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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Writing/인-무브 서평

상상의 채석장, '에이젠슈테인-벤야민 성좌(Konstellation)': 김수환, 『비교의 산파술: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 겹쳐 읽기, 문학과지성사, 2025.

by 인-무브 2025. 10. 19.

상상의 채석장[i], ‘에이젠슈테인-벤야민 성좌(Konstellation)[ii]:

김수환, 『비교의 산파술: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 겹쳐 읽기』, 문학과지성사, 2025.

 

조정훈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인 ‘비교의 산파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요컨대, 내게 필요했던 것은 단순한 연결과 대질의 작업을 넘어설 수 있는 어떤 것, 이를테면 외견상 결코 서로 연결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대상과 주제들을 다소간 ‘폭력적으로’ 연결시키고, 그와 같은 부딪힘이 만들어내는 새로움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기술이었다. 한마디로 내게는 ‘비교의 산파술(maieutics)’이 요구되었던 것이다.[iii](16)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의 흥미로운 교차점들, 저자 식으로 말하자면 ‘에이젠슈테인-벤야민 성좌’의 빛나는 지점들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왜 스스로 다소간 ‘폭력적’인 산파술의 조산사를 자처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두 인물이 상호 간에 “각자가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상대자(counterpart)(19) 였으리라는 강한 심증을 가지고 둘 사이의 지층을 탐구해가던 저자가,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이 생전에 단 한 차례도 겹쳐진 바 없다는 결론”(10)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두 인물 간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저자는, “두 사람의 본국에서의 행적뿐 아니라 해외에서의 활동 전체를 샅샅이 뒤지면서 접촉의 흔적을 찾아보려 애를 썼으나 끝내 그 둘을 직접 연결해주는 단서를 찾지 못했다.(10)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두 인물은 이미 둘 사이의 교차점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라는 지점 외에도, “내다보는 대신에 돌아보는 방식의 역사 구성, 다시 말해 현재에 입각해 미래를 전망하는 대신에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지향”(14)의 시간관 등 여러 지점에서 ‘겹쳐’보이는, ‘비교학적 조망’ 속에서 고찰할 필요성이 다분한 관계였다. 그렇기에 저자는 직접적인 연결의 부재라는 간극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목격한 두 인물 간의 공통성을 역설하기 위해 스스로 ‘비교의 산파술’의 조산사를 자처한 것일 테다. 

 그렇다면 이 책의 본 장들에서의 주장을 살펴보기에 앞서, 그 주장들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다음의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저자의 산파술로서의 방법론, 즉 다루는 대상들 간의 직접적인 연결성이 부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연결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대상과 주제들’을 자의적으로 엮어내는 방식은 어떤 방식으로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까? 산파술의 기원은 어디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선 앞서 언급한 벤야민의 역사철학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시간관, ‘현재에 입각해 미래를 전망하는 대신에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지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자신의 이전 저작에서 소개하는 구체적인 벤야민의 시간관은 다음과 같다. 

 

 “후기 벤야민의 역사철학에 따르면, 과거를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이 ‘원래 어떠했는가’를 인식하는 것과는 별 관계가 없다. ‘있었던 그대로’를 따르는 그런 방식은 과거와 현재를 선형적 사슬에 따라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며, 사실상 기만적인 각색일 뿐이다. 그 대신 벤야민이 주목하는 것은 ‘있었던 것’과 ‘지금’이 맺는 변증법적 관계다. 문제는 어떤 순간에 역사적 주체에게 예기치 않게 섬광처럼 나타나는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를 붙들 수 있느냐이다. ‘지금 시간(Jetztzeit)’을 구성하고자 하는 주체가 (과거를 내던져버리기는커녕) 지배 계급이 지휘하고 있는 경기장 한복판에서 ‘과거 속으로 뛰어드는 호랑이의 도약’을 이루어야만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iv]

 

 다시 말해 저자가 분석하는 벤야민의 시간관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의 직접적인 연속성이 아니라, 과거가 일시에 ‘섬광’처럼 맺는 현재와의 관계, 그럼으로써 일시적으로 연결되는 미래와의 관계이다. 요컨대 이러한 관점에서 시간이란 선형적인 구조의 일직선이 아니라, 각각의 지점들이 서로 중첩하고 교차되는 지층들이다. 그러므로 ‘지금 시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과거도, 마치 서로 떨어져있는 별들이 하나의 별자리로 병치되듯 현재와 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러한 시간관은 구체적인 비평적 방법론으로서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한 대답은 사실 이미 저자의 이전 저작혁명의 넝마주이』에서 일찍이 드러난 바 있다. 저자는혁명의 넝마주이』에서 벤야민의모스크바 일기』에서의 소비에트의 흔적들을 추적하다 돌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혹시 이 모든 것(소비에트의 흔적들 - 필자)모스크바 일기』에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그 ‘이후’의 회고적 시선을 통해 거꾸로 ‘기원의 자리’에 재기입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는 이러한 “이른바 ‘기원’의 문제와 관련된 중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프로이트의 사후성(Nachträglichkeit) 개념을 소개한다.[v]

