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무브 Project/니 비니! нi вiйнi! (전쟁 반대!)

『말살에 저항하기: 팔레스타인, 자본, 제국주의, 인종』, 서론: 팔레스타인을 다시 프레이밍하기

by 인-무브 2026. 8. 10.

『말살에 저항하기: 팔레스타인, 자본, 제국주의, 인종』

Resisting Erasure: Capital, Imperialism, and Race in Palestine (Verso, 2025)

 

아담 하니에 Adam Hanieh · 로버트 녹스 Robert Knox · 라피프 지야다 Rafeef Ziadah

번역: 박기형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원서 정보: https://www.versobooks.com/en-gb/products/3410-resisting-erasure?srsltid=AfmBOooCJJDRZXfckfEOGjtd5-Vda_COLhA55E3qYjh1m3rOXVSJQCBD

 

Resisting Erasure

Why has Palestine become a defining fault line of contemporary politics?Challenging mainstream narratives that reduce Palestine to ancient hatreds, humanitarian tragedy, or legal abstractions, Resisting Erasure places Israeli settler-colonialism within the

www.versobooks.com


서론: 팔레스타인을 다시 프레이밍하기

 

나는 그대에게 한 가지 앎을 피난처로 내어준다.
먼지는 걷히고,
사랑에 빠져 함께 죽은 이들이
언젠가 웃으리라는 앎을.
    - 히바 아부 나다(Hiba Abu Nada)[1]

 

2023 10월 이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은 무자비한 파괴와 사람들의 고통 속에서 계속되었고, 그 참혹한 실상은 낱낱이 전 세계로 중계되었다. 여러 마을이 통째로 잔해더미로 변했다. 주거 건물과 병원, 학교, 필수 기반시설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심히 격렬한 폭격으로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목숨을 잃었다. 상당수는 여전히 잔해 아래 묻힌 채 수습되지 못했다. 수천 명은 영구적인 신체 훼손을 입었고, 임시 수술실에서는 마취도 없이 절단수술이 이뤄졌다.[2] 오늘날 가자지구는 사지가 절단된 아동의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 가운데 하나다.[3] 이스라엘이 식량과 물, 의약품을 봉쇄하면서 가자지구는 재앙적 상황에 빠졌고, 주민 전체가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쫓겼으며, 자신들이 살던 동네의 폐허 한가운데 들어선 천막에서 비좁게 지내고 있다. 끊임없는 폭격과 상실이 남긴 심리적 대가(toll)가 생존자들의 얼굴에 새겨져 있다.

이러한 현실은 통제를 벗어났거나 무작위로 벌어진 전쟁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의도적인 파괴정책의 산물이다.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 당국자들은 가자지구를 '밀어버리겠다(flatten)'고 공개적으로 말했고, 군사전략은 그 수사를 잔혹할 만큼 정확하게 그대로 반영했다.[4] 참화의 규모는 엄청나다. 문화 유산들이 지워졌고, 여러 일가족이 몰살당했으며, 가자지구의 의료 시스템은 병원과 의료진, 구급차를 겨냥한 타격으로 체계적으로 해체되었다. 당장의 폭력을 넘어,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는 팔레스타인인의 삶을 터전에서 몰아내고 분절하고 지운, 수십 년간 이어온 프로젝트의 연장이다. 이 과정은 1948년 나크바(Nakba)에서 시작되었으며, 당시 75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자신들이 살던 집에서 강제로 추방되었다.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이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웃 아랍 국가로 '재배치(relocate)'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 목표는 다르지 않다. 바로 주민 제거와 인종청소다.

 

그러나 이러한 참상과 동시에,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가자지구 주민들에 연대하는 전례 없는 전 세계적 대중동원 또한 목격했다.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섰고, 베트남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글로벌 시위운동이 벌어졌다. 대학 곳곳에서 농성캠프가 들어섰고, 용감한 활동가들이 항구와 무기공장을 봉쇄했다. 이제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고 이스라엘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는 캠페인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어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에 이스라엘을 제소한 사건도 상징적 의미가 컸다. 이 사건은 '국제 정의'가 지닌 한계 속에서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와 이스라엘의 정착민 식민주의적 폭력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닮았는지를 부각했다. 또한, 이스라엘의 행위가 얼마나 잔혹한지를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비호하는 서구 국가들의 도덕적 파탄까지 드러냈다.

