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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기고

이다의, 자기 자신의 도굴법 ① 유물 유출

by 인-무브 2026. 3. 21.

자기 자신의 도굴법

이다의

 

국가이론은 통상 국가의 형성과 정당화 과정, 미세한 작동 방식을 탐구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개인이 느끼는 것은 일종의 배경, 혹은 자신의 한계적 속성이 되는 국가의 지속 자체입니다. 본 연재에서는 지금 우리가 의식하고 감지하는 것으로서의 국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합니다. 사회라는 것을 체험하기에 앞서 개인이 딛는 국가, 국가를 구속으로 이해하면서 갖는 자유인의 욕망, 그 욕망이 실상 국가를 거쳐 조직되는 맥락을 이야기합니다. 나 자신이 나의 범위라고 인지하는 것들에 관류하는 국가의 작용을 살피면서, 반동적인 욕망의 방향을 재설정해봅니다. 

 

① 유물 유출

 

  • 이 글은 2024년 4월 5일-7월 5일 전시공간 수건과 화환의 『텍스트 뷔페』에 전시된 원고에서 일부 수정을 거쳐 작성되었습니다.

망루에 오른 사람은 전진하는 전선을 가장 먼저 본다. 아래를 정찰하려고 오르니 위에 도달하고 싶다는 욕구가 덤으로 해결된다. 망루 위에서는 탑 바깥뿐 아니라 탑 안을 감시할 수 있다. 세 진술은 권력을 인격화하고, 그 효과를 보호에서 통제로 옮겨오는 중이다. 이러고 나면 우린 탑을 무너뜨리고 싶어진다. 그러나 탑을 너무 오래도록 올린 탓에 누가 서 있는지 볼 수 없다면···

『리바이어던』 초판본, 아브라함 보스의 삽화 중

 

 

사회계약은 탑을 세운 연유를 논증하면서 출발한다. 사회 상태를 연역하기 위한 전제를 인간학에서 찾는다. “모든 국가이론과 정치이념은 그 인간학을 음미하고, 그것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본성상 악한’ 인간을 전제로 하고 있는지 ‘본성상 선한’ 인간을 전제로 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카를 슈미트, 김효전·정태호 옮김, 『정치적인 것의 개념』, 살림, 2012, 78쪽) 삽입한 『리바이어던』은 인간의 본래적 성질에서 시작하여 사회의 보호를 필요로 하게 된다는 흐름의 인과를 설계한다.

 

❶ 보호받는다. ❷ 그러므로 남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아야 한다. 남을 나와 같이 여겨 이롭게 하라는 통념적 도덕은 이 순서로 전개된다. 그러나 사회가 이 역순으로 조직됐다는 인식이 사회계약의 유산이다. 안전을 상호적으로 보장하자는 첫 번째 계약에는 강제성이 없다. 계약 위반자를 처벌하는 제3자를 요청하고자 두 번째 계약이 맺어진다(진태원 2004, 138-140). 첫 번째 계약은 잠재된 원리이자 권장되는 방향성, 두 번째 계약에 도달해야 효력이 발생하며 거기에 제약하는 권력이 있다. 달리 말해 ❶ 남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❷ 그러므로 보호받는다. 이 금지와 보상의 체계가 앞선 도덕에 내재한다. 탑에서의 생활이 자연스러워짐에 따라 탑 바깥의 삶을 고려하지 않는 상태, 우리가 이미 다 올린 탑 안에서 태어나 이 상태에 놓였으므로 보상적 보호의 원리가 도덕으로 뒤집힌 것이다. 사회가 나 이전에 시작하여 이미 자리 잡았다는 전제가 새로 주어진다. 시초의 사회계약과는 다른 이곳에서 출발한다. 계약물인 보호는 선지급됐다. 위해를 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선제조건은 보상이 빠진 금지처럼 보이거나 헐거운 권장 사항이 된다. 국가가 따분한 도덕으로 여겨질 때 생각의 기단에는 이런 적응 과정이 있다. 즉 지금 기반하는 인간학은 자연적 본성 대신 사회의 경험이 이미 음각된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 훈련된 인간에게 사회는 기억과 기록의 축적물이다. 정찰자가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탑은 그 내부에선 그저 벽과 같은 구조물로 보인다. 무언가 있다는 잔상이 계승되는 방식으로 사회는 현상한다. 홉스에게 제3자가 국가이자 공권력의 행사자일 때, 인간이 기억하는 건 사회임에 앞서 국가의 경험이다. 인간은 정착된 국가가 훈련시키는 도덕규범을 준수하는 방식으로 사회계약의 잔상에 참여한다.

