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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성 개념을 통해 바라본 이주노동자 속헹씨 산재사망 사건

 

쏠(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2020 12 20, 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농장 숙소에서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1] 속헹씨가 발견된 공간은 이름만 숙소일 뿐 비닐하우스 내에 있는 조립식 가건물이었다. 해당 가건물에 속헹씨와 함께 거주하던 동료 노동자의 말에 따르면 속헹씨가 사망하기 며칠 전부터 해당 장소의 전기 공급장치가 고장 난 상태였고, 영하 10도 이하의 추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난방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속헹씨가 발견되기 전날 포천 일대의 기온은 영하 19도로 한파 경보가 발령된 상태였다. 속헹씨의 1차 부검 소견은간경화에 의한 혈관파열과 합병증인데, 법의학 전문가에 따르면 이는 추운 날씨에 더 많이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을 만큼 날씨와 연관이 깊은 질병[2]이다. 다시 말해 속헹씨의 죽음은 난방이 되지 않았던 열악한 숙소의 환경과 큰 연관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위와 같은 내용이 담긴 직업환경전문의 의견과 함께, 1년에 한 번 받아야 하는 건강검진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것이 속헹씨의 병을 키웠다고 보았다. 대책위는 속헹씨 유족의 권리를 위임받아 산재보상 신청을 진행했고 속헹씨가 세상을 떠난 지 499만에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3] 이는 당초 노동부가 속헹씨의 사망에 대해 개인 질병에 의한 사망이라는 이유로 중대재해 조사를 하지 않고, 사업주에게도 건강검진 미실시만을 이유로 고작 30만 원의 과태료만을 부과했던 것[4]을 뒤집는 결정이었다.

 

사건 발생 이후 고용노동부는 비록 실질적인 해결책이 전혀 아닌 말장난 같은 개선안이긴 해도 고용허가 시 기숙사 시설 확인절차 강화 및 비닐하우스 내 조립식 패널·컨테이너 숙소 제공 시 고용허가() 불허[5]한다는 방침을 발표했고, 당시 여당 국회의원 및 대책위를 중심으로 이주노동자의 주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토론회가 개최[6]되기도 했다. 2016년부터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던 시민단체들이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쳐왔지만, 이 사건을 기점으로 비로소 주거 문제가 본격적인 논의의 장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속헹씨의 죽음은 한국 사회 농업 이주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다만, 대책위가 지적했듯 속헹씨의 죽음은 열악한 주거 환경, 부실한 전력 및 난방장치 관리 문제, 건강검진도 받지 못하고 병원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던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동한사회적 죽음이었다”.[7] 여러 요인이 뒤엉켜 발생한 사회적 죽음임에도 마치 주거환경만이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주거 관련 대책만을 제시하는 것은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속헹씨를 이러한 환경에 몰아넣었는지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속헹씨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온 이주 여성 농업 노동자였다. 이렇게 단일하지 않은 조건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경험에서부터 시작한다면 이러한 삶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구조도 파악할 수 있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회 구조를 파악한다면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교차하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구조를 밝히는데 유용한 이론인 교차성 이론을 활용하여 속헹씨 사건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교차성 이론

 

교차성 이론은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민족 등 다양한 억압의 요소가 서로 교차하며 특정한 사회적 억압을 구성해 낸다는 이론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차성은 앞서 말한 여러 억압의 요소들이 서로 맞물리는 형태를 말한다.

 

"교차성은 서로 맞물리는 억압의 특정 형태, 예컨대 인종과 젠더의 교차, 혹은 섹슈얼리티와 민족의 교차와 같은 특정 형태를 지칭한다. 교차 패러다임은 억압이 하나의 근본적 유형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하며 여러 억압들이 부정의를 생산하는데 서로 함께 작동한다는 점에 주목한다.”(콜린스, 50)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교차성 이론은 단순히 누가 더 다양한 억압적 요소를 가졌는지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부분이다. 교차성은 단순히 억압의 다양성을 파악하기보다는 억압적 요소들이 서로 착종되어 만들어지는 독특한 억압적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교차성 이론은 계급,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 등 억압체계들 간의 위계를 설정하는 대신 이 억압체계들이 서로 맞물리며 서로를 강화하는 방식(즉 교차성)에 주목한다.”(박미선, 2014)

 

가령 노동자계급, 흑인, 장애인, 여성이 노동자계급, 흑인, 여성보다 억압의 요소를 하나 더 가지고 있다는 것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억압적 요소들이 서로 맞물려 각 개인에게 독특한 억압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억압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확인하고 억압적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다.

