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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Project/니 비니! нi вiйнi! (전쟁 반대!)

우리는 웃어야 해서 웃는다

by 인-무브 2025. 11. 11.

우리는 웃어야 해서 웃는다

We Laugh Because We Must

 

에만 이드 Eman Eid

번역: 서제인

 

 

*원문 출처: https://wearenotnumbers.org/we-laugh-because-we-must

 

We laugh because we must - We Are Not Numbers

When we laugh in Gaza, it’s the kind of laughter that burns in our throats, hides our screams, and keeps us from unraveling.

wearenotnumbers.org

이 글은 올해 4월에 발행되었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많은 수의 당나귀를 동물보호 명목으로 압수해서 사람들의 이동이 더욱 힘들어졌으며, 바다에 들어가는 것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제 내 웃음소리는 나에게조차 낯설다.

 

웃음은 예전에는 단순한 것이었다. 친구가 농담을 했을 때 터져 나오는 즐거움의 표현이었고, 밥을 휘젓거나 설거지를 하고 계신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 부엌 벽에 부딪쳐 메아리치던 따스한 소리였다. 그때 웃음은 무언가 가벼운 것에서 나왔다.

 

이제 웃음은 살아남겠다는 우리의 의지에서 나온다.

 

가자에서 웃음은 날카롭고 아픈 무언가로 변해버렸다. 즐거움에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절망에서 나오는 것이 되어버렸다. 웃음은 누구도 견뎌 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겪은 다음 모든 게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해야 할 때 터져 나온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나는 웃으려다 목이 메기 시작했다. 이제는 가끔 숨이 막힐 정도다. 이건 트라우마가 낳은 웃음이다.

 

 

다크 유머

 

2024년 5월 5일, 정확히 새벽 3시 34분. 라파에서 우리 집 옆 건물에 공습이 닥쳤다. 이웃집 세 개 층이 땅으로 무너져 내렸다. 당시 우리 가족과 나는 한 방에서 자고 있었다.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히 기억나는 순간이다.

 

폭발 직전은 으스스하게 고요했다.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폭발이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았다. 잠에서 깨어 보니 이웃집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그 집의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폭발로 일어난 먼지가 허공을 가득 채워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다. 내 두 손이 겨우 보일 정도였다. 방 창문이 산산조각 났다. 우리는 겁에 질렸다.

 

그런 공포의 와중에, 내 여동생이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속삭였다. “이거 뭐야?”

 

“응, 그냥 에만 언니 생일이라서 축하하는 불꽃놀이야.” 오빠가 농담처럼 말했다. 우리 모두는 충격 속에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오빠의 대답이 웃겼던 건 그날이 실제로 내 생일이어서였다.

다음날 아침, 나는 sns에 공습 이후 우리 방을 찍은 동영상 하나를 올렸다. 그 밑에는 이렇게 적었다. “공습 발생시 적응하는 법 3단계: 1)일어나서 등에 묻은 돌 부스러기들을 털어내세요 2)매트리스와 담요를 붙잡아 들고 먼지를 턴 다음 다른 방으로 옮기세요 3)이제 다시 자면 돼요, 자기.”

 

가자에 사는 내 친구들 모두 웃음으로 반응했다. 내게 일어난 일이 웃기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견딜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아서 웃은 것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웃는 것뿐이니까.

 

내 친구 몇 명은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생일 축하해!” 상황이 너무나 어이없어서 꼭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건 행복한 생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그걸 알았다. 지난 내 생일들은 친구들이 모여서 선물을 주고받고, 간단한 케이크를 나눠 먹고, 행복한 삶을 위한 멋진 소원들을 빌면서 축하했었다. 이건 그런 생일이 아니었다.

 

가자 사람들은 이제 공습의 짙은 연기마저 갈라놓을 수 있는 유머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 유머는 그 정도로 어둡다.

 

 

당나귀 유머

 

전쟁 전에는 급한 일이 있으면 휴대폰으로 택시를 부르곤 했다. 그런 다음 몇 분만 지나면 에어컨이 나오는 택시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예전에 쓰레기를 치우던 방식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당나귀를 이용하는 것이다.

 

당나귀는 한때 가난의 상징이었다. 지금 당나귀는 우리의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휘발유는 귀하고, 디젤유는 비싸고, 도로는 폭격으로 움푹움푹 패어 있고, 자동차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수리할 엄두를 못 내거나 아예 없어졌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든 웃어 넘겨보려고 서로에게 농담을 한다. 가자에 “녹색 혁명이 일어났다”거나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전환하고 있는 거라고.