 

무너뜨리고 나면 뼈대와 내용물 각각을 헤쳐 살필 수 있다. 탑이 붕괴된다고 하여 우린 즉시 자연상태, 전선에 포위되나? 거기서 쏟아져 나온 것은 탑에서의 생활이 체화된 유물로서의 인간들이다. 와해된 탑은 새로운 모양으로 다시 조립될 것이다. 그러므로 리바이어던의 목을 치고 시작한다.

 

목을 치고 나면 몸만 남아 꿈틀거린다. 우리가 의미지은바, 몸은 최초로 소유되는 것이다. 소유됨으로 이해한 몸은 어렵지 않게 개체의 동일성으로 소급한다. 그러나 홉스는 몸을 우선 반응체로 이해한다. 그에게 신체란 외부 자극이 보내는 효과가 있고 그걸 인지하는 신체의 효과가 외따로 있는 인과1 회로의 소자다. 여러 반응으로 분열하는 신체의 불안정이 자기보존 욕구로 이어진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느끼는 이 공포가 인간으로 하여금 향후 여러 통합의 단계를 거듭하게 한다. 먼저 분열된 반응체를 통합하기 위해, 미뤄둔 소유의 개념이 다시 기획된다. 신체가 자기의식에 귀속되지 않듯 소유 자체도 내 것이라는 의식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외부 자극에 관한 안정화, 달리 말해 서로 간섭하지 않는 상태를 설계해야 한다. 소유는 분열불안을 통치하는 제도로서 계약 이후에 성립한다. 여기에 가지기 이전에 뺏지 않음이 선제해야 하는 금지—보상이 있다. 소유물로서의 인체는 인공적인 작업의 결과물이다. 과거의 계약 행위는 개체의 미래가 외부에 의해 좌우되지 않게끔 안정시킨다. 이 제약이 예측 가능성을 창출한다. 미래를 인과 회로 안에 역투입하는 예방체계다.

 

소유의 효력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의 보증이다. 할 수 있음은 할 수 있음의 최종 격추 단계인 죽음이 방지되어야 가능하다. 할 수 있게끔 자유로운 개인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미래를 소유하는 법인격이다. 사회계약은 계약 당사자를 개인으로 가공하고, 자유 자체를 담보하며 사후 모든 인간 간 계약의 지평이 되는 것이다. 그 목표는 미래의 기대이익이기보다 항구적인 미래의 산출이다.

 

사회계약 특유의 시공간은 그 지평 위에서 벌어지는 계약 일반과 비교할 때 두드러진다. 홉스는 사회계약을, 차후에 계약을 이행하리라 약속하는 약정 형태의 신약·”신의계약”(토머스 홉스, 진석용 옮김,『리바이어던 1』, 나남, 2008, 181쪽)이라고 구분해낸다. 이행이 체결 당시가 아닌 미래에 약속된 행위라는 점은 오묘하다. 해당 구분을 심화한다. 계약 일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소유가 보증하는 할 수 있음의 최대치, 처분이다. 거래계약에선 각 소유자가 재화를 처분하여 맞교환하고, 이때 외부 변수가 끼어드는 탓에 계약은 불확정적이다. 이를 전제로 삼는 하트의 불완전 계약이론2은 사회계약과 구별되는 거래계약의 시공간을 점검하기에 용이하다. “계약에는 틈과 누락된 조항이 포함된다. 이러한 불완전한 계약은 ······ 특정 상황에 관해서는 매우 조잡하거나 모호하게 규정할 것”(올리버 하트, 오철 옮김, 『기업, 계약 그리고 금융구조』, 한국경제신문사, 2017, 48쪽)이라는 문장은, 통상의 계약이 명시하지 못한 외부가 존재한다는 점을 알린다. 이 외부를 포섭하기 위해 하트는 계약이 포괄하지 못한 사태에 관해 누가 권리를 행사할지 정하도록 한다. 한쪽 참여자가 사후 통제 권한을 확보하는 것인데, 이때 계약물의 기존 소유자가 통제권을 갖게 된다.3 하트는 이를 “잔여 권한”이라고 이름 짓는다.

