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의 도굴법
② 신호가 있고 일제히 거수했다
이다의
부각시키고자 전면에 공개된 것, 우린 더욱 정교하게 겨눌 수 있게 된다. 관통상은 두부를 들고 있는 슈미트에게도 남는다. 머리는 머리를 움켜쥔 손으로부터 이어져 그 자신의 것이 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금과 같이 소유하고자 한다는 것, 출토된 유물은 어떻게 그 욕망으로 인해 유물로 남는지. 이제껏 머리에서 몸으로 무엇이 전달되는지 살폈다면 몸들이 꿈틀거리는 모습, 쏟아져 나온 인간들을 본다.

안전을 보장한다는 신호로써 국가는 소유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신호를 우리는 왜 믿나? 실상 믿지 않는다. 국가의 개입과 비개입이 카드 뒤집기로 마주 운용된다 썼듯, 국가에 대한 미심쩍음은 양면 중 무엇을 지지하던 공동의 감각이다. 그러나 믿겠다 판단하기 이전부터 신호는 실재가 된다. 요점은 신호 또한 공동적이라는 데에 있다. 신호가 전파되는 범위에 내 안전을 해칠 잠재자들이 있다. 상호적인 가해의 영역에 하나의 신호가 공유된다. 이에 그 신호 속에서만 비로소 안전해진다. 일국은 안전한 행동 반경, 행동으로 엮인 생활권이다. 「유물 유출」에서 일러둔 계약 중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선제조건이 뒤집히듯이 안전할 것이라는 담보에 관해서 개체들은 안전하게 행동하게 된다. 관련하여 상호 간 벌일 행동에 대한 예상을 가진 뒤에야 행동이 가능함에, 양측이 서로의 행동에 매여 의존한다는 루만의 논증(니클라스 루만, 강희원 옮김, 『법사회학』, 한길사, 2015, 132쪽)이 있다. 이 조건 의존성으로 상호관계로서의 커뮤니케이션 일반은 제 요인을 인간 행동이 아닌 작동하는 스스로로 삼으며 인간상의 과정에 앞서 있다. 마찬가지로 신호가 주어지고 인지하여 믿는 과정은 국가와 개체의 역관계에서 무의미하다. 신호는 안전한 권역 속에서 인지를 앞지르며, 개체에게 사회계약이 쥐어주는 예측 가능한 미래처럼 이미 발생한 한 사례로 즉시 정보화된다. 믿음을 건너뛰는 흐름이 인공두뇌의 작용이다. 안전에 대한 계약을 구성적으로 파악하니 계약의 뒤집힘에 따른 보호의 선지급이 윤곽 잡힌다. 사회·국가를 건설하는 계약의 서사가 추월적으로 사회상태를 정당화하고 국가 안에서 국가를 보조함에 밀접하게, 보호는 전파장 안에서 자기 실현적 예언과 같이 행위를 매개하는 것이다. 더하여 슈미트가 주권의 본질을 처벌이 아니라 결정으로 짚었다는 점이 확연해진다. 위해를 가했다면 보호받지 못한다, 의 강제력만으로 꾸린 국가론은 보호를 축으로 삼는 국가의 정상상태와 그로부터 이탈할 예외의 경우를 분별한다. 그때 정상상태는 보호의 대상으로 원천상 선의 윤리를 탑재해야 응당한 공동체를 상정하고 있으며 현상을 유지하라는 도덕적 명령을 제시하게 된다. 도덕통념으로 뒤집히기 이전, 위해를 가하지 않는 관계를 기대 표준으로 지정하고서 계약이 가정한 역사의 초엽이다. 그 표준 속 현실적인 우발성인 불안전함을 끝내 염려하기 때문에, 선의 공동체는 미비한 원형이면서 동시에 염원할 뿐인 소산으로 순환하는 대기 구간에 놓인다. 슈미트가 결부한 선의 윤리와 무정부주의를 염두한다면 이 공회전 속에서 사후조치만을 정당성으로 내세운 주권국가는 쉽게 분쇄된다. 안전은 늘상 조건화된 결과값으로만 주어지며 상대가 벌일 행동에 대한 예상은 불가하다. 계약의 의무 이행에 관해 상대방이 납득했다는 사실 자체를 헤아리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인공두뇌가 참여자에게 계약 준수의 합리성을 사고시키는 일이란 단순히 처벌에 대한 공포를 자극함을 넘어선다. 계약 서사가 은연히 선해야 마땅한 인간상을 시사하고 나면 그를 실사화하는 후속 절차를 위해 새로운 국가론이 요구된다. 인공두뇌는 우리에게 국가에 대한 특정한 인식을 제공하는 역할까지를 수행한다. 사고시키기는 국가상태에 대한 시민의 수긍, 수긍을 통해서야 구동되는 국가의 구실을 성취한다. 이는 국가의 시간학이기도 하다. 국가 내에서의 생활이 자연스러워지고 계약이 도치되는 형세는 정적인 현상유지라기보다 예기된 것들의 무한한 공급으로 나타난다. 미래라고 명명할 만한 어떤 것들이 끝없이 주어진다. 미래는 ①에서 이야기한 재산출 회로의 시간 속에서 다음의 성격을 띈다. 과거될 수 있음, 그렇게 정보화된 전례들이 각자의 기억 속에서 사회상을 맺기 때문에 신호를 믿는 작업은 생략될 수 있다. 공동체의 윤리적인 합심과는 상이하다. 차라리 잠재된 상호 의존의 관성이다. 안전을 보장한다는 포부가 안전함을 곧장 조직한다는 서두의 기묘한 서술은, 안전함에 대한 의미지음이 국가 단위에서 처리됨을 뜻한다.