 

이러한 저항운동들과 팔레스타인인이 처한 곤경에 대한 인식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한 가지 단순한 진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자지구 주민들은 우리 시대의 심대한 부정의를 체현하게 되었다. 생존을 위한 이들의 투쟁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에 자유롭고자 하는 열망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맞서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은 오늘날 세계의 현실에 대한 훨씬 더 깊은 분노를 끌어 모으는 피뢰침이 되었다. 이를 시사하는 한 가지 징후가 있다. 팔레스타인이 정치 엘리트들을 급진화시키는 동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극우 정당부터 (영국 노동당 같은)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이르기까지, 정당들은 서둘러 이스라엘 국가 뒤로 줄을 서면서 대오를 결집했다. 전 세계적으로 그 양상은 시위운동을 탄압하기, 활동들을 범죄로 몰아가기, 대학과 공공장소에서 친팔레스타인 발언을 강력히 단속하기로 나타났다.[5] 자본주의 국가들은 언제나 철갑을 낀 주먹 위로 자유민주주의라는 벨벳 장갑을 씌우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이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달리 말해, 지금은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의 시대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투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에도, 이 투쟁을 두고 논쟁하고 논의하고 이해하는 방식에는 여전히 많은 문제가 남아 있다.

 

대중매체는 팔레스타인을 시대를 초월한 분쟁의 현장으로 그리곤 한다. 오래된 종교적 증오나 성지를 둘러싼 상충하는 주장이 그 분쟁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레이밍은 역사를 왜곡할 뿐 아니라 대개 노골적인 인종주의로 치달아, 팔레스타인인을 종교적 광신자나 비합리적인 불만에 사로잡힌 폭력적인 군중으로 그린다. 이 주장의 좀 더 세속적인 형태에서는 이스라엘을 문화적·문명적으로 '후진적'이라고 여겨지는 지역에 서있는 '서구 민주주의'의 등대로 제시하고, 팔레스타인인을 반유대주의적 공격자에 불과한 존재로 뒤바꿔 놓는다. 이러한 설명은 뿌리 깊이 인종주의적이고 역사적으로도 잘못되었으며, 오늘날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저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폭력에 대한 서구의 지원을 적법하고 정당한 것으로 만들 뿐이다.

 

겉보기에 이와는 다른 관점이 '인도주의적' 렌즈다. 이 관점은 거의 80년 동안 우리가 목격해 온 폭격과 대규모 체포, 계속되는 박탈 등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막대한 폭력과 인권침해에 초점을 맞춘다. 이 프레임워크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에 마땅히 주목하게 하지만, 근본적으로 불충분하다. 이러한 폭력이 지속되는 이유를 이스라엘 지도자나 특정 우익 정당의 이데올로기적 극단주의를 넘어서는 차원에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6] 이 관점은 이 폭력이 왜 시스템적인지, 또 어느 이스라엘 정당이나 총리가 집권하든 왜 수십 년에 걸쳐 계속되는지를 해명하지 못한다.

 

인도주의적 프레임워크는 또한 팔레스타인의 투쟁을 탈정치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한 가지 중대한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서구 국가들은 왜 이스라엘을 계속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가? 그리고 서구의 지원이라는 문제가 제기되면, 많은 이들이 북미와 서유럽에서 활동하는 일종의 '친이스라엘 로비'를 지목한다. 이는 그릇되고 정치적으로 위험한 관점이며, 서구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잘못 파악한다.