 

사회계약은 계약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 자체를 만든다는 점에서 그 단순함으로 불확정성을 상쇄한다. 그때 처분하는 것은 자아의 효과 다발 중 하나다. 두 계약 당사자는 서로에게 미칠 수 있는 간섭·방해·가해 작용으로서의 자기를 처분한다. 그걸 빼고 남은 나머지는 자신이라는 소유물이 된다. 미래의 무수한 다발을 인공신체로 통합하며, 거기서 여러 인물은 처분 행위로 매개된 미래 재산출 회로의 소자다. 나를 서로 넘겨주는 방법으로 잔여로서의 나에 대한 권한을 얻는다. 이렇게 보아 미래의 이행을 약속한다는 것은 계약물이 각자의 미래 자체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때 논해지지 않은 통제권이 제3자로서의 국가에 흡수된다. 처분된 간섭·방해·가해들이 모여 제약적 국가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로써 국가가 존립하는 한 이행은 반복되고 예고된다. 계약의 달성 혹은 변제가 상호적 보호라 할 때, 이 보호는 계약 위반 시에 차후 처벌할 것이라는 가능성의 형태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사회계약이 포섭한 상황들의 바깥은 집행력이 미치지 않는 국외가 된다. 계약은 시간을 엮어 공간을 짓는다. 코스와 하트는 각각 고용·거래계약서 작성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과 합병이 발생한다고 보는데, 이처럼 국가는 계약 회로가 집합한 합병체로서 차후 계약될 시간들을 생성한다.

 

자기 소유적 주체가 자기의 양도 불가능성을 담지한다면, 위 시점이 최후로 스스로를 양도하면서 자신을 성립시키는 국면이다.4 이후에야 미리 언급한 거래계약의 소유물이 출현한다. 맥퍼슨의 저술에 따라 로크는 양도 불가능한 신체의 노동 행위를 통해 개량한 자연물이 배타적으로 소유된다고 보았다. “무엇이든 인간이 그것의 자연상태를 제거했을 때 거기에는 그의 노동이 투입된다. 어떤 것에 대해 자신의 노동을 투입함으로써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만든다.”(C. B. 맥퍼슨, 이유동 옮김, 『소유적 개인주의의 정치이론』, 인간사랑, 1991, 275쪽) 앞서 인용한 하트의 글에서 소유권의 주요 특징은 “자산의 소유자가 자산의 잔여 소득에 대한 권리”(『기업, 계약 그리고 금융구조』, 114쪽)를 갖는 것으로 규정된 바 있다. 개체는 신체를 통해 또 다른 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신체 소유로 얻은 잔여의 효과를 누린다. 손을 댄 것을 금으로 만들어 소유하는 미다스적 개체가 등장한다.5

 

몸·미래·사물의 소유가 순차로 보장되면서 그 처분은 이제 국가가 감시자로 등장한 계약의 장 안에서 이뤄진다. 양도가 아닌 부류의 처분, 예컨대 자해·자살·폐기가 체제의 관리 속에 놓인다. 홉스가 폐기와 양도를 구분하는 대목(『리바이어던 1』, 179쪽), 자해에 대한 시민의 권한을 제한하는 대목(176쪽)은 여기에 상통한다. 자기 훼손이 이성에 위배된다는 진술은, 자연법과 이성의 원리가 국가로부터 가동되므로 체제에 엮이는 것이다. 홉스에게서 이는 권리의 제한이기보다 원래 그러하므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된다.6 그는 권리 자체를 임의로 설정된 목적을 향해 확립시키고 있다. 그의 논의는 다음처럼 닫힌다. 신약의 위반은 자기 훼손과 같으므로 체결은 합리적이다. 이에 대해 고티에는 정규형 게임을 도입하며 정교화한다(데이비드 고티에, 박완규 옮김,『리바이어던의 논리』, 아카넷, 2013, 131-142쪽). 신약의 양측 참여자에겐 신약의 준수가 합리적이라고 깨닫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동기에 따라 각자의 선택을 조정하는 시간적 과정이 있어야 신약이 체결된다. 체결 이전에는 참여자가 자신에게 제공될 몇몇 결과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하며, 이후에는 바로 그 결과가 제공되어야 한다. 미래의 포섭에 필요한 것, 제3자의 집행력이다. 고티에는 여기서 홉스의 논리를 파고들어 “홉스는 자연상태에서는 그러한 신약을 이행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으며, 따라서 신약 이행이 합리적이도록 ‘하려면’ 어떤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145쪽)고 논하는데, 즉 무엇이 합리적이고 무엇이 비합리적인지 사고하는 방향을 강제할 만한, 사고시킬 만한 인공두뇌가 요구된다. 두 참여자는 인공두뇌의 사고를 넘겨받는다. 예상 가능성이란 표현에서 보이듯, 인공두뇌가 가리키는 합리성이 제약된 미래 속에 놓인 참여자들의 합리적 행동이 된다. 인공두뇌는 이 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해를 입지 않은 두 멀쩡한 사람과 분쟁 여지 없는 자원의 총량이 입수된다.