 

 “프로이트의 사후성 개념에 따르면, 기원을 기원으로 만드는 것은 그것의 반복, 그러니까 이미 한 번 일어난 사건의 두 번째 도래다. 처음 일어난 사건은 억압되거나 망각되어 잠재화된 상태로 머물게 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과 조건 하에서 변형되고 가공된 채로 반드시 되돌아 온다. 첫 번째 사건에 기원의 자격을 부여해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차적 도래를 통한 사후적 보충이다.”[vi]

 

 프로이트의 사후성을 비평적 방법론으로 활용한 사례의 역량은 일찍이 여러 비평가들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미술비평가 할 포스터Hal Foster의 작업이다. 포스터는 자신의 저작실재의 귀환(1996)』에서 “네오-아방가르드(1960-70년대)는 역사적 아방가르드(1910-20년대)를 무효화하는 것이기보다 오히려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기획을 처음으로 -이 처음이라는 것은 이론적으로 재차 끝이 없는 것이다- 실행한 것이다.[vii]라고 말한다. 이는 두 아방가르드의 관계를 ‘지연된 작용’ 속에서 전개된 것으로 보는 관점으로, 네오-아방가르드를 이미 실패한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무의미한 반복으로 보는 뷔르거의 기존 관점[viii]에 맞선다. 포스터는 “아방가르드 작업은 역사적 효과나 완전한 의미를 그 시초의 순간에 결코 드러내지 못한다.[ix], “한때 일부가 억압된 적도 있지만, 아방가르드는 기어이 복귀했고, 또 이런 복귀는 계속된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로부터 복귀한다. 바로 이러한 것이 아방가르드의 역설적인 시간성이다.[x]라며 억압되거나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던 전위적 시도가 뒤늦게 재등장할 때, 그것은 오히려 최초의 시도에 기원의 위상을 부여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때 포스터가 끌어오는 개념이 바로 프로이트의 ‘사후성’인데, 앞서 서술했듯 이는 어떤 사건이 사후의 반복과 재현 속에서 비로소 의미 있는 기원으로 재구성된다는 논리이다. 이미 실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역사적 아방가르드는 ‘과거 속으로 뛰어드는 호랑이의 도약’과도 같은 포스터의 논리에서 새롭게 그 의미를 획득하고, 네오-아방가르드라는 현재와 공명하며 그 생명과 현재성을 새로 부여받는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런 점에서 저자가 자처한 ‘비교의 산파술’ 역시 결코 단순히 임의적인 대상 결합의 기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네오-아방가르드가 사후적 반복을 통해 역사적 아방가르드를 다시 태어나게 했듯이, 저자는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만남을 ‘지금 시간’에 이르러 주선하며 두 사유의 지층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현재성을 산파한다. 그러나 포스터와 저자의 방법론이 완전히 동일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포스터가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를 시간의 축 위에서, 곧 지연된 작용과 사후적 귀환이라는 시간적 메커니즘으로 연결했다면, 저자는 그 논리를 계승하되 공간의 차원을 새롭게 도입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을 (소비에트와 바이마르 공화국이라는) 공간의 축 위에서, 직접적인 만남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비교학적 시선 속에서 교차시키고자 한다. 저자의 산파술은 기본적으로 ‘지금 시간’의 저자가 이끌어내는 것으로 시간적 사후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나, 그것에 더불어 당대의 공간이라는 새로운 접합 지점의 축을 도입하므로 포스터의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물론 두 경우 모두 공통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지점들을 ‘폭력적으로’ 연결하고, 그 충돌에서 새로운 기원을 끌어내는 사후성-산파술의 논리이다. 

