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무브 연재완료79

‘이생망’과 시간 ‘이생망’과 시간 길혜민|국문학 연구자 신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끝, 시작과 나중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발생이라는 현상의 원인이며 발생의 결과가 된다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존재에게 있어서 ‘중간’이라는 지대는 어떤 것일까요? 그것도 또한 신의 영역일까요? 아니면 신이 버린 영역일까요? 저는 오늘 ‘중간’이라는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신이 버렸는지 아님 그 안에 신이 있는지, 언제 시작됐는지도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어느새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중간’ 말입니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지구에서 숨이라는 것이 붙어있는 존재라면 대개가 ‘이생망’이라는 말을 체험하는 시절을 보내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는 나날들입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요. 그냥 매일을.. 2017. 9. 11.
3화 만국의 오타쿠여, 덕질하라! 3화 만국의 오타쿠여, 덕질하라! 지영(국문학 연구자) 1. 대잉여의 시대 1997년 7월 연재를 시작한 오다 에이치로의 는 2014년에 3억 부 이상을 발행하여 “가장 많이 발행된 단일 작가의 단일 만화 시리즈”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의 세계는 해적왕 골드D 로저가 죽으면서 남긴 “나의 보물? 원한다면 주도록 하지. 잘 찾아봐. 이 세상 전부를 거기에 두고 왔으니까.”라는 말로 인해서 ‘대해적 시대’를 맞이한다. 그리고 주인공인 밀짚모자 루피와 그의 친구들 역시 각자의 보물을 찾아 항해를 시작한다. 이 작품이 대해적 시대를 표방하고 전개될 수 있는 이유는 작품의 배경 공간이 육지가 거의 없는, 즉 주로 섬들로만 이루어진 행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적과 해군이라는 설정이 개연성을 지니며 작품 속에 들어.. 2017. 9. 7.
네 번째 엽서: 현상학과 그라마톨로지 네 번째 엽서― 현상학과 그라마톨로지 ― 최 원 | 독립연구자 그 동안 잘 지내셨나요? 한 동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몇 번의 비와 함께 벌써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 날씨가 선선합니다. 이번 엽서에서는 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현상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 이게 저로서는 조금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오랜 기간 맑스주의나 포스트-맑스주의(특히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논의들), 그리고 정신분석학(특히 라캉의 논의들)에 관심을 기울여 왔기 때문에 현상학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저의 엽서를 받아보시는 당신도 어쩌면 현상학을 조금 낯설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상학은 앞으로도 몇 차례에 걸쳐서 당신께 말씀드려야 할 주제인데요, 그래서 오늘은 우선 데리.. 2017. 8. 31.
나의 학생운동 : Theoractical Moments 나의 학생운동 : Theoractical Moments 고준우 | 고려대 학생 활동가 4년차 들어가며 “모든 사회적 삶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다. 이론을 신비주의로 유도하는 모든 신비는 인간의 실천 속에서, 그리고 이러한 실천의 개념적 파악 속에서 그 합리적 해결책을 찾아낸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8번왜? 경계인. 나는 세 가지 경계 위에 서있다. 하나는 소속의 경계다. 지금껏 운동을 하면서 다양한 운동단체에 소속된 활동가들과 함께해왔지만 정작 나 자신은 당론이나 강령을 통해 운동방향을 공유하는 정치조직인 정당이나 운동단체에 소속되었던 적이 없었다. 기조와 내규가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그 영향력은 덜한 학회나 학생회 조직에 소속된 경험이 전부였다. 다른 하나는.. 2017. 8. 13.
2화 명멸(明滅)하는 데이터 디스토피아 2화 명멸(明滅)하는 데이터 디스토피아 지영(국문학 연구자) 1. 온라인의 비트 세계 2017년 7월 28일 인문 예능프로그램을 표방하며 등장한 이 끝났다. 감독판인 마지막 회에서는 편집되어 방송에 나가지 못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정재승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을 다음과 같이 문장으로 정리했다. “현실 세계의 모든 것들이 온라인의 비트 세상으로 옮겨간다.” MC인 유희열이 ‘온라인의 비트 세계’란 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되뇌이자, 그는 좀더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이것은 오프라인에 있는 모든 사물에 인터넷이 붙어서 사물의 작동뿐 아니라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까지가 ‘데이터화’ 되는 것이다.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세계는 본질적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이 물질들을 이동하기.. 2017. 8. 6.
돼지발정제를 먹이는 시간 돼지발정제를 먹이는 시간 길혜민 | 국문학연구자 1. 축축. 이 말에는 어떤 경험이 연결되십니까. 무엇보다도 저는 불결함과 불길함이 결합된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촉촉도 아닌 축축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아도 이끼가 자랄 것 같이 젖은 공기, 낮과 밤을 알 수 없는 폐쇄성, 무드등이 건물을 얼룩처럼 장식하는 장소, 돌이킬 수 없는 세계에 들어섰다는 예감. 모텔. 21살 때, 처음으로 “제천국제영화음악제”에 참가하느라 들렀던 ‘발렌타인모텔’의 인상은 대략 그랬고 지금도 축축함이라는 말과 관련된 연상은 이 장소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제 환상의 젖줄 같았던 영화, 에서 보았던 커다란 조개 모형의 침대가 있을 것 같았던 모텔의 연관어는 ‘축축’으로 바뀌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문득 이 축축함에 대하여 다시 .. 2017.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