 

교차성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계급,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 같은 것은 억압체계를 구성하는 요소이면서 동시에 개인을 구성하는 정체성이다. 다시 말해 교차성은 특정한 정체성의 결합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구조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정숙정, 2021)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교차성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정체성은 단일하지 않고 다중적이라는 사실이다. 권력 구조는 이런 다중적 정체성을 단일한 틀로만 사고하게 하여 사회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키기보다는 구조는 그대로 둔 채 표면적인 변화만 이루어지도록 한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중첩되어 있는 상황의 복잡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그저 정치적 의지의 문제만이 아니라, 차별에 대해 사고할 때 다양한 문제를 단일 이슈들의 항목에 따라 분류할 수 있도록 정치를 구조화하는 방식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런 구조적 분류는 현 상황을 고착시키는 사회의 서술적∙규범적 관점을 차용한 것이다.”(크랜쇼, 1989)

 

신자유주의 분할통치는 정체성을 분할함으로써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 권력 축들이 서로 무관한 것으로 보이게끔 하는데, 교차성 분석은 서로 교차하는 모순으로 인해 더 심화된 모순이 생산되는 지점을 밝혀[8]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단일한 항목만으로 문제를 사고하는 방식은 다양한 억압이 교차하는 삶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단일한 억압적 요소만으로 나타낼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교차성 분석 틀이 매우 유용하다.

 

단일하지 않은 특정한 억압 요소의 결합을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지배 매트릭스라고 이야기한다. 콜린스에 따르면 지배 매트릭스는 다양한 억압 요소들이 맞물려 작동하며, 억압이 발생하는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조직된다.

 

“…세네갈, 미국, 영국의 사회제도는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가 서로 맞물리며 작동하는 억압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 세 국민국가에서 사회관계는 서로 다르다. 세네갈, 미국, 영국에서 지배는 상이한 방식으로 구조화된다. 어떤 매트릭스가 시기별로 혹은 국가별로 조직된 방식에는 실제적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지배 매트릭스라는 개념은 여러 억압이 서로 맞물려 작동한다는 점에서 띠는 보편성과, 이 보편성이 다양한 지역적 현실을 통해 조직된다는 점을 포착한 개념이다.”(콜린스, 381)

지배 매트릭스가 작동하지 않는 공간은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지역 및 시기마다 동일한 양상의 지배 형태가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계급과 인종의 범주에 속한 사람들이라도 지역적, 시기적 맥락에 의해 다르게 구조화된 매트릭스 속에서 영향받는다. 이를 좀 더 생각해 보면 교차성 이론에서 설정하는 정체성이란 언제나 동일하지 않고, 구조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되는 유동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정숙정, 2021)

 

 

교차성으로 속헹씨의 사망 사건 들여다보기

 

속헹씨는 고용허가제(비전문취업비자, E-9)를 통해 한국에 입국해 농촌에서 일하던 여성 이주 노동자였다. 속헹씨와 같은 여성 이주 노동자라고 해도, 도심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이 겪는 억압의 양상과 속헹씨가 겪는 억압의 양상은 다를 수 있으며, 속헹씨가 사망하기 이전에 온 사람과 이후에 온 사람이 겪는 양상이 조금은 다를 수도 있다. 속헹씨의 삶을 들여다보면 개인의 삶을 교차하는 다양한 억압적 요소를 확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차별적인 사회적 구조 또한 확인 할 수 있다.

 

 

1.     속헹씨는 왜 비닐하우스에 살게 되었는가?

 

2021 1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어업 분야 고용허가 주거시설 기준 대폭 강화보도자료에 나타나 있는 실태조사에 따르면 농어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의 99% 이상이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를 이용중인데, 이중 약 69.6%의 노동자가 가설 건축물(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9] 속헹씨가 사망한 뒤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2024년 현재에도 여전히 가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10]

 

속헹씨의 죽음이 그간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숙소 문제를 드러낸 사건이라면, 왜 이주노동자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런 임시 건물에서 살 수밖에 없었는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우춘희의 『깻잎 투쟁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고용주들은 이들이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열악한 주거 시설에 사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런 시설을 방관함으로써 그런 고정 관념을 강화했다. 고용주들은 말로는 자신들이 이주노동자들과 ‘한 가족’같이 지낸다고 강조했지만 그들도 그들의 자녀도 이런 임시 주거 시설에 살지는 않았다.”(우춘희, 『깻잎 투쟁기』, 41)

 