 

이러한 인도주의적 프레이밍 탓에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의 인권침해에 대응할 수단으로 국제법체계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은 문명이나 종교 간 충돌이 아니라 권리를 둘러싼 충돌로 이해된다. 이 관점의 문제는 국제법이 모두가 동등한 권리들을 보유하는 보편적 권리 체계(universal body)에 호소하면서, 이스라엘 국가와 팔레스타인 인민 사이의 엄청난 권력 비대칭을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는 데 있다. 정치와 권력은 추상화되고, 양 '측'은 형식적으로 동등한 권리 보유자로 취급된다. 그리고 –법체계 자체를 포함한– 권력의 현실을 무시함으로써, 가장 강력한 자들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행동할 수 있게 된다.

 

그 함의는 국제법 체제의 기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제법 체제는 '정밀' 표적화와 현대전을 중시하면서 강력한 국가들의 군사력에 체계적으로 특권을 부여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비유도 로켓은 본질적으로 '무차별적(indiscriminate)'이어서 불법이지만, 이스라엘 국가의 고도로 파괴적인 무기는 그 사용이 '비례적(proportionate)'이라고 판단되기만 하면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무더기로 죽여도 괜찮다.[7] 이처럼 법적 논리의 형식적 평등은 가장 강력한 자들에게 복무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즉 형식적 평등은 이스라엘 국가와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의 불평등을 후경(後景)으로 밀어내며(backgrounds), 이스라엘인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면서 팔레스타인인의 생명은 '군사적 이점'과 형량해야 할 부수적 피해로 탈바꿈시키는 기준을 유지시킨다.

 

팔레스타인에 관해 널리 퍼져 있는 이러한 서사들 –종교 간 충돌이든, 고통에 초점을 맞추는 인도주의이든, 권리에 호소하는 법률주의(legalist)이든– 가운데 어느 것도 이스라엘 폭력이 왜 지속되는지를, 또 이스라엘 국가에 자금을 대고 무장시키며 정당성을 부여하는 서구의 아낌없는 지원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서사들은 팔레스타인의 투쟁을 탈정치화하기 때문에, 이른바 평온한 시기와 극단적인 폭력의 시기(가령 지난 18개월의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연속성을 대개 무시한다. 또한 분석의 초점을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맞추는 경향이 있어, 팔레스타인 사회가 겪는 박탈(dispossession)과 파편화(fracturing)가 더 넓은 중동 지역의 동학과 맺는 핵심적 연관성을 가린다.

 

중요하게도, 팔레스타인에 반대 입장을 취하거나 무관심한 사람들만 이러한 관점을 갖는 것은 아니다. 연대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런 관점이 의도치 않게 나타날 수 있다.

 

때때로 이스라엘 국가정책의 성격이 오직 절멸적이라는 주장은 팔레스타인 인민의 '영웅주의'와 '회복력'을 부각하는 데 그치는 관점(focus)과 짝을 이룬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투쟁은 의심할 여지없이 영웅적이었다. 그러나 사안들을 오직 그것들로만 환원하면, 오리엔탈리즘적이고 인종화된 서사를 뒤집은 형태로 재생산하게 된다. 여기에는 팔레스타인인에게 거의 마법과 같은 힘을 부여하고 팔레스타인 사회를 동질화할 위험이 있다. 이 경우 우리는 팔레스타인 내부에 존재하는 정치적·계급적 차이에 대한 감각을 잃는다.

 

이 짧은 글은 하나의 대안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우리의 목표는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이 행사한 폭력의 끝없는 목록을 열거하거나, 가자지구 주민들이 겪은 막대한 고통을 다시 읊거나,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중요한 저작들이 팔레스타인 투쟁의 역사와 고난, 그 과정에서 빠졌던 함정을 기록해 왔다. 그리고 짧은 팸플릿 한 편으로는 팔레스타인 경험의 복합성 전체를 제대로 다룰 수도 없다. 대신 우리의 목표는 현재 상황의 밑바탕을 이루는 몇 가지 원경(遠景)들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시하고,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을 만들어낸 더 커다란 사회적 힘들(social forces)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몰역사적이면서 본질화하는 일부 주류 서사를 바로잡는 데 작은 기여를 하고자 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탈예외화(de-exceptionalise)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정착민 식민주의 국가로서의 이스라엘

