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랑종>에 드러나는 신자유주의가 여성의 몸을 좀비로 만드는 방법
배경진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이 글은 영화 <랑종>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는 “공포는 인간의 고통 속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엄숙하고 항구적인 것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 그 고통의 은밀한 원인과 결부시키는 감정”[1]이라 서술되어 있다. 공포란 결국 인간의 고통의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감정인 것이다. 독일의 영화학자 안톤 캐스는 공포영화란 안전한 거리에서 관객이 쇼크나 죽음 직전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다시 경험할 수 있도록 트라우마를 재현함으로써 작동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공포 영화를 보면서 ‘무서움’이나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공포 영화가 우리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이 고통의 심연까지 파고 들어 이를 재현해야 한다. 이를 다시 말하면 공포영화란 우리 무의식 속 트라우마의 반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팅 더 씬: 아시아 금융위기는 어떻게 동시대 태국(한국) 호러 영화를 형성했는가? Setting the Scene: How Did The Asian Financial Crisis Shape Contemporary Thai(South Korean) Horror?’[2]라는 글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근래 역사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선정하고 태국을 필두로 발생한 아시아 금융위기라는 경험이 어떻게 태국과 한국 내 영화 산업에 ‘공포 영화’라는 방식으로 드러나게 됐는지를 분석한다. 위 기사를 쓴 마테우스 추는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태국에서 제작된 공포 영화 <낭낙>[3]을 금융위기라는 ‘근대의 유산’을 버리고 전근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이 반영된 영화라고 보았다. 다음으로 1998년 개봉한 한국 공포 영화 <여고괴담>[4]은 두 여자 주인공이 외부 세력으로 인해 갈라질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의 상황을 상징한다고 보고 이를 IMF의 개입이 있기 훨씬 전의 통일된 대한민국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는 영화로 읽어냈다. 여기에 더해 글쓴이는 두 작품 모두 한을 품은 여성 귀신이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것이 금융위기로 인해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더욱 열악한 사회적 환경에 놓이게 된 여성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분석은 정치 경제적인 사안이 어떻게 ‘공포 영화’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지나가고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류는 과도한 경쟁과 막대한 빈부격차, 배제와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우리의 무의식에 남긴 상흔과 욕망을 잘 담고 있는 영화 중 하나로 나홍진이 각본을 쓰고, 반종 피산다나쿤이 연출한 2021년 영화 <랑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서술한 <낭낙>이나 <여고괴담>은 금융위기 이전의 시기를 향한 염원이 담긴 영화라면, <랑종>은 신자유주의의 통치 전술[5]과 이것이 남긴 두려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다. 이 글에서는 <랑종>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가 결국 의식도 의지도 없는 좀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리는 과정을 통해 이것이 담지하는 신자유주의의 특징과 욕망, 이것이 남긴 트라우마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한국과 태국 감독의 만남이 가지는 의의
한국에서는 IMF로 통용되고 있는 1997년의 외환위기는 ‘아시아 금융위기’라는 큰 자장 안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 중 하나이다. 1997년의 금융위기는 태국에서부터 촉발되었는데, 이를 태국의 국물 요리에 비유하여 ‘똠얌꿍 위기’[6]라고도 부른다. 태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고정환율제를 기반으로 단기외채를 끌어 쓰는 방식의 투자 및 부동산 개발을 추진했다. 이러한 경제 기조가 일본 엔화 약세, 떨어지는 수출 경쟁력과 맞물려 태국이 달러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들었고 결국 바트화의 가치가 폭락하게 된다. 바트화 가치 폭락의 불씨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거쳐 대만, 홍콩으로 번지게 되고 홍콩에서 많은 외환을 조달하던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로 인해 나란히 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 한국과 태국은 이후 유사한 역사적 경로를 지나게 된다.