 

좌: 발터 벤야민, 우: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이러한 산파술로서의 비평적 방법론을 사용함으로써 저자가 기대하는 것은 명확하다. “이 책에서 시도하는 ‘상호조명을 통한 겹쳐 읽기’는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을 각기 따로 다루는 연구들에 비해 그들의 창작과 사유가 갖는 특징과 의의를 좀더 신선하고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으리라는 것”(19)이다. 저자는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익숙한 초상과는 다른, 그들의 낯설고 새로운 얼굴이 드러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떤 매개를 통해 벤야민-에이젠슈테인 성좌를 구성하고 있을까? 저자가 두 인물 사이의 만남을 주선하는 장치로 선택한 것은 ‘유리 집(Glass house), ‘미키마우스’, ‘찰리 채플린’ 세 개의 매개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세 매개의 지점에서 상호교차하는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의 성좌를 분석하기에 앞서 그는 <들어가는 말>에서 두 인물의 공통된 지인, 브레히트(Bertolt Brecht)와 트레티야코프(Sergei Tretyakov)와의 관계를 서술한다. 

 먼저 소개되는 것은 벤야민의 연인 아샤 라치스(Asja Lãcis)를 경유한 벤야민과 브레히트 사이의 우정의 역사이다. 저자는 브레히트를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을 잇는 첫 번째 고리로 제시하며, 그가 없었더라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5) 생산자로서의 작가(1934) 같은 텍스트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평가한다. 특히 후자의 글에서 등장하는 트레티야코프는 두 인물을 연결하는 두 번째 고리로 제시되며, 저자는 벤야민이 그의 ‘작동적 작가’ 개념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본다. 나아가 에이젠슈테인 역시 브레히트, 트레티야코프와 긴밀히 교류했으며, 트레티야코프의 각본으로 연극을 연출하고 이론적 저술을 함께 시도하는 등 세 인물의 관계망이 비교적 명확히 드러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서로를 바라보는 에이젠슈테인과 브레히트

 

 <들어가는 말>은 저자가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 사이의 직접적인 교류를 찾아보려 애썼던, 일종의 탐사 후일담과도 같다. 그리고 그 탐사는 그 교류를 찾아내지 못했으므로, 아마 실패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들어가는 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입증 가능한 인물들과의 흥미로운 연대기가 아니라, 저자의 상상력으로 접합되는 연대기 이면의 교차지점, 지층들이다. 예컨대 저자는 1932년 브레히트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당시 촬영한 한 단체사진을 보고, “브레히트가 베를린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아샤가 소개해준 벤야민과 열띤 토론을 시작한 해가 1929년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이 사진을 찍던 중에 그들이 벤야민을 입에 올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32)며 당시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가능성들을 가늠해본다. 그리고 물론 이 가늠은 사후성을 기반으로 한 저자의 산파술 덕분일 것이다. 

 

체스를 두는 벤야민과 브레히트

 

 저자는 이 탐사기의 말미에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의 그런 역사적 만남은 없었던 편이 더 나았다는 생각이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남은 두 저명인사의 뒤늦은 조우가 이 책에서 보게 될 순수하게 추론적인(conjectural) 대면에 비해 더 흥미로웠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동시대인이었던 두 사람은 후대의 역사가 만들어주는 사후의 더 큰 만남에 어울리는 인물들이었다”(38) 말한다. 이 말은 저자가 이 책에서 수행하려는 작업의 의의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실제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던 두 인물의 만남을 역사적 사실의 차원에서 복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부재를 사후적으로 산파해냄으로써 더 큰 의미의 조우로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저자가 이 책의 본문에서 펼쳐 보이고자 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러한 산파술은 성공하고 있을까? 저자는 산파술을 통해 어떤 의미들을 새로 발굴해내고 있을까? <유리 집의 문화적 계보학: 영화-문학-건축>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1장은 ‘유리 집’이라는 매개를 러시아 계보학, 독일 계보학의 관점에서 분석하며 영화, 문학, 건축 등의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접합적 사고를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는 먼저 미완의 프로젝트인 에이젠슈테인의 <글라스 하우스> 프로젝트를 다루며, 그 실패의 원인보다는 “유리 집이라는 토픽 자체를 둘러싼 역사적 함의, 그에 얽힌 문화적 신화의 두께”(48)에 주목한다. 

 저자가 계보학의 출발점으로 삼는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의 ‘수정궁(Crystal Palace)’이라는 기념비적 유리 건축물은 러시아 문학의 맥락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19세기 러시아의 급진적 인텔리겐치아였던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Nicolai Chernyshevsky)무엇을 할 것인가』(1863)에서 이를 합리적 유토피아의 상징으로 공상한 반면, 도스토옙스키는지하로부터의 수기』(1864)에서 그 획일성에 저항하며 인간의 비합리적 잉여를 옹호했다. 독일식 계보는 SF소설가 ‘파울 셰어바르트(Paul Scheerbart)’로부터 출발한다. 셰어바르트는레사벤디오』(1913)이라는 환상소설에서 유리로 된 집을 상상했는데, 이는 내부가 투명하게 보인다는 점 외에도 ‘그 위에 아무런 흔적을 남지기 않는’, 곧 ‘아우라’가 부재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벤야민의 흥미를 이끈다. 셰어바르트는 벤야민에게서 ‘흔적의 제거자’로 등장하는 셈인데, 이는 ‘아우라 없는’ 예술을 향한 길일뿐 아니라 그곳에서 태어날 완전히 ‘새로운 인간’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1851년 런던 만국 박람회의 수정궁(Crystal palace)