 

1948년 이스라엘이 수립되면서 원래 그곳에 살던 팔레스타인 인구의 약 4분의 3이 자신들의 땅에서 강제이주(forced displacement) 당했다. 추방은 이미 1947년에 시작되었고, 국가 수립이 선언되었을 무렵에는 약 500개의 팔레스타인 마을이 파괴되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인 대다수가 난민이 되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이웃 국가들 곳곳의 난민캠프로 흩어졌다. 이스라엘이 된 지역에 남은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이스라엘 시민권이 부여되었고, 이들은 스스로를 모순되게도 '유대적이자 민주적(Jewish and democratic)'이라고 규정한 국가에서 착취받는 소수집단이 되었다.[8]

 

1967년 이스라엘 국가는 다른 팔레스타인 영토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했다. 새로 정복한 이들 지역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스라엘 시민권이 부여되지 않았고, 대신 이스라엘의 군사점령 아래 살아가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이 점령지를 통제하는 핵심 수단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 시민을 팔레스타인 도시와 마을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한, 이른바 '정착촌'이라 불리는 군사화된 도시와 주거지역에 정착시키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이러한 거듭된 식민화와 박탈의 물결은 정착민 식민지(settler colony)의 고전적인 정의, 곧 외부에서 온 인구가 정착한,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세우고자 토착 주민들을 몰아내려는 시도가 이뤄지는 영토(territory)라는 뜻에 들어맞는다.[9] 그러나 정착민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라는 용어가 이제 팔레스타인 연구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음에도, 그저 기술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글에서 우리가 제기하는 주장 가운데 하나는 정착민 식민주의가 분석적 설명력을 가지려면 유럽 자본주의의 더 광범위한 팽창의 한 형태로 틀 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식민주의가 자본주의적이었던 만큼, 정착민 식민지는 필연적으로 계급형성, 곧 식민화된 영토들에서 자본과 노동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생산되는 과정과도 결부되어 있었다. 이 과정은 언제나 역사적으로 특수했고, 세계 곳곳에서 서로 다른 경로를 밟았다. 그러나 정착민 식민주의를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팔레스타인과 세계의 다른 맥락들 사이의 연속성과 차이를 모두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정착민 식민주의 아래의 자본과 노동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국제적이었다. 중단 없이 팽창하려는 압력과 원료·에너지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은 국내 영토들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뜻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유럽 열강, 특히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경쟁이 이러한 팽창을 추동했고, 이들의 해외 영토 정복은 식민통치 시스템 아래에서 관리되었다.

 

가나의 반식민 지도자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h)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식민주의는 "외래 정부가 들어선 영토에서 그 정부가 자신이 통치하는 주민들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삶을 통제하는 제국주의의 한 측면"이다.[10] 이러한 직접 식민주의(direct colonialism)를 특징짓는 것은 자본주의적 지배가 행사되는 방식이었다. 국가는 식민 권력의 직접 통제를 받으며 외국 자본의 활동을 지원했다. 기존의 전(前)자본주의적 사회생활 양식을 해체하고 주민들에게서 토지를 박탈하여, 새로운 노동력과 시장을 창조해내는 방식이었다.[11] 이러한 직접 통제를 통해 유럽 국가들은 자국 통화(예컨대 영국 파운드 스털링)의 배타적 사용을 요구하고 모든 산업적·상업적 발전을 본국(metropole)에 묶어둠으로써,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자본주의 열강의 진입도 배제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축적모델은 현지 피식민 인구에서 대규모 자본가계급이 출현하는 것을 억제했다. 대신 피식민 엘리트가 외국 통치의 현지 중개자 역할을 했다. 이들은 종종 특정한 종교적·종족적 정체성과 중첩되어 있었고, 제국주의적 지배를 보장해주는 대가로 특권을 부여받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이스라엘과 같은) 정착민 식민주의 사회에서는 다른 논리가 자리 잡았다. 여기서 유럽 정착민들은 기존 주민들을 지배하고 그들에게서 부를 추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원주민들에게서 [삶의 터전을] 박탈하고 그들을 대체하려 했으며, 그 과정에서 소유관계들(property relations)을 재편했다.