한국의 경우 시장경제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동시에 강조한 김대중이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1998년 정식 취임했다. 태국에서는 농민과 빈민을 위한 복지정책을 강조한 탁신 친나왓이 2001년 총리로 선출되었다. 이 두 리더의 대대적인 경제 개혁 및 각 나라 국민의 희생을 통해 한국은 2000년 12월 4일, 태국은 2003년 7월 31일 IMF 구제금융 자금을 전액 상환하였다.
이 두 나라에 대한 IMF 체제는 종료되었음에도 이것이 몰고 온 불안정한 일자리와 양극화의 영향은 여전한 상황이다. Hewison, K., & Tularak, W.(2013)는 ‘태국과 불안정한 노동: 진단 Thailand and Precarious Work: An Assessment’[7]에서 태국의 “불안정 노동” 즉, 비정규직 노동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며 이는 “신자유주의 혁명”의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위 글에 따르면 고용불확실성으로 대두되는 불안정 노동은 태국 사회보장제도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으며, 소득 수준 및 사회의 양극화 또한 심화된 상태다. 이러한 상황을 드러내는 간접적인 예시 중 하나로 급감하는 출생률을 들 수 있는데 한국만큼이나 태국의 출생률 또한 급감하고 있는 추세이다.[8] “애 키우는 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태국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나?” ("Kids Are Too Expensive!” How Thailand Became One Of The World's Fastest Aging Countries)[9] 라는 영상 속 한 여성은 “저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요. 제 인생은 이미 힘들거든요.”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자기 자신도 부양하기 어려운 태국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관한 증언이라 할 수 있으며,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한국의 청년층을 통해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이렇게 유사한 사회경제적 구조를 가진 두 나라의 감독이 만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단순히 한-태 합작 영화가 탄생했다는 것 보다 더 큰 의의를 지닌다. 이 두 감독의 만남은 <랑종>이라는 공포 영화를 통해 유사한 IMF 구제금융 극복 경로를 지나온 한국과 태국의 무의식 속에 공통으로 잠재된 모종의 두려움과 어떤 욕망을 읽어낼 수 있도록 해준다.

<랑종> 에서 드러나는 ‘원시적 열정’
<랑종>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다. 다큐멘터리 팀이 태국 이산(อีสาน, Isan) 지역에서 '바얀신'을 모시는 무당 '님'을 촬영하던 도중, '님'의 조카 '밍'에게 신내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카메라에 담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기괴하고 잔인한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영화의 배경이 ‘방콕’이 아닌 ‘이산’ 지역인 점, 그리고 두번째로 영화가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밍’에게 진짜로 빙의 된 존재의 정체이다.
먼저, ‘이산’은 태국의 동북부 지역으로 코랏고원을 기점으로 메콩강이 흐르는 북쪽과 동쪽 지역을 포함하며 라오스, 캄보디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태국 영토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거대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산 지역은 태국에서 발전이 가장 더딘 곳이다. ‘태국의 불평등: 이산에 관한 신화와 현실 THAILAND’S INEQUALITY: MYTHS & REALITY OF ISAN’[10]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이산지역의 빈곤율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수도 방콕의 월평균 소득이 45,707바트임에 반해 이산지역의 월평균 소득은 19,802바트에 그치는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다.[11] 역사적으로 중부 태국을 중심으로 한 산업화 및 경제 정책으로 인해 이산 지역은 상대적으로 더욱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태국의 경제 발전과 더불어 이산 지역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수도 방콕과 그 인근으로 모여 들어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 계급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산은 지역의 발전이 이루어 지는 대신, 중심부의 노동력 공급처가 된 것이다.