위와 같은 고용주의 문제적 발언에는 인종 차별과 함께 가난 즉, 계급에 대한 차별도 내포되어 있다. ‘가난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교차할 때 고용주 자신이라면 살지 않을 공간을 집이라고 내어주며 월세까지 받아낼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외국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나라에서 온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용허가제(비전문취업비자)’[11]라는 한국의 제도가 이러한 관념을 더욱 강화했다. ‘고용허가제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비전문 외국인력을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는 제도[12]. “내국인 고용기회를 보장하면서 외국인력을 활용[13] 하겠다는 제도인 것이다.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일자리라는 얘기는 곧 내국인이 기피하는 저임금 고위험 업종이라는 것을 뜻한다. 고용허가제(비전문취업비자) 제도를 통해 한국으로 자국민을 송출하고 있는 국가에는 소위 선진국이라 여겨지는 고도의 경제 발전을 이룬 국가는 단 한 곳도 없다.[14] 초국가적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국가의 계급이 곧 그 나라 사람의 계급이 되었고, 한국에 와서도 저임금 고위험 노동에 종사하게 되면서 또 상대적으로 가난한 계급에 속하게 된 이주민들은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만나 집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주거 시설에 살게 되었다.

 

이러한 주거 환경은 제대로 된 방범 시설조차 없어 여성 이주 노동자를 더욱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한다. “여성노동자들은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단순히 생활의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는 목숨이 위험에 처하고 성폭력 등 안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느끼[15]게 된다. 이는 단순히 가난한 이주민이라서 겪게 되는 문제가 아닌 가난한 이주민 여성이라서 겪게 되는 문제다.

 

 

2.     같은 고용허가제라도, E-9 비자와 H-2 비자[16]는 다르다.

 

외국인 노동자의 정주화를 방지하고 불법 체류와 불법 취업을 억제하는 것은 고용허가제의 주요 정책 중 하나다. 정주화를 방지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한국에 계속 살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사람들은 아무리 한국에 오래 있고 싶어도 최대 9 8개월을 넘길 수 없고, 영주권 및 귀화 자격 신청을 할 수 없다. 게다가 해당 제도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상당히 까다롭게 제한하고 있다. 사업자가 근로조건을 위반하거나 임금체불을 한 경우, 또는 그 밖의 노동 관계법을 지키지 않은 경우에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업주와 협의를 통해서만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다. 사업주와의 협의를 통한 사업장 이동은 3회로 제한된다.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다고 해도 노동자들은 최대한 불편함과 부당함을 견딘다. 이를 견디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재입국 특례 제도. 최초 4 10개월 동안 사업장 변경을 하지 않은 이주 노동자를 대상으로 본국에 돌아간 뒤 1개월 후 다시 한국에 입국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렇지 않으면 6개월 후에나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고, 본국에 있는 6개월간은 한국에서 일했을 때만큼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재입국 특례 제도는 상당히 매력적인 제도로 여겨진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같은 고용허가제의 적용을 받지만, 이 모든 조항은 특례고용허가제로 분류되는 방문취업(H-2)비자소지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조항이다. 방문취업 비자는 외국 국적 동포에게만 발급이 되는 비자다. “외국 국적 동포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으며, 출신 민족과 국가를 이유로 차별하는 것이다.”(우춘희, 『깻잎 투쟁기』,122) “선진국이라 불리지 않는 나라에서 온 모든 사람을 차별하는 제도인 줄 알았던 고용허가제는 알고 보니 선진국에서 오지 않은, 동포가 아닌 사람들을 차별하는 제도였던 셈이다. 이는 같은 국가에서 온 사람 간에도 다른 경험을 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국적은 두 사람 다 우즈베키스탄이지만, E-9 비자를 소지한 사람이 겪는 차별적 경험과 H-2 비자를 소지한 사람이 겪는 차별적 경험의 양상은 꽤 다를 것이다.

 

 

3.     속헹씨는 왜 병원에 제때 갈 수 없었는가?

 

