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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Translation/라클라우 읽기

담론 이론의 철학적 뿌리들

by 인-무브 2026. 2. 24.

담론 이론의 철학적 뿌리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번역: 현우식(서교인문사회연구실)

 

 

Centre for Theoretical Studies in th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University of Essex에서 2001년에 열린 라클라우의 “Philosophical Roots of Discourse Theory” 강연/노트 자료를 번역한 글입니다.

 

 

1. 헤게모니 개념과 관련된 정치 분석 접근으로부터 도출된 담론 이론 그 초기 형태는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세기 초에 시작된 세 가지 주된 철학적 발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세 가지 경우 모두에 초기에는 사물 그 자체에 직접 접근할 수 있다는 직접성의 환영(illusion of immediacy)이 존재한다. 이 세 가지 환영은 지시체(referent), 현상(phenomenon), 기호(sign)였으며, 이들은 각각 분석철학, 현상학, 구조주의라는 세 가지 사상적 흐름을 구성하는 뿌리가 된다. 이제, 특정 시점에서 세 가지 흐름 모두에서 초기의 직접성의 환영은 흐려졌으며 이 관점에서 이들 철학의 역사는 놀랍도록 유사하다 다양한 형태의 담론 이론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는 담론적 매개가 단지 파생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성적인 것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연구로 인해 분석철학에서,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분석으로 인해 현상학에서, 바르트, 데리다, 라캉의 기호 개념에 대한 포스트-구조주의적 비판으로 인해 구조주의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세 가지 흐름은 헤게모니 이론의 철학적 토대를 형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며, 무엇보다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아래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2. 우리는 20세기 구조주의 전통에서 세 가지 계기들을 구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구조주의 언어학의 창시자인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연구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세 가지 기본적인 구분과 두 가지 핵심 원칙들을 중심으로 설명된다. 세 가지 구분은 1) 랑그(langue, 화자의 정신 속에 축적된 언어의 보고(寶庫))와 파롤(parole, 언어 사용의 개별적 사례들), 2) 기표(signifier, 소리의 연쇄)와 기의(signified, 개념), 그리고 양자가 결합되어 구성된 것으로서 언어학적 분석의 기본 단위인 기호(sign), 3) 통합체(sintagma, 기호들 사이의 결합 관계)와 계열체(paradigm, 기호들 사이의 대체 관계)이다. 두 가지 원칙은 언어에는 실정적 항(positive terms)이 없으며 오직 차이만이 존재한다는 것(각 항은 다른 항들과의 차이를 통해서만 의미작용을 한다), 그리고 언어는 실체(substance)가 아니라 형식이라는 것이다(각 항은 그것의 물질적 내용과는 무관하게 서로를 연결하는 결합과 대체의 규칙을 통해서만 다른 항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접근법은 그 일관성과 참신함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 첫째로, 소쉬르가 문장들의 연쇄(concatenation)가 화자의 변덕에 의존하며, 어떠한 규칙성도 따를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을 고려할 때, 그에게 (그가 문장보다 긴 언어학적 단위로 여겼던) 담론의 언어학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좁은 의미(stricto sensu)의 언어학적 수준에서 소쉬르 기획의 일부이기도 했던 보다 일반화된 기호학(사회 내 기호의 과학)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심각하게 제한되었다. 둘째로, 가장 심각한 결함은 1) 기표와 기의 사이에 엄격한 동형성(isomorphism)이 존재하면서(이는 소리의 각 흐름에 오직 하나만의 개념이 대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2) 동시에 언어가 실체가 아니라는 엄격한 원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는 소리와 개념 사이의 순전히 실체적인 차이는 무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었다. 그러나 형식적 관점에서는 오직 동형성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표와 기의를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고, 구조주의의 초석인 기호 개념은 붕괴하게 된다.

 

이러한 초기의 어려움이 극복된 것은 두 번째 계기, 즉 프라하와 코펜하겐 학파에 의해 구조적 형식주의(structural formalism)가 급진화되면서였다. 예를 들어 옐름슬레우에 따르면, 해결책은 단어보다 더 작은 단위들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단어를 구성하는 소리는 개별적 소리인 음소(phonems)로 나눌 수 있고, 기의의 질서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언어소(glossems)를 분리할 수 있다. 이제 더 작은 단위에서는 동형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예를 들어, ‘cow’라는 단어는 C-O-W라는 세 가지 소리와 동물, 암컷, 성체(成體) 등의 개념적 구성요소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수준 단위들 사이에는 일대일 대응관계가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이런 점에서 언어에 대한 순전히 형식적인 기술이 가능해진다.

 

언어적 범주와 우리가 말(speech)이라고 부르는 실체 사이의 연결을 끊음으로써, 언어적 형식주의는 사회적 삶 전체에 대한 구조적 분석으로 확장될 수 있었으며, 1960년대 바르트 등에 의해 실천된 일반화된 기호학을 향한 길을 열었다.