<랑종>은 이런 이산 지역을 영화의 배경으로 설정한다. 그중에서도 수풀이 우거지고 가장 외진 곳을 보여준다. 앞서 말했듯, 이산은 넓은 지역이다. 중부 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디었다 뿐이지 이산의 주요 도시에는 대학교도 있고 대형마트도 있는 말 그대로 도시다. 그런데도 영화는 대형마트 대신 개고기[12]를 파는 시장이 있는, 출퇴근을 위해 어딘가 낡은 쏭태우(สองแถว)[13]를 타야 하는, 집 주위에 넓은 논밭이 펼쳐진 곳을 배경으로 설정한다. 카메라는 넓은 이산 중에서도 아주 좁은 이산을 보여준다. 이는 이산 어느 지역의 실제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의도적으로 방콕이라는 대도시와의 괴리감을 드러내는 설정이기도 하다. 이는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씨네21과 한 인터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감독은 “이산 지역을 처음 찾았을 때 그곳의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나.”라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나 같은 방콕 사람들에게도 낯선 지역이라 관객에게 신선함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토속신앙과 무속신앙이 사람들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반영된 곳이기도 하고.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마을은 캄보디아 국경과도 인접한 곳이라 캄보디아 문화도 일부 섞여 있어 낯선 문화도 느낄 수 있었다.”[14]
이를 통해 감독이 의도적으로 토속신앙과 무속신앙이 생활 속에 반영된 “낯선 공간”을 찾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영화의 각본을 쓴 나홍진은 “원안을 쓰고 굉장히 습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울창한 숲, 포장되지 않은 도로의 이미지가 떠올랐다”[15]고 이야기한다. 토속 신앙과 무속신앙, 울창한 숲, 비포장도로의 이미지는 개발되지 않은 것, 원시적인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감독은 의도적으로 원시적인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원시적인 것을 찾아 헤매는 욕망에 관해 레이 초우는 『원시적 열정』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 바 있다.
“서양의 모더니스트가 향유하는 전지구적 명성은 비서양 민족의 작품을 엄청나게 전용한 결과 얻어진 것이며 비서양 민족은 인정받지도 못한 채 무명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논증한다. ∙∙∙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서양 모더니즘이라는 형식의 발명이 비서양의 땅과 사람들을 계속해서 원시화한다는 것(Primitivization)과 표리일체를 이룬다는 것이다. ∙∙∙ 이런 작품은 서양의 의미체계가 타자를 원시화함으로써 스스로를 근대화되고 고도로 테크놀로지화된 위치에 올려놓는 과정의 일부인 것이다.”[16]
다시 말해, 근대화된 주체라는 것은 근대적이지 못 한 타자를 설정하고 이를 계속해서 원시화함으로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서양과 동양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레이 초우는 중국 문학이 스스로를 근대적인 것의 위상에 올려놓는 데에도 원시적인 소재를 포착하는 “형식과 혁신의 원시주의 사이의 변증법”[17]이 작동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보자면 <랑종> 또한 스스로를 근대적이고 발전된 세상에서 온 주체로 세우고자 하는 욕망이 반영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레이 초우는 중국 문학에 의해 “∙∙∙ 포착되는 원시적인 소재는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계급 – 특히 여성 – 이며, 그것이 새로운 문학의 주요한 구성요소가 된다고 말한다.”[18] 다시 말해, 중국 근대 문학은 여성 및 아동과 같이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계급을 원시적인 존재이자 소재로 만들고 이를 탐구하며, 중국 문학을 근대적인 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랑종>에서도 ‘원시적인 것’으로 포착된 것이 비단 무속신앙이나, 우거진 숲뿐만이 아니다. 이산 지역의 무속 신앙에 관해 촬영하던 다큐멘터리 팀의 카메라는 신의 대물림을 촬영하겠다는 이유로 ‘밍’이라는 여성을 촬영 대상으로 설정하며 그녀를 집요하게 쫓아다닌다. 이 과정에서 ‘밍’의 생리혈이 흐르는 장면과 무분별한 성관계 장면이 다큐멘터리 팀의 카메라를 통해 그대로 송출된다. ‘밍’이라는 여성의 원시성이 두드러질수록 이를 관찰하고 있는 이들은 카메라 속 빙의 된, 피를 흘리는, 야만적인 여성과는 다른 어떤 근대적인 주체의 위치에 자리하게 된다. 여기에서 근대화가 이루어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 영화가 지속적으로 원시적인 타자를 만들어 내며 정립하고자 하는 “근대적 주체”의 모습은 과연 무엇이냐?”에 관한 물음이 생긴다. 이에 대한 해답은 영화가 ‘밍’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랑종>이 ‘밍’을 만들어 내는 방식과 신자유주의 통치 전술
