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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Translation/라클라우 읽기

강사 인터뷰: 포스트-마르크스주의에서 좌파 포퓰리즘까지

by 인-무브 2025. 10. 2.

 

강사 인터뷰: 포스트-마르크스주의에서 좌파 포퓰리즘까지 

 

이 글은 서교인문사회연구실 2025년 가을강좌 “포스트-마르크스주의에서 좌파 포퓰리즘까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반본질주의 정치사상”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강사의 자전적 인터뷰입니다. 강좌 신청은 신청 링크(https://forms.gle/1eshfN6tNsu3UtmG8)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현우식(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사진: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현우식 연구원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올해 8월에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습니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반본질주의 정치사상: 존재-인식론 중심의 사회과학 패러다임 비판>라는 주제로 학위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제주에서 살고 있으며, 서교인문사회연구실과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졸업하고 처음으로 서교연에서 강좌를 맡게 되었습니다.

 

Q. 강좌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신다면

 

10월 15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에 온오프라인 병행으로 진행됩니다. 총 5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반본질주의’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라클라우 사상 전반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살펴볼 예정입니다. 한국에서 라클라우 사상은 주로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과 <포퓰리즘 이성에 대하여>(2005)라는 두 대표작을 중심으로 다루어지는데, 출간일도 20년이나 차이가 나는 두 저작의 내용만으로는 라클라우 사상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강좌는 한국에서 최초로 라클라우의 특정 저작이 아닌 사상 전체를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박사논문 역시 이 부분을 고려하여 작성했습니다. 마침 올해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출간 40주년, <포퓰리즘 이성에 대하여> 출간 20주년이 되는 해라 더욱 뜻깊은 일이 될 것 같습니다.

 

Q. 라클라우라는 이름이 낯설게 다가오는 분들도 많을텐데, 어떤 사상가인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1935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고, 젊은 시절에는 아르헨티나 사회당의 일원으로 사회주의 운동과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페론주의(Peronism)의 영향을 받으면서 사회주의 운동이 협소한 계급주의를 넘어서 페론주의로 드러나는 반체제적이고 대중적인 요구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입장은 그가 1966년 군부 정권의 탄압에 의해 강사직을 잃고, 영국으로 이주한 이후에 학문적으로 더욱 정교화됩니다. 1985년 샹탈 무페와 함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발표하면서 라클라우는 대표적인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사상가로 알려지게 됩니다. 이 책에서 그는 헤게모니라는 범주를 중심으로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근본적으로 해체(deconstruction, 탈구축)하는 작업을 진행는데, 이로 인해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지던 90년대 초반 일부 연구자들에 의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수용되었는데, 역시 과거를 부정하거나 자유주의로의 전향을 정당화하는 ‘청산주의’적 시도로 강하게 비판받았습니다. 비교적 최근에는 포퓰리즘 이론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05년 발표한 <포퓰리즘 이성에 대하여>는 국내외 포퓰리즘 연구에서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저작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서유럽을 중심으로 좌파 포퓰리즘(left populism)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면서 라클라우는 무페와 함께 대표적인 좌파 포퓰리즘 이론가로 거론되게 되었으며, 이들의 이론은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와 같은 정치세력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기도 했습니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와 ‘좌파 포퓰리즘’은 오늘날 그의 사상을 상징하는 가장 대중적인 표지이기도 한데요, 강의 제목을 “포스트-마르크스주의에서 좌파 포퓰리즘까지”로 지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Q. 주로 샹탈 무페와 함께 ‘라클라우와 무페’로 불리기도 하는 것 같은데요, 무페 사상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함께 출간하기도 했고, 두 사람이 ‘지적 동반자’로서 긴밀히 협업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두 사상가는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출간 이후에는 공통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학문적 경로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라클라우가 주로 대륙철학과 포스트-구조주의 전통에서 정치적인 것(the politics)의 일반적 논리를 규명하는 작업에 주력했다면, 무페는 영미권 정치이론의 전통에서 자유주의 정치 이론의 합리주의와 보편주의를 비판하며 경합적 다원주의(agnoistic pluralism) 이론을 발전시키게 됩니다. 무페가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2017)에서 제시한 좌파 포퓰리즘 전략 역시 라클라우의 포퓰리즘 이론과는 이론적 개입의 층위와 맥락에서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라클라우와 무페를 함께 이야기하기 이전에 먼저 각 사상의 핵심 내용을 변별하고, 두 사상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국내에서 라클라우와 무페 사상을 비교하는 논의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이 부분은 후속 연구에서 다루어볼 예정입니다.

