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의 정치: 들뢰즈의 루소 강의 (4/4)

 

《실재의 정치》

: 들뢰즈의 루소 강의

 

 

 

질 들뢰즈 지음

황재민 옮김

 

 

 

 

 

 

< 차 례 >

영역자 서문

1. 세 가지 자연 상태 개념

2. 《신엘로이즈》 :미덕, 객관성, 위계적 단계들

2.1. 단계 1 : 영혼(â̂me; soul)의 기원적 선의

2.2. 단계 2 : 자연적 선의 또는 미덕에 대한 사랑

2.3. 단계 3 : 미덕 그 자체

2.4. 단계 4 : 지혜

3. 《사회계약론》과 《에밀》은 평행하다

4. 자연 상태

5. 루소에게서 ‘자연’의 의미

6. 자연 상태는 현실인가, 허구인가?

7. 루소 저작의 통일성 (I)

8. 어떻게 자연 상태를 벗어나는가?

8.1. 자연 상태에서 야생의 상태로

8.2. 도덕성과 자유의 도래

8.3. 기만, 악의, 양도/소외

8.4. 이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는가?

9. 루소 저작의 통일성 (II)

10. 사회 계약

10.1. 주권자는 환원 불가능하다

10.2. 주권자는 어떻게 분할 불가능하게 되는가?

10.3. 계약의 실정적 특성은 무엇인가?

10.4. 의무, 총체성, 즉각성

10.5. 왜 주권자가 일반 의지를 구성하는가?

10.6. 일반 의지는 무엇을 바라는가?

10.7. 루소의 시민법 이념

 

 

 

 

 

 

10. 사회 계약

 

16세기 법학자들은 계약을 두 당사자들, 곧 우두머리가 되는 한 당사자와 이에 종속되는 다른 한 당사자 간의 관계로 만든다. 따라서 주권자는 분할된다. 쟁론들을 평결할 제3의 심급이 필요해진다. 권력도 주권도 나누어지게 된다. 루소에 따르면 이러한 파악 방식은 사회와 정부/통치(gouvernement)를 혼동한 것이다. 루소에게 모든 통치는 그보다 앞서는 결사를 전제하고 있다. 《사회계약론》 1부 5장 참조. 수장에 대한 신민들(sujets)의 복종은 이미 주체(sujet)로서의 인간의 구성, 곧 하나의 결사를 전제한다. 만약 그 복종이 계약이라면 이 계약은 최초의 것이 아니다. 《사회계약론》의 논의 흐름 안에서는 결사 없는 복종이 불가능한 것이다. 3부 16장 참조.

주권은 양도 불가능하다. 법학자들은 반대로 말한다(푸펜도르프). 법학자들에게 주권이란 복종 속에서 양도되는 것이다. 루소가 보기에 주권이 양위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증여나 매매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다. 만약 증여라면 그것은 강제된 것이거나 암묵적인 것이거나(1부 1장) 자발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매매로 이뤄진다고 해도 강제된 것이거나 암묵적이거나 자발적인 것이다.

강제되거나 암묵적인 증여라는 원천은 아무런 권리도 지니지 못한다. 그 증여가 자발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순전히 광기일 뿐이다. (이처럼 자신의 자유를 내준 인민은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매매라고 할 것 같으면 그러한 자유가 안전과 교환된다고 할 텐데, 루소는 그것이 통치에 관한 오독일 뿐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제 통치는 주권자에 상당하는 것 내지는 주권자의 위탁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통치 행위들은 일반법을 미리 전제하고 있는 특수한 행위들로 정의될 수 없다. 통치와 동격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위임(commission)뿐이다. 통치 행위들은 주권자의 유출물들이다. 통치는 주권자에 근본적으로 종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주권자는 자신에게 종속되는 하나의 심급에 양도될 수 없다.