 

국가야말로 인공신체들을 제어하는 두부다. 이때 국가의 제1원리, 국가적 자기보존은 회로 소자인 신체 각각이 실현하는 자기보존과 팽팽한 등가물이다. 자기 소유의 양도 불가능성은 곧 주권의 양도 불가능성으로 연계된다.

 

처분 과정은 개체를 가장 단순한 모습으로 균질화한다. 살갗 안의 군상화는 개체가 국가와 동시에 구성되는 기관임을 표현한다. 처분된 것, 거래물의 집합이 처분 주체를 잔여로 두며 역으로 품는 사태다. 홉스의 모델에서 통치자가 절대 권한을 갖는 일은 위 회로에 의해 기계적으로 또 은연중의 마술로 벌어진다. 이에 따라 홉스가 명시한 저항권은 개체의 보존에 실패한 국가에 한정하여 주어지나, 국가 자체의 파괴까지 도달하지 않는다.7

 

국가를 만드는 시간을 따라가면 달랑거리는 두부가 비친다. 계약은 동기화된 미래들과 균질한 기관들을 다듬으며 군주를 시간 속에 숨긴다. 개체가 엉겨 붙은 살갗을 형성한다. 살갗은 엮어낸 영토다. 그 속에서 궤를 맞춰 움직이는 무한동력의 국가엔진이 홉스가 내놓은 바다. 살갗 안에서 권력은 회돈다. 바깥 외딴곳에는 정치적 공백의 공간이 생산된다. 군집이 안전을 보장받으면 공포는 외화되어 살갗을 뚫는다. 국가는 뻗어나간 공포를 국가 간 긴장 상태로 독점하면서 기관들이 삐걱거리는 투쟁을 거세한다. 공포가 향하는 공백 공간은 이처럼 자국을 역설적으로 지탱하는 적국이거나 자연상태, 혹은 푸코의 용례에서 미개다. “계약을 맺고 사회를 창설하기 위해 숲에서 나온 미개인, 교환과 물물교환을 할 운명인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의 미개인”(미셸 푸코, 김상운 옮김,『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난장, 2015, 237쪽). 공백이 가진 의미는 공성의 논리와 근대화의 논리로 이중 작동한다.

 