 

Q. 라클라우 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제주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서영표 선생님께 지도를 받았습니다. 워낙 마르크스주의와 비판사회이론에 정통한 분이기도 하고, 선생님께서 박사학위를 받은 영국 에식스(Essex) 대학이 라클라우가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대학이기도 해서 수업이나 세미나 등에서 라클라우 사상을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의 입장을 따라 라클라우를 ‘비판적’으로 독해했습니다. 석사논문에서 네그리, 라클라우, 발리바르의 정치적 주체론을 비교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라클라우가 담론적 차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생산의 영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정치적 자율성의 영역을 이론화하지 못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이후 박사과정에 들어가고 나서 선생님의 입장을 벗어나 스스로의 학문적 입장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라클라우를 재평가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라클라우 사상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틀짓는 ‘마르크스주의 대 포스트 담론’이라는 구도 자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웠던 것은 라클라우 사상을 다루는 국내 연구를 찾아보다 보니 선생님의 입장이 ‘그나마’ 라클라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일 정도로 매우 일관되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라클라우 연구는 라클라우를 비판하는 연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직 라클라우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았으며, 라클라우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집단이나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저는 이 현상이 기존 비판적 인문사회과학 학술장의 어떤 ‘진실’을 드러내는 지식사회학적 현상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라클라우를 명분으로 삼아 제가 농담삼아 ‘좌파 아저씨들’이라고 부르는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의 학술장과 지적 관행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여러 연구와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다 아예 라클라우를 주제로 박사학위논문을 써보자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평가로 인해 한국에서 라클라우는 관련 연구자들이 한번씩은 거쳐가는 주제이지만, 독립적인 학술적 탐구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라클라우 사상을 단일 주제로 다루는 박사학위논문이나 단행본 분량의 연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먼저 라클라우 사상을  독립적인 학술적 탐구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철학과 이론 연구의 문법과는 달리 특정 시기나 저작, 개념에 천착하지 않고 라클라우 사상 전반을 주제로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깊이 있는 논의를 하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이 논문이 라클라우 사상에 대한 ‘입문서’ 혹은 ‘입문 강의’로 활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작성했습니다.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라클라우 사상에 관심을 갖는 3명의 연구자(이승원, 김내훈, 이준형)와 함께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커뮤니케이션북스, 2005)라는 제목의 개념서 핸드북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강의를 계기로 논문 내용을 수정해서 내년 쯤에 단행본을 출간할 계획입니다. 단행본이 나오면 앞으로 한국에서 라클라우 사상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실천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준거점이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Q. 그렇다면 오늘날 라클라우 사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두 가지로 나눠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라클라우 사상은 ‘정치’에 대한 사유의 지평을 넓혀줍니다. 라클라우는 존재론적 차원, 특히 존재론의 ‘정치적’ 차원을 매우 강조합니다. 철학에서 존재론이란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러한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을 다루는 분야입니다. 라클라우에게 존재론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존재가 정치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을 담론적, 적대적, 헤게모니적으로 바꾸어 말해도 좋습니다. 라클라우 사상에서 ‘정치’는 사회의 특정 영역에서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거나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행위에 한정되지 않으며 사회적 관계와 질서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차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상태는 정치적 과정의 결과이며, 어떤 범주가 비정치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정치적 기원이 잊혀져 침전(sedimented)되었기 때문입니다. 라클라우의 정치적 사유는 자명해보이는 사회적 관계와 질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침전된 영역을 재활성화(reactivating)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렇듯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정치적’ 사유를 확장시키는 것이야 말로 라클라우 사상의 가장 실천적이고 급진적인 측면입니다.

