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에 이르는 길, 2편 : 모든 것의 자본화
The Road to Gaza, Part II: The Capitalization of Everything’
심숀 비클러 & 조나단 닛잔[1]
Shimshon Bichler & Jonathan Nitzan
번역: 박기형 (서교인문사회연구실)
2024년 11월, https://bnarchives.yorku.ca/833/
The Road to Gaza, Part II: The Capitalization of Everything - The Bichler and Nitzan Archives
The Road to Gaza, Part II: The Capitalization of Everything Bichler, Shimshon and Nitzan, Jonathan. (2024). Working Papers on Capital as Power. No. 2024/0. August. pp. 1-10. (Article - Working Paper; English). Full Text Available As: Alternative Locations
bnarchives.net
Bichler & Nitzan, 'The Road to Gaza, Part II: The Capitalization of Everything' – Capital As Power
Abstract Our recent article on ‘The Road to Gaza’ examined the history of the three supreme-God churches and the growing role of their militias in armed conflicts and wars around the world. The present paper situates these militia wars in the broader v
capitalaspower.com
<초록>
우리는 최근 발표한 글 「가자에 이르는 길(The Road to Gaza) 1편」에서 세 최고-신 교회(supreme-God churches)의 역사와, 전 세계 곳곳의 무력 분쟁과 전쟁에서 민병대가 맡는 역할이 어떻게 커져 왔는지를 검토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민병대 전쟁들을 자본주의 권력 양식(capitalist mode of power)이라는 보다 넓은 조망 속에 위치시킨다. 특히 중동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는 민병대 전쟁이 상대적 석유 가격과 차등적 석유 이윤(differential oil profits)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고, 전쟁 그 자체와 전쟁을 부추기는 자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싸우는 주체들이 어떻게 모두 자본화된 권력(capitalized power)의 계산 속으로 할인(discounted)*되는지를 설명한다.

1. 민병대 분쟁
우리의 논문 「가자에 이르는 길(Bichler and Nitzan 2024」에서 우리는 오늘날 점점 더 많은 분쟁과 전쟁이 사설(private) 군대와 민병대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 이 무장 단체들과 민병대들이 대체로 국가, 종교 NGO, 범죄 조직의 후원과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들이 국가를 위해 싸우거나 국가에 대항해 싸우기도 하며, 또 서로를 위해서 싸우거나 서로에 맞서서 싸우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나아가 우리는 민병대 전쟁의 중요성이 커지는 현상이 국민-국가(nation-state)의 점진적 쇠퇴와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상정했다. 국민-국가의 구조와 제한된 작동 범위는 점차 세계화되는 자본주의 권력 양식과 더 이상 공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쇠퇴의 결과, 지배 자본(dominant capital)은 이제 겉으로는 개별 시민들의 동의로 정당성을 부여받는 대의 민주주의라는 낡은 모델을, 거물급 지도자들, 자본가 영웅들,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당화되는 과두제 국가(oligarchic states)라는 새로운 체제로 대체하려고 분투하고 있다. 이 구조적 전환이 탄력을 받으면서, 사설 무장조직과 독립(stand-alone) 민병대들이 처음 프랑스 혁명에서 비롯되었던 전통적인 국민군(national army)을 점차 대체하고 있다.[2]
전 지구적 주변부에서, 즉 국민국가가 온전히 발전한 적이 거의 없는 지역들에서는, 체제 붕괴가 지역, 부족, 인종, 교회 민병대, 그리고 범죄 조직 갱단 사이에서 벌ㄹ어지는 다중 분쟁의 형태로 분출한다. 이 과정은 아프리카의 상당 부분은 물론,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아시아, 동유럽, 중동의 많은 지역에 걸쳐 널리 나타난다.[3]
현재 이 과정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분쟁의 열점(hotspot)은 2023년 이스라엘과 하마스/이슬람 지하드(Hamas/Islamic Jihad) 사이에서 시작되어, 이후 헤즈볼라(Hezbollah), 후티(Houthis), 이란까지 포괄하도록 확장된 전쟁이다. 이 전쟁의 각 측은 자신의 최고-신 교회와 결합해 있다. 이스라엘은 점차 랍비나트 교회(Rabbinate church)에 부응하며 그들의 인도를 받는 반면,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헤즈볼라와 그들의 후원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쪽인 이슬람 상대역(Islamic counterpart)을 따른다.[4]
유대인 정착민 조직들로 구현된 랍비나트 민병대들은 지난 반세기 넘게 모든 이스라엘 정부(더불어 국내외의 다양한 신자유주의 과두 지배 세력들과 NGO들)의 후원과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으며 활동해왔다. 이 민병대들은 차츰 이스라엘 사회의 목덜미를 움켜쥐는 데 성공했다. 1967년 전쟁 이후, 그들은 점점 더 많은 팔레스타인 점령지를 차지했으며, 2000년대 이후부터는 주요 정당들을 장악하고, 미디어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며, 교육 시스템에 침투해 이를 개조하고, 사회정치 담론을 다시 정의하고, 국가의 공무원 조직·보안 기구·군대의 주류가 되었다. 앞으로 그들은 이스라엘을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신자유주의적 랍비나트 전제정(neoliberal-Rabbinate autocracy)’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이 과정의 거울쌍은 이슬람 민병대의 부상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오랫동안 지속된 이스라엘의 점령을 저지하거나 되돌릴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전통적인 저항 운동들 —주로 PLO와 PFLP— 은 쇠퇴했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lestinian Authority)는 약화하고 더욱 부패했다. 그 결과로 생긴 공백을 무장 이슬람 민병대들 —수니파 하마스와 시아파 이슬람 지하드— 이 채웠다. 전자는 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른 걸프 국가들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고, 후자는 헤즈볼라와 함께 대개 이란의 아야톨라 체제(Ayatollahs)의 우산 아래서 활동했다.