 

그러나 헤게모니 이론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담론 이론의 종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번째 계기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매우 일반적인 용어로는 포스트-구조주의로 여겨질 수 있는 것으로의 이행이다. 이 계기의 일반적인 경향은 고전적 구조주의와 연결된 접근들의 기저에 있는 닫힌 총체성(closed totality)이라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 내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들 중 일부를 언급하자면, 우리는 바르트의 후기 저작, 특히 S/Z에서 드러나는 외연(denotation)과 내포(connotation) 사이의 엄격한 분리에 대한 비판, 데리다의 에크리튀르(écriture) 개념과 그에 수반되는 보충성(supplementarity)의 논리에 대한 비판, 그리고 기표와 기의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문제시하며, 양자를 분리하는 횡선(bar)을 의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연결고리이자 장애물로 파악하는 라캉의 기표의 논리를 참조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경우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것은 구조적 조직들이 보여주는 내적인 아포리아들(aporias), 조직들의 구성을 주재하는 규칙 체계 내에서는 그것을 극복하는 것의 불가능성이다.

 

3. 정치에 대한 담론 분석적 접근의 핵심적인 조각인 헤게모니 이론의 출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후자[역자주: 세 번째 계기인 포스트-구조주의]의 틀 안에서이다. 그것의 주된 이론적 단계들은 다음과 같다.

 

a) 만약 어떤 의미화 공간(signifying space) 내의 정체성들이 순전히 차이적(differential)인 것이라면, 모든 단일한 의미화 행위는 차이 체계의 총체와 연루된다. 이를 위해서는 체계 차이들의 근거가 되는 총체성 가 닫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의미화도 불가능한 무한한 분산만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b) 그러나 총체성은 한계를 요구하며, 그 한계는 우리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있을 때만 가시화된다. 하지만 여기서 체계는 모든 차이의 체계이기 때문에 너머는 단지 하나의 차이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진정한 너머가 아니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부성과 외부성 사이에서 결정불가능한(undecidable) 것이 될 것이다.

 

c) 이 딜레마를 빠져나갈 유일한 길은 그 너머가 배제(exclusion)의 성격을 갖게 되는 경우이다. , 하나의 요소가 더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배제를 통해 구성되는 내부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요소가 있는 것이다. 정치적 용어로 말하자면, 자신과 대립하는 모든 세력을 단결하게 하는 적(enemy)이 있는 것이다.

 

d)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배제된 요소들과 비교하여(vis-à-vis), 그것에 의해 적대화되는 모든 정체성들은 단지 차이적일 뿐만 아니라 등가적(equivalent)이며, 등가성은 정확히 차이를 전복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또한 차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해체주의적 용어로 말하자면, 가능성의 조건은 동시에 불가능성의 조건이다.

 

e) 우리는 여기서 모든 구조적 배열의 한계와 마주한다. 구조적 통일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동시에 필연적이지만 불가능한 대상(impossible object)이다. 모든 정체성은 차이와 등가성 사이의 해결불가능한 긴장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f) 불가능한 것으로서, 이 총체성에 대한 직접적인 재현(representation, 대표)은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필연적인 것으로서, 그것은 재현의 수준에서 어떻게든 존재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필연적으로 왜곡된 재현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떠한 가능한 대상과도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능한 재현의 수단은 오직 특정한 차이들뿐이며, 재현의 과정은 이 차이들 중 하나가 자신의 차이적 성격과 불가능한 총체성의 재현을 떠맡는 새로운 역할 사이에서 분열되는 것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어떤 특수성이 그와 완전히 통약불가능한 총체성의 재현을 떠맡는 이 관계를 담론 이론에서는 헤게모니적 관계라고 부른다.

 

4. 담론 이론에서 헤게모니적 관계의 중심성은, 충만함(fullness)에 대한 욕망은 항상 존재하지만, 그러한 충만함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직 그것을 육화(incarnating)하는 역할을 일시적으로 떠맡는 특수성들 사이의 순환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왜 등가성과 차이 대략적으로 말해 우리가 앞선 언어학적 분석에서 결합과 대체라고 불렀던 것에 해당하는 가 정치적 삶의 두 가지 주요 차원인지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사회를 두 적대적 진영으로 양분하는 경향이 있는 포퓰리즘 담론은 등가 사슬을 확장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이와 반대로 제도주의적 담론은 등가성을 희생시키면서 차이를 특권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왜 담론 이론에서 사회적 삶이 일반화된 수사학(generalised rhetoric)의 관점에서 기술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어떤 정체성도 그 자체로 닫혀 있지 않고 결합과 대체의 사슬이라는 차원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전이(displacements)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에, 그것들은 어떠한 궁극적인 초월적 토대도 지시하지 않는 본질적으로 전의적(tropological)인 과정을 통해 구성된다.