주권자의 양도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주권은 입법권을 양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자기를 대표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주권은 대표 속에서 양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1부 2장). 주권은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대표될 수 있다. (3부 15장에서 루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권이 양도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이유로 주권은 대표될 수 없다. 주권은 일반 의지로 이루어지며 의지는 대표되지 않는다.” {최석기 옮김, 《인간불평등기원론/사회계약론》, 동서문화사, 2007, 244쪽.})

 

통치가 주권의 위임에 불과하기에 주권을 제 것으로 전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표자들은 인민의 위원들에 불과하기에 주권을 제 것으로 전유할 수 없다.

통치자들은 대행자들(commissionnaires) 내지는 위원들(commissaires)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의지하기의 능력이 아닌 (법에 따르는 요건을 규정하는) 판단의 기능만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의원들 역시 판단의 기능만을 가진다. 의원들은 일반 의지를 명확히 하는 법률들은 구상한다. 이러한 법률들은 의원들이 의무적이고 실효적인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가언적인 것들이다. 오직 주권자들만이 의원들이 만든 법안들에 대한 결정권을 쥔다.

(입법부로서) 의원들은 법률들을 제출하고, 그것을 비준하는 것은 오직 주권자 인민이다. 그러므로 영국 인민이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영국 인민은 의원들을 선출할 때만 자유롭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대표자들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절대 군주정에 대항해서, 대의적 통치들에 대한 비판 속에서 루소가 드는 논거들이다.

 

입법과 관련한 고대 도시국가의 상황은 입법자가 제안하고, 인민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루소는 그것을 용감한 통치라고 말한다. 대표자들이라는 발상은 루소가 보기에 봉건적 발상이다. 대의제 의회들은 봉건주의자들이 군주정에 대항한 투쟁에서 취한 수단이었다.

고대의 입법부는 작은 도시국가들과 시민들이 가진 여유를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폴란드의 통치에 관한 고찰들》에서 루소는 그러한 큰 국가를 위한 의원 대표제를 구상한다. 물론 잦은 선거를 통해, 또한 재선될 수 있는 자격에 관한 규칙들을 강력히 준수함을 통해, 요컨대 공적 평가(compte-rendu public)를 통해 의원들을 통제한다는 조건에서다. 이러한 수단들을 통해 의원들이 인민의 위원들이라는 그 직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민이 지도자나 대표자들을 갖게 됨과 동시에 인민의 양도 비슷한 것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10.1. 주권자는 환원 불가능하다

 

주권자는 한 개인이나 여러 개인들로 이뤄진 한 집단으로 환원 불가능하다. 

 

논거 1 : 논쟁적인 논거 (Lettre à le Marquis de Mirabeau)

 

논거 2 : 주권자 그 자체를 구성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주권자를 일반 의지로서 구성한다. 이러한 의지가 특수한 의지와 일치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은 본성상 우연한 것이다. (《사회계약론》 1부 1장)

 

논거 3 : 주권자가 만약 개인이라면 양도 가능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주권자는 추상적이고 집단적인 실존만을 갖는 도덕적 인물이다. (《주네브 수고》 참조.)

 

 

 

10.2. 주권자는 어떻게 분할 불가능하게 되는가?

 

주권자는 그 대상에 있어 분할 불가능하다. 

 

홉스에게 주권자는 그 원리에서 분할 불가능하다. 홉스의 계약은 전체가 어떤 제3자의 신민이 되는 행위이다. 계약에 가담하지 않는 그 제3자가 주권자이다.

주권자는 계약을 체결한 바가 없기 때문에 신민들이 그를 거역할 수 있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대표될 수도 없는 주권자의 양도 불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홉스는 주권자를 한 인물이나 여러 인물들로 이뤄진 하나의 집단으로 환원한다. 주권자의 분할 불가능성이 구별되는 여러 권력을 내포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아니다. 주권자가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모든 권력들을 그의 손아귀에 넣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그 원리에서 분할 불가능한 주권자가 그 대상에 있어서는 분할 가능한 것이 된다.

루소는 《사회계약론》 2부에서 이러한 테제를 비판한다.

