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홀의 영화적 협업과 이론의 시각화
- 아이작 줄리언의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중심으로 -
Stuart Hall’s Cinematic Collaboration and Visualization of Theory
- Focusing on Isaac Julien's <Frantz Fanon: Black Skin, White Mask> -
전솔비(서교인문사회연구실, 시각문화연구자), 이하림(시각문화연구자)
*이 글은 <문화와융합> 제45권 7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인용 시 해당 호를 참고바랍니다.
1. 들어가며
“계급투쟁의 개념을 오직 혁명이 일어나는 바리케이드의 순간에만 맡겨두기보다는 저항을 문화적 영역에서 활동하고, 문화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지속적 실천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화려한 정치적 작업은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작업입니다”(Hall, 2016/2021:348-349).
1983년 강의록 ‘문화, 저항, 그리고 투쟁’에서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이 남긴 말이다.[1] 문화연구자 스튜어트 홀은 이론을 만들어 내는 학문적 활동과 ‘바리케이드’로 상징되는 현실의 사회정치적 운동 이외에도 저항과 투쟁의 중요한 방식으로 ‘문화적 영역’, ‘문화적 가능성’을 강조한 바 있다. 문화가 지닌 잠재력과 변화의 가능성을 옹호하는 비평가적 입장을 드러내는 이러한 태도는 인종과 정체성에 대한 관심 속에서 다양한 예술적 협업을 시도했던 1980년대 이후 스튜어트 홀의 이력과 공명한다. 문화연구 내에서 주로 다루던 대중문화, 하위문화 영역에서 방향을 틀어, 문화적 재현의 최전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순수예술의 영역까지 연구 대상을 넓힌 홀은 예술가들과 작품 안팎에서 교류하며 문화적 가능성을 실험했다고 알려져 있다(Jordan, 2016; Mcrobbie, 2016; Mercer, 2015; Rosenberg, 2018).
이론과 현실의 만남, 작업과 비평의 연결, 학문과 예술의 접점이 가능했던 계기로서 1980년대 이후 홀의 영화적 협업이 남긴 함의에 주목하며, 본 연구는 파편적인 협업의 아카이브 속에서 특히 밀도 있게 교류했던 영화제작자 아이작 줄리언(Issac Julien)과의 공동작업에 주목한다. 홀은 당시 새롭게 등장하는 젊은 흑인 예술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이어갔는데, 그중 ‘이론의 시각화’에 대한 관심을 공유한 줄리언의 작업 곳곳에 홀의 이론적 사유가 흥미롭게 나타나 있다. 본고는 이론에 대한 아이작 줄리언의 탐구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Frantz Fanon: Black Skin, White Mask)>(1995)을 분석하며 문화연구자와 영상예술가가 공동작업과 상호영향 속에서 이론을 시각화한 방식을 살피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먼저 스튜어트 홀과 아이작 줄리언이 영화적 협업으로 만나게 된 맥락을 살펴본 후, 재현과 인종에 관한 홀의 주요 이론적 논지를 검토한다. 이어서 정체성의 정치학 속에서 차이, 자기반영성, 맥락, 그리고 접합을 강조했던 홀의 논지를 바탕으로, 아이작 줄리언의 영화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분석한다. 이 과정을 통해 영화가 시선과 응시의 문제, 경계와 틈새의 위치성을 표현하는 장면이 홀의 이론적 사유와 만나는 지점을 들여다본다. 궁극적으로 본 연구는 ‘이론의 시각화’라는 기획이 당시에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이해해보며, 오늘날 문화연구와 예술비평의 영역에서 여전히 지니는 함의를 사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 1980년대 영국흑인예술운동과 영화적 협업
버밍엄 대학의 현대문화연구센터(CCCS)에서 소장직을 그만두고 1979년 성별, 직업, 연령 등의 제한 없이 누구에게나 열린 교육기관이었던 개방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던 홀은 1980년대부터 학계에서의 활동과는 조금 다른 활동들을 이어갔다. 그것은 자메이카 출신 영국 유학생, 디아스포라 지식인, 이민자, 흑인으로서의 자신의 주변적 위치를 그리고 그러한 주변성이 갖는 시각의 이점을 자각하며, 영국 흑인 예술가들과 만났던 비평가, 큐레이터, 협업자로서의 삶이다. 이는 당시 흑인인권운동의 전개와 영국흑인예술운동의 흐름, 제도적 변화 속에서 흑인 예술가들이 예술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흑인 주체의 표현이 두드러지고, 생산물의 대상이 아닌 생산의 주체로서 흑인의 목소리가 다양해지는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스튜어트 홀이 예술가들과 만나고 글을 써온 과정은 기존의 문화연구자들이 하던 실천 방식과 구별되는 독특한 전환점이자 그가 이론 속에서 강조하던 유기적 지식인의 모습을 현실과 예술의 영역까지 직접 적용한 실천의 사례로 평가된다. 그것은 1980년대 당시 새롭고 파격적으로 등장하던 인종 재현의 작업들에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이론적 사유가 시각화, 현실화, 구체화되는 지점들을 찾고, 이론적 질문들을 예술로 확인하던 적극적인 활동이었던 것이다.
1980년대 영국 흑인 영화제작자들은 채널 4(Channel 4), 런던광역의회(Greater London Council, GLC), 영국 영화 협회(British Film Institute, BFI), 국가 예술 위원회(National Art Council) 등 여러 공공기관의 지원으로 다양한 독립영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것은 그전까지 동등한 기회를 얻기 위해 폭동과 소요, 거리 투쟁으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던 흑인인권운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끊임없는 요구 끝에 획득한 권리였다(Julien, Mercer, 1988:2). 이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1980년대 초중반부터 ‘흑인 독립 영화(Black Independent Film)’가 하나의 문화 운동으로 등장했고 여러 영화 콜렉티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2] 한편 영화는 스튜어트 홀이 패디 화넬(Paddy Whannel)과의 공저 『대중 예술(The Popular Arts)』(1964)에서도 다루고, 1960-1970년대에 걸쳐 카리브 영화제에 관여하기도 하는 등 학문적 여정의 초기에서부터 관심을 놓은 적이 없는 매체였다. 스튜어트 홀은 레스 백(Les Back)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가장 반응했던 시각 매체는 영화였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한다(Hall, Back, 2009:661). 제임스 프록터는 1980년대부터 홀이 흑인 예술가들의 등장에 따른 변화를 이론 속에 발 빠르게 수용했으며 기존의 홀의 ‘인종’ 연구가 미디어의 재현 대상이자 생산물로서의 흑인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면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흑인 문화적 생산물 그 자체, 특히 미학에 주목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고 분석한다(Procter, 2004:129).
아이작 줄리언은 1960년 영국에서 태어나 흑인, 동성애자 정체성을 기반으로 이민과 인종주의, 탈식민주의, 성적 정체성, 흑인 남성의 욕망을 복합적으로 다루는 작업들을 진행해왔다. 홀은 아이작 줄리언을 여러 정체성이 동시에 시각적 프레임 안에 등장하던 1980-1990년대 흑인 디아스포라 예술의 중요한 순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당시 영국에서 작업하던 흑인 예술가들에게 홀의 이론적 사유는 기존의 재현 방식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작업에 참조할 수 있는 중요한 목소리였는데, 특히 이론에 관심이 많았던 아이작 줄리언은 스튜어트 홀이 자신의 작업 세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 “뮤즈”이자 “멘토”였다고 말한다(Julien, 2015). 당시 아이작 줄리언의 작업은 경제악화, 동성애혐오, 인종주의가 혼재된 영국 사회의 분위기에 대항하여, ‘보기(look)’라는 행위성, 청년문화/하위문화, 흑인의 몸, 남성성, 동성애적 욕망에 관한 질문들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영화의 최전방에 있었다(McRobbie, 2016:673). 줄리언의 작품은 무엇보다 문화이론의 레퍼런스를 그 안에 잘 감추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었다. 조나단 카하나는 이미지의 형식적, 기술적, 제도적 조건을 통해 문화적 정체성은 항상 아이작 줄리언의 영화 제작에서 전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가 이론가인지 아니면 무빙이미지의 실천자인지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Kahana, 2005:19).