영화가 ‘밍’의 모습을 통해 정립하고자 하는 주체의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공포 영화’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있는 트라우마를 재현해 주는 장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영화를 더 깊게 볼 수록 영화가 이토록 원시적인 것을 쫓아다니며 만들어 내고 있는 주체의 두려움과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밍’은 노동자와 일자리를 매개해 주는 인력사무소에서 일하던 평범한 여성이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빙의 현상으로 인해 고통받는 인물이다. ‘밍’의 몸에 빙의 되는 존재는 선을 상징하는 ‘바얀신’이 아니라 온갖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이다. 이 원한 깊은 귀신은 ‘밍’의 가족의 죄로부터 기인한다. 가족의 죄에는 신내림을 거부하고 개고기를 판[19] 어머니 ‘노이’의 영향도 있겠지만, 아버지 쪽 가문의 영향이 더욱 큰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영화 말미에서 등장하는 저주 인형에 ‘야산티야’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밍’을 괴롭히는 끔찍한 저주는 ‘밍’의 친가 ‘야산티야’ 가문을 통해 시작된다.
’밍’의 증조할아버지는 자신 밑에서 일하던 인부가 던진 돌에 맞아 죽는다. 할아버지는 공장이 부도나자 보험금을 타기 위해 공장에 불을 질렀고, 이것이 적발되자 음독한다. 불을 지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직접적인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불탄 공장 부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희생자를 기리는 듯한 수많은 추모물품이 공장 내부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화재로 인해 누군가 사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밍’의 퇴마의식을 진행하기 전 '밍’의 상태를 진단하던 퇴마사 ‘산티’에 의해 '야산티야’ 가문이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밍’의 친가 쪽 조상이 인부에게 돌 맞아 죽을 정도로 악덕했고, 사람이 있는 공장에 불을 지를 정도로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자본가였다는 점이다. 이런 자본가 남성의 악행에 의해 생겨난 끔찍한 저주는 ‘밍’이라는 여성의 몸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빙의 된 ‘밍’은 마지막 한 명 남은 카메라맨까지 모조리 죽이고 영화는 끝난다. 원혼에 의해 잠식된 ‘밍’은 자기 의지 하나 없이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부터 자기 삼촌의 갓난아기까지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여기까지 봤을 때, 영화는 악귀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를 야산티야 가문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사람 즉, 노동자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하게 봤을 때 영화는 노동자의 원한에 의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자본가 주체의 무의식을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봤을 때 “도대체 왜 ‘밍’이라는 여성의 몸을 빌려 전혀 죄 없는 아기나 동물 같이 약한 존재도 공격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원혼이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라면 그냥 가족 중 저주와 가장 연관이 깊은 어른 몇 명만 처리했어도 될 문제다. 혹은 이렇게까지 강력한 원혼이라면 굳이 ‘밍’의 몸을 빌리지 않아도 스스로 충분히 끔찍한 복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굳이 ‘밍’을 매개로 하여 악귀들의 사악한 복수를 보여주기 위해 가장 약한 존재까지 건든다. 이것의 원인은 이 영화가 어떤 사회적 분위기의 자장 안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들여다본다면 파악할 수 있다.