주어진 자유는 권력의 공간에 연루된다. 개체에게 남은 할 일은 소유하게 된 몸을 부둥키고 소유를 더 확장하거나 소유할 것들을 더 만들어내는 소비/생산뿐이다. 여기에 두부를 숨긴 채 국가학이 자유시장에 대한 학으로 변이하는 맹아가 있다. 여태껏 자유로우며 소유하는 개체가 국가에 의해 확립되는 과정을 쫓은 것처럼, 테일러는『협력의 가능성』에서 홉스적인 인간의 본성과 행동은 홉스적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논지를 전개한다(Michael Talor, 『The Possibility of Cooper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7). 홉스의 거점인 비협력적 투쟁이 국가가 제거된 직후의 인간상을 구상8한다고 보면서, 비협력의 본성을 가정하여 국가를 건설하는 홉스의 주장을 뒤집는다. 앞서 자기 이익에 관한 합리성을 국가의 시간 전·후가 아니라 동시에 둔 바 있다. 테일러의 분석이 잘라내는 홉스적 인간형의 단면은 국가가 부서진 후의 유물보다도 국가에 걸친 인공의 공간, 시장 내 행위자로 읽어낼 때 흥미롭다. 더하여 홉스와 시장 문제에 관해 먼저 인용한 맥퍼슨의 문장을 붙인다. “모든 사람의 권력이 시장상품화되는 곳에서만 끊임없는 권력투쟁이 있을 수 있다. ······ 홉스는 이 사실을 간파하지 못함으로써 사회를 완전히 원자화된 것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자기영속적 주권자 또는 주권기구의 필요성을 도출한 것은 바로 그러한 원자화된 사회관 때문이었다. ······ 그로 인해 그의 결론은 소유적 시장사회에 부적합하게 되었고, 17세기 잉글랜드의 시장사회의 지지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유적 개인주의의 정치이론』, 135-136쪽) 이를 들뢰즈의 루소와 겹쳐 읽을 때, 해당 문장은 다음으로 이해된다. 원자적으로 분산된 것이 모여드는 양상이 사회 상태로의 이행이다. 이렇게 모였을 때에야 끝없는 권력투쟁이 발생한다. 홉스는 이를 간과하여 그가 원자적이라 파악한 권력투쟁 중의 개체에 대해 주권기구를 요청한다. 그러나 이미 모여 있으므로 이는 결국 시장에 개입하는 기구로서의 국가 모델로 받아들여진다. 즉 맥퍼슨의 지적은 홉스의 의도와 이론 효과를 분리하며, 테일러가 국가가 제거된 모습이라고 독해한 그 상태가 홉스가 흘린 시장의 단서임을 보여준다. 공중 안에서 형성된 시장으로 소유적 자유의 욕망은 누출된다. 시장은 국가 내부의 비국가적 진공상태다. 그를 방목하는 국가는 관리자의 형상으로 항시 대기한다. 카드를 뒤집듯, 국가가 개입하라는 구호는 개입하지 말라는 구호와 양면으로 운용된다. 시장의 공간성은 일국의 반대 항이면서 동시에 일국의 지지대인 공백공간과도 같다. 시장의 좌표가 내부에 있다는 점을 짚자, 외딴곳에 설치되던 홉스의 자연상태는 변곡한다. 맥퍼슨이 발견하듯 분쟁과 제어의 문제계가 홉스의 맹점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개입 범위에 관한 견해차를 막론하고 행정부의 치안 기능에 대해선 일반적으로 합의한다. 시간이 흘러 개체의 존재양식과 치안을 얽는 탑의 유기성이 자연화될 때, 달리 말해 홉스의 기획이 달성된 이후에는 위와 같은 시장/자연에 대한 인위적 개입자로서의 국가 모델이 남는다. 자연적인 것과 국가적인 것의 전치로, 수집된 자연상태인 시장을 내용으로 삼고 국가가 자연적 형식이 된 단계다. 조정 기구·최소 관리자로서의 국가 모델은 국가의 예속을 트릭화하며 치안을 공급 서비스로 바꿔친다. 이때부터 치안은 결합으로 지은 공동공간이기보다 행정부의 제공품이다. 여기서 인간학을 지나 공공재에 관한 시장학이 국가이론을 채택하게 된다. 국가는 개입/비개입의 코드만을 쥔 채 안전하게 빠져나온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미셸 푸코, 심세광·전혜리·조성은 옮김, 난장, 2012) 속 다음 구절은 이를 방증한다. “시장, 혹은 차라리 시장의 본질인 순수한 경쟁은 그것이 적극적인 통치성에 의해 생산되는 경우에 비로소 출현할 수 있”으며, 이제 주권자 혹은 행정부는 “시장을 위해 통치해야 한”다(188쪽). 비국가의 영역은 국가의 여파다. 따분한 도덕과 반목하는 듯 인지되는 합리적 개인성은 국가의 과정과 분리할 수 없다. 외딴곳으로 쏟아져 나온 줄 알았던 유물은 어떤 손에 의해 운반되는 중이다.

 