 

 이 지점에서 저자는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라는 인물을 불러낸다. 브루노 타우트는 1914년 쾰른 박람회에서 셰어바르트가 꿈꾸었던 ‘유리 집’을 실제로 구현한 건축가이다. 타우트의 ‘유리 집’은 낙원으로서의 정원을 연상시키는 흐르는 물로 구현한 수정궁의 유토피아적 흔적을 가지며 러시아 계보와 교차한다. 또한 곳곳에 드러나는 우주 공간의 초월적이고 영속적인 속성을 건축 공간에 반영하고자 했던 흔적을 가지며 셰어바르트와 벤야민의 우주에 대한 관심과 교차한다. 저자는 타우트의 건축물을 벤야민이 천문관 가는 길(1928)에서 말한 “공동체 속에서 도취의 상태로 우주를 경험”한다는 사유와 접속시키며, 이후 ‘집단적 신경감응’이나 ‘제2의 자연’ 개념으로의 이행을 예고하는 계기로 읽는다. 그런데 저자가 밝히듯이, 사실 타우트를 벤야민이 알고 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벤야민이 경험과 빈곤을 썼던 해인 1933, 타우트는 이미 나치를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셰어바르트와 타우트를 경유해, 유리 집을 매개로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을 겹쳐 읽으려 했을까? 알렉산더 클루게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적 잔해의 무더기 속에 파묻혀 있는 최고의 텍스트들, 그 잔해를 파헤치다 보면, 그 텍스트의 작성자가 사용했던 분석적 장비와 기계들뿐 아니라 그 아래에 흐르고 있는 더 깊고 광대한 흐름의 ‘지층’을 볼 수 있게 되”(82)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가 1장에서 보여주는 것은 러시아 계보와 독일 계보를 넘나들며 유리 집의 문화적 전유를 추적하는 일이다. 그 목적은 단순히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의 직접적인 접점을 찾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유가 놓여 있던 시대적 두께와 교차하는 지층 속에서 드러나는 더 깊은 맥락들을 밝혀내려는 데 있다. 

 

브루노 타우트 '유리 집'의 외관과 실내장식

 

 그러나 1장에서 한편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타우트와 에이젠슈테인 사이의 교차점이다. 타우트와 에이젠슈테인 사이에서는 벤야민에서와 같이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에이젠슈테인 박물관에 남겨져 있는 아카이브 자료들로 보았을 때 타우트의 활동과 관련된 자료들을 그가 읽었으리라는 것을 추정해볼 수 있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 인물 간의 공통된 관심사, 지향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는 것, ‘유리 집’의 흥미로운 문화적 전유의 지층들을 탐사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성과이다. 그러나 저자가 그의 ‘산파술’을 발휘해 ‘에이젠슈테인-벤야민 성좌’를 그려냈다고 할만큼의 두 인물의 ‘겹쳐 읽기’를 시도했는지에 대한 여부에는 의문이 남는다. 이 장에서 저자의 주된 관심은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이 ‘유리 집’이라는 매개에서 교차하는 지점을 분석하는 일이 아니라, 러시아, 독일 각각의 문화적 계보, 그리고 벤야민이 ‘유리 집’ 계보의 독일식 라인과 공명하는 지점들을 추적하는 일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산파술의 역량이 비교적 모호하게 발휘된 1장과 달리 2장에서는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 사이의 공통된 지향과 세부적인 차이에 대한 본격적인 ‘겹쳐 읽기’가 시작된다. 2 <에이젠슈테인의 디즈니와 벤야민의 미키마우스>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월트 디즈니와 미키마우스는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의 사유가 겹치고 갈라졌던 또 하나의 교차점이다”(84). 두 인물은 어떤 맥락에서 겹치고, 또 한편으로는 겹치는 가운데 어떤 맥락에서 차이를 발생시키는 것일까? “두 사람의 고유한 스타일과 상이한 지향점을 드러내는 좋은 기회”(88)로서 디즈니와 미키마우스는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의 맥락에서 어떻게 전유되었을까?