겉보기에는 이와 유사한 민병대 분쟁들은 —특히 최고-신 교회들의 지원을 받거나 그들이 주도하여 벌어지는 분쟁들은— 자본주의 권력 양식과는 이질적이거나, 심지어 정반대되는(antithetical) 것처럼 보인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자본주의는 개인주의, 합리성, 쾌락의 추구에 기초하는 반면, 최고-신 교회들은 엄격한 집단주의 기풍, 신의 권능에 대한 맹목적 신앙, 국가·교회·가부장제가 이루는 지배적 위계에 대한 복종을 조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겉보기의 모순은 기만이다. 첫째, 다소 의외로 들릴지 모르지만, 교회 기반 담론의 유행(prevalence)은 자본주의의 핵심 과정들과 모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과 공명한다. 블레어 픽스(Blair Fix, 2022)의 데이터를 사용해, 우리는 「가자에 이르는 길」에서 경제 담론의 사용 대비 성서 담론(biblical discourse)의 사용이 17세기 이후 어떻게 하향 추세를 보여 왔는지, 그리고 이 하향 추세가 1980년에 어떻게 결정적으로 반전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해 이후 구글 영문 도서 코퍼스에서 성서와 관련 텍스트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jargon)가 등장하는 빈도는 치솟은 반면, 경제 용어의 사용은 곤두박질쳤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하락·반전·재부상이라는 이 V자형 시간 패턴이 미국의 소득·자산 분포가 보여주는 패턴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한다는 사실이다. 주당순이익(EPS)과 임금률 사이의 비율, 상위 1%의 소득 점유율, 상위 1%의 부 점유율은 모두 성서 관련 전문용어의 상대적 중요성 변화와 밀접하게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 즉, 세 가지 지표 모두 1980년까지는 하락하다가 그 이후로는 급등했다(Bichler and Nitzan 2024: Figures 1 and 2).
이러한 동조 움직임(co-movement)의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소득과 자산 불평등이 감소하는 동안에는, 계몽, 진보, 합리성, 평등이라는 자유주의적 이상들이 자본주의 체제와 조응하는 듯 보였고, 그 정당성을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불평등과 그에 결부된 사보타주(sabotage)가 심화하자 —1980년 이후 그래왔듯이— 담론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위계, 복종, 수용이라는 성서 관련 전문 용어(jargon)가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교회와 결부된 분쟁들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민병대 분쟁들— 이 자본주의와 이질적이지 않은 두 번째, 보다 일반적인 이유는, 그 즉각적인 원인이 무엇이건 간에, 이 분쟁들이 결국엔 모두 자본화(capitalized)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래에서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경험적으로 예증하듯이, 이 분쟁들은 자본화된 권력(capitalized power)의 논리에 의해 지속해서 전유(appropriated)되고 그 안으로 통합된다. 그리고 한번 그렇게 할인(discounted)되고 나면, 그것들은 자본 그 자체의 일부가 된다.
2. 권력의 자본화
분쟁이 어떻게 자본화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면, 잠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우리의 저작들에서 우리는, 위계적 사회를 생산과 소비의 양식이 아니라 ‘갈등적 권력 양식(conflictual modes of power)’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주장해 왔다(Nitzan and Bichler 2009).
첫 번째 권력 양식, 곧 고대 제국의 권력양식은 기원전 4천 년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출현했다. 그것은 [궁전-군대-교회]라는 삼각 위계에 기반을 두었으며, 그 신민들은 주로 노예제와 다른 형태의 복종을 통해 조직되었다.
그 뒤를 이은 권력 양식, 즉 유럽, 아프리카, 일본의 봉건 체제는 [귀족-전사-사제]로 이뤄진 위계적 우위를 유지했지만, 노예제를 노골적으로 유지하기보다는 인신 구속, 충성 서약(fealty), 예속(servitude)으로 대체했다.
