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무브 기고17 [주권론을 둘러싼 정치적인 것의 딜레마, 2편] 면역의 통치성: 에스포지토의 생명정치 재구성과 사회주의 통치성 문제 면역의 통치성: 에스포지토의 생명정치 재구성과 사회주의 통치성 문제 강길모 (현대정치철학연구회) 1. 서론: 생명정치 이후의 이론적 곤경 미셸 푸코가 제시한 생명정치 개념은 근대 정치권력의 전환이 있었음을, 정치권력이 더 이상 죽일 권리를 의미하는 주권 중심의 권력이 아니라 생명을 관리하고 조절하는 권력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주었다.[1] 그러나 생명정치에 대한 이러한 푸코의 분석은 하나의 난점을 남긴다. 생명을 보호하고 증식하는 권력이 왜 여전히 반복적으로 주권적 폭력, 인종주의, 그리고 죽음정치로 귀결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푸코 자신은 이러한 현상을 인종주의와 예외상태, 통치성의 기술들을 통해 설명했지만, 주권과 생명관리정치 사이의 구조적 연관성은 끝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는 반론이 존재한다. 로.. 2026. 1. 24. 터널을 잃어버리기 터널을 잃어버리기 필자: 수차미 KMDB에 올라온 김병규 평론가의 “터널을 통과하기: 없는 것을 망각하는 비평”을 읽었다. 글에서 눈에 들어온 건 “비평은 망각된 것들을 기억하고 흩어진 기억을 서로 연결하는 일이 아니라 망각 자체에 속하는 일”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이었다. 다소 엉뚱해 보이기도 하는 이 말은 이어지는 문장에서 명료하게 시각화돼 의미를 얻는다. 그는 “영화는 조우가 아니라 사라짐의 체험이고 따라서 비평은 그 사라짐에 관한 기술이기 때문”이라면서, “비평이 한국영화가 곤경을 투사하고 탈출구를 모색할 수 있는 특정한 장소를 감지하지 못”한다고 말을 이어간다. 문제는 이 말이 후열의 “비평은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행위다”라는 서술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비평이 사라짐에 관한 기술이어서.. 2026. 1. 15. 모두 함께 모여 허락되지 않은 것을 보고 있다 모두 함께 모여 허락되지 않은 것을 보고 있다 필자: 수차미 KMDB에 올라온 「에바(EVA), 시네마테크에 타라!”」를 읽었다. 그리고 씨네21에 올라온 「어떤 영화 문화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인가」를 읽었다. 시네마테크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는 이 글들에서 눈에 들어온 건 시네마테크를 일종의 공동체로 읽어내는 흐름이었다. KMDB의 이수연 연구원은 “한국사회로부터 닫힌 영화들”이라는 점이 일본문화 금지령으로 더 심했던 ‘일본영화’들이 왜 시네마테크에서 주요하게 다가왔는지를 설명한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구가 이들을 시네마테크로 불러모았고, “모두 함께 모여 허락되지 않은 것을 보고 있다”는 감각이 이후 영화제라는 합법적인 장 안으로 편입됐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서술에.. 2026. 1. 9. Pédés, 미카엘 (Mickaël) 미카엘 (Mickaël)ARIEN NASELLI번역: 임하은 나는 pédé라는 말을 절대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말에는 비하의 뉘앙스가 있기 때문이다. 근데 너는 그 말을 가끔 쓰니까, 우리가 같이 있을 때는 나도 어쩌다 한 번 쓰게 된다. 하지만 그건 pédale이나 grosse pédale 같은, 그냥 웃자고 하는 표현일 뿐이다. 나는 게이나 호모라고 말한다. 아니면 아예 아무 말도 안 한다. 스스로를 규정해야 한다는 게 짜증난다. 어쨌든, 공장 동료들 앞에서 내가 pédé라고 말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걔네는 이미 하루 종일 tapette[1]같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니까. 우리의 정체성, 삶, 경험, 싸움, 그리고 자부심은 정치적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우리.. 2025. 12. 24. 내부의 위기와 외부의 낙하 내부의 위기와 외부의 낙하 필자: 수차미 “한국에는 하나의 작품에 매몰되어 컷단위 대사단위로 분석과 감상글을 올리는 마이너 갤러리 커뮤니티 문화가 있습니다. 이들은 매주 최신 연재분을 자체 번역해서 공유하여 일본과 시차없이 작품을 소비하며 마치 경주마 감각으로 내가 빠는 이 작품이 판매량이 몇 천만부고 극장흥행 수익이 어떻고 이래서 라이벌 작품보다 우위에 있다는 '갈드컵'을 즐깁니다. 작품이 성장하고 세간의 인정을 받는 게 곧 나의 기쁨으로 환원되는 아이돌 오시 문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번역 블로거의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온 글 「두유노 원나블헌 금속노조 진귀주톱?」을 읽었다. 이 글은 경기일보에 기고된 모 영화평론가의 글을 지적하며,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요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 2025. 11. 23. 비평의 트랙, 평론가의 자리 비평의 트랙, 평론가의 자리 필자: 수차미 박동수 평론가가 씨네21에 쓴 글 「밀레니얼의 문화 코드를 노려라, 게임 원작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읽었다. 지면에 올라갈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커뮤니티를 보며 생각 외의 반응이 나와 놀랐다. 씨네21이 왜 영화가 아니라 게임을 다루고 있느냐고 물으면서 대충 ‘씨네21이 망했다’는 식의 지적이었다. 어딜 가나 ‘망했다’는 말은 불만의 표시로 사용되니 별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이 반응이 지적하는 건 사실 유효하다. 게임과 영화를 한 자리에 두는 건 어쩌면 게임 웹진이 해야 할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영화는 모든 것을 다룰 수 있지만 반대로 게임은 영화가 아니면 다른 분야로 뻗어 나가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영화는 음식과 음악, 사회학과 인류학 등.. 2025. 11. 14.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