 

다음으로 라클라우 사상은 정치현상을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유용한 관점을 제공합니다. 저는 최근 한국에서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포퓰리즘과 정치양극화 현상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포퓰리즘만은 절대 안되며, 양극화된 정치를 넘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고 있음에도 포퓰리즘과 정치양극화 현상은 오히려 더 심화되고 있고 급기야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현상들을 규범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현대사회에서 포퓰리즘과 정치양극화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이 필요합니다. 라클라우는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이고 비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의 근본적인 원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민주주의 정치가 결국 민주주의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결정불가능한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의 주체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과 같이) 자명하게 정해진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공적 질서에서 배제된 존재들이 언제나 존재합니다. 포퓰리즘은 이 존재들이 권력자들과 자신을 구분하며 정치적 주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정치적 경계가 만들어지면서, 라클라우의 용어를 빌자면 사회적 적대(social antagonism)가 구성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정치양극화라고 부르는 현상은 그런 사회적 적대가 극단화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화와 타협은 중요하지만, 그것은 오직 민주주의 정치에는 항상적으로 적대와 투쟁의 차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할 때 더욱 촉진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라클라우의 정치 이론은 분열과 적대로 얼룩진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Q. 이번 강좌의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반본질주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반본질주의라는 말은 언제나 문제적입니다. 자신의 입장이 본질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술적으로도 포스트-토대주의(post-foundationalism) 등으로 바꿔 부르는게 더 엄밀한 규정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단어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일종의 ‘정동’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반본질주의는 특정한 대상에 본질주의라는 혐의를 부과함으로써 자연스레 그와 관련된 논쟁을 촉발한다는 면이 있습니다. 라클라우와 무페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발표했을 때 이들이 제기하고자 했던 본질주의의 문제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과 계급환원론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구태여 경제결정론과 계급환원론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라클라우 사상이 반본질주의적 측면을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비판적 사회과학의 지배적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위논문에서는 이 패러다임을 존재-인식론(ontic-epistemology) 중심의 패러다임이라고 불렀습니다. 존재-인식론 패러다임이란 사회과학 연구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패러다임을 말합니다. 이 패러다임에는 라클라우가 강조하는 존재가 정치적 과정에 의해 구성되며 그 의미와 정체성이 언제나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차원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오늘날 사회과학 연구가 현실에 효과적으로 개입하기 위해서는 라클라우를 따라 사회과학 연구가 단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의미와 정체성을 둘러싼 투쟁에 개입하는 헤게모니적 실천(hegemonic practice)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반본질주의라는 말을 과학적 설명이라는 이론적 틀 뒤에 숨어서 현실에 개입하지 못하는 사회과학의 현실에 대한 논쟁을 촉발하고 사회과학을 더욱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는 어떤 연구를 하실 계획인가요?

 