자본주의 역시 하나의 권력 양식이지만, 그 권력의 성격은 이전 시대의 권력 양식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5] 이전 체제들에서 권력은 존재론적으로(신, 천둥, 군대와 같은 사물로서), 구체적으로(뚜렷한 속성과 능력을 지닌 것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예를 들어, 신민들을 특정 왕, 귀족, 성직자와 직접 연결함으로써) 파악되었으며, 대체로 경직되어 있었으며 오직 아주 서서히 변화했다. 이에 비해, 자본주의 권력은 조작적(operational)이고, 추상적(abstract)이며, 보편적(universal)이고, 고도로 역동적(dynamic)이며, 다른 형태의 권력을 흡수하고 내부화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들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우리는 자본주의 권력의 핵심 상징이 차등적 자본화(differential capitalization)라고 주장한다. 모든 사회적 존재단위들(entities)** —개인, 소유주, 기업, 정부, NGO, 범죄 조직, 종교 집단 등— 는 자본화될 수 있다. 본질적인 요소들로 환원하면, 자본화란 아래 [수식 1]에서 보여주듯이 해당 단위의 위험 조정된 미래 기대 수익을 현재가치로 할인한 것을 나타낸다.
[수식 1]

이 식에서 K는 자본화(달러 기준), E는 미래 수익 흐름(달러/시간)을 뜻한다. H는 투자자들이 그 미래 수익에 대해 보이는 과도한 낙관/비관, 즉 ‘기대감(hype)’이며(−∞에서 +∞까지의 실수), δ는 그 미래 수익과 연관된 위험(risk)이다(양의 실수). 그리고 nrr은 투자자들이 평균적 상황에서 얻을 것으로 기대하는 정상 수익률(normal rate of return)이다(양의 실수/시간).
예를 들어, 어떤 사회적 단위의 미래 수익 흐름이 E=10억 달러/년, 투자자들이 이 수익에 대해 과도하게 낙관적이라 H=2, 이 미래 수익과 연관된 위험이 δ=4, 정상 수익률이 nrr=0.1/년이라면, 그 사회적 단위의 자본화는 50억 달러가 된다.
[수식 2]

[수식 1]에 기초해 정의하면, 해당 단위의 차등적 자본화 K𝑑는 그 사회적 단위의 자본화를 어떤 벤치마크(다른 사회적 단위 —예를 들어, 다른 소유주나 기업— 혹은 S&P 500과 같이 여러 사회적 단위의 집합을 대표하는 지수)의 자본화와 비교한 비율이다.
[수식 3]은 이 차등값을 보여준다. 아래 첨자 𝑑는 해당 변수가 사회적 단위를 수치화한 값과 벤치마크의 상응하는 값 사이의 비율임을 뜻한다(정상 수익률은 실체와 벤치마크 모두에 공통되므로 수식에서 소거된다는 점에 유의하라. 자세한 내용은 Nitzan and Bichler 2009의 Part III를 참조하라). [수식 3]의 모든 항은 관련 단위를 갖지 않는 순수 숫자다.
[수식 3]

우리의 연구에서, 우리는 자본화의 기본 구성 요소들, 즉 ‘최소 조각들(elementary particles)’이라고 부를 수 있는 미래 수익, 기대감(hype), 위험, 정상 수익률이 모두 권력에, 그리고 오직 권력에 달려 있음을 주장하고 이를 입증해왔다. 주어진 어떤 사회적 단위의 차등적 자본화는 항상 벤치마크를 기준으로 측정되므로, 그 크기는 곧 해당 벤치마크에 대한 그 단위의 상대적 권력을 나타낸다. 이게 우리가 말하는 ‘자본화된 권력(capitalized power)’ 개념의 출발점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자본주의의 주된 추동력이 ‘평균을 능가하고(beat the average)’ 정상 수익률을 초과하려는 강박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에서 궁극적 중요한 변수는 자본의 크기와 성장률 —다시 말해, 자본화의 크기와 성장률— 이므로, 모든 기업과 그 소유주들의 최종 목표는 ‘차등적 축적(differential accumulation)’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들은 모두 다른 이들에 비해 자신들의 차등적 자본화를 증대하도록 위해 끊임없이 내몰린다.