 두 사람이 디즈니와 미키마우스를 바라볼 때의 공통적인 지향은, 그것에서 ‘전()인간적 유토피아’를 감각한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벤야민은 경험과 빈곤(1933)에서 미키마우스를 “일단 판을 엎어버리는 데서 시작했던 위대한 건설자(Konstrukteur)들의 대열”(벤야민 1933,  106쪽에서 재인용)에 합류한 존재로 보았다. ‘집단적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인 미키마우스는 벤야민의 맥락에서 영화가 수행하는 일종의 ‘정신적 예방접종’처럼 오히려 ‘더 나아간 야만주의’를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더 나쁜 결과를 피하기 위해 차라리 앞질러 감염되는 편이 낫다는 역설적인 통찰의 입장에서, 그는 “경험의 빈곤은 그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데로 이끈다”며 처음부터 땅부터 다시 일구어내 새로운 토양에서 시작하는 긍정적 의미의 야만을 강조했다. 또한 벤야민이 미키마우스에 관심을 가졌던 다른 이유로는 ‘기술적인 기적들’ 다시 말해 “자연과 기술, 원시성과 안락함은 여기서 완전히 하나”(벤야민 1933, 109쪽에서 재인용)가 되는 지점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2판에서 자연과 인류의 어울림을 지향하는 ‘제2의 기술’이라는 벤야민의 개념을 고려한다면, 미키마우스 형상 속에 투사된 그의 유토피아적 지향을 가늠할 수 있다. 

 에이젠슈테인 역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본질을 원형질(plasma)[xi]의 개념을 통해 설명하며, 그것을 되찾은 낙원, 즉 논리와 지성, 경험을 통해 족쇄가 채워지기 이전의 상태와 관련짓는다. ‘근본문제’라고도 일컬어지는 회귀의 충동에 천착한 에이젠슈테인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의 발화에서 성숙한 문화의 원리에 이르기까지 완강히 살아남아 작동하는 ‘감각적 사고의 초기 형식들’의 생명력이었다. 저자는 “후기의 에이젠슈테인에게, ‘초기의 사고 과정 형식들로 인위적으로 퇴행’하는 이런 현상은 거의 ‘예술’ 자체의 동의어로 간주될 만큼 지대한 의미를 지닌다”(114)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은 각각 미키마우스와 디즈니를 통해 고정된 질서 이전의 원초적 상태, 전인간적 유토피아의 잠재력을 사유했다는 점에서 교차한다. 에이젠슈테인의 퇴행의 개념이 벤야민의 원시사회적 유토피아를 향한 ‘집단적 소망 이미지’와 공명하는 지점을 갖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계단과 프로펠러로 변신하는 미키마우스의 신체

 

  한편 두 사람의 미키마우스와 디즈니에 대한 관심은 2장의 부제 ‘태곳적 원형 혹은 포스트휴먼적 예형’이 암시하듯 문제의식이 가리키는 시간적 지향에서 차이를 보인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벤야민이 미키마우스 형상에서 현존하는 세계를 파괴하면서 도래(시켜야)할 미래, 이를테면 예측 가능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포스트휴먼적인 예형을 보았다면, 가소성과 무한 변신을 특징으로 하는 디즈니의 세계 속에서 에이젠슈테인은 발전의 단계마다 반복적으로 퇴행하는 모종의 원초적 사태, 말하자면 태곳적 원형질로 대변되는 존재의 본연적인 전인간적 상태를 보았다”(122)

 

다시 말해 벤야민이 미키마우스 형상에서 ‘옛것과 새것의 뒤섞임’을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혁명적 잠재력을 보유한 것으로 보았다면, 에이젠슈테인은 그 미래를 새로운 시간에서가 아닌 인류가 이미 상실해버린 태초의 낙원에서 찾았다. 그에게 디즈니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매개가 아니라, 잃어버린 낙원을 순간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되찾을 수 있는 매개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적 지향에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인물이 디즈니와 미키마우스에서 감지한 가능성은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각각 그 도래할 시간을 미래와 과거로 부르는 방법만이 달랐을 뿐, 원과거, 전인간적 형태로부터 혁명을 추동하는 파괴적인 힘을 감지했다는 점에서 두 인물이 지녔던 유사한 감각은 분명 겹쳐 보인다. 저자는 두 사람의 사유가 각각 ‘이전(pre)’과 ‘이후(post)’를 향해 서로 반대편으로 나아갔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사유가 결정적인 지점에서 교차하는 두 개의 광맥처럼 드러날 때”라는 것을 강조한다. 