악귀에게 빙의 된 ‘밍’의 기이하고 괴상하며, 잔혹한 행위는 또다시 촬영팀의 카메라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밍’은 낮에는 엄마가 불러도 대답이 없고, 스스로 몸을 씻을 힘도 없이 무기력하게 있다가 온 가족이 잠든 밤에 활동을 시작한다. 집안을 어지르는 것은 기본이고, 생고기를 뜯어 먹거나 잠든 사람에게 몰래 다가가서 그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등의 행동을 한다. 카메라에 촬영된 ‘밍’의 이상행동을 지켜보던 삼촌은 “이렇게 미쳐 돌아다니면 어떻게 같이 사냐고?”라고 말하며 두려움을 호소하고, 밍의 엄마는 이런 딸이지만 내 딸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살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밍’의 이상행동과 더불어 이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밍’이 남성 자본가에 의해 생겨난 저주로 인해 고통받는 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밍’이 악 그 자체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구도는 문제의 원인 즉, 야산티야 가문의 악행은 드러나지 않게 하고 오히려 ‘밍’과 ‘밍’에게 퇴마 의식을 해주려는 이들 간의 대립만을 부각한다. 이는 현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통치 전술을 떠올리게 한다.
『내전, 대중 혐오, 법치』의 저자들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치를 내전에 비유하며, 시장의 질서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사회 내부에 서로 대립하는 집단을 형성해 서로 싸우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전술을 설명한다. “신자유주의적 폭력은 국가의 외부자로 지목된 공동체에 대항해 정동을 동원할지언정 그들에게 파시스트적 폭력을 가하지는 않는다”[20]. 신자유주의는 직접 폭력을 가하기보다는 국가의 외부자라고 여겨지는 이들을 향해 다른 이들이 공격을 가할 수 있게 교묘하게 집단을 조종할 뿐이다.
<랑종>을 다시 보자. 앞서 서술했듯, 영화는 ‘밍’을 이 지경으로 만든 야산티야 가문의 원죄를 파헤치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한 ‘밍’과 피해받는 ‘밍’의 가족, 악한 ‘밍’과 선한 신 ‘바얀’의 대립만을 보여준다. 밤마다 반복되는 밍의 기이한 행동을 찍은 장면은 ‘밍’이 악한 행동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일부러 놔두는 느낌마저 든다.[21] 악의 근본 원인은 저 멀리 뒤로 빠져 있고, 악으로 인해 피해보는 이들이 ‘밍’과 계속해서 대립한다.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이런 식의 서사는 신자유주의가 서로 대립하는 집단을 만들어 내는 방식과 유사하다. 예컨데 신자유주의 시대의 극우 정치인들은 취업난의 진짜 원인을 찾으려 하는 대신, “이주민이 원주민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라는 근거가 불충분한 서사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에만 집중한다. 이러한 수사는 “일자리를 빼앗는 나쁜 외국인”과 “외국인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불쌍한 원주민”의 구도를 만들어 내며 “우리”와 “너네”를 나눈다. 또한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구조를 들여다보기보다 노력하지 않고, 게으른 개인의 문제라는 식의 서사를 퍼뜨린다. 그러면 여기서 다시 ‘밍’에게 빙의된 존재가 누구인지 생각해보자. ‘밍’에게 빙의 된 것은 억울하게 죽은 노동자나 동물, 벌레의 영혼이다. 영화는 이런 ‘타자’의 영혼을 ‘밍’의 몸에 전부 욱여넣는다. ‘타자’가 체현되는 육체가 되어버린 ‘밍’은 생각도, 감정도 없이 모든 걸 파괴해 버린다. 이러한 모습은 악마 같은 타자들이 소중한 ‘우리’의 일상을 파괴하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모든 것을 없애 버린다는 식의 신자유주의 통치 전술로서 내전의 결과물과 유사하다.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의 통치 전략이 고스란히 내포된 영화로 원시적인 것을 탐구함으로써 스스로 근대적 주체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무의식에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자본가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점이다. 영화 속 자본가는 어디까지나 정면에 등장하지 않는, 구전 설화 같은 이야기로서만 등장한다. 자본가라는 속성은 오히려 탐구해야 할 대상에 더 가깝다. 앞서 레이 초우의 논의를 통해 말했듯, 주체는 주변에 있는 것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대상화하면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영화를 통해 “자본가적 주체성”이라는 것을 정립해 나간다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통치 전략이 어떻게 내부 집단을 만들어 내는지를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 지배자들은 장기간 지속되어 온 분열을 자양분 삼아 내부 집단 간의 갈등을 잘 키워 시민 간의 내전을 심화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획득한다. 이로 인해 분열하는 내부 집단은 기존의 노동자-자본가의 대립보다 훨씬 복잡하다.
