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피우기,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매일의 다른 의식들
Making Fire and Other Daily Rituals of Survival
하산 아보 카마르 Hassan Abo Qamar
번역: 서제인
*원문 출처: https://wearenotnumbers.org/making-fire-and-other-daily-rituals-of-survival
Making fire, and other daily rituals of survival - We Are Not Numbers
I choke from the smoke, my eyes sting to the point of tears, my hands are blackened and cracked: all for a hot drink or a plate of canned 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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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자리에서 주위를 세밀하게 살펴본다. 하늘은 분홍색이고, 거의 해질 무렵에 가깝다. 구름들이 지평선을 가득 채우고 있고, 사이사이로 점령군의 윙윙거리는 드론들이 날아다닌다. 그 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플라스틱(불 피우는 데 필요한 주재료 중 하나로, 빠르게 불이 붙고 장작이 잘 타게 해준다)이 나무와 뒤섞여 타는 냄새가 끈덕진 두통을 남겨놓는다. 점토로 만든 화덕에서 3미터쯤 떨어져 있지만 불 냄새를 들이마실 때면 모든 감각을 통해 열기가 전해진다. 바람이 세게 불면 불이 꺼지기 전에 다가가 다시 붙여야 하니 이 정도는 가까이 있어야 한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거기 앉아 내 감각들에, 눈앞의 장면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집중을 끊는다. “끓었니?” 찻주전자를 두고 묻는 말이다. 나는 뚜껑을 열어 보고 대답한다. “아뇨, 아직이요.” 우리 모두는 물이 끓기를, 그래서 불 앞에서 보내는 기나긴 또 하루의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어머니는 내 불 피우기 동지다. 우리의 유대를 표현하기 위해 어머니가 만들어낸 말이다. 차가 끓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피곤한 이목구비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불 앞에서 나와 고생을 함께하는 그 얼굴엔 나와 마찬가지로 이 하루가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 우리는 둘 다 불과 연기로 가득한 하루가 끝나고 마침내 누워 쉴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딱 내일 하루 더 살아남을 만큼만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에는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었지만, 우리는 이제 느지막이 일어난다. 굶주림과 어려움으로 가득한 이 나날들은 일찍 일어날 어떤 동기도 부여해주지 않는다. 일찍 일어나서 뭐하겠는가? 불 앞에 앉아 있으라고? 더 배고파지라고? 계산은 간단하다. 일찍 일어난다는 건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거고, 그건 존재하지도 않는 먹을 것이 더욱 더 필요해진다는 거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장작을 사러 밖으로 나간다. 그러면서 불과의 전쟁 속에서, 점령군이 계속하는 이 집단학살 속에서 또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우선 장작을 패야 한다. 이 일은 보통 오후 기도 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난다. 장작을 팬다고 하면 모험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될지 모르지만, 현실은 항상 상상과는 다르고… 훨씬 더 실망스럽다.
장작을 패고 불 붙일 준비를 하는 일은 진이 빠지고 고단하다. 겨우 절반밖에 못 했는데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그 다음엔 조금 쉬었다가 불을 붙이려고 애를 쓰는 피곤한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해 지기 바로 전이 되어서야 점심을 먹는다. 그러면 밤에 또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우리는 먹을 게 부족하다.
동시에, 내 불 피우기 동지인 어머니는 안으로 들어가 뭐든 있는 재료를 준비하고 있다. 매일 우리의 루틴은 아직 약한 불 위에다 끓인 커피 두 잔과 함께 시작한다. 연기 때문에 생긴 두통을 커피가 누그러뜨려주길 바라면서. 그런 다음엔 장작을 실은 차를 찾아 동네 구석구석을 뒤져야 한다. 어떤 날은 차가 일찍 오는 바람에 우리처럼 늦게 도착하는 사람들 몫으로는 장작이 남아 있지 않다. 또 어떤 날은 차가 늦게 와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불길이 세지고 잔불이 퍼지면 요리를 시작한다. 숨이 다해가는 숯 위에 마지막으로 올려놓는 건 항상 찻주전자다.