라클라우와 무페 사상, 포스트-구조주의와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담론 이론에 대한 연구는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해 나가야 할 주제입니다. 관련해서 출판, 번역, 강의, 발표 등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라클라우의 이론을 앞서 이야기한 포퓰리즘과 정치양극화 같은 정치현상에 대한 분석에 적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짧게는 12.3 내란 시도와 이후의 민주적 회복 과정과, 길게는 자유민주주의가 유일한 게임의 룰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기표를 둘러싼 포퓰리즘 정치, 헤게모니 투쟁이 한국사회의 정치양극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구하는 연구를 준비중입니다. 이 과정에서 라클라우의 이론과 개념들이 문제의식이나 기표 수준에서 머물기보다는 일종의 정치사회학적 접근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한국에서 라클라우 사상이 수용되어 온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앞서 라클라우 사상이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저는 이 문제를 「라클라우 사상의 수용 과정과 쟁점 - 국내 비판적 인문사회과학 연구에서 ‘라클라우의 이름’의 의미」라는 논문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다. 라클라우 사상의 한국적 수용은 크게 90년대 초반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국면’과 2000년대 후반의 ‘포스트민주화 국면’이라는 두 국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 국면은 90년대 초반 소비에트 체제의 몰락으로 인해 80년대 비판적 인문사회과학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했던 마르크스주의와 민족·민중 담론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기존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다양한 지적 실천이 경합하는 국면을 말합니다. 이 시기에는 기존 담론에 대한 대안으로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식민주의 등 다양한 ‘포스트 담론’이 수용되었으며, 라클라우 사상은 이병천, 박형준 등의 연구자들에 의해 ‘포스트 담론’의 일종인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담론으로 수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대 포스트 담론의 대립구도에서 이러한 시도는 ‘청산주의’로 강하게 비판받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라클라우 사상의 수용 시도는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끝나버리고 맙니다.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라클라우 사상에 대한 논의가 재개된 시점은 2000년대 후반입니다. 이 시기는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이 끝나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 즉 포스트민주화의 경로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이 전개됩니다. 이 과정에서 조희연, 이승원 등의 연구자들에 의해 라클라우 사상이 새롭게 해석되게 됩니다. 90년대에는 주로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수용되었다면, 이 시기에는 진보좌파 진영의 새로운 정치적 기획을 구상하는 작업과 관련하여 라클라우와 무페의 급진민주주의와 좌파 포퓰리즘 전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됩니다. 세계적으로도 포퓰리즘 현상이 대두되면서 <포퓰리즘 이성에 대하여>로 대표되는 라클라우의 후기 저작에 대한 논의도 시작됩니다.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를 중심으로 조희연, 이승원, 서영표, 장훈교 등의 연구자들에 의해 급진민주주의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데모스>라는 공동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했고, 최근에는 미디어 문화연구 영역에서 포퓰리즘과 문화정치 현상을 분석하는 이론적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한국에서 라클라우 사상의 수용은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존 패러다임이 위기에 처한 시점에 잠깐씩 대안으로 주목받긴 했지만, 여러 한계로 인해 막상 활용 가치는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Q. 기존 연구에서 라클라우 사상은 주로 어떤 점에서 비판받았나요?

 

라클라우 사상의 한계로는 주로 담론환원주의와 정치적 상대주의 문제가 지적됩니다. 담론환원주의란 물질적, 사회적, 제도적 차원을 담론적 차원으로 환원하는 문제를 말합니다. 이는 라클라우 사상을 구체적인 정치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에 활용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로 지적됩니다. 정치적 상대주의란 정치적 실천의 형식성과 우연성을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정치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하는 규범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는 문제를 말합니다. 이로 인해 라클라우가 제시하는 급진민주주의와 좌파 포퓰리즘 전략은 ‘좌파적’이라는 보장이 없으며, 심지어는 우파적으로 전유될 위험이 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라클라우 사상을 무엇보다 ‘실천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지만, 정작 사상 자체는 근본적인 한계로 인해 사회 이론으로도, 정치 전략으로도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이는 비단 국내 연구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라클라우 사상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비판입니다. 저는 이런 비판을 직접적으로 반박하기 보다는 비판의 전제를 의문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말하자면, 라클라우 사상이 사회 이론과 정치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반박하기 이전에 먼저 기존 연구의 부정적 평가가 사회 이론과 정치 전략에 대한 특정한 이론적 입장 혹은 패러다임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 연구의 비판은 사회(구조)적, 필연적, 물질적, 역사적, 제도적 차원이 정치적, 담론적, 우연적, 이데올로기적 차원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우선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라클라우 사상은 전자의 차원을 후자의 차원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됩니다. 이는 후자의 차원을 사회적 관계와 질서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존재론적 차원으로 이해하는 라클라우 사상의 관점과 상충됩니다. 따라서 기존 연구는 라클라우 사상과는 상이한 존재론적, 인식론적 전제에 입각하여 사상을 외재적으로 해석해 왔으며, (‘오독’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특정한 방식으로만 사상을 해석해 왔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연구자가 라클라우 사상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전제를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 자체가 논쟁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라클라우 사상을 ‘실천’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시도가 결국 그러한 ‘실천’적 활용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지속적으로 도달했다면, 이제는 기존 해석의 패러다임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은 라클라우 사상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전제에 입각하여 사상을 내재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텍스트 중심의 훈고학적 논의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대의 지성사적 맥락에 비추어 라클라우 사상이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이후에 사회 이론과 정치 전략으로의 실천적 활용 방법에 대한 논의 역시 활성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Q. 라클라우 사상의 핵심 개념을 소개해 주신다면