루소에게 주권자는 절대적으로 분할 불가능하다. 즉 주권자는 “단적이고 하나이다(simple et une).”《사회계약론》 3부. {최석기 옮김, 《인간불평등기원론/사회계약론》, 동서문화사, 2007, 241쪽.} 

주권자의 대상은 단 하나의 것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법이다. (홉스가 주권의 권력들이라 칭하는) 전쟁이나 평화를 결정하기 등등은 선결 조건으로서 입법(legislation)을 전제하는 통치 행위들일 뿐이다.

 

이로부터 나오는 결론들 :

­ 그러니까 계약은 복종 행위가 아니다.

­ 계약은 전체가 제3자의 신민이 되는 행위가 아니다.

­ 계약은 통치에 있어 가능한 양도나 의원들에게 있어 가능한 대표가 없이, 전체가 주권자로 구성되는 행위이다.

­ 이처럼 파악되기 위해서는 계약이 당사자들 간의 관계로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루소는 자신의 모든 선학들에 반대된다. 아마도 스피노자 정도가 예외일 것이다.)

 

사회계약론

 

10.3. 계약의 실정적 특성은 무엇인가?

 

만약 우리가 계약을 관계로서 제시한다면, 그것은 공중과 특수자 내지는 신민과 주권자 간의 관계를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인민, 곧 공중은 계약에 앞서 미리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루소에게 이는 잠정적인 표현일 뿐이지 가장 심층적인 표현은 아니다.

《사회계약론》 2부 4장 제2단락에 붙은 주석을 참조할 것. 여기서 루소는 용어들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의 어려움을 강조하고 있다. {최석기 옮김, 《인간불평등기원론/사회계약론》, 동서문화사, 2007, 208쪽.}

 

세 가지 불변항

­ 특수자, 개인 또는 (사적인) 인간

­ 신민/주체(sujet)

­ 시민

 

이 세 개의 용어는 상호 치환 가능하다. 《사회계약론》1부 7장 제1단락.

매개항은 두 가지 관계 하에서 고찰되는 개인이다. 즉 개인은 신민이자 주권자의 일원이다.

 

제2단락에서는 신민이 매개항으로서 두 가지 관계 하에서 고려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계약이란 특수자를 어떤 하나의 관계에서는 신민으로서, 다른 하나의 관계에서는 시민으로서 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는, 신민은 주권자에 대하여 특수자로 취급되고, 특수자, 곧 개인에 대하여는 주권자의 일원으로서 취급된다.

따라서 계약은 상호 치환 가능한 세 가지 항들을 개입시키고 있다. 매개항이 두 가지 관계 하에서 취급되어야 한다.

 

첫 번째 가정에서는 매개항이 개인이다.

개인은 주권자에 대하여 스스로를 신민으로 구성한다.

개인은 특수자들에 대하여 스스로를 주권자의 일원으로 구성한다.

궁극적으로는 신민/주체(sujet)만이 이중의 관계를 갖는다. 우선은 주권자에 대하여 신민이고, 그 다음엔 신민이 주권자의 일원이다. 따라서 신민이 매개항인 셈이다. 계약의 토대가 되는 행위는 개인이 신민/주체가 됨과 동시에 주권자의 일원이 되는 행위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노예일 것이다.)

 

점차적으로 심층으로 들어가는 사회 계약의 세 가지 정식이 있다. 

 

계약이란

­ 두 가지 항들 간의 관계이다.

­ 세 가지 항들을 통해 밝혀진다.

• 두 가지 관계 하에서 취급되는 신민/주체 그 자체이다.

 

 

 

10.4. 의무, 총체성, 즉각성

 

계약으로 인해 의무가 생겨난다. 누가 의무를 지는가? (《사회계약론》 1부 7장) 개인은 아니다. 법적으로 본다면 개인에게 의무 지울 수는 없다.

