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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연재완료79

막막함들 막막함들 고준우|학생활동가 최근에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 돌아보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나의 학생운동’이 활동가들에게는 흔하디흔한 그저 ‘듣기 좋은 이야기’에, 운동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낯선 경험담’에 불과한 이야기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갑작스럽게 이런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나의 학생운동’이 은폐하고 있는 지점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학생운동의 후속세대를 위해서 운동의 막막함, 풀리지 않는 지점들, 해소가 안 되는 지점들을 될 수 있는 한 감추고 그럴듯한 성공 사례들만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론과 운동이 적절히 마주칠 수 있었던, 혹은 운동을 사후적으로 이론을 통해 설명해내는 목적론적인 형태로 운동의 경험들을 서술했기 때문에 활동가들에게는 납.. 2018. 4. 26.
형제복지원, 혹은 문명화과정의 효과로서 야만(1) *이 글은 2013년 학단협, 민주법연 등이 공동주관한 학술대회 에서 발표하기 위해 작성했던 글이다.당일 나는 몸이 너무 안좋아서 참여를 하지 못했다.이 발표 이후에도 여전히 형제복지원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여전히 감금 및 수용시설은 건재한 상태이다.이 문명화의 결과로서 창출된 야만은 언제까지 지속될런지... 형제복지원, 혹은 문명화 과정의 효과로서 야만(1) 1.섬이란 어디에도 없다 영화 (2005)와 (2010, 이하 )은 모두 그 공간적 배경이 섬이다. 육지로부터 한 참 떨어진 어느 외딴 섬. 그래서 육지의 외부인들이 거의 드나들지 않고 심지어 제대로 된 관공소조차 없는 어떤 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두 영화는 담고 있다. 이때 섬은 고립의 공간이자 외부세계와의 단절된 공간을 의미한다. 외부의 .. 2018. 4. 15.
인권선언과 세 가지 정치(3) 보편화의 정치 반복이란 최초의 기입-사건을 반복하는 것이며, 이는 새로운 권리 주체들의 출현을 의미한다. 투쟁을 통한 권리 주체들의 지속적인 확장과 증식. 이것이 바로 반복의 정치가 갖는 효과이다. 그리고 기입-사건의 반복이 결국 새로운 권리 주체의 확장과 증식이라는 함은 또한 인권선언이 제시하는 권리의 보편화를 뜻한다. 어떤 제한이나 단서도 없이 모든 개인들이 권리주체가 되는 보편화. 인권선언의 세 번째 정치성은 보편화의 정치이다. 1789년의 인권선언은 이 보편화의 성격을 매우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 선언은 역사적으로 너무나 큰 의미를 가지지만 그 선언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매우 ‘부실’했다. 프랑스에 권리선언이 필요하다는 요구는 삼부회 의원선거를 앞두고 시행된 1879년 3월에서 4월 사이에 작성된.. 2018. 3. 29.
소비자 혹은 표백된 주체 소비자 혹은 표백된 주체 고준우 / 학생활동가 “학생운동은 가능한가?” 이것이 나를 사로잡았던 질문이었다. 단순히 학생운동의 자랑스러운 전통이 주는 아우라만으로는 오늘날의 학생운동을 지탱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학생운동조직은 계속해서 위축되고 ‘운동권’이라는 낙인과 함께 학우들로부터 도매금으로 혐오를 받는 상황에서 학생운동의 가능성, 즉 학생운동의 까닭(원인과 조건)을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먼저 학생운동의 원인을 살펴야 했다. 학생운동이 실천된다면 어째서 그러한가? 이 질문은 먼저 이론적으로는 학생운동이 고유하게 자신의 영역으로 삼아야 할 모순(들)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를 묻는다. 다시 말해 학생운동만의 현장이 있는지 여부와 그 현장의 지형에 대한 물음인데.. 2018. 3. 20.
인권선언과 세 가지 정치(2) 반복의 정치 그러나 아무리 인권선언이 국가제도 안에 인간과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기입해 넣었다고 하더라도 실제 국가가 이 권리들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왔던 것은 아니다. 이는 단지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만이 아니라 근대 최초의 공화정을 탄생시킨 미국독립혁명과 그 혁명의 방향성을 천명한 미국의 「독립선언문」(1876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한 소비에트연합에서 선포된 「노동 피착취 인민의 권리선언」(1918년)조차도 ‘선언’의 문장이 현실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현실은 ‘선언’이라는 형식으로 기입된 인간과 시민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배반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기입의 정치란 한때 인민의 결집된 힘이 권리를 억압하는 권력체제.. 2018. 3. 14.
반쯤 지워진 비문 - 예브게니 크로피브니츠키와 리아노조보 그룹 반쯤 지워진 비문- 예브게니 크로피브니츠키와 리아노조보 그룹 - 이 종 현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작년 말 우연히 삽기르 학술대회에 들렀다가 삽기르의 시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에 나온 친구 홀린의 시도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둘의 스승이었던 예브게니 레오니도비치 크로피브니츠키(Евгений Леонидович Кропивницкий, 1893-1979)의 시를 읽기에 이르렀습니다. 보통 러시아 현대시를 읽을 때는 1990년대 한국에 번역되었던 예브게니 옙투셴코,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벨라 아흐마둘리나 등을 큰 줄기로 삼습니다. 실제로 러시아인들도 이 시인들을 잘 알고 이들의 시를 참 좋아합니다. 삽기르, 홀린, 크로피브니츠키는 요즘 러시아 사람들한테도 생소한 시인들.. 2018. 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