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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기고28

주인의 세계, 빈손의 영화 주인의 세계, 빈손의 영화 수차미 KMDB에 올라온 홍은미 평론가의 글 ‘알몸의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며 들었던 감상을 언어로 풀어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하는 이 글은 임권택의 개벽>을 다루는데, 그중에서도 허문영 평론가의 “인물이 서사 안에서 주인공이 되기에 실패한 영화”라는 서술을 인용한다. 이는 영화가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공유한다는 뜻으로, 영화를 하나의 시대로 바라보는 쪽이다. 영화 안에 내러티브가 있기보다 거대한 흐름의 일부로서 재현된다고나 할까. 사실 무언가 거대한 흐름에서 개인의 의견은 쉽게 채택되거나 압박받고는 한다. 이에 응해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질린 나머지 아예 판을 떠나버리기도 한다. 영화의 잔인한 점은 바로 그 후일담마저 자신의 일부로 삼는다는 것이다. 흐름을 버티든 .. 2026. 7. 9.
난쟁이가 달을 잡기 위해 공을 던지다 난쟁이가 달을 잡기 위해 공을 던지다 수차미 쿠로 게임즈에서 서비스하는 크로스플랫폼 게임 [명조]에서 진행된 콜라보 스토리를 봤다. 이야기는 여느 콜라보와 다를 바 없이 주연이 낯선 세계에 떨어지는 일에서 출발한다. 본작 이후의 시점, 데이비드를 비롯한 갱단 인원이 사망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에서 본편이 시작한다. 데이비드의 사후, 우울증에 시달리며 다크웹을 탐사하던 루시는 평소와 다른 이상균열을 발견하고 그곳에 입장하는데 이때 넘어온 곳이 바로 [명조]의 세계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은 리더이자 애인이었던 데이비드를 잃은 루시가 이를 마주하고 극복해내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본편이 주인공의 죽음과 집단의 와해로 끝난다면 이 이야기는 마무리 짓지 못한 감정과 그에 따른 극복 과정을 그린다. 특히 .. 2026. 7. 6.
Pédés, 무제 (Untitled, Portrait of a Silent Fag), 2020 무제 (Untitled, Portrait of a Silent Fag), 2020 Julien Ribeiro번역: 임하은 «보시오, 이것은 예술가가 창조한 폭력의 찬가가 아니라, 현실이 직접 내지르는 비명이자 노래요...»1971년 영화 〈 Sweet Sweetback's Baadasssss Song〉 오프닝 자막에서 인용된 중세 전통 주문 2022년 여름, 진단이 내려졌다. 우울증. 12호선 선로 위로 몸을 던지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던 날, 그게 분명해졌다. 그로부터 다섯 달 전, 내 안에서충분히 단단하다고 여겼던 무언가가 부서졌다. 아무 예고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몇 주 동안 멈추지 않았다. 울면서 잠들고, 울면서 깼다. 슬픔을 숨길 수는 없었지만, 침묵과의 새로운 관계만큼은 .. 2026. 6. 17.
이다의, 자기 자신의 도굴법 ② 신호가 있고 일제히 거수했다 자기 자신의 도굴법② 신호가 있고 일제히 거수했다 이다의 부각시키고자 전면에 공개된 것, 우린 더욱 정교하게 겨눌 수 있게 된다. 관통상은 두부를 들고 있는 슈미트에게도 남는다. 머리는 머리를 움켜쥔 손으로부터 이어져 그 자신의 것이 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금과 같이 소유하고자 한다는 것, 출토된 유물은 어떻게 그 욕망으로 인해 유물로 남는지. 이제껏 머리에서 몸으로 무엇이 전달되는지 살폈다면 몸들이 꿈틀거리는 모습, 쏟아져 나온 인간들을 본다. 안전을 보장한다는 신호로써 국가는 소유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신호를 우리는 왜 믿나? 실상 믿지 않는다. 국가의 개입과 비개입이 카드 뒤집기로 마주 운용된다 썼듯, 국가에 대한 미심쩍음은 양면 중 무엇을 지지하던 공동의 감각이다. 그러나 믿겠다 판단하.. 2026. 6. 15.
기후위기와 AI 범용의 불확실성 시대의 대안적 대응 방안: 인프라의 확장, 공통화(commoning) 그리고 새로운 통화금융 질서 기후위기와 AI 범용의 불확실성 시대의 대안적 대응 방안: 인프라의 확장, 공통화(commoning) 그리고 새로운 통화금융 질서 빈재익 Ⅰ. 서론 기후위기와 인공지능의 확산은 현대 사회가 전제해 온 경제적·제도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 탄소 순환의 교란, 생물다양성의 급격한 감소, 그리고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매개로 한 사회적 의사결정 구조의 재편은, 기존의 시장 중심적 자원 배분 체계와 국가 중심적 통치 메커니즘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회적 재생산과 생존 가능성(viability)을 지탱하는 기반시설(infrastructure)은 단순한 경제 성장의 투입요소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 존재 모두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핵심적 제도적 조.. 2026. 5. 25.
수술대에 오른 영화, 감염을 허용하는 대화 수술대에 오른 영화, 감염을 허용하는 대화 수차미 유튜브에 올라온 머니그라피 채널의 ‘B주류 초대석’을 보았다. 정확하게는 허키, 간지, 민경 3인방이 진행하는 영화 시리즈를 보았는데, 이 시리즈는 영화를 좋아하는 업계인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소화되는 중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인물 간에 케미도 그렇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가장 크다. 영상 안에서, 이들은 어떤 취향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게 아니라 대상 자체를 말한다. 판단에 편을 세우기보다는 무언가 돌려 말하지 않아서 명료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영화 한 편을 보고서 영화에 관해서만 평을 내리기란 무척 어렵다. 관객은 현실의 존재이기에 다시금 현실을 등에 업는 한편, 영화가 그에 앞서 존재한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 즉 영화가 ‘만들.. 2026.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