주권자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주권자는 자신의 실존 조건 외에, 다시 말해 자신의 존재 조건을 규정하는 법 외에 다른 아무것에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주권자 자체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의무를 가질 수 없다. “주권자가 존재하도록 하는 행위를 불이행한다는 것은 주권자 스스로가 무화한다는 말일 것이다”(《사회계약론》 1부 7장). {최석기 옮김, 《인간불평등기원론/사회계약론》, 동서문화사, 2007, 171쪽.}

의무를 따르게 되어 있는 것은 오직 신민/주체뿐이다. 신민만이 의무의 조건이 되는 두 가지 관계들 아래에서 포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무의 원천이 되는 무엇인가? 그것은 “의무를 지는 자의 자유로운 약속(engagement)”이다. ｢산에서 쓴 편지｣ 중 여섯 번째 편지. {김중현 옮김,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 한길사, 2007, 371쪽.}

의무를 질 수 있는 것이 가능한 항은 신민뿐이다.

이와 같은 의무의 원천을 제외한 모든 의무의 원천들을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이 약속이라는 행위의 본성 : 그것은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곧 총체성(totalité)과 즉각성(instantanéité).

《사회계약론》 1부 6장 참조. 그 행위는 전면적(totale) 양도이다.

 

­ 전면적인, 다시 말해

ㆍ 완전한 : 전체가 양도의 대상이 된다.

ㆍ 보편적인 : 개개인마다 완전하게 양도한다.

 

양도가 완전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을 위한 양도가 아닌 까닭이다. 만약 타인을 위한 양도라면, 자유는 양도 불가능하므로 전면적 양도일 수가 없을 것이다.

양도는 하나의 전체를 구성함에 있는 것이지, 타인에 대해 의존하게 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개개인은 동일한 조건에 따르는 것이다. “각각이 전체에 대하여 스스로를 내주기 때문에 모두에게 평등한 조건이다.” 1부 6장. {최석기 옮김, 《인간불평등기원론/사회계약론》, 동서문화사, 2007, 169쪽.}

누군가는 좀더 많이 양도하고 누군가는 좀더 적게 양도하는 등(즉 각각이 전면적으로 양도하지 않는 경우, 각각이 무언가를 간직하는 경우 등등)의 개인들 간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전면적 양도의 수준에서 이미 평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 즉각성 : 《사회계약론》 1부 6장. “결사는 즉각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단체(corps)를 생산한다.”

내가 스스로를 양도하는 그 즉시, 나는 주권자를 구성하고 전체를 되찾는다. 그 밖에 달리 있을 수 있는 일은 없다. 주권자는 다른 형태 하에서 스스로에게 전체를, 심지어 그 이상을 복원시켜 준다(restitue)(1부 9장). 가령 주권자는 개인이 주권자에게 양도한 소유지의 합법적 점유를 보장한다. 주권자는 그 가운데 공동체에 필요한 것만을 간수할 뿐이다. 거기서 주권자의 도덕적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주권자의 실존 조건이다. 주권자가 이러한 복원(restitution)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주권자는 파괴된다.

“그러나 주권자만이 {공동체에 필요한 것에 관한} 그러한 중요성에 대한 심판자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최석기 옮김, 《인간불평등기원론/사회계약론》, 동서문화사, 2007, 185쪽.} 오직 주권자만이 공통의 이익에 속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상황, 정황들, 사회의 형태론(morphologie)에 따라 매우 가변적이다.

소유자들에 대한 이러한 부분적 복원/복권(restitution)의 반대급부로 조세의 징수가 있을 것이다.

소유자는 공공 재산의 관리인일 뿐이다. 그가 소유자로 존재하는 것은 주권자의 복원 행위에 의해서만이다. 직접적 복원은 사적인 소유물과 사적인 소신, 다시 말해 신민 전체의 이해관계와 관련 없는 사적인 종교를 대상으로 한다. (《사회계약론》 마지막 장{4부 8장 ｢시민 종교에 대하여｣}.)

 

 

 

10.5. 왜 주권자가 일반 의지를 구성하는가?

 

계약은 필연적으로 일반 의지를 형성한다.