2019 7외국인 건강보험 당연가입제도가 시행되기 이전까지 이주노동자는 직장가입자가 아니면 건강보험에 가입할 의무가 없었다. 속헹씨는 농업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자등록증이 없는 사업장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고 따라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건강보험 당연가입제도가 시행된 지금은 상황이 좀 더 나을까? 확실히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보험료를 내고는 있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우선, 정보의 부족과 언어의 장벽이 매우 높다. 이주노동자들은 아파도 증세에 따라 어떤 병원에 가야 하는지 잘 알 수 없고 병원에 가서도 언어장벽 때문에 제대로 된 진료를 보기 어렵다.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는 병원에 가기가 좀 더 까다로운데, 그 이유는 정말 물리적인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농업은 근로기준법 63에 의해 근로기준법 중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17]는다. 이는 시기에 맞춰 일을 해야 하는 농업의 특성을 고려한 법이지만, 이 법 때문에 농업 노동자는 휴게시간과 휴일을 거의 보장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농업 이주 노동자는 대체로 한 달에 이틀 쉬고, 하루 11시간씩 일 한다. “외국인근로자 고용관리가이드라는 고용허가제를 설명하는 안내서를 보면 외국인근로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관계법이 내국인과 동등하게 적용이라는 구절이 나오지만 농업 이주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은 준수했기 때문에 아파서 쉴 시간도, 병원에 갈 시간도 없다. 이는 농업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겪는 억압의 양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2021년에 열린 <전남의 사례로 본 농업이주노동자 현황 및 농업노동 환경 개선 방안> 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일일 근로시간을 8시간 초과한 비율의 경우 전라남도 농어촌 분야의 경우80%에 이르고 이는 광주지역 제조업 이주노동자의 경우63%에 비해 상당히 높게 나타나고 있[18]다는 내용 나온다. 농어촌 분야 이주노동자들은 제조업 이주노동자보다 노동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이주노동자라고 해도 어느 업종에 종사하는지에 따라 경험하는 억압의 양상이 다름을 알 수 있다.

 

 

4.     여성 이주 농업 노동자라는 것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3년 이민자체류실태및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E-9 비자 소지자 269,000명 중 91.2%가 남성이고, 8.8%가 여성으로 남녀 성비가 매우 뚜렷하다. 자료 간의 시차는 조금 있지만 2019년에 발간된 이주여성 농업노동자의 한국생활 연구』를 보면, 농업 분야에도 역시나 남성이 더 많지만, “전국에 있는 농업 이주 노동자 31,789명 중에서 남성은 67.3%, 여성은 32.7%”[19]E-9비자를 소지한 여성 이주 노동자 중에서도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의 비율이 꽤 높은 편임을 알 수 있다. E-9 비자를 소지한 여성 이주 노동자의 비율이 남성보다 절대적으로 적은 데 반해, 농업 분야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남성의 절반가량 된다는 것은 상당수의 여성 이주 노동자들이 농업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오려면 일하고자 하는 업종(제조업, 건설업, 농업, 축산업 어업 등)에 지원한 후,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고, 고용주의 선택을 받아야만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게 되는데, 농업 분야에 유독 여성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여성들의 농업 분야 지원율이 높다는 것과 한국에 있는 농업 고용주들이 여성을 상대적으로 많이 채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농업은 제조업이나 건설업에 비해 눈에 보이는 위험이 많지 않을 수는 있어도, 긴 노동시간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노동 강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게다가 많은 농업 노동은 동일한 자세에서 장기간 반복하는 작업이 많은데, 이는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한다. 하지만 이러한 질환은 산재 승인율이 약 50~60% 정도 라고 한다. 일하다 근골격계 질환을 겪게 되는 여성 노동자 중 절반 정도만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20] 이주연 사회건강연구소 연구위원은 여성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보상 신청률은 남성 이주노동자의 18% 수준에 불과하다. “이주노동자 산재가 남성에게만 벌어지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여성 이주노동자의 산재가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산재 보상 신청률이 낮은 이유로는 산재보험 자체에 가입돼 있지 않거나 가사노동자, 요양보호사 등 여성 이주노동자가 종사하는 직업군에서 노동자성 인정이 불확실한 점이 있다.” [21] 이처럼 여성 이주 노동자가 처하는 위험은 남성 노동자의 위험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고, 잘 인정되지도 않는다. 이는 다른 한국 여성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과 유사해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여성의 업무 특성을 고려한 산재 인정 관련 정책을 만들거나 운동을 조직할 때, 이주민 여성과도 함께 연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가며

 

속헹씨의 죽음을 기점으로 여성 농업 이주 노동자의 문제를 보게 됐다. 여성 농업 이주 노동자의 문제를 통해 곧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제도의 문제와 사회 구조의 문제까지 보게 되었다. 문제가 너무 많아서 쓰고 싶은 말도 많은데 역량이 부족하여 이론과 현실을 연관 짓는 것에 섬세함이 부족했다. 교차성의 핵심은 소외된 존재들이 자신을 둘러싼 지배 매트릭스에 저항하는 투쟁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다양한 차별적, 억업적 요소들이 얽혀 만들어진 결과라는 부분에 더욱 집중했다. 정말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면 머리가 아프지만 얽히고설킨 문제의 실타래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속헹씨의 사망 사건은 이주 농업 여성이라는 어쩌면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단일한 관점으로만 읽히지 않을 때, 차별받는 모든사람을 위한 평등을 이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킴벌리 크랜쇼의 말처럼 그들이 들어갈 때 우리 모두가 들어갈 것이다.”(크랜쇼, 1989)

 

 

 

참고문헌

 

패트리샤 힐 콜린스, 박미선 주해연 역, 『흑인 페미니즘 사상』, 2009, 여이연

박미선. (2014). 여성주의 좌파이론을 향해서. 뉴 래디컬 리뷰,(59), 105-125.