이 위해의 문제는 적대 개념을 국가의 경험이 음각된 후의 성질로 이해하는 데에 관련한다. 국가가 내부의 적대를 예외화로 해소하는 처벌적 국가론은, 슈미트가 개체의 실존적 상태로서 국가와 유비시킨 적대 개념과도 상충한다. 질서의 부식을 내부에 각인하는 그의 방침을 상기한다. 처벌의 이론으로 적대를 다룰수록 국가는 그 자체의 동일성에 기반한 무리의 규모를 점점 유실하게 된다.1 결정으로부터 적대를 읽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이 적과 동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 국민의 정치적 실존의 본질이 있다”(카를 슈미트, 김효전·정태호 옮김, 『정치적인 것의 개념』, 살림, 2012, 67쪽)는 슈미트의 언술을 참조할 수 있다. 개인 층위에서 적을 결정하라는 요청은, 상대방의 우호성이나 호전성을 예견하는 작업을 제치고 그에 대한 태도를 선점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유인한다. 우리가 개인에게서 포착하는 적대의 원리가 국가 이후에야 자연스러운 역량이었다면, 그것을 공통의 인간학적 코어로 가공하는 논리란 조정과 합의의 지난한 과정 없이 개체의 즉각 행동을 여는 신호 작용이다. 결정을 전면에 드러낸다는 슈미트의 전술은 위에서의 인지를 앞지름에 호응한다. 결정에 대한 대중의 인지적 수긍, 그것을 고대할 결단자로 상상한 결정 개념은 그 전제적 구도에도 불구하고 슈미트가 의문시한 자유주의적 대리의 절차에 휘말린다. 반대로 드러냄에 대한 그의 표현인 현시란 정보화와 같은 생략의 동시성을 띈다. 결단에 동의하는 장면으로 그가 그린 대중의 박수 갈채 역시 의사의 일치가 사전 확정된 채 직접 표명되는 순간임에 핵심을 둔다. 여기까지 보아 전면에 나타난 건 권력적 실체가 아닌 흐르는 권력효과뿐이다. 이 상황을 어떤 국가론이 다질 수 있는지 생각한다면, 슈미트는 계약의 국가론이 정론이 된 뒤에 올 사회와 조우하고 있다. 계약이론이 사회로 수용되면서 남고 만 인지 절차의 문제 상황이 그 앞에 있다. 홉스를 재해석하며 그가 규범적 대책으로 제안한 결단주의를, 지금, 슈미트 이후의 국가에 관한 기술로 되가져온다.
생활권에서 신호의 정보화와 개체의 행위는 연쇄로 누출된다. 법학의 관점에서 이런 정보는 법리적으로 납득되는 일, 실증성의 꼴, 원칙과 사례 간의 정합을 연상시킨다. 부여한 원칙과 벌어진 사례의 일치, 곧 합법성이다. 일치된 사례들을 계약관계가 흘려 쌓아둔다면, 이것이 사회상태를 단번에 정당화한다는 납작한 언급은 슈미트의 잇따른 움직임을 예고한다. 슈미트는 이 실증성의 맥락 속 합법성이란 것의 배후를 살폈다. 거기에 국가가 부여하는 정당성을 추가, 원칙이 무엇으로 정당해지는가 하는 물음을 내놓았다. 슈미트가 한쪽을 정지시키면서 분할한 법과 국가가 합법성과 정당성의 이항과 겹친다.2
계약의 신호가 정보화되는 일처럼 원칙과 사례가 이미 맞붙어 생산되어 안전해진다면, 합법성 개념이 기능하는 방식과 달리 애초에 원칙과 사례는 비교군이 아니다. 비교 불가능한 일체성에 관해 다음은 정보화 과정이라 칭할 현상을 소묘한다.
합법성이 내포하는 원칙과 사례의 구분은 사법판단의 이미지를 불러온다. 우리가 통상 법에 대해 갖는 인상이다. 행위가 먼저 발생하고 법이 사후 적용될 미래의 시간에서 법은 행위를 해석한다. 무엇을 한 것인가, 에 관한 답변이다. 사법판단의 순서쌍은 행위가 법을 요청하는 양 오인시킨다. 법 앞에서 문을 두드리는 행위자의 모습을 상상한다. 장면 속에서 행위의 적법성은 국가기구가 판단하며, 이는 행위를 수동화하는 사회적 효과를 낸다. 오묘한 대목이다. 앞선 동시 생성에서야말로 행위가 법망과 분리 불가능하여 구속된 듯한데, 정작 그와 구별되는 사법판단의 이미지, 사례에 원칙이 뒤따르는 덧씜이 슈미트의 국가가 부여하는 정당성을 특권화하고 있다. 원칙과 사례가 비교된다면 그것을 비교할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합법성이 정당성에 종속된 슈미트의 짜임새3가 반복된다. 다시, 정보화 과정으로 되푼다. 즉 무엇을 할 것인가, 에 관한 질문이다. 특수한 관료적 사법판단의 사례 외에 행위장 일반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있는 탓에 무엇을 할 것인가로 말문을 터야 한다. 행위라는 것이 아직 없다고 상정, 법은 나타날 수 있는 행위들을 짐작케끔 예고한다. 과거에서 구성되어 미래를 소급하는 삶의 형식이다.4 이로부터 하나의 행위이론이 발한다. 행위의 코드가 먼저 산재하며 그에 접속하는 행위자의 행위는 없는 사변의 순간이 있다. 행위가 발발할 가능성만 창출되고 해당 여건은 인공두뇌로 체득된다. 행위에 법이 도착하는 것이 아닌 역으로, 법이 행위를 불러일으킨다. 이 배열 속에서 행위를 에우고 정보가 있다.