두부는 자유방임주의 뒤에서 유물의 출토와 운반을 적재에 지시한다. 두부를 도려냈더니 두부는 더 잘 숨게 된다. 그것을 어떻게 바로 볼 수 있을지··· 아예 주권자를 전면에 세운다면? 슈미트는 집행의 과정, 결정 과정을 드러내게끔 하여 주권자를 인격화한다. 일찍이 홉스를 재독해하며 자연상태를 포함하는 국가를 서술하면서도, 다만 공백을 시장에 용해하기보다 정치적으로 장착하고 있다. 질서가 불시에 부식될 수 있다고 말하면 엄습하는 위기를 정상화하는 주권자의 집행력이 강화된다. 그는 부식을 다음과 같이 예외상태로 개념화한다. “(예외상태가 되면) 법은 후퇴하는 반면 국가는 계속 존립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예외상태란 그럼에도 무정부상태나 혼란상태와 다른 무엇이기 때문에, 법질서가 없어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법학적 의미에서 하나의 질서가 존속한다.” 또한 전쟁에 관하여, “국가는 이른바 자기보존의 권리에 따라 법을 효력정지시키는 것이다.”(김항 옮김,『정치신학』, 그린비, 2010, 24쪽) 법이 정지되는 순간에 법질서의 원인이 뻗어 나오며9 국가는 법을 무력화시키는 국가가 있다는 사실로써 순환적으로 지탱된다. 여기서 홉스와는 상이한 슈미트의 시간을 떼어낸다. 예외상태 와중, 한쪽이 정지해도 독립적으로 흐르는 시간 혹은 그 정지로부터 비로소 발견되는 시간이 있다. 홉스가 국가를 빌려 타래처럼 묶인 계약의 시간선을 생성한다면 슈미트는 정지와 재생을 반복시킨다. 홉스는 국가 이전 상태라는 반례를 만들어 스스로 상대한다. 슈미트의 것은 이미 건설한 탑에서 태어난 이론, 보수해야 할 결함의 순간을 활용한다. 미리 거론한 사회계약 이후의 속류 계약들, 그에 관한 불완전 계약이론처럼 예외를 통제하는 수권자가 있다. 슈미트의 모델은 참수와는 반대로 머리에서 몸을 스스로 잘라내 머리를 들게끔 하는 도상이다. “이 주권자는 통상적으로 유효한 법질서 바깥에 서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 안에 속해 있다. 따라서 헌법을 완전히 효력정지시킬 것인지 어떤지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모든 근대적 법치국가의 발전 경향은 이런 의미에서 주권자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18쪽) 그의 문장을 배치하며, 잘라냄으로 주권자가 제거되는 역사를 염두에 두면서도 듦으로 주권자를 다시 도래시키려는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다.

 

가해 작용을 적출해내는 홉스의 개체와는 달리 슈미트는 해소될 수 없는 적대에 기반한 개체를 세공한다. 적대를 외딴곳에 탁본하지 않고 적/친구의 구별이라는 순수한 원리로 남긴다. 이로써 슈미트는 뭘 두고 대립하느냐 하는 문제를 지나쳐 순수 정치적인 것을 발굴한다. 행정상 개입을 통한 조정·합의로 나타나는,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로 열리는 절차는 정치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 적대의 국면으로부터 재생하는 정치적인 과정은 통일체로 표현되는 적대의 힘 자체다. 이때 통일체는 홉스의 개체 간 합치와 다르다. 슈미트가 개체의 실존적 층위에서 다룬 적대가 국가 차원의 공적 적대와 유비된 체제다. 소유권으로 보존되는 홉스의 사적 개체는 계약이라는 중간 과정을 거쳐 접합되지만, 원리상 유비되는 슈미트의 개체는 직접 동일해진다. 이는 슈미트가 국가라는 구체적 배경에서 출발하기에 가능하다. 균질적 회로를 지나 단순해진 개체·숨은 주권자 대신에 그가 갖춘 것이 공적 개체와 결단하는 주권자이듯, 그는 구체성에 몰두한다. 회로를 통한 미래의 역투입이 아니라 현세의 질서를 지향한다. 디딘 지반에서 규준을 검출하려 하므로 자연화된 형식의 국가가 그에게 도사린다.

 

두부를 바로보기 위해 슈미트를 기용하는 건, 그의 이론이 국가와 미묘하게 관계하기 때문이다.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을 국가정치와 우선 떼어내고자 했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 제1장 「국가와 정치」에선 자신 이전의 국가이론들이 정치적인 것의 의미를 국가와 등치하며 손쉽게 처리하는 방식이 실효적이지 않다고 쓴다(32-33쪽). 그가 목격한바, 당시 정세는 국가와 시민사회가 상호침투하여 국가정치의 개념이 적용되기에 복잡하다. 이 시선을 파고든다. 해당 장은 국가가 사회 영역에 침투하며 사회를 자신과 동일하도록 삼키는 모습의 전체국가를 대응책처럼 논의하며 맺어진다(37쪽). 이를 고려할 때 그가 문제로 여긴 건 국가를 향한 시민사회의 침투로 보인다. 비국가의 영역은 비정치적인 중립성이라고 오인되면서 호응을 얻는다. 앞에서는 공백공간 역시 국가적 작용의 여파임을 들췄다. 그와 같이 슈미트는 비국가의 영역을 탈정치적인 것으로 인식하려는 자유주의의 욕망 자체를 문제 삼는다. 국가와 정치의 섣부른 등치는 인식을 보조하게 되므로, 그는 다음의 순서로 논의를 진척시킨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적대다. 적대는 국가라는 정치적 통일체로써 현행화된다. 정치가 아닌 다른 가치에 기초하는 듯한 비국가의 영역 자체도 국가와 대립하는 즉시 적대를 취하므로 탈정치일 수 없다.

