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살에 저항하기: 팔레스타인에서의 자본, 제국주의, 인종』
Resisting Erasure: Capital, Imperialism, and Race in Palestine (Verso, 2025)
아담 하니에 Adam Hanieh · 로버트 녹스 Robert Knox · 라피프 지야다 Rafeef Ziadah
번역: 박기형 (서교인문사회연구실)
1장. 중동의 화석자본주의와 제국
팔레스타인은 - 이 끔찍한, 격렬한, 위태로운, 산산조각 난 - 세계의 축소판이다. 불타고 있는.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자격 없는. 장엄한. 그런 축소판.
- 모함메드 엘쿠르드(Mohammed El-Kurd), 『완벽한 피해자: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존재』 (Perfect Victims: And the Politics of Appeal, 2025) [국역본: 박종주 옮김, 2026, 마티, p.40]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자본주의를 규정한 주요한 이행은 두 가지였다.[1] 그 첫 번째는 세계 에너지 시스템에서 일어난 혁명, 곧 석유가 세계의 주된 화석연료로 부상하면서 주도적인 산업화 경제들에서 석탄과 다른 에너지원을 밀어낸 것이었다. 이러한 화석연료 전환은 미국에서 먼저 일어났다. 미국에서는 1950년에 석유 소비가 석탄 소비를 넘어섰고, 1960년대에는 서유럽과 일본이 그 뒤를 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에 속한 부유한 국가들 전체에서 석유는 1950년 총 화석연료 소비의 28%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1960년대 말에는 과반을 차지했다. 에너지 밀도가 높고 화학적으로 유연성이 크며 운송하기도 쉬운 석유는 급성장하던 전후 자본주의의 동력이 되어, 새로운 기술과 산업, 기반시설이 폭넓게 확대될 수 있게 했다. 석유에서 얻은 액체연료는 현대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파괴력을 크게 증폭시킨 항공기와 함정, 동력 차량은 계속 늘어나는 석유 공급에 의존했다.'
석유로의 글로벌 이행은 석탄이 더 이상 소비되지 않았다는 뜻도, 심지어 석탄 사용량이 전체적으로 감소했다는 뜻도 아니었다(실제로 석탄 소비는 2024년에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오히려 이 시기에는 "석유를 연료로 한 축적이 …… 석탄 기반 축적 위에 중첩되었다."[2] 전체적으로 세계의 에너지 구성에 석유가 추가되면서 1950년부터 1965년 사이 글로벌 화석연료 소비는 두 배로 늘어났다.[3] 이는 과학자들이 나중에 '대가속(Great Acceleration)이라 부르게 된 것―'화석연료 사용이 대규모로 계속 확대되면서 오늘날의 기후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로 걷잡을 수 없이 이어진 과정―의 시작이었다.
석유로의 이러한 글로벌 전환은 전후의 두 번째 주요 변혁, 곧 미국이 주도적인 경제·정치 강국으로서 지위를 공고히 한 것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미국은 이미 20세기 초반 수십 년에 걸쳐 경제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지만, 미국이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가장 역동적인 세력으로 확정적으로 발돋움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였다. 이에 견줄 수 있는 세력은 소련과 그 동맹 블록뿐이었다. 미국의 권력은 전쟁 중 서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파괴와, 거기에 결합된 유럽 식민통치의 약화를 발판 삼아 성장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휘청이면서, 미국은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포함해 전후 정치·경제의 아키텍처(architecture)를 빚어내는 데 주도권을 잡았다. 1950년대 중반 미국은 세계 제조업 생산의 60%를 차지했고 세계 GDP의 4분의 1을 조금 넘게 차지했다. 또한 세계 50대 산업기업 가운데 42개가 미국 기업이었다.[4]