법이 현재 규정된 이치라 한다면, 생활권에 이치를 뿌려 미리 행위를 가져다 놓는 것이다. 따라야 할 준칙 외에 삼가야 할 일탈까지 정보로 고안된다. 어찌하지 않아도 그리 된다는 경로 의존성, 행위하지 않아도 행위는 이미 있다는 유물적 관습을 도려낼 수 있다. 홉스로 거슬러올라, 이 상태는 곧 행위‘할 수 있음’의 보장, 자기보존으로 성립하는 계약지평이다. 푸코가 내민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 나남, 2020, 110-111쪽)는 테제를 닮도록, 규범이 있는 곳에 행위가 있다. 행위는 본성론이나 인간학적인 대상이 아니라 코드와의 접합 문제다. 이런 합법과 불법의 코드, 정보의 생산은 루만이 거론한 바 있다. 루만은 법체계 외부환경이 합법과 불법이라는 고유 값을 할당받고 정보로 감축 처리된다고 본다. 환경은 법체계에 자극을 줄 뿐이며 그를 정보로 다룰지 혹은 어떤 값을 줄지는 고스란히 법체계의 작동이다(니클라스 루만, 윤재왕 옮김, 『사회의 법』, 새물결, 2014, 102-103쪽). 정보화된 것들이 앞선 행위장보다 더 부분적인 법체계 내부의 요소로 여겨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루만에게서 법체계가 생산한 정보는 전달되고 옮겨지는 데이터 개념과 대치한다. 체계 바깥에서부터 옮겨오거나 바깥의 다른 체계와 상관하지 않고 그저 법체계의 구별성으로 기능할 뿐이다(122-123쪽). 루만이 법의 근거를 법에서, 자기지시적으로 찾거니와 법을 사회의 체계와 구분된 부분체계로 보기 때문이다. 행위의 정보화가 이에 기속될 시, 행위에 대한 일반 인지는 법체계를 통한 “학습”(125쪽)에 영향 받는다.5 슈미트의 문장을 여기에 후첨가한다. 생활을 재생산하는 형식은 행위 사태와 규범 사이에서 둘을 매개하며 상대하는 관계항이 아니라 일체의 규범—행위가 제조되며 동작하는 법체계를 관조하는 법 외의 체계로, 루만 식으론 체계간 교섭을 맺는다. 벌어지고 보여진 수준에선 이미 합법화된 범주 내에 있으므로 그야말로 합법적이라 판단될 수밖에 없는 행위모델들이 현실에 쌓이며 합법성은 한켠에 성질로서 생산된다. 국가로부터 생체의 행적은 배출된다. 다시 따분한 규제관으로서의 국가가 아니라 제한된 가능성을 만드는 국가, 사법판단의 뒤에 숨은 국가를 정확하게 쟁점삼을 수 있다. 두 인식의 차이는 슈미트에게서도 해명된다. 인간이 역사 속에서 할 일은 이미 완수되어 있기에 행위는 섭리에 대한 답변이며(오오타케 코지, 윤인로 옮김, 『정전과 내전』, 산지니, 2020, 255쪽), 이 지점에서 행위는 본성의 인과율을 벗어난다. 「카를 슈미트의 ‘정치신학’의 근원」에서의 미켈레 니콜레티는 인과율을 “내적 경과”로 대체하며, 그것을 담아내는 객관성의 형식을 외부에 설치하는 슈미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그것은 원인의 결과가 아니라, (왜냐하면 인과관계는 내면과 외면의 구별을 해소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목적으로 향하고 있는 인간의 의사의 실현이다. ‘원인’이 아니라 ‘목적’이 책임개념의 본질을 규정하는 구성요건이 된다.”(헬무트 크바리치 외, 김효전 옮김, 『반대물의 복합체』, 산지니, 2014, 35-36쪽) 만일 내면과 외면의 분리·행동 동기와 결과의 분리가 생체의 심리학적 인과율에 의해 완결적으로 해소되면 정보의 폭은 축소된다. 앞서 썼듯 가상으로서의 사회계약이 함의하는, 행동의 동기로 삼아질 선한 일반의지의 위배자를 처벌하는 모델6이 법체계를 투과하여 생산되는 정보의 전부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논의는 국가기구가 관료–배우로서 수행하는 부분체계의 기능을 인과율에 대한 승인과 처벌이라는 이항판단만으로 중립화한다. 너머에 던져놓는 목적과 그게 길어오는 행위의 도상, 이런 외부의 정황을 추가하니 정보들은 처벌을 통한 규절을 초과한다. 행위들의 목적이 미리 세팅되어 있어 일탈자의 질서까지를 생성하는 국가 모델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우리로 하여금 외부를 확인하게 하는, 너머에서 들려온 소리는? 결단이다. “결정규범으로서의 법규”가 침묵하는 “누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은 슈미트가 주시하고 있는 바다. 여기서 이 구절의 직전 대목으로 되감으려 한다. “메르클이 주창한 불변의, 시공을 초월한 법의 ‘영원성’에 대한 사변 등을 논하지는 말자 …… 스스로의 내면에서 형식에 대한 조잡한 양적 관념이 기능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형식을 이렇게 생각해서는 어떻게 인격적 계기가 법이론 및 국가이론에 도입되는지를 결코 설명할 수 없다.”