홀은 아이작 줄리언의 거의 모든 작업에 함께하며 제작 과정에서 영향을 주고받았다. 홀은 〈기억의 열정(Passion of Remembrance)〉(1986) 제작 단계에서 그와 처음 만나게 된다. 이후 작가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의 삶을 할렘 르네상스 속에서 다룬 다큐드라마 <랭스턴을 찾아서(Looking for Langston)>(1989)를 만들 당시에는 영화에서 해설을 맡고, 흑인 퀴어의 육체가 장면 안에서 시각화되는 방식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노예의 역사를 다루며 흑인 남성이 가진 욕망의 복합성을 시적으로 표현한 <안내원(Attendant)>(1993)에서는 직접 미술관 관객 역할의 배우로 출연하며 자신이 가진 공적 이미지와 영화 속 흑인 남성의 극적 이미지를 중첩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블랙의 어두운 이면(The Darker Side of Black)>(1994)의 제작 관련해서는 자메이카에서 종교의 역할에 대해 캐서린 홀(Catherine Hall)과 나눈 토론으로 의견을 공유한다. <자본론(Kapital)>(2013)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의 강연에 참석해 질문을 던지는 역할로 등장했다. 이렇듯 홀은 아이작 줄리언과 30여 년간 교류하며 토론하고 작업에 코멘트를 남기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협동 작업을 이어갔으며, 무엇보다 작품 속에 출연하며 스크린에서 목소리와 얼굴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했다.
3. 스튜어트 홀과 접합의 정치학
스튜어트 홀의 글들은 다소 분산되고 반복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이전에 쓴 글이 수정과 편집을 거쳐 다시 다음 글에 반영되곤 했기 때문이다. 스튜어트 홀의 글은 서로 다른 글들 속에 등장하는 비슷한 표현과 문장, 예시들로 반복되는 지점들을 짚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장에서는 인종과 정체성, 재현에 대한 스튜어트 홀의 논의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홀이 인종을 연구하며 본격적으로 정체성과 문화적 재현에 초점을 맞춘 건 1980년대이지만, 1970년대에도 이미 미디어 연구 속에서 인종주의에 대한 관심은 시작되고 있었다. 「인종차별과 그에 대한 반응(Racism and reaction)」(1978)과 같은 시기에 쓰인 『위기 관리하기(Policing the Crisis)』(1978)를 포함해 1970년대 후반에 나온 글들은 분명 1972년 핸즈워스 사건[3] 이후 일어난 영국사회의 파장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것은 인종주의가 욕망과 혐오를 통해 작동하는 방식을 영국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전후의 도덕적 공황 속에서 역사적으로 추적해나가는 실천적인 연구이기도 했다. 당시 조금씩 터져나오던 흑인의 목소리 속에서 홀은 ‘인종’에 대한 흑인 공동체의 의식이 점차 투쟁과 운동으로,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저항으로 변형될 것을 예감한다.
3.1. 정체성의 정치학
인종과 정체성을 둘러싼 문화적 재현에 대한 스튜어트 홀의 연구는 198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는데 핵심은 규정되고 통일된 정체성 정치에 대한 재고이다. 홀이 여러 글 속에서 반복하며 다듬어간 새로운 ‘정체성의 정치학(politics of identity)’의 요지는 차이, 자기 반영성, 맥락 의존성이라고 할 수 있다. 1983년 일리노이 대학에서 열린 강의에서 홀은 영국에 살던 30년간 자신이 호명되던 방식(“흑인”, “이방인”, “니그로”)과 유년 시절 고향인 자메이카에서 호명되던 방식(흑인이 아닌 존재로서의 “유색인”)을 함께 언급한다. ‘유색인’과 ‘흑인’이라는 언어는 ‘차이와 등가의 체계’ 내에서 작동하는 것이지 고정된 의미는 아니라고 하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이 용어(흑인)를 비환원주의적인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이 이러한 장을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의 관념론적 교환, 오직 담론 내에서만 일어나는 투쟁, 나아가서 특정한 무의식적 과정이 유아기에 해결되는 방식에 의해 영구히 고착화되는 것을 넘어서는 차원으로 나아가게 해준다고 주장하고 싶었습니다”(Hall, 2016/2021:262-263). 1970년에는 흑인이라는 단어를 둘러싼 부정적인 의미에 긍정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했던 역사적 순간도 있었으나 홀은 이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 즉 흑인이라는 용어를 고정된 위치에서 탈각시키는 반본질주의적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영향받은 계급환원론적, 결정론적 이데올로기 개념으로부터 거리를 두며 홀은 이후 「인종과 종족성 연구에서 그람시의 중요성(Gramsci’s Relevance for the Study of Race and Ethnicity)」(1986)이라는 글에서도 그람시의 이데올로기 개념을 인종,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분석으로 확장하길 시도한다. 홀은 그람시가 “사고와 사상의 ‘주체’를 구성하는 자아나 정체성의 ‘다원성’을 인정”했다는 점을 발견하며 ‘인종주의’가 “전적으로 이데올로기적 현상은 아니지만,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차원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말한다(Hall, 1996/2018:517-527). 인종이 생물학적 특징이 아니라 인종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결과물이며 문화적으로 새롭게 구축될 수 있는 것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홀은 인종과 정체성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확장해가고 있었다. 1980년대를 지나며 홀의 논지는 더욱더 문화의 정치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게 된다. 시기적으로 가장 활발했던 1980년대 흑인예술운동의 중심에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투쟁과 시위, 소요만으로 바뀔 수 없는, 긴 시간이 필요한 전략을 예술 작품에서 발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일하고 통일된 정체성에서 유동적이고 다면적인 정체성으로 이동하는 입장의 변화는 1980년대 후반부터 홀의 글에서 더 적극적으로 표현되는데 「최소한의 자아(Minimal Selves)」(1988)는 본질주의적인 것이 중시되는 ‘정체성 정치’로부터 새롭고 다면적인 방향으로의 ‘정체성의 정치학’을 강조하는 독창적인 글로 평가받는다. 이 글의 일부는 나중에 <새로운 종족성>과 「오래된 정체성과 새로운 정체성, 오래된 종족성과 새로운 종족성(Old and New Identities, Old and New Ethnicities)」(1991)으로 확장되어 정체성에 관한 홀의 가장 핵심 논지로 반복된다. 홀은 이 글에서 ‘정체성의 정치학’이 가진 세 가지 특성으로 ‘차이, 자기반영성, 맥락의존성/우연성’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체성의 새로운 개념을 보는 일은 정치학의 형태를 재개념화하는 일을 숙고하게 한다. 그것은 차이의 정치학, 자기반영성의 정치학, 상황에 따라 열려있으나 끊임없이 작동하는 정치학이다”(Hall, 1988:45). 여기서 ‘차이’는 흑인/백인과 같이 인종을 이항대립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과 관련있으며 이는 홀이 자신의 고향인 자메이카에서는 피부색을 표현하는 셀 수 없이 많은 갈색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 했던 것과 연결된다. ‘자기반영성’ 또한 여러 글에서 홀이 자신의 유년시절 경험과 일화를 예시로 들며 발화자의 특수성을 강조했던 것, 정체성은 고정된 위치와 입장에서만 발화될 수 있다고 했던 것과 관련된다. 끝으로 ‘맥락의존성/우연성’에 대한 강조는 시간과 공간, 환경과 상황, 사건과 맥락에 따라 정체성 및 정치적 입장은 계속 변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이렇게 정체성의 정치학을 설명하며 홀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의 문장을 덧붙인다. “무한한 분산의 정치학은 결코 정치학이 아니다”(Hall, 1988:45). 홀은 흑인(Black)을 둘러싼 부정적인 이미지로부터 대안을 제시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강조하지만, 다면적인 정체성으로 열린 정치학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의미가 끝없이 확장되는 정체성도 경계한다. 정체성과 인종에 관하여 홀은 자신의 입장이 어느 한 쪽에 고정되는 것을 경계하며 동시에 역사적 국면 속에서만 비평적으로 발화하고 있었다.