 

슈미트가 출발한 곳은 공포를 외화한 국가의 전략이 국가 내에서 안전한 소유의 행동을 보장하면서, 정작 탈정치의 욕망으로 이어진 국가 형태다. 치안이 서비스가 되어 공동공간의 동일성은 실추된다. 서비스를 배급하는 행정부는 시장과 촘촘하게 붙어 형식상 자리한다. 슈미트가 지적한 상호침투는 자유주의의 회로가 연결하는 내용─형식이다. 거기에 맞서 그가 고안할 수 있었던 건 두 가지다. 대립을 격화하면 정치적인 것에 육박하므로, 형식 자체의 자율성을 강화하며 국가를 시민사회와 분리하는 것. 다른 하나는 자연화된 질서의 내부침투. 진공상태에 누출되는 국가의 공기, 여기에 겹치는 건 나치에 입당한 그의 행적이다.

 

슈미트를 처음 인용했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그는 국가이론이 내포하는 인간학을 이야기하면서, 선한 본성에 관련되는 자유주의와 그 극인 무정부주의가 정치를 소유의 경제·선의 윤리에 복속시킬 뿐 국가이론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국가이론은 인간의 위험성을 전제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선한 본성을 믿으면 적대는 무화되어 정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위의 책, 82-86쪽). 테일러가 뒤집은 홉스의 사유처럼 이것을 뒤집는다. 국가이론이 상상하며 조직하는 인간의 성질, 초입에 이야기한 유물로서의 인간을 불러오게 된다. 슈미트의 문구를 빌리며 적대를 국가의 경험이 음각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재된 본성으로 적대를 바라보면 인간을 선하게 하라는 명령이 도출, 균일하게 갈린 국가의 시간을 뒤에 두게 된다. 결국 그 이후의 시간에 대한 믿음, 본성을 억제할 기구에 대한 특수한 믿음으로 귀결된다. 이 믿음은 적대를 소각하기에 슈미트가 홉스를 다시 읽어 현세에 투쟁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도 ······ 자유로운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사회의 철학으로서만이 아니라, 특수하게 정치적인 사상체계의 기본전제로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87쪽) 마찬가지로 “시민사회의 철학”으로 사고한 자연상태, 상품화된 권력투쟁의 장에서 벌이는 속류의 적대를 원초적 합리성으로 상정하는 논의는 국가의 카드 뒤집기로 닫힌다. 탑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소유하고자 함으로써 소환되고 있다.

 

 

【참고문헌】

토머스 홉스. 진석용 옮김. 『리바이어던 1』. 나남, 2008.

올리버 하트. 오철 옮김. 『기업, 계약 그리고 금융구조』. 한국경제신문사, 2017.

데이비드 고티에. 박완규 옮김. 『리바이어던의 논리』. 아카넷, 2013.

C. B. 맥퍼슨. 이유동 옮김. 『소유적 개인주의의 정치이론』. 인간사랑, 1991.

미셸 푸코. 김상운 옮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난장, 2015.

________. 심세광·전혜리·조성은 옮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난장, 2012.

카를 슈미트. 김효전·정태호 옮김. 『정치적인 것의 개념』. 살림, 2012.

__________. 김항 옮김. 『정치신학』. 그린비, 2010.

Michael Talor. 『The Possibility of Cooper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7.

질 들뢰즈. 황재민 옮김. 「실재의 정치 : 들뢰즈의 루소 강의 (3/4)」. 웹진 『인―무브』, 2022.06.22, https://en-movement.net/358?category=985471.

진태원. 2004. 「<신학정치론>에서 홉스 사회계약론의 수용과 변용」. 철학사상, 19 : 133-164.

 

각주

1: “감각의 원인은 바깥의 물체 혹은 대상이다. 이 대상이 각 감각의 고유기관을 압박한다. ······ 우리의 시각적 대상이 있는 곳과 시각적 현상이 나타나는 곳이 서로 다른 곳임을 쉽게 알 수 있다.”(『리바이어던 1』, 28-29쪽)

2: 코스(로널드 코스, 1937)는 외부 변수를 빠짐없이 고려하는 계약서 작성 자체가 거래비용을 발생시켜 비합리적이라는 거래비용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인용하며 하트가 든 변수의 예시,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한 공장에 화재가 나는 경우를 떠올린다(『기업, 계약 그리고 금융구조』, 48쪽).