(카를 슈미트, 김항 옮김, 『정치신학』, 그린비, 2010, 43쪽) 슈미트는 결단 개념에 깃든 인격성이 형식을 구체화하는 탓에 형식의 영속성과는 반목한다고 명시한다. 인격을 끌어들이면, 규범과의 일치를 검증받는 피동자 시점에 비치던 규범의 영원성이 사그라든다. 법이해는 규범—사례의 일회적인 동형성으로 전환된다. “결단에 관해 중요한 것이 그 내용이라기보다는 결단이 행해졌다는 사실 그 자체”(『정전과 내전』, 49쪽)임에, 결단은 포섭하여 내용을 추려내는 것이기보다 선포하는 것이다. 망을 갖춰 형식을 가두고 나면 그 안에 우글거리는 내용들이 있다. 첫째로 “예측 가능한 결단을 주기”(카를 슈미트, 「법률과 판결」, 1912 : 67; 『정전과 내전』, 50쪽으로부터 재인용)로 표현되는 정당성의 세팅 영역, 둘째로 인격이 덧붙으며 법체계의 정보화 과정은 자유로운 단독자의 행위 의사에 대한 개입이 아니라 예정된 계기 자체의 형상화가 되는 것이다. 니콜레티는 위에서 신학의 맥락을 찾는다.
합불판단의 경우와 같이 자유를 강탈당했을 때에야 불쾌하다. 사전에 제약되어 있다면 눈치챌 수 없다. 이로써 법을 통제로 받아들이던 시민의 불쾌한 법감정은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다. 비로소 정당성이다. 지금, 슈미트가 균열을 봉하기 위해 끼워넣던 정당성은 외딴곳으로 투척된다. 여태 합법성을 재규정하여 수습한 탓이다. 대안으로 제출됐던 슈미트의 정당성은 제기된 문제가 잘려나간 채로 돌출한다. 결단하는 인격이 준거하는 정당성이란 어떤 형태인가? 슈미트가 정당성을 도입할 때, 이는 “법규범이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예외상태를 법규범 내부에 묶”(김항, 『종말론 사무소』, 문학과 지성사, 2016, 97-98쪽)기 위한 전략이라 분석된다. 법의 외부를 정당한 권위에게로 당겨오려는 시도다. 그 위치는 아감벤의 예외상태에 대한 묘사를 참고하면서 파악된다. “예외상태는 ‘비합법적’이지만 절대적으로 ‘법률적이고 헌법적인’ 하나의 조치로 모습을 드러”(조르조 아감벤, 김항 옮김, 『예외상태』, 새물결, 2009, 59쪽)낸다. 비합법적이지만 헌법적이라는 수사에 나란히, 루만 또한 헌법이 “법의 자기준거 문제에 대한 정치적 해결”이자 “정치의 자기준거 문제에 대한 법적 해결”(『사회의 법』, 629쪽)인 “법체계와 정치체계의 구조적 연결을 보장하는 형식”(620쪽)이라고 쓴 바 있다. 법에 대한 하나의 외부 영역으로 정치가 꼽힌 점, 그에 걸친 예외상태를 수식하는 헌법은 포괄적으로 설정된다는 점을 고려한다. 하지만 루만에 미루어볼 때 아감벤의 표현 속 법률적인 것을 예외상태와 곧장 동일선상에 두기엔 무리가 있다. 위치를 다시 찾는다. 예외상태의 어감이 갖는 낌새, 무질서와 범법은 법체계 내부의 불법 코드에 국한된다. 그러나 정당성을 들이는 과정 중 예외상태의 비합법성은 법률이 행위모델로 연쇄되는 일의 불가능성까지를 함의한다. “예외상태란 상이한 권력 형태들(입법, 행정 등)이 원초적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외상태는 오히려 텅 빈 상태, 즉 법의 공백 상태에 근거하며 원초적 권력이란 자연 상태라는 개념과 유사한 법적 신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예외상태』, 21쪽) 아감벤에게 예외상태의 맥락은 포함하는 배제라는 법형식으로 논해지며, “만약 ~라면”의 구체적·예외적 사례, “해야 할 것이다”의 법문 처리로 법규칙이 세분된다. 이때 전자는 법에 의해 예외화된 법규범의 바깥으로, 아감벤에게서 이 예외가 상례가 되면 법규범은 무너진다(김항, 『종말론 사무소』, 229-230쪽). 즉 주절의 해석적인 법적 대응이 종속절을 맺는다. 정상상태가 예외상태를 대상으로 삼고 있으므로 헌법적인 예외상태는 헌정 세계 자체로 취급된다. 주절이 종속절을 포함·처리하고 있음에도 정보값은 종속절에 미달하는 탓에 예외상태가 배제의 자리로, 비합법적인 것으로 유예된다. 포함하는 배제 정식은 법률적이라는 수사를 막연히 남긴다. 정상상태와 연루된 법률적인 것이 아감벤의 문장에 의해 예외상태와는 이분되기 때문이다. 그의 접근은 예외상태가 법문 형식을 아우르는 층위의 현상이며 연쇄의 불가능성이라는 논변과는 충돌하는 듯하다. 아감벤의 목표는 다음을 주장하는 데에 있다. 내부의 정상상태는 외부에 관해서 구성되기에 이미 있지 않으며 자명하지 않다. 그는 현실 사례와 규범 사이 논리적 필연성이 없다고 지적하며 미리 주어진 예외상태에 대한 조치로 규범공간을 짓는 정당성의 역능7을 본다. 슈미트의 매개처럼 두 절을 연결하는 힘, 예외상태에서 정상상태로 순행시키는 정당성을 들추고자 하니 사례와 규범의 합일은 거부된다.