3.2. 재현의 맥락과 접합
결국 정체성과 재현에 대한 홀의 핵심은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선 우선 멈춰야 하지만, 말하기 위한 위치는 고정되지 않고 다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 대한 강조는 필연성이 없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재접합될 수 있는 ‘접합의 정치학’으로 연결된다. ‘흑인 필름과 영국 시네마(Black film/British Cinema)’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새로운 종족성(New Ethnicities)」(1988)은 일년 후 코베나 머서가 편집한 동명의 책을 거쳐 『스튜어트 홀: 문화연구에서의 비평적 대화(Stuart Hall: Critical Dialogues in Cultural Studies)』(1996)에 재수록된 글이다. 이 글은 당시에 변화하고 있는 재현의 지점들을 짚어내며 흑인 예술가들의 작업을 다양하게 맥락화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흑인 이성애 남성으로 대표되는 고정된 흑인성에 균열을 내고 여성, 퀴어, 게이, 레즈비언 등 새로운 성적 정체성의 자리를 영화 안에 위치시키는 것에 관심을 두던 아이작 줄리언은 자신이 말할 자리를 찾았던 결정적인 계기로 이 글을 꼽기도 한다(Julien, 1994:484). 영화 분석을 바탕으로 쓰인 이 글은 문화적 재현을 통해서만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홀의 논지가 잘 드러나고 있다. ‘정체성 정치’에서 ‘정체성의 정치학’으로의 이동은 ‘재현의 관계’를 둘러싼 투쟁에서 ‘재현 자체의 정치학’으로의 이동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홀은 재현의 권리에 대한 흑인의 접근성을 확보하고, 긍정적인 흑인 이미지를 제시하며 기존의 대상화된 속성에 저항하는 것이 그간 전개된 문화정치의 전략이었다면 이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다고 언급한다. 그것은 인종과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가 뒤엉킨 재현의 정치이다. ‘재현의 정치’에서 동일시와 타자성은 굉장히 복잡하게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홀은 인종이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구축되는 것을 뜻하는 개념으로 ‘종족성(Ethnicities)’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홀이 말하는 종족성은 “모든 담론이 장소, 위치, 상황에 기반하며, 모든 지식이 맥락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뿐 아니라, 주체성과 정체성 구성에서 역사, 언어, 문화의 역할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Hall, 1996/2018:540). 종족성 개념을 통해 홀은 정체성 정치와 정체성의 정치학을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다시 변할 수 있는 유동적이고 맥락적인 것으로 위치지을 수 있었다.
「새로운 종족성」의 후반부에서 홀은 “흑인의 경험을 디아스포라의 경험으로 자각하고, 이 경험이 흔들어 놓기, 재결합, 혼종화, ‘잘라 붙이기’ 과정, 요컨대 그 경험이 함축하는 문화적 디아스포라화에 초래하는 여러 효과를 자각하는 일”이 새로운 재현의 정치에 필요하다고 말한다(Hall, 1996/2018:543). 홀은 디아스포라 개념을 하나의 미학으로 지칭하는데 이 입장은 이후 첫 번째 카리브해 영화제에서 발표된 글 「문화적 정체성과 영화적 재현(Cultural Identity and Cinematic Representation)」(1989)에도 이어진다. 이 글은 새롭게 등장하는 흑인 영화 내부에서 이전과는 다른 재현 방식과 시각적 형식을 이끄는 것이 무엇인가를 디아스포라 역사 안에서 질문한 중요한 글로 평가받으며, 이후 「문화적 정체성과 디아스포라(Cultural Identity and Diaspora)」(1990)라는 글로 수정되기도 했다. 여기서 홀은 카리브해 지역 예술가들과 영국 흑인예술가들의 영화 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정체성의 표현과 영화적 형식 및 방법론들을 디아스포라 미학에서 관찰하고 있음을 표명한다. 홀은 여기서도 본질주의적인 정체성과 문화적인 정체성 중에서 어느 하나를 진보적이라고 보지 않고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모두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홀의 글에는 재현 내부의 복잡성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홀의 글은 맥락과 상황에 맞추어 조금씩 수정되어 왔기에, 이를 하나의 이론적 개념이나 최종적인 입장으로 정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홀은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함을 얘기하면서도, 이때 새로운 단계는 이전 단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전선에서 투쟁”하는 장을 열게 된 것임을 강조해왔다(Hall, 1996/2018:533). 이때 ‘두 개의 전선’은 이론을 분석하는 학문적 역할과 그것을 다시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동시에 하는 실천성을 강조한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을 염두에 둔 홀의 이중적 표현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에 대한 입장이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지는지, 어떤 구체적인 역사적 국면 속에서 해석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홀의 표현대로라면 “접합의 정치학(a politics of articulation)”이자 접합의 방법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Hall, 1988:45). ‘articulation’은 홀에 따르면 영국에선 ‘언어 구사, 표현’의 뜻과 ‘관절, 연결’의 뜻을 포함하는 흥미로운 이중적 의미의 단어이다.[4] 1985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과 일리노이 대학에서의 대담 기록에서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홀은 트럭의 예를 드는데, 그것은 운전실과 트레일러가 서로 연결되지만 다시 끊을 수도 있는 구체적인 고리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홀에 따르면 “접합이란 어떤 조건 아래 두 개의 다른 요소를 서로 통일시킬 수 있는 연결 형태”이며, 이것은 “항상 필연적이거나, 결정된, 절대적인, 필수적인 것이 아닌 연결”이다(Hall, 1986/2018:179).