그렇다면, ‘권력으로서의 차등적 자본화(differential-capitalization-as-power)’의 핵심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의 연구 목표와 관련해, 다섯 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차등적 자본화는 조작적 상징(operational symbol)***이며, 그 어떤 최고-신 교회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철저하게 사회적 사고와 행동을 조건 짓는 알고리즘 의례(algorithmic ritual)****이다. 알게 모르게, 모든 자본주의적 사회 단위와 그에 소속된 신민들은 차등적 자본화의 지령을 따른다. 투자하고, 저축하고, 빌리고, 빌려주고,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고, 생산 공정을 설계하고, 정책을 만들고, 전쟁을 하거나 평화를 결정하는 그 누구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자본화 의례와 그 차등값들에 관여하고 동조한다.[6]
둘째, 차등적 자본화는 전적으로 추상적(abstract)이며, 순수 숫자(pure number, 두 화폐 크기의 비율)로 표현된다. 이러한 추상성 덕분에, 어떤 사회적 단위(또는 단위들의 집단)의 자본화된 권력도 다른 어떤 단위(또는 단위들의 집단)의 자본화된 권력과 비교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통약가능성(commensurability)은 권력으로서의 차등적 자본화의 모든 척도가 손쉽게 비교되고, 연결되며, 집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차등적 자본화는 보편적(universal)이며, 자본주의 우주(capitalist cosmos)의 어디에서나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보편성 덕분에 권력으로서의 자본 축적은 본질적으로 경계가 없다(boundaryless).[7]
넷째, 차등적 자본화는 고도로 역동적(dynamic)이며, 달라지는 상황과 기대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변한다. 이러한 역동성 덕분에 자본주의는 지속되는 격동과 반복되는 위기 속에서도 생존하고 심지어 번영할 수 있다.
다섯째, 그리고 아마도 우리의 논점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특징은 차등적 자본화가 고도의 흡수력(highly absorptive) 을 갖는다는 점이다. 차등적 자본화는 거의 모든 다른 형태의 권력을 형성하고, 전유하며, 종국에는 자기 내부로 통합한다.
이 마지막 특징은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것이다. 이전의 권력 상징들은 독자적으로, 다른 권력 상징들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그리고 대개 통약 불가능한 상태로 존재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특정 신의 위력은 어떤 왕이 보유한 군대의 규모나 한 제국이 거느린 신민의 숫자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고, 이들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없었다. 그것들을 비교하는 것은 고사하고, 집계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조차 없었다.
자본화된 권력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는 특정 사회적 단위의 미래 수익, 그 미래 수익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연관된 위험에 영향을 미친다고 인식되는 모든 형태의 권력이 할인된다. 한번 할인되는 것은 무엇이든 정의상 자본화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일단 자본화되고 나면, 그것은 마치 케이크 속에 구워진 재료처럼(baked in the cake), 해당 사회적 단위의 차등적 권력으로서의 자본을 이루는 구성 요소가 된다.
이 마지막 특징 때문에, 자본화된 권력은 소위 ‘경제적’ 형태의 권력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 모든 형태의 권력을 내재화하고 구현할 수 있다. 지적 재산권을 사용해 경쟁자를 특정 기술이나 상품에서 배제하거나, 다른 이들보다 가격을 더 빨리 올리거나 더 천천히 내리거나, 노동 비용을 더 효과적으로 억제하거나, 정부 계약을 독점으로 따내거나, 조세 정책을 차별적으로 설계하도록 하거나,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전망에 대해 상대적 더 좋은 기대감을 불어넣는 등 특정 기업이나 기업 집단의 권력은 두말할 것 없이 차등적으로 자본화된다. 하지만 ‘비경제적’ 형태의 권력 역시 일상적으로 할인된다. 여기에는 교육, 광고 및 여타의 조건화(conditioning)***** 수단, 환경 파괴, 오염, 부패, 범죄 관리와 방치, 자원 고갈, 에너지 안보, 문화적 재지향(cultural redirection), 식량 접근, 기아, 보건 등 여러 측면에 대한 차등적 권력이 포함된다.[8]
이제 폭력적 적대 행위와 전쟁은 —최고-신 교회들에 의해 추진되는 것들을 포함하여— 다른 어떤 권력의 과정들과도 결코 다르지 않다. 만약 그것들이 차등적 미래 수익성, 상대적 투자자 기대감, 그리고/혹은 차등적 위험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역시 할인되어 자본화된다. 그리고 자본화되는 순간, 그것들은 자본의 일부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가자(Gaza)에서 벌어지는 교회와 결합된 전쟁은 —이것이 자본화를 구성하는 여러 작은 요소들에 영향을 미치는 한— 권력으로서의 자본 축적을 구성하는 불가분한 일부(part and parcel)다.
3. 에너지 분쟁과 웨폰달러-페트로달러 연합
중동에 관한 우리의 이전 연구는 조직된 폭력과 전쟁이 어떻게 지배적 자본 집단의 전 지구적 차등 축적 과정 속으로 할인되는지를 살펴봤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거대 군수 계약업체, 석유 기업, OPEC, 금융 기관, 건설 회사들로 구성된 집단인 ‘웨폰달러-페트로달러 연합(Weapondollar-Petrodollar Coalition)’의 차등 이윤과 소득이 ‘에너지 분쟁(energy conflicts)’의 주기적 발발과 얼마나 긴밀하게 상관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 그것을 예측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었다 (Bichler and Nitzan 1996, 2015, 2018a, 2023; Nitzan and Bichler 1995, 2009).