 3장에서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의 사유를 교차시키는 매개는 채플린이다. 저자는 채플린이라는 인물을 경유해 영화, 웃음, 아이 등에서 두 사유가 만나는 지점을 발굴하며 다시금 산파술적 접합을 시도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3장 초반의 논의, 즉 벤야민이 영화라는 형식에서 발견한 ‘집단적 신경감응’이라는 모티프와 메이예르홀트로 대표되는 소비에트의 ‘생체역학(biomechanics)’ 사이의 교차라기보다는, 중후반의 논의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는 ‘웃음’과 ‘아이’라는 매개이다. 그 이유는 “몽타주와 기계주의라는,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그런 면에서 쉬운 길인 전자의 연결고리에 비해, 웃음이라는 후자의 고리는 몇 단계의 매듭을 풀어야 하는, 하지만 그렇기에 예기치 못한 접점과 차이들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더 어려운 길이기 때문”이고, 나아가 웃음과 아이라는 매개는 2장에서 드러난 두 인물의 유토피아적 소망을 다시 연장하고 확장하는 축 위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찰리 채플린

 

 먼저 에이젠슈테인이 채플린에 대해 쓴 글인 찰리 어린아이(1942)에서 드러나는 그의 채플린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채플린의 특징 중 하나는 머리카락이 희끗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삶에 대해 ‘어린아이의 관점’과 사건에 대한 즉흥적인 지각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덕의 족쇄’로부터의 자유와, 다른 이들을 소름끼치게 만드는 것들을 우습게 여길 줄 아는 그의 능력이 여기서 기인한다. 성인에게서 발견되는 이런 특성을 유아증(infantilism)이라고 부른다. 채플린의 희극적 구성들은 대개 이런 유아적 방법론에 기초하고 있다.”(에이젠슈테인 1942, 152에서 재인용)

 

이 대목에서 드러나는 것은 어김없이 드러나는 에이젠슈테인의 ‘감각적 사고의 초기 형식들’에 대한 관심이다, 이는 “도덕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운 유아적 상태에 대한 관심으로 2장의 디즈니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 있다. 저자가 지적하듯 “생의 후반기에 이를수록 점점 더 강렬하게 원형적·원시적 태고의 형식, 곧 인류의 유아적 단계에 집착”(156)했던 에이젠슈테인의 면모가 여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에이젠슈테인에게 유아기로의 퇴행은 단순한 뒷걸음치기가 아닌, 인간의 ‘자유’를 향한 갈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에이젠슈테인의 유아기에 대한 관심은 벤야민과는 어떻게 접합될까?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에이젠슈테인이 천착하는 ‘유아성’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퇴행적 욕구를 드러내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에이젠슈테인의 오랜 또 하나의 과제, “논리와 감성, 학문과 예술을 갈라놓는 기존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변증법적 통합, 그리고 그 새로움을 담지하게 될 ‘미래의’ 영화를 위한 지향”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벤야민이 의외의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아동극의 프로그램(1929)에서, “진정으로 혁명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이들의 제스처에서 울려 나오는 도래하는 것의 은밀한 신호이다”(벤야민 1929, 174쪽에서 재인용)라고 썼듯, 혁명을 추동하는 힘의 기원을 아이들의 몸짓 속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벤야민에게 아이란 인류가 언어의 발달과 문명화의 과정 속에서 상실한 우주적 감응을 여전히 선명히 드러내는 존재이며, 그러므로 ‘도래하는 것의 은밀한 신호’를 울리며 현존하는 세계 바깥의 ‘또 다른 세계’를 약속하는 형상들이었다. ‘자연과 인류의 어울림’의 세계를 이상향적 미래로 삼았던 그에게, 아이는 자연과의 교감능력을 뜻하는 미메시스의 재능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중요하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제2의 기술’, ‘집단적 신경감응’ 등을 모두 ‘어울림’을 훈련시키는 일로 보았던 벤야민이 아이들에게서 미래의 가능성을 보았으리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러므로 벤야민이 아이들에게서 읽어낸 미래의 가능성과 에이젠슈테인이 태고적 유아적 상태 속에서 구상한 ‘미래의 영화’는 서로 교차하며 이해될 수 있다. , 아이들의 몸짓이 내포한 잠재적 혁명성과 우주적 감응은, 에이젠슈테인이 추구한 변증법적 통합으로서 ‘미래의 영화’의 실현 가능성을 가늠해주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에이젠슈테인과 채플린

 

