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무브 연재완료79 세 번째 엽서 세 번째 엽서 엽서는 편지와는 조금 다른 시간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편지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나름대로 숙고되고 정리되었을 때 적어 보내는 것이지요. 그래서 호흡이 길어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엽서는 무언가 다른 일을 하는 와중에 빠르게 몇 줄 휙 휘갈겨 보내는 것이기 쉽습니다. 미처 숙고되지 못하고 정리되지 못한 생각을 말이지요. 그래서 엽서는 (마냥 가벼운 안부만을 담아 보내는 경우가 아니라면) 수정되거나 심지어 취소될 것을 예상하면서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적어 보내는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물론 편지도 그럴 수 있지만, 엽서보다는 조금 덜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엽서엔 너무 많은 의미를 담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의미도 두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 2017. 7. 24. 1화 디지털 시대의 존재론 1화 디지털 시대의 존재론 지영 | 국문학 연구자 1. 디지털 사회의 도래 2017년 ‘4차 산업혁명’이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트렌드로 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실 ‘4차 산업혁명’은 몇 년 전부터 인구에 회자되던 ‘빅데이터’나 ‘포스트휴먼’ 논의와 유사 계열을 이루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과학기술 담론 안에서 기존의 논의들이 확대・변용・재생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와 문학의 관계를 탐색하기 위해 던져야 할 질문은 ‘4차 산업혁명’이나 우리가 향유하는 테크놀로지의 기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 담론이 여타의 담론들을 압도하는 양상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오늘은 ‘디지털 시대의 존재론’에 .. 2017. 7. 11. 두 번째 엽서 두 번째 엽서 그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글을 올리겠다고 약속드린 15일이 다가왔는데, 갑자기 개인적으로 일들이 마구 겹치고 예정에 없던 큰일까지 생기는 바람에 제대로 글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만큼 아무 엽서도 부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군요. 왜냐하면 정해진 마감일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거의 늘 마주하고 있는 조건이자, 우리가 언젠가는 우리 자신의 죽음을 마주해야 할 날이 있다는 사실의 환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빌려온 시간을 살다가는 유한한 존재로서의 우리는 늘 마감일을 앞두고 있으며 그때까지 무엇이라도 써야 하고, 어떤 짓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이데거가 죽음을 향한 존재의 실존적 불안(Angst, anxiety)에 대해 말했을 때, 그는.. 2017. 6. 20. <이상한 가역반응>을 시작합니다 을 시작합니다. 길혜민 | 국문학연구자 이상은 제가 알고 있는 이상한 시인들 중에서도 특히 이상함의 기원에 해당하는 작가입니다.이상 시집의 첫 번째 작품 제목은입니다.1931년도에 발표된 작품의 제목치고는 꽤나 현란하죠. 가역, 可逆되돌려본다는 뜻이겠죠.그런데 이상은 이 시에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표현합니다.더 이상은 평행하지 않은 것, 그래서 꼭 붙어버린 곡선에 대해서 말이죠.굴곡진 직선과 되돌려보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일까요.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해 무식한 제가 유추해보건대되돌아본다는 의식인 기억하기와 관련된 반응이 이상하다는 뜻 같습니다.과거를 떠올린다는 일이란 완전히 복원될 수 없는 기억을현재라는 시점을 끌어안고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는 시차에 대한 시인의 판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후.. 2017. 6. 11. 작업실을 열며 : 인권에 전선이 필요하다구? 작업실을 열며 : 인권에 전선이 필요하다구? 정정훈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웹진 인무브에 온라인 작업실(workshop)을 열면서 간판에 ‘인권의 전선들’이라고 적어놓았다. 이렇게 작업실의 이름을 짓고 보니 무언가 어색하다. 왠지 인권이란 말에 스며있는 평화의 이미지와 전선(戰線)이라는 단어에 깃든 전쟁의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충되는 느낌이다. 하긴 전쟁만큼 인권침해의 장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인권의 전선들이란 그래서 모순적 조어인거 같기는 하다. 어쩌면 그 모순적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작업실의 이름을 ‘인권의 전선들’이라고 지은 것은. 모순에는 긴장과 갈등의 냄새가 난다. 그리고 사고한다는 것은 그러한 긴장과 갈등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인권이라는 이념은 과연 그 의미가 확정되고,.. 2017. 6. 6. [사회의 바깥, 소설의 안쪽]을 시작하며 '사회의 바깥, 소설의 안쪽'을 시작하며 지영 | 국문학 연구자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떠오른 질문은 세 가지이다. 소설가들은 왜 소설을 쓸까, 독자는 왜 소설을 읽을까, 나는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윤이형 작가는 소설은 혐오를 사랑으로 바꾸지 못하지만 ‘대책 없이’ 소설 쓰는 일이 좋아졌다고 고백했다. 이 ‘대책 없음’에 공감하고, 이 ‘대책 없음’을 지지하며, ‘사회의 바깥, 소설의 안쪽’에 놓여 있는 ‘우리=타자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실 실용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소설은 무용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다. 이해할 수 없거나 재미없는 소설을 읽고 난 후에는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도대체 작가는 이런 작품을 왜 쓴 걸까?’라는 의문이 마음 깊은 곳에서 짜증과 뒤엉켜 튀어.. 2017. 6. 4. 이전 1 ··· 10 11 12 13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