 

가장 핵심적이며, 논쟁적인 ‘담론’ 개념을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담론은 일반적으로 “~에 대한 담론”으로서 현실에 대한 공동의 지각과 이해를 조성할 수 있는 도구로 여겨집니다. 담론을 분석한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문헌자료, 언론기사, 미디어 콘텐츠 등을 분석하는 것으로 여겨지죠. 라클라우 사상의 담론 개념은 이런 경험주의적이고 실증주의적인 담론 개념과는 다릅니다. 담론이란 특정한 실체가 유의미한 존재로 구성되도록 하는 가능성의 조건 혹은 지평을 말합니다. “~에 대한 담론”으로서 현실에 존재하는 여러 담론들은 바로 이 가능성의 지평에서 접합적 실천의 결과로 형성된 담론구성체(discursive formation)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렵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담론을 정의하는 이유는 결국 담론적 차원의 정치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능성의 지평, 즉 담론장은 의미를 부분적으로 고정하려는 다양한 접합적 실천들이 경쟁하는 장입니다. 이러한 실천 중 어느 것이 성공할지 미리 결정할 수 있는 궁극적인 법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실천들, 그것이 말하기와 쓰기와 같은 언어적 실천이든, 아니면 ‘비언어적’ 실천으로 여겨지는 어떤 실천이든 그것은 담론장 내에서 의미를 부분적으로 고정하려고 하는 접합적 실천입니다. 라클라우는 이러한 관점에 따라 정치에 대한 일체의 본질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정치적 실천의 가능성을 급진적으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이런 결론은 “결국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은 하기 나름이다”라는 식의 허무주의 혹은 결단주의로 흐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이는 라클라우 사상의 ‘담론환원주의’ 경향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우리는 결정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결정해야 하며 (라클라우는 자신의 헤게모니 이론이 “결정불가능한 지형에서 이루어진 결정에 관한 이론”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여러 ‘보편적’ 규범에 입각해서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현실에 단호히 맞서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결정이 의미를 부분적으로 고정하려는 수많은 실천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보편적’ 규범 역시 끊임없이 변화해 왔으며 앞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 역시 받아들여야 합니다. 라클라우 사상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별로 말해주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야할 길이 이미 확실히 정해진 사람들에게는 불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다만 라클라우는 우리가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지를 알려줄 뿐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확신’이 아니라 불안정함 속에 끊임없이 자신을 노출하는 ‘의심’의 길입니다. 여기서는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가지만 라클라우 사상의 적대, 탈구, 헤게모니, 비어 있는 기표와 같은 핵심 개념들 역시 담론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강좌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Q. 라클라우 사상의 주요 문제의식은 시기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나요?

 