공통의 이익과 일반 의지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공통의 이익이란 곧 주권자에 대하여 신민이 갖는 이익이다. 이는 내가 스스로를 신민으로 구성되도록 하는 행위, 곧 계약에 준하는 것이다. 전체는 평등한 조건에 따름에 따라 동일한 이익을 가지게 된다. 평등의 삭제는 공통의 이익 전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다만 나는 신민 각자가 그 일원이 되는 주권자에 대하여, 즉 개인들에 대하여 하나의 신민/주체로서 스스로를 구성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각자는 입법자이다. 이때 우리가 이끌어낸 것은 더 이상 평등이 아니라 자유, 즉 주권자가 개인들에 대하여 바라는 바의 그것이다. 일반 의지란 주권자의 일원으로서, 즉 시민으로서 각자의 의지인 것이다.

“의지를 일반화하는 것은 바로 공통의 이익이다.” 이로써 루소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공통의 이익은 일반 의지를 구성하는 것이 아닌, 일반 의지의 가능성 조건이다. 주권자의 형성은 개인이 신민이 되는 행위를 조건으로 갖는다. 공통의 이익을 정의하는 이러한 행위 없이는 주권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일반 의지 역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루소의 ‘공리주의(utilitarisme)’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인가?

공리(功利)/효용/유용함(utile)이라는 통념은 두 가지 의미로 드러난다.

 

­ 하나의 능력(faculté)은 오로지 그것이 유용할 경우에만 발전한다. 필요/욕구는 그러한 능력을 창조할 수 없다. 효용은 능력을 실현하는 역할만을 한다.

 

­ 계약에 의한 공통의 이익은 일반 의지의 원리가 아닌, 일반 의지의 가능성 조건이다.

 

 

 

신엘로이즈

 

 

 

10.6. 일반 의지는 무엇을 바라는가?

 

일반 의지는 신민들 전체가 놓인 조건의 평등 속에서 자신의 조건을 발견한다. 일반 의지는 어떤 선호에 의해서는 규정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즉 그 밖에 다른 것에 의해서는 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 의지는 자유 의지이다(칸트). 일반 의지는 오직 법만을 원할 수 있다.

 

법은 개인들과의 관계를 무규정적인 것으로 남겨둔다. 법은 입법자의 작업에 의해서만 종별화될 수 있다. 법 그 자체는 시민으로서의 신민/주체가 갖는 의지의 형식일 뿐이다. ｢산에서 쓴 편지｣ 중 여섯 번째 편지.

마찬가지로 1767년 Lettre à Le Mercier de la Rivière도 참조할 것 : 인간 위에 법을 놓는 통치 형태를 생각해내야 한다.

《사회계약론》 3부 1장 : 두 가지 사태를 구별해야 한다.

­ 의지가 그러한 행위를 원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칸트의 도덕적 가능성). 이는 입법권이다.

­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는가의 물음, 즉 우리가 그것을 달성할 가능성을 가지는가의 물음(칸트의 물리적 가능성). 이는 집행권이다.

 

일반 의지는 법을 통해 규정되기 때문에 물리적 가능성 안에서 행위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행위를 고려하는 것이다.

법에는 의무가 결부된다. 법이라는 말은 명령적(prescriptif) 의미로써만 엄밀하게 사용될 수 있다.

내가 신민이 되는 행위가 곧 의무의 원천이라면, 그 법은 시민법일 수밖에 없으므로 계약 속에 그 기초를 가지는 것이다.

 

이는 충분한 답변인가?

 

위와 같은 답변은 루소가 자연법풍의 발상을 격렬하게 비판함을 내포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향해야 할 곳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다.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락된 것인가? 루소는 이 물음에 대해 자연법 개념은 오해로 가득한 개념이라고 말함으로써 답변을 피한다.

하지만 루소가 자연법을 내세우면서 그것이 계약 자체보다 상위의 것이라고 말하는 텍스트들이 존재한다.