 

이에 따라 정착민 식민주의적 자본주의(settler-colonial capitalism)가 노동과 맺는 관계는 직접 식민지의 경우와 달랐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같은 일부 정착민 사회는 원주민 노동의 착취에 크게 의존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정착민 사회는 이미 그곳에 살던 주민들을 제거하거나 주변화하거나 쫓아내야 한다는 명령(the imperative)에 근본적으로 추동되었다. 이로 인해 정착민 식민주의는 뚜렷한 절멸주의적(exterminist) 성격을 띠었고,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볼 수 있듯 때로는 원주민을 근절하고 대신하려는 노골적인 시도로 나타났다.

 

이렇게 원주민을 주변화했기에, 정착민 사회는 언제나 비원주민 정착민 노동계급을 필요로 했다. 이 노동계급은 원래 [그 땅에] 살던 주민들을 박탈하는 데에서 상당한 경제적·정치적 이점을 얻었다. 그 결과, 이 계급은 전형적으로 정착민 식민주의적 자본주의의 존속에 깊은 이해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노동계급 주체성(working-class subjectivity)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상당히 인종화되고 군사화된 사고방식에 반영되었다. 이 사고방식은 동시에 '[정착민] 노동권'을 수호하는 데 충성을 다하는 것을 표방했다. 이스라엘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동학은 정착민 식민지에서 공공연하게 인종주의적 색채를 띤 노동운동이 종종 정치적으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해 온 이유를 설명해준다.[12]

 

이러한 노동의 특수성과 더불어, 정착민 식민지는 고유한 현지 자본가계급의 성장을 촉진하는 경향도 있었다. 이 계급은 흔히 본국과 연계를 유지하거나 본국에 기반을 두었지만, 정착민 사회가 밟아온 궤적은 종종 [본국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자본주의적 구성체(capitalist formations)의 출현과 궁극적인 정치적 분리를 촉진했다.[13] 그러나 이렇게 분리된 뒤에도 정착민 식민지는 대체로 원래의 본국과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했고,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처럼) 종종 주변 지역에서 제국주의 권력을 투사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식민 투쟁의 물결은 유럽 제국들의 형식적 해체로 이어졌고, 오랫동안 식민통치 아래 놓여 있던 많은 나라들이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식민의 국면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더 심층적인 재구조화와 나란히 전개되었다. 영국과 프랑스, 그 밖의 유럽 열강들이 후퇴했다고 해서 제국주의적 지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미국이 세계경제를 형성하는 주된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제국주의적 지배는 재구성되었다. 미국 자본과 미국 국가는 유럽의 헤게모니를 밀어내면서 금융적·군사적 지배의 새로운 메커니즘을 통해 세력 범위를 넓혔고, 직접 식민통치가 끝나도 제국주의적 통제가 끝나지 않도록 보장했다.

 

전후 자본주의 재구조화의 근본적인 측면 가운데 하나는 석유가 지배적인 화석연료로 부상한 것이었다. 이는 미국 권력의 팽창을 우리가 화석자본주의(fossil capitalism)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글로벌 에너지 질서와 결합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중동을 사활을 걸 만큼 중요한 에너지 추출 현장으로 다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반식민 투쟁의 주요 전장으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벌어진 주권과 자원을 둘러싼 다툼들은 제국주의적 통제의 명령들에 따라 빚어졌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투쟁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지 살피고, 이스라엘의 정착민 식민주의적 토대가 미국의 지배를 중심으로 짜인 새로운 지역질서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었음을 보인다.