[그림 1]은 1960년대 중반부터 2023년까지의 기간을 다루며, 석유와 관련하여 이 과정을 예증한다.
[그림 1]


이 차트는 서로 다른 두 변수의 움직임을 나란히 보여준다. 왼쪽 축에 막대그래프로 표시된 첫 번째 변수는 선도적인 상장 석유 회사들로 이뤄진 ‘석유 핵심 기업 집단(Petro Core)’(구성원 목록은 [그림 1]의 하단 주석 참고)에 관한 것이다. 이 막대들은 이 석유 핵심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 return on equity)이 Fortune 500 기업들의 평균 자기자본이익률과 비교해 얼마나 상회하거나 하회하는지, 즉 그 차등적 자기자본이익률을 묘사한다. 차등값 자체는 두 단계로 계산된다. 첫째, 석유 핵심 기업들과 Fortune 500 기업들 각각에 대해 순이익을 소유주 자본으로 나눈 비율(%)을 구한다. 둘째, 후자의 값을 전자의 값에서 뺀다. 만약 그 차이가 양수(회색 막대)면, 석유 핵심 기업 집단이 더 높은 자기자본이익률로 ‘평균에 앞서고(beats the average)’ 있다는 걸 뜻한다. 만약 음수(검은색 막대)면, 석유 핵심 기업 집단이 더 낮은 자기자본이익률로 ‘평균에 뒤처지고(trails the average)’ 있다는 걸 함의한다. 우리는 이 차등값의 움직임이 전체 지배 자본에 비해 거대 석유 회사들이 가진 자본화된 권력(capitalized power)의 변화를 대리(proxy)한다고 주장한다. 달리 말해, 이 척도가 클수록 권력이 더 강하고, 작을수록 권력이 더 약하다는 것이다.[9]
오른쪽 축에 표시된 빨간색 점선은 원유 상대 가격의 변화를 나타낸다. 이 척도 역시 두 단계로 계산된다. 첫째, 브렌트유의 배럴당 달러 가격을 미국 GDP 디플레이터(2023=1로 기준 변경)로 나눈다. 둘째, 그 결과값에서 10년 이동평균값을 뺀다. 이렇게 2023년 미국 달러 가치로 표현된 이 시리즈의 크기는 모든 미국 판매자 전체의 가격 결정력(pricing power)에 비해 석유 회사들(및 OPEC)이 가진 가격 결정력의 등락을 보여준다.[10]
이 두 변수의 비교는 두 가지 중요한 패턴을 드러낸다. 첫째, 두 변수는 최대값이 1인 피어슨상관계수에서 +0.74의 높은 수치를 보이며 긴밀하게 함께 움직인다. 다시 말해, 거대 석유 회사들의 권력으로 읽히는 차등적 자기자본이익률은 대부분 다른 기업들이 자신들의 상품 가격을 인상하는(또는 인하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석유 가격을 인상하는(혹은 더 천천히 인하하는) 그들의 능력에 달려 있다.[11]
둘째, 아래에서 보겠지만, 상대적 석유 가격과 차별적 석유 수익은 모두 중동의 에너지 분쟁에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역으로 이 분쟁들을 예측해주기도 한다. 각 에너지 분쟁의 발발은 [그림 1]에서 폭발 아이콘으로 표시되어 있다(구체적인 사건 목록은 <그림 1> 하단 주석에서 식별된다). 데이터가 보여주듯, 이러한 분쟁들은 대체로 ‘부정적 차등 수익[차등 손실]’이 이어지는 구간 뒤에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구간들을 ‘위험 구역(danger zones)’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새로운 에너지 분쟁이 임박했음을, 그 발발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세 가지 주목할 만한 규칙성이 드러난다.
