Anthropology of Emotions," in Text, Play, and Story: The Construction and Reconstruction of Self and Society, ed. by Stuart Plattner, Proceedings of the American Ethnological Society (Washington, D.C.: American Ethnological Society, 1983). 미국 엘리트 남성의 사회화 과정에 대한 다음의 비분석적이고 입증되지 않은 해설들은 감정의 문화적 구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Scott Turow, One L: An Inside Account of Life in the First Year at Harvard Law School (New York: Penguin Books, 1978); Charles LeBaron, Gentle Violence: An Account of the First Year at Harvard Medical School (New York: Marek, 1981); and Fran Worden Henry, Toughing It Out at Harvard (New York: McGraw-Hill,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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