 

반(反)팔레스타인 인종주의

 

정착민 식민주의의 이러한 계급동학은 너무나 자주 간과된다. 특히 팔레스타인의 경우가 그렇다. 팔레스타인 사회는 온갖 계급적·정치적 복잡성을 지녔음에도, 하나의 분화되지 않은 덩어리로 평면화된다.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팔레스타인 노동과 자본이 밟아온 서로 다른 궤적과,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의 정착민 식민주의적 자본주의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그 궤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논의한다. 이러한 계급형성의 양상은 팔레스타인 사회와 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와 긴밀히 맞물려 있는 것이, 정착민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인종적 억압의 이데올로기 및 실천 사이의 지울 수 없는 연관이다. 우리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인종에 관한 관념들이 팔레스타인의 맥락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 그리고 이스라엘 정착민 식민주의의 현실에서 그 관념들이 지속해서 차지해온 중심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팔레스타인 인종주의의 성격과 역할에 대한 우리의 접근은 마르크스주의와 반식민 사상의 두터운 유산에 기대고 있다.[14] 이러한 사상은 인종이 자연적이거나 타고난 범주라는 관념에 도전한다.[15] 실상은 그 반대다. '인종'은 인종주의를 통해 생산된다. 다시 말해,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주변화하고 억압하며 착취하기 위해, –실재하는 것이든 상상된 것이든– 특정한 차이가 추상화되어 그 집단의 각 구성원이 지닌 주된 특성이라고 이야기된다(피부색이나 문화 등). 이러한 차이는 집단들을 서로 비교하고 위계 안에 배치할 수 있게 하며, 그 위계가 그들이 받는 대우를 부분적으로 결정(하고 또 정당화)한다.[16]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인종화(racialisation)'를 말할 수 있다. 인종화란 특정한 자의적 차이가 고정되어 인종으로 추상화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많은 인간사회가 차이를 구별해왔다고 해서, 그 모두가 자본주의처럼 체계적이고 전 지구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월터 로드니(Walter Rodney)의 표현을 빌리면, "전 세계에 만연하게 된 백인 인종주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불가분한 일부였다."[17]

 

유럽 자본가들이 처음 세계로 진출했을 때, 그들은 비유럽적이고 비자본주의적인 사회들과 접촉했다. 이러한 사회는 약탈당하고 변형될 운명에 놓여 있었고, 이는 인종의 언어로 표현되었다. 비유럽인과 유럽인 사이의 '차이'는 '인종적으로 후진적인' 비유럽인이 정복하기에 알맞은(ripe) 대상임을 의미했다. 그리고 정복자들은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성을 근거로 그들을 문명화할 권리가 있다고 여겼다.[18]

 

이런 방식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몇몇 핵심 제도는 나머지 세계와 벌인 인종화된 대결을 통해 벼려지고 빚어졌다. 세계가 점점 더 많이 자본주의의 비호(aegis) 아래로 편입되면서 이러한 인종화된 실천은 체계화되었고,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데 사활적인 것이 되었다. 요컨대, 실제로 존재하는 자본주의(actually-existing capitalism)는 인종주의 없이는 생각할 수 없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19]

 

3장에서 논의하듯이, 팔레스타인의 경우에는 인종이라는 문제를 중심에 놓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해야 이스라엘의 정착민 식민주의적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데 반팔레스타인 인종주의가 수행하는 근본적인 역할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의 인종주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만들고, 본질적으로 처분 가능한 존재로 규정하며, 이들에게 가해지는 극단적인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바로 이러한 비인간화가 평범한 이스라엘 시민들로 하여금 가자지구 주민을 잔혹하게 복속시키는 일을 받아들이게 하고 또 거기에 참여하게 만든다. 이러한 인종주의는 이스라엘 우파에 한정되지 않으며, 이른바 자유주의 진영에도 만연해 있다. 곧 '평화'를 지지하고 특정한 국가폭력 행위에 반대하면서도, 이스라엘 국가 자체가 구조적으로 팔레스타인 사회의 지속적인 파괴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에게도 말이다. 이스라엘 정착민 식민주의는 반팔레스타인 인종주의와 분리될 수 없다. 반팔레스타인 인종주의는 단순히 정착민 식민주의에 수반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한다.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러한 인종화는 이스라엘 사회 내부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적 규모로 작동하면서 다른 형태의 반아랍·반이주민·반무슬림 인종주의와 교차하고 그를 강화한다. 반팔레스타인 인종주의는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에게 가해지는 끊임없는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국제적 차원에서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서구의 지원을 정당화하고 지속시키는 데도 복무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인종적 비인간화의 논리가 노골적인 군사 침략이 벌어지는 시기를 넘어서도 지속된다는 점이다. 지금 팔레스타인인을 이집트와 요르단으로 대규모 추방하는 문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거의 관료적이기까지 한 방식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충분하다. 이는 이러한 인종주의가 얼마나 깊이 정상화(normalisation)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연대를 구축하기