“이러한 집단에는 우선 (군사적, 정치적, 상징적) 국가적 수단을 총동원하여 신자유주의 질서를 방어하는 연합한 과두지배자들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진보주의적’ 신자유주의와 ‘현대화’ 옹호 담론에 사로잡힌 중산층이 있다. 또 다른 집단으로는 권위주의적 국민주의에 포획된 불만에 찬 인민 계급과 중산층 일부가 있다. 마지막으로 과두지배자들의 공세에 맞선 사회적 결집 과정에서 형성되는 사회의 평등과 민주주의 개념을 고수하는 집단(특히 소수 민족, 성 소수자, 여성)이 있다.”[22]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더 이상 자본가-노동자, 남성-여성과 같은 단순한 이분법적 대립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세밀하게 분화된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타자를 탐구해 가면서 정립하고자 하는 주체에 관한 힌트는 바로 여기에서 얻을 수 있다.
정리해 보자면, <랑종>은 신자유주의의 교묘한 전략이 내포되어 있는 “공포 영화”이다. “공포 영화”는 한 시대를 강타한 끔찍한 사태가 남긴 트라우마가 담겨 있다. 따라서 <랑종>에는 삶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한 신자유주의의 상흔이 담겨 있다. <랑종>은 나와 다른 타자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레이 초우가 말하는 모종의 “근대적 주체”를 만들어 내는데, 이 주체의 모습은 자본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억압받는 소수자도 아니지만 신자유주의로 인해 고통받는 존재이긴 하다. 따라서 영화를 통해 만들어지는 “근대적 주체”의 모습은 타자-‘밍’에게 씐 억울하게 죽은 노동자, 동물, 벌레의 영혼-에 의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떤 내부 집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랑종>은 타자에 의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밍’의 퇴마가 실패하는 결말을 택하게 된다.
신자유주의가 여성의 몸을 좀비로 남긴 이유
‘밍’은 영화의 제목 ‘랑종’[23] 이 의미하는 것처럼 자기 증조할아버지의 업으로부터 내려온 저주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귀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가 된다. ‘밍’은 악귀의 저주 공격을 받기 전에는 인력사무소에서 일하며 노동자와 일자리를 매개해 주다가 악귀에 의해 몸이 지배되고 난 이후에는 귀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매개해 준다. ‘밍’은 노동자와 일자리를, 원한 가득한 귀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존재다. 이를 다시 생각해 보면 밍은 타자들이 밀려 들어올 수 있게 해주는 통로와도 같다.
<랑종>은 서로가 서로를 위협이라 생각하며 내부의 적을 만들어 내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공포가 담긴 영화다. 바바라 크리드에 따르면 공포영화 속 여성 괴물은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두려움, 여성의 그들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24]하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 여성 괴물은 어떤 두려움을 나타내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두려움이 내포되어 있는 존재 중에서도 ‘밍’이 독특한 이유는 자신이 귀신이 된 특별한 이유가 영화 속에서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다는 점에 있다. 가장 유명한 귀신 중 하나인 영화 <링>의 ‘사다코’는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버지에 의해 살해당하고 이로 인해 원한을 품어 귀신이 되었다는 서사가 있지만 ‘밍’은 이런 서사가 부재한다. ‘밍’이 귀신이 된 이유는 오로지 영화에 드러나는 배경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즉, ‘밍’은 영화 속에 맥락화 되어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독특한 괴물인 셈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여성은 누구인가? 신자유주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노동시장의 비정규직화가 가속화되고 불안정 일자리의 수가 큰 폭으로 상승하는 가운데, 이 자리를 메우는 존재가 바로 여성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는 일자리의 질과는 관계없이 여성을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 질서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존재나 다름없게 만든다. 여성은 다양한 직업군에서 남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고,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고 여겨지는 여성의 지위는 남성이 “역차별” 당한다는 서사를 불러왔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은 수많은 타자의 영혼을 담고 또 이를 인간 세계로 밀려 들어오게 해 줄 존재로서 ‘밍’을 선택하는 것이 일견 타당해 보이게 만든다. 이런 영화에서 만약 ‘밍’이라는 여성이 퇴마를 통해 다시 “우리”로 돌아올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어떨까? 이는 공격할 대상의 소멸과 함께, “우리”가 된 이들과 더 치열하게 파이 싸움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밍’을 좀비 상태로 남겨 두면서 “우리”로 돌아올 수도 없는 존재이자 아예 처단해야 할 육체로 만든 것이다. 좀비는 진정 퇴마로도 해결되지 않는, 아예 육체 자체를 없애야만 사라지는 “우리”에 포함될 가능성조차 없는 존재다.