 

역자 해설


위의 번역문은 담론 이론의 철학적 토대를 간략히 요약한 노트로, 많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어 이해를 돕기 위해 별도의 해설을 남기고자 한다. 담론 이론(discourse theory) 20세기 서양 철학의 분석철학, 현상학, 구조주의 전통에서 일어난 반본질주의 운동(anti-essentialism movement)의 영향을 받았다.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분석철학,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현상학, 바르트, 라캉, 데리다 등의 포스트-구조주의가 대표적인 사례다. 무엇보다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이 결정적이며, 이 글에서 라클라우는 주로 이 사유가 담론 이론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라클라우가 말하는 포스트-구조주의는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의 고전적 구조주의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던 시도와 맞닿아 있다. 우선 이 글에서 말하는 두 번째 계기에 해당하는 프라하와 코펜하겐 학파의 형식주의 언어학의 사례를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옐름슬레우는 기표와 기의의 차원에서 기호를 더 작은 단위로 쪼개어 분석함으로써 기존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기표와 기의가 형식적 차원에서 구분되지 않는다는 동형성(isomorphism)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로써 그는 언어가 실체에 의존하지 않는 형식이라는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의 핵심 테제를 더욱 급진화했다.


다음으로 주목할 지점은 세 번째 계기에 해당하는 포스트-구조주의로의 이행이다. 라클라우가 언급하는 바르트, 데리다, 라캉은 모두 구조주의 언어학에 기저에 있는 닫힌 총체성(closed totality)이라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기호의 체계가 본래 불안정하며 언제나 열려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구조주의를 구조적 결정론으로부터 구해내고자 해다. 이로 인해 구조의 역사성과 저항의 가능성을 사유할 수 있는 길이 열였으며, 결과적으로 의미와 정체성을 둘러싼 결정불가능성(undecidablity)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라클라우의 독창적 기여는 이 결정불가능성의 장에서 의미와 정체성을 둘러싼 투쟁 혹은 정치의 논리를 규명한 데 있다. 완전한 의미와 정체성은 본래 불가능한 것이지만, (라캉에 의하면) 인간은 근원적인 결핍으로 인해 이를 끊임없이 욕망하게 된다. 따라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의미와 정체성을 부분적으로나마 고정하고자 하는 담론적, 접합적, 헤게모니적 실천이다. 다만 모든 정치적 실천이 의미와 정체성을 부분적으로 고정하는 데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 안에서는 여러 실천이 경합하고 있으며, 권력 또한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클라우는 사회 안에서 담론적, 접합적, 헤게모니적 실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헤게모니적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민주주의의 의미를 일시적으로나마 고정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구체적인 내용을 갖는 특수한 대상임과 동시에 포퓰리즘이나 사회주의와 같은 적(enemy)과 구분되는 의미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정의되는 보편적인 대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의 의미를 둘러싼 헤게모니 투쟁에 효과적으로 개입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아닌 것, 민주주의의 적을 의미 체계의 외부로 배제해야 한다. 그러나 역시 완전한 의미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 배제 역시 인위적인 실천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헤게모니 논리는 언어학, 수사학, 정신분석학의 논리를 토대로 한다. 이들 논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기 보다는 정치의 논리가 이들 논리와 형식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한 결과다. 사회적 삶이 일반화된 수사학(generalised rhetoric)의 관점에서 기술될 수 있다는 라클라우의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정치 분석의 역할은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헤게모니 투쟁의 동학을 밝히는 것이다. 모든 대상은 그것이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또는 언어적이든 비언어적이든 그것의 의미와 정체성을 둘러싼 헤게모니 투쟁의 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분석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은 그 자체로 의미와 정체성을 둘러싼 헤게모니 투쟁에 개입하는 헤게모니적 실천이기도 하다.

 

관련 강좌 홍보

 

[서교연 고전 깊이 읽기]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포퓰리즘 이성』 강독 강좌 

 

강의 소개

 

최근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대표 저작인 『포퓰리즘 이성』이 출간 20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책은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관계, 그리고 정치적 주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정교하게 다룬 현대 정치철학의 정수입니다. 하지만 방대한 이론적 배경과 특유의 난해함 때문에 홀로 완독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따르는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본 강의에서는 『포퓰리즘 이성』을 문장과 문단 단위로 세밀하게 쪼개어 정밀하게 강독하고자 합니다. 라클라우 전공자의 명쾌한 해설을 통해 난해한 문장 너머에 숨겨진 핵심 논리를 체득하고, 현대 포퓰리즘 정치를 바라보는 이론적 프레임을 함께 학습합니다. 혼자 읽기를 주저하셨던 분들에게 이 강의는 텍스트의 미로를 헤쳐 나갈 든든한 지도가 되어 드릴 것입니다.

 

일시: 2026년 3월 20일 ~ 5월 1일 매주 금요일 7시

장소: 온라인(Zoom)

강좌회비: 14만원 (케이뱅크 100-177-800169 권범철)

신청: https://forms.gle/f2sJQLLJn8Xv9vP19

문의: paledall@gmail.com

 

보다 자세한 강의 정보는 [서교연 고전 깊이 읽기]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포퓰리즘 이성』 강독 강좌(3/20 개강)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