 

­ 루소가 1758년 10월에 쓴 편지 : 루소는 주권자와 무관한 세 가지 상위의 권위들을 인정한다. 그것은 신, 자연법, 명예(honneur)이다. 충돌이 빚어진다면 주권자가 물러서야 한다. 《신엘로이즈》에서 볼 수 있듯이 위계는 자연법(사랑), 명예, 신의 순으로 높아진다. (명예에 관해서는 제1부 생프뢰의 편지에 담겨 있다.)

 

­ ｢산에서 쓴 편지｣ 중 여섯 번째 편지 : “계약이 자연법들에 반하는 것이 아님을 입증해야 합니다.” {김중현 옮김,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 한길사, 2007, 371쪽.}

 

《에밀》 2부 : “자연과 질서의 영원한 법이 존재한다. 현자에게는 그것이 실정법을 대신한다.” {이는 2부가 아니라 5부 후반부에 나오는 구절이다. 타자 실수로 보인다. 이용철ㆍ문경자 옮김, 《에밀 또는 교육론》, 2권, 한길사, 2007, 502쪽.} 현자는 사회를 벗어난 자이다.

 

어떻게 계약이 시민법과 의무가 발원하는 제1원리가 되면서도 자연법이라는 그보다 높은 심급에도 관계하는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 도입부 참조.

루소에게 자연법 비판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 그것은 우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등의) 고대인들을 겨냥한다. 고대인들에게 자연법이란 곧 올바른 이성(recta ratio), 즉 실재들(choses)이 자체의 고유한 목적들에 부합함이다.

루소가 보기에 이들은 법이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한다. 그들이 이해한 법은 자연이 명령하는 법이 아닌, 자연 그 자체에 요구되는 법이었다. 그런데 법의 개념은 자연의 실존 조건이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명령이다(《인간 불평등 기원론》서문).

그러한 명령적 특성은 근대인들이 파악했다. 근대인들에게 법은 지성을 지닌 자유로운 존재에게 명해진 규칙이다.

자연법은 그렇게 명령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에 대해 적용된다.

 

홉스와 더불어서 자연 상태는 더 이상 완전성의 질서가 아닌, 힘, 정념, 동기의 체계가 된다. 법은 이제 그러한 정념을 지닌 존재에게 장애가 되는 의무가 된다. 자연 상태는 힘들의 체계이며, 그러한 힘들에 상응하는 자연적 권리들을 동반한다. 이러한 구조에 두 번째 구조, 즉 자연법의 구조가 덧붙는다. 이 법의 동기는 폭력적 죽음의 공포이며, 이러한 공포는 이성의 원리 자체이기도 하다. 법은 규칙을 명령한다. 이 규칙이 없다면 내 생명을 보존할 수 없을 그러한 규칙인 것이다. 그렇지만 자연법은 가언적으로만 명령할 수 있다. 즉 자연법은 다른 이들 역시 그 법을 원한다는 조건에서 생명 보존의 수단을 줄 뿐이다. 이로부터 나오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즉 어떻게 이 법이 의무적인 것이 되는가? 그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모든 개인들이 상호 계약을 맺어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진 권력들을 계약에 함께하지 않은 주권자에게 위탁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자연법은 시민법이 된다.

루소에 따르면 근대인들의 잘못은 자연법을 자연 상태 속에 들여놓는다는 점에 있다. 근대인들은 자연 상태에서 이미 이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를 가정하고 있다. (이성이 없으면 법도 없기 때문이다.)

루소는 법의 명령적 특성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근대인들은 법이 무엇으로 성립하는지를 보지 못했다. 이유는 법이 가언적인 것에 머물기 때문이다.

루소에게 자연법은 자연 상태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자연법은 자연 상태로부터의 잠재성들의 발생론적 발전이기 때문이다.

이 루소의 자연법은 사회를 전제한다. 이는 사회 내의 객관적 정황들 속에서만 잠재성들이 실현된다는 의미이다. 가령 정의감은 그것이 유용한 경우에만, 달리 말해 사회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실현된다. 그렇더라도 사회가 자연법 발전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계약은 자연법과 관련될 수밖에 없다. 시민법의 절대적 기초인 계약은 자연법으로 귀착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자연법이 전면적 양도임과 동시에 즉각적 복원인 까닭이다. 계약이 자연법과 상치한다면 계약은 파기된다.