<랑종>은 신자유주의 정치 경제 체제의 수사를 충실히 따르는 영화이자 타자에 의해 자신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존재들의 무의식이 반영된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여성은 “우리”의 자리를 위협하는 “타자”이자 “타자”와 “주체”의 매개로 존재하다가 결국 의지도 의식도 없는 좀비로 남게 된다. 여성을 좀비로 만들어 처단의 대상으로 만드는 결말은 내 자리를 위협하는 이들을 끝까지 악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신자유주의의 통치 전략을 드러낸다.
기타 참고 자료
도서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책세상, 2011
기사
Kong Rithdee, Nang Nak at 20, The 1999 ghost film that changed the face of Thai cinema returns to theatres this weekend, Bangkok Post, https://www.bangkokpost.com/life/social-and-lifestyle/1719095/nang-nak-at-20
Tim LaRocco, “The Rise of Thaksinomics”, Foreign Policy Association, https://fpa.org/the-rise-of-thaksinomics/
장신기, [영상] 김대중의 말 "경제 발전하려면 '민주화' 돼야" 개발독재론에 맞서 민주적 시장경제론 설파... 1993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인터뷰, 오마이뉴스, 24.02.11 https://omn.kr/27dhc
Bank of Thailand, Lessons learnt from the Asian Financial Crisis ถอดบทเรียนวิกฤตต้มยำกุ้ง, https://www.bot.or.th/en/our-roles/special-measures/Tom-Yum-Kung-lesson.html
동영상
소비더머니, 망할뻔했던 대한민국..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IMF 외환위기① /소비더머니, Youtube, 2022.12.25
지식부장관, 동아시아 국가들 환율이 동시에 폭락할 때, Youtube, 2024.11.18
웹사이트
1997 외환위기 아카이브, 검색어: IMF, https://97imf.kr/, 최종검색일: 25.08.19
World Bank Group, 검색어: Fertility rate, total (births per woman) – Thailand,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SP.DYN.TFRT.IN?locations=TH , 최종검색일: 25.08.17
[1]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2013, 315쪽
[2] Setting the Scene: How Did The Asian Financial Crisis Shape Contemporary Thai Horror?, Matthaeus Choo, 2020.10.23.
https://www.sinema.sg/2020/10/23/sts-afc-thai-horror/ 검색일: 2025.08.18
2편으로 구성된 글로 태국의 호러 영화에 관한 글과 한국의 호러 영화에 관한 글이 각각 따로 발행되어 있다.
[3] <낭낙>(นางนาก, Nang Nak, 1999)은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의 1999년 작으로 태국의 설화 매낙 프라카농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낭낙>은 태국에서 제작된 영화 최초로 1억 바트 이상의 수입을 거둔 영화다.