 1장에서 저자는 ‘유리 집’이라는 매개로 러시아와 독일을 가로지르는 문화적 전유의 궤적을 탐사하는데 집중했다. 물론 클루게의 말을 빌린대로 명확한 교차지점을 찾아내기보다 그 이면의 ‘지층’들을 탐사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이 책이지만, 한편으론 에이젠슈테인과 벤야민의 ‘성좌’가 구성되고 있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2장과 3장에 이르러서는 그 탐사의 초점이 점차 두 인물의 내적 사유 구조로 이동하며, 디즈니와 미키마우스, 채플린, 다시 말하자면 ‘원형질’과 ‘아이’라는 주제를 통해 그들의 공통된 문제의식과 지향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두 인물은 모두 미키마우스와 디즈니에서 원초적 형태의 혁명적 가능성, 즉 문명적 외피를 벗겨내는 파괴적이고 야만적인 힘을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통찰은 그들에게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의 산파술은 2장과 3장에 이르러 비로소 온전히 작동하며, 두 인물의 사유를 나란히 세움으로써 그들이 공유한 세계 인식의 감각과 그 차이의 결을 보다 깊이 있게 드러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장과 5장은 각각 소비에트 영화사에서 소리의 도입, ‘미래의 영화’를 향한 에이젠슈테인의 영화 형식적 여정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주된 문제의식인 ‘벤야민-에이젠슈테인 성좌’의 구성에서 한발짝 떨어진 챕터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저자 역시 책의 서문에서 4장은 별도의 주제임을 밝히고, 5장은 이 책의 ‘서론’격으로 읽히기를 요청한다.

 구체적으로 4장은 소비에트 영화에서 소리라는 기술 도입의 시기가 소비에트의 문화혁명기, 즉 아방가르드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의 이행기와 정확하게 겹친다는 것에 주목한다. 미국에서의 소리의 도입을 미학적 역사가 아닌 산업적 역사로 바라볼 필요가 있듯이, 소비에트에서 역시 그것이 야기한 미학적·산업적 변화를 초과하는 정치적 함의가 존재한다고 보아야한다는 것이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당대 몽타주 이론가들의 소리 도입에 대한 우려이다. 그들에게 소리는 관객을 “파편적 이미지들 사이에서 그것들 간의 간격을 스스로의 내적인 말로 메꾸면서 적극적으로 의미를 구성해내는 참여자로부터, 스크린으로부터 직접 들려오는 외적인 말을 통해 그것이 제공하는 말끔한 내러티브에 그저 몸을 맡기는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축소”(194)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사후성’을 기반으로한 ‘산파술’을 시도해보자면, 동시대의 급속도로 변모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 능동적 인식이 결여된 수동적 소비에 대해 다시 묻게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유의미하다. 

 5장은 에이젠슈테인의 영화 <10>을 중심으로 내러티브나 편집을 넘어서는 ‘사물’의 위상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를 객체지향 존재론, 사변적 실재론, 신유물론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 사유의 흐름 -사물의 위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재평가하려는 경향-과 나란히 읽을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다시금 저자가 요약한 벤야민의 역사철학적 통찰, 곧 “새것의 출현에 수반되는 유토피아적 이미지가 언제나 ‘원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복원의 형식을 띤다”(112)라는 문장을 복기해봤을 때, 100여년의 시차를 둔 오늘날 다시금 복귀하고 있는 사물의 문제는 과거와 현재를 매개하는 중요한 사유의 장으로 자리 잡는다. 

  4, 5장은 전체적인 구성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에이젠슈테인-벤야민 성좌’라는 축에 직접적으로 속하지 않는, 다소 주변적인 장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은 한편으로 저자의 기획이 지닌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는 징후로 읽힐 수도 있다. ‘산파술’이라는 방법론은 본질적으로 서로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상적 계보나 역사적 장면들을 사후적으로, 때로는 ‘폭력적’으로 매개하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은 창조적인 재맥락화의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동시에 자칫 임의적인 결합이나 과도한 해석으로 비칠 위험을 내포한다. 특히 4·5 장의 존재는 이러한 우려를 더욱 가시화시키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이 장들은 저자의 산파술이 지닌 섬세함을 드러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사후적으로 단절된 사유를 재조립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대화를 현재 속에서 성사시키는 일은 단순한 해석의 차원을 넘어서는 고도의 실험적 작업이기 때문이다. 