이처럼 접합으로 인한 통일성에는 필연성이 없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재접합될 수 있다. 이때 홀이 강조했던 ‘접합(articulation)’은 정체성이라는 복잡한 개념에 관한 이론화의 한 방법이자 동시에 그가 현실과 예술, 그리고 학문을 오가며 영화적 협업과 같은 방식으로 표명했던 실천의 방법이기도 했다. 홀은 유연한 연결 속에서 차이와 통합, 구조와 행위를 동시에 보고자 하는 입장과 공적 지식인으로서의 발언을 중시하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며 접합의 의미를 지적 여정 속에서 체화해 나간다. 현실과 예술 작업의 변화하는 맥락 속에서 다듬어졌던 이론화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글은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이자 시대와의 멈추지 않는 대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 홀이 강조했던 ‘정체성의 정치학’ 및 ‘재현의 맥락과 접합’에 대한 이론적 사유가 아이작 줄리언의 영화 속에서 어떻게 재현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스튜어트 홀이 자신의 글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하며 다양한 이론들을 재조합해온 사유의 흐름은 학문 외적인 작업과의 관계 속에서 더 풍부하게, 그리고 입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4.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Frantz Fanon: Black Skin, White Mask)>(1995)(이하 <프란츠 파농>)은 탈식민주의 이론가이자 반식민주의 운동가였던 프란츠 파농에 관한 영화이다. 프란츠 파농은 1925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섬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났다. 마르티니크는 비교적 인종 갈등이 심한 지역이 아니었기에, 파농은 자유프랑스군을 위한 전투 자원병으로 참전하며 마르티니크 밖으로 나가면서야 인종주의의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그전까지 자신이 조국으로 여겼던 프랑스와 유럽 제국이 행하고 있던 식민주의의 참혹성을 목격하고 그 속에서 자신은 ‘니그로’일 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이경원, 2015:29-36). 이후 파농은 마르티니크에 돌아와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다시 유학을 떠난다. 그는 이 시기에 프랑스에서 접한 당시 유럽의 동시대 사상들을 맥락적, 비판적으로 독해하면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해 1952년 첫 저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출간한다. 아이작 줄리언의 영화에서도 언급되듯,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본래 ‘흑인의 소외에 관한 시론’이라는 제목으로 쓰였다. 여기서 시론은 ‘에세이(essay)’로 파농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쓴 글이라는 걸 제목에서부터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파농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식민 상황에서 흑인 정체성의 특성과 인종주의의 지배역학을 정신분석학적 차원에서 독해한다. 그는 정신분석학을 자신의 방식으로 역사적 맥락 안에 도입시키며, 이를 통해 정신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은 분리할 수 없고 정체성은 식민주의와 같은 사회적 상황에 의해 형성된다는 의견을 밝힌다(이상길, 2019:34). 아이작 줄리언은 1996년이라는 국면에서 이 영화를 통해 스튜어트 홀의 ‘정체성의 정치학’과 ‘접합의 정치학’을 1952년 파농의 목소리로 중첩시켜 발화하고 있다.
아이작 줄리언의 <프란츠 파농>은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재독해하며 그의 학자로서의 삶뿐 아니라 이후의 저서인 『알제리혁명 5년』,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과 투쟁가로서의 삶까지도 아우른다. 파농의 흑인 정체성에 관한 사유가 스튜어트 홀을 포함한 여러 예술가, 지식인들에게 인종과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참고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아이작 줄리언은 동시대적 맥락에서 파농을 재조합한다. 영화는 스튜어트 홀의 인터뷰를 포함하여 마리즈 콩데(Maryse Condé),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프랑수아즈 버기스(Francoise Verges), 호미 바바(Homi Bhabha)와 같은 작가, 이론가, 알제리혁명에 참전했던 여성군인, 파농의 가족, 친척, 친구의 인터뷰가 프란츠 파농의 삶과 이론적 사유에 대한 다면적인 주석으로 달리는 형식이다. 프란츠 파농의 삶과 파농이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 기록한 목소리들은 파농을 연기하는 배우를 통해 전달되고, 그에 관한 일화와 주변인들의 기억, 그에 대한 연구자의 해석, 뉴스릴과 같은 아카이브 푸티지로 교차된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아이작 줄리언의 <프란츠 파농>은 스튜어트 홀의 이론적 사유를 반영하여 인종과 정체성을 재현하는 문제의식을 ‘시선’, ‘경계’에 대한 장면을 통해 구현해나간다.
4.1. 정체성의 정치학: (재)구성하는 시선
“눈은 단순한 거울이 아니라 교정시키는 거울이다. 눈은 우리의 문화적 오류를 교정해줄 수 있어야 한다”(Fanon, 1952/2022:196).
차이, 자기반영성, 맥락의존성을 강조하는 홀의 ‘정체성의 정치학’의 핵심은 다양한 정체성도 임의로 하나의 입장에 고정되어야 발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홀이 자신이 쓰는 글 속에서 경험과 기억을 반영하여 흑인에 대해 발화했던 것과 연결된다. 이러한 이론적 사유를 반영하듯 아이작 줄리언은 영화에서 ‘보기’에 대한 문제가 언급될 때마다 그 위로 항상 홀의 목소리를 얹는 방식으로 연출한다. 그렇게 시선에 대한 파농의 일화와 이론적 사유들은 홀의 해설과 나란히 놓인다. 시각성에 대한 파농의 사유는 파농의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의 모습이 교차되며, 마르티니크에서 프랑스로 이동하며 다르게 체험하는 시선의 경험으로 드러난다. 이때 시각성은 이미지의 세계에서 흑인이 비가시화되는 문제를 지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흑인을 비인간화(depersonalize) 하는 시선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즉 흑인은 유럽이라는 무대 위에서 ‘보이지 않음’의 영역에 위치하지만, ‘(비인간으로서) 보임’의 영역에 위치하기도 하기에 이러한 기묘한 시각성은 식민주의 상황 속에서 인종화되어 있는 흑인 주체의 존재성을 끊임없이 재구성한다.[5] 시각성과 인종주의의 관계는 영화에서 ‘눈’의 이미지와 눈이 가리키는 시선의 방향을 통해 반복적으로 형상화된다. 줄리언의 영화 <프란츠 파농>은 현실에서 인종 정체성이 시선을 통해 구성되고, 다시 시선을 통해 해체 및 재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하며, 의도적으로 여러 시선이 오가는 장면들을 배치하고 있다.
영화의 부제 ‘검은 피부, 하얀 가면’과 파농이 쓴 동명의 책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 영화는 ‘시각성’을 반인종주의와 탈식민주의를 성찰하는 중요한 문제로 다룬다. 핼 포스터에 따르면 ‘시각성(visuality)’은 신체적, 생리학적인 감각작용으로서의 시선(sight)인 ‘시각(vision)’과는 구분되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사실로서의 시선을 의미한다. 하지만 시각과 시각성은 자연과 문화처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시각 또한 사회적이기도 하며, 시각성 또한 신체적일 수 있는데 이 둘의 차이는 지배적인 시각 체제 안에서 구조화되고 맥락화되기 때문이다(Foster, 2012:7). 시각문화의 역사 속에서 근대의 주체는 특정한 시각성을 하나의 본질적인 시각으로 자연화하면서 배제와 은폐, 차별을 만들어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인종 정체성과 재현에서도 시각성의 문제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영화라는 시각 매체는 ‘보는 대상’, ‘보는 자’, ‘보이는 자’의 복잡한 관계를 성찰하게 하고, 시선의 존재 방식, 가능성, 역할을 역사적으로 새롭게 구성하게 한다(하선규, 2021:194).