3: “계약은 모든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산 사용의 모든 측면을 명시하지 못한다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일일이 열거하지 않는 것에 관한 사용에 대해 누가 결정할 권리를 가질까? 재산권 관점에서 접근법에 따르면, 이 권리를 가진 것은 해당 자산의 소유자다.”(위의 책, 17쪽)

4: 홉스는 자연상태의 만인이 만물에 대해 갖는 자연권을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을 경우 평화가 불가하다고 말한다. 가령 자연상태의 소유를 상상한다면, 만인의 권리가 같은 대상에 중복될 여지가 있으므로 소유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역설이 생긴다. 이에 따라 제1·제2 자연법은 이 자연권의 양도를, 제3의 자연법은 양도 계약의 엄수를 명한다(『리바이어던 1』, 194쪽). 따라서 양도 불가능성의 명제는 실정법적 계약에 의한 양도의 종결 이후에야 유효하다. 이어서 맥퍼슨은 홉스와 로크의 이론을 분석하며 “개인은 그 자신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 전체를 양도할 수는 없지만 그 자신의 노동력은 양도할 수 있다”(『소유적 개인주의의 정치이론』, 354쪽)는, 소유권이 보장된 사회의 명제를 도출해낸다.

5: 루소는 각자의 시야·사정거리에 닿는 것만을 욕망하는 개체를 이야기한다. 이에 대한 들뢰즈의 강의(질 들뢰즈, 황재민 옮김,「실재의 정치 : 들뢰즈의 루소 강의 (3/4)」, 『인―무브』, 2022.06.22, https://en-movement.net/358?category=985471) 중, 자연상태는 개체들의 분산 상태로, 사회는 그 반대인 집합으로서 모두가 모두의 손에 닿도록 조정된 상태로 설명된다. 해당 구분은 홉스와 상이한 듯하나, 후술할 맥퍼슨이 홉스의 시장관을 제시하는 방식에도 닿는다.

6: “사람은 자신의 보존에 불리하다고 여기는 것을 할 권리를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권이 애초에 제한되어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권리의 문제는 원칙적으로 가능한 것의 틀 안에서만 제기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가 하도록 동기가 부여될 수 없는 것을 할 권리를 지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럴 권리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정상적인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를 보존할 동기가 부여되어 있으며, 그래서 스스로를 파괴할 동기가 부여될 수 없다. 우리가 앞에서 본 것처럼, 자살하려고 하는 인간은 홉스 입장에서는 ‘제정신이 아니다.”(『리바이어던의 논리』, 88-89쪽) 홉스가 자기보존이라는 가설을 보편화한 채 시작하므로, 그의 논증은 헐겁게 읽힌다.

7: “주권자에 대한 백성의 의무는, 백성을 보호할 수 있는 권력이 주권자의 손에서 지속되는 한, 그리고 오직 지속되는 동안에만 계속되는 것으로 생각된다.”(『리바이어던 1』, 294쪽). 발췌한 문장이 속한 제21장 「백성의 자유에 대하여」에서, 홉스는 불멸의 주권이 소멸하는 특수한 경우를 언급한다. 전쟁에 의한 “폭력사”, 분란에 의한 “자연사”를 거론하는데, 이때 분란·자연사는 저항권의 행사와 다르다. 이제껏 살펴보았듯 그에게 권리 자체는 국가적 과정에 따라서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8: “홉스와 흄의 가정은 국가가 없을 때의 인간 행동을 특징짓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국가 아래 살아온 사회에서 국가가 제거된 직후 인간 행동이 어떠할지 더 정확하게 묘사할 것이다”; “The assumptions made by Hobbes and Hume were supposed to characterize human behaviour in the absence of the state; but perhaps they more accurately describe what human behaviour would be like immediately after the state has been removed from a society whose members had for a long time lived under states.”(『The Possibility of Cooperation』, 177p)

9: “예외상태가 절대적 형상으로 출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조문이 유효한 상황이 창출되어야 한다. (중략) 법질서가 유의미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질서가 구축되어야만 한다. 하나의 정상적 상황이 창출되어야만 하며, 주권자란 바로 이 정상적 상태가 현실을 실제로 지배하고 있느냐 아니냐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자이다.”(『정치신학』, 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