불 앞에 앉아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지난날들이 기억나고, 우리가 옛날로 돌아갈 일이 있기는 할지 궁금해진다. 가끔씩 어머니와 나는 서로에게 이상한 질문을 던진다. “가스가 돌아오는 게 낫겠어, 아니면 먹을 게 다시 생기는 게 낫겠어?” 그렇게 말하고 우리는 웃는다. 우리는 그 두 가지 다 있어야 한다는 걸 잊어버렸다. 더 어이없는 건, 전쟁이 끝날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거다. 우리는 죽음이나 고통에는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버림받는 것에는 익숙해졌다. 지금 나누는 대화가 그 증거다. 그리고 우리가 예전에 삶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던 기억이 나서 웃을 때면, 어떤 눈물보다도 더한 고통을 몰고 오는 히스테릭한 웃음을 터뜨릴 때면 그 사실은 더욱 선명해진다.
점심 준비라는 전투를 벌일 때마다 나는 늘 똑같은 적인 불이 휘두르는 늘 똑같은 무기를 마주한다. 연기에 숨이 막히고, 눈은 쓰라려 눈물이 나고, 두 손은 장작과 숯 때문에 새까매지고 갈라져 있다. 이 장면은 계속 반복된다. 공부를 하기 전에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셔보겠다고, 뉴스를 읽기 전에 커피를 조금 데워보겠다고, 여전히 입에 안 맞는 통조림으로 요리를 만들어보겠다고 이 모든 걸 하는 것이다.
가장 힘든 건 심리적으로 치러야 하는 대가다. 점심을 먹고 나면 언제나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런 고생을 할 가치가 있었나? 콩 통조림을 먹었으니 이 모든 고생이 할 만 했던 건가? 커피를 데우는 데 45분이나 걸려야 하는 건가? 배고픈 게 더 괴로운가, 아니면 불 피우기가 남기는 이런 공허함이 더 괴로운가? 나는 꿈이 없다. 꿈들은 오래 전에 포기했다. 아마 꿈들이 플라스틱보다 빨리 타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불을 붙이는 데 플라스틱보다 낫기 때문이든지! 나는 삶 없이 텅 빈 존재다. 이 불로 인해 죽어간 사람들의 비명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 죽는 이유는 똑같지만 그들은 몇 분 만에 죽고, 나는 천천히 죽어간다. 나는 기력도 없이 텅 비어 있다. 불 때문에 일하거나 공부할 힘이 다 빠져나가 버렸다.
그러다 갑자기 그 모든 것을 비집고 차 향기가 끼어든다. 차는 나보다 더 살아 있다. 그건 강렬하고 아름다운 냄새를 풍기며 끓어오른다. 저주받은 불 냄새와 섞여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창백한 얼굴과 쑥 꺼진 두 눈을 한 나는 미움과 피로와 공허함으로 가득 찬 채 부글부글 끓고 있다. 나는 미소 짓는다. 죽음을 몰고 오는 미사일 소리가 아니라 한 잔의 차가 내 생각을 뒤흔든 건 처음이다.
왜냐하면 나는 결국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나는 진짜 질문들, 무시무시한 질문들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은 왜 그들이 이런 짓을 하게 내버려둔 걸까? 우리는 왜 돈이 있어도 가스를 살 수가 없을까? 이 세상은 왜 나의 도시가 불타고 사람들이 불타는 걸 보는 데 익숙해진 걸까?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정말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인간다움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작가 소개:
하산 아보 카마르는 팔레스타인의 작가, 프로그래머, 사업가이며 가자의 인도주의적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전통적으로 정치적인 서사와는 다른 방식의 서사를 써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렉트로닉 인티파다>, <알 자지라> 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학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증폭하고 봉쇄 아래 놓인 인간 삶의 섬세함을 조명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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