이후 파농이 프랑스에 있을 때의 일화를 다룬 장면은 폭력적인 시선으로 흑인을 비인간화하는 식민주의의 현실을 보여준다. 유학을 위해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파농은 자신이 유학생으로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유럽인들은 그를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보았고, 그는 이 경험이 자신을 파괴시켰다고 회상한다. 이때 파농의 일화는 스튜어트 홀의 목소리로 서술되는데 스튜어트 홀 또한 여러 글에서 자신이 처음 영국에 도착했을 때 자신을 보는 시선에 대한 경험을 언급한 바 있다. 홀은 파농의 글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파농의 글을 해설하는 홀의 목소리 위로 흑인이 “무섭다(frightened)”고 말하는 백인 아이의 목소리가 반복해서 울려 퍼지고, <그림 1>처럼 프랑스 거리의 백인 행인들이 카메라의 렌즈를 또렷이 쳐다보는 장면과 그러한 시선을 받아들이는 파농의 얼굴이 <그림 2>와 같이 빠르게 교차된다. 이 장면은 백인이 흑인을 자신들과 다른 타자로 인식하고, 그 시선을 받는 흑인은 백인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식민화된 대상으로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한다는 파농의 사유를 설명하고 있다. 인종화된 식민주의 안에서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how they ‘look’ at him)를 통해 흑인은 ‘비인간’으로서의 자신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렇듯 백인의 시선을 통해 흑인의 인종적 정체성이 구성될 때, 눈은 식민주의 상황에서 거울로서 작동한다. 파농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중 “검둥이와 정신병리학” 장에서 특히 인종차별이 시각 언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오래된 시선의 역사 속 여전히 끝나지 않는 재현의 투쟁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프란츠 파농>에서 아이작 줄리언은 거울로서의 눈이 지닌 시선의 폭력성을 가시화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에서 ‘눈’은 한 주체가 정체성을 구성하게 하는 식민주의의 폭력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기존의 식민화된 시각을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림 3>처럼 영화에는 인물이 카메라를 정확하게 바라보며 관객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렌즈를 겨냥하는 눈들 중 대부분은 극중 파농의 것이다. 과거 흑백 사진 속 파농의 두 눈 위로 인터뷰와 드라마가 오버랩(Overlap)되거나, <그림 4>처럼 알제리전쟁의 기록 사진 위로 파농을 연기하는 아역, 청년 배우의 두 눈이 클로즈업되어 오버랩되는 식이다. 무엇을 바라보는가,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를 생각할 때, 이때의 두 눈은 앞서 파농이 말한 ‘교정하는 거울’로 이해해 볼 수 있다. 파농의 눈은 식민주의의 참상과 알제리 전쟁을 똑바로 보고 있고, 더욱이 카메라 맞은편에 앉아 있는 관객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프란츠 파농>은 파농이라는 극중 주인공의 시선에 관객을 이입시켜 식민화되고 인종화된 주체로서 비가시화되고 비인간화된 흑인성을 사유하게 함과 동시에, 관객들이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게 하여 파농을 마주하는 관객 자신의 위치성을 자각하게 하고 있다. 이때의 관객은 1950년대에 쓰인 파농의 책에서라면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도 포함한다.[6] 그리고 영화가 만들어진 1990년대의 관점에서라면 인종과 계급, 성정체성 등이 복잡하게 교차된 여러 주체들을 아우를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의 ‘응시(gaze)’를 이후 페미니즘 영화 이론가들이 남성적인 시선, 즉 서구 백인 남성의 관점으로 몰입시키는 장치라는 이유로 비판한 것과 비교해본다면, 이 영화는 백인 남성이 (비인간으로) 바라보는 대상을 관객이 함께 바라보게 되는 영화라기보다는 흑인 주체가 바라보는 관객인 ‘나’ 자신의 위치를 상기하게 되는 영화에 가깝다. 이 대목은 영화에 대한 인용구로 시작하는 이 영화의 앞부분과도 연결된다.
“나는 나 자신을 보지 않고는 영화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나는 나를 기다립니다.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에 나는 나를 기다립니다(I cannot go into a film without seeing myself. I wait for me. In the interval, just before the film starts, I wait for me).”

<프란츠 파농>은 인종주의와 시각성, 정체성과 재현을 다루는 영화임에도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파농의 문장으로 영화를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장면들 속에서 영화라는 시각매체와 ‘나’ 사이의 거리를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그림 3>처럼 배우가 화면 바깥에서 관객에게 말을 걸고 반복해서 응시하는 연출은 영화의 물질성과 매체성을 부각시켜 낯설게 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또한 <그림 5>처럼 유년시절의 파농과 청년시절의 파농이 영사기 옆에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장면의 반복은 영화라는 재현물을 생산하는 자리에서 재현의 관계와 재현의 정치학을 성찰하는 주체의 모습을 이미지화한다. 파농의 시선이 닿는 방향에 영화가 상영되고 있고 그 방향에 관객의 자리가 있음을 추측하게 하며, 영화의 자리와 현실의 자리는 나란히 중첩된다. 이 장면은 홀이 문화적 재현, 문화적 가능성에 힘을 실으며 반영으로서의 재현물이 아닌, 현실을 만들어내는 재현물로서의 영화를 강조했던 목소리와도 공명하고 있다. 홀은 정체성과 디아스포라에 관한 여러 글에서 언급했듯 “우리가 어떻게 구성되며 우리 자신은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자신을 재현하고 상상하는 방식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했다(Hall, 1996/2015:564). 이렇듯 파농의 눈을 통해 관객은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의 역사를 정확하게 ‘본다(look)’. 그리고 자연화된 시각성을 간파하고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4.2. 접합의 정치학: 경계에서 말하기
홀의 이론적 입장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발화의 고정점 또한 맥락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홀이 강조한 접합의 정치학을 염두한다면, 푸티지가 재조합되는 방식 속에서 차이가 어떻게 통합되고 다시 열리는지 이해해볼 수 있다. <프란츠 파농>은 파농에 대한 기록 자료와 이탈리아 극영화 <알제리 전투>(1965), 뉴스릴 등의 아카이브 푸티지, 파농 주변 인물들과 관련 이론가들의 인터뷰, 파농의 과거를 연기한 드라마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고 이러한 특이한 구성으로 인해 ‘다큐드라마(docudrama)’라는 장르로 분류된다. 아카이브 푸티지와 인터뷰, 드라마로 이루어진 영화의 세 부분은 서로 겹치고 충돌하며 시간적, 공간적 층위를 다양하게 만들어낸다. 아이작 줄리언은 지속적으로 ‘경계’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간과 공간에 따라 신체가 위치되고 탈구되는 과정에 주목해왔다(Kahana, 2015:19).[7] 이 영화의 물질성 또한 아이작 줄리언이 주목한 경계에 대한 감각과 공명한다. 흑백 사진과 영상들은 과거에서 온 것이지만 인터뷰는 현재 촬영된 것이고, 배우의 연기는 현재의 표정과 움직임을 통해 과거를 상상하게 한다. 또한 이 각각의 재료들은 마르티니크, 알제리, 프랑스 등 다른 국가에서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상이한 시간과 공간에서 온 이미지들이 오버랩되거나 곧이어 교차되며 영화의 신체성은 과거와 현재, 서로 다른 국가 중 그 어디에도 영원히 고정되지 않는다. 홀의 ‘새로운 종족성’을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구성 속에서 파농이 남긴 의미는 영화의 상황과 맥락에 맞춰 형성되는데, 그러한 의미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가 이 영화의 사운드적 요소이다. 1930년대 전후의 파리에서 활동한 마르티니크 출신 가수 레오나 가브리엘(Leona Gabriel)의 목소리가 음악으로 삽입되며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는 여러 인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프란츠 파농이 남긴 대부분의 책은 자신의 목소리를 다른 이가 받아 적게 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선언문이자 시, 외침, 비명이자 독백과도 같은 파농의 글은 원본이었던 목소리에 담긴 감정과 힘이 전달하는 생생한 효과이다.