이 두 가지 전환—석유를 연료로 한 자본주의의 부상과 미국 권력의 부상—은 중동에 심대한 함의를 지녔다. 중동은 석유로의 글로벌 이행에 필수적이었으며, 1950년대 중반에는 세계 확인매장량의 거의 40%를 보유하고 있었다.[5] 중동의 유전은 규모가 방대했을 뿐 아니라 다른 이점도 지니고 있었다. 곧 생산비용은 세계 어느 곳보다 낮았고, 유럽과 가까웠기 때문에 다른 공급원에서 들여오는 것보다 운송비도 훨씬 적게 들었다. 그 덕분에 중동산 석유는 석탄보다 낮은 가격으로 유럽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반면, 미국의 석유 생산자는 유럽의 수요 증가가 가하는 압력에서 계속 비켜나 있었다. 중동을 중심으로 한 유럽 에너지 공급의 재편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1947년부터 1960년 사이 유럽의 석유 수입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43%에서 85%로 급증했다.[6] 이렇게 유입된 저렴한 석유는 새로운 산업, 그중에서도 특히 석유화학산업의 부상을 뒷받침했고, 운송과 기반시설, 군사력을 탈바꿈시켰다. 중동이 없었다면 서유럽의 석유 전환은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당시 중동의 막대한 석유 매장량은 걸프 지역—사우디아라비아와 소규모 걸프 군주국들, 그리고 이란과 이라크—에 집중되어 있었다. 20세기 전반기에 이 국가들은 영국의 지원을 받는 전제 군주정 아래에서 통치되었다(다만 사우디아라비아는 명목상 영국 식민주의에서 벗어나 있었다). 석유 생산에 대한 통제권은 소수의 서구 석유기업이 확고하게 쥐고 있었고, 이 기업들은 채굴권을 얻는 대가로 통치자들에게 지대와 로열티를 지급했다. 이들은 단순한 생산업체가 아니었다. 거대한 수직통합 기업으로서—채굴에서 정제와 운송, 유통에 이르기까지—석유의 글로벌 순환의 모든 단계를 관리했다. 이들의 권력은 비할 데가 없었으며, 에너지시장뿐 아니라 지역 정치까지 빚어냈다. 석유산업에서 소유가 집중된 정도는 다른 어느 산업부문보다 훨씬 높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미국과 소련 이외 지역에 알려진 모든 석유 매장량의 80% 이상을 단 일곱 개의 서구 기업—이른바 악명 높은 '세븐 시스터스(Seven Sisters)'—이 통제하고 있었다.[7]
반(反)식민 봉기
겉보기에 흔들 수 없어 보이던 세계 석유 통제에도 불구하고, 세븐 시스터스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중동이 세계 석유시장의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상당한 도전에 직면했다. 지역 전역에서 민족주의·공산주의·그 밖의 좌파 운동들은 오랫동안 영국과 프랑스 식민주의의 지원을 받아온 통치자들에게 도전했고, 서구 중심의 지역질서를 문제 삼았다. 이러한 봉기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는 이집트였다. 영국이 지원하던 군주 파루크 국왕(King Farouk)이 1952년, 대중적 지지를 받던 군 장교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가 이끈 군사쿠데타로 축출되었다. 나세르는 영국군을 이집트에서 철수시켰으며, 1956년에는 이웃인 수단이 독립하는 길을 열었다. 이집트의 주권은 1956년 영국과 프랑스가 통제하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면서 정점에 이르렀다. 중동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이를 경축했고,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은 이에 맞서 이집트를 침공했으나 실패했다. 이집트가 식민주의와 결별한 것은 이웃 국가들의 다른 운동을 고무하는 데도 일조했다. 그 가운데 알제리에서는 프랑스 점령에 맞선 게릴라전이 1954년에 시작되었다.
