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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연재완료79

인권선언과 세 가지 정치(1) 인권선언과 세 가지 정치 정정훈(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발리바르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받았던 충격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새로웠던 것은 그의 프랑스혁명해석, 특히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에 대한 해석이었다. 나름 투철한 맑스주의자이자 유물론자로 자처하던 내게 프랑스대혁명의 이념이나 소위 ‘인권선언’은 부르주아지의 관념적 공문구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내게 맑스를 다른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이론적 관점과 맑스를 경유하는 정치를 사고하기 위해 유용한 개념적 수단을 제공해주던 발리바르가 프랑스대혁명의 인권선언을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여기서 인권의 정치를 적극적으로 개념화하는 부분에서는 이 선언에 대한 나의 선입관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여러 계기로 인.. 2018. 2. 14.
A 없는 A - 이고르 홀린의 시집 『서정시 없는 서정시』 A 없는 A- 이고르 홀린의 시집 『서정시 없는 서정시』 - 이 종 현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두 달 전 를 처음 연재하면서 삽기르의 친구 이고르 세르게예비치 홀린(Игорь Сергеевич Холин, 1920-1999)의 시를 읽어보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홀린의 시들이 한데 모여 있는 선집을 중고거래로 구해서 읽어보았습니다. 300쪽 조금 넘는 길지 않은 책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큰 고민이 듭니다. 도대체 이 시들을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할까? 상징주의 시를 읽듯 시어가 상징하는 바를 추적하며 읽어야 할까? 아니면 아방가르드 시를 읽듯 시인이 만든 신조어가 어떤 효과를 일으키려는 것인지 가늠해야 할까? 재미있는 시들은 많은데 이걸 어떤 식으로 풀어내야 할지 출구를 찾지 못했습니다. 웹진 인-무브의 .. 2018. 2. 13.
여섯 번째 엽서 여섯 번째 엽서 최원 | 독립연구자 안녕하세요? 참 오랜만에 엽서를 띠웁니다. 그 동안 개인적으로 여러 사정들이 겹치면서 엽서를 쓸 여유를 좀처럼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오래 엽서를 드리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려 뭐라도 좀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지난번에 약속드렸던 내용의 엽서를 쓰진 못하게 됐을 뿐 아니라, 더 나쁜 것은 저 자신의 글도 아닌 데리다의 논문 한편에 대한 발제문을 보내드리는 정도밖에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발제문에서 요약하고 있는 「“발생과 구조”와 현상학」이라는 이 논문은 데리다의 『글쓰기와 차이』에 실려 있는 것으로 후설의 지적 여정에 대한 데리다의 설명이 잘 담겨 있는 논문이지요. 국역본에는 오역들이 상당히 있어서 .. 2018. 1. 28.
6화 우리집 살인마 6화 우리집 살인마 지영(국문학 연구자) 1. 대중문화 속 재벌들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대중문화 속에 재벌이 등장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감정적인 위안을 받으려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드라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 부절적한 욕망과 그에 대한 응징 등이 주된 서사를 이루었다. 드라마마다 한두 명의 부유층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들도 중소기업 정도의 경제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 시기 드라마에서 재벌은 말 그대로 ‘예외적인 존재’였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후반 이후가 되면 재벌은 ‘백마 탄 왕자’의 모습으로 가난하고 씩씩한 여주인공 앞에 자주 나타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형 여성과 강력한 재력을 지.. 2018. 1. 8.
기관차가 아닌 혁명에 대하여 기관차가 아닌 혁명에 대하여 고준우 / 학생활동가 지난 이야기들이 내가 학생운동에 들어서게 된 계기에 대해서, 사회를 바라보고 분석하는 틀을 갖춰나가는 과정을 다뤘다면 오늘은 그 학생운동을 직접 실천해나가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개인의 경험담이자 반성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운동과 조직의 현장에서 우리 모두가 대면하고 있는 (혹은 대면해야 할) 균열과 모순들의 증언이 될 것이다. 고려대학교 정치경제학연구회 수레바퀴 약 3년에 걸친 기간 동안 고려대학교 정치경제학연구회 수레바퀴는 내 활동의 중심이었다. 이론을 공부하고 사회에 적용하고 실천을 모색하는 일 모두가 수레바퀴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2014년 1학년 당시에는 수레바퀴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 2018. 1. 3.
<러시아 현대시 읽기>를 시작하며 - 겐리흐 삽기르의 시집 『목소리들』(1958-1962) 를 시작하며 - 겐리흐 삽기르의 시집 『목소리들』(1958-1962) - 이 종 현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지난 11월 17-18일, 모스크바의 러시아국립인문대학교에서 ‘삽기롭스키예 치테니야’라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직역하면 ‘삽기르 독회’ 정도가 될 텐데, 1928년 11월 20일에 태어난 러시아 시인 겐리흐 베니아미노비치 삽기르(Генрих Вениаминович Сапгир, 1928-1999)를 기리며 매년 이맘때쯤 여는 심포지엄이었습니다. 창피하지만 저는 ‘삽기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할 때도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심포지엄에는 생전에 삽기르를 알던 할머니, 할아버지 문인들이 와서 그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그의 시로 만든 노래를 틀기도 했습니다. 삽기르의 법.. 2017.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