 

우리의 논의는 팔레스타인을 중동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석유 중심의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이해 위에 정초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서 출발한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를 지탱하는 구조는 1960년대 이후 주로 미국 헤게모니에 의해 형성되어 온 더 넓은 지역적·세계적 질서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중동에서 미국의 권력은 직접적인 군사개입, 국제금융기구들의 활동, 지역 전역의 권위주의 정권들에 대한 서구의 흔들림 없는 지원을 통해 자신을 천명해왔다. 이러한 질서 속에서 이스라엘은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지역적 렌즈로 팔레스타인을 프레이밍하면, 미국과 다른 서구 국가들이 왜 수십 년에 걸쳐 이스라엘에 그토록 명백한 지원 –수사적(rhetorical) 지원과 물질적 지원 모두– 을 제공해왔는지가 분명해진다.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듯, 이러한 지원은 공유된 '서구적 가치'의 결과도 아니고, 미국의 중동 정책을 좌우하는 이스라엘 '로비'의 결과도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지원은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중동지역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과 분리될 수 없다.

 

이 관점은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수단과 예멘에서의 투쟁 같은) 이 지역의 다른 투쟁들과 직접 연결한다. 이는 유비도 아니고 도덕주의적인 말도 아니다. 실제적이고 실질적인 의미에서 그렇다. 이 모든 투쟁은 지역적·세계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바로 그 동일한 사회적 힘들이 낳은 결과다. 이러한 접근은 또한 자신들의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지역의 자본주의 정부들이 '반제국주의'와 친팔레스타인 수사를 냉소적으로 조작(manipulation)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정한 연대는 민중(the people)의 투쟁과 함께하는 것이지, 그들을 억압하는 정권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다. 연대는 자선행위가 아니라, 이 지역과 그 너머에서 박탈과 탄압, 착취를 만들어내는 공통의 구조들에 맞서는 공동의 싸움이다.

 

이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화석자본주의의 출현과 그것이 지속하는 현실들 속에서 중동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놓여있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20세기 중반 석유가 세계의 주된 화석연료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이 어떻게 그토록 주요한 축이 되었는지를 논의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스라엘은 1947~48년 팔레스타인 인구 대다수의 추방을 토대로 한 정착민 식민지로 수립되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의 정착민 식민주의는 중동에서 서구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 특히 미국의 이해관계를 뒷받침해왔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는 이 지역에서 미국 권력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핵심 기둥인 석유가 풍부한 걸프 아랍 군주국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에 접근하면, 중동에서 제국주의와 정착민 식민주의가 갖는 특수성들을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추상적인 작업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왜 현재의 형태로 존재하는지, 왜 서구의 흔들림 없는 지지를 계속 받는지, 그리고 왜 오늘날 팔레스타인 문제가 화석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의 최전선(the leading edge)에 놓여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 핵심적이다.

 


 

[1] H. Abu Nada, “I Grant You Refuge”(10 October 2023), trans. H. Fakhreddine. 아부 나다는 2023년 10월 20일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으로 사망했다. 당시 서른 두 살이었다.

[2] 『Lancet』에 발표된 한 연구는 사상자 5명 가운데 2명은 기록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실제 사망자 수는 훨씬 더 많다고 추정했다. R. Khatib, M. McKee, and S. Yusuf, ‘Counting the Dead in Gaza: Difficult but Essential’, Lancet, 404(10449), 2024, pp. 237–8.