아감벤의 어순은 예외적인 것이 정상적인 것에 선행하는 꼴로 읽힌다. 그러나 조건문이 예지한 일은 뒤에 온다. 우연스럽다는 선후관계는 정당성에 의해 조작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일러둔 논지처럼 규범이 사례를 유도한다고 인식한다면 예외상태는 외부 공간보다 연쇄의 중지라는 시간 차원에 놓인다. 국가정치가 모종의 정상상태를 지정하고 예외일 수 있는 것들을 거기로 옮겨놓는 동작을 보아야 법률적이라는 수식과 예외상태가 붙는다. 이를테면 유물화란 무덤 속에 동봉하기다. 정상화라는 과업이 무색하게 예외상태를 배 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그것이 필연적이라고 말하기 위해 아감벤의 문장을 루만에게서 찾으며 다소 변형할 수 있다. 조건문으로 가동하는 법의 프로그램 “~이면 ~이다”는 합/불법 코드의 분배 방식에 대한 규칙(『사회의 법』, 134쪽)이자 “기준 자체에 대한 정당화”(260쪽)를 행하는 근거 원천이다. 조건문은 법제화과정의 목적 프로그램을 제 맥락 속에 품는다. “법은 조건 관계를 통한 안정성(만일 조건화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안정성이 아니다)만 제공해 이를 통해 다른 기능 체계들로 하여금 훨씬 더 넓은 범위의 목적 선택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다. 전체 사회 입장에서 본다면 목적 프로그램과 조건 프로그램의 결합은 커다란 장점이 된다.”(277쪽) 목적 프로그램은 “결정의 조건들을 미리 확정”(269쪽)하면서 법의 시간성을 사후 개입할 미래로부터 현재의 의도로 당겨온다. 프로그램은 미래를 의도대로 기술하는 문맥이고8 법률이 작동하는 정상상태라는 것은 즉각적인 결정 만들기, 문장을 만드는 힘이다. “결합”의 정상상태 속에서 법리는 목적 프로그램과 같이 사전적으로 잠재하며 조건 프로그램의 가동 수준에서 논리상 필연화되어 있다. 종합하여, 결정화는 언술형식을 목적에 따라 조직함으로써 필연적 합법성을 생성한다. 아감벤의 어순은 주권이 특수 사례를 법률적 사례로 일반화하는 상을 따라가므로, 정보화 과정을 적용해 이를 치환해본다. “해야 할 것이므로 만약 ~일 것이다”. 이제와 행위가 끝나고 남은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 행위를 앞지르던 수많은 행위—정보들이다. 정당성은 작문까지를 수행함에 “해야 할 것”에 의해 “만약 ~일 것”이 존재한다. 예외상태라는 문제는 이전의 행위—정보들만 남긴 채 새로운 행위—정보들을 갱신하지 않겠다는 중단의 시간, 결정 만들기의 정지다. “예측 가능한 결단을 주기”는 “만약 ~일 것”이라고 추론하게끔 유포하는 정당성의 동태이며, 이 예측 가능성에서 벗어나면서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주권 모델은 결정을 중단하는 최후의 결정이다. 여기 이르러 정당성은 문장을 아우른다. 행위에 대한 승인은 적법성의 사후 판결, 고심 끝에 이어서 써내려지는 문장의 후미가 아니다. 행위의 둘레에 정당성에 기초한 정보화가 진행되고 있어 행위는 결정들 속에서 등장했고 납득되었다. “만약 ~라면 ~해야 할 것이므로 ~일 것이다”로 문장은 확정된다.