[4] 박기형, 1998, <여고괴담>
[5] 책 『내전, 대중 혐오, 법치』(피에르 다르도 외, 정기영 옮김, 2024, 원더박스) 는 신자유주의 정치를 내전에 비유하고 신자유주의 통치 기술을 전술이라 칭한다. 이 글에서는 해당 책에서 제시하는 ‘내전’과 ‘전술’ 개념을 활용하여 논의를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6] 왜 똠얌꿍 위기라 불리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확인할 수 없으나, 태국의 대표 음식이 똠얌꿍이라 이렇게 불린다는 설도 있고, 많은 재료를 한데 넣고 끓인 똠얌꿍처럼 많은 문제가 함께 발생한 것에 대한 비유라는 설도 있다. วิกฤตต้มยำกุ้ง(위끄윗 똠얌꿍, 똠얌꿍 위기)라는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 1997년 금융위기에 관한 내용이 도출되며, Bank of Thailand 에서 발행한 짧은 보고서(제목: ถอดบทเรียนวิกฤตต้มยำกุ้ง ) 에서도 ‘똠얌꿍 위기’라는 단어를 통해 1997년의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교훈을 설명하고 있다.
[7] Hewison, K., & Tularak, W. (2013). “Thailand and Precarious Work: An Assessment.” American Behavioral Scientist, 57(4), 444-467. 검색일: 2025.12.06
https://doi.org/10.1177/0002764212466244 (Original work published 2013)
[8] 태국의 출생률은 2023년 기준 1.2명대이다. Fertility rate, total (births per woman) – Thailand, 검색일: 2025.08.18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SP.DYN.TFRT.IN?locations=TH
[9] Kids Are Too Expensive!” How Thailand Became One Of The World's Fastest Aging Countries, Youtube, CNAinsider, 2024.05.14, https://youtu.be/dzUqwweXwY0?si=t2r2AD0qM3Nn2eME
[10] Rattana Lao, Thomas I. Parks, Charn Sangvirojkul, Aram Lek-Uthai et al. (2019). “THAILAND’S INEQUALITY: MYTHS & REALITY OF ISAN.”, The Asia Foundation
[11] 같은책, 7쪽
[12] 태국에서 개고기는 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밍’의 엄마 ‘노이’는 시장에서 “천상의 고기”라는 개고기 가게를 운영한다. 이는 법망의 손길이 닿지 않는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13] 쏭태우는 태국의 대중교통 수단 중 하나로, 소형 트럭을 개조해 만든 버스 식의 교통수단이다. 방콕에서도 쏭태우를 찾아볼 수는 있지만, 방콕을 벗어난 지역에서 더욱 일상적으로 활용되는 교통 수단이다.
[14] '랑종'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 “표현 수위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했다”, 김성훈, 2021.07.12 https://cine21.com/news/view/?mag_id=98162
[15] '랑종' 제작 나홍진 감독, “귀신은 분명히 있다”, 김성훈, 2021.07.05 https://cine21.com/news/view/?mag_id=98090
[16] 레이 초우, 『원시적 열정: 시각, 섹슈얼리티, 민족지, 현대중국영화』, 이산, 2010, 41~42쪽
[17] 같은 책, 43쪽
[18] 같은 책, 43쪽
[19] 앞서 설명했듯 태국에서 개고기는 불법이지만, 이 맥락에서는 “불법”이기 때문에 죄를 지은 것이라기 보다는 “개고기”를 판매함으로서 “짐승의 혼”이 내린 저주에 걸린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20] 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피에르 소베르트, 오 게강, 『내전, 대중 혐오, 법치』, 정기헌, 원더박스, 2024, 23쪽
[21] 밍의 이상행동을 촬영한지 사흘이나 지난 뒤에야 촬영팀은 ‘밍’의 가족에게 해당 영상을 보여 줬고, 가족은 이 영상을 본 후 만 하루가 지나서야 ‘밍’의 방에 자물쇄를 설치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22] 같은 책, 18쪽
[23] ร่างทรง, 랑종은 태국어로 “영매”, “무당”이라는 뜻으로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The Medium 이다.
[24] 바바라 크리드, 『여성괴물』, 도서출판여이연, 201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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