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에 이미 ‘말’이었던 문장들의 울림을 현재 위에 되살리기 위해 파농 역의 배우 콜린 살몬(Colin Salmon)은 마치 한 명의 관객을 위한 공연처럼 카메라를 정확히 응시하며 말한다. 그는 과거를 단순히 재연하기보다는 자신의 음성으로 파농의 목소리를 다시 읽어내며 1990년대 영국이라는 배경 위에서도 여전히 울림이 있는 문장들을 동시대를 향해 낭독한다. 또한 스튜어트 홀, 호미 바바 등의 이론가들이 파농의 사유에 공적 맥락을 덧붙이고, 파농의 지인들이 파농과 관련된 일화를 회상하며 사적 맥락을 덧붙이는 방식도 중요하다. 이러한 구성은 이 영화가 파농이라는 과거의 인물을 현재 속에 재위치시키기 위해 오늘날의 새로운 정체성들을 발화의 자리에 집합시켰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시간과 공간의 층위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고 해서 이 작품에서 정체성이 표현되고 영화의 신체가 위치하는 곳이 현실 공간, 현실 시간과 유리된 채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아카이브 푸티지와 인터뷰, 드라마가 결합되어 만드는 영화의 신체는 앞서 홀이 말한 접합의 운동과 궤를 같이한다. 홀이 강조했듯 접합은 맥락 이동을 염두하면서도 역사적인 국면을 놓치지 않는 연결의 전략이다. 모순적인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접합’은 열려있으면서 동시에 닫혀있다. 파농에 관한 무빙이미지들은 INA(Institute National de l’Audiovisual) 아카이브에서 발견되었는데 처음 발견되었을 때 이 이미지들은 식민주의 프랑스, 영국 남성들의 목소리 보이스 오버와 함께 있었다고 한다. 알제리전쟁에 관한 프로파간다 필름들도 마찬가지로 이미지 위에 이미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적 해설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작 줄리언은 푸티지의 속도를 느리게 하거나 보이스오버를 지우고, 이미지 기울기를 수정하거나, 사운드트랙을 다시 만드는 등 재맥락화, 재의미화(re-signify)를 통해 현재적으로 독해하고자 하였다(Fusco, 1997:57). 아이작 줄리언은 알제리전쟁의 기록 사진들을 아카이브 푸티지로 사용하면서 비가시화된 인종적, 식민적 타자를 파농의 모습을 통해 구체적으로 역사 안에 위치시킨다. 파농이 서구의 정신분석학을 도입하면서도 탈역사화된 정신분석학과는 거리를 둔 채 역사적 맥락 안에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려고 했던 점을 주지한다면, 영화 <프란츠 파농>의 형식은 역사화를 위한 일시적 해체와 탈구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에서 아카이브 푸티지와 함께 눈여겨봐야 하는 지점이 있다면 파농의 일생을 재구성하여 새로 촬영된 부분이다. 특히 정신분석학자인 파농이 알제리전쟁을 겪은 인물들과 상담하는 장면에서 그의 위치는 경계를 넘나든다. 이 장면에서 그는 <그림 6>, <그림 7>과 같이 화면의 왼쪽, 오른쪽, 가운데로 계속해서 자리를 이동하고 카메라를 보는 사람이었다가, 환자를 보는 사람이었다가, 또 환자에게 보이는 대상이었다가를 반복한다. 여기서 인물들 간의 시선의 방향이 끊임없이 재설정되고 이에 따라 주체의 위치는 연쇄적으로 바뀐다. 이 장면에서 파농은 보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보이는 사람이기도 하고,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영화라는 신체의 은유이기도 한 것이다. 아이작 줄리언이 영화에서 그리는 파농은 단일한 주체가 아니라 관계에 따라 위치와 역할을 변화하는 주체이며, 이는 다양한 자료와 여러 인물들의 입을 빌려 파농을 구성하는 영화의 큰 틀과도 연결되고 있다.
<프란츠 파농>의 마지막 장면은 베일을 쓴 여성의 얼굴을 비추며 끝난다. 베일은 영화 내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인데, 알제리 여성의 베일에 관한 문제는 파농의 후기 글 「베일 벗은 알제리(Algerie Unveiled)」(1959)에서 중요하게 서술되는 내용이다[8]. 이 글에서 파농은 베일을 알제리 여성에게 가해지는 가부장적 억압이면서 동시에 여성과 남성 사이에 놓인 시선의 권력 관계를 전복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독해한다. 베일을 쓰면 상대를 볼 수는 있지만, 상대에게 자신의 정체가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베일을 쓴 여성과 마주하게 되는 남성은 ‘보이는 대상’이 됨으로써 오히려 여성이 남성을 대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베일은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에 균열을 낸다. 더욱이, 알제리전쟁에서 여성이 무기를 비롯한 전쟁 물자를 비밀리에 감춰 운반하기 위해 베일을 이용했다는 알제리 여성의 인터뷰는 베일의 의미를 보다 복합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는 국면적 해석을 통해 “베일의 헤게모니적 속성을 투쟁 전략으로 전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경원, 2014:735). 아이작 줄리언은 식민성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베일의 이미지를 영화에서 중요한 메타포로 활용하고 있다.


끝으로 중요하게 언급할 것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림 8>처럼 눈만 드러낸 채 베일을 쓴 여성이 뒤를 돌았을 때 보이는 낯선 여성의 얼굴이다. <그림 9>처럼 여성의 뒤통수 위로 나이든 여성의 얼굴 이미지가 영사되어 있다. 이 얼굴은 눈, 코, 입을 드러낸 채 카메라를 마주보고 있다. 베일을 일종의 스크린처럼 활용하여 그 위로 또 다른 얼굴을 투사하도록 연출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식민주의에 대한 동시대적 독해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장면에서 ‘베일’, 낯선 여성의 ‘맨얼굴’과 등치되는 것은 다름 아닌 ‘검은 피부’와 ‘하얀 가면’이고, 이때 해방 주체의 자리에는 여성이 위치하게 된다. 이 이미지를 통해 줄리언은 과거 파농의 저작이 지닌 남성주의적 관점과는 비판적으로 거리를 두면서 식민주의 논의를 젠더 문제까지 확장시킨다[9]. 파농이 『검은 피부, 하얀 가면』 2장 ‘유색인 여성과 백인 남성’에서 비판한 마요트 카페시아(Mayotte Capecia)의 소설을 영화 안에서 마리즈 콩데와 프랑수아즈 버기스가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다르게 비평하고 있는 부분 또한 아이작 줄리언이 파농의 의미를 다양한 성정체성이 등장하던 1990년대 속에서 새롭게 재조합하고자 하는 시도로 읽힌다. 이 작품은 파농의 투사적인 면모와 혁명가로서의 영향력을 흑인인권운동의 전통에 위치시키는 전기 영화의 형식을 따르지 않고, 그의 다면적인 정체성이 담긴 이론적 사유의 틈새에서 페미니즘적, 퀴어적 재해석의 가능성들까지 자유롭게 열어놓는다. 이처럼 아이작 줄리언은 디아스포라 정체성이 지닌 경계의 위치성과 홀이 강조한 접합의 정치학을 인지하고 이를 영화의 구성요소들 속에서 푸티지를 통해 재접합하며 새로운 정체성이 발화할 수 있는 자리를 찾고 있었다.
5. 이론의 시각화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는가?” 영화 <프란츠 파농>이 시작될 때 들리는 목소리이다. 이 문장은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의 교차 속에서 비가시화되고 비인간화된 흑인의 역사를 환기시키며 오래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의 문장이 더 등장한다. “검은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는가?” 뒤따르는 목소리는 흑인 내부의 욕망, 타자의 시선을 내재한 흑인의 자아, 복잡하게 뒤틀리고 얽힌 인종과 정체성의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서론에서 발췌되어 영화로 옮겨진 이 문장들은 시선의 정치학 속에서 오래되었고 동시에 새로운 질문들을 다시 현재 속에 꺼내놓고 있다(Fanon, 1952/2014:8). 아이작 줄리언은 예술가이자 큐레이터인 코코 푸스코(Coco Fusco)와의 인터뷰에서도 인종을 둘러싼 길고 복잡한 여정, 다시 말해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고 해결되지 않는 외상을 파농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Fusco, Julien, 1997: 55). 그것은 푸스코의 말처럼 1960년대라는 투쟁과 소요의 시대 이후 시민권이 당연시된 시대에 태어난 작가들이 영국의 주류 문화 속에 통합되며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이다. 바로 인종주의라는 오래된 역사 속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재현의 그림자와 재현의 짐을 깨닫게 해주는 위치이자, 새로운 목소리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위치로서 파농의 재발견이다.