첫째, 가장 중요한 점은,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곤 모든 에너지 분쟁이 석유 핵심 기업 집단이 평균에 뒤처지는 국면 뒤에 일어났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중동에서 에너지 분쟁이 폭발하려면, 선도적인 석유 회사들이 먼저 차등 축적을 감소시켜야(differentially decumulate) 한다. 이 규칙에서 명백히 확인되는 유일한 예외는 2011년 ‘아랍의 봄’의 분출과 그 뒤를 이은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에서의 외주화된(outsourced) 민병대 전쟁들의 만개다. 이 분쟁들은 그 지역 안팎의 수많은 정부, NGO, 최고-신 교회들로부터 자금 지원과 후원을 받았다. 2011년에 벌어진 한 라운드의 분쟁은 선행하는 위험 구역 없이 발발했다. 비록 석유 핵심 기업 집단이 평균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까지 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2010년에 이 집단의 차등적 자기자본이익률은 2008년과 2009년의 약 25%에서 면도날처럼 얇은 폭인 0.4%로 추락했다. (2023년 가자 전쟁은, 비록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된 ‘미니 오일 붐’ 이후에 도래했지만, 그 전부터 매우 긴 기간의 막대한 차등적 석유 손실이 이어지고 있었다.)[12]
둘째, 단 하나의 예외 —2014년의 다중 개입— 를 제외한 모든 에너지 분쟁 뒤에는 석유 회사들이 평균을 이기는 국면이 뒤따랐다. 다시 말해, 그 지역에서의 전쟁과 분쟁은 —관례적으로는 전체 경제를 흔들고, 왜곡하며, 약화시키는 요인이라고 비난받다만— 실제로는 선도적인 비석유 기업들(및 비산유국들)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거대 석유 회사들(및 OPEC)의 차등적 이익에 봉사해 왔다. 이 결과는 충격적일 정도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를 정말로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림 1]에서 봤듯이, 차등적 석유 이윤은 상대적 석유 가격과 긴밀한 상관관계에 있다. 상대적 석유 가격은 다시 중동과 관련된 위험 인식(그 위험이 실재하든 상상이든)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위험 인식은 무력 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 급등하는 경향이 있다. 그 위험이 치솟으면 상대적 석유 가격이 올라가고, 그만큼 석유 회사들의 차등 이윤과 OPEC의 상대적 수출 수입도 늘어난다.[13]
셋째이자 마지막으로, 우리의 데이터에 따르면, 석유 핵심 기업 집단은 선행하는 에너지 분쟁 없이는 평균을 이기진 적이 한 번도 없다. 다시 말해, 석유 회사들의 차등적 성과는 생산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권력과 사보타주의 가장 극단적인 행사인 전쟁에 달려 있다.
이제 우리 논문의 주제로 돌아와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만약 우리의 분석이 타당하다면 —즉, 만약 상대적 석유 가격, 차등적 석유 이윤, OPEC의 석유 수입의 등락이 주로 지역 분쟁과 전쟁의 결과라면— 그 에너지 분쟁들, 그리고 그 분쟁들을 조장하고 거기에 참여한 이들 혹은 방관자로서 그 후과를 떠안는 이들까지 포함해, 전부 석유 회사들과 OPEC의 권력으로서의 차등적 자본화에 착근되어(embedded)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들 모두 석유 회사들과 수출국들의 시장 시세 전광판(tickers) 안에서 깜빡이고 있다.
4. 차등 이윤을 위한 성전
<그림 1>에 나타난 규칙성들을 고려할 때, 최근 10년은 참으로 예외적인 시기였다. 2010년대 동안, 석유 핵심 기업 집단은 사상 최대의 손실을 입은 반면, 1인당 기준으로 본 OPEC의 석유 수입은 무려 반세기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Bichler and Nitzan 2023: Figure 1). 이는 절대 기준, 고정 달러(constant-dollar) 기준에서 본 것이었다.
반면, 차등적 기준에서 —이는 자본가들, 국가 관료들, NGO 지도자들이 가장 숭배하는 척도인데— 봐도 상황은 그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더 나빴다. [그림 1]이 보여주듯, 2013년부터 석유 핵심 기업 집단은 전례 없는 차등 손실을 기록하며 평균에 뒤처졌고, 심지어 2014년에 벌어진 여러 국가·민병대의 다중 분쟁조차 이를 완화하기는커녕 저지하지 못했다. 외관상 위험 구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 무능력은 석유 핵심 기업 집단이 시들어가고 있으며, 선두에서 지배 자본 무리를 이끄는 건 고사하고, 자신들의 이윤조차 되살릴 수 없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실존적 위기는 종종 분열로부터 단결을 끌어낸다. 이 경우에는 패배하는 기업들, 국가들, 그리고 민병대들의 지배자들 사이의 단결이 나타났다. 그리고 과연, 모든 것이 끝장난 것처럼 보일 즈음, 석유 시장은 마침내 전쟁의 달콤한 향기를 맡기 시작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양측의 여러 민병대 세력들과 함께 장기 분쟁을 촉발했다. 그리고 1년 뒤,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양측 모두에 똑같이 결연한 민병대들과 맞붙는 또 다른 격렬한 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차등적 석유 수익의 성과는 여전히 실망스럽다. 2022년에 상대적 석유 가격, 석유 이윤, OPEC의 수출 수입은 모두 급등했다. 그러나 그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2023년에 이 두 전쟁은, 비록 강도가 높고 사상자도 막대했지만, 그러한 차등값들을 떠받치거나 심지어 유지하기에도 충분치 않아 보였다. 그리고 중동이 다시금 ‘위험 구역’에 들어선 지금, 전망은 차등 이윤의 영광을 위해 치러질 더 많은 성전(聖戰, holy conflicts)을 향해 열려 있다.