중동의 이러한 민족해방투쟁들은 아프리카·아시아·라틴아메리카에 걸쳐 일어난 더 큰 전후 글로벌 봉기의 일부였다. 오늘날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반식민 정서는 석유가 풍부한 걸프 국가들에서도 깊이 느껴졌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소규모 걸프 군주국들에서는 나세르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높았고, 여러 좌파 운동이 지배가문들의 부패와 탐욕, 친서방과의 제휴에 항의했다. 이러한 투쟁은 걸프 군주들의 취약성을 부각했으며, 서구 기업이 행사하던 중동 석유 통제에 도전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나세르가 지역적 호소력을 지녔던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석유를 보는 그의 관점이었다. 즉 석유는 '양도할 수 없는 아랍의 권리'이며, 이를 제국주의에 맞서 아랍세계를 단결시키는 데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웃나라 이란에서는 대중적 지지를 받던 지도자 모하마드 모사데그(Mohammad Mossadegh)가 1951년 집권했다. 그가 처음 취한 조치 가운데 하나는 영국이 통제하던 앵글로-이란 석유회사(Anglo-Iranian Oil Company, 오늘날 BP의 전신)를 접수한 것이었다. 이는 중동 최초의 석유 국유화였다. 이 국유화는 인근 아랍 국가들에서 강한 반향을 일으켰다. 더 광범위한 반식민 물결 속에서 "아랍의 석유는 아랍인에게"라는 구호는 자국 자원을 통제하려는 커져가는 열망을 담아냈다.[8]
모사데그의 조치에 대응해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1953년 이란에서 쿠데타를 조직했고, 이란 군주 모하마드 레자 샤 팔라비(Mohammad Reza Shah Pahlavi)에게 충성하는 친서방 정부가 집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중동 전역의 급진적·민족주의적 운동을 겨냥한 반혁명 물결의 시작이었다. 1953년 쿠데타는 지역질서에서 일어난 결정적인 이행 또한 부각했다. 영국이 쿠데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그 기획과 실행을 주도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 정부가 평시에 외국의 통치자를 자리에서 축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쿠데타에 개입한 CIA의 행보는 1954년 과테말라에서의 쿠데타나 1973년 칠레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정부의 전복처럼 이후 미국이 벌인 개입들의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이처럼 미국이 중동에서 맡은 더욱 적극적인 역할은 1957년에 명문화되었다.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대통령은 「중동 정세에 관한 의회 특별교서(Special Message to the Congress on the Situation in the Middle East)」의 일부로 일명 아이젠하워 독트린을 정식화했다.[9] 아이젠하워는 "국제 공산주의"를 비난하면서, "이 지역의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방어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미국 군대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확약했다. 아이젠하워의 연설은 이른바 소련의 위협이라는 프레임 속에 놓여 있었지만, 연설의 상당 부분은 이집트에서 벌어진 사건들, 특히 1956년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다루고 있었다. 아이젠하워는 이 운하가 "아시아와 유럽의 국가들이 교역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준다. 이들 나라가 균형 잡히고 번영하는 경제를 유지하려면, 그 교역이 필수적이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중동이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사이의 관문이며 …… [그곳에는] 현재 알려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3분의 2가 있다. …… 유럽 국가들은 이 공급에 특히 의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의존은 생산뿐 아니라 운송과도 관련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정착민 식민주의의 중요성
이러한 맥락에서 이스라엘은 중동에서의 미국의 이해관계와 관련해 최상의 보루로 부상했다. 20세기 초반에는 영국이 시온주의 운동의 주된 후원자였으며, 1948년 이스라엘 수립 이후에도 처음에는 시온주의 국가 건설 프로젝트를 선도하는 가장 중요한 동맹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전후 시기에 미국이 중동에서 유럽의 식민주의적 지배를 대체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새로운 지역 안보질서의 핵심 고리(lynchpin)로 부상했다.
이스라엘과 주요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1967년 전쟁이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은 이집트와 시리아의 공군을 파괴하고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점령했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나세르의 이집트에서 가장 뚜렷하게 결정체를 이루고(crystallise) 있던 아랍의 단결, 민족적 독립, 반식민 저항이라는 관념을 산산이 깨뜨렸다. 이집트에서는 1970년 나세르가 사망하고 뒤이어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가 집권하면서 이스라엘의 승리가 상징적으로 더욱 굳어졌다. 사다트는 이후 나세르의 수많은 정책을 되돌리는 데 나섰다. 전쟁 이후에도 대중투쟁은 중동을 계속 뒤흔들었지만—특히 북예멘과 남예멘, 리비아, 오만의 도파르(Dhofar) 지역에서 그러했다—지역 전체의 변혁을 지향하는 정치적 비전은 어떤 것이든 훨씬 더 요원해졌다.