이때 프란츠 파농을 단순한 전기 다큐멘터리로 불러오지 않고, 푸티지의 재조합과 다성적 목소리의 삽입으로 재해석한 건 파농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1990년대 영국 사회가 또한 많은 것이 변하고 있는 시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홀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현재의 범주를 통해 재경험되지 않고 단순한 선조식의 과거의 ‘복원’이나 ‘회복’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현재의 여러 테크놀로지와 정체성에 의해 변형되지 않고 전통적 형태를 단순히 복제하는 형태로 창조적 표현을 한다는 발상은 불가능하다”(Hall, 1996/2018:544). 아이작 줄리언에게 영화제작은 단순히 과거를 재연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이론을 재해석하는 또다른 이론화 과정과도 같았다고 볼 수 있다. 노라 알터 또한 오늘날 디아스포라, 다문화, 정체성이라는 개념과 혼종적인 장르로서의 에세이 영화의 연관성에 대해 말하며, 연구 대상마다 적절한 방법론이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노라 알터는 줄리언의 작업에 대해 “철학적 사고를 하나의 매체(텍스트)에서 다른 매체(영화)로, 그리고 하나의 시대(1950년대)에서 다른 시대(1990년대)로 문화적 맥락을 번역하는 것이며, 그 일은 파농의 글을 움직이게 하고 그것들을 동시대 미디어 문화 속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말한다(Alter, 2018:264). 이때 ‘이론의 시각화(Visualizing Theory)’란 단순히 텍스트를 영화라는 무빙 이미지로 매체 변환시키는 것을 넘어서, 매체의 이동 속에서 바뀔 수밖에 없는 내용을 찾고 적절한 형식을 고민하며 이론을 둘러싼 새로운 이해를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다시 쓰기에 가깝다. 이것은 마크 내쉬와의 대화에서 아이작 줄리언이 “시각화의 행위가 이론적 생산의 한 형태처럼 보일 수 있다”라고 말하는 목소리와 공명한다(Julien, 2000:15).

인종은 문화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는 ‘새로운 종족성’ 개념을 통해 본질적인 정체성 담론을 경계하면서도, 여전히 끝나지 않는 인종주의의 문제의식을 발화하기 위한 멈춤의 지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 라는 질문에 아이작 줄리언은 프란츠 파농이라는 목소리와 스튜어트 홀의 목소리(<그림10>)로 응답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파농이 ‘이론의 도구화’를 고민하던 방향과도 관련있다. 파농은 흑인 주체를 재현하는 어려움과 복잡성을 말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으로 인종 문제를 들여다본 바 있다. 파농 또한 이론을 정치적 실천성으로 철저한 도구로 이해하며, 정신의학이라는 이론을 통해 정신을 탈식민화하고 정신의학 자체를 식민화하려는 기획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경원은 “서구의 인종정신의학이 식민지 원주민의 인종적 취약성으로 간주한 정신분열과 열등의식을 파농은 식민주의의 부산물로 파악”했다고 하며, 파농이 이 책에서 시도한 작업은 “유럽중심적 정신분석학의 변형”이라고 말한다(이경원, 2011:228). 파농은 “‘주체와 타자의 상관관계를 강조하는 정신분석학의 분석 틀은 그대로 두면서도 그 초역사적 주체를 식민주체, 즉 식민지 피지배자로 역사화한 것’, ‘인종적 차이에 무관심한 정신분석학 이론을 ‘인종화(racialize)’한 셈이다”(이경원, 2011:230).
홀은 예술이 개념 안에 있거나 원리적 차원에 머무를 수 없기에 언제나 “구체성”과의 관련에 닿아있다고 말한다(Hall, Jaggi, 2009). 홀은 정체성의 정치학에 대한 지속적인 강조 속에서 이후에 ‘정체성의 역설(paradox of identity)’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사유되는 주체와 사유하는 주체 사이의 불가피한 거리를 구성하는 것이 곧 사유이고 이것은 지적 작업의 조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Hall, 2007:270). 자신이 보는 자신은 늘 부분적일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위치에서 보는 ‘정체성’이라는 개념도 늘 부분적일 수밖에 없음을 통찰하며 홀은 이론을 예술을 통해 구체화하고, 다른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현실화해나갔다. 시대와 역사적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하고 맥락과 접합 속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이론적 개념들은 해석과 표현의 영역에서 기존과는 다른 이해를 계속적으로 요구한다. 그것은 새로운 방법에 대한 요구와 함께 가는 것이며, 어쩌면 텍스트의 한계 너머에 위치한 이미지를 찾아가는 과정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학제간의 중첩 지점과 서로 다른 정체성의 경계 위에서 일시적으로 마주치는 찰나의 깨달음을 향한 운동일지도 모른다.
6. 나가며
본 연구는 프란츠 파농을 재독해한 아이작 줄리언의 영화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스튜어트 홀의 정체성과 문화적 재현에 대한 이론적 사유가 어떻게 시각화되는지 살펴보았다. 1980년대 이후 밀접한 공동작업 속에서 스튜어트 홀과 아이작 줄리언은 프란츠 파농을 동시대의 시공간 속에 맥락화하며 인종주의의 역사와 새로운 주체성의 문제를 발화하였다. 이들은 새로운 정체성들이 다면적으로 등장하는 순간과 여전히 끝나지 않는 인종주의의 역사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말하는 방법을 영화 속에 나타냈다. 인종주의적 이미지, 부정적인 흑인의 이미지에 저항하되, 긍정적인 흑인의 이미지를 위해서만, 즉 정치적 올바름의 벽 안에서만 재현의 장이 형성되어서는 안 된다는 홀의 입장은 당시 다양한 성정체성을 영화적 주체로 표현하고자 했던 아이작 줄리언의 작업 세계 속에서 공명한다.
줄리언은 영화에서 파농이 ‘보기’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는 장면마다 홀의 목소리를 중첩시키며 비가시화와 비인간화 속에서 이중으로 형성된 흑인성의 복잡한 문제를 드러낸다. 이때 자기반영적 위치에서 차이를 말하는 홀의 목소리와 파농의 일화 및 책의 구절들은 인종을 둘러싼 정체성이 시선을 통해 구성되고, 다시 시선을 통해 해체 및 재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홀이 강조한 접합의 정치학 속에서 아이작 줄리언의 영화가 푸티지를 재조합되는 방식들은 차이가 어떻게 통합되고 다시 열리는지를 시각화한다. 아카이브 푸티지와 인터뷰, 드라마가 결합되어 만드는 영화의 신체는 홀이 강조한 접합의 운동과 궤를 같이하며 파농을 역사적이면서 동시에 현재적인 인물로 소환한다. 접합은 맥락 이동을 염두하면서도 역사적인 국면을 놓치지 않는 연결의 전략이라는 점을 홀과 줄리언은 파농의 재구성을 통해 실험하고 있었다. 이로써 파농의 삶 속에서 그의 다면적인 정체성을 재해석하고 과거의 이론적 틈새에서 페미니즘적, 퀴어적 재해석의 가능성들까지 자유롭게 열어젖힌다. 차이의 정치학, 자기반영성의 정치학, 맥락의존성/우연성의 정치학을 기억하되 무한히 확장되는 정체성은 경계하는 것. 문화적, 정치적, 역사적으로 구축되는 정체성을 이해하는 새로운 종족성의 개념으로 재현의 정치를 이어가되, 맥락에 따라 새롭게 위치지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이러한 스튜어트 홀의 이론적 사유는 흑인 영화 제작자들과의 협업과 교류 속에서 영화에 반영되고 그 영화를 다시 비평하며 다듬어진 것이었다.