한편 벤야민은 슈미트의 “예외상태를 결정”한다는 테제에 반하며 “예외상태를 배제”하는 주권을 정의(발터 벤야민, 김유동·최성만 옮김, 『독일 비애극의 원천』, 한길사, 2009, 254쪽)한다. 결정 만들기와 대립하는 듯한 그의 표현 “배제”는, 그걸 계승한 아감벤의 어구인 포함하는 배제와 위 문장의 중첩을 통해 미묘하게 풀어진다. 포함과 배제를 동시에 이행하는 작문이 이미 예외를 포함하고서 사례들로서 엉결에 출력한다. 가령 “수감될 것이므로”가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이다”를 출력하며 목적성을 표지한다. 연이어 불법으로 가공할 어구, “도둑질을 한다면”은 앞으로 보내면서 전치된 미래로 삼킨다. 이 예시는 앞선 정보화 과정의 핵을 환기한다. 아감벤의 정식에선 수감이 뜻하는바, 승인과 처벌의 이항으로 일반화된 규제적 처분이 정보를 종결하고 있다. 어순을 재배치하면 수감은 사태와 얽힌 특수한 경우의 프로그램으로 의미지어진다. 이렇게 보니 주권이 가행하는 조치를 배제로 규정하기엔 난감하다. 벤야민이 “진정한 예외상태”라며 배제의 대상을 특정하는 이유다. 그는 총파업을 일컬으며 예외상태의 실천적 급진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법정보 생산이 예외상태의 도사림·예측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권능을 카드 뒷면에 붙이고 있음에 주의한다. 총파업은 승인과 처벌의 코드에 선제 지정 내지 완전 결속되지 않고 반론이 제기되는 각축장이라 할 수 있다. 정당성의 담지체는 압제할 공간을 지정하며 그에 대한 비판을 유도한다. 벤야민의 예제를 따라 총파업으로 결정 만들기가 지연된다면, 그때 누군가 본 건 파업장의 형세가 국가의 유기적인 운동을 절단하는 양 상연되는 예외상태다. 유발되는 예측 불가능성을 시민감정과 엮는 국가적 처리술로, 총파업이 시민의 균일한 일상을 불편케 한다는 얄팍한 서사는 쓰인다. 벤야민의 회유는 결국 슈미트적으로 번복된다.
이제 예측 불가능함에 대한 생리적인 기피를 정당성에 대한 불쾌함으로 연장할 수 있게 된다. 예측의 붕괴란 일차로 행위할 수 있게끔 자기를 소유하는 상태로서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다. 개체는 사례들, 그것을 정보로 돌려받을 상태를 사수하려 한다. 이차로 그를 위한 결정들을 물고 오는 규범 자체에 가해지는 위협이다. 사례와 규범이 맞물려 있으므로 정당성이 그를 손괴하는 일은 한번에 벌어진다. 잠재적·예외적 차원에서 자기 소유적 자유의 파손에 대한 공포가, 규범에 물리면서 현실적 차원에서 처벌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무법에 대한 공포로 표현된다. 잇따라 개체는 법의 부분체계 내부에서 합법성 산출에 가담하여 법을 준수하도록 유인된다. 시민이 규범을 지겨운 명령으로 여기는 감각과 규범을 사수하려는 감각은 쌍을 이룬다. 둘 모두 법정보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국가 조치에 대한 불쾌에서 기인한다. 그 느낌이 정상상태에 놓이면 부각된 규범만이 우릴 구속한다고 착각하거나 혹은 규범을 절대적으로 순수한 합리, 사례에 무구한 합리성으로 오인하는 상호모순적인 효과를 동시 창출한다. 우린 규범만을 비판하거나 국가만을 비판하도록 교란된다.
시민이 국가가 분비하는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도리어 국가기구에 의존하는 것과는 별개로 국가는 자신이 묻어둔 예측 불가능함을 어떻게 감당하려 하나? 예외상태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계엄과 같은 예외상태가 결정을 중단한다면, 이런 상황은 정상값의 말소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상과 병렬하는 대당으로서 예외화될 수 없으며 전면 초기화에 가깝다. 한데 「유물 유출」에서 정지와 재생의 도상으로 슈미트를 묘사했듯, 어쩌면 재생으로 지나갈 예외로 보이기도 한다. 정당성에 의한 정지 도중 일상 차원에서 잔존하는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 예외상태가 불법이나 아노미와 즉시 등치되지 않는다는 점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다시 유물 문제가 회귀한다. 훈련된 인간의 행동들이 있다. 지금까지 합법성이 결단형식에, 결단형식이 정당성에 의지한다고 거슬렀다면, 이윽고 슈미트는 정당성이 의지할 무언가를 찾고 있다.
정지로부터 발견되는 배후의 시간결정이 도래하는 개념으로서의 예외상태, 그 진정한 시간 속에서 후기 슈미트는 노모스를 발굴한다. 얼음 속에 서린 질서로서의 노모스. 역사의 어떤 국면, 한때의 축적물, 흐르고 있는 국가상태를 초과하는 토대다. 하지만 으레 역사성이 함축하듯 직접 경험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현재의 경험을 초월하여 누군가에 의해 경험되었던 것이다. 슈미트가 스스로 위치 짓기를 보편적이지 않되 일정 범위에만 걸친 원리에 좌표 두기에 이런 모호한 개념화를 감행한다는 것을 염두한다. 노모스의 형태는 ①에서 우리가 감지했던 사회형태, 잔상으로서의 사회감각과 유사하다.