 다시금 이 책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저자가 어떻게 ‘비교의 산파술’을 꿈꾸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죽은 자들이 전해주는 과거의 유산이란 결코 그들이 남긴 답변이나 해답 그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교과서에서 만나게 되는 그런 개념과 용어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것들을 내놓기까지 밟아갔던 실험과 사유의 여정이다. 결과물로서의 개념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품었던 최초의 문제의식, 그것을 둘러싼 기대와 우려, 희망과 좌절, 어쩔 수 없는 포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고수하려 했던 모종의 내기…… 이것들이야말로 후대가 상속받아야 할 진정한 유산이다.”(21)

 

그러므로 이처럼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바랐던 것이 어느 아래에 흐르고 있는 더 깊고 광대한 흐름의 ‘지층’을 보는 것, 그와 같은 ‘광맥’을 탐사하기 위한 것임을 고려한다면, 4장과 5장 역시 그 탐사를 위한 중요한 매개로 충분히 제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저자의 저작들에서도, 지금까지 보여준 흥미롭고 치밀한 사유의 종횡무진이 더욱 풍부하게 펼쳐지는, 또 한 번의 귀감이 될 ‘비교의 산파술’을 기대한다. 


 

[참고문헌]

 

김수환, 『혁명의 넝마주이: 벤야민의모스크바 일기』와 소비에트 아방가르드』, 문학과지성사, 2022.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 선집2: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최성만 옮김, 도서출판 길, 2007.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 선집5: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폭력비판을 위하여; 초현실주의: 외』, 최성만 옮김, 도서출판 길, 2008.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 선집6: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 번역자의 과제: 외』, 최성만 옮김, 도서출판 길, 2008.

할 포스터, 『실재의 귀환』, 이영욱 외 옮김, 경성대학교 출판부, 2010.

 

 



[i] 저자가 최초로 염두에 두었던 책의 제목인데, 저자는 이 표현을 알렉산더 클루게의 다음 글에 나오는 것으로서 저자의 의도를 잘 설명해주는 적절한 문구처럼 생각되었다고 밝힌다. “나는 자본을 영화화하려 한 에이젠슈테인의 원대한 계획을 상상의 채석장 같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 에이젠슈테인과 같은 위대한 거장의 계획을 적절한 방식으로 다루는 일은 고대의 유적지를 발굴하는 작업과 유사하다.(알렉산더 클루게,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 9쪽에서 재인용)

[ii] 저자는 이 성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의 문헌학적 발굴 작업은 예상치 못했던 여러 부산물을 낳았다. 좋은 고고학적 보고서란 ‘발굴된 물건들의 출처뿐 아니라 그것들이 발굴되기 위해 탐색되었던 이전의 지층들에 대해서도 보고’하기 마련이라는 벤야민의 말처럼, 그것은 애초 목표했던 결과물 대신 그것 주변에 묻혀 있던 많은 것들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의 역사적 배경을 이루는 그 발굴의 부산물을 나는 ‘에이젠슈테인-벤야민 성좌’라고 이름 붙인다.(11)

[iii] 저자는 산파술이라는 개념에 대해 클루게의 다음 글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다. “출산 때 태아의 목이 졸리지 않게 하려면 조산사가 제때 태아의 위치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조산사는 ‘폭력(gewalt)을 가해야 ’ 한다. 그렇다고 해서 힘으로 태아를 잡[아 돌리]는 방식을 고려하는 법은 없을 것이다. 대신 그녀는 ‘대상’의 연약한 사지와 기민함에 상응하는 악력을, 즉 출산 도중에 정교하게 아이를 붙잡는 방식을 사용한다. [] 아기가 제대로 산도(産道)를 빠져나오도록 하려면 그녀는 아기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끔 하는 방식으로 붙들어야 한다. 조산사가 가하는 이러한 폭력은 해머나 낫이나 괭이나 톱을 쓰는 폭력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알렉산더 클루게,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 15쪽에서 재인용)

[iv] 김수환, 혁명의 넝마주이: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와 소비에트 아방가르드, 문학과지성사, 2022, 40.

[v] 같은 책, 219, 220.

[vi] 같은 곳.

[vii] 할 포스터, 이영욱 외 옮김, 실재의 귀환, 경성대학교 출판부, 2010, 77.

[viii] 페터 뷔르거, 아방가르드의 이론(1974)

[ix] 같은 책, 76.

[x] 같은 책, 77.

[xi] 에이젠슈테인은 원형질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매혹의 전제는, 영원히 고착된 형식이라는 제한의 거부, 즉 골화(骨化, ossification)으로부터의 자유, 역동적으로 어떤 형태든지 취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원형질성(plasmaticity)’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특정한 외양을 취하기는 하지만 마치 태곳적 원형질처럼 고정된 형식을 갖지 않은 채로 진화론적 사다리를 따라 동물적 삶의 모든 형태를 취할 수 있다.(에이젠슈테인, 디즈니, 99쪽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