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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기고24

어떻게든 지금이 아닌 곳에 가고 싶다 어떻게든 지금이 아닌 곳에 가고 싶다 수차미 KMDB에 올라온 “너무 많이 매혹된 죄, 불가항력의 불안을 마주하는 시간”을 읽었다. 송경원 평론가가 쓴 이 글이 눈에 들어온 건 예전에 그가 씨네21의 편집장 인사에서 했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당시 그는 “부산국제영화제등이 겹쳐 시기상의 이유로 지면에 다루지 못했다”고 적었는데, KMDB에 올라온 글은 그 점을 정확히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 못한 말은 분명 마음에 맴돌기 마련이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해소하고 싶은 게 모든 관객들의 바람일 테다. 생각해보면 그러한 욕구에 관해서는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렸을 때 불만족스럽게 경험했던 것들은 어른이 되어서 무언가를 소비하며 행동하게 하는 동인이 된다고 말이다. 가령 어려서 형제의 .. 2026. 3. 2.
Pédés, 우리의 자긍심에 국경은 없다 우리의 자긍심에 국경은 없다. Pas de frontière dans nos fiertés Ruban tauupo 번역: 임하은 ‘pédé’의 경험 처음으로 « pédé »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이유는, 베네수엘라 이민자의 아들로 프랑스에 막 도착한 어린 청소년이었고, 프랑스어를 아직 완전히 익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 부모님은 여느 이민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자신들과 자녀들을 위해 더 자유로운 삶을 찾아 프랑스로 왔어요. 그들은 점점 윤곽을 드러내던 독재 체제를 피해 떠나고자 했고, 그 체제는 전 세계로 600만 명의 베네수엘라 사람들을 떠나게 만들었습니다.프랑스에 도착한지 벌써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필요에 의해 고.. 2026. 2. 8.
[주권론을 둘러싼 정치적인 것의 딜레마, 2편] 면역의 통치성: 에스포지토의 생명정치 재구성과 사회주의 통치성 문제 면역의 통치성: 에스포지토의 생명정치 재구성과 사회주의 통치성 문제 강길모 (현대정치철학연구회) 1. 서론: 생명정치 이후의 이론적 곤경 미셸 푸코가 제시한 생명정치 개념은 근대 정치권력의 전환이 있었음을, 정치권력이 더 이상 죽일 권리를 의미하는 주권 중심의 권력이 아니라 생명을 관리하고 조절하는 권력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주었다.[1] 그러나 생명정치에 대한 이러한 푸코의 분석은 하나의 난점을 남긴다. 생명을 보호하고 증식하는 권력이 왜 여전히 반복적으로 주권적 폭력, 인종주의, 그리고 죽음정치로 귀결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푸코 자신은 이러한 현상을 인종주의와 예외상태, 통치성의 기술들을 통해 설명했지만, 주권과 생명관리정치 사이의 구조적 연관성은 끝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는 반론이 존재한다. 로.. 2026. 1. 24.
터널을 잃어버리기 터널을 잃어버리기 수차미 KMDB에 올라온 김병규 평론가의 “터널을 통과하기: 없는 것을 망각하는 비평”을 읽었다. 글에서 눈에 들어온 건 “비평은 망각된 것들을 기억하고 흩어진 기억을 서로 연결하는 일이 아니라 망각 자체에 속하는 일”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이었다. 다소 엉뚱해 보이기도 하는 이 말은 이어지는 문장에서 명료하게 시각화돼 의미를 얻는다. 그는 “영화는 조우가 아니라 사라짐의 체험이고 따라서 비평은 그 사라짐에 관한 기술이기 때문”이라면서, “비평이 한국영화가 곤경을 투사하고 탈출구를 모색할 수 있는 특정한 장소를 감지하지 못”한다고 말을 이어간다. 문제는 이 말이 후열의 “비평은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행위다”라는 서술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비평이 사라짐에 관한 기술이어서 ‘한국.. 2026. 1. 15.
모두 함께 모여 허락되지 않은 것을 보고 있다 모두 함께 모여 허락되지 않은 것을 보고 있다 수차미 KMDB에 올라온 「에바(EVA), 시네마테크에 타라!”」를 읽었다. 그리고 씨네21에 올라온 「어떤 영화 문화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인가」를 읽었다. 시네마테크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는 이 글들에서 눈에 들어온 건 시네마테크를 일종의 공동체로 읽어내는 흐름이었다. KMDB의 이수연 연구원은 “한국사회로부터 닫힌 영화들”이라는 점이 일본문화 금지령으로 더 심했던 ‘일본영화’들이 왜 시네마테크에서 주요하게 다가왔는지를 설명한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구가 이들을 시네마테크로 불러모았고, “모두 함께 모여 허락되지 않은 것을 보고 있다”는 감각이 이후 영화제라는 합법적인 장 안으로 편입됐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서술에서 의아.. 2026. 1. 9.
Pédés, 미카엘 (Mickaël) 미카엘 (Mickaël)ARIEN NASELLI번역: 임하은 나는 pédé라는 말을 절대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말에는 비하의 뉘앙스가 있기 때문이다. 근데 너는 그 말을 가끔 쓰니까, 우리가 같이 있을 때는 나도 어쩌다 한 번 쓰게 된다. 하지만 그건 pédale이나 grosse pédale 같은, 그냥 웃자고 하는 표현일 뿐이다. 나는 게이나 호모라고 말한다. 아니면 아예 아무 말도 안 한다. 스스로를 규정해야 한다는 게 짜증난다. 어쨌든, 공장 동료들 앞에서 내가 pédé라고 말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걔네는 이미 하루 종일 tapette[1]같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니까. 우리의 정체성, 삶, 경험, 싸움, 그리고 자부심은 정치적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우리.. 2025.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