그것이 경험 불가능하므로 열화적으로 경험되도록 성문법이 있다. 고대 철학의 용법을 참조하여, 성문법이자 노모스의 복수로서 노모이는 “시민들에 의해 합의되고 기록되어진 행위에 대한 규칙”(이한규 2006, 8)이다. 노모스가 일회적일 미기록의 질서라면 노모이·법은 노모스의 구현체다. 노모이는 나아가 퓌시스, 영원한 자연의 질서와 구별된다. 슈미트는 노모이 상위의 질서로 퓌시스 없이 노모스만을 채택하고 있다. 퓌시스가 시간을 거슬러 정지 없는 보편체임에, 그 허상성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퓌시스에 대한 자연법 사상은 외적 간섭으로 고안한 것을 개별 이성에 내장시켜 개인 행위와의 내정적인 합목적성을 달성한다. 노모이에 대한 실정법주의는 표층의 형식에 몰입한 끝에 생기 없이 사례에 미달하거나 초과하는 긴장 중에 있다. 그 와중 슈미트는 생산하는 형식, 공표하는 주체로 인격화된 국가를 기입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공동의 것으로서의 진리, 로고스가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퓌시스’를 따르는 것”으로 설명되는 반면 노모스는 “자신(들)의 생각”이다.(위의 글, 22-24쪽) 즉 자기 자신만의 것인 사적 소유와 공동의 것으로서의 퓌시스 사이에 국지적인 자신들의 것, 노모스가 있다. 슈미트의 계책은 매개함이 통상 목표하는 보편성의 개발이 아니라 국경을 사이에 둔 구역성의 연결망이다. 그는 이를 대지의 노모스라 수식하여 국가가 배경으로 삼는 권역, 자연물을 영토로 분할하면서 대지에 새겨지는 질서를 강조한다.
정당성이 요구하는 그 자신의 근거가 초월신학이 아니라 국지적인 역사의 특정 국면에 정위될 때, 도리어 정당성의 질서에 순응하고 있던 대상이 정당성의 주체에 거울처럼 반사된다. 생산자는 그 자신이 생산한 것을 대면하게 된다. 반사체로 생산된 시민이 있고, 후기 슈미트의 비–내셔널리즘을 제출하는 코지의 분석이 현상된다.9
이 대상들은 주체가 삭제되어도 잔상으로 남아, 열화본인 법 잔해를 뱉어냈던 땅에 입력된 질서를 따른다. 통수권자의 계엄 발현에 대한 시민적 대항의 구호가 법의 수호로 귀결되는 구도를 새삼 상기한다. 무법이 국가에 얽혀 찬탈되었다. 정상성이 탈구할지언정 국가상태에 동기화된 생체는 이미 새겨진 질서 위에서 무언가를 복구하려고 한다. 노모스가 복수형인 노모이가 되는 순간, 합의라는 틀 자체가 국가 수준의 형식 속에 있다. 슈미트의 이론에서 국가가 보이는 자장, 국가가 대지 자연물을 국토화하며 자연법을 사후적으로 재구성할 때 발생하는 국가의 자연화다.
그 땅에 엎드려 자연사처럼 보이는 서사 줄기, 헌법제정권력으로서의 시민주권에 대한 헌정사가 내비친다.
참고문헌
니클라스 루만. 강희원 옮김. 『법사회학』. 한길사, 2015.
__________. 윤재왕 옮김. 『사회의 법』. 새물결, 2014.
카를 슈미트. 김도균 옮김. 『합법성과 정당성』. 길, 2015.
________. 김효전·정태호 옮김. 『정치적인 것의 개념』. 살림, 2012.
오오타케 코지. 윤인로 옮김. 『정전과 내전』. 산지니, 2020.
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 나남, 2020.
헬무트 크바리치 외. 김효전 옮김. 『반대물의 복합체』. 산지니, 2014.
김항. 『종말론 사무소』. 문학과 지성사, 2016.
조르조 아감벤. 김항 옮김. 『예외상태』. 새물결, 2009.
__________. 박진우 옮김. 『호모 사케르』. 새물결, 2008.
발터 벤야민. 김유동·최성만 옮김. 『독일 비애극의 원천』. 한길사, 2009.
이한규. 2006. 「히피아스의 ‘노모스-퓌시스 안티테제’에 대한 연구」. 철학, 86 : 7-29.
각주
1: 적대를 외화하며 축소되는 국가의 모습이 슈미트로부터 띄기를, 국가 내부의 “대립을 상대화하는 포괄적 통일체라는 관념이 그 힘을 상실하고, 그 결과 다른 국가와의 대외정치적인 공통의 대립보다 국가 내부의 대립 쪽이 더욱 강도 높게 유지되는” “국내정치의 우위”(『정치적인 것의 개념』, 45쪽) 상태가 언급된다. 그의 이론 속에서 적대가 동일성을 확립한 국가의 교전권으로 복속되는 바, 국내의 당파 대립이 심화된 내란이란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적대를 국가가 독점하지 못한 시기로 읽힌다. 그러나 국가적인 것 이전에 정치적인 것을 먼저 개념화한 뒤 국가를 정치적 통합체로 적는 그의 절차상(61쪽), 적대로 분할된 단위를 다시 개인이 동기화될 수 있는 국가로 새로 구획하면 정리될 일이다. 오히려 곤경은 적대를 적출할 때 정치가 윤리로 대체되는 형식에 있다. 슈미트에게선 국내정치보다 국제정치의 문제로 쓰인다. “정치적 통일체는 적의 현실적 가능성을 전제로 하며, 동시에 존재하는 다른 정치적 통일체를 전제한다. 따라서 무릇 국가가 존재하는 한 언제나 복수의 국가들이 지상에 존재하며, 전 지구와 전 인류를 포괄하는 세계 ‘국가’는 있을 수 없다. 정치적 세계는 다원체이며, 보편적 단일체가 아니다.”(위의 책, 71쪽) “인도주의의 배후에 있는 것이란, 누가 인간인지는 내가 결정한다는 요구”(『정전과 내전』, 13쪽에서 재인용)라며 추상화된 보편인류 개념이 전쟁을 도덕화하여 인류의 적을 지정·섬멸하는 전면전의 여지를 차단하려 한다. 전쟁을 주권적 결단으로 제어하려는 자신의 방책 속에서, 슈미트는 두부 모델의 특유함처럼 국민국가를 세계정치상 중립화된 행위자로 설정하게 된다. 그가 시민정치가 정치를 잡아먹고 있으므로 국가정치가 당장은 유효하지 않다고 쓰는 건, 자신의 개입 지점인 이 도덕화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글에서는 적대와 국가 내부 관계를 연계하기 위해 국내정치에 한정 접근하며, 슈미트가 암시한 인간의 위험성을 상호 의존적인 매개로 풀어낸다. ①에서 추적했던 자기보존을 행위에 관한 자기통제로 진척시켜 의문에 부쳐보고자 한다.