1967년 전쟁은 이스라엘이 이 지역에서 미국의 이해관계에 대한 그 어떤 위협에 맞서서도 동원될 수 있는 강력한 세력임을 입증해주었다. 이때부터 미국은 이스라엘 쪽으로 선회했고, 영국을 대신해 이스라엘의 일차적인 후견인이 되었다. 미국은 매년 수십억 달러 상당의 군사장비와 재정지원을 이스라엘에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지원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2023년 1인당 GDP 기준으로 세계에서 열네 번째로 부유한 경제국—영국이나 독일, 일본보다도 앞선다—임에도, 미국에서 받은 대외원조 누적액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다. 실제로 현재의 제노사이드가 시작되기 전인 2021년, 이스라엘이 받은 미국의 대외군사원조는 세계 나머지 모든 국가가 받은 액수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10]
그러나 군사원조는 전체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대출보증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이스라엘 국가는 세계시장에서 더 낮은 비용으로 차입할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 이러한 특권을 받은 나라는 이스라엘을 포함해 단 여섯 곳뿐이다.[11] 그리고 지난 18개월 동안 확인되었듯이, 미국의 지원은 무기와 돈을 훨씬 넘어선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정치적 방패 역할을 하면서 책임 규명(accountability)을 가로막고, 국제무대에서 이스라엘이 처벌받지 않도록 보장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이러한 미국의 지원은 특정 대통령이나 정당 하나에 묶여 있지 않다. 곧 초당적이며 항구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지원에는 종종 언급되지 않는 차원이 있다. 미국 권력을 보증하는 이스라엘의 특별한 위치는, 주민들을 끊임없이 뿌리뽑고(uprooting) 축출하는(expulsion) 과정 위에 세워진 정착민 식민지라는 이스라엘의 내적 성격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그 과정이 가장 최근에 현현(懸懸)한 것(manifestation)이 바로 가자지구를 향한 전쟁이다).
3장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정착민 식민지는 인종적 억압과 계급착취, 박탈의 구조를 굳건히 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 한다. 따라서 정착민 식민지는 대체로 고도로 군사화되고 폭력적인 사회이며, 적대적인 지역 환경에서 자신들의 물질적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인구의 상당 부분이 원주민에 대한 억압에서 이익을 얻으며, 자신들의 특권을 인종화된 군사주의적인 언어로 이해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정착민 식민지는 서구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와 관련해 '정상적인' 클라이언트 국가들보다 훨씬 더 믿을 만한 동반자가 된다. 예를 들어, 중동에서 미국이 지원하는 아랍 정부들(오늘날의 이집트, 요르단, 모로코)은 자국 내부의 정치운동들에게 반복해서 도전받으며, 아래로부터 오는 압력을 항상 일정 부분 수용하고 이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이스라엘과 다르다. 이스라엘에서는 인구의 다수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특권이 외부의 지속적인 지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바로 이것이 20세기 초 영국 식민주의가 정치운동으로서 시온주의를 지원한 이유이며, 1967년 이후의 국면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끌어안은 이유다.
물론 이것이 미국이 이스라엘을 '통제'한다는 뜻도 아니고, 이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를 두고 미국 정부와 이스라엘 정부 사이에 의견 차이가 전혀 없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이 없다면, 이스라엘이 항구적인 전쟁·점령·억압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은 심각하게 위태로워질 것이다(물질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모두 그러하다). 그 답례로 이스라엘은 충성스러운 동반자이자, 이 지역에서 미국의 이해관계에 가해지는 어떠한 위협에도 맞서는 방벽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은 중동을 훨씬 넘어선다. 이스라엘은 세계 곳곳에서 미국의 도움을 받는 억압적 정권들을—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라틴아메리카의 군사독재정권에 이르기까지—지원해 왔다.[12]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행정부에서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Haig)는 한때 이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이스라엘은 침몰되지 않고, 미군 병사를 단 한 명도 태우지 않으며, 미국의 국가안보에 핵심적인 지역에 자리한, 세계 최대의 미국 항공모함이다." 또는 전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Joe Biden)이 1986년에 말했듯이, "[이스라엘은] 우리가 30억 달러로 하는 최고의 투자다. 이스라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미합중국은 이 지역에서 자국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발명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말에 걸맞게, 미국은 일관되게 이스라엘이 처벌받지 않고 행동할 수 있도록 했다. 1945년 이후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결의안 가운데 절반 이상은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이었다.[13]
이스라엘 국가의 내부적 성격과 미국 권력에서 이스라엘이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 이 둘의 관계는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가 서구 제국주의를 위해 수행했던 역할과 유사하다. 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이스라엘 국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지만—그중에서도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인구가 그 나라 노동계급의 과반을 이루었다는 사실이 그렇다(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렇지 않다)—, 두 나라는 정착민 식민지로서 각자의 주변 지역에서 서구 권력을 조직하는 핵심 거점으로 기능했다.