각주
[1] 비클러는 이스라엘의 단과대학 및 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조나단 닛잔은 캐나다 요크 대학교(York University)의 정치경제학 명예교수이다. 그들의 모든 출판물은 비클러 & 닛잔 아카이브(The Bichler & Nitzan Archives, https://bnarchives.net)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 연구는 SSHRC(캐나다 인문사회과학연구위원회)의 부분 지원을 받았다.
[2] 스티븐 프레스필드(Steven Pressfield)의 스릴러 『더 프로페션(The Profession)』(2012)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거대 용병대가 기업과 국가 모두에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전통적인 국민국가의 정규군을 보완하고 그와 협력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 서비스에는 국민국가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불법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활동들이 포함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이 용병대들은 국제관계뿐 아니라 국민국가의 본성 자체를 변화시킨다.
[3]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바그너 그룹(Wagner Group)이나 체첸 부대(Chechen forces)와 같은 민병대들은 시리아, 아프리카,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하며, 종종 다수의 적대적 민병대와 맞서 싸우고 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에서 기업 용병들(corporate mercenaries)을 동원해 왔다. 와하비(Wahhabi) 민병대는 사우디아라비아 인구를 감시하고, ISIS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활동하며,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한다. 미국은 쿠르디스탄과 그 주변 지역 안팎에서 쿠르드 민병대를 지원하고, 후티 반군은 예멘 영토의 상당 부분을 통치하며, 랍비나트 정착민 민병대는 이스라엘의 내부 정치와 군사적 모험을 점점 더 휘젓고 있다. 사우디와 여러 걸프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를 지원하는 반면, 이란은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에서 이슬람 지하드와 헤즈볼라를 지원한다. 나이지리아, 리비아, 수단, 소말리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다양한 이슬람 단체들이 일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으며, 주로 원자재와 마약 거래에 관여하는 조직범죄 갱단들은 콩고민주공화국, 리비아, 멕시코, 콜롬비아, 동남아시아에 만연해 있고 종종 전 지구적으로 촉수를 뻗치고 있다.
[4] 우리는 ‘일신교(monotheistic religions)’ 대신 ‘최고-신 교회(supreme-God churches)’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초점이 신자들의 믿음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믿음을 강요하는 위계적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가자로 가는 길」 1편에서 설명했듯이, 모든 최고-신 교회는 여러 특징 가운데서도 특히 그들의 신이 배타성을 고집하고 이를 위해 싸운다는 점을 특징으로 가지며, 바로 이 때문에 ‘최고(또는 지고 至高, supreme)’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5]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엄밀한 의미의 자본주의(capitalism proper)'에서 권력을 지워버린다는 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이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진정한’ 자본주의는 경제 권력이 경쟁에 의해 끊임없이 소멸되는 시장과, 정치 권력이 선거에 의해 주기적으로 리셋되는 민주주의 정치로 구성된다. 이 시각에서 볼 때, 자본주의 내의 실제 권력은, 만일 그것이 존재한다면, 언제나 외생적인 왜곡(exogenous distortion)일 뿐이다.
[6] 상징주의(symbolism) 일반에 관하여, 그리고 특히 작동적 상징과 자본화 사이의 관계에 관해서는 Martin (2019)을 보라.
[7]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것은 차등 축적의 추상적 성격이다. 그것의 구체적 특징들은, 오직 권력에 관한 것인 만큼, 각종 경계들로 촘촘히 얽혀 있다.
[8] 이러한 과정들과 유사한 과정들에 대한 권력자본(capital-as-power, CasP) 분석을 체계적으로 검토하라면, Bichler and Nitzan (2018b)을 보라.
[9] 우리가 여기서 ‘대리한다(proxies)’고 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수학적으로 차등 자기자본이익률은 차등적 자본화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Fortune 500은 미국에 기반을 둔 기업들만 포함하고 다른 나라 기업들은 제외하므로 글로벌 벤치마크가 아니기 때문이다.
[10] 기업 집단을 다소 다르게 묶거나, 변수들에 다른 대안 척도를 사용하거나, 기간과 관측 빈도를 달리한, 비교 가능한 차트들을 보려면, Bichler and Nitzan (2015: Figure 5; 2023: Figure 2)을 참고하라.
[11] 이 연간 상관관계는 (전 세계 모든 상장 기업 대비) 글로벌 통합 석유 회사들의 차등 주당순이익(Earnings Per Share, EPS)과 원유 상대 가격 사이의 월간 상관관계와 실질적으로 동일하다(Bichler and Nitzan 2023: Figure 3).
[12]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그리고 다시 2000년대에는, 차등 축적 감소가 수년에 걸친 일련의 갈등들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경우들에는, 초기 차등 축적 감소 국면과 그 이후에 벌어진 일부 갈등들 사이의 시차가 더 길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13]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핵심 사항은 에너지 분쟁이 절대적 석유 수익이 아니라 차등적 석유 수익에 미치는 효과다. 예를 들어, 1969-1970년, 1975년, 1980-1982년, 1985년, 1991년, 2001-2002년, 2006-2007년, 2009년, 2012년에 석유 핵심 기업 집단의 자기자본이익률은 하락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서 그 하락은 Fortune 500의 하락보다 느렸거나, 둘 사이의 긍정적 격차를 좁히기에는 너무 작았기에, 절대적 하락에도 불구하고 석유 핵심 기업 집단은 계속해서 평균을 이겼다.
