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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기고

수술대에 오른 영화, 감염을 허용하는 대화

by 인-무브 2026. 5. 7.

수술대에 오른 영화, 감염을 허용하는 대화

 

수차미

 

유튜브 채널 '머니그라피' B주류초대석

 

 

유튜브에 올라온 머니그라피 채널의 ‘B주류 초대석 보았다. 정확하게는 허키, 간지, 민경 3인방이 진행하는 영화 시리즈를 보았는데, 시리즈는 영화를 좋아하는 업계인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소화되는 중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인물 간에 케미도 그렇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가 가장 크다. 영상 안에서, 이들은 어떤 취향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아니라 대상 자체를 말한다. 판단에 편을 세우기보다는 무언가 돌려 말하지 않아서 명료했던 같다. 이를테면 영화 편을 보고서 영화에 관해서만 평을 내리기란 무척 어렵다. 관객은 현실의 존재이기에 다시금 현실을 등에 업는 한편, 영화가 그에 앞서 존재한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 영화가만들어졌다 여겨서 이에 선험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쉽게 말해 영화를 마치 자신에서 떨어져나온 무언가로 여겨서, 자신의 연장선으로 바라본다. 이렇게 되면 영화에 감정이입하기에는 쉬울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고, 영화가 지닌 내부가 아니라 외부를 따라만 가게 된다. 

 

물론 영화에 대해 말하는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이런 경우에는영화 아니라 설명하는 일에 골몰하는 것처럼 보여서 받아들게 하고 싶다고 보이는 듯한 면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가 아니라 자신에 무엇을 담을 있는지 밖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여러 잡다한 것을 주워담아 이를 지칭하려 한다. 속뜻이 아니라 그냥 이름 자체로 설명되고 싶어하는 셈이다. 이처럼영화 아니라 설명하는 일은그것 아니라이기에 무언가를 선호하게 되는 인플루언서 현상과도 맞닿는다. 인플루언서는 무엇에 의미를 부여하는 아니라 자신이 의미가 되고 싶어한다. 이곳에서 이름은 의미를 체화하기에 한데 뒤섞여 내부가 사라져버린다. 그저 거대한 껍데기만이 있을 뿐인 자기자랑에서, ‘내부 속이 아니라 개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null 값이어서 이를 지칭하는 일은 애초에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영화를 선험성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처럼영화 [가능성] 제거해버리는 것과 같다. 

 

영화를 단수로 지칭하는 일이 오히려 영화의 흠결무고함을 가리키는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을 말해도 영화로 수렴하는 일과 어떤 것을 말해도 더는 수식을 이어갈 없는 일은 완전히 다르다. 영화에 의미가 수렴하는 일은, 비록 앞이 가로막혔다 하더라도 뒤에 자신이 관통할 있는 여분이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뒷편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애초에 영화의 부존재한다면 이는 영화라는 개념 자체를 무너트리는 것이어서 우리는 영화가 영화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게 된다. 모험이 없는 영화는 애초에 영화가 없다. 다름 아닌 그이기에 소화되는 영화는 반대로 어떤 곳으로도 나아갈 없는 영화다. , 인플루언서로서의 영화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논하거나 뉘우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같은 의미에서 생각해보게 되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몇몇 역사적 사건들을 결정하는 영화의 논법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는, 역사의 선험성이 영화의 매체적인 특성으로 오인될 아무런 반론을 세울 없다는 우려에 직면한다. 

 