게다가 서구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를 지원했던 역사를 살펴보면, 오늘날 이스라엘의 경우에서 보는 것과 같은 종류의 정당화를 발견할 수 있다(국제제재를 가로막고 시위운동을 범죄화하려는 것과 같은 종류의 시도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유사성은 특정 개인들의 역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사례는 1989년 영국 보수당의 한 젊은 당원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한 일이다. 그는 그곳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국제제재에 반대했고, 영국이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계속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4] 수십 년 뒤, 그 젊은 보수당원이었던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은 영국 외무장관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2023년에 이르러서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인 제노사이드를 가장 앞장서 옹호한 이들 중 한 명이 되었다.
글로벌 석유경제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 때문에, 이스라엘은 제국주의 권력 안에서 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공화국보다 더 두드러진 위상을 갖는다. 그러나 두 사례 모두, 지역적·세계적 요인들이 정착민 식민지 내부의 계급적·인종적 특성들과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접근은 서구의 이스라엘 지원을 '이스라엘 로비'로 설명하는 주장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로비'설은 본질적으로 자유주의적인 주장으로서, 국가제도를 자본주의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통해 파악하기보다 국가가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을 '이익집단'의 활동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책을 둘러싸고 서로 조율하며 로비하는 친이스라엘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 조직들은—서구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이유라기보다—팔레스타인에 관한 정치운동들(과 발언들)을 단속하고 탄압하는 데 사용되는 규율 메커니즘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국내적으로 이들은 중동에 대한 서구의 대외정책을 명료하게 표명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며, 지탱하는 데 기여한다. 그 영향력은 팔레스타인 투쟁에 대한 대중적 공감이 커지는 국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리고 3장에서 살펴보듯이, 이 조직들은 반팔레스타인 인종주의가 조장되고 정상화되는 핵심 경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앞날을 전망하기: 이스라엘은 어떻게 중동에 경제적으로 통합되는가
1960년 석유수출국기구(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OPEC)가 설립되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중동지역 대부분에서(그리고 전 세계 다른 곳에서도) 원유 자원이 국유화되면서, 중동은 미국의 글로벌 권력에 있어 더욱 중요해졌다. 국유화는 중동의 원유 공급에 대한 서구 석유기업의 오랜 직접 통제를 종식시켰다(다만 미국과 유럽 기업은 이 석유의 글로벌 정제·운송·판매 대부분을 계속 통제했다).[15] 이러한 맥락에서,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이해관계는 석유가 세계시장에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그 거래가격은 미국 달러로 표시된다—보장하는 한편, 석유가 미국 중심의 글로벌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무기'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데 집중되었다. 더욱이 걸프의 산유국들이 이제 원유 수출로 수조 규모의 수익을 올리게 되면서, 미국은 이른바 페트로달러(petrodollars)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통해 어떻게 순환하는지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는 여전히 미국 달러의 지배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남아있다.[16]
이러한 이해관계를 추구하면서 미국의 전략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한 걸프의 지배 군주국들이 핵심적인 지역 동맹으로 존속시키는 데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는 1953년 쿠데타 이후 걸프에서 미국 이해관계의 또 다른 버팀목 이란의 팔라비 왕조가 1979년에 전복된 뒤 특히 중요해졌다. 걸프 군주들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걸프를 세계 최대의 무기시장으로 만든 막대한 규모의 군사장비 판매, 걸프의 페트로달러 부를 미국 금융시장으로 유입시킨 경제적 이니셔티브들, 그리고 오늘날까지 군주정의 통치를 궁극적으로 보장하는 미군의 항구적 주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걸프의 관계에서 중대한 국면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지속된 이란–이라크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20세기 가장 파괴적인 분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최대 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전쟁 동안 미국은 이라크와 이란 양측 모두에 무기, 자금, 정보를 제공했다. 이 전쟁을 인접한 두 대국의 힘을 약화시키고 걸프 군주들의 안보를 한층 더 보장하는 방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17]
미국은 이란과의 전쟁 기간 동안 이라크 지도자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을 지원했다. 하지만 후세인이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점령한 뒤, 미국의 정책은 바뀌었다. 1990~91년 걸프전에서 미국은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내기 위한 연합군을 이끌었고, 이후 이라크에 파괴적인 유엔 제재를 부과했다. 이 제재는 10년 넘게 지속되었다. 이라크의 경제와 군사적 역량을 마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이 제재는 수십만 명의 이라크인을 죽였다. 그 뒤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이어졌고, 이 전쟁은 사담 후세인을 무너뜨렸으며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주둔 범위(footprint)를 크게 확대했다. 여기에는 걸프 군주국 전역의 육상기지와 해군기지도 포함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는 새로운 인종적 담론인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이 수반되었다. 이 담론은 아랍인 공동체와 무슬림 공동체를 위협으로 규정했고, 미국 권력을 이 지역에 투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다(3장을 참고하라).