<프란츠 파농>을 둘러싼 홀과 줄리언의 협업은 디아스포라 정체성이 지닌 경계의 위치성과 접합의 정치학을 영화로 표현하며 새로운 정체성이 발화할 수 있는 자리를 찾은 시도였다. 이러한 문화연구자와 예술가 사이의 밀도높은 영화적 협업과 이론의 시각화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특수한 사례는 아니겠지만, 이러한 작업을 문화연구와 예술비평의 경계에서 분석하는 관점이 국내에 부재하다는 사실은 본 연구의 중요한 함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80년대 영국 사회에서 당시 새로운 문화적 재현의 시도들이 이러한 공동 작업의 결과에 영향을 받고 더 나아가 정치적 올바름에 갇히지 않는 재현의 장이 형성되는 기회를 열어주었다는 점은 오늘날 한국이 마주하는 인종과 재현의 작업들에 유의미한 사례로 남는다. 한국에 살아가는 이주민, 난민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지만 인종과 다른 문화권에 대한 이해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여러 미디어를 통한 뉴스와 사건들로 나타나고 있다.[10]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 타자로서 이주민에 대한 재현의 흐름 이외에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받는 차별에 맞서고 정당한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하며 스스로 재현의 주체로 나선 시도에는 2000년대 이후에서야 의미있는 미술적 발자취들이 나타나고 있다. 미학과 정치학의 상호의존성을 성찰하게 하는 아이작 줄리언과 스튜어트 홀의 아카이브를 참조점 삼아 한국 사회에도 정체성과 재현의 문제를 탐구하는 더 다양한 학제간의 협업과 이론적 실천의 사례들이 이어지고 분석되길 바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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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3년 여름, 어바나-샴페인 소재 일리노이 대학에서 기념비적인 학술 행사가 열렸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 등 당대의 저명한 문화이론가들이 참석한 이 학회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글들이 다수 발표되었다. 당시 저명한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 역시 이 학회에서 문화연구의 이론적 역사에 얽힌 자신만의 시각을 청중과 공유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영국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에서 하위문화, 대중문화, 정체성, 재현, 인종, 계급에 관한 중요한 연구를 남긴 전방위적인 문화연구자 스튜어트 홀은 독창적인 이론적 개념을 주장하기보다는 역사적 맥락과 상황에 맞게 이론을 수정, 해석, 종합하고 대중적으로 풀어내는데 주된 관심이 있었다. 제임스 프록터는 『스튜어트 홀(Stuart Hall)』 서문에서 파편적인 홀의 글들을 집합적으로 읽는 작업은 하나의 완전하며 종료된 입장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모순과 불일치 그리고 유턴으로 가득 찬 일이라고 말한다(Procter, 2004:8). 일리노이 대학에서 홀이 남긴 강의록은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인종 연구와 재현, 정체성에 대한 그의 사유를 예고하는 중요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2] 당시 등장했던 콜렉티브들은 존 아캄프라(John Akomfrah), 리스 오귀스테(Reece Auguiste), 에디 조지(Eddie George), 리나 고팔(Lina Goupaul), 에이브릴 존슨(Avril Johnson), 트레버 매디슨(Trevor Mathison)이 활동했던 ‘블랙 오디오 필름 콜렉티브(Black Audio Film Collective)’, 마르티나 아틸(Martina Attille), 모린 블랙우드(Maureen Blackwood), 아이작 줄리언(Isaac Julien), 나딘 마쉬 에드워즈(Nadine Marsh-Edwards)가 활동했던 ‘산코파 필름/비디오 콜렉티브(Sankofa Film/Video Collective)’, 그리고 메넬릭 샤베즈(Menelik Shabazz), 밀턴 브라이언(Milton Bryan), 임루 바카리 카이사르(Imruh Bakari Caesar), 글렌 우젭 마소콘(Glenn Ujebe Masokoane), 로이 콘웰(Roy Cornwall)이 활동했던 ‘케도 필름/비디오 워크숍(Ceddo Film and Video Workshop)’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3] 1972년 11월 6일 영국 버밍엄의 빈민가 핸즈워스 거리에서 유색인종 소년들이 백인 노동자를 구타하고 소지품을 빼앗은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이 소년들에게는 보호감독 40년형이라는 과도한 형을 선고되었고 언론은 이를 ‘강도사건(mugging)’으로 명명했다. 홀이 속해있던 버밍엄 현대문화연구센터에서는 이 사건 속에 내재된 영국 사회의 인종적 긴장상태와 불안을 『위기 관리하기』를 통해 세밀하게 분석했다.
[4] articulation은 사전적 의미로 표현, 발화, 조음, 관절 등의 의미를 갖고 있고 절합, 혹은 접합으로 번역된다. 발음은 단위를 잘 나눠서 말을 내뱉고 그것이 다시 정확한 단어의 의미로 연결되어야 이해될 수 있다. ‘접합’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 안에는 나눠진다는 의미와 붙는다는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내에 단행본으로 번역된 홀의 글들 속에는 ‘접합’으로 번역되어 있기에, 본고에서도 ‘접합’으로 용어를 통일시켰다. 하지만 정체성과 관련된 논의 안에서는 필연적이지 않고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맥락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 개념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기에 필자는 이후의 글에서 ‘절합’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5] 영화에서는 공식적으로 차려입은 제국주의 국가의 공무원들이 식민지인들과 만나 악수를 하는 뉴스릴 푸티지, 카메라를 바라보는 한 무리의 원주민을 찍은 흑백 사진이 이어진다. 이 장면들 이후 스튜어트 홀은 파농이 책에서 주인의 목소리라고 썼던 구절을 언급한다. “나는 당신을 전혀 보지 못했다(I do not see you all).”
[6] 파농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서문에서 “백인은 자신의 흰색에 갇혀 있다. 흑인은 자신의 검은색에”라고 말하며 이 책이 “흑백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시론”임을 언급한다(Fanon, 2014/1952:10).
[7] 조나단 카하나는 전통적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식민주의의 관점에 입각해서 국가(nation)라는 개념을 공고히 해왔다면, 아이작 줄리언의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그와는 반대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8]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프란츠 파농은 해방 주체의 자리에 ‘여성’을 위치시키지 않았다. 파농에게 젠더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였다는 점은 오늘날 파농이 비판받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에게 최종심급은 인종과 계급의 문제였고, 그가 말하는 흑인은 남성만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파농의 후기 글 <베일 벗은 알제리>는 알제리 여성의 베일을 중층적으로 독해하며 여성의 문제를 주요하게 다룬다. 이 글은 페미니즘에 대한 파농의 재독해 가능성을 발견하는 방향과, 여전히 남아있는 파농의 가부장적 시선에 대한 방향을 동시에 사유하게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이경원(2014)을 참조한다.
[9] 「베일 벗은 알제리」에서 여성이 베일을 벗는 장면은 여성 해방의 순간으로 독해되는 반면, 해당 부분에서 여성의 신체가 대상화, 도구화되어 묘사된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아이작 줄리언의 <프란츠 파농>은 여성 주체의 해방이 ‘베일을 벗는 순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베일 뒷편에 이미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그린다고도 볼 수 있다.
[10] 2021년 행정안전자치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외국인 주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인구의 4.1퍼센트에 달한다(행정안전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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