정숙정. (2021). ‘여성×농민의 교차성: 여성농민의 불평등 경험과 정체성. 농촌사회, 31(1), 93-153, 10.31894/JRS.2021.04.31.1.93

킴벌리 크랜쇼, 웹진 인-무브 페미니즘 번역 모임 역, 인종과 성의 교차점 탈주변화하기: 반차별 독트린, 페미니즘 이론, 반인종주의 정치에 대한 흑인 페미니즘의 비판, 1898

우춘희, 『깻잎 투쟁기』, 2022, 교양인



[1] 이재호,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귀국 20일 앞둔 이주노동자 싸늘히 식었다」, 한겨레, 2020.12.24, https://www.hani.co.kr/arti/society/rights/975694.html

[2] <궁금한이야기Y> 527, “‘에서부터 3,500km 그녀는 왜 이곳에서 사망했나?”, 2021,01,08

[3] 고병찬, 한파속 비닐하우스 사망 속헹…499일 만에사회적 죽음산재 인정, 한겨레, 2022.05.02,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41305.html

[4] 각주 3번과 같은 기사 인용

[5] 고용노동부, 공고 제2020–532, 2020.12.30. 이는 비닐하우스 내부에 있는 조립식 패널컨테이너 숙소만 해당되는 사항으로 비닐하우스 외부에 있는 가설건출물을 기숙사로 제공하는 경우는 허용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최정규,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실태와 문제점”, <이주노동자 숙소 대책 토론회 발표자료 참고.

[6] 2021 5 14일에 개최된 <이주노동자 숙소 대책 토론회> 자료집에 실린 윤미향 국회의원의 인사말에는 특히 지난 겨울 비닐하우스 숙소에 거주하던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한파 속에서 사망한 사건은 이주노동자들의 숙소 문제가 얼마나 시급한 대책을 필요로 하는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이를 통해 속헹씨의 사망 사건이 해당 토론회를 촉발시켰음을 확인할 수 있다.

[7] 최지은, 「영하 20도 비닐하우스서 숨진 이주노동자… 1년 반 만에 산재 인정」, 더나은미래, 2022.05.03, https://www.futurechosun.com/archives/64525

[8] 정숙정. (2021). ‘여성×농민의 교차성: 여성농민의 불평등 경험과 정체성. 농촌사회, 102

[9]어업 분야 고용허가 주거시설 기준 대폭 강화 https://www.moel.go.kr/news/enews/report/enewsView.do?news_seq=11831

[10]조일준, “비닐하우스 만족해요, 국적: ○○○” 각서가 벽에 나부끼지만…,한겨레, 2024.01.21,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1125194.html

[11] 고용허가제의 적용을 받는 사람들은 비전문취업비자(E-9)와 방문취업비자(H-2)를 소지한 사람들인데, H-2비자는 중국 및 구소련 지역 6개 국가(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출신 만 18세 이상 외국국적 동포에게 발급되는 비자다.

[12] 고용노동부, 「외국인 근로자 고용관리 가이드」, 2020.06, 6

[13] Ibid. 6

[14] 고용노동부, 「외국인 근로자 고용관리 가이드」외국인 근로자 도입 국가: 인도네시아, 네팔,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필리핀, 파키스탄, 미얀마, 동티모르, 베트남, 태국, 몽골, 중국, 라오스

[15]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이주여성 농업노동자의 한국생활 연구, 2019,6

[16] H-2비자는 중국 및 구소련 지역 6개 국가(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출신 만 18세 이상 외국국적 동포에게 발급되는 비자다.

[17] 근로기준법 63

[18] 광주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연대 단위, <전남의 사례로 본 농업이주노동자 현황 및 농업노동 환경 개선 방안> 토론회 자료집, 2021.12.21. E-9비자 소지 이주노동자의 업종별 노동시간 관련 통계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우선 해당 자료를 인용한다.

[19]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이주여성 농업노동자의 한국생활 연구, 2019,3

[20]이혜리, 「이주여성 노동은 어쩌다 위험의 최전선에 놓였을까」, 경향신문, 2024.07.06,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7060900041

[21]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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