이 기간 내내 이 지역에서 미국 권력의 전반적인 프레임은 계속해서 두 개의 기둥에 의존했다. 곧 한편에는 이스라엘이, 다른 한편에는 걸프 군주국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두 기둥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은 중대하게 달라졌다. 1990년대에 시작해 오늘날까지 미국 정부는 이 두 전략적 극을—요르단과 이집트 같은 다른 주요 아랍 국가들과 함께—미국의 이해관계에 정렬된 하나의 경제적·정치적 권역으로 엮으려 했다. 이를 성공적으로 이루려면,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경제적·정치적·외교적)를 정상화함으로써 더 넓은 중동에 통합되어야 했다. 무엇보다 이는 수십 년 동안 존재해온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의 공식적인 보이콧을 폐지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걸프 군주국들 사이에서 이러한 정상화가 성공할지는 궁극적으로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달려 있었다. 이스라엘의 더 넓은 지역 통합에 팔레스타인 측의 축복(blessing)이 내려질 만한 변화여야 했다.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이해하려면, 1967년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점령 이후 팔레스타인 사회와 정치에서 일어난 변화를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이 장에 포함된 일부 내용은 다음 글을 바탕으로 수정 및 재구성했다. A. Hanieh, ‘Framing Palestine: Israel, the Gulf States, and American Power in the Middle East’, 13 June 2024. Available at: TNI.org.
[2] R. J. Ortiz, ‘Oil-Fueled Accumulation in Late Capitalism: Energy, Uneven Development, and Climate Crisis’, Critical Historical Studies, 7(2), Fall 2020, pp. 205–40, 236.
[3] S. Pirani, Burning Up: A Global History of Fossil Fuel Consumption, Pluto Press, 2018, p. 64.
[4] S. Ikeda, ‘World Production’, in Terence Hopkins and Immanuel Wallerstein (eds), The Age of Transition: Trajectory of the World-System, 1945–2025, Zed Books, 1996, p. 74.
[5] N. Kokxhoorn, Oil and Politics: The Domestic Roots of US Expansion in the Middle East, Peter Lang, 1977, p. 123.
[6] Ibid., p. 127.
[7] A. Sampson, The Seven Sisters: The Great Oil Companies and the World They Shaped, Viking, 1975.
[8] N. Fuccaro, ‘Oilmen, Petroleum Arabism and OPEC: New Political and Public Cultures of Oil in the Arab World, 1959–1964’, in Dag Harald Claes and Giuliano Garavini (eds), Handbook of OPEC and the Global Energy Order: Past, Present and Future Challenges, Routledge, 2020, pp. 15–30.
[9] D. Eisenhower, ‘Special Message to the Congress on the Situation in the Middle East’, 5 January 1957, in G. Peters and J. T. Woolley (eds), The American Presidency Project, presidency.ucsb.edu.
[10] G. Kilander, ‘How much money does the US give to Israel, and is there more to come?’, Independent, 1 November 2023. Available at: Independent.co.uk.
[11] 나머지 다섯 국가는 우크라이나, 이라크, 요르단, 튀니지, 이집트다.
[12] International Jewish Anti-Zionist Network, Israel’s Worldwide Role in Repression, 2012.
[13] H. O’Dell, ‘How the US has used its power in the UN to support Israel for decades’, The Chicago Council on Global Affairs, 18 December 2023.
[14] M. Dejevsky, ‘Cameron’s freebie to apartheid South Africa’, Independent, 26 April 2009.
[15] G. Garavini, The Rise and Fall of OPEC in the Twentieth Century, Oxford University Press, 2019.
[16] 다음을 참고하라. A. Hanieh, Crude Capitalism: Oil, Corporate Power, and the Making of the World Market, Verso Books, 2024.
[17] T. G. Jones, ‘America, Oil, and War in the Middle East’, Journal of American History, 99(1), 2012, pp. 208–18,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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