어려운 문제지만 중에서는 반론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 무게를 두고 싶다. 예를 들어, 홀로코스트와 같은 사건은 직접 경험하기보다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이 많다는 점에서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을 우리가 어떻게이해한다고 있을까? 영화는 자신의 입장에 서서 무언가를 들려줄 , 현실을 있는 그대로 대변하지는 못한다. 영화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세계의입장 선다. 영화도 자신이 말하려는 것을 모두 이해하고 있지는 않아서 오히려 자신이 것을 서로 같이 이야기해보자고 하는 때도 있다. 과정에서는 영화의입장 자신의 것으로 체화할 우려가 있어서라는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동경하는 일은 그것을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해 무언가를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의 그림자를 바라보는 일이다. 몸에 상처를 내야만 수술방에 들어설 있다면, 이들은 그와 같은 수술방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수술은 무균실에서 이루어져야만 피치 못할 감염을 막을 있다. 사실은 자명하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당연해 보이는 일이라도 반대편에 무게추가 달려 있지 않으면 서서히 안으로 굽어질 우려가 존재한다. 가령 춤을 상대방이 없으면 연회가 성립하지 않는다. ‘ 밀고 당기는 행위의 반복에서 전체적인 의미의 흐름을 이어가는합의과정이다. 과정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무게중심이 되어줌으로써 독립적인 움직임에 특정한 외형을 부여하게 된다. 안에서당긴다 당연하다라는 말과 같지 않으며, 상대방의 다음 행동을 예측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람의 이름을 두고서 마치 의미를 주워담는 바구니처럼 사용하고 싶어하고, 누군가에 의해 설명되는 의미를 의미 자체로만 섭취하려 한다. 아무런 당김 없이 받아들이는 운동에서 영화는 현실의 존재이기에물리적으로 감염을 막아내기 어렵다. 여기서 사람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아무런 어둠도 보지 않으려 하거나, 아니면 빛에 눈이 멀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서술을 통해 지적하고자 하는 다음 가지다. 번째는, 개인이 인플루언서로의 독립적인 행위를 행사할 영화에 대한 논리는 자체로 흠결무고하기에 어느 정도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점이다. 번째는 그렇게 의미를 필중하는 이들이 서로 한곳에 있을 때는 이와 같은 영역이 중화됨으로써 의미를 전개하는 것에도 새로운 장이 생성된다는 점이다. 촬영장에서는 결국 조명을 세우는 쪽은 전면이 되기 마련이어서, 카메라가 자리한 곳은 대개 그와 같은 빛에서 자유로운 때가 많다. 점은 영화를 보고 나서 의미를 조망하는 쪽은 항상 그러한 빛에서 벗어나 있음을 추론하게 한다. 말하자면 개인은 항상 어둠에 속해 밝은 곳을 보기에, 자신은 수술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개인은 항상 감염의 위험에 노출돼있고, 그렇다 한들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개인이 아무런 어둠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 자신을 수술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서로 다른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이런 뜻에서 의미가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이나 취향을 지닌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 각자의 배후를 지키면서도 동시에 중앙에 그림자가 없는 곳을 만들어낼 있다는 뜻이다. 개인만 있을 때는 무언가 편향적이라는 인상을 받는 의견도 서로가 각을 세우고 있으면 해가 지지 않는 세상을 탄생시킨다. 서로가 각자의 어둠을 가려주면서, 동시에 개인의 어둠을 지우지 않는다. 영화는 처음에 관계로 시작했지만 이를 하나의 공동체로 가꾼 관객들의 의지였다. 그러니까 만약 영화에서 자신의 상처를 발견하는 개인이 있다면, 이를 부정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으면서도 온전히 받아들일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좌담회의 형식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보면극장이라는 공간이 처음에는 대중 간에 좌담을 성립게 하는아고라 형태에서 발전해왔다는 점을 떠올리게 된다. 20세기 이후 광장의 역할은 일종의 집결지로서, 어느 곳으로 떠나가기 위한 중개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광장은 본래언어 매달리는 말모이의 장소였다. 

 

자신이 무언가 세계에 어울리고 싶다고 여기는 , 세계가 아니라 자신에 소속감을 느끼는 쪽에 가깝다. 이들은 현실의 그림자가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를 지우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그늘지지 않게 사방면에 조명을 세운다. 그런데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영의 세계에서 탄생한 영화는 사라져버리는 아닐까? 아무런 그림자가 없는 것은 무언가를 바꾸거나, 고치고 싶어하는 일을 암시한다. 대개 이는 세계이거나 자신인 때가 많으며 과정에서이면 가려진다. 물론 자신과 생각이 다른 누군가와 대화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다투지 않을 있는지를 고민하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수술실에서는 사각지대가 없게끔 무영등을 사용한다고들 하지만, 아무런 어둠을 노출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보게 영화는 그저 감염과 변형의 가능성이 없는무위에만 그치게 된다. 그러한 외부에 상처를 노출하기 싫어서, 무언가 안전하게 있을 만한 곳을 찾아 헤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는 아무런 징후도 개선할 없다. 

 

 

**이 글에서 언급된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W5ruxipPGMM?si=10nmIRYvqissRqU4

https://youtu.be/Rwx2EGl7i2U?si=LwMpSIVEzi2sDMRa

https://youtu.be/P8N385SfLWk?si=IO0p-mX7JeRcE2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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