 

운이 좋다면 말이 끄는 수레를 타는 VIP스러운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말은 당나귀보다 훨씬 빠르다. 상황이 더더욱 어이없는 건 당나귀 수레를 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마치 스스로 왕이라도 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데이르 알발라에서 당나귀 수레를 타고 앉아 있었는데, 수레가 너무 자주 멈춰 서서 과연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있을까 싶었다. 당나귀가 똥을 누고 싶을 때면 수레는 멈췄다. 당나귀가 지쳐서 쉬어야 할 때도 멈췄다. 그리고 물론 손님을 더 태울 때도 멈췄다. 수레꾼은 아무리 손님을 태워도 성에 차지 않는 듯했다.

 

어느 지점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 수레에 올라탔다. 우리는 서로를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우리 둘 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이 상황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마주보고 히죽 웃은 다음 깔깔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죽음, 폭탄, 촌철살인 유머

 

지난 1년 반 동안, 우리는 새소리가 아니라 드론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는 일을 계속해 왔다. 우리는 더 이상 휴대폰에서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다. 사망자 명단을 확인할 뿐이다. 우리는 사실 잠을 거의 자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걸 “뉴 노멀”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거기 “노멀”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리고 휴전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아는 모든 단어를 통틀어 가장 부서지기 쉬운 단어, 휴전. 우리는 협상 소식을 더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소식은 너무 의미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협상이 새로 시작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거기에 어두운 유머를 덧씌운다. 어차피 협상이 흐지부지될 걸 알면서도, 막상 결렬되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한번은 인스타그램에서 화면을 스크롤하다가 또 다시 협상이 재개됐다고 알리는 포스팅을 봤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댓글들을 살펴봤다. 웃음 이모티콘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은 이랬다. “협상 재개된 걸 오사마 함단Osama Hamdan이 알기 전에 걔 인터넷 접속 끊어야 할 듯.” 이 댓글이 웃겼던 건, 하마스 고위 관계자인 함단이 새로운 제안에 반응할 때면 항상 “우리는 다음 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로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2025년 겨울 어느 날, 나는 친구인 탈라와 함께 데이르 알발라 근처 해변을 따라 걸었다. 우리는 계속 걸어 알카라라 항구에 도착했다. 데이르 알발라와 칸 유니스 사이에 있는 그곳은 우리 뒤쪽에 있는 텐트들이 만들어내는 혼돈을 보지 않고도 바다 풍경을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불길이나 미사일 냄새를 맡지 않고도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사치를 만끽할 수 있는 곳.

 

우리는 해변의 거대한 바위 위에 앉아 울고 웃으며 매일의 힘겨운 싸움들과 부서진 꿈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상황에서 명예롭게 벗어나는 방법이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문득 부조리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가자에서는 그 어떤 것에도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려야 하며, 죽음도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을.

 

이 세상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 헤매며 침묵과 백일몽에 잠겨 있는 동안, 친구와 나는 둘 다 핵폭탄을 떠올렸다. 이 끝나지 않는 비극의 마지막 해결책으로서의 핵폭탄. 한순간 아이러니한 유머에 가득 차서 우리는 동시에 말했다. “그냥 그걸 떨어뜨리고 이 코미디를 끝내버려!”

 

그게 얼마나 끔찍할지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게 한순간에 우리를 완전히 쓸어버릴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바로 그게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바로 그게 정확히 이스라엘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일, 다만 서서히, 모든 걸 지켜보지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 아래서 냉혈하게 저지르고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죽고 싶은 게 아니다. 우리를 계속 지워버리려 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며 1년하고도 반을 보내고 나니 뇌에 이런 종류의 생각들이 스쳐 갈 뿐이다.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지만, 그 웃음은 희망 없음에서 나온다.

 

 

나를 파괴하는 것을 농담으로 만들기

 

가자에서 우리가 웃음을 터뜨릴 때, 그 웃음에 우리의 목구멍은 타들어가고 비명은 덮인다. 그건 우리를 산산조각나지 않게 막아주는 웃음이다. 우리는 경솔한 게 아니다. 순진한 것도 아니다. 이건 고통이 변함없이 계속되고 슬픔이 달리 갈 곳이 없을 때, 우리를 천천히 파괴하는 것들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농담밖에 없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가 매일 겪는 현실은 소설보다 낯선 것이 되었다. 우리는 어두운 형태로 바꿔 놓은 희극을 살고 있다. 이것들은 농담이 아니다. 봉쇄 아래 놓인 삶, 절망과 유머가 손에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는 삶의 잔인한 아이러니다.

 

우리는 그걸 알지만, 그럼에도 웃는다.

 

웃어야 하니까.

 

이곳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작가 소개: 에만 이드는 가자에서 활동하는 스물두 살의 작가이며 집단학살 생존자다. 2025년 이스라엘의 가차없는 공격 속에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아랍어 번역 학위를 따냈다. 이야기하기에 대한 그의 열정은 이스라엘이 그와 그의 민족에게 저지르고 있는 범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언어의 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일에 초점을 맞춘 글을 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