저는 보통 라클라우 사상을 세 시기로 구분합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정치와 이데올로기>(1977)로 대표되는 70년대 전기 작업,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으로 대표되는 80년대 중기 작업, <해방(들)>(1990)과 <포퓰리즘 이성에 대하여> 등을 포함하는 90년대 이후의 후기 작업입니다. 70년대 작업에서는 주로 인식론적 관점에서 경험주의와 이론주의(형식주의) 로 드러나는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주의적 인식론을 해체하고, 파시즘과 포퓰리즘과 같은 정치현상을 비환원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80년대로 넘어가면 헤겔적이고 자연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주의적 존재론을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90년대 이후에는 마르크스주의 문제틀 내에서의 해체 작업을 넘어서 그것을 새로운 토대 위에 재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그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 해체 작업은 기존 문제틀의 해체와 재구축이라는 이중적 과업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데리다적 의미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탈구축’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과제들은 각 시기의 지성사적 혹은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한 이론적 대응의 성격을 띱니다. 70년대에 라클라우가 68혁명이 열어 젖힌 자장 안에서 알튀세르 학파의 영향을 받으며 마르크스주의를 경제결정론과 계급환원론이라는 혐의로부터 구하고자 했다면, 80년대에는 사회적 관계의 전면적인 상품화와 관료화에 저항하는 다양한 사회적 저항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라는 새로운 이론적 지평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알튀세르 학파는 ‘최종심급에서의 경제에 의한 결정’과 같은 논리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주된 논적이 됩니다. 80년대까지 라클라우의 주된 비판이 본질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향해 있었다면, 90년대 이후에는 오히려 해방 정치의 종언을 이야기하는 자유주의자들과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맞서서 해방 정치를 현대적 의미에서 재활성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지나치게 포스트주의적이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는 여전히 근대적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한 애매한 포지션에 머물기도 합니다. 저는 라클라우가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냐, 혹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이탈했느냐의 여부를 따지는 무의미한 논쟁을 벌이기 보다는 그의 작업이 여러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강좌에서는 보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사상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따져보고자 합니다.

 

Q. 라클라우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본적인 텍스트들을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라클라우 사상은 그람시, 알튀세르의 서구 마르크스주의뿐만 아니라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현상학, 비트겐슈타인의 후기분석철학, 라캉과 데리다 등의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으며 특히 후기로 갈수록 존재론적 차원에 관한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논의를 전개하기 때문에 매우 어렵습니다. 저도 이제 막 본격적인 연구에 첫 발을 떼었을 뿐입니다. 일단은 라클라우 사상의 배경이 되는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논의에 먼저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에도 좋은 입문서, 가령 최근에 발표된 <금붕어의 철학>(출판공동체편않, 2025) 이나 <타자철학>(반비, 2023), <사상의 좌반구>(현실문화, 2020), <라캉, 바디우, 들뢰즈의 세계관>(이학사, 2023)과 같은 좋은 책들이 있습니다. 

 

라클라우 사상은 라클라우의 제자인 David Howarth가 쓴 책들이 입문서로 좋습니다. 라클라우와 무페의 이론을 중심으로 포스트-구조주의와 담론 이론의 궤적을 소개하는 <Discourse>(Open University Press, 2000)와 라클라우의 여러 논문들을 엮은 <Ernesto Laclau>(Routledge, 2014)를 추천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두 책은 국내에 번역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제가 일부를 서교연 웹진 <인-무브>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Discourse』 서문: 담론 개념을 정의하기 , 라클라우와의 인터뷰(1/2) , 라클라우와의 인터뷰(2/2) 아직 번역 역량이 부족해서 전문적인 번역을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번역해보고 싶은 책들입니다. 이승원, 김내훈, 이준형과 함께 쓴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커뮤니케이션북스, 2025)는 라클라우의 핵심 개념 10개를 소개하는 핸드북입니다. 제 박사논문 역시 RISS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으며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반본질주의 정치사상 : 존재-인식론 중심의 사회과학 패러다임 비판 = Ernesto Laclau’s Anti-Essentialist Political Thought: A Critique of the Ontic-epistemological Paradigm in Social Science 내년에는 개작하여 단행본으로도 발표할 예정입니다.

 

Q. 마지막 한마디

 

강의 홍보를 하려다 보니 별 일을 다 하게 되네요. 여전히 낯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반 정도는 지면의 한계이고, 나머지 반은 제가 아직 사상의 주요 내용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쉽게 풀어내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강의를 신청해 주신다면 이 내용보다 훨씬 자세하고 간결하게 풀어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곧 만나뵙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