 

 

 

10.7. 루소의 시민법 이념

 

법은 주권자의 행위 자체, 일반 의지의 직접적 표현이다. 법령(décret)과 법(loi)은 본성상의 차이가 있다.

법은 전체로부터 모두에게로 나아간다. 즉 법은 신민들/주체들을 단체(corps)로, 상황들을 추상적인 것으로 고려한다. 그러니까 법은 주권의 행위인 것이다.

법령은 인물들을 명명한다. 즉 신민들/주체들을 특수한 것으로, 행동들을 구체적인 것으로 고려한다. 이는 통치 행위이다.

법은 통치 형태, 곧 모든 신민 일반을 위한 통치에 이르기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들을 규정한다. 

 

주권자와 일반 의지 간의 관계. 《사회계약론》 3부 4장 참조.

주권자는 “공통의 자아”이며, “감수성을 지닌 생명”이다.

일반 의지는 그러한 생명에 상응하는 운동이다.

사회 계약이 주권자의 형성이라면, 일반 의지는 그 주권자가 스스로를 보존하는 형태이다.

사회 계약은 이미 일반 의지인 것이다. 사회 계약은 형식적 의지를 정의한다. 계약 그 자체는 의지를 일반화하고 형식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권자는 이미 형식적 의지이다. (특수 의지가 항상 선호들을 추구한다면, 일반 의지는 보편적 선(bien)을 추구한다. 이는 전칸트적 구분이라 할 수 있다.)

 

일반 의지는 무엇을 바라는가? 일반 의지가 바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달리 말해 형식적으로 규정되어야만 한다. 곧 그것은 자유와 평등이다. 주권자는 일반 의지가 자유와 평등을 바라는 한에서의 일반 의지이다.

법이 형식적이라는 말은 법이 법령이 돌보고자 하는 인격들과 관계에 있어서 그 인격들을 사상(捨象)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통치는 하나의 판단 능력이다. 즉 법 아래에 관계하는 경우들에 대한 규정.)

하지만 일반적으로 규정한다는 의미에서 법이 아무리 형식적이라 할지라도, 자유와 평등의 규정이 아닌 법은 없다는 점에서는 형식적이지 않다.

예컨대 가장 나은, 가장 좋은 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실재들 및 대상들과의 관계를 사상할 수 없다. 루소가 보기에 우리로 하여금 인격들과의 관계를 면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실재들과의 관계이다.

따라서 법은 우리가 주어진 사회의 객관적 상황(자원들, 인구 등등)을 헤아리는 경우에만 완전히 규정된다.

법은 인격들과의 관계에 대한 사상/추상에 의해서는 형식적이지만, 실재들과의 관계를 사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형식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의 법을 규정하는 데서 일반 의지로는 충분치 않다. 의지의 형식적 규정에는 주어진 사회의 객관적 정황들이라는 내용이 덧붙여져야 한다.

그러니까 일반 의지는 선을 바라지만, 그 선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사적인 인간의 경우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일반 의지는 형식적이기에 맹목적이다.

 

따라서 일반 의지는 어떤 비범한 지성에 호소해야 한다. (이는 능력 심리학에서 사회적 평면으로의 전위(transposition)이다.) 즉 바깥에서 의지를 명확하게 만드는 입법자의 지성에 호소해야 하는 것이다. 입법자가 없다면 일반 의지는 의지가 바라는 것을 형식적으로만 인식할 뿐이다. 일반 의지는 물질적으로 규정되기 위해 입법자를 필요로 한다. 좋은 법은 특수한 인격들―형식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기와 더불어, 구체적 상황들―물질적 측면―에 적응하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법은 의지에 준하는 형식과 입법자에 준하는 질료의 합성물이다.

 

따라서 이는 그 형식에 입각한 법의 선험적 연역의 물음일 수가 없는 것이다.

 

 

 

 

프랑스 장자크루소 섬에 있는 철학자의 집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