역자주
*할인: ‘할인(discount)’은 좁게는 재무·회계에서 사용하는 현재가치 할인, 즉 미래의 수익·현금흐름을 이자율·위험·기대수익률 등을 반영하여 현재가치로 환산하는 절차를 뜻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용어를 확장해, 전쟁·민병대 분쟁·억압·저항 등 비(非)경제적 현실까지도 이러한 할인 절차를 통해 숫자로 환산하여, 자본의 가치 계산과 ‘자본화된 권력(capitalized power)’ 속으로 흡수(편입)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지칭하는 데 사용한다. 본 번역에서도 기존 용례를 비틀고 확장하는 저자들의 의도를 따라 ‘할인하다’로 옮긴다.
**단위: 이 글에서 ‘단위(entity)’라는 말은 개인, 소유주, 기업, 정부, NGO, 범죄 조직, 종교 집단 등 서로 매우 다른 것들을 한데 묶어 부르는 가장 일반적인 분석 범주로 사용된다. 자본화가 계산되고, 권력이 행사·집적되며, 차등 축적이 관찰되는 사회적 분석 단위를 가리킨다.
***조작적 상징: 마틴(Ulf Martin)은 크래머(Sybille Krämer)의 논의를 따라 근대 합리성을 “계산 가능한 이성(computable rationality)”으로 규정하면서, 어떤 의미가 상징 그 자체의 ‘본질’에 내재해 있지 않고, 특정 규칙에 따라 상징들을 조작하는 일종의 계산 과정을 통해 산출된다고 본다. 이를 가리켜, “조작적 상징주의(operational symbolism)”라고 부른다. 여기서 상징은 어떤 초월적 실재를 가리키는 표지가 아니라, 일정한 규칙을 따라 조작·계산될 수 있는 기호들을 가리킨다. 이 기호들은 하나의 상징 기계를 이루는 부품들로 기능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비클러과 닛잔의 자본화 공식, K = (E×H) / (δ×nrr)은 바로 이 조작적 상징의 대표적인 예다. 이 공식은 기업이나 국가, 민병대 같은 사회적 단위의 권력을 숫자로 표현하고 비교하게 만드는 계산 장치이며, 투자자와 정책결정자들은 이 공식을 전제로 미래 수익, 위험, 정상수익률을 끊임없이 재계산하면서 실제 세계를 그에 맞게 조직하고 재구성한다.
****알고리즘 의례: ‘알고리즘 의례(algorithmic ritual)’는 앞에서 말한 조작적 상징이 현실의 사회적 행위로 반복 실행되는 방식을 가리킨다. 차등적 자본화 공식 자체가 하나의 알고리즘이라 할 수 있다. 이 알고리즘은 미래 수익을 할인해서 현재 가치로 만들고, 그 수치를 서로 비교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행동 패턴과 같다. 투자자·기업·정부·국제기구 등은 투자, 대출, 비용·편익 계산, 예산 편성, M&A, 세금 정책 설계, 전쟁·평화를 좌우하는 결단 등을 행할 때, 이 알고리즘을 암묵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호출하고 따르는 일을 반복한다. 저자들은 이 일련의 반복 행위 전체를 하나의 의례와 같다고 본다. 이 의례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론적 전제, 구체적 공식, 실제 권력 효과를 반드시 이해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매번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고, 같은 지표를 따르고, 같은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 스스로를 차등적 자본화 공식을 신봉하는 신도라고 자각하지 않더라도, 일상 전반에서 늘 자본주의적 계산 의식을 수행하는 셈이다. 경제적 사안에서는 미래 수익을 현재 가치로 할인해 비교하고, 비경제적 사안은 경제적 사안으로 포섭하거나 그와 같은 논리로 처리한다. 이러한 (무)의식적 의식을 매일같이, 매순간 반복해서 치르면서, 자본주의 권력 양식을 재생산한다. 나아가 종교 의식처럼, 그를 통해 산출된 상징적 의미 또는 수치화된 권력 효과들에 복종함으로써 특정 질서를 형성하고 유지한다. 이 점에서 알고리즘 의례는, 마틴이 말하는 상징 기계의 자동적이고 자기증식적인 조작이 일상의 관행으로 굳어진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조건화: 여기서 ‘조건화(conditioning)’는 좁은 의미의 행동주의 심리학(파블로프식 조건 형성)만을 가리키지 않고, 교육, 광고, 미디어, 제도 등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욕망·행동을 장기적으로 형성하고 길들이는 사회적 과정 전반을 뜻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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