[3] S. Zhang, ‘Gaza has highest number of child amputees per capita in the world, UN says’, Truthout, 3 December 2024.

[4] K. Hearst, ‘War on Gaza: Israeli Commander Vows to Flatten “Entire” Gaza Strip’, Middle East Eye, 21 December 2023.

[5] R. Ziadah, ‘Genocide, Neutrality and the University Sector’, Sociological Review, 73(2), 2025, pp. 241–8.

[6] N. Sultany, ‘The Question of Palestine as a Litmus Test: On Human Rights and Root Causes’, Palestine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 23, 2023, pp. 9–55.

[7] T. Krever et al., ‘On International Law and Gaza: Critical Reflections’, London Review of International Law, 12(2), 2024, pp. 217, 224–5.

[8] 이스라엘의 자기규정에 대한 분석은 다음을 참고하라. M. Masri, The Dynamics of Exclusionary Constitutionalism: Israel as a Jewish and Democratic State, Hart Publishing, 2017.

[9] 다음을 참고하라. S. Englert, Settler Colonialism: An Introduction, Pluto Press, London, 2022.; O. J. Salamanca, M. Qato, K. Rabie, and S. Samour, ‘Past is Present: Settler Colonialism in Palestine’, Settler Colonial Studies, 2(1), 2012, pp. 1–8.; B. Bhandar and R. Ziadah, ‘Acts and Omissions: Framing Settler Colonialism in Palestine Studies’, Jadaliyya, 14 January 2016.

[10] K. Nkrumah, ‘Address at the First Seminar at the Winneba Ideological School’, Revolutionary Path, Panaf, 1973, p. 172.

[11] R. J. C. Young, Postcolonialism: An Historical Introduction, Blackwell, 2001, pp. 15–24.

[12] 이스라엘의 경우, 국가 건설 초기 수십 년 동안 서구 좌파의 상당수는 이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노동당과 이스라엘 노동조합 연맹 히스타드루트의 지배, 그리고 키부츠와 같은 식민화 형태를 ‘사회주의’의 증거로 보았다.

[13] A. Emmanuel, ‘White-Settler Colonialism and the Myth of Investment Imperialism’, New Left Review, 35, 1972.

[14] F. Fanon, Toward the African Revolution: Political Essays, trans. H. Chevalier, Grove Press, 1988.; A. Y. Davis, Women, Race and Class, Vintage, 1983.; R. W. Gilmore, Golden Gulag: Prisons, Surplus, Crisis, and Opposition in Globalizing Californi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7.; S. Hall, Selected Writings on Race and Difference, in P. Gilroy and R. W. Gilmore (eds), Duke University Press, 2021.; A. Sivanandan, ‘Race, Class and the State: The Black Experience in Britain’, Race and Class, 17(4), 1976, p. 347.; E. Williams, Capitalism and Slavery,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1944.

[15] K. E. Fields and B. J. Fields, Racecraft: The Soul of Inequality in American Life, reprint edition, Verso, 2014, pp. 16–17.

[16] R. W. Gilmore, ‘Fatal Couplings of Power and Difference: Notes on Racism and Geography’, Professional Geographer, 54(1), 2002, p. 15.

[17] W. Rodney, How Europe Underdeveloped Africa, Howard University Press, 1982, p. 88.

[18] R. Knox, ‘Valuing Race? Stretched Marxism and the Logic of Imperialism’, London Review of International Law, 4(1), 2016, p. 81.

[19] 동시대에 관한 몇 가지 논의는 다음을 참고하라. D. Camfield, ‘Elements of a Historical-Materialist Theory of Racism’, Historical Materialism, 24(1), 2016, p. 31.; R. Knox and A. Kumar, ‘Reexamining Race and Capitalism in the Marxist Tradition – Editorial Introduction’, Historical Materialism, 31(2), 2023.; S. Virdee, Racism, Class and the Racialized Outsider, Bloomsbury Publishing,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