2: 슈미트는 합법성과 정당성을 함께 논하는 중 합법성이 물신주의적인 허구라고 비판(카를 슈미트, 김도균 옮김, 『합법성과 정당성』, 길, 2015, 23쪽)한다. 이때 단순한 합법성, 논리적 실증성이 어떻게 물신화되는지는 규범과 행위의 연쇄를 논거로 후술한다.
3: 오오타케 코지는 슈미트가 적법성을 문제시하는 대목에서부터, 원칙과 사례를 매개하고 비교하는 “누군가”에 대한 요청까지를 쫓는다. “재판관의 사법결단은 법률의 올바른 “해석”과는 전혀 다른 것이지 않으면 안 된다. 슈미트가 볼 때, “올바른 해석”과 “올바른 결단”이 혼동되고 마는 지점에서 오늘날 흔히들 사법결단의 올바름의 기준으로 간주되는 “적법성(Gesetzmäßigkeit)”의 요청이 출현하고 마는 것이다. 이 ‘적법성’이라는 기준으로 따른다면 사법결단은 단지 개개의 특수사례를 법률의 규범적 내용의 일반성으로 “포섭하는(subsumieren)” 일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고 만다.”(『정전과 내전』, 47쪽) 표기된 포섭은 자명함을 스스로 확증해낼 수 없다. 결국 합법성이 규범과 사태를 분할하는 상황은, 결착한 두 요소에 틈을 내고 그 사이에 자신의 매개를 추가하는 슈미트의 방법론을 위한 판으로 바쳐지는 셈이다. 본문과 같이 우리가 사법판단의 틀을 유지한다면 합법성의 과잉을 대면한 슈미트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4: “볼첸도르프는 형식이란 “사회—심리적 현상”이며······다음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있는 안정적 요소를 헌법의 사고구조 속에서 파악 가능하게 하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하여 국가는 삶의 형식이라는 의미에서 하나의 형식이 된다.”(『정치신학』, 42-43쪽) 슈미트는 볼첸도르프를 인용하며 생활양식을 재생산하는 형식으로서의 국가를 이야기한다.
5: 뒷절(『사회의 법』, 125쪽)에서 루만이 규범과 사실의 구별을 정보 개념의 구별성 작용과 묶어내며 엄밀히 지키려 함을 밝힌다. 하지만 체계/환경 차이—규범/사실 차이가 엮일 때 규범과 연관된 사실이 더불어 수용되는 환경상의 관점에 입각하여, 논지를 유지하며 루만을 다루려 하므로 위 구별까지는 차치한다.
6: 제재에 대한 불쾌라는 “인간심리학 전체의 기본적 공리”로부터 규범의 타당성을 짚는 모겐소의 현실주의적 기능법학(『정전과 내전』, 255쪽)과 같이, 사회계약이 징벌적 규제라는 실례로부터 연역되며 합법성의 실증주의와 공모하게 된다.
7: “법률에는 공백이 있지만 법에는 있을 수 없다는 원리에 따라 예외상태도 공법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공백이라고 해석되어 행정 권력에 의해 복구되어야 할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사법 권력과 관련된 원리가 이렇게 행정 권력으로 확장”(『예외상태』, 64쪽)되어, 주권적 결정은 내부로 “진입할 수 있게 해주는 경계”(조르조 아감벤, 박진우 옮김, 『호모 사케르』, 새물결, 2008, 62쪽)를 만들게 된다.
8: 루만은 의도로서의 목적 개념이 예지한 미래와 실제 미래의 차이를 은폐한다고 지적하면서도, 자신의 방법론상 “(일단 잠정적으로) 목적 개념의 현재 관련성을 아직 포기하지 않”음을 표명한다. 목적 개념은 두 “차이의 통일성을 표시”하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지적된 은폐를 국가의 리스크 관리로 진행할 것을 일찍 거론해두며, 루만 역시 목적 프로그램이 차이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위험 관리”로 표기(『사회의 법』, 271-272쪽) 하고 있다.
9: “주권국가가 “하나의 역사적 시대와 결부되어 있던 도구적 개념”이지 시대와 장소에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타당한 질서는 아니라는 인식”(『정전과 내전』, 15쪽), “그는 1차 대전 발발 이후의 일기 속에서 개전과 함께 국가가 개인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 강력한 힘